소설리스트

전생검신-1099화 (1,09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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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잠시 후 천우진이 보패 산하사직도를 내 면전에 들이대며 말했다.

“아까 네 입으로 시간이 폐절된다고 했지. 그 말대로 이 안에 들어간 존재는 본래 시간조차 느끼지 못해. 저차원으로 강등되어 일개 그림이 되어버리니까 생명체가 할 수 있는 생각따윈 할 수 없지.”

“그럼 탈출시도조차 할 기회가 없는 거 아니냐?”

“강대한 힘을 지닌 존재의 경우는 다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속박당해서 찰나와 같은 영원을 느끼는 셈이 되지. 차원을 낮춘다 하더라도 그 존재 자체의 격을 떨어뜨릴 수는 없는 보패 산하사직도의 한계야. 그래서 과거에 강대한 마력을 지닌 제갈사가 갇혔을 때 지속적으로 탈출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고.”

“흐음. 생각만 할 수 있다는 말이군.”

“그런 셈이지.”

천우진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도 엄청난 신력을 갖고있으니 산하사직도로 완전히 봉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깨고나오는 건 생각보다 쉬울거다. 하지만 네가 가진 힘을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힘이 있어도 도리어 더 강하게 묶여버릴 수도 있는 게 산하사직도의 무서운 점이다.”

“알겠어. 근데 내가 뚫고 나오면 산하사직도가 망가질텐데 괜찮냐?”

“별로…. 어차피 말세(末世)가 도래한 이 상황에서 이 보패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자조적으로 중얼거린 천우진이 눈을 빛냈다.

“갇혀라!”

후웅!

다음 순간, 나는 내가 완전히 다른 공간에 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수려하게 펼쳐져있는 기암괴석의 절벽 - 그 절벽의 위에 있는 오두막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상태였다.

‘시작됐나!’

천우진의 말대로군!

나는 동시에 의념천주와 기(氣)를 끌어내려 했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마치 전뇌자의 전뇌세계에 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움직이려 했지만 움직임조차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어야 했다.

‘…확실히 이런 상태에서 수련은 무리군.’

그저 머릿속으로 생각만 거듭하는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수련이라 칭하기는 힘들다. 무술의 고급단계에 이르면 좌선명상만으로 무예의 이치를 깨닫는 것도 있지만, 그것도 오성(悟性)이 출중한 인물들이나 가능한 일. 오로지 실전과 훈련과 기연만으로 기어올라온 나 같은 경우 수련을 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천우진의 말대로라면 이런 식으로 시간폐절에서 생각의 자유를 얻는다 해도 흘러가는 시간은 바깥과 거의 동일. 굳이 산하사직도 내에 들어와서 수련을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력은?

나는 아직 흑웅이 없어서 단순방출밖에 할 수 없는 음신지력을 단숨에 뿜어내었다. 그러자 내 눈 앞의 공간이 뒤틀리더니 마치 유리처럼 깨지기 시작했다.

‘어? 금방 깨네?’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이윽고 깨지던 공간에 강력한 압력이 들어오는 듯 크게 조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도리어 무형의 힘이 신력의 덩어리를 내 몸속으로 집어넣었고 나는 완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흠. 거의 다 깬 것 같았는데 뭐가 문제지.

나는 고민하다가 다시 한 번 시도해 보았고,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아무리 힘으로 밀어붙여도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밀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게 바로 천우진이 말했던 거군. 힘을 집중하지 않으면 도리어 더 강하게 묶여버릴 수 있다는 말….’

힘으로 보패의 봉인을 어느 정도는 뚫을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즉 힘의 운용을 잘 분배하거나 제대로 된 공략법으로 도전해야 산하사직도를 뚫을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이다. 간만에 겪는 시련다운 시련이었고 도전정신을 들끓게 만들었다.

‘좋았어! 그럼 어디….’

…….

그런데 힘을 집중한다고 해도 어떻게 하지? 흑웅이 없는 지금, 내가 신력을 쓸 수 있는 방법은 단순히 방출하는 것밖에 없는데…. 게다가 바로 얼마 전 세이메이에게서 아마테라스의 반신을 얻은 후 더욱 제어하기가 힘들어진 느낌인데.

같은 방법으로 다시 도전해봤자 실패할 뿐인데 내가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전할 방법의 갯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제야 수련답군. 결국 사이탄의 언령을 이용해서 내 자신의 통제력을 늘리고, 늘어난 통제력을 이용해서 흑웅이 없어도 음신지력을 조종할 수 있어야 해.’

흑웅이 있을 때는 굳이 귀찮게 신력을 염상하거나 집중하지 않아도 흑웅이 다 알아서 해 주었다. 하지만 흑웅이 없다고 해서 음신지력을 아예 다루지 못하는 건 아니다. 지금도 단순방출은 가능하고, 통제력을 더 늘리면 흑웅 없이도 간단하게 창의 형태나 방패의 형태를 만드는 건 가능하다. 예전에 미호에게 요력을 다루는 요령을 배웠기에 신력 또한 조종할 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통제력을 얻으려면 지금 수준에서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사이탄의 언령으로 통제력을 올려뒀다고 해도 아주 조그마한 영역만을 다룰 수가 있다. 체감상 내가 지닌 전체 신력의 5푼에도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기에, 이걸로는 형태를 구현화시키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사이탄의 언령을 수련해야 한다.

나는 그 생각에 미쳤지만 이내 곤란함을 느꼈다.

‘언령을 암송해야 하는데…. 발음을 하지 않으면 암송이 안 되잖아!!’

입을 벌리려 해도 입이 안 벌어진다!

그도 그럴것이, 애초에 지금 상태에서 육체의 감각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내 몸이 시각적으로는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치 텅 비어있는 공간에 의식만 덩그러니 놓인 것 같았다. 근육과 신경이 연결되어 있는 원초적인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은 ‘그림’에 불과하기 때문이리라!

입을 못 열 수밖에 없다.

그림이 입을 열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내심 끙끙 앓으며 고민을 거듭했다. 설마 이대로 24시간을 허망하게 날리는 것인가? 그렇다고 치명적인 실패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뼈아픈 건 사실이다. 24시간동안 암송수련만 해도 어느 정도의 성취는 있을 것이기 때문에 손해 본 느낌이리라.

‘아니지…. 천우진 같은 천재가 나를 여기에 들여보낼 때 그런 걸 생각 못했을 리가 없어…. 당연히 방법이 있으니까 넣은 거 아니겠어!’

방법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 설마 자기 휴가 중에 일시키러 찾아왔다고 앙갚음을 하려고 일부러 수련방법도 없는데 산하사직도에 집어넣을 리는…없….’

…….

그만하자. 생각해봤자 이미 들어와버린 이상 무의미하다.

나는 빠르게 마음의 자세를 전환한 후 정신을 집중했다.

입을 못 여는데 언령을 암송하는 게 가능할까? ‘그림’의 상태라서 성대도 못 쓰는데 전제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래도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머리를 굴린 결과, 나는 이윽고 다른 결론을 내렸다.

‘그냥 입 말고 머릿속으로 외워보자.’

뾰족한 방법이 없다. 본디 입으로 발음을 해야 언령이 성립하는 것이지만 일단은 언령을 머릿속에서 외워보기로 했다. 약 220여자의 언령을 머릿속에서 외우자 역시나 언령을 직접 암송할 때처럼 확실히 통제력이 올라가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안 되네.’

흠…. 어떻게 해야 하지?

몸 자체가 ‘그림’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입을 열 수 있을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렇게 약 한 시진이 지나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모르겠다!

‘제기랄…. 실패한 건가….’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순을 극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긴 애초에 그게 생각날 정도면 내가 둔재라고 불릴 일도 없었으리라. 나는 멍하니 허공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가 결국 막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쿠구구구

콰광! 콰과광!!

나는 계속해서 신력을 끌어내어서 그저 방출만 거듭하며 산하사직도를 뚫으려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반발력이 거세게 날아오면서 지금까지 없었던 압박감으로 뇌마저도 옥죄이는 기분이 들었다. 신경이 터져나갈듯이 아파왔다.

‘컥…어억….’

역시 단순히 힘만으로는 안 되나…!!

“어억….”

응?!

나는 고통섞인 신음을 흘리다가 순간적으로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는 걸 알아챘다. 마치 육체가 존재하는 양 말을 할 수 있었다.

설마….

그리고 잠시 후 몇 번을 더 시험해보던 중 뭔가를 알아챘다.

‘그래!! 힘을 대방출해서 산하사직도가 어그러지는 그 짧은 순간!! 그 때는 나를 억제하는 산하사직도의 법칙이 사라져서 말을 할 수 있어! 보패가 타격을 받아서 내 존재를 ‘그림’이라는 하위차원으로 고정할 수가 없는 거야.’

나는 짧은 순간에 언령 암송을 할 수 있는지를 한 번 해 보기로 했다.

“유륵존비구용설작변우종시…… 끄아아아아악!!”

무리다!! 나는 고작 십여 자를 외우고서 반발력이 덮쳐와서 뇌가 터질 것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마련되는 시간은 찰나였기에 고작 십여 자를 외우면 끝인 것이다.

‘미친…!! 암송시간이 말도 안 되게 부족하다! 220자는 되는데 어떻게 하지?!’

나 정말 바보짓 한 건가? 그냥 얌전히 바깥에서 암송수련이나 할 걸 그랬나!

‘아냐!! 절대 포기 안 해!! 여기서 포기하면 정말로 미호랑 맞닥뜨렸을 때 28번째 삶이 끝장나버릴 수도 있어! 이 정도는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오기가 있지 절대 포기 못 한다! 뭐 방법 없을까? 사이탄의 언령을 10여자밖에 못 외우는 상황에서 수련을 해서 음신지력의 제어력을 올릴 방법이….

어?

문득 나는 엉뚱한 생각이 났다.

그러고보니 사이탄의 언령도 힘이고 음신지력도 힘인데 두 개를 합하면 안 되나.

음신지력이 산하사직도의 공간을 뚫는데 한끝의 힘이 부족해서 계속 실패한다면…. 언령으로 음신지력을 강화시켜서 그 힘에 추진력을 더해준다면!!

‘가능할까.’

220자의 언령 중에 고작 십여 자 외울 시간밖에 없다. 그것도 언령이란 다 합쳐서 하나같은 개념이므로 일부를 외워봤자 언령이 완결되지 않아서 힘의 발현이 미미하다. 조각난 언령을 가지고는 음신지력을 강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언령과 음신지력…. 두 개의 강대한 힘을 동시에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단순히 언령을 통제력 강화로 쓰는 게 아니라, 나도 언령의 힘을 자유자재로 휘두르고 싶다.

‘하지만 이건 사이탄의 이름을 환신 천우진이 언령으로 변환시킨 것…. 내가 이렇게 완벽한 언령을 내 마음대로 개조시킬 수는 없어. 실력이 엄청나게 부족해.’

그냥 단순하게 해 볼까?

어차피 언령이라고 해도 [이름]의 힘을 쓰기 좋도록 변환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저 이름을 그대로 발음하는 게 가장 원초적인 언령인 셈이다. 다만 이렇게 할 경우 언령으로 수련효과는 누릴 수가 없고 그저 사이탄의 [이름]이 갖고있는 영기가 발현될 뿐이다. 그 효과는 아직까지 시전해본 적이 없어서 미지수였다.

‘해 보자.’

그렇다 해도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다.

나는 다시 한 번 산하사직도에 음신지력을 내뿜으며 잠시동안 육체의 자유를 얻었고, 그 틈에 모든 의념을 담아서 또박또박 발현했다.

“사이탄!!”

끼기긱

그 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서 튕겨 나오는 듯하던 음신지력의 힘이 거대한 물결처럼 변했고, 이윽고 파도처럼 확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입뿐만 아니라 손이나 발도 움직일 수 있는 걸 깨달았다.

‘좋아. 그럼 또 다시….’

이름은 세 번 부르면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는 주술계의 격언이 있다.

나는 나머지 두 번을 마저 외쳐불렀다.

“사이탄! 사이탄!!”

우우우!!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내 몸에서 휘돌던 음신지력이 마치 강물이 넘치듯이 천지를 향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또한 파도처럼 변한 음신지력은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둥근 막을 만들어서 나를 허공으로 띄웠다.

쿠콰콰콰

그리고 음신지력의 파도는 더더욱 양이 많고 거세어졌다. 당초에는 그저 절벽 위를 적실 정도였던 양이었으나 마치 수룡(水龍)처럼 살아서 꿈틀거리며 천공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허공에 보이지 않는 화수분이라도 있는 것처럼 끝도 없이 양이 많아지는 모습을 보자 나는 아연함을 느꼈다.

“이, 이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치리리링 -

잠시 후 음신지력의 파도 속에서 맑은 빛이 흘러나오더니 머리 뒤에 후광이 비치는 아름답고 고결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신(女神), 아마테라스!

아마테라스는 맨발로 음신지력의 수면 위에 뜬 채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심판하는 자의 이름을 세 번이나 부르다니…. 당신은 결국 옛 뱀을 부르고 말았군요.]

“무슨 말이오? 난 그냥 산하사직도를 빠져나가는 수련을 하려던 것뿐인데….”

[그 존재는 외우주의 혼돈을 너무 오랫동안 접한 탓에 자신의 본질이 타락하여 격하(格下)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음신지력을 이용해서 그 자의 이름을 세례하여 씻어준 셈입니다.]

“……!!”

[그대가 품고 있는 영기는 실로 대단한 잠재력. 그로 인해 혼돈을 씻어낸 [옛 뱀]의 본질이 이 공간에 나타나려 하는군요.]

쿠구구…

잠시 후 음신지력의 파도가 마치 용과 같은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무려 머리가 7개나 되는 거대한 적룡(赤龍)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7개의 머리를 지닌 용은 머리 위에 10개나 되는 서로 다른 색깔의 왕관을 쓰고 있었다.

‘뭐, 뭐야 저건.’

잘은 모르겠지만 느껴진다.

저건 마왕 수준에서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엄청난 존재다!

나는 뜬금없는 상황에 당황하다가 위기감을 느끼고는 아마테라스에게 말했다.

“내 앞에 나타났다면 이유가 있겠지! 저걸 막는 걸 도와줄 것이오?”

[…….]

“제길!! 난 분명히 정당한 계약으로 뱀에게서 이름을 강탈했소. 이런 식으로 이름을 세 번 불렀다고 깨어나는 건 반칙 아니오?!”

아마테라스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환상의 존재여. 설명해 드리지요.]

“응?”

[당신이 만났던 뱀은 아마도 외우주에 본질을 먹히고 남은 허물. 허물이 지닌 이름을 강탈했으나, 당신이 강대한 신력을 이용해서 직접 혼돈의 오물을 씻어준 셈이지요. 수억 년치에 달하는 더러운 오물을 씻어주었으니 본질이 부활할 뿐.]

“…….”

[저것은 본디 다른 세계의 [지배자]였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마테라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지배자의 악을 제어하는 자.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나의 반신이 두 개나 그대의 영기 속에 침잠해 있어서 나는 잠시동안 부활했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사명을 다할 터이지만, 그대에게 물어볼 게 있습니다.]

“무엇이오?”

[[나]의 반신이 같은 시공간에 동시에 2체나 존재한다는 건 우주역사상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 그것은 당신이 바로 [전생자]라고 하는 환상 속의 존재라는 것이겠군요. 신들조차도 거의 알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존재…. ‘큰 굴레’와 직접 연관이 있는 자. 그렇지 않나요?]

“…그렇소.”

아무래도 아마테라스는 위대한 고신답게 전생자의 존재를 미루어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마테라스가 이 상황을 수습할 유일한 존재였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아마테라스가 말했다.

[전생자여. 저 존재가 이름을 되찾아 깨어나기 전에 내 자신을 희생하여 제압하겠습니다. 대신에 당신은 내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무엇이오?”

[금성으로 추방된 코토아마츠카미. 그 사악한 악신들을 절멸시켜 주십시오.]

“…약속은 못하겠지만 노력해 보겠소.”

스으으

잠시 후 아마테라스가 일곱 개의 머리를 지닌 용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 용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옛 뱀 사이탄이여! 나 아마테라스오오카미, 그대의 칠죄(七罪)를 봉인하노라!]

쿠콰콰콰쾅!!

어마어마한 빛과 폭발이 일어났다.

나는 눈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다만 쉴 새 없이 총천연색의 칠광(七光)이 번뜩이며 날아다녔고, 성광(星光)이 아비규환 속에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잠시동안 용의 머리 일곱 개에서 차례대로 거대한 기둥이 뿜어져 나오는 환영이 비쳤다. 목이 뽑히며 나타난 기둥 속에서 거대한 나무가 솟아올랐고, 나무의 끝에 무언가가 올라서 있는 게 보였다. 그 존재에게 태양 그 자체로 변화한 아마테라스오오카미가 달려들어서 공격했고, 그 존재가 무어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좋다…. 이것이 신을 거역한 나의 운명이었을지도.]

콰과광

두 개의 거대한 존재가 부딪히며 쌍소멸하는 게 느껴졌다.

“으아아아악.”

나는 폭발에 휘말려서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난 그냥 산하사직도 탈출 수련을 하려는 거뿐이었는데 무슨 이딴 일이 터진단 말인가! 사이탄의 이름을 3번 부른 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선택이었던 거냐고! 다만 폭발에 휩쓸렸음에도 고통만 느껴질 뿐 내 몸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그저 갑작스러운 허무의 공간에서 둥실거리며 떠다녔다.

슈슈슈슈

‘제길. 그래도 이만한 영력의 대폭발이 일어났다면 당연히 보패 산하사직도는 찢어지겠지…. 탈출 성공이다!’

수련성과는 별로 없었지만 아무려면 어때!

약간 시간 버렸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라도 언령 암송을 하면 되지….

…….

어라? 저건….

나는 순간 황혼의 우주처럼 어두운 적흑(赤黑)이 휘감긴 공간에서 어떤 존재가 서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의 모습을 멀리에서 확인한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부풀리고 있다.

틀림없다. 저건 망량선사였다.

“망량선….”

나는 망량선사에게 손을 흔들며 부르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파쉿

아주 잠깐의 일이었지만 망량선사의 고양이 모습에 누군가 인간의 모습이 덧씌워졌다.

‘저거 누구지.’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정말 순간적인 일이라서 그 모습은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쩐지 어디선가 본 적 있던 것 같다. 그리고 금방 망량선사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되돌아왔고, 나는 눈을 비비며 뭔가를 잘못 봤나 하고 생각했다.

망량선사가 노란빛의 눈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사고뭉치 녀석. 설마했는데 결국 내가 직접 봉인했던 고대의 기억을 풀어헤쳐 버리는구나.]

“뭐?”

[알아서 탈출하거라. 지금 나는 [사상최악의 마]를 견제하고 있기에 널 도와줄 수 없다….]

파앗!!

잠시 후 내 눈 앞에 있던 망량선사는 사라졌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내 생각과는 달리 산하사직도가 찢어져서 바깥세상으로 튕겨나가지 않았고, 처음에 도착했던 산하사직도의 풍경 그대로였다.

쏴아 -

평화로운 폭포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아까와 다른 점은 나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육체를 갖고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도저히 보패 속의 세계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실감이 느껴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내 음신지력이 한 치의 모남도 없이 정갈한 흐름을 띄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게 어떤 변화인지 모르겠지만 나쁜 느낌은 아니다. 또한 무공과 의념천주도 사용가능하다는 걸 확인하고는 나는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어떻게 된 거야?

산하사직도의 봉인체계가 풀려서 이 안쪽이 별개의 이세계가 된 건가?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꽈르릉 -

동쪽의 하늘이 불타는 것 같았다. 내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나는 그만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반고의 자식들이여. 둘이 동시에 덤벼라.]

천공과 태양의 한가운데에서 오만한 말투로 어떤 날개달린 존재가 천천히 말하고 있었다.

그 존재는 전신에 번개를 두른 채 오만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내가 이기니까.]

두둥 -

[건방지군.]

그 존재의 밑에는 두 존재가 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존재들의 모습을 멀리서 확인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안 돼.”

별처럼 빛나는 까만 눈을 지닌 이계의 강대한 존재.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것은 거대한 용(龍).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저 두 존재들을 맞닥뜨린 적이 있었기에 알고 있었다.

‘여와…. 복희…?!’

천우진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소유주는 원한다면 산하사직도를 [뇌신과의 전투 당시의 기억]이 새겨진 그림으로 변화시킬 수 있지. 나도 지금까지는 스승님께 전해듣고도 이 기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미불명이었지만.]

[여기 들어가 볼 테냐? 신들의 전장(戰場)을 목격할 수 있으니 수련장소로는 딱인 것 같군. 흐흐...]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삼황과 뇌신…!!’

중원문명의 초고대 시절.

최소한 육천여년 전.

절대자 여와와 복희가 뇌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와 전투를 벌였던 기억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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