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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세이메이의 신력을 가져가라는 제안.
나는 그 제안을 듣자마자 엄청난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테라스의 신력이 음신지력으로 변환되면서 급격히 보유량이 증대되었는데, 또 다시 아마테라스의 반신(半神)을 손에 넣게 된다면 그 이상의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내가 지닌 음신지력은 몇백년치. 저걸 받아들인다면 천 년 단위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전에 음신지력을 단순히 내공처럼 연단위로 계산할 수 없다고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음신지력을 사역하는 나는 감각적으로 음신지력의 양을 어느 정도 계량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금오도의 알을 1차 해방시키면서 엄청난 음신지력의 해방과 소모를 동시에 맛보았기에 어느 정도 수백 년 단위의 음신지력을 재는 감각이 좀 더 정확해졌다. 그 감각에 따르자면 아마테라스의 반신을 이번에 또다시 받아들인다면 충분히 천 년급 신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전에 일단 흑요석을 세이메이에게 내밀었다.
“일단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일을 봐. 아마테라스가 어찌됐건 그건 알아야하지 않겠어.”
이건 죽기 직전의 동료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다. 내가 세이메이라면 틀림없이 궁금할 것이다.
“그러지.”
우웅
세이메이는 내 기억을 받아들인 후 잠시동안 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한참이나 말없이 뭔가를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역시.”
그러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백웅. 너는 종말까지 17년 남은 시점에 네가 나타난 것이 우연이라 생각하나?”
“우연인지 뭔지 모르겠어. 사실 사대신기 바유가 제멋대로 나를 미래로 보냈던 거라서.”
“나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죽기 전에 네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응?”
“내가 이대로 죽었다면 결계는 보다 견고해졌겠지만 네게 아마테라스의 힘은 넘기지 못했겠지. 그런데 하필 내가 죽게 되어있던 날보다 고작 일 년 남짓을 남기고 나타나다니….”
“…….”
“그것뿐만이 아니다. 미호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시기인데 네가 정말로 딱 맞춰서 나타난 것이다…. 네가 5년만 늦게 나타났어도 아무것도 못했을 텐데.”
“미호? 미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
나는 미호라는 말에 움찔하고 반응했다. 세이메이가 말했다.
“사공린에게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미호는 팔부신중과의 전투 이후로 지속적으로 달기의 힘을 흡수하던 중이었다. 무려 수백 년에 걸쳐서 달기의 힘을 흡수한 덕에 미호는 기신이면서 달기의 힘을 다 얻을 수 있었고, 달기의 혼(魂)과 융합했다.”
“혼이 융합했다고.”
“요괴대전 때도 이미 인과율에 걸릴 정도의 신격으로 승화했던 미호는 현재는 완전히 [옛 지배자]에 필적하는 존재가 되었다. 아니 동격 이상이지. 요괴대전 당시 보였던 힘의 3배는 강해졌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정도냐.”
요괴대전때 등장했던 [옛 지배자] 비류를 몰아붙여 없앴던 건 기신 미호의 힘이었다. 비록 여러가지 요소 때문에 비류가 약화되어 있긴 했지만 그 당시의 미호만 해도 조건만 맞춰지면 [옛 지배자]를 없앨만한 고위존재였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때보다 3배나 강해졌다니!
“달기를 먹어치운 덕이라 할 수도 있지만….”
말끝을 잠시 흐리던 세이메이가 말을 이었다.
“그 때문에… [미호]의 정체성이 많이 사라졌어. 아주 위험해졌다.”
“…뭐? 무슨 말이야!”
“백웅. 전능감(全能感)이란 걸 느껴본 적 있느냐? 인지(人知)와 감각의 한계를 초월해서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는 감각.”
“가끔….”
신들린 듯 내 수준을 뛰어넘은 무공을 발현할 때 가끔 느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세이메이가 말했다.
“미호는 원래 대요괴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영육을 지닌 필멸자였다. 그래서 신의 감각이란 건 거의 모르고 살았는데, 그녀는 너무 짧은 시간동안에 승격(昇格)을 거듭한 탓에 전능감에 너무 오랫동안 매몰되었어. 그 탓에 약 50년 전부터 정신이 광기(狂氣)에 물들었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
나는 그 말에 아연해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미쳤다…는 말이냐?”
“그건 좀 달라. 백웅.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 주마. 너는 전능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몰라도, 너는 예전에 삼황오제 전욱이 네 몸에 강림해서 지구와 성천(星天)까지 닿는 지각능력을 느낀 적이 있었을 거다.”
세이메이가 생각한 전능감과 내가 생각한 전능감이 어긋난 모양이다. 아무래도 사고방식의 차이가 아닐까?
“그랬지.”
“눈만 감아도 수십만 ㎞ 이내의 모든 사물을 지각할 수 있고 손을 뻗으면 법칙을 마음껏 왜곡할 수 있으며 생명의 근원법칙을 깨닫고 있으므로 한줄기 숨결로 새로운 존재를 창조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신(神)이 느끼고 살아가는 세계다. 그런 걸 수백 년 동안 느끼면 필멸자의 영혼은 버텨낼 수가 없어.”
“버틸 수 없기 때문에 광기가 생긴다는 말인가?”
“필멸자로서의 미호와 불멸의 존재로서의 전능함. 그게 상충되면서 권태를 수반한 강력한 폭력성, 그리고 유열을 느끼게 되지. 그래서 미호는 지금 이계(異界)를 하나 골라서 학살과 탐식을 하는 중이다.”
“…뭐?”
“말 그대로다. 그녀는 원래 금오도에 거하고 있었지만 달기의 흡수를 끝낸 후에는 차원을 돌아다니면서 대파괴와 학살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미호에게 금오십천군들이 학살당했을 테니.”
나는 침묵했다. 그리고는 짧게 외쳤다.
“미호가 그럴 리 없어!”
미호가 원래 악(惡)에 거리낌이 없었던 건 사실이다. 살육이나 사악한 행위에도 무감각하긴 했다. 그러나 이족이나 [옛 지배자]와는 분명히 다른 일선을 긋고 있었고, 극악(極惡)이라 칭해지는 영역에는 강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런 미호가 폭력성을 자제하지 못해서 다른 차원을 박살내고 있는 중이라니!
세이메이가 한숨을 쉬었다.
“내 팔이 어째서 이렇게 말라있는지 말하지 않았지.”
“…미호 때문이냐?”
“미호는 평상시에는 자기만의 차원을 만들어서 멀쩡히 있다가 갑자기 광기에 침습되어 차원을 뚫고 튀어나오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마테라스의 힘을 빌려서 그녀가 다른 이계로 향하도록 행선지를 바꿨다. 이 손은 그걸 반복한 대가로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
“다행히도 현 시점에서 그녀가 박살내는 차원은 악한 이계종족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은 아니다.”
“차원을 박살낸다는 건 얼마나 죽인다는 거냐?”
“모른다. 최대한 머나먼 차원으로 보냈기 때문에 내가 그것까지 관측할 힘은 없었다. 단지 그 차원의 좌표만 알고 있을 뿐.”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사실일 것이다. 지어낸 말일 수는 없기에 나는 허탈감을 느끼고 어깨가 축 늘어졌다.
‘미호…. 정말로 광기에 물든 거냐.’
나는 이윽고 충격을 회복하고 세이메이에게 말했다.
“사공린이나 다른 동료들이 요괴대전 후 미호의 행적을 묘연하다고 알고 있었던 건…. 세이메이 네가 일부러 감췄던 거냐?”
세이메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괴대전 직후에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달기와의 융합을 진행중이었기에 비밀을 지키기 위해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미호의 광기를 섣불리 밝혔다가 동료들 사이에 균열이 일어날까봐 밝히지 않았다.”
“균열? 무슨 말이야.”
“지금 사공린은 천마의 힘을 지니고 있다. 만일 그녀에게 미호가 미쳐버린 신이 되었다고 말하면 그녀는 어떻게 할 것 같은가.”
“……!!”
사공린!
“그녀는 원래부터 네게 대웅제국을 넘겨주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제국을 지켜준 수호신이나 다름없다. 미호처럼 위험한 존재가 내 사후(死後)에 현실로 귀환해서 세계를 멸망시킬 위험같은 걸 두고볼 순 없겠지. 사공린이 미호를 죽이려 들 수도 있었기에 그들을 속였던 것이다.”
“억지야. 사공린이 아무리 그래도 미호를 없애려 들 리는….”
“백웅. 네가 왜 그리 동료 간의 유대를 자신하는지를 모르겠군. 아무리 흑요석으로 기억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본래 역사에서 일면식도 없었으며 평생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을 존재들이다. 하물며 서로 주어진 사명이 다르다면 자기의 신념을 위해 상대를 배제하는 건 아주 간단한 일.”
그렇게 말한 세이메이가 무겁고 느릿하게 말했다.
“[백웅을 위한 일]이라는 명분이 있다면…. 나머지 일은 모두 동료의 자율에 맡겨두지 않았는가. 과연 우리끼리 어떤 법도로 서로 양보를 할 수 있을것 같은가?”
“…….”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럼 아무거나 해도 된다는 뜻이 되어버린다.”
나는 세이메이의 말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 말대로 천마 사공린이 나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으로 행동한다면 동료들을 다 죽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사공린은 그렇게 막나가는 녀석이 아니야! 너무 넘겨짚는 것도 좋지 않아!”
“…사공린의 목표가 제국의 수호였다면 내 목표는 [기신 미호]라는 강력한 전력을 전생자인 백웅 너에게 남겨주는 거였다. 나도 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뿐이야.”
세이메이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지금은 늦지 않았어. 그녀의 광기는 아직까지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어. 그래서 네가 대웅제국에 있다는 말을 듣고 내가 죽기 전에 부른 거다.”
나는 세이메이의 말에 귀가 솔깃함을 느꼈다.
“되돌릴 수 있어? 어떻게?”
“내가 죽으면 24시간 후 미호가 이상을 감지하고 현실로 되돌아올 거다. 그녀가 도착하는 장소는 이 아오키가하라 수해로 정해져 있어. 그리고 미호가 돌아오면 그녀에게 아마테라스의 힘으로 큰 타격을 먹여라.”
“타격을? 왜 그래야 하지?”
“아마테라스는 [지배자의 악을 제어하는 자]. 그것이 위대한 고대신인 그녀의 [이름]. [이름]에 새겨져있는 권능이기에 미호에게 싹터있는 악한 흉성(凶性)을 제압하고 그녀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아!!”
나는 그제야 아마테라스의 본래 칭호를 떠올렸다. 본디 지배자의 악을 제어하기 위해 태어난 고대신의 힘이라면 딱 이런 상황에 써먹을만할 것이다! [이름]에 담겨있는 힘이 본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가 넘겨주는 힘 정도라면 충분할 거다. 또한 아마테라스의 힘은 선(善)을 품고있는 존재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없게 되어있기에 미호의 목숨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딱 맞는 해결책이었기에 나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는 말했다.
“세이메이. 네가 아마테라스의 반신을 가지고 있으니 네가 했어도 되는 일이잖아? 왜 죽기 전까지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세이메이는 허탈하게 웃었다.
“후후… 백웅.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 한 거다. 지금의 미호는 [옛 지배자]나 다름없다. 그런 그녀를 상대로 내 실력으로 일격이라도 먹이는 게 가능할 것 같나.”
“…….”
“도저히 힘으로는 일격조차 먹일 가능성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미끼를 내던져서 바깥으로 추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제 네가 귀환했으니 일말의 가능성이 생긴 거고.”
“그 정도인가.”
세이메이도 만만한 놈은 아니다. 수해의 확장을 거의 혼자서 틀어막고 있는데다 사실상 이천여 년 이상 살아온 대술법사이며 대라신선 이상의 실력자다. 그런 세이메이가 일격조차 먹일 수 없는 게 확실하다니.
“지금의 미호는 광기에 젖어있다. 하지만 귀환 직후는 이성이 한 순간 깨어있을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지속적으로 불어넣었던 아마테라스의 주력(呪力)이 강하게 격발될 테니까 일시적으로 정신을 차리는 거지. 그 때 대화로 해결하기를 추천한다.”
“대화가 안 된다면.”
“전투로라도 그녀를 되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결국 운이 좋으면 무난히 해결되겠지만 그렇다 해도 전투는 각오해야 한다는 소리다.
세이메이가 천천히 자신의 한쪽 팔을 뻗었다. 목내이처럼 메말라있는 쪽이 아니라 멀쩡한 팔을 뻗은 세이메이는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백웅…. 네가 없는 500년 동안 느낀 게 뭐였는줄 아는가.”
“뭐였는데.”
“네가 없으니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우리 필멸자는 그저 닥쳐오는 재앙을 막는 것만도 급급했지.”
“…….”
“우린 외계의 힘에 힘으로 대항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네가 있었다면 대화나 협박 등으로 어떻게든 넘길 수 있었던 국면도 우린 무조건 싸워야만 했지…. 애초에 이계의 강자들은 우릴 대화상대로도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야.”
세이메이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웃긴 일이지. 전력을 생각하면 네가 큰 부분이긴 해도 너보다 강한 녀석들도 꽤 있었기에 아쉬울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 우리 모두가 전생자인 너에게 얹혀가는 셈이었던 거다.”
쿨룩
세이메이가 피 섞인 기침을 토했다. 그리고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손을 잡아라.”
“아니. 야. 좀 기다려 봐.”
나는 기겁을 해서 손사래를 쳤다.
“왜 그러나.”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세이메이를 쳐다보았다.
“손을 잡으면 힘을 넘겨줄 텐데, 그럼 넌 바로 죽잖아.”
“어차피 오늘 죽는데 무슨 상관이냐.”
“…동료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는 건, 늘 싫은 일이라고.”
머리로는 세이메이의 힘을 받아들이는 게 옳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내게 힘을 주는 순간 세이메이는 숨을 거둘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 솔직히 너무 슬프고 괴로운 일인데다가 겉으로는 울지 않더라도 굉장히 우울해진다. 내가 크게 머뭇거리자 세이메이가 웃었다.
“후후…. 전생자가 내 죽음을 지고 간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가. 그것 참 영광이군.”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아니. 세이메이. 부담을 어디까지 주려는 거냐?”
“하지만 백웅. 어차피 이건 네가 각오하고 선택한 길이 아니었나? 처음부터 감수해야할 일이었지.”
세이메이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 모든 비극이 극적이고 격정적인 건 아니다. 때로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비극도 있는 편이지. 담담하게 내 죽음을 받아들여줬으면 하는군.”
“아주 저주를 해라. 제기랄.”
“모든 것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지. 살아있는 건 언젠가 죽을 것이고…. 생사(生死)가 입멸(入滅)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공(空)으로 회귀하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자연의 법칙에 유일하게 거역하는 게 단 하나 있다.”
“…….”
현기가 느껴지는 세이메이의 말은 천천히 이어졌다.
“바로 신(神)이란 존재다. [옛 지배자]만이 자연을 거역하여 의지있는 존재들을 절망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그러므로 난 사실 종말이 싫지 않다…. 끝이 없는 존재에게 끝을 만들어주는 평등한 사건이 아닌가. 그리고 아마 너는 그 종말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될 터.”
세이메이가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백웅. 손을 잡아 다오.”
꾸욱
나는 말없이 세이메이의 손을 잡았다. 세이메이가 목숨을 걸고 있다면 더 이상 회피할 순 없는 것이다.
“백웅이여. 세상을 구해달라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너는…. 너의 의지로 종말을 선택했으면 한다.”
나는 뜻밖의 말에 반문했다.
“종말을 선택하라고?”
어째서 이 순간, 망량선사가 내게 두 가지의 선택을 제안했던 얼마 전의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인가.
세이메이가 염세적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전생자여. 세상을 구하는 것만이 구원은 아니다…. 신조차 평등한 소멸이라면 그 또한 받아들일만 하지…. 영속(永屬)되는 지옥(地獄)이 존재해봤자 남는 건 고통뿐이야.”
“…….”
“이렇게 생각하는 게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선악을 초월하여 모든 성향의 인류가 너에게 복종하는 것이지.”
세이메이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다만 인간의 왕이여. 그대에게 이 세상의 끝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면….”
세이메이의 눈에서 서서히 빛이 꺼지는 게 눈에 보였다.
“절대로 남의 뜻에 휘둘리지 말라.”
우우우우!!
다음 순간, 세이메이의 손에서 새하얀 기운이 넘실거리며 내게 넘어왔다. 아마테라스 특유의 신력이 엄청난 기세로 내 상단전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그 어마어마한 영기 때문에 잠시동안 세이메이의 처소가 온통 새하얀 번개로 번쩍이는 듯 했다. 나는 잠시 비틀거렸으나 그 동안 사이탄의 언령으로 내 힘의 통제력을 강화시켰기 때문인지 별 무리없이 버텨낼 수 있었다.
푸스스…
잠시 후 세이메이의 육신은 모래가 되어서 흩날리기 시작했다. 풍화되어가는 세이메이의 모습을 보자 잠시동안 울적한 기분이 들었으나, 나는 이윽고 히죽 웃었다.
“하하.”
제갈사가, 이럴 땐 웃으라고 했지….
힘없이 웃으면 안 돼. 별 일 아닌 것처럼 웃어넘기면 그만이야.
“하하하….”
제기랄. 빌어먹을 눈물.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약간 혼란을 느꼈다. 웃으려고 하는데 괜히 눈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하나만 했으면 좋겠는데 이놈의 감정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세이메이 놈이랑은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딴 식으로 울컥하는 건지 모르겠군.
“하하하하!!”
결국 버티지 못하고 나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미친듯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살아있는 건 뭐 죽는 거겠지! 하하하!! 네 뜻대로 해주마, 세이메이!”
죽는 게 별 거야? 나보다 좀 일찍 가버렸을 뿐이야!
나도 곧 죽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그러니까 더 슬퍼할 필요 없어!
더 슬퍼해 봤자 동료들에게 짐만 되니까!
나는 빠르게 감정을 털어내려 노력했다. 그리고 세이메이의 처소에서 걸어나왔는데 바깥에서는 수많은 음양사들이 내 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가 물끄러미 음양사들을 쳐다보자, 맨 앞에 있던 음양사가 내게 말했다.
“세이메이님의 명으로 이 순간부터 백웅 님께 아베노 일족은 물론 동영 전토(全土)의 술법사와 음양사가 복종합니다. 표면상으로 세워져있는 현 동영의 행정부와 정재계도 모두 백웅 님께 복종할 것입니다.”
“…….”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나는 금세 기분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나는 뜨거워진 목에 침을 한 번 삼킨 후 차분하게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미호가 귀환할 것이다. 날 도와 다오.”
“존명!”
나는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
미호가 귀환하면 가능하면 말로 그녀와의 일을 해결하고 싶다. 그러나 세이메이의 말에서 유추해보면, 이미 미호의 광기는 심각한 수준이라서 그렇게는 안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결국 [옛 지배자]나 다름없는 그녀와 한번 싸울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건, 천마 사공린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아마 세이메이도 내가 제어할 수 있다면 사공린의 도움을 받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세이메이와의 대화때문에 마음이 크게 걸린다.
명분만 있으면 동료들은 얼마든지 폭주할 가능성이 있다.
그 말은 - 사공린이 미호를 제압하는 와중에 그녀를 죽이려 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불안정한 아군전력을 놔두느니 차라리 배제하겠다는 식으로. 물론 사공린은 이성적이니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 믿지만 언제나 만의 하나는 있는 법이다.
나는 지금 또 다른 선택에 직면했다는 걸 알아챘다.
사공린을 믿고 미호 제압작전에 대웅제국의 총력을 다할지.
그게 아니면 순수하게 내 힘만으로 미호에게 일격을 먹이는 일에 도전할지.
‘…생각할 것도 없군.’
나는 눈앞의 음양사에게 말했다.
“이번 일로 대륙에서 지원이 도착할 것이다. 그들을 전력을 다해 보조해라.”
“존명!”
믿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베노 세이메이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나는 전생자이므로 이번 생의 생사에 연연해서 동료들을 하나하나 의심하는 선택을 할 수 없다. 지금 품은 사소한 의심과 균열이 결국 모든 것을 망가뜨리라는 직감이 들었기에, 나는 무조건 동료들을 믿고 갈 수밖에 없다. 설령 그들이 내 뒤통수를 치더라도 나는 맞을 각오를 하고 앞만 보고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세상에서 타인을 믿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천재라 하더라도 이것만은 결코 쉽다고 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나는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타인이 아니라 동료다.’
타인을 믿는 건 힘들겠지만 동료를 믿는 것은 쉬운 일.
미호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면 공연히 쓸데없는 자존심과 오기를 부리지 않고 다른 동료들의 힘을 빌리는 게 옳다.
파앗
나는 마음을 굳힌 채 낙양의 사공린에게 갔다. 그리고 세이메이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했고, 사공린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랬군요. 그렇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사공린. 혹시해서 하는 말이지만 미호는 절대 죽이면 안 돼. 그저 내가 미호에게 아마테라스의 힘을 불어넣을 한 순간만 만들어주면 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있다면 미호를 죽일 필요는 없겠죠. 제압으로 끝낼 수 있다면 거기에 집중하겠습니다.”
“…….”
저렇게 얘기해 준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사공린에게서 물러나서 천우진에게 갔다.
“전국옥새. 천우진을 찾아라.”
파앗!!
잠시 후, 전국옥새로 좌표를 찾아내서 천우진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천우진은 맑은 연못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채 나무 사이에 망을 쳐놓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옆에는 어느새 텃밭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아마 이 녀석만의 휴가는 농촌에서 안빈낙도인 모양이다.
낮잠을 자고 있던 천우진은 자신의 안대를 살짝 들어올리며 짜증을 냈다.
“…이 개… 휴가중인데 왜 왔어? 설마 일 시키려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뭐. 딱히 일 시키려고 온 건 아니고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셔?”
천우진이 도로 안대를 쓰며 고개를 돌려서 누웠다.
“미안하지만 휴가 중엔 나는 없는 사람이다. 딴 데 가 봐.”
“미호가….”
갑자기 천우진이 발작하듯 마구 소리를 질렀다.
“아 뭐!! 미호가 귀환해서 세상을 멸망시키기라도 하냐? 그런 거 아니면 절대 이야기 안 들어줄 거라고!! 어떤 미친 새끼가 휴가중인데 찾아와서 일을 시키냐고!!”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그런 일이니까 이야기를 들어줘!”
“…….”
“니 말은 지켜!”
천우진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말을 더듬거렸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 아닌데.”
“제, 제기랄…. 제기랄!! 아니 이게 말이 되냐? 휴가 중에 찾아와서 일을 시키는 게 도리상 옳은 거냐고!! 니가 준 휴가잖아!”
“어, 음…. 옳진 않은데….”
나는 할 말이 궁색해져서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근데 일을 안 하면 세상이 멸망하거든. 하핫.”
“…….”
나는 히죽 웃었다.
“천우진. 세상이 멸망해도 휴가 갈 수 있을까?”
“웃지 마라…. 개… 새끼야….”
천우진은 이마를 찌푸리며 부들부들 떠는 듯 했다. 그러더니 체념한 듯 말했다.
“제길. 딱 한 번 만이다. 네 녀석은 추가수당으로 나중에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 해.”
“그러지 뭐.”
“약속한 거다.”
나는 천우진에게 기억을 보여주고 상담하기로 했다. 기억을 본 천우진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아마테라스의 반신을 받아들이니 신력의 통제는 어떻지?”
“예전처럼 넘쳐흐를 것 같진 않아. 처음에는 속이 좀 울렁거렸는데 마치 비가 땅에 스며들듯 지금은 멀쩡하다.”
“[사이탄의 언령]이 생각보다 강력한 모양이군. 그 정도로 통제력이 좋을 줄은…. [이름]의 격이 설마 인위적으로 낮춰져 있었던 건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린 천우진이 말했다.
“24시간이라면 단순히 밤샘수련만으로는 부족하다. 흑웅발현은 아니더라도 신력을 전투에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만들려면 내가 좀 도와줄 수밖에 없겠군.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사공린이 도와주더라도 [옛 지배자]급을 상대로는 싸우다가 네가 죽어버릴 테니까.”
“지금까진 왜 안 도와줬던 거야?”
“지나치게 편법이니까.”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품속에서 웬 족자를 꺼냈다. 그 족자를 본 나는 익숙한 느낌이 들었고, 이내 알아보고는 외쳤다.
“산하사직도!!”
천우진 녀석이 망량선사에게 선물로 받은 보패!
전생하며 종종 보아왔던 보패였기에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곧장 드는 생각이 있어서 천우진에게 말했다.
“그 보패 안에 들어가면 그림으로 변하는 거잖아. 그 안에서 무한대로 시간이 길어질 테니까 그 틈에 수련하라는 말이지?”
“참 편리하게 생각하는군. 이건 그런 보패가 아냐. 그게 가능했으면 난 진작에 산하사직도에서 한 이백년쯤 수련해서 술력을 뻥튀기시켰을 거다 멍청아. 내가 왜 안 했겠어? 못 한 거지.”
“…….”
“수련시간에 비례해서 술법사가 강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재능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 무슨… 무한대로 수련하면 무한히 강해진다? 재능없는 놈들이 흔히 하는 망상을 하고 앉았군. 그렇게 치면 오천 년 살아온 용왕이 나보다 약할 이유가 있나?”
“쩝….”
예측이 틀려서 뻘쭘해서 머리를 긁고있자 천우진이 차분하게 말했다.
“설령 산하사직도로 수련시간을 늘리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넌 술법재능이 절망적으로 없어. 재능이 없는 경우 무한대로 수련한다는 건 무한대로 삽질한다는 뜻이다.”
“야. 그래도 무예수련은 계속 하니까 절대지경이 됐다고.”
“술법재능은 무예재능보다 없잖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술법을 천 년 수련해도 신선급은 절대 될 수 없을거다.”
…이 자식 휴가중에 찾아와서 삐졌나? 아까부터 갈구기만 하는군….
“아 됐고 산하사직도로 뭘 할지나 말해줘!”
내가 천우진에게 외치자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이 보패의 진짜 힘은 이 안에 갇힌 동안에 무엇을 시도하든 환상으로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공간이 따로 흐르는 게 아니라 아예 무(無)의 공간에서 차원째로 갇혀버리지. 그래서 수련 따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순수하게 상대를 봉인하기 위한 보패군.”
“하지만 산하사직도의 봉인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천우진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이 보패의 원제작자가 여와라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그거야 뭐….”
“산하사직도는 삼황 여와가 이 세상에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아 제작한 초고대의 유물이다. 산하사직도의 풍경은 제작 당시에 염상하여 만들어낸 풍경. 하지만 본디 이계의 존재인 여와가 이 세상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을 리는 없지. 그래서 이 풍경은 ‘어디선가 보았던’ 풍경이다. 그리고 여와가 스승님께 밝히기로 이 장소는 뇌신(雷神)과 맞닥뜨렸을 때 인상깊어서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
“초고대의 어느 시점에 여와와 복희는 그 존재와 싸웠다고 하더군. 즉 산하사직도의 풍경이란 바로 뇌신이 출현했던 장소인 것이다.”
어? 뇌신?
뜻밖에 익숙한 단어가 나오자 나는 설마하는 눈으로 천우진을 바라보았고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나도 네 녀석의 기억을 보았을 때는 설마했다. 네 기억 속에 출현한 뇌신의 탄생시기와 전혀 맞지 않으니까.”
“말도 안 돼. 백련교주 호월이 탄생시킨 뇌신이 어째서 초고대에 출현해서 삼황과 싸운단 말이냐?”
“그러니까. 모순이지. 하지만 여와와 뇌신의 전설은 백련교가 그 뇌신을 탄생시키기 전에도 중원에 널리 퍼져있는 신화였기에 난 이상함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백련교쪽이 훨씬 늦었지….”
“흐음….”
“아무튼 이 산하사직도는 어찌보면 여와의 전투 기억을 남긴 장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쑤욱
천우진이 갑자기 족자 안에 손을 넣자 마치 연못 안에 손을 넣듯 가벼운 일렁임이 일어났다. 그리고 천우진이 다시 손을 빼자 산하사직도의 풍경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
방금 전까지 그려져 있던 평화롭고 조용한 산천의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여와와 복희가 천공에 떠 있는 날개 달린 뇌신에게 덤벼드는 그림으로 바뀌었다!
“소유주는 원한다면 산하사직도를 [뇌신과의 전투 당시의 기억]이 새겨진 그림으로 변화시킬 수 있지. 나도 지금까지는 스승님께 전해듣고도 이 기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미불명이었지만….”
“서, 설마.”
내가 혹시하는 눈으로 천우진을 쳐다보자 그가 마치 아까 나처럼 히죽 웃었다.
“여기 들어가 볼 테냐? 신들의 전장(戰場)을 목격할 수 있으니 수련장소로는 딱인 것 같군.”
“말도 안 돼!! 삼황의 전투기억으로 들어가라니 죽으란 말이냐!”
“흐흐….”
내가 펄쩍 뛰자 천우진이 진득하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에서 뭔가를 느끼고 수상한 눈빛으로 놈을 노려보았다.
“이 자식. 날 놀렸지?”
“그래. 거짓말이다. 전투기억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야. 족자를 변화시킬 순 있지만 이 안으로는 못 들어간다. 아무래도 스승님이 직접 이 기억에 못 들어가도록 봉인을 시키신 것 같더군.”
“…….”
“그러게 휴가 중에 왜 찾아오냐. 넌 진짜 패고싶은 놈이다.”
나는 천우진이 단단히 짜증났다는 걸 알아채고는 체념하듯 말했다.
“젠장…. 그래 미안하다! 장난 그만하고 제대로 말해 줘. 시간이 없다고.”
“그래. 이젠 좀 기분이 풀리는듯 하군.”
체증이 내려간 표정을 짓던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너한테 권하는 방법은 바로 산하사직도에 들어간 후 자력으로 ‘힘’으로 환술을 뚫고 나오는 방법이다.”
“힘으로 뚫으라고?”
“그래. 예전에 제갈사가 마도서의 힘을 얻자 너무 강력해져서 여기에 봉인하기 힘들었던 전생기억이 있지.”
천우진이 촤락 하고 산하사직도를 펼쳐서 내 앞으로 내밀었다.
“똑같은 방식의 극한수련이다. 네 녀석이 이 안으로 들어가서 신력을 활성화시켜서 차원의 벽을 뚫고 산하사직도를 탈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신력의 융화와 통제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나겠지. 보패의 차원을 뚫는 것 자체가 거대한 시련이니까.”
“……!!”
“산하사직도는 차원을 접어버리는 대신 봉인자에게 압도적인 힘이 있을 경우 용량의 한계때문에 가두지 못해. 그 맹점을 뚫는 편법수련이다.”
나는 천우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불안했기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차원을 접어버린다면 시간마저도 폐절(廢絶)되는 거잖아. 실패하면 어떻게 하냐.”
“실패하면 꺼내주지. 내가 소유주니까.”
“아하.”
“미호 토벌시간 한 시진 전까지 지켜보다가 못 빠져나오면 실패로 간주하지. 해 볼 테냐?”
“…….”
“성공한다면 고작 24시간 밤샘수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성취를 얻겠지만, 실패할 경우 넌 그 수련시간조차 날려버리는 셈이다. 선택은 네게 맡기겠다.”
나는 고민했다.
과연 이 수련을 하는 게 맞을까?
하지만 이윽고 더 고민하지 않고 외쳤다.
“하겠어!”
미호를 구할 수 있다면 약간의 모험쯤이야 감수해주지!
그리고 잠시 후 산하사직도 탈출수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