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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097화 (1,09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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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언령으로 흑웅과 서문혜를 동시에 부활시킬 수 있다고?

나는 천우진에게 물었다.

“풀어줄 수 있다는 건 서문혜가 신의 혈맥에 잠식당하지 않게끔 해주면서 봉인을 해제할 수 있다는 말이냐?”

“그래.”

“어떻게?”

“간단하다. 먼저 네가 [이름]을 이용해서 언령을 구성한 후 흑웅을 부활시키고, 흑웅이 부활할 때의 강력한 파장을 이용해서 서문혜에게 음신지력을 불어넣는 거다.”

“…음신지력을?”

뜻밖의 이론에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천우진이 대답했다.

“백웅. 너는 서문혜의 혈맥에 흐르는 힘이 ‘어떤’ 신의 힘인지 알고 있냐?”

“거신족의 것이지. 그렇다면 삼황 중 염제 신농의 것 아닌가.”

“그래. 그렇기에 전욱의 힘으로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거다. 거신족의 힘은 너무 차원이 높아서 본디 속성이 거의 의미가 없지만, 어쨌든 염제 신농은 양(陽)에 가깝고 네가 부리는 음신지력은 음(陰)이니까.”

천우진이 빙벽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태양(太陽)과 태음(太陰)의 힘을 그녀 내부에서 조화시키도록 하는 거다. 그게 성공한다면 서문혜는 더 이상 선조회귀때문에 신화(神化)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조화된 힘이 선조의 [부름]을 차단시켜줄 테니까.”

“흐음. 그거 아주 좋군.”

나는 천우진이 말한 과정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나는 천우진에게 불쑥 말했다.

“그럼 [이름]으로 언령은 어떻게 만들지?”

“그 뱀의 이름이 [사이탄]이었던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묘하다는 듯 중얼거린 천우진이 말했다.

“지금 그 이름의 영적 근원을 감지해보니 그 이름은 특이하게도 토성(土星)의 기운을 품고 있다. 토성과 관련있는 이름은 극히 드문데.”

“토성이라. 그럼 토요를 써서 뭔가 할 수 있나?”

“아니 전혀 관계없다. 토(土)가 들어있다고 같은 건줄 아냐 단순한 놈아.”

“…….”

“무엇보다 토요는 토성이 아니라 오행이다.”

내가 핀잔을 먹고 멋쩍어서 머리를 긁자 천우진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느정도 감이 잡히는군. [사이탄]에 어울리는 언령을 내가 만들어 주마.”

“그 언령을 외우면 흑웅을 부활시킬 수 있는 건가?”

“그래. 잠깐 기다려라.”

천우진은 그 자리에 앉아서 연필과 종이로 뭔가를 쓰는 것 같았다. 집중하기 시작한 천우진이 약 반 식경 후 연필을 손에 놓고는 말했다.

“다 됐다. 이건 [사이탄의 언령]이라고 해 두지. 이걸 외우면 돼.”

“좋았어.”

나는 그 자리에서 천우진이 써준 사이탄의 언령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언령은 총 220여자였으며 본디 1499자였던 경문이 크게 줄어든 것 같았다. 길이가 줄어들었기에 완독까지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일송(一誦)을 끝낸 순간이었다.

우웅!!

갑자기 내면에 있던 음신지력이 서서히 내부의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빨려 들어간다 해도 갑작스럽게 흡수되는 게 아니라 마치 모래지옥에 서서히 빠져드는 것처럼 나선형의 흐름으로 빨려드는 기분이다. 내가 놀라서 지금의 감각을 천우진에게 이야기하자 천우진이 말했다.

“통제 불가능한 힘이 무분별하고 꽉 차 있었던 게 언령으로 인해 구심점이 생긴 것이다. 그 구심점에 힘이 집결될수록 흑웅이 부활하기 쉬워진다.”

“호오, 그럼 이 사이탄의 언령을 많이 외워야겠군! 당장 밤을 새서 일천 번이라도….”

“잠깐.”

내가 언령암송에 집중하려 하자 갑자기 천우진이 나를 제지했다. 내가 천우진을 쳐다보자 그가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경고했다.

“잘 알아둬라. 내가 예전에 흑웅의 수련을 위해 줬던 주문은 신대(神代)의 언령이지만 그 주체와의 인과율이 소실되어서 별다른 위험이 없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네가 얻은 [사이탄의 언령]은 그 주문보다 수십 배나 강력한 대신, [사이탄]이라는 주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뭐? 주체가 있으면 뭐가 문제인데?”

“위험해. 이름의 언령을 암송하여 힘을 얻는다는 건 이름의 주인에게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바친다는 계약과 다를 바 없다. 다행히 그 자의 이름 자체를 강탈함으로써 네 스스로가 이름의 주인이 되었기에 위험은 크게 덜하지만, 그래도 경각심을 가지고 수련해야 해.”

천우진이 자신의 이마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을 이었다.

“암송이 심화될수록 [사이탄]이라는 이름이 지닌 영성이 네 상단전(上丹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네 성격이나 기운이 사이탄에 잠식될 수도 있으니 무분별하게 암송만 하지 말고 너 스스로의 인격을 지키려고 노력하라는 말이다.”

“흐음….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나는 천우진의 경고를 새겨듣기로 했다.

‘좀 더 고난이도의 암송이 되었다는 소리군.’

나는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하며 언령 암송을 시작했다. 차분히 또박또박 발음하며 언령을 가다듬어서 내면의 음신지력이 집중되는 걸 느꼈고, 점차 강력한 통제력이 사지(四枝)에 퍼져나가는 걸 느꼈다.

우우우우

힘의 객체화가 예전 경문암송 삼천 번을 할 때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게 이뤄진다. 수련의 성취속도로만 비교하면 최소한 10배이상 빨랐다.

‘이런 식이라면 길어도 한 달 정도라면 흑웅을 부활시킬 수 있어!’

아니, 예전처럼 밤낮없이 몰두하면 십 주야 정도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수련하는 재미를 느끼고 나도 모르게 히죽 웃었는데, 그 순간 기이한 환영이 내 머릿속에 나타났다.

[신이시여. 저는 이상세계의 심판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었나이까?]

누군가가 항의하듯 거대한 날개를 펴고 울부짖는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장소가 시온 산(山)이라는 장소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 존재는 시온 산의 가장 높은 곳에서 꿇어앉아 있었다.

이윽고 그 자는 중얼거렸다.

[만왕의 왕이 내리는 종말과 계시라 하는 것이 정녕 존재한다면…. 나 천사의 왕 사이탄은 더 이상 심판자이자 종언자가 아닐지니!]

잠시 동안의 정적 후, 스스로 사이탄이라 칭한 자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으로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신의 품을 떠나겠노라!]

한없이 고결하고 숭고한 빛의 천사였으며 마치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자애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신이시여, 이 세계에 희망이 없다면 바깥 세계, 외우주에서 진정한 만왕의 왕을 찾아볼 것이오! 그 자야말로 진정한 왕중의 왕이 아니겠소? 어차피 멸망이 기약된 세계라면 더 이상 선악과는 필요 없을 테니 따가겠소.]

파앗

지, 지금 그건 뭐지?

“정신 집중해라!”

나는 갑작스러운 환영에 혼란스러웠으나 옆에 있던 천우진이 술법을 써서 내 몸에서 날뛰는 음신지력을 진정시켜 줬다. 내가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자 천우진이 방금 내게서 일어난 일의 전모를 들었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예상대로군. 그 [이름]의 원래 주인이 너무 강력한 놈이었던 탓에 기억이 역류해서 네게 들어오는 중이다.”

“뭐? [이름]을 얻었기 때문에 기억이 역류해? 그런 일도 가능한가?”

“이름은 본질이다. 아무리 네가 강탈했다고 하더라도 이름에 새겨진 본질은 사라지지 않아. 어찌보면 본체가 소멸해도 이름이 남아있다면 소멸한 게 아닐 정도이니, [이름]의 인과율이란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것 중 하나다.”

천우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꼭 이랬어야 했나 싶군. 흑웅을 되찾는 지름길인 건 사실이지만 너무 막나가는 방법 아니냐.”

“됐어. 한 번 시작한 이상 끝을 보겠다.”

나는 씩 웃었다.

“이딴 놈한테 잠식당할 것 같으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냐고!”

“…한없이 긍정적이군.”

천우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면서도 내 옆에서 암송수련을 지켜봐 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는 이후 칠 일 동안 밤낮을 새우면서 천 번이나 암송을 했다. 그것도 허투루 한 게 아니라 한 자 한 자에 정신을 집중하면서 가끔씩 사이탄의 기억이 역류할 경우 정신을 집중해서 정신오염을 막아내었으니 심력소모가 장난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기억이 들어오면서 점차 [뱀]이라 불렸던 존재가 본래 다른 세계의 천사였으며, 종말과 신의 한계에 절망해서 스스로 외우주에 뛰어들었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사이탄은 외우주를 오랫동안 헤매는 동안에 혼돈에 잠식되어 지금의 뱀같은 형상이 되었으며 이후 창힐을 만나게 된 것이다.

‘뭔가 좀 이상하군.’

기억에 따르면 사이탄은 직접 창힐을 만난 게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원래 외우주를 떠돌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중개를 통해 창힐과 계약을 맺어서 그의 권속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사이탄조차 몰랐다. 엄청나게 위대한 존재라는 것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며, 그 존재는 [외우주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어찌보면 사이탄의 격으로는 그 존재를 인식하는 것조차 힘든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사이탄의 언령을 암송하며 지옥수련에 몰두했다. 어느새 모든 집중력이 절정에 이르러서 침식을 완전히 잊은 채 수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십 주야 째.

나는 마침내 과거 흑웅이 생겨났을 때처럼 이마에서 흑광이 뿜어져나오려는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도 걸렸군…. 음신지력이 방대해져서 그런가!’

쿠구구구 -

이마가 간질간질하다. 당장이라도 흑광의 광선이 튀어나갈 것 같았지만 나오지 않고 있다. 너무 간지러운 느낌이라서 이마를 긁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았다. 그런 내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천우진이 말했다.

“이상하군. 이미 언령의 통제력이 흑웅을 생성하고도 남을 정도로 발전했어. 그런데 왜 흑웅이 나오지 않지?”

“제… 제기랄…. 이마 좀 긁어도 되냐?”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이마에서 음신지력 폭발이 일어나서 29번째 삶이 시작될 거다.”

“…….”

그렇게는 죽고 싶지 않군….

천우진은 계속해서 살펴보는 모양이었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팔짱을 꼈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군….”

그 때였다.

[주인… 이시여….]

“흑웅!”

갑자기 눈앞에 흑웅의 환영이 나타났다. 예전에 수요를 각성시킬 때 잠시 초회복을 느꼈을 때 나타났을 때 이래로 처음이었다. 그때보다 더욱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난 흑웅이 더듬더듬 끊기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이탄의 언령이…. 통제하는 범위는… 본래의 음신지력 뿐…. 그러나… 음신지력은 본래보다 더욱 팽창했으며… 아마테라스의 힘과… 합일되었습니다….]

“합일?”

[아마테라스의 힘까지… 통제하실 수 있어야….]

“그건 어떻게 통제하는데?”

[숨겨져 있는 신의 힘을…. 끌어내십시오….]

슈욱

흑웅은 다시금 사라졌다.

천우진은 내가 겪은 일에 대해서 듣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네가 지금 느낄 수 있는 음신지력보다 실제로 잠재되어있는 신력이 더욱 방대한 모양이다….”

“뭐? 지금까지 통제력에 넣은 게 전부가 아니란 말이냐?”

“그래. 마치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까. 넌 이미 예전의 음신지력보다 몇 배나 되는 영역을 사이탄의 언령을 이용해서 통제에 넣었지만, 실제로는 그 용량조차도 겉으로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거겠지. 네 상단전과 심층영역에 존재하는 잠재신력이 더 있기 때문에 흑웅 스스로가 구현화를 거부하는 거다.”

“구현화를 거부한다고? 왜?”

“정령화란 힘의 객체화. 즉 흑웅의 힘은 네가 정해놓은 힘의 영역에 비례한다.”

천우진이 팔짱을 꼈다.

“네가 모든 힘을 꺼내지 못한 상태에서 표면의 힘만 가지고 구현화되어봐야 흑웅 스스로의 힘이 약하다고 판단한 거겠지.”

“흐음….”

뭔가 까마득한 기분이다. 지금 언령으로 통제하는 음신지력만 하더라도 이전회차보다 몇 배나 많은 것 같은데, 그것보다 훨씬 많은 신력이 내부에 잠자고 있다고?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천우진이 말했다.

“지금 당장 해결될 일은 아니야.”

“해결법이 없을까?”

“꾸준한 수련밖에 없지. 어찌되었든 사이탄의 언령을 써서 암송수련을 할 때마다 네 통제력이 계속 늘어나는 건 사실이고, 통제력이 정점에 이르면 그 때 또 다른 변화가 생길 거다.”

“…….”

“좋게 생각해라. 만일 네가 흑웅을 완성하는 날이 온다면, 넌 전인미답의 경지에 발을 들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해도 내가 수련해야 하는 양은 줄어들지 않잖아.”

천우진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래는 거냐. 그럼 정말로 날로 먹으려고 했냐?”

들킨 것 같다….

“…….”

“…….”

결국 돈오가 아니라 점수(漸修)인가.

‘뭐 어쩔 수 없지! 수련은 귀찮지만 그래도 할 수밖에.’

나는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예전과 달리 희망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음신지력을 쓸 방법도 없어져서 좌절하고 있었는데 길이 보인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 때였다.

“천우진. 이야기는 다 끝났나요?”

“아, 그게.”

사공린이 방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천우진이 그 순간 나를 강하게 노려보았고, 나는 그 눈빛이 무슨 의미인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응? 왜 째려보는… 아아!!’

나는 천우진의 눈빛에 숨겨진 뜻을 깨닫고는 급히 사공린에게 말했다.

“사공린! 이번에 천우진이 엄청나게 수고했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유급휴가 1년을 줬으면 하는데!”

“…….”

사공린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다가 천우진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말했다.

“천우진. 제가 휴가는 안 보내줬어도 재택근무와 사원복지는 빠짐없이 챙겨주지 않았던가요?”

천우진이 순간 맛이 간 듯 버럭 외쳤다.

“아니 다 필요 없고 휴가 달라고 휴가!!”

“후우…. 슬프군요. 이 제국에 당신만한 인재는 없습니다.”

“아니 됐고 휴가 좀…!!”

“흐음…. 음….”

사공린이 엄청나게 깊게 고민하는 듯 하다가 마침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갔다오세요.”

“으하하하하하하…!! 1년 유급휴가다!!”

퍼엉

천우진은 그 순간 광소를 터뜨리며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유급휴가를 가 버린 것이었다.

나는 천우진이 남아있던 자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1년이나 쉬다니…. 쳇.”

“어쩔 수 없죠. 시대가 달라져서 이제는 열정만으로 일을 시키기 힘들어졌어요. 그래도 천우진은 잘 따라와 줬는데 백웅 당신이 부탁하니 어쩔 수 없군요.”

“나 때는 휴가 같은 것도 없었는데.”

왠지 천우진이 휴가가는 걸 보니까 괜히 심술이 나는 기분이 든다. 일이 없어도 괜히 일하라고 또 부르고 싶다.

왜인 걸까?

천우진이 쉬는 꼴을 보기 싫다.

‘에잇. 이것도 그냥 심술이겠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 사공린에게 말했다.

“거룡은 잡은 거야? 그 동안 수련한다고 얘기를 못 들어서.”

“마침 돌아온 참입니다. 아쉽게도 거룡이 머나먼 차원으로 도주해 버려서 실패했어요.”

“더 쫓을 순 없었던 거야?”

“더 쫓다가는 고위이족들이 저를 현실세계에서 내쫓으려 할까봐 그만뒀습니다.”

아, 맞다. 사공린은 천마였지.

모든 이족과 마(魔)가 두려워하고 경원하는….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사공린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럼 여기 온 이유는 내 원(願)을 들어주러 온 건가?”

“아니요. 그렇게 해도 좋겠지만 수련이 아직 끝나지 않으신 상태에선 아쉬움이 남으실 것 같군요.”

“…….”

“준비가 다 되시면 언제든.”

“그러지.”

어쩐지 이쪽의 의중을 읽힌 것 같은 느낌이군. 안 그래도 흑웅이 생기기 전에는 사공린에게 도전하는 걸 자제하려고 했는데.

“여기 온 이유는 부탁드릴 일이 하나 생겨서입니다.”

“어떤 일?”

“동영의 아베노 세이메이가 급히 백웅 님을 불렀습니다. 지금 당장 동영 아오키가하라 수해로 가 주세요.”

“세이메이가? 무슨 일로 그 녀석이 날 부르는데?”

사공린은 진중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뜻밖의 말을 했다.

“그는 오늘 죽을 겁니다. 유언(遺言)을 당신에게 남기고 싶다고 하는군요.”

파밧!!

나는 급히 비등을 써서 아오키가하라 수해, 음양사 일족의 땅으로 갔다. 그리고 세이메이가 있는 나무 위의 집으로 올라갔는데, 세이메이는 예전과 같은 은발의 중성적인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왔군…. 백웅….”

“…….”

나는 세이메이의 팔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한쪽 팔이 목내이처럼 변해서 바짝 말라 있었고 짚가닥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팔이 없다고 보는 게 차라리 나을 수준이었다.

세이메이는 눈 밑이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뭐라 말하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 말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냐? 오늘 죽는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그 말대로다. 나는 오늘 죽는다.”

“자살이라도 하게? 제기랄…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세이메이가 훗하고 웃더니 말했다.

“아니.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팽창을 막는 담보로 처음부터 내 수명을 내놨다. 그리고 오늘은 담보를 가져가는 날이니 죽는 수밖에.”

“뭐라고….”

“수명을 제물로 지금까지 잘 해 왔으나 한계가 왔다.”

그런 식으로 이 수해의 팽창을 막고 있었단 말인가?

세이메이는 침대에 누운 채 내게 말했다.

“죽으면 내 영혼은 수해를 막는 결계에 흡수되어서 결계를 강화시킬 것이다. 여하튼 종말을 보는 일은 없을 테니 잘 된 일이지.”

“뭐 그렇게 담담하게 말해? 죽는다는 건 무서운 일이야.”

“크크, 크크큭. 전생자한테 죽는 게 무섭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세이메이는 키득거리며 웃더니 잠시 후 말을 이었다.

“죽기 전에 할 말이 있다.”

“해 봐.”

이어진 세이메이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백웅. 내가 죽기 전에 내가 가진 아마테라스의 반쪽 신력을 모두 가져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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