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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파앗
나는 여산으로 와서 여동빈이 서 있던 절벽으로 갔다. 초무린도 데려가려 했지만 자기 일이 아니며 여동빈과 같이 싸우기 싫다며 거절당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언제나처럼 절벽 끝에 앉아 좌선하고 있는 여동빈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동빈이 힐끔 우리 쪽을 뒤돌아보자, 나는 여동빈에게 말했다.
“여동빈! 우리는 이 절벽에 봉인되어 있는 창힐의 뱀을 토벌하러 왔소.”
“…….”
“우릴 도와주시오.”
내 말에 여동빈이 대꾸했다.
“뱀을 토벌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 백해무익한 존재잖소? 그리고 그 뱀은 외우주에서 온 존재이니, 그 자의 이름을 받아서 내 힘을 향상시키려 하오.”
“솔직하군.”
“당신같은 사람한테 괜히 거짓을 말해봤자 손해란 건 알고 있소. 난 좋은 일 하는 김에 내 이득도 챙기려 하오.”
나는 여동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종말의 거룡도 같이 풀려날지도 모르지만, 놈들은 봉인된 지 오래되어 힘이 많이 약화되었을 거요. 반면에 우리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놈들을 상회할 수 있소.”
“…음.”
“이런 괴물들을 놔둬봐야 뭣에 쓰겠소? 종말이 되면 놈들의 봉인이 풀려서 상황만 더 악화될 테니, 잡을 수 있을 때 잡아버립시다.”
내 설득이 여동빈의 마음을 약간 움직였는지 여동빈은 한동안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좋다. 해 보자.”
스윽
이윽고 아군이 대오를 갖추었다. 주현성은 스마트폰이란 걸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더니 내게 보고했다.
“여산 인근 100km 내의 모든 주민들을 대피시켰습니다. 아까부터 진행되었으니 약 30분 후면 대피가 완료됩니다.”
“잘했어.”
“술법사 부대가 진법으로 외부에 충격이 흘러나가지 않게 막는 중입니다.”
나는 천우진을 바라보았고, 천우진은 잠시 못미더운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왜.”
“작전대로라면 네가 토요 팔괘도로 봉인을 풀고 용과 뱀의 혼백체가 풀려나기 직전, 롱기누스의 창으로 놈들을 찌르면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거 맞지?”
“그래. 그렇게 하면 시작부터 큰 이득을 얻고 시작할 수 있겠지.”
“근데 봉인을 풀기 전에 찌르면 안 되는 거냐? 굳이 그 아슬아슬한 틈새를 찌른다는 게 위험한데.”
“…봉인은 놈들의 형체를 흩어지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아무리 롱기누스의 창이라도 실체가 있어야 찌를 거 아니냐.”
그렇게 말한 천우진은 토요팔괘도를 들며 나직이 말했다.
“멍청한 소리하지 말고 한 방에 죽일 수 있게 노력해 봐라. 이런 괴물들과 정면대결하는 건 바보짓이니 약해져있을 때 끝내.”
“알았어.”
“토요를 써서 고대의 봉인을 깨겠다.”
우우우
천우진이 토요 팔괘도를 들자 그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영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천우진이 팔괘도를 쫙 하고 펼치며 외쳤다.
“파(破)!”
쿠구구구!!
토요의 힘이 흘러나오자 갑자기 절벽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절벽에 갑자기 기암괴석이 돌출되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고, 더러 용이나 뱀의 머리를 하며 끔찍한 생명력을 과시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우진이 말했다.
“아직이다. 이중봉인이 걸려있어서 실체화하는데 시간이 걸리는군….”
“얼마나?”
“허공에 괴물들의 마핵(魔核)이 나타나는 순간이 있을 거다. 그 때 마핵을 공격해라. 그 때가 가장 약한 순간이다.”
쿠구구….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천우진의 말대로 허공에 시꺼멓고 거대한 마핵이 일순간 모습을 드러내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혼돈이 점액처럼 꿀럭거리며 거대화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부활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이다!’
나는 혼돈의 덩어리가 마핵을 감싸기 직전에 들고 있던 롱기누스의 창을 투창(投槍)했다.
투창술(投槍術)
관천일뢰(貫天一雷)의 태세!
달마의 화신마저 꿰뚫은 적 있었던 뇌신류 필살의 투창술이 내 손으로 펼쳐졌다. 창은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의념천주의 강대한 의념을 담고 날아갔고, 엄청난 기세로 마핵을 꿰뚫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별빛처럼 사라져버렸다.
투확!
창에 꿰뚫린 부분이 둥그렇게 너덜너덜해졌다. 깔끔하게 원형으로 뜯겨나간 마핵은 원래의 모습이 거의 남지 않아 초승달처럼 변해버렸고, 잠시 후 기이한 괴성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끼기기기기 - !!
후와아악
잠시 후 막을 새도 없이 거대한 혼돈의 점액덩어리가 광폭하게 흘러나오더니 형체를 이루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사람만한 크기의 조그마한 암룡(暗龍)이었다.
후웅! 후웅!!
뜻밖에 어두운 비늘을 지닌 용이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길! 핵을 분명 꿰뚫었는데 롱기누스의 창 이거 불량품인가?”
“아니. 효과가 있었다. 힘이 약화되었지만 억지로 부활한 거다. 생각보다 힘을 많이 되찾았던 건가.”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옆에 서 있던 여동빈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당사자가 아마 알고 있겠지만, 저게 종말의 거룡같군. 힘이 약해서 몸집도 작아진 것이다.”
“…….”
여동빈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말했다.
“놓쳐선 안 된다. 저 놈은 모든 걸 먹어치우는 능력을 갖고 있으니,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럼 어디 잡아 볼까!!”
타닷
나는 제일 먼저 허공에 나타난 암룡, 종말의 거룡을 향해 검뢰를 날렸다. 과거 대륙만한 크기로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던 그 거룡이라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작아보였다. 거룡은 내 공격이 날아오자 갑자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루룩!!
“……?!”
뭐…뭐야?
검뢰를 먹었어?!
용의 아가리에 내 검뢰가 마치 국수처럼 빨려들어가는 걸 두 눈으로 목격하고 경악하자, 여동빈이 말했다.
“의념절기나 의념도 먹어치우는 것 같군.”
“그걸 어떻게 먹는단 말이오?!”
“[모든 것]에 포함된다는 거겠지.”
이렇게 황당한 적이 다 있다니!
쑤수숙
더 놀라운 것은 내 검뢰를 먹어치운 용은 뜬금없이 덩치가 두 배나 커져서, 크기가 단숨에 일 장 반이나 되었다. 검뢰가 강력하기에 힘을 회복하기 쉬웠던 모양이었다.
검뢰를 먹어서 성장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기에 머릿속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그 때 몸집이 커진 거룡이 우리를 향해서 의지를 전달해 왔다.
[인간들이여! 나를 왜 공격하느냐?]
“사실 딱히 널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근데 뱀 잡는 김에 너도….”
나는 말하다가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위화감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뱀 어디 갔지?!
우우우우우 -
그 때 기음(奇音)이 퍼져 나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시꺼먼 구멍이 뚫리더니 시꺼멓고 기다란 게 날아가는 게 멀리서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천우진이 급히 환술을 시전했다.
덥석 하고 천우진이 만들어낸 거대하고 투명한 손이 시꺼먼 걸 붙잡았다. 하지만 갑자기 천우진의 손에서 핏줄기가 치솟았다.
“큭!”
“천우진!”
천우진은 한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토요 팔괘도를 다른 손으로 내밀며 외쳤다.
“토요여!! 뱀의 힘을 억제하라…. 헉.”
풀썩
천우진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고개를 떨구며 쓰러졌다. 죽진 않았고 기절한 듯 했다. 난데없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나는 정신이 없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제길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거야? 하지만….’
해야할 일은 정해져 있다!
이 정도에 허둥댈 거면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다!
지금 내가 뭘 해야할지는 알 수 있었기에 여동빈에게 말했다.
“여동빈!! 달아나는 뱀은 내가 잡을 테니 거룡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잡아 주시오. 너희 전술무력요원도 여동빈을 도와라!”
“존명!”
타닷
나는 여동빈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뱀이 결계를 뚫으려는 하늘으로 날아갔다.
‘저런 혼돈의 괴물에게 무량단보다는 칠요를 이용한 공격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놈을 향해 날아가며 수요와 화요를 동시에 뽑아서 두 개의 검을 동시에 교차했다.
쌍요공명(雙曜共鳴)
수요천빙(水曜天氷)!
본디 언령에 신력을 담아서 써야 수요천빙이 제 위력이 나오지만 지금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므로 수요천빙의 위력이 반감된다. 그러나 화요와 수요의 정령이 깨어난 상태인지라 쌍요공명이 쉽게 이루어졌고, 그 덕에 수요천빙은 본래의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일순간, 새하얀 천공의 빙하(天氷)가 천지를 가득 채우며 쏟아져내렸다.
콰과광!!
수요천빙이 칠흑의 뱀을 타격했고, 칠흑의 뱀은 마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더니 마치 시꺼먼 용액이 녹듯이 허공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주륵거리며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자 그야말로 해치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칠요신기의 힘…!!’
이제야 제대로 칠요를 써 봤다는 기분이 든다! 내심 쌍요공명의 위력에 크게 만족하면서 나는 힘주어서 외쳤다.
“해치웠나?!”
내가 그렇게 외치자 수요가 기겁하며 말했다.
[백웅! 그런 말 하지 마라!]
“아니 왜….”
수요가 엄중하게 말했다.
[그런 말 하면 적이 안 죽곤 하더군!! 그건 저주의 언령이다!]
“헉!”
[신대부터 싸우면서 느꼈던 것이니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말도록 해라.]
그렇게 위험한 말이었단 말인가!
“응, 알았어….”
나는 수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땅으로 떨어져 내린 혼돈의 점액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수요천빙에 당해서인지 혼돈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때때로 얼어붙는 듯 했다. 그 기괴한 혼돈의 점액이 개천처럼 흐르는 모습을 보던 나는 수요에게 말했다.
“저 정도면 해치운 거 같은데 확인차 더 공격해 보는 게 나을까?”
[백웅. 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혼돈의 마물을 판단할 수는 없다!]
수요가 내게 경고했다.
[전시안이나 화안금정을 발동시켜라! 놈들의 체력과 생사여부를 확인하려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알았다!”
파앗
나는 즉시 화안금정을 발동시켰다. 전시안은 다소 발동이 까다롭기에 한시가 급한 지금은 화안금정 쪽이 훨씬 편했다. 그리고 화안금정으로 혼돈을 살펴보자, 나는 그 혼돈의 점액 속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꿈틀거리다가 이내 땅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설마 저게 본체인가?’
나는 등골이 오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요의 조언대로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해치웠다 생각하고 방심했을 것이다.
“하앗!!”
나는 재빨리 그 희뿌연한 걸 향해서 돌진하면서 재차 수요천빙을 시전했고, 이번에는 지면에 수요천빙이 부딪히면서 지면이 통째로 얼어버리기 시작했다.
촤촤촤촤촥
마치 냉기가 파도처럼 지평선 너머까지 휩쓸고 지나가는 듯 했다. 여산은 순식간에 얼음산이 되어버렸고 대지와 풀, 나무 따위가 몽땅 결빙되어서 냉기에 사로잡혀버렸다. 이 정도 위력은 과거 십이율주가 썼던 만하령문의 월하정야갑에 필적했기에 나는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크오… 오오오….]
그리고 수요천빙에 두 번이나 맞은 희뿌연 영체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더니 이윽고 시꺼먼 뱀의 형상을 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나는 혼돈의 뱀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걸 직감하고 땅에 내려서서 수요와 화요를 든 채 서서히 혼돈의 뱀에게 다가갔다.
“혼돈의 뱀이여. 나는 백웅이다.”
[백웅…!! 너는… 왜 나를 공격하는가…!!]
“그러는 너는 어째서 거룡의 혼백체가 봉인된 곳에 몰래 숨어들었느냐?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거겠지?”
[…….]
“더 이상 군말은 필요없다.”
쉬익
나는 수요를 뱀에게 겨누며 으르렁거렸다.
“네 [이름]을 내게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쌍요공명을 써서 너를 소멸시켜 버리겠다.”
내 말에 뱀이 잠시동안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이름]을 내놓으라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까지 네게 가르쳐줄 이유는 없지. 응하지 않는다면 베겠다.”
[크크크…. 그대는 정의를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니군…. 사리사욕이 강하게 느껴지는구나.]
“아가리를 털어대면 곱게 못 죽을 텐데.”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뱀이 말했다.
[후후…. 좋다. 아주 재밌는 인간같군!]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저 뱀은 꽤 여유가 있어보인다.
‘쳇…. 왜 찝찝하지.’
그게 왠지 마음에 안 드는데 왜인지를 모르겠다. 직감이 강한 위화감을 알리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은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기에 정확히 뭘 잘못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백웅. 네게 나의 [이름]을 넘기겠다. 내게는 필요도 없는 것이니. 그 대신에 너도 한 가지 약속해줘야 한다.]
“뭘 약속하란 말이냐?”
자길 건드리지 말고 살려달란 이야기를 하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어진 뱀의 제안은 뜻밖의 것이었다.
[선악과(善惡果)를 얻게 된다면 내게 다오….]
“…엥?”
[내가 처음부터 이 세계에 온 목적은 그것 뿐.]
꾸드드득….
뱀이 천천히 자신의 몸을 꼬아서 또아리를 틀며 뱀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내 조건은 이것뿐이다. 너에게는 손해될 게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