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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우우우웅
나는 중검(重劍)을 휘둘렀다. 중검이라 함은 본디 크고 무거운 대검류를 일컫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수련중인 중검은 내가공력을 검에 몰아담아서 활류를 억제하는 초식을 뜻했다. 이렇게 하면 검력이 커지고 위력이 증대되지만 민첩성이 떨어져서 강호에서 주류가 되는 검술은 아니었다.
내가 중검을 수련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아수라가 말했다.
“중검치고는 너무 빠르잖아. 속도를 줄여 봐.”
“…속도를 왜 일부러 느리게 하라는 거냐? 중검이 느린 이유는 기를 다루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익숙해지면 중검이라도 검속이 빨라지잖아.”
“그렇긴 하지만 암야(暗夜)를 익히려면 [부족함]을 느껴야 하거든.”
“……?”
“내 주문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미숙련자를 [연기]해 봐라. 그걸로 된다면 좋겠지.”
스스스
나는 아수라의 지도 하에 수련을 거듭하는 중에 내심 한숨을 쉬었다.
‘암야참이란 거 대체 뭐냐…. 한 달째 서로 검류(劍流)를 10가지 종류나 반복수련시키는데 죄다 기초중의 기초일 뿐이고 상승절초는 하나도 없군.’
마치 검술을 처음 배우는 사람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방금 전처럼 중검이라도 빠르게 휘두르면 도리어 제지를 받곤 했다. 그다지 고된 수련은 아니지만 기초초식만 한달 내내 반복하는 건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나는 이미 절대지경에 오른 고수가 아닌가? 절정고수만 되어도 이런 수련을 굳이 하진 않을텐데 내심 불만감이 느껴졌다.
이후 중검을 무려 다섯 시진이나 연마한 후 휴식시간이 되었다. 아수라는 나와 마주앉은 채 입을 열었다.
“검류 중에서 환변쾌영(幻變快影)은 잘 하는데 중반신류연비(重反迅流軟飛)는 그다지 못 하는군.”
“당연하지. 전자가 훨씬 더 실전에서 자주 쓰이는데.”
“숙련도 문제보다는 선호도같군. 무의식중에 네가 좋아하는 검류가 그쪽인 거다.”
“뭐 문제라도 있냐?”
“무의식의 선호도조차 균일(均一)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해.”
“…….”
“열 개의 검류, 혹은 그 이상의 만상(萬像)을 내면에서 편차없이 배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아수라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황당해서 대꾸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또 뭐야. 그렇게 한다고 딱히 더 강해지는 건 아니잖아!”
“가능해. 일단 내가 할 수 있잖아. 그게 암야참의 기본조건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이유라….”
아수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만일 네가 어떤 고수와 수만 초 이상 격돌한다 칠 때, 누가 네 검류의 흐름을 완전히 읽고 승기를 잡는다면 어떻게 할 거냐?”
“완전히 읽는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일 초 일 초마다 나는 검법을 다르게 바꿔서 시전할 수 있는데.”
“네 미묘한 마음의 흐름, 편중된 선호도를 읽고 마치 미래를 읽듯…. 말이지.”
아수라는 그렇게 대꾸하며 히죽 웃었다.
“이를테면 여동빈. 그는 아마 할 수 있겠지.”
“……!!”
“뭐 일단 네가 선호하는 전투의 흐름은 꽤 정형화되어 있으니까. 여동빈의 월공투계라면 그 정도 읽어내는 건 일도 아닐거다. 예전에 여동빈과 싸울 때 그거 느껴보지 못했냐?”
“그거라니.”
“속도나 힘에서는 되려 네가 여동빈보다 훨씬 앞서는데 여동빈이 마치 네 공격이 어떻게 올지 다 알고 있어서 한 방도 먹이지 못한 적 있었지?”
“…….”
아픈 기억이다. 분명히 그 때 대라멸진까지 써 가면서 여동빈에게 일대일 대결을 걸었는데 결국 지고 말았다. 내가 쓰라린 표정을 지으며 무겁게 대답했다.
“그랬었지.”
“사실 나도 비슷한 걸 할 수 있다.”
“뭐?”
“왜 놀라나? 이 수련을 시키는 이유가 암야참을 습득하기 위해서인데, 난 이미 습득했지. 그럼 할 수 있지 않겠나.”
“으음!”
“수련에 너무 의심이나 불만을 갖지 말고 따라와라. 성취가 잘 안 늘어서 초조하더라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나는 아수라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니.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의외인데.”
“왜? 적멸무극은 내가 천재라서 만든 거 같냐?”
“아니 그게….”
“나는 최소 3천년 동안 무공수련만 했다.”
타다닥
아수라가 유적에 피워놓은 모닥불 위에 꽂아놓았던 닭고기꼬치를 집었다. 그는 한움큼 뜯어먹더니 말을 이었다.
“본래 우샤스 새벽교단의 절기였던 월아영상패룡파만 해도 얻는데 고생했다. 우샤스 교단에서 신뢰를 얻는데 30년이 걸렸고 수련해서 경지에 올리는데 80년은 걸렸지. 이런 식으로 내가 볼 때 세보이는 신공절학은 수십 년이 걸려도 얻으려고 노력한 결과 적멸무극을 만들 수 있었다.”
“…….”
“노력으로 친다면 무예역사상 나보다 노력한 무인은 거의 없다. 여동빈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넌 내 앞에서 노력 운운하면 안 돼.”
정말 할 말이 없다. 3천년 동안 무공수련한 놈 앞에서 고작 백수십 년 수련한 내가 뭘 말할 수 있겠는가?
“하, 하지만….”
나는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어서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러자 아수라가 피식 웃었다.
“아, 물론 내가 천재라는 건 사실이지. 재능이 있는데 노력까지 하다니 사기 아니냐? 넌 재능도 없으니까 배 아프지?”
으으윽!
정곡을 찔린 느낌에 나는 투덜거렸다.
“…보통 자기 입으로 그런 말 하는 놈은 거의 못 봤는데.”
“이봐. 언제까지 재능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에 얽매여 있을 거야?”
“응?”
우적우적
딸깍
아수라가 닭고기를 맛있게 씹더니 목너머로 삼켰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차가운 맥주캔을 뜯으며 말했다.
“너 지금 죽어서 전생하면 초창기의 진소청 못 이기냐?”
“아니.”
“그럼 됐잖아. 재능의 정점인 진소청을 꺾을 수 있으면 됐지 재능이 왜 더 필요한가? 고작 이 시대 뇌신류 떨거지들이 너보고 종사인지 의심할까 두려워서? 재능이 있어야 더 강해질 것 같아서?”
“…….”
“절대지경이라면 한 시대에 한 명 나오기도 힘든 존재. 이미 넌 무술인의 정점에 가까워졌다. 이미 재능 운운할 때는 지난 거지. 그런데 네녀석의 자격지심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군.”
아수라는 맥주캔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나직이 말을 이었다.
“재능이라는 건 결국 빠르게 경지에 발을 딛게 해주는 도우미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중요한 건 신념(信念)이다, 백웅.”
“신념이라고….”
“그리고 넌 신념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지. 너같은 재능을 갖고 절대지경에 도달하는 건 원래 불가능한 일인데 도달했다. 너만의 신념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재능이 개입할 건덕지가 있는가?”
“으음.”
나는 그 말에 뭔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느껴졌다. 아수라가 중얼거렸다.
“내가 볼 때 그 정도의 자격지심은 인위적인 걸로 느껴진다. 네가 가진 신념의 크기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의 박탈감이군….”
“…그렇게 봐도 할 말 없어. 하지만 너라고 해도 수백 년간 재능없다는 소리만 들어왔으면 나처럼 빡쳤을 거다.”
내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아수라가 휙하고 차가운 맥주캔을 내게 던져줬다. 내가 받아들자 아수라가 닥치고 마시라는 듯 쳐다보았고, 나도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었기에 꿀꺽꿀꺽 마셨다.
“꽤 맛있군.”
아수라가 닭꼬치구이를 한 줄 집어서 내게 건네며 말했다.
“아, 진소청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진소청 때문이라도 넌 흑웅을 만들어야 해.”
“어?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나중에 진소청이 막바지에 나타나서 널 푹 찔러죽일 수도 있잖냐?”
“…으윽.”
떠올리기 싫었던 사실을 상기시켜주다니.
“진소청은 내가 볼 때 이것저것 다 할 줄 알아도 하나만 주력으로 미는 놈이야. 그리고 이번 생에 진소청은 무공이 아닌 술법을 주력으로 선택했지. 그러니 무공경지는 네 생각보다 낮을지도 모르고, 무공을 결코 주력으로 쓰진 않을 거다.”
“…궁극의 술법사 진소청이란 말인가?”
“적어도 내 예측으로는. 그리고 술법의 궁극에 도달한 진소청에 대항하려면 흑웅이 필수적이지.”
“…….”
아수라의 현재 수준 또한 지금껏 만났던 무인들 중에서 최고수준에 속한다. 비교할 자가 거의 없는 수준이니 아수라의 예측이라면 믿을 만 하다.
“그나마 희소식이라면 500년간 무공을 판 진소청보다는 약할 것이라는 거겠지만.”
“으음. 애매하잖아.”
문제는 저런 말을 들어도 어느 정도 강할지 예측이 안 된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왠지 천마 사공린도 그렇고 진소청도 그렇고 흑웅이 있어야만 대항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순수 무인은 그 녀석들을 이길 수 없단 얘긴가?”
“당연하지. 신급에서 놀고 있는 놈들인데 어떻게 순수무공으로만 이기나? 다만 한 방 싸움이 성립될 정도로 수준이 오른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대꾸한 아수라가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네게 정공법으로 무공만 익혀서 신역절기에 도달하고, 신역절기를 써서 난관을 타파하라고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무리다. 최소한 백 년은 잡아야 해. 그러니 할 수 있는 한에서 17년 내에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흑웅이 필요할 것이다.”
“흠…. 그러면 이렇게 암야참이나 팔선신공 배울 시간도 아껴서 흑웅을 부활시키는 게 낫지 않아? 이게 시간낭비일 수도.”
“까불지 마. 네가 하도 시간절약을 외치고 다녀서 이렇게 계획을 짰을 뿐이지 사실 암야참은 지금의 네가 익히기에는 한참 먼 경지니까.”
“…….”
“적멸무극으로 한 번 공격력의 궁극에 도달했던 내가 수파리(守破離)를 거쳐서 수십 년의 고련 끝에 단서를 잡은 경지다. 배우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알았어, 제길.”
나는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야. 그러고보니 아직 백련교주가 너한테 무슨 말을 유언으로 남겼는지 제대로 말한 적 없잖아. 그건 대체 언제 말해줄 거야?”
내가 봤던 전뇌자 500년 기억 속의 아수라 1인칭 부분은 전부 아수라가 인위적으로 입력한 장면들이다. 그리고 아수라는 무슨 의도인지 백련교주가 혼연의 옥좌에서 그에게 남겼던 유언을 입력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가 백련교주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직 모르는 상태다.
“…….”
아수라는 뜻밖에 침묵을 길게 했다. 그는 다소 예리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듣고 싶으면 천마 사공린의 시험을 통과해서 천계 탐사대를 갔다와라. 그 정도는 해내야 나도 네게 말해줄 마음이 생길 것 같다.”
“뭐? 그냥 말해줘. 왜 쓸데없이 비싸게 구냐.”
“말했잖아. 육개월간 지켜본다고. 나는 네가 백련교주의 유지(遺志)에 어울리는지 지켜보고 싶다.”
“흐으음….”
“뭐 편하게 생각해라. 말은 이렇게 해도 일단 널 도우려고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
아직도 나는 아수라에게 시험받고 있는 건가?
하긴 처음부터 대놓고 그런 티는 냈으니까 이제 와서 화낼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신 나는 도전심이 생겨서 불타올랐다.
“좋아 지켜보라고! 길어도 일 년이면 뭔가 해 낼 테니까.”
“의욕은 좋군. 마치 닥돌 뉴비 공대장을 보는 것 같아.”
“어? 뭐라고?”
“아니. 그냥 혼잣말이다. 훗….”
저 녀석 가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한단 말이지….
어쨌든 나는 휴식을 취하고 다시 암야참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한 달간 검류를 통제하는 수련을 하고 난 후, 또 다시 한 달간 기초를 다질 겸 팔선신공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그 와중에 아수라가 발견해낸 온갖 요령을 배웠는데, 일단 나도 팔선신공을 기본적으로 배우고 있었기에 생각보다 습득난이도는 높지 않았다.
다만 그 가짓수가 많아서 나는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이, 이렇게 많은 응용법을 실전에서 다 적절히 써먹을 수 있나? 지금까지 종류가 다른 걸 수백 개나 배운 것 같은데….”
“웬만한 수련이나 감각으론 좀 힘들지.”
후웅
역천보륜을 마치 부메랑처럼 만들어서 다섯 가닥으로 날리던 아수라가 무형강기를 회수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넌 전생자니까 수백 수천년 동안 수십만 번은 싸우겠지. 그렇게 많이 싸우다 보면 저절로 몸에 배지 않겠냐. 굳이 연습을 안 해도 다 익히게 될 정도로 싸우면 충분해.”
“…….”
“왜 그런 눈으로 보냐?”
“야, 수백 수천년을 너무 쉽게 얘기하는 거 아니냐고. 내가 그렇게나 긴 세월동안 싸움만 할 거 같진….”
“당연히 하겠지. 왜 그런 질문을 하나.”
아수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 녀석이 지금까지 28번 살아오면서 쉬어간 적이 얼마나 있다고 그러냐? 내가 네 기억을 보고 놀랄 정도로 빡세게 살았다. 하긴 그런 점이 네 전생동료들에게 신뢰를 주는 거겠지만.”
“음….”
“넌 정말 쉴 새도 없이 심심하면 수련하고 보물찾고 싸움박질을 했는데 쉰 적이 거의 없다. 기껏 부귀영화를 누릴 틈이 있어도 그냥 꼴아박고 죽기까지 반 년도 안 걸렸지. 이런 식으로 전생을 한 오십 번만 더 해도 실전경험에 있어서 이 세상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경험이 축적된다. 백만 번 싸우는 건 껌이야.”
“…….”
“넌 전생자니까 인간의 시간감각은 이제 무의미하다. 마왕으로써 하는 충고인데, 넌 초월자의 시간감각에도 익숙해지는 게 좋아. 일 년이라는 단위는 초월자에게 있어서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짧은 시간이라는 걸 인정해라.”
인간의 시간감각이 무의미하다고….
어쩐지 아수라는 간접적으로 내가 단기간에 성취를 얻으려고 매달리는 게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아수라의 말 뜻을 깨닫자 나는 확하고 체감을 느꼈다.
‘나 또한 마왕이었던 아수라와 같은 초월자라는 뜻인가….’
그러고보니 지금껏 만났던 선지자나 수많은 신적 존재들이 그런 얘기를 하긴 했다. 전생자는 인간이 아니며, 별개의 존재라고.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생경하기만 할 뿐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할 순 없다.
나는 인간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아수라가 말했다.
“두 달 정도 더 해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그리고 두 달 정도 수련하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 동안 구궁파천뢰와 선검술의 수련을 빠뜨리지 않았으며, 남는 시간에 암야참과 팔선신공도 수련했다. 언뜻 수련할 게 많아보였지만 그래도 하루 열두시진 내내 잠도 안 자고 수련하니 대충 시간이 맞긴 했다.
아수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백웅. 오늘부로 암야참과 팔선신공은 그만 수련해도 된다.”
내가 아수라의 눈을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이제는 흑웅을 부활시키자.”
“알았다. 그럼 경문을 암송하러….”
내가 휙하고 고개를 돌리자, 아수라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아수라는 나를 붙잡은 상태로 말했다.
“아니.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부활 안 해.”
“네가 어떻게 알아?”
“일단 흑웅을 부활시킬 확률이 가장 높은 방법은 천우진이 줬던 언령보다 더 강력한 언령을 갖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수라가 말했다.
“하지만 너는 그 언령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하책인 경문암송을 하려는 거다. 가뜩이나 술법에 조예도 숙련도도 없는 네가 그런 방식으로 흑웅의 부활을 꾀한다면 백 년이 지나도 힘들 게 뻔하다.”
“…안 해보면 모르잖아.”
“성진이 수련기간을 늘려서 음신지력의 통제력을 되찾으라고 했던 조언을 비유하자면 어떤 건줄 아는가?”
“뭔데.”
“우공이산(愚公移山) 같은 거다. 무거운 산을 옮겨야 하니까 근력을 키운다는 식이라고. 하지만 언제 인간이 산을 옮길 만큼 팔힘이 세질 거 같은가.”
“…….”
“네 술법의 숙련도와 재능을 생각하면 까마득할 정도로 가능성이 적은 것이다. 된다고 해도 최소 수십 년 단위로 경문만 외워야 하겠지.”
나는 단번에 아수라의 비유를 이해하고는 얼굴이 굳었다. 설마 성진이 했던 조언이 그런 뜻이었다니!
“성진이 나를 놀렸던 건가?”
“아니. 그저 네게 이론적인 정공법을 말해줬을 뿐이다. 술법숙련도가 부족하면 키우는 게 맞잖나. 결국 음신지력 통제력을 올린다는 건 술법숙련도를 올리는 거니까.”
“그렇긴 한데….”
“성진이 너를 놀린 건 아니다. 네가 신적인 존재에게서 강대한 언령을 내려 받으려고 모험을 하면 네 앞길에 어떤 생뚱맞은 장애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말이지. 계약 때문에 [옛 지배자]한테 코꿰일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 이미 몇 번이고 당했으면서.”
“아!”
“넌 어차피 전생자라서 시간이 썩어나니까 술법에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수백 년씩 경문을 외우면 되지 않겠느냐. 성진은 그런 관점에서 조언해준 것이다. 그게 훨씬 전생자에게 안전하니까.”
“이, 이런 제기랄. 그런 게 어딨어. 나라고 해서 수백 년 동안 폐관수련 하고 싶은 줄 알아?”
내가 기가 막혀하자 아수라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부활시킬 방법이 있다.”
나는 아수라의 말에 솔깃해져서 반문했다.
“그게 뭔데?”
“요는 강력한 언령을 손에 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언령은 신적 존재에게 내려받을 수도 있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지.”
“어떤 방법?”
“강탈이다.”
아수라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강력한 신적 존재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인 후, 놈을 죽이지 않는 댓가로 이름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것이다. 이름을 잃어버린 자는 힘을 잃어 망령처럼 되기에 죽는 것과 같아서 사실 내놓지 않는 편이지.”
“그렇겠지. 망령이 되거나 죽거나 거기서 거기일 거 아냐. 그래서 성진도 그 방법은 말하지 않은 게 아닐까.”
아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해도 이름을 내놓을만한 놈이 딱 하나 있지.”
“누군데.”
“[바깥]에서 온 존재…. 그런 놈은 자신의 이름에 값어치가 없다. 왜냐하면 [바깥]은 이름의 존엄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설마 외우주에서 온 놈을 잡으란 거냐.”
“그런 놈이 딱 하나 있지 않느냐.”
누구지?
내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누군지 알아맞히지 못하자 아수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뱀].“
“뱀?”
아수라가 훗하고 웃었다.
“창힐 님이 임명한 혼돈의 사도. 팔부신중은 아니지만 우리와 준하는 위치에서 창힐 님을 바로 곁에서 모시던 외우주 출신의 그 혼돈이 바로 여산(廬山)에 봉인되어 있다.”
“……!!”
“놈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창힐 님이 직접 소환했었지. 놈을 소환한 이유조차도 팔부신중 중에 아는 사람이 없어. 그런고로 여산에 왜 봉인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뭐라고?!
나는 그제서야 그 놈의 존재를 떠올리고는 놀랐다. 아수라의 말이 이어졌다.
“여산에 가서 여동빈의 도움을 받아서 그 놈을 토벌하고, 놈의 [이름]을 얻어라. 그러면 흑웅은 즉시 부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