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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아수라가 내가 쓸 수 있는 무공을 거의 다 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검뢰를 굉장한 숙련도로 시전할 수 있는 걸 확인했으니, 그는 이미 뇌신류 검술의 명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무량단 또한 쓸 수 있단 말이지.’
아수라의 말대로 무량단은 내가 갈고닦은 백수십년 지옥수련의 결과 무의식중에 발현되는 최강의 일참(一斬). 뇌신검무와 검뢰를 모두 쓸 수 있다면 아수라는 당연히 어렵지 않게 무량단을 쓸 수 있으리라.
지난번에 전뇌세계 내의 대련에서 아수라가 나에게 했던 말은 전혀 허세가 아니었기에 나는 고민이 되었다.
이대로 격돌하게 되면 초수가 쌓일수록 무량단과 무량단이 부딪히는 게 뻔할 것이다!
나는 오랜 전투의 경험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누가 이길지는 전혀 미지수였고, 어쩌면 둘 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량단이란 건 말하자면 최강의 검뢰.
그리고 검뢰는 이 세상 모든 걸 쪼개어버리는 뇌검(雷劍).
모든 걸 베는 최강의 번개끼리 서로 부딪히면 어떻게 되는가?
독고성 밑에서 수련할 때의 경험으로, 검뢰끼리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서로의 의념이 뇌력으로 응집된 결집도에 따라서 우열이 가려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절대지경 이하의 경지에서 검뢰의 수련자끼리 충돌했을 경우였고, 둘 다 의념천주를 쓸 수 있는 초고수일 경우는 어찌될지 몰랐다. 의념천주를 통해 발현하는 절대지경의 절기는 아랫단계의 의념절기와는 차원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검뢰끼리의 충돌 - 그것은 모순(矛盾) 그 자체!
실제 모순의 고사처럼 심대한 뒤틀림은 아닐지언정 논리가 제대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순이 해결되는 가장 정당한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베는 것.
검뢰가 검뢰를 서로 베어, 양패구상하는 것뿐이다.
“…….”
꿀꺽.
나는 첫 삼 초 정도를 가볍게 아수라와 검초를 나눈 후 물러서서 침을 꿀꺽 삼켰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을 읽어내자마자 긴장되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도 나도 절대지경이기에 한 번 무량단끼리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절대로 초수를 물리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둘 다 죽는다…. 서로 꿰뚫려서 죽어.’
아수라가 나보다 무공을 몇백 개 더 익혔나는 상관없다. 검뢰는 내가 익힌 모든 무공 중에서 단연 최강의 공격력을 지닌 것이고 무량단은 그 극점에 도달해 있다. 무량단끼리 충돌하는 상황이 되면 삼보절기조차 회피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왜냐하면 필생의 의념천주를 다하여 자연체에서 내뿜는 폭발적인 일격이기 때문이고, 그 정도 위력이기에 백련교주의 심천무량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이다. 거두거나 피하는 개념따윈 있을 수가 없다!
만일 아수라가 지난번처럼 전략적으로 내 공격을 파해하려고 하면 나 또한 이번에는 거기에 맞춰서 대응할 텐데 길게 수(手)를 내다보면 필연적으로 무량단끼리 충돌하는 흐름이 보인다.
무(武)의 종사 수준에 도달한 나는 그게 읽혔다.
내가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를 듣자 아수라가 훗하고 웃었다.
“무량단끼리 부딪혀서 공멸(公滅)하는 걸 걱정하나 보군.”
“……!!”
뭐야! 어떻게 내 마음을 읽었지?
“어떻게 마음을 읽었냐는 표정을 짓고 있군. 단순한 놈.”
“독심 초능력이냐?”
“그럴 리가.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쯤은 나도 생각할 수 있다. 너와 마주칠 날을 위해서 검뢰를 수십 년간 수련했는데 그것쯤 생각을 안해봤겠느냐? 수백 번도 더 생각해 본 상황이지.”
“…….”
그것도 그렇네….
내가 납득하고 있을 때 아수라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무량단끼리 부딪혀도 공멸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
“뭐! 정말로 내게 무량단으로 맞서겠단 거냐? 그건 좀….”
아무리 생각해도 양패구상뿐이다!
절대지경인 지금은 그걸 알 수 있어!
“일이 잘못되봐야 그냥 죽는 것밖에 더 하겠느냐.”
스윽
아수라가 뇌신검무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지난번에는 무량단의 약점을 전략적으로 파해했지. 하지만 오늘은 예전에 말한 대로 무량단을 무량단으로 상대해 주마!”
“씨발!! 미쳤냐! 만일 그러다가 내가 죽으면 손해가 너무 막심하다고!”
겨우 대련을 하는 건데 피차 멈출 수 없는 필살기 때문에 죽으면 그게 무슨 손해야!
아직 미래의 세계에서 건질 수 있는 것 중에 절반도 못 건졌다고!
내가 항의하자 아수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손해라? 지나치게 보신에 집착하는 겁쟁이가 되었군.”
“뭐! 너 무슨….”
아수라는 나를 노려보았다.
“고작 이런 곳에서 목숨을 걸 생각은 없다라…. 논리적으론 맞는 말이지. 허나 그렇다면 너는 언제 네 목숨을 걸 거냐? 최대효율을 추구해서 바퀴벌레처럼 종말까지 숨만 붙여서 살아가다가 마지막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눈에 담고 뒈지면 끝인가? 그건 전생자로서는 옳은 전략이겠지만….”
부웅
아수라가 문득 자신의 검을 허공에서 횡으로 그었다. 마치 공간 자체가 베인 듯한 엄밀한 참격에 공기가 차갑게 떨렸다. 아수라의 눈빛이 냉엄해졌다.
“무(武)는 그렇게 목숨을 아끼면서 극한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치 않다. 이미 여동빈에게 열 번 생사결을 하라고 들은 바 있었을 텐데.”
생사결!
그 단어 하나로 엄청난 고뇌를 거쳤던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 그건 절대지경에 오르는 방법론이었어! 난 절대지경에 올랐잖아. 이제 열 번의 생사결을 할 필요는….”
“그러면 넌 지금 여기에 왜 와 있지? 지금 가진 무공만으로도 전생 직후에 천하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절대고수인데 어째서 여기저기에 고개를 숙이면서 무의 깨달음을 추구하느냔 말이다.”
“…….”
“부족해. 절망적으로 힘이 부족해. 그러니까 힘을 채우려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경지인 신역(神域)를 열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너는 그 경지를 열 정도의 재능이 없다…. 천재조차도 신역의 경지를 열지 못하여 대부분이 수만 년 무(武)의 역사 속에 스러져갔지.”
아수라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백웅, 넌 그냥 입 닫고 싸우다가 죽어라!! 싸우다 죽어도 어쩔 수 없는 거다! 넌 죽음으로써 네 무(武)에 대한 진정성을 증명해야만 해!”
“그, 그건 말도 안 되는….”
“그래. 전생자의 임무와 병행하는 건 힘들겠지. 그건 아마도 심대한 모순이겠지! 실수하면 한 번 죽어도 되는 걸 열 번씩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수라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래도 너는 그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조차 성공해야 해! 인간성과 무(武), 진실의 추구 모든 것을 손에 넣는 것…. 그게 바로 네가 선택한 길이란 말이다! 책사들도 네 길에 맞춰주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했나?”
“……!!”
“그게 바로 무신을 만나는 지름길이다!”
나는 아수라의 말에 머리에 둔중한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죽어야 한다고?’
내가 보신에 치중하는 건 사실이다. 지금 죽으면 잃을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이어져서 싸워야 할 때 싸우지 못하면?
결국 나는 무인(武人)에서 멀어져서 갈수록 무신에게 도달하기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
지금 죽으면 히든피스도 못 얻고, 세계의 종말과 계시도 못 보고, 진소청도 마주치지 못하고, 아군동료들이 500년간 필사적으로 준비해온 것도 무의미해진다. 말 그대로 이런 싸움에서 죽는 건 개죽음 그 자체다. 꼭 아수라와 목숨걸고 대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에라이 모르겠다!’
나는 검을 꾹 잡고는 아수라와 같은 뇌신검무의 기수식을 잡았다.
절대지경을 어떻게 도달했는데 이제 와서 보신주의자란 말을 듣기는 싫어!
그러자 우리는 마치 거울로 비춘 듯 똑같은 자세로 삼 장 거리에서 마주보게 되었다.
아수라는 웃었다.
“그래야지.”
“…죽으면 네놈을 원망할 거다.”
“흐흐흐. 나도 한 번 전생자 죽여보는 셈인가.”
두려움따윈 전혀 없는 목소리에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이 정도쯤 되면 두려움을 느끼기도 민망한 것이다.
간다.
무량단(無量斷).
나와 아수라의 눈이 허공에서 시선을 마주쳤다. 잠시동안 뚫어져라 서로를 응시하던 중, 뜬금없이 적의보다 더욱 빠른 검뢰가 무의식중에 뻗어나갔다. 의기(意氣)가 생물체의 반사신경 속도를 훨씬 초월해 버리는 것이 바로 절대지경이기 때문이었다.
의념천주가 충돌한다.
서로가 주장하는 [최강]이 무의식의 경계에서 최선의 일참으로 변해서 뻗어진다.
충돌 직전 -
뇌전의 궤적은 완전히 달랐다. 원리는 같은 무량단이지만 검결(劍決)은 판이하게 다르다. 아수라의 것은 한 줌의 군더더기도 없이 예술적인 굴곡을 이루었으나 내 것은 다소 투박하고 거칠게 직선적으로 쏘아졌다.
왜냐하면 아수라의 말대로 무량단이란 지금까지의 무예경험을 담은 무의식중 최선의 일참이 뻗어져 나오는 것. 자신의 무예와 삶이 반영되기에 같은 무량단을 펼쳐도 시전자마다 그 형태나 변화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쩌엉!
첫 충돌에서 내 무량단의 칼날에 상대의 칼날이 파고드는 것이 느껴진다. 번개가 맞부딪히는 그 순간은 결코 생물체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의념천주를 곧추세운 지금은 그 찰나가 분명하게 피부를 간질거렸다.
칼날이 칼날을 베는 것 - 본디 검투에서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서로를 베어가는 칼날이라는 모순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내 무량단과 아수라의 무량단이 서로를 벰과 동시에 시전자는 쌍방 모두 난도질당해 양패구상하리라. 너무나 예측대로였기에 나는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큭… 역시 무리인가…!!’
어찌보면 이건 뇌신류 검술의 정점에 도달한 자 두 명이 결투를 할 경우 생기는 현상을 실전에서 보게 된 셈이다. 나는 헛웃음이 흘렀고, 이윽고 아수라의 검이 내 몸을 꿰뚫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투웅!!
“……!!”
짧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뒤로 튕겨났다. 나는 빠르게 몸을 추스리고 중심을 놓치지 않았는데, 동시에 아수라가 따라붙어서 바닥과 수평으로 허공에 떠올라 있는 내 목을 베려고 참격을 날렸다. 그리고 아수라의 검뢰가 베이지 않고 멀쩡히 날을 유지하는 걸 발견한 나는 눈을 부릅떴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삼보절기(三步絶技)
나는 침착하게 천의 방위를 잡으며 검뢰를 한 차례 회피하려 했으나, 내가 검뢰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순간 아수라의 왼쪽 발이 내 발에 바싹 붙었다. 그리고 내가 지의 방위로 보법을 옮기기 직전에 그 방위를 먼저 밟아버리고 말았다.
‘아앗! 이런 파해가….’
같은 삼보절기를 쓸 수 있으면 이렇게 상대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구나!
하지만 끼어드는 순간이 절묘해야 할 텐데 보통 감각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모험이었기에 아수라의 전투경험이 엄청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삼보의 전개가 도중에 차단당하자 나는 곧장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굴공참을 써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여의조령을 써서 일단 아수라의 움직임부터 읽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아수라가 나보다 먼저 여의조령을 사용했다는 걸 알아차렸고, 내가 한 수 늦은 흐름에서 계속 선수를 제압당하는 중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젠장. 한 수의 호흡을 계속 뺏기는 건가….’
그렇다면 일단 수비를 견고하게 하면서 반격을 노려야 한다. 나는 지법으로 한쪽 손에서는 칠성폭뢰지, 다른 한 쪽 손에서는 현천오신결로 지강(指罡)을 발출했다. 열 가닥의 지강이 엄청난 속도로 아수라의 요혈을 노리자, 아수라는 갑자기 뜻밖의 절학을 시전했다.
역천보륜!
파앙
아수라가 일장을 허공에 내뻗자 그 앞에 회전하는 륜 모양의 기공구가 나타났다. 나는 역천보륜이 절대 방어초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혼란스러워졌다.
‘저건 공격초식으로 쓰는데?’
그리고 역천보륜의 기공구를 자기 가슴팍으로 끌어당긴 아수라는 갑자기 상하를 분단시키는 듯한 손짓을 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발출한 칠성폭뢰지와 현천오신결은 갑자기 역천보륜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슈슈슉
순식간에 강기를 모두 흡수한 역천보륜은 꿈틀거리더니 옅은 빛을 내는 은은한 태극(太極)으로 변했다. 뜻밖의 변화에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아수라는 도리어 태극으로 변한 역천보륜을 자신의 검 위에 덧씌웠고, 동시에 덮치듯이 내게 검격(劍擊)을 날렸다.
콰광!!
나는 검뢰로 막아내었지만 그 순간 태극의 기운이 의념천주를 발휘하며 현실을 일변시키기 시작했다.
오행역륜(五行易輪)
금생수(金生水)
쿠구구궁…
“크으윽….”
난데없이 아수라의 검에 실린 기운이 어마어마하게 무거워진 게 느껴졌다. 그리고 사방이 자욱해질 정도의 습기가 퍼져나갔고, 나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챘다.
투웅
잠시 후 한 차례 검합을 나누고 거리를 벌리자 나는 아수라에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내 질문에 아수라가 대답했다.
“무량단은 무량단으로 흘렸다. 간단하지?”
“……!! 말도 안 돼! 흘려냈다니 그건...”
“왜 말이 안 되나. 나도 무량단을 썼는데. 그건 너와 내가 진검으로 마주쳤다는 식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나는 네 살기의 흐름을 통째로 흘려낸 것뿐이야. 무량단은 서로의 몸뚱이를 벨 수 있지만, 다 베이기 전에 힘을 흘리면 되지.”
아수라는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역천보륜은 원래 팔선신공이며 뇌신류 종사 이청운이 만든 무공. 당연히 백련교주를 의식해서 만들어진 거잖아. 그래서 역천보륜은 원영신을 쓸 수 있는 백련교주의 오행조종능력에 대비해서 역조종을 할 수도 있게끔 되어있다. 분명히 너도 이청운한테 묘예의 역을 배울 때 역천보륜의 진수를 배웠을 텐데?”
“그래. 배웠어. 하지만… 검뢰를 금(金)으로 취급해서 금생수의 묘의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는 들은 적이 없다고!”
나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칠성폭뢰지와 현천오신결을 빨아들인 능력도 내가 알고 있는 역천보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묘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검뢰를 무력화할 수 있다니!
그러자 아수라가 씨익 웃었다.
“내 손에 의해 팔선신공이 진화한 거야. 알겠냐?”
“…뭐?”
“팔선신공은 칠대절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절세신공이지만 사실 이청운의 천재성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만들어진 역사 짧은 무공이지. 전승자도 사실상 너 혼자밖에 없었고 이후의 전생에서도 팔선신공을 제대로 익혀서 발전시킬 시간은 없다시피 했다. 천재들이 단시간에 팔선신공을 익히기는 했지만 절대지경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에서 연구할 시간이 있었겠냐?”
“그건 그랬지.”
“하지만 나는 종말까지 시간이 남아돌았기에 팔선신공을 꾸준히 연마해서 숨겨져 있던 묘용을 더 알아냈고 보다 강화시킬 수 있었다.”
“……!!”
“역천보륜의 창시자인 이청운도 나처럼 역천보륜을 쓸 수는 없겠지. 왜냐하면 그 동안 내가 열심히 수련해서 완전히 다른 무공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발전시켰거든. 그래서 검뢰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는 거다.”
“마, 말도 안 돼….”
팔선신공이 아수라의 손에 의해 진화했다니?
정말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었다. 나는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무량단을 흘려낸 건 뭔가 납득이 안 돼. 그건 교주의 심천무량도 정면에서 뚫는 검뢰라고. 같은 무량단이라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직접 눈으로 봤는데도 믿지를 못하는군. 꼭 이론으로 구구절절 설명해줘야 납득할 수 있겠냐? 니 입으로 무공은 아가리로 하는 게 아니라며?”
“…….”
할 말이 없어서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수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말로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다. 하니까 되던데? 다만 네가 앞으로 내 경지에 이르면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아수라가 그 말을 한 순간, 나는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지금의 아수라는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의념절기 적멸무극과 막강한 마력으로 밀어붙이던 마왕 아수라와는 다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는 통상적인 절대지경을 훨씬 초월하는 [어떤] 경지에 발을 디뎠고,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아수라 앞에서 어린애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걸 깨달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수라에게 말했다.
“아수라…. 넌 설마 신역절기를 얻은 거냐?”
내 질문에 아수라는 픽 하고 웃었다.
“어이. 백웅. 내가 신역절기를 썼기 때문에 졌다고 하면 납득할 수 있겠어?”
“아니, 그건 아닌데….”
“신역절기는 개뿔. 나는 내가 갖고 있던 걸 다듬었을 뿐이다. 마왕으로 있는 동안 시간낭비했던 걸 필사적으로 만회한 거지.”
뭔가 한탄하듯 말하던 아수라가 검을 자신의 검집에 집어넣었다.
철컹
“백웅. 모든 걸 경지 탓으로 돌리지 마라. 무(武)는 그렇게 편리한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잖나? 무슨 게임에서 레벨업하는 것도 아니고.”
“…….”
게임? 레벨업?
내가 생소한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아수라가 아차하고는 말했다.
“아. 너는 미래에 온지 얼마 안됐겠군. 아무튼 그런 게 있다.”
“뭐야. 수련만 하는 것 같더니 현대문명도 이것저것 들여다본 거였냐.”
“당연하지. 세상이 어찌나 빨리 변하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하여튼!”
아수라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이미 익힌 수많은 절기들을 다듬는 시간이 필요해. 그걸 내가 도와주마. 마치 이청운이 네게 묘예의 역을 가르칠 때와 같이.”
“정말 내 무술스승이 되어주려는 거군….”
“여기까지 와서 헛소리를 하겠나? 크큭.”
나는 아수라가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한다.”
나는 절대지경에 오르고서 생겼던 근거없는 자부심과 자만심이 크게 날아가는 걸 순식간에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 아수라는 내게서 그런 심리적인 자만심을 없애기 위해서 일부러 대련을 종용한 것이리라.
최선을 다해서 배워야겠다.
절대지경에서 한발짝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필사적으로 노력할 뿐이다!
“훗. 네가 자리를 비운 상황은 전뇌자가 무마한다고 했으니 반 년 정도는 여기서 머물며 수련해라.”
“반 년? 계속 수련하면 안 되냐.”
“네가 너무 가망이 없으면 나도 손을 놓을 거거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어!
내가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아수라가 말했다.
“아, 그런데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할 말이 있다.”
“뭔데?”
이어진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너한테 적멸무극은 못 가르쳐줘. 절대로 안 가르칠 거다.”
“…….”
“그거 빼곤 내가 아는 걸 다 알려주지.”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왜 못 가르쳐주는데!! 네 필살기잖아.”
“못 가르쳐주겠어.”
“왜냐고! 설마 내 재능이 부족해서 익힐 수가 없는….”
“아니아니. 그것도 있지만.”
아수라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까닥했다.
“그걸 배우면 넌 분명히 단판싸움에서는 세계최강이 될 거다. 구궁파천뢰와 결합할 수 있으면 틀림없이 그렇겠지. 하지만 결국 [길]을 수천 년 넘게 빙빙 돌아가게 될 테니 아예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