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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전뇌자에게 가기에 앞서서 루마니아의 페리치레(fericire)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 곳은 바로 드라큘라의 은거지였다.
‘전뇌자한테 가기 전에 드라큘라가 모은 정보를 한 번 얻고 가자.’
정보를 많이 얻고 찾아갈수록 전뇌자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정확해질 것이다.
파앗
내가 레스토랑의 2층에 들어가자 검은 정장을 입은 미중년 드라큘라는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런 드라큘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긴 따뜻한 용정차도 안 주나?”
내 말에 드라큘라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설마 절강성 항주의 용정차를 말하는 건가.”
“응. 난 그거 좋아하거든.”
“멍청한 중세 중국인같으니. 루마니아 카페테리아에 와서 항주 용정차를 요구하다니….”
“국제화 시대라고 들었으니까 세계화 경쟁력을 키우지 그래.”
내가 이죽거리자 드라큘라는 뭔가 씹은 듯한 얼굴로 주방에 외쳤다.
“카르갈론! 창고에서 용정차를 꺼내오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음울하고 어두운 목소리와 함께 연기같은 무언가가 움직여서 바깥으로 나가는 게 느껴졌다.
‘용정차가 있긴 있구만?’
머나먼 중원의 차를 창고에 보관해 둘 정도라면 드라큘라 놈은 의외로 차를 좋아하는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드라큘라에게 말했다.
“저건 네 사역마인가?”
“그냥 부하겸 집사다. 신경쓰지 마라.”
퉁명스럽게 대꾸한 드라큘라가 말했다.
“보나마나 정보를 들으러 왔겠지. 뭘 알고 싶은가?”
“내가 파우스트와 서방수호자, 멀린의 동향을 알아보랬지. 어느 정도 알아봤냐.”
“파우스트의 행적은 모른다. 연금술사 길드의 선대 마스터였지만 자리를 던지고 은거한지 오래였다. 그리고 서방수호자는 고대의 봉인지 팔리아스에 머물고 있으며, 멀린은 구 대영제국이 있던 콘월에 있다.”
“위치만 알아서 뭐해? 그놈들이 뭘 하는지도 알아냈나?”
“멀린이 하려는 일은 알고 있다.”
“오…?”
뜻밖의 말에 나는 드라큘라의 말에 집중했다.
달칵
그 때 눈앞의 식탁에 따뜻한 용정차가 나타났다. 내가 힐끔 용정차를 바라보자 드라큘라가 천천히 차를 음미하기 시작했고, 나도 마찬가지로 용정차를 마셨다. 과연 예전 그대로의 맛인 듯 했다.
“멀린은 지금 캄란의 스톤헨지(Stonehenge)에서 공양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공양의식의 목적은 잘 모르겠지만 그가 모든 걸 쏟으면서 진행하는 중인 것 같고, 벌써 수십 년째라고 한다.”
“캄란의 스톤헨지? 그게 뭐지?”
“대영제국 곳곳에 존재하던 거대한 원형 돌기둥 유적이다. 아주 고대부터 존재하던 유적이라고 하더군.”
그런 게 있었군….
‘어? 잠깐만….’
나는 처음으로 멀린을 찾아서 콘월으로 갔을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억을 되살리자 흠칫하고 놀랐다.
‘그때 봤던 거같은데.’
분명히 멀린을 찾아서 콘월 근처의 캄란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때 호수로 찾아오라는 멀린의 전음을 듣고는 열심히 몸을 숨기며 호수 근처에 갔는데, 멀린이 그 당시에 나에게 마검 흐룬팅을 줬었다.
근데 잘 생각해보니 그 호수 근처에 기이하게 생긴 돌기둥이 옹기종기 모여서 군(群)을 만든 풍경이 기억난다. 그 때는 별 생각없이 지나갔는데, 설마 그때 캄란의 호수 주변에 있던 게 바로 스톤헨지가 아닐까?
“그리고 서방의 수호자나 파우스트가 어떤 목적이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서방의 수호자는 최근 자신의 부하들을 시켜 [일곱 개의 나팔]을 찾게 한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일곱 개의 나팔?”
“나도 그저 정보를 캐다보니 알게 된 거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
나팔이라….
숫자가 묘하게 신경 쓰이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멀린은 수십 년째 공양의식을 하고있다고 했지. 목적은 모르겠지만 공양의식을 그렇게 오래 진행할 수도 있나?”
“가능한 일이다. 공양의식의 규모, 길이, 바쳐지는 제물이 크면 클수록 상대가 부름에 응하거나 소원을 들어줄 가능성이 커지지. 그렇다면 지금 멀린이 빌고 있는 소원이 그만큼 막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 되는 대마법사가 공양의식을 오랫동안 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엄청난 소원인가 보군.”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선]의 진영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대마법사 멀린이 그토록 오랫동안 공양의식을 지속시켜가며 빌고 싶은 소원이 도대체 무엇일까?
‘어디 한 번 시간날 때 캄란에 가 볼까….’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드라큘라가 말했다.
“백웅. 물어볼 게 있다.”
“뭔데?”
“네 녀석은 종말을 없던 걸로 할 수 있다고 말했었지. 그건 무슨 뜻이냐?”
“…….”
“말해 다오. 나는 네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윽…. 그 때 괜한 말을 했던 건가.
나는 움찔하다가 드라큘라의 말에 대답했다.
“방법은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종말이 닥쳐오기 전에 그걸 없었던 걸로 할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을 갖고 있다. 이건 내 이름에 걸고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어.”
내가 이름을 걸고 이야기하자 드라큘라가 감탄했다. 이름을 건 덕분에 사실성이 보장되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대단하군! 세상에 그런 비법이 있었단 말인가!”
“근데 이건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야. 그렇다기 보다는 음…. 좀 더 빨리 끝낸다는 뜻인가….”
“어느 쪽이든 좋다. [옛 지배자]에게 포학스럽게 멸망당하는 것보단 낫겠지. 네가 멸망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을 갖고 있다면야.”
“…….”
드라큘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너에게 진실된 충성을 바침을 맹세하겠다. 이는 나의 주, [니랏사 다그]께서도 허용하신 일로써 나는 내 모든 영혼을 다 바치리라.”
우웅!
그 순간, 언령이 퍼져나오면서 나와 드라큘라 사이에 인과율의 연결이 생긴 게 잠시동안 느껴졌다. 강력한 충성의 맹세가 지닌 언령이 잠시동안 힘을 비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손에는 세 줄기의 길다란 문신이 나타났다.
“헉?”
“삼두룡(三頭龍)의 축복이다. 내 주인 [니랏사 다그]께서 너를 축복한 듯 하군.”
삼두룡의 축복?
“이게 무슨 효과가 있는데?”
“그건 나도 모르겠다. 때가 되면 그 축복이 널 도우리란 것만 알 수 있군.”
그렇게 말한 드라큘라가 약간 한탄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백웅이여. 너는 내가 한때 추구했던 인간의 구원을 다시금 생각하게끔 해 주었다. 종말까지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
“…….”
그러고보니 드라큘라 또한 사도가 된 이유가 자신의 조국을 지키고, 나아가서는 인류를 지키고자 하는 숭고한 이유였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사도의 마력에 타락해서 마룡이 되었지만 현재의 그는 마기를 모두 털어낸 듯 했다. 나는 드라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맡겨라! 최소한 최악의 결말만큼은 피해 주지!”
뭔 짓을 하던 죽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희망만큼은 남기겠다고!
이윽고 드라큘라가 내게 조언했다.
“지금 멀린이 있는 캄란으로 가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방금 전에는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거기에는 예수회 13인의 조디악 멤버(zodiac member) 중에 최강이라고 불리는 아하스 베루스(Ahasverus)가 대마법사 멀린을 호위하기 위해 상주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
“…베루스!! 그 자가 말인가?”
“베루스를 알고 있나?”
“약간은….”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직접 겪은 건 아니고 망량의 명경에게서 전해들은 간접기억이긴 했지만, 신단수 결전 후 신의 무덤을 찾고 있던 검마 부녀일행에게 마왕이 된 미야모토 무사시가 추격해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무사시에게 살해당할 뻔하던 검마를 도와준 게 바로 예수회의 베루스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베루스는 [작은 굴레]를 3번이나 돌릴 수 있는 강대한 능력자였다. 어떤 힘의 근원을 갖고있는지는 몰라도 마왕을 상대로도 그다지 밀리지 않았기에 지금의 나로서도 베루스를 쉽게 이길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내가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드라큘라가 말을 이었다.
“아하스 베루스는 서방 어둠의 세계에서도 아주 유명한 존재다. 내가 사도가 되기 전부터 악명을 떨쳤던 자인데, 사실상 조디악 멤버의 나머지 12명이 다 덤벼도 아하스 베루스를 이기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으음….”
“이미 필멸자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지.”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조디악 멤버? 그 새끼들 별거 아니잖아? 칼리오스트로나 바토리, 마테오 리치 같은 놈들인데 별로 쎄지도 않던데….”
내 말에 드라큘라가 황당하다는 듯 자신의 관자놀이를 짚었다.
“…네 기준에서 약한 자들일 뿐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중세시대 공포의 혈마법 마스터로 악명을 날렸고 십자군전쟁 때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마녀다. 칼리오스트로나 룬마스터도 세상에서 손꼽히는 강력한 마법사다. 모든 걸 네 기준으로 생각하지 마라.”
“흠, 뭐 그렇다 치지.”
“아무튼 아하스 베루스와 싸우는 건 추천하지 않겠다. 그 자는 예수회의 무력이나 다름없으니.”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캄란에는 가지 않겠어. 나중에 다시 오지.”
그렇게 쎈 놈이랑 싸우는 건 좀 그렇다. 지금 시점에서 정체불명의 강자에게 도전하는 건 멍청한 짓이며, 덤볐다가 죽으면 최악이라는 정도는 나도 알고 있는 것이다. 아하스 베루스의 격은 백련교주에 못지 않다고 생각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파앗!
나는 드라큘라에게서 물러나와서 낙양으로 향했다. 그리고 천우진에게 전뇌자를 쓸 수 있는지를 물어보자, 천우진이 다소 힘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써도 돼.”
“메피스토펠레스의 위협은 완전히 제거된 거냐?”
“그래. 물리적으로 전뇌자의 전자계통을 다 뜯어서 하나하나 재구성했으니…. 그 작업을 한다고 다들 진이 빠졌다.”
한숨을 푹 쉬던 천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난 사흘내내 야근했으니까 자러 간다.”
“휴가는 안 가냐?”
움찔
천우진이 휴가라는 한 마디에 벼락처럼 몸을 떨더니 발작하듯 외쳤다.
“제, 제기랄. 나도 휴가 가고싶어! 가고싶다고!! 근데 사공린이 안 보내준다고!!”
“…….”
천우진은 눈이 벌게진 채 웃었다.
“아무튼 잔다! 나는 잔다! 잘 수 있어! 으하하하하….”
비명같은 외침.
그리고 비틀거리며 천우진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영문을 몰라서 머리를 긁적였다.
“흠. 고작 사흘 야근하고 휴가 못 간다고 저러다니 천우진 녀석도 정신력이 많이 약해졌군.”
옛날에는 더 활발했는데 엄살이 심해진 느낌이다.
더욱이 나는 내공이 반쯤 무한에 가까워서 잠을 안 잔 채로 한달 정도는 너끈히 버텼으므로 천우진을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 나는 아무튼 천우진에게는 더 신경쓰지 않으며 전뇌자에게로 향했다.
위이잉!!
전뇌기를 쓰자 곧장 전뇌자가 있는 전뇌공간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전뇌공간에 도착하자 전뇌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왔어?”
응?
뜻밖에 가시돋힌 말투가 아니었다. 그렇다기보다는 뭔가 수줍어하는 듯 해서 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부끄러워하는 건가 싶었지만 인공지능이 그런 걸 느낄 리가 없었기에 나는 소파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내가 그 동안 알아온 걸 말해주지.”
“말해줄 필요는 없어.”
“뭐?”
우우웅
다음 순간, 내 눈 앞에 반투명한 유리창같은데 피핑거리며 떠올랐고, 그 하나하나가 내 시야처럼 동영상으로 재생되었다. 말 그대로 내 기억이 그대로 재생되는 셈이었기에 나는 크게 놀랐다.
“……!!”
“전뇌기를 착용한 순간 당신의 뇌세포에 존재하는 모든 자료는 나와 공유되는 셈….”
잠시동안 내 기억을 살펴보던 전뇌자가 말했다.
“그렇구나. 히든피스에 대해 많이 조사했구나.”
“히든피스의 뚜껑은 열었지만 확실한 정체를 모르겠어. 히든피스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그 시계의 방을 어떻게든 해야할 것 같아.”
전뇌자가 입을 열었다.
“백웅, 해결책은 이미 도출되었어.”
“뭐? 뚫을 방법이 있어?”
전뇌자가 말했다.
“당신이 히든피스 시계의 방에 들어갔을 때 변형된 시계에 생겨나는 7번째 침의 존재는 바로 칼파(劫). 칼파의 침을 움직일 수 있어야 시계의 방에 숨겨진 수수께끼가 풀릴 거야.”
“……?”
“아마 망량을 데려가면 풀 수 있겠지. 혹은 흑웅을 부활시키거나.”
해답을 말해준 것 같지만 그 말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반문했다.
“칼파가 뭐야?”
“칼파가 문제의 해답으로 제시되었으니 파우스트 박사가 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명료해.”
전뇌자가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해서 멋쩍어졌지만, 이윽고 이어진 말에 나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파우스트는 과거 제갈부에게 [나], 인공지능의 기초 리소스를 넘겨주던 시점부터 전생자(轉生者)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전생자와 몰래 만나고 싶어서 히든피스를 이용해서 수수께끼를 만들어 놓은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