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086화 (1,083/1,615)

1086====================

사신지혼(四神之魂)

여동빈에게 선공(先攻).

천천히 상황을 봐 가면서 여동빈의 기술부터 보려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직감은 도리어 공격부터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보다 고수일 여동빈을 상대로 어설프게 방어를 위주로 해 봐야 그다지 의미가 없으리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직감에 따라 행동하기 훨씬 이전에 내 몸은 벼락처럼 날아서 여동빈의 전면에 최대로 끌어낸 의념의 검뢰를 때려박고 있었다.

절대검뢰(絶對劍雷)

무량단(無量斷)!

첫 수부터 내 최강의 절기를 발휘한다! 상수를 상대로 힘을 아끼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

콰광!!

다음 순간, 무량단은 정면에서 가로막혔다. 무량단을 가로막은 것은 바로 여동빈의 한 손이었고, 그의 손에 내 칼날이 똑바로 잡혀있는 게 눈에 보였다.

“……?!”

뭐라고?!

날 상대로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이라고…?!

‘말도 안 돼!’

천하제일을 다투는 백련교주나 아수라조차도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그들은 내 무량단 일격에 방어가 뚫리거나 혹은 기술을 써서 받아넘겼을 뿐 공수입백인까지는 시도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수로 내 모든 의념을 실은 검뢰를 맨손으로 받아낼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살아서 움직이는 번개를 맨손으로 붙잡았다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충격을 받아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여동빈이 나직이 말했다.

“아직 관(觀)이 부족하군. 상상력도 부족해….”

“크윽!”

나는 이를 악물며 검을 비틀어서 그대로 여동빈의 손가락을 자르며 빼내려고 했다.

“흠!”

하지만 여동빈은 그런 내 움직임을 읽듯이 바로 힘의 방향을 바꾸었고, 이것이 초고도의 화경(化勁)이란 걸 알아챈 나는 순식간에 집중상태로 들어가서 화경의 흐름을 읽었다.

‘화경은 자신 있다.’

이 찰나의 화경, 그리고 그 흐름을 읽는 작업은 장삼봉 진인에게서 훈련받을 때 수도 없이 했던 것이다. 무공의 공부 중에서 화경은 가장 기본임과 동시에 가장 강력한 무술의 공방력이었으므로 자나깨나 연습하라고 들볶였던 것이다. 그리고 무쌍패의 습득 당시에 나는 화경에 있어서 일대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할 수준에 이르렀다.

느껴진다. ‘힘’의 흐름이 젖히고 비틀리고 흔들리고 율동한다. 보통 사람은 이 흐름에서 채 5수도 읽지 못하지만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나는 이 흐름에 일백 수 이상 편승해서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었다. 화경 하나에 있어서는 무당파 장문인 이상으로 달통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스으으

‘아… 잠깐….’

아주 미세한 힘의 흐름이 교태(巧兌)하며 십자(十字)로 스치고 지나갈 때 여동빈의 손끝에서 무언가 파동(波動)같은 게 흘러나온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파동이 번져나가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화경의 수읽기가 모조리 무위로 되돌아갔고, 단숨에 여동빈에게 흐름이 되돌아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여동빈의 비어있던 한쪽 손이 내 팔목을 주먹으로 내리쳤고, 나는 호신강기로 버티면서 칼을 다시 한 번 그의 손에서 빼내려 했다. 그러나 여동빈은 완전히 흐름을 읽고 있어서 내 움직임에 맞춰서 검을 놔주지 않았다.

끼기긱…

결국 나는 검뢰를 계속해서 날카롭게 만들며 여동빈의 손을 간접적으로 자르려고 했지만 여동빈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의념이 계속 소모되는데도 이 부자유스러운 길항상태가 유지되자 나는 침음성을 냈다.

“으으음….”

어째서?

어째서 이게 가능한 거지?

검뢰는 사상최강의 공격력을 지닌 의념기 중 하나다! 검뢰의 절삭력은 지금껏 그 어떤 절대고수에게도 통했는데 여동빈은 어떻게 맨손으로 내 검뢰를 잡을 수 있는 것인가?

내가 혼란에 빠져있자 여동빈이 말했다.

“그대는 쌓은 역량만큼의 힘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걸 다 발휘할 수 있다면 지금쯤 내 손가락은 모조리 잘려나갔겠지. 허나 상상력이 부족하고 관찰력이 부족하여 내게 제압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힘겹게 반문했다.

“어떻게…. 검뢰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소.”

“그게 바로 고정관념이 아닌가.”

“……?”

“이게 맨손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대는 결코 빠져나올 수가 없다.”

무슨 소리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정신력이 완전히 고갈되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 내 자부심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던 검뢰가 이렇게 쉽게 막힐줄은 몰랐기에 모든 생각이 정지되는 듯 했다.

우드득

여동빈이 검을 잡은 힘이 강해지자 내 심령이 옥죄이는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희망을 잃으려고 할 때 머릿속으로 수요의 정령이 크게 외쳤다.

[정신 차려라, 백웅! 여동빈의 말을 여과없이 순수하게 받아들여라! 고정관념을 던져라!]

[수요!]

내가 퍼뜩 정신을 차리자 수요가 연이어서 외쳤다.

[여동빈이 하고싶은 말은 단순한 거다! 저게 맨손이 아니면 뭐겠느냐! 절세신검인 나, 수요에 검뢰를 둘렀는데도 맨손으로 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면, 저게 뭐겠는가!]

[……!!]

[맨손이되 맨손이 아니란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뭔가를 알아챘다.

‘설마?’

그리고는 화안금정을 발동시켜서 여동빈의 맨손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화안금정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듯 했기에 전국옥새의 힘을 발동시켜서 전시안을 씌워보자 잠시 후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반투명한 영기(靈氣).

하지만 전시안으로도 그 영기의 실체가 희뿌옇게만 보일 뿐 확실히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수요가 준 단서 덕분에 지금 여동빈이 보이는 가공할만한 무위의 실체를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었고, 잠시 후 이 제압상태를 빠져나올 방법을 알아차렸다.

뇌신권(雷神拳)

조앙각(操殃脚)

꽈앙!!

내가 발차기로 여동빈의 대가리를 후려치자 여동빈이 몸을 살짝 돌리며 한쪽 손으로 흘려서 막았고, 연이어서 삼보절기로 그의 옆으로 돌면서 팔꿈치로 여동빈의 목을 찍자 여동빈의 몸이 처음으로 뒤로 물러섰다.

“합!”

그리고 여동빈에게 살짝 빈틈이 생긴 사이에 나는 그대로 내공을 가득 실은 장력으로 여동빈의 몸을 날려버렸고, 여동빈은 그 장력과 같은 속도로 궁신탄영의 신법으로 날아갔다.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신법이었다.

파밧

내 검은 그제서야 여동빈의 맨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여동빈은 손을 약간 다친 듯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잘리지는 않은 듯 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나있는 가벼운 참상을 흘끔 쳐다보더니 내게 말했다.

“백웅이여. 투법(鬪法)을 검법에서 박투술로 전환한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그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서로의 검(劍)이 대치상태면 몸의 다른 부위를 써서 싸우는 게 검투(劍鬪)의 정석. 몰라서 묻는 것이오?”

“눈치챘군.”

“눈치챘소.”

나는 약간의 경의를 담은 눈빛으로 여동빈의 손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손 자체가 심어검(心御劍)이라는 사실을.”

분명하다.

저건 맨손이지만 그 안에 심어검의 힘이 담겨 있기에 내 검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금 전의 상태는 공수입백인이라기보다는 검과 검이 서로 맞부딪힌 상태였다고 할 수 있었다.

검뢰와 맞먹거나 그 이상의 의념절기인 심어검이 손에 둘러져 있으니 당연히 검투나 다름없는 상태였고, 나는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맨손을 자르려고 검뢰만 강화시켰으니 빠져나올 수 없었다. 다만 수요의 조언 덕에 상황을 파악하자 상대의 손을 검으로 간주하고 다른 대응방법으로 제압을 빠져나온 것이다.

설마 싸우기 전에 자신의 검을 절벽으로 내던졌던 것도 검이 따로 필요없음을 이야기하고자 그랬던 것인가? 자신의 손으로 검뢰에 맞먹는 검형을 의념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무기가 필요없긴 할 것이다.

여동빈은 차분하게 자신의 손을 다시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원리는 잘 파악했다. 허나 그대는 아직 관(觀)에 이르지 못했으니 심어검에 제대로 맞설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관? 무엇을 보란 말이오.”

“그대는 내 수법을 보고 파해한 게 아니다. 그저 수형어검(手形御劍)이라고만 생각하면 심어검의 진수를 알 수 없을지언저. 단순히 이런 식으로밖에 쓸 수 없다면 차라리 권법으로 의념절기를 익히는 게 더 낫겠지.”

“…….”

맞는 말이다. 여동빈의 검법숙련도가 천상천하에 최고이기에 저런 식으로 써도 되는 것일 뿐, 정상적이라면 권법으로 의념절기를 익힌 자가 저런 운용법보다는 훨씬 강력할 것이다. 단순히 효율로만 보면 눈 앞의 심어검은 비효율의 극치였다.

여동빈의 이어진 말에 나는 긴장했다.

“이번엔 내가 들어가겠다.”

심어검으로 공격을 한다는 말인가…!!

나는 긴장하며 서서히 몸의 균형을 도야시키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여동빈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무쌍패인가.”

“한 눈에 알아보는군. 그렇소, 나는 무쌍패를 써서 당신의 일격을 막아보겠소.”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무리 심어검이 강해도 무쌍패를 뚫을 수는 없소!”

“좋군. 그건 수련이 정체되어 무료했거늘 딱 좋은 상대구나.”

여동빈의 안광이 빛났다.

“무위전변에 똑바로 집중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파앗!

그 순간 여동빈의 몸이 한 줄기 빛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심어검천(心御劍天)

천둔패왕검(天遁覇王劍)

구구구구 - !!

‘엄청난 압력!!’

나는 의념절기 치고는 다소 느릿하게 날아오는 빛의 거검(巨劍)을 보며 생각했다. 절대지경의 고도로 발달된 의념차원에서는 느린 편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빨랐다. 그리고 검극에 맺혀있는 무시무시한 힘은 도저히 웬만한 힘으로는 막는 게 불가능할 듯 했고, 심지어 내 검뢰로 맞상대하려 해도 힘이 조금 부족할 것처럼 느껴졌다. 무쌍패를 써서 미리 막는 게 옳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거검이 내 전면에 들이닥치기 직전, 나는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무쌍패(無雙覇)

육대절학이 합쳐진 거대한 힘이 모이고 그 힘이 무위전변에 의해 외력(外力)을 무효화시키기 시작했다. 음과 양의 조화가 체현되며 아무리 거대한 힘이라도 무화시킬 수 있는 무쌍패! 아무리 강력하다고 한들 ‘힘’으로 밀어붙이는 한 무쌍패로 막을 수 없는 공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아아

여동빈의 천둔패왕검은 무쌍패의 음양에 부딪히자 마치 깎이듯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패력이 무위전변을 이기지 못하고 무력화되는 것이다.

‘됐어!’

의념차원에서 형상화된 변화는 현실에도 그대로 일어나는 것이니, 나는 자신감을 갖고 무쌍패를 끝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천둔패왕검의 검형이 절반쯤 사라졌을 때 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웅웅웅

우우우웅

거검이 잘게 쪼개어지더니 갑자기 빛의 가루처럼 변했고, 찰나의 공간 속에서 빛안개처럼 명멸(明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의 안개가 뿜어져나오는 순간, 나는 거대한 자연(自然)이 내 전신으로 덮쳐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마치 눈사태를 눈앞에서 보았을 때의 기분!

허나 눈사태라 해도 막을 수 있는 무쌍패였으나 저 빛의 안개를 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빛의 안개 하나하나에는 거대한 기운이 실려있어서 거검이 날아올 때보다 더한 압박감이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윽…!!’

나는 정체불명의 압박감에 시달리면서도 내면의 힘을 더욱 돋우어서 무위전변의 위력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빛의 안개가 날아오는 걸 마치 그물망처럼 휘어잡으려 했는데, 빛의 안개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나는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안개가 아니다.

무수히 많은 검(劍)의 기운이 무쌍패를 힘으로 밀어내고 있다.

그렇다 - 이건 어검(御劍)의 폭풍이다!

투두두둥

나는 압력이 더욱 강해지자 몸이 비틀거리며 무너질 것 같았다.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나오며 정신이 아득해졌고, 마치 [옛 지배자]의 주술을 받아칠 때와 같은 압박감이 몸에 배여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의 무쌍패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기에 연이어 무쌍패를 써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알아차렸는데, 실패확률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자 괴로운 기분이 들었다.

‘이럴수가…. 차원이 달라.’

어찌보면 검마의 어검절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위력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무쌍패 무위전변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의 한계를 살짝 추월하려 하는데, 그 이유는 어검 수십만 개에 담겨있는 힘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검선 여동빈의 뜻에 따라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십만 개의 변화가 하나하나 꼬여서 제각기 다른 속성으로 덮쳐오는데 그걸 또 다시 음양의 조화로 감당해내는 건 힘들었다.

이것이… 검선의 심어검!

근육과 몸 내부의 근골이 비명을 지른다!

더 이상 무쌍패를 펼치다가는 죽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으나, 나는 눈이 벌겋게 되어서는 재차 무쌍패를 시전했다.

‘이러나 저러나 죽기는 마찬가지!’

나는 끝끝내 무쌍패를 써서 여동빈의 공격을 버텨내었다.

파앙!!

음양(陰陽)이 허공에 선명하게 떠오르며 무위전변이 빛의 덩어리를 없애버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후우우…

여동빈의 절기가 무위로 돌아가자, 여동빈은 다시 몸을 곧추세우며 정자세로 섰다. 그리고 다시금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대는 무쌍패를 제대로 시전할 수 있군. 좋은 연습상대가 되어주겠구나.”

“자, 잠깐만….”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체력을 회복시키려 했다. 그리고 힘겹게 여동빈에게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 수많은 어검을 쓸 수 있는 겁니까? 또한 그 어검에 어떻게 그토록 강력한 힘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까? 그게 심어검의 위력인 겁니까?”

이해가 안 된다.

어찌 이리도 강하단 말인가?

‘500년 전에 이렇게까지 강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단언할 수 있다. 지금의 여동빈은 과거보다 훨씬 강해졌다! 예전 여동빈과의 일전을 비교해본다면 내 실력이 그때보다 늘었지만, 여동빈의 실력 또한 늘었기에 차이가 유지된다는 말이 딱 적용되었다. 여동빈은 같은 절대지경이지만 차원이 다른 지경에 접어들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결과가 아닌 과정일 뿐이지. 의(意)로 념(念)을 다루는 게 그저 법칙을 뒤흔든다는 걸로 끝나지는 않는다.”

“……?”

“더 해봤자 그대에게 득은 없을 듯 하군. 그럼 이쯤 하겠다.”

스윽

검선 여동빈은 손을 내렸다.

“심어검을 얻고자 한다면, 그대는 심어검의 실체를 볼 수 있는 능력부터 길러야 한다.”

“…설마.”

나는 그의 말에 뭔가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가 손에 심어검을 씌웠을 때 그 형태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형태는 화안금정의 술법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전시안을 써도 희미한 형체만 보일 뿐이었다. 정확한 형태는 알아볼 수 없었다. 내가 이 사실을 여동빈에게 이야기하자, 여동빈이 가볍게 대꾸했다.

“술수나 권능으로는 결코 심어검의 실체를 간파할 수 없으리라. 도리어 그 전시안이란 능력이 대단해 보이는군.”

“그럼 무얼 이용해서 심어검을 봐야 하는 겁니까?”

“그대는 이미 그럴만한 능력이 있지 않은가. 절대지경에 올랐다면 ‘눈’을 따로 연마할 역량이 있을 것이다.”

“…월공투계!”

내가 외치자, 여동빈이 무감정하게 대꾸했다.

“이젠 딱히 이름붙여 쓰지않으나, 그대에게 필요한 경지일지도 모르겠군. 꼭 그것만이 답은 아닐 테니 마음대로 수련하라.”

스윽

여동빈은 고개를 돌려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여동빈이 가 버리려고 하자 놀라서 말했다.

“어딜 가시오? 심어검에 대해서 좀 더….”

“단서는 줄 만큼 준 듯하다. 그리고 지금 그대는 어검보다는 선검술…. 그리고 그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겠구나.”

“내가 갖고 있는 것?”

“이 곳에 당분간 찾아오지 말라. 나는 이곳에 괜히 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동빈은 한 마디와 함께 운중(雲中)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여기서 너무 날뛰면 뱀이 깨어날 터이니…. 그 놈을 자극할 짓은 하지 말라.”

여동빈이 자취를 감추자,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심어검을 볼 수 있는 능력이라…. ‘보는’ 의념절기를 따로 연마할 필요가 있다는 건가? 하지만 그것까지 하려고 하면….’

나는 구궁파천뢰에 선검술을 하는 것만도 힘에 부치는 게 과연 그것까지 달성할 수 있을지 회의감부터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게 되자 여동빈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다 배우려고 해도 무의미하다!

재능이 안 따라주는 상황에서 섣불리 길부터 다 알고 가려고 무모하게 이것저것 손을 뻗다보면 정작 해야하는 일도 잘 못하게 된다는 소리인 것이다!

‘흠…. 이번에는 수련과제를 찾게 된 걸로 만족해야겠다!’

나는 여동빈과의 일전에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수련장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주현성과 이설표에게 여동빈과 만나서 싸웠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오오… 과연 전설의 검선 여동빈….”

“이설표. 궁금한 게 있어.”

“무엇이오?”

“구궁파천뢰를 구궁(九宮)까지 다 펼칠 수 있다면 여동빈의 천둔검법이라 해도 정면에서 이겨낼 수 있겠지?”

이설표는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경지가 낮은데다 천둔검법을 대적한 적이 없으니 뭐라 말을 할 수 없소. 허나,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구궁파천뢰를 끝까지 펼쳤을 때 그걸 맞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신밖에 없을 것이오!”

“…신을 죽여야 하는데 말이지.”

“말이 그렇단 것이오. 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들고 있다면 어쨌든 죽이지 않겠소? 어찌되었든 이론상 구궁파천뢰보다 더 강한 무공은 없을 것이오.”

이설표가 팔짱을 끼더니 말했다.

“17년, 지금은 약 16년쯤 남았다 해서 너무 급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소. 사실 그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오! 무인이란 3년만 용맹정진해도 몰라보게 달라지는 법.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히 점수(漸修)하시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오!”

“으음. 그 말이 맞다.”

나는 이설표의 말대로 내가 너무 성급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수련과제가 산재해 있지만 하나만 성취하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여기저기 눈을 돌려봐야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 차라리 지금은 그냥 매일 기초수련만 집중하자. 구궁파천뢰의 성취와 선검술의 숙련도가 더 나아지면 그 때 움직이자.’

나는 그 후로 약 한 달 하고도 반 정도를 매일 수련에 매달렸다. 길이 어느정도 보였으니 일단 배우는 것부터 확실히 몸에 붙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석 달을 막 넘어선 시점이었다.

“초무린은 어디 갔지?”

팔황경천신공의 구결에 대해 물어볼 게 있어서 초무린을 찾자 한창 열심히 수련하고 있던 주현성이 말했다.

“천계에서 부른다고 천제단으로 갔습니다.”

“엥? 갑자기 왜….”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투선의 이동속도를 생각하면 이미 천제단에 갔을 겁니다. 가 버린지 두 시진이 넘어서….”

“흐음.”

천계에서 초무린을 불렀다고? 왜지?

나는 뭔가 껄끄러웠으나 이내 더 생각하지 않고는 말했다.

“주현성. 그럼 초무린이 돌아오면 즉시 내게 말해라.”

“알겠습니다, 폐하.”

파앗

“황룡마신!”

나는 몰래 안보이는 곳에서 황룡마신을 소환해서 내 몸을 황금갑옷으로 빈틈없이 가렸다. 그리고 곧바로 비등을 사용해서 쿼츠 아겐투어로 향했다.

세계 제일의 시계 제작회사이자 장인들의 결집체라는 길드(guild)의 후신, 쿼츠 아겐투어. 나는 쿼츠 아겐투어의 최심부로 다시금 내려갔고, 이번에는 예전과 다르게 강력한 결계가 깔려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투명한 결계의 면을 통과하자, 곧바로 내 앞에 금발청안의 미녀가 순간이동으로 나타났다.

쉬익!

“정말로 다시 왔군요.”

“부탁했던 일은?”

내 질문에 쿼츠 아겐투어의 CEO이자 대마녀,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말했다.

“그보다 먼저 묻고싶은 게 있군요. 당신은 파우스트 박사와 어떤 관계죠?”

“협력관계다.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다.”

“…….”

“회중 금시계를 열었나?”

내가 대답을 재촉하자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훗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열었죠. 여는데 본사 자본금의 50퍼센트를 쓰긴 했지만….”

잘 됐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얘기했던 대로 롱기누스의 창을 줄 테니 회중 금시계를 이리 넘겨.”

“아뇨. 그러지 않겠어요.”

“뭐?”

쉬쉬쉬쉭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근처에 갑자기 십여명 정도의 인영이 시커먼 두건과 망토를 두른 채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이동으로 나타난 그 자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듯 몸에서 뿜어내는 영기가 심상치 않았다. 내 기준으로 말한다면 ‘좀 하는 녀석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설마.’

안 좋은 예감에 인상을 찌푸렸을 때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웃으며 말했다.

“파우스트의 회중 금시계는 저희가 가지는 게 낫겠습니다. 저희 힘으로 열었으니까 저희가 가질 권리가 있지 않나요? 롱기누스의 창은 안 받아도 되니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불청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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