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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내 말에 주현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것도 죽일 수 없는 검 말입니까?”
“그래.”
“왜 그런 생각을… 아.”
주현성이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즉시 알아차린 표정을 지었다.
“활인(活人)과 불살(不殺)을 동의어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칼로 찔러도 죽지 않는다면 어쨌든 사람을 살린 거랑 같지 않을까!”
“…….”
주현성은 무언가 심오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사실 검선의 초상승 무학에 그런 주먹구구식 논리가 통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의념을 자신의 신념으로 벼려낼 수 있다면 인정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좋아! 알아주었구나.”
“그러면 아무것도 죽일 수 없는 검이라 한다면 아무것도 베거나 찌를 수 없어야 할 터, 의념으로 그걸 구현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주현성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나는 수련용 검을 들어서 서서히 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기를 불어넣어 검기성강(劍氣成罡)의 단계를 끝내고, 이윽고 검뢰(劍雷)가 희미하게 검날에 맺히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검뢰가 완연히 검결에 녹아들어서 신검합일(身劍合一)의 상태에 이르렀고, 나는 기본자세를 취한 채 호흡을 골랐다.
“여기까지가 내가 최강의 공격력을 발휘하려는 준비동작이지.”
“훌륭하십니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고 빠르시니 검뢰의 숙련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게 보여주시려고 일부러 천천히 진행하셨군요.”
“여기에서 내 자신의 의념을 무(無)로 되돌린다면.”
스앗!
갑작스럽게 검뢰는 물론이고 내 전신을 둘러싸던 호신강기도 모조리 사라졌다. 단숨에 삼류무인급의 약한 상태로 되돌아왔는데도 내게 기의 역류조차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를 의념으로 완전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격력도 무(無)가 된다.”
“음…. 대단하십니다. 거기까지 완벽하게 기(氣)를 통제하실 수 있다니. 달인을 상대로 무공을 완전히 숨기실 수도 있겠군요.”
주현성이 연신 감탄할 때 나는 신바람이 나서 말을 이었다.
“여기서 살(殺)의 의지까지 완전히 없애버린다면 그게 불살(不殺)의 의념기까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무력함을 의념으로 좀 더 다듬는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
“…….”
내가 생각한 걸 이야기하자 주현성은 한참이나 고뇌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무쌍패(無雙覇)와 비교하여 나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의념기의 발전성이나 주제의식은 이미 무쌍패에서 다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헉!”
“장삼봉 진인이 [가장 약한 무공]이라 자처한 무쌍패는 모든 적대적인 힘을 태극으로 무력화시키는 절기를 완성시킴으로써 이미 불살을 실천했지요. 그 위대한 무위전변에 비하면 기껏 불살의 의지를 담은 무력한 의념기는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그러고보니?!
내가 흠칫 놀라자 주현성이 말했다.
“조금 더 생각을 다듬으심이 어떨지…. 이대로는 초무린 사조나 이설표 노사에게도 상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 그렇겠군. 고맙다.”
나는 주현성에게 먼저 상담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뜩 떠오른 발상을 이야기한 거였는데 이걸 초무린이나 이설표에게 이야기했으면 비웃음이나 의혹만 샀을 것이다. 주현성이 바로 생각해낼 수 있을 정도의 단점이라면 그들 정도의 명인에게는 단숨에 보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에게도 확실한 주관을 갖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는 이 발상을 발전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부웅 부웅
나는 원을 계속 그리며 선검술을 수행했고 일천 번 휘두르기가 끝나자 바위 위에 앉아서 묵상을 했다. 주현성이 말했던 단점을 개선시켜서 [아무것도 죽이지 못하는 검]을 구현화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본 것이다.
“흠….”
우선 완전히 기와 의념을 무(無)로 만든 상태에서 어떻게 싸울지를 생각 안 해 보았다. 나 정도 되는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가 기를 무의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기술의 대단함일 뿐, 실전에서는 무의미하기 짝이 없다. 스스로 상대를 대적할 수 있는 송곳니와 손톱을 다 뽑아버린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자신을 무로 만든 후 최상의 대처법은 이미 무쌍패에서 해답으로 나온 바가 있다. 무위전변으로 상대의 힘마저도 무화(無化)시키는 것! 이 완벽한 결론에 비하면 기껏해야 불살검(不殺劍)따위는 조잡한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 생각이 아예 처음부터 무의미한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조잡하고 유치하더라도 나만의 발상과 감각은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지금까지 재능이 부족해서 타인에게서 가르침만 받아오긴 했지만 중대한 경지로 올라갈 때는 나 자신의 성찰과 감각이 제일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재능이 없다고 해서 내 생각 마저도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일단 개선점을 먼저 찾아보자. 무쌍패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벌써부터 포기하는 건 일러.’
무쌍패로 만족할 수 있었다면 이런 수련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쌍패만으로는 절대적인 신성들과 싸울 때 한계가 분명하기에 어떻게든 그 한계를 넘기 위해서 이런 구차한 수련이라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알아차리고는 중얼거렸다.
“그렇군. 기를 없애도 칼은 남아버려…. 맨칼로 찔러도 사람은 죽으니까 문제야.”
지금껏 상대해 오던 놈들이 다들 검기나 검강으로도 해결하기 힘들 정도의 강적이었기에 굳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사람이란 기를 담지 않은 칼로 그냥 찔러도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상급요괴만 되도 검강이 피부에 잘 안 먹힐 때도 있었기에 생각지 못했다.
그럼 불살의 의념기를 쓴다고 하면 칼이 있으면 안 되는 걸까?
위잉
나는 어검술(御劍術)을 시전했다. 예전부터 어검술은 부단히 연마해왔기에 내 경지는 이미 수어검의 경지를 넘어서 목어검에 이르러 있었고, 눈으로 본 장소에 즉시 칼이 도달할 수가 있었다.
“…검(劍)이 없는 어검술. 가능할까?”
나는 내가 중얼거리고도 조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서 고민했다.
의념(意念) 그 자체를 칼의 형태로 버려낸 무형지검(無形之劍)!
이렇게 하면 검이 따로 없어도 어검술처럼 시전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의념이란 것도 의념을 불어넣을 매개물이나 무기가 있어야 소모도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순수하게 무(無)에서 형태를 짜올리는 건 굉장히 큰 소모도를 동반하게끔 되어 있었다. 평소라면 효율을 압축하고 압축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낭비를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에잇. 일단 해 보자.’
나는 의념을 크게 집중해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검의 형태를 짜올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우우웅
잠시 후 허공에 반투명한 의념의 검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나는 이 의념의 검을 어검술로 움직이려고 하니까 의념이 기겁할 정도로 소모되는 걸 알아차렸다.
투웅
이윽고 의념의 검이 근처에 있던 나무를 한 차례 가격하고는 소멸되었다. 나는 그 사실에서 또 한 가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어찌되었든 의념을 검의 형태로 만든 순간부터 적의와 살의가 의념에 반영되는 것. 그 목적성이 만들어진 이상, 무해(無害)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해….”
게다가 겨우 실전성없는 무형 의념검을 만들어서 한 차례 움직인 것뿐인데 내 정신력이 거의 3할은 소모된 느낌이다. 보통은 오랜 시간 숙련된 초식과 무기를 기본으로 해서 소모도를 최소로 줄이지만 지금의 경우는 아무 근본 없이 무형을 만들어내었기에 소모도가 막대할 수밖에 없었다.
‘형태를 바꿔 볼까? 검이 아니라 창이나 활… 아니…. 무의미한데….’
어찌됐든 무기를 연상한 순간 거기에는 적의가 포함된다. 의념이란 가장 솔직하면서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기 때문에 거기에 가식은 없다. 그렇지만 무기가 아닌 무형의 의념을 구현화해봤자 그걸 전투에 쓰는 게 가능할 것인가?
나는 한참동안을 끙끙대다가 심어검(心御劍)이 생각났다.
‘그래! 검마는 내게 수어검, 목어검, 심어검의 경지로 발전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상의 달인들은 대부분 수어검의 단계에서 멈춰있고 목어검의 경지에 도달한 건 극소수라고 했었지…. 그리고… 심어검은 전설상의 경지였기에 검마조차도 그저 꿈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검술의 3단계 중에서 심어검을 구현화한 것도 여태껏 지상의 모든 무인들 중에서 오로지 검선 여동빈 뿐이었음을!
무림역사상 심어검에 도달한 것도 오직 여동빈 한 명 뿐이었단 말인가!
“……!!”
나는 뭔가 확 깨달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어검술 최종경지인 심어검부터 얻어야 심검활인의 뜻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과정과 결과가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 어검술은 여태껏 내가 성취해 왔던 검뢰와는 영 다른 영역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그저 전투의 보조수단만으로 여겨왔지만, 어검술의 경지를 좀 더 올림으로써 여동빈의 경지에 접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면 어검술의 최종단계인 심어검이란 무엇일까?
수어검이란 손(手)으로 검을 조종할 수 있는 단계.
목어검이란 시선(目)으로 검을 조종할 수 있는 단계.
그러면 심어검은 당연히 마음(心)으로 검을 조종할 수 있는 단계이리라.
“음…. 뭔가 심어검의 뜻이 잘 와닿지 않는군.”
나는 목어검의 단계에 이른지는 옛날이다. 의념의 경지가 갈수록 발전되면서 어검술을 사용하는 수법도 발전했고, 시선만으로 어검을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시선만으로 어검을 조종하는 것만으로도 거의 절대다수의 경우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었기에, 마음으로 어검을 조종하는 경지가 왜 목어검보다 나은지는 알 수 없었다.
‘사정거리의 차이인가?’
나는 내 시선을 벗어나면 목어검이 급격히 위력을 잃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적수와 싸울 때 당연히 적수를 내 시야에 담고 있기에 이런 단점을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목어검이 먹히지 않을 정도로 상대방과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 당연히 거리부터 단축시켜야지 어검술의 사정거리를 더 늘린다는 발상은 하지 못했다.
그 말대로라면 심어검의 경지에 도달한 자는 설령 어검술을 수십 리 밖에서 시전하더라도 원래의 위력을 잃지 않고 날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미 환상이나 다름없는 경지이지만 그게 만일 가능하다면 검 그 자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이리라.
나는 여기까지 생각을 계속 확장하다가 더 이상 고민의 단계가 진전되지 않아서 사흘째 지지부진하며 망상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열흘째가 지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초무린을 찾아갔다.
저벅
투선 초무린은 근처의 호수에서 낚시를 해서 잉어를 낚는 중이었다. 잡은 잉어를 늘어놓은 채 낚싯대를 붙잡고 있던 초무린이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할 말 있나?”
“신선 중에서도 투선씩이나 되는데 함부로 물고기를 낚는 살생을 해도 되는 거요?”
초무린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사람이든 잉어든 어차피 똑같은 목숨이지. 투선은 지상의 생명을 자유자재로 살상해도 문책받지 않는 권한이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
“…….”
그건 말이 그렇단 거지 투선한테 낚시해도 된다고 허락해준 얘기는 아닐텐데….
내가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자 초무린이 스스로도 찔리는지 말을 이었다.
“사람 대가리를 수백 개씩 따는 것보다는 훨씬 건전한 취미활동같다만.”
“직접 무림인 대가리를 수천 개씩 따본 인간이 그런 말 하니까 참 어색하구려.”
“뭐라고? 내가 잉어 낚시하는 게 꼬우면 덤벼라. 이번에야말로 팔황천마로 죽여주마.”
“아 됐소. 잉어낚시 재밌게 하시오. 나는 다른 용건으로 찾아왔소.”
“무슨 용건?”
어쨌든 초무린과 말꼬리를 잡아봤자 지금 내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손을 휘저으며 내 용건을 말했다.
“초무린. 혹시 투선 중에서 심어검의 경지에 도달한 이가 여동빈 말고도 있소?”
“호오? 심어검이라…. 재밌는 얘기를 들고 왔군.”
초무린은 보기 드물게 흥미로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낚싯대를 놓고 내 쪽으로 돌아앉으며 대꾸했다.
“내가 알기론 없다. 애시당초 투선 중에서 여동빈보다 강한 자들은 신화시대의 강자이며 인간의 무예를 굳이 따로 연마하지 않았지. 그리고 나처럼 무림인 출신으로 투선이 된 자는 심어검을 얻지 못했다.”
“역시 그렇구려.”
“심어검은 왜 묻는 거냐?”
“심검활인의 뜻이 혹시 심어검에 있을까 싶소.”
“……? 자세한 경과를 말해 봐라.”
나는 초무린에게 내가 심어검에 주목하게 된 생각의 발전과정을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초무린이 큭 하고 웃으며 말했다.
“너같은 식으로 심검활인에 도달하려 하면 수천 수만년동안 모든 무공을 다 익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겠군. 틀린 이론은 아니다만 도대체 몇 번이나 길을 돌아가는 거냐.”
“…….”
“구궁파천뢰를 익히다가 선검술, 선검술이 막히니까 심어검…. 3가지를 다 익히려면 천 년이라도 부족한데.”
“내가 길을 뱅뱅 헤매는 건 알고 있소. 하지만 그렇다고 편법으로 취득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것 같기에 내 나름 부족한 점을 메꾸며 최선을 다하는 게 도리어 빠른 길일거라 생각하오.”
“생각은 옳지만 재능이 안 따라주는 게 흠이군. 크크큭…. 극상의 천재조차도 구차해서 싫어할 수련법을 추구하는 건가.”
초무린이 약간 비웃음을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네가 말했던 대로 심어검에 주목할 가치는 분명히 있다. 왜냐하면 여동빈의 어검비행술 또한 심어검의 결정체이며 다른 자들의 어검비행술과는 다른, 독보적인 경지이기 때문이지.”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다르다니?”
“천계의 대라신선이나 강대한 존재들이 종종 어검비행술을 쓰지만 그건 그냥 검을 띄우는 법술의 일종일 뿐이지. 허나 여동빈의 어검비행술은 완전히 의념만으로 움직인다. 그 자가 심어검의 성취를 완벽히 얻었다는 증거이지.”
초무린의 말이 이어졌다.
“검선 여동빈의 어검비행술은 한 번 날면 수천 리를 갈 수 있다.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느냐?”
“…….”
“못 하겠지. 어검비행술을 흉내내서 검을 의념으로 띄우고 그 위에 올라타서 움직일 수 있겠지만 수천 리씩 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네가 심어검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어검비행술을 흉내만 낼 뿐 시전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되지.”
“으음. 설마 그랬다니….”
나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 검선 여동빈의 어검비행술이 설마 심어검이란 경지의 증거였다니!
지금까지는 여동빈 뿐만 아니라 화룡진인이나 신공표도 종종 어검비행술을 쓰는 게 보였기 때문에 어검비행술의 술법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시전하는 어검비행술이 형태만 비슷할 뿐이지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사실은 지금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여동빈이 내 몸에 강신했을 때도 그런 건 전혀 느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초무린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네 녀석이 무공수련하면서 너무 헤매고 있으면 현허궁주가 나를 책할 것 같으니 단서 정도는 주지. 사대신기와 관련이 있다면 그 정도 자격은 되고.”
“단서?”
“그래. 여동빈과 오랫동안 겨뤄왔던 나만이 알고 있는 단서다.”
“…가르쳐 주시오!”
“흐흐.”
초무린이 히죽 웃더니 뜬금없는 말을 했다.
“여동빈의 검은 별개의 의지와 원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동빈의 의념이 다 소모된 상태에서도 검이 혼자서 움직이더군. 거기에 심어검의 비밀이 있을 것이다.”
“……?!”
나는 경악해서 외쳤다.
“말도 안 돼!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사용자의 의지력이 다했는데 어찌 검이 혼자서….”
“사실이다. 여동빈과 내가 사흘 밤낮으로 천계에서 싸웠다는 얘기를 했었잖은가?”
초무린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 때 여동빈과 정면으로 초수를 격돌하면 대개의 경우 내가 우세했고 밀어붙일 때도 많았다. 그리고 여동빈은 내 강공을 유능제강으로 흘리거나 절묘한 천둔검법으로 반격하기도 했으나 순수한 공방력은 내가 앞섰기에 종종 위기로 몰아넣었지. 그렇게 여동빈을 몰아붙이다 보면 그가 탈력해서 검을 놓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초무린이 그 당시의 일을 회상하듯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여동빈의 기력이 다 떨어진 상황에서도 검에 원영이 충천해서 내게 반격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 정도의 의념기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몰아붙였는데 이해가 불가능한 일이었지. 내가 투선으로 등선한지 수백 년이나 되어 의념의 힘이 그보다 훨씬 강했는데도 결국 진 이유는 그 점에도 있었다.”
“으음…. 여동빈의 검이 보패급의 보검인 게 아니었소?”
나는 스윽 수요를 꺼내서 보여주며 말했다.
“칠요만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가 있어서 홀로 싸울 수도 있소.”
“전혀. 여동빈이 쓰던 것은 천계의 보검이긴 했으나 천계 병기고에 널려있는 거였다. 하물며 화룡신검같은 신검은 절대 아니었지. 차라리 내 뇌성편이 훨씬 더 강했다.”
“…….”
“단서는 줬다.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
“고맙소.”
초무린이 내 말을 무시하며 다시 잉어를 낚기 시작했다. 저 자라면 의념절기로 연못의 잉어를 한번에 다 낚을 수도 있을 텐데 일부러 낚시하는 걸 보면 시간을 때우려고 저러는 듯 했다.
‘검이 혼자서 움직인다고….’
여동빈의 검은 홀로 싸울 수도 있다.
여동빈의 어검비행술은 심어검이며 한 번에 수천 리를 날 수 있다.
이 사실은 뭔가 중대한 비밀을 품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고민을 하면서 다시 수련장으로 돌아왔고, 선검술과 구궁파천뢰를 계속 수련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마침내 또다시 답답해서 사자후를 내질렀다.
“아!! 모르겠다!!!”
뭐가 이리 어렵단 말인가!
나는 고민을 너무 한 나머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속이 답답한 나머지 수요를 꺼내서 수요에게 말했다.
“수요!! 나와 봐!”
슈욱
수요의 정령이 내 부름에 환영을 나타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수요의 정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는가, 백웅.]
“아무래도 직접 시험해봐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너랑 나랑 어검비행술을 해 보자!!”
[…….]
수요의 정령이 무척이나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수천 리를 한 번 가보는 거야!”
[…나도 그대가 요즘 어떤 고민을 하는지는 다 옆에서 보고 들었으나….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물론 나는 칠요의 정령이니 그대의 의념이 다하더라도 그대를 위해 싸워줄 순 있지만 심어검이라는 무술경지와는 연관이 없다.]
“그래도 해 보자!! 이대로 시간만 축낼 순 없어.”
[아, 알았다….]
후와앗
나는 수요 위에 올라타서 어검비행술을 시전했다. 어검비행술이라 해도 그냥 목어검으로 수요를 띄워서 그 위에 올라타서 날아가는 식이었다. 나는 수요에 계속 의념을 불어넣으며 하늘을 날아갔고, 그렇게 십 리 정도는 무난하게 비행할 수 있었다.
부우웅
그렇게 삼십 리 가까이 날아갔을까? 문득 나는 머리가 텅 빌 정도로 정신력이 고갈되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허억…. 윽….”
뭐지?! 왜 이렇게 힘들지?!
목어검으로 계속 의념을 쓰며 날아가면 이십 리 정도는 너끈할 줄 알았는데 뭐가 이렇게 힘든 거냐! 내가 지쳐서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내 발밑에 있던 수요가 말했다.
[백웅이여. 이제 한계인가?]
“응…. 내공을 의념대신 쓰면 될 것 같긴 한데.”
[그럼 이번 실험에 의미가 없지. 나머지 거리는 내 힘을 써서 날아가 보겠다.]
“알았어.”
휘이잉
[으음. 이제 한계군!]
그렇게 수요의 힘으로 십 리 정도를 더 날아간 후 나와 수요는 함께 땅으로 착지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땅에 엎드려서 헐떡거리고 있자 수요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힘을 다 쥐어짜도 오십 리 정도가 한계겠군. 그대의 내공을 의념으로 바꾸어도 일백 리는 넘길 수 없을 터. 이걸로 실험이 검증되었나?]
“허억, 허억….”
[솔직히 굳이 이런 바보짓을 하면서 시험해볼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만….]
“아니…. 성과는 있어.”
[무엇인가?]
나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일어나서 씨익 웃었다.
“내가 만일 심어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강해질 거 아냐. 그걸 확인하려고 한 거다.”
[……!! 그렇군. 이해했다. 내공이 파천황의 경지에 오른 백웅 그대가 아무리 어검술에 힘을 쏟아도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어검과의 효율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대 본인이 심어검의 경지에 오른다면 더할 나위없이 강해진다는 소리구나.]
“…….”
나는 수요를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는가?]
“아니, 너무 쉽게 내 말을 알아들어서…. 넌 되게 똑똑하구나.”
[칭찬 고맙다.]
그렇다.
내가 심어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왠지 엄청난 효율의 향상이 있을 것 같다!
이리저리 부딪히다가 뜻밖의 향상점을 발견한 것 같았기에 나는 마음속이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직까지도 심검활인에 대해서는 단서가 없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경지를 검증하면서 나아갈 길을 찾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는 곧장 비등을 써서 여동빈에게로 갔다.
파앗
여동빈은 여산에서 일출을 보고 있다가 힐끔 나를 뒤돌아보았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여동빈! 심어검이 심검활인의 단서라 생각하게 되었소.”
“…….”
“목어검과 심어검이 어떻게 다른 건지, 그리고 어검비행술을 심어검으로 쓰는 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왔소!”
“…….”
여동빈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투명한 눈으로 아무 말 없이 한동안 나를 주시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대는 정말로 열심히 길을 돌아가는구나…. 어찌 선검술을 수련하며 심검활인의 과제를 줬는데 그런 결론이….”
“…….”
“허나 그런 노력 또한 무신(武神)에 이를 한 걸음일지도 모르지.”
나는 당황했다.
“음?! 내가 또 잘못 짚은 것이오?”
초무린이 말했을 때는 그저 비웃음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여동빈 본인에게 들으니 조금 당황스럽다.
“아니. 직선이 아닐 뿐 그 또한 길일 것이다. 내게 그 길이 길이 아니라 말할 권리는 없다.”
그렇게 대꾸한 여동빈이 갑자기 자신의 검을 들어서는 절벽 너머로 던져버렸다.
휘이이이 -
자신의 무기를 버려버린 여동빈이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대가 그토록 원하는 심어검으로 상대해 줄 테니 전력으로 덤벼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