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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아수라가 어째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나는 크게 당황했지만 이 곳이 전뇌세계 내부라는 걸 상기했다. 전뇌자를 살펴보려다가 전뇌세계로 강제로 빨려들어왔었고, 강인공지능 메피스토펠레스와 싸우다가 느닷없이 이 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뇌자에 의해 500년치의 기억을 전송받은 후이니 지금 이 곳은 현실세계가 아니라 아직도 전뇌세계이리라.
‘이 곳에서 무공은 쓸 수 없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극한의 집중으로 피해를 주긴 했지만 그건 기적적인 우연이었다. 사실상 이 세계에서 무림인은 무능력자나 다름없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아수라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내가 아수라를 노려보자 아수라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나는 너를 처음 본다, 백웅. 하지만 너는 지금껏 나를 여러 번 만나왔겠지.”
“…….”
“그렇다 해도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건 아마 처음이겠지.”
“아수라.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냐?”
내 질문에 아수라는 대답하지 않고 옆에 있던 전뇌자에게 말했다.
“편하게 얘기하고 싶군. 저 녀석을 풀어줘.”
“알았어.”
파앗
그 순간 전뇌자가 힘을 썼고 나는 머리에 쓰고 있던 전뇌기와 의자의 속박장치가 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급히 일어나서 검을 들고 전투자세를 잡자 아수라가 나를 멀뚱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학습능력이 없나? 여기서 무공을 못 쓴다는 것 정도는 알 텐데.”
저 말이 맞다. 나는 검을 들고 무공자세를 잡고 있지만, 이건 무의미하다. 기도 의념도 쓸 수 없는 전뇌세계에서 내가 싸울 방법은 없다. 메피스토펠레스와 싸울 때 그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武)를 몸에서 놓는 건 무인이 아니잖아.”
“…호오.”
아수라는 세심하게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백웅. 짐작하고 있겠지만 나는 네가 전생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백련교주가 내게 알려줬지.”
뭐라고?!
나는 문득 뭔가를 알아챘다.
‘서, 설마….’
그러고보니 500년의 과거회상에서 어째서 아수라의 1인칭 시점이 등장했던 것일까?
아수라는 근본적으로 내 전생동료가 아니기 때문에 전뇌자의 기록에 아수라의 시점은 등장할 수가 없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아수라가 크리슈나와 대화하는 장면, 그리고 아수라가 백련교주와 대화하는 장면이 등장했었다.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네 녀석이 전뇌자에 너 자신의 기억을 입력한 거냐?!”
아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다. 그래서 네가 본 500년 과거회상 중에는 내 기억도 섞여 있지. 드문드문 스쳐지나가긴 했지만 내가 인간의 몸으로 살아왔던 백수십년의 기억도 흐르듯 섞여있을 것이다.”
그 말대로였다. 아수라가 인간형태로 사막이나 밀림을 방황하던 기억이 아주 미세하게 밑바닥에서 떠올랐다.
근데 어째서?!
나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아수라에게 물었다.
“무슨 속셈이냐! 아니, 네 녀석은 지금 전뇌자와 손을 잡은 건가?”
“보다시피. 서로 필요에 의해 손을 잡고 있지.”
“대체 무슨….”
아수라는 가죽의자에 풀썩 하고 등을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건너편의 가죽의자에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너무 허둥대지 마라. 이 전뇌세계에서 말할 시간은 충분하다.”
“…너랑 그렇게 오래 이야기하고 싶지 않거든.”
내가 아수라를 노려보자 아수라는 나를 마주 응시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백웅. 이번 생에서 네 목적이 뭐냐?”
“뭐?”
“그걸 말해준다면 나 또한 네게 모든 걸 이야기해주겠다. 내가 듣고 싶은 건 그거니까.”
“…….”
정말 이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힐끔 전뇌자를 쳐다보았지만 전뇌자는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이 나와 아수라를 관찰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이 왠지 중요한 선택의 시점이란 걸 직감적으로 느꼈고, 이 질문에는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흠…. 이번 생의 목적이라….’
언제나 최종목표는 만신의 파멸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목표가 너무 높고 어려워서 각각의 생마다 단서를 찾고 신을 쓰러뜨릴 방법을 연마하곤 했다. 그리고 이번 생에는 초기에는 황제자리를 얻어서 대웅제국을 설립하고, 그 제국의 힘을 이용해서 전세계에 있을 법문조각을 찾는 게 목표였던 것 같다.
다만 지금에 와서 그 목적은 다소 애매해진 점이 있다. 어떻게든 사공린이 법문조각을 하나 더 얻긴 했지만 종말까지는 17년밖에 남지 않았고, 심지어 동료들은 거의 대부분이 죽어버린 상황이다. 이제 와서 나머지 법문조각을 찾기에는 시일이 촉박할 뿐만 아니라 종말에 대응할 방법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500년 동안 내 동료들이 나를 위해서 준비한 여러가지 안배가 있어. 그 안배를 최대한 수습하는 게 우선 내 목표야.”
“구궁파천뢰나 칠요의 수습, 그리고 정령각성 같은 거군. 맞나?”
역시 아수라 녀석은 전뇌자와 손을 잡았기에 나머지 기억을 모두 보았을 확률이 크다. 그렇다는 건 흑요석으로 내게서 기억전송을 받은 동료들과 정보량에서 다를 바가 없었고, 도리어 더 많이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 뭐 잘못됐냐?”
“실망스럽군….”
“뭐?”
내가 반문하자 아수라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째서 이번 생에 전생의 목표인 만신의 파멸을 끝내버리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거지? 전생자여.”
“……?!”
“이번 생의 세계종말은 그냥 지켜보겠다 이 말인가.”
이 놈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꾸했다.
“네녀석한테 그런 소릴 들을 이유가 없다. 나도 당연히 그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내 힘에는 한계가 있어. 그래서 안배를 최대한 수습하고 종말의 때에 맞서 싸울 수 있다면 맞서싸울 거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런 건가?”
“…그래.”
“흐음…. 대충 예상했던 대답이긴 하군.”
그러더니 아수라가 말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이번 생에 결말을 보려면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하지. 너는 그 방법은 생각하지 않은 듯 하군.”
“뭐? 그게 뭔데?”
“[계시].”
“……!!”
“수많은 위대한 존재들이 노리는 그 기회…. 전생자인 너라면 아주 쉽게 잡아챌 수 있을 거라는 기분이 드는군. 아마 네 책사들도 암묵적으로 그걸 바라고 있겠지.”
그럴지도 모른다.
[종말]에 직접적으로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와 본 것은 지금까지의 내 전생 중에서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그리고 만일 종말 이후에 다가올 [계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이득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만일에 직접 그 [계시]에 참여해서 뭔가 소원을 빌 기회가 생긴다면?
내가 침묵하자 아수라가 말을 이었다.
“내 요구를 들어줬으니 나도 모든 걸 이야기해 주지. 내가 어째서 여기에 있고, 전뇌자와 손을 잡았는지를.”
“말해 줘.”
아수라가 몸을 앞으로 숙이고는 깍지를 꼈다.
“기억 속에서 보았겠지만, 나는 요괴대전 이후부터 마왕의 자존심을 접고 너희 일행에 합류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독고성에 대한 부채감(負債感) 때문이기도 했고 너희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인간의 힘만으로 어디까지 이뤄낼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 백수십년 동안 무공수련에만 몰두해 왔지.”
“흠.”
“그러던 중 나는 뭔가를 깨달았다. 그건 바로 [끈]같은 게 이 세상에 가득 있다는…. 그래, 기시감(旣視感)이었어.”
“끈이라고?”
“그래. 백련교주의 폭주공간을 뚫을 때의 그 순간 끈을 명확히 인식했지만, 그 전부터 그걸 인지하고 내 뜻대로 다루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건 내 의지대로 인식하거나 다룰 수 없었고 극한의 집중상태에 아주 가끔 느껴지는 거였다.”
“…….”
아수라가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절대 아니다. 도리어 한참 딴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왜인지 그의 말에 집중되는 걸 느꼈다. 그것은 아수라가 하는 말이 어쩐지 과거에 진소청이 보여줬던 궁극의 절기에 대한 설명과 유사하기 때문이었다. 굉장히 높은 차원의 무론(武論)을 듣는 기분이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반문했다.
“기시감이라고 했지. 그건 이미 느껴본 적이 있다는 뜻인데, 표현을 잘못 한 거 아냐?”
“아니. 뭐라고 해야 할까. 과거의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이미 나는 저 끈을 알고 있다고 하는 기분이었지. 마치 잃어버린 기억을 대하는 듯한 기분…. 나중에 끈과 접해보면 무슨 말인지 알 거다.”
“……?”
“아무튼, 나는 끈을 다루려고 수련을 반복하다가 적멸무극의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겨서 대웅제국과 접촉하려고 시도하다가 마침 나치제국과 전쟁이 일어나서 잘됐다 싶어서 참전했지. 그리고 싸우던 중에 보던 바와 같이 백련교주의 마지막 순간과 접촉했었다.”
“그래. 거기까진 알겠는데…. 왜 백련교주가 너랑 이야기했던 부분은 회상에 나오지 않았던 거냐? 네 기억이라면 그것도 들어있어야 하잖아.”
아수라가 무감정하게 대꾸했다.
“편집했다.”
“엉?”
“그걸 네 동료들이 알아서는 안되었지. 그래서 나중에 네가 귀환하면 따로 알려주려고 일부러 편집해뒀던 거다.”
“…….”
“방금 전 네가 보았던 나의 기억은 다른 전생동료들은 전혀 몰라. 네가 방금 봤던 500년치의 기억은 너만 볼 수 있는 특별판이라는 거다.”
나는 아수라의 말에 황당해졌다. 그리고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어서 외쳤다.
“뭔 개소리야?! 내 동료들이 왜 알면 안돼?! 네 녀석, 결국 우리를 이용해먹으려고 수 쓰는 거 아니냐?”
“그런 게 아니다. 이건 내 독자적인 판단이 아냐. 백련교주의 부탁이었거든.”
“뭐라고….”
“일단 헷갈려하니까 확실하게 몇 가지 사실을 말해두지. 이것부터 주지하고 내 말을 들어라.”
아수라는 진중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첫째. 넌 지금 동료들 중 그 누구도 믿으면 안 된다. 둘째. 예언의 암시가 가리키는 건 뜻밖의 상황일지도 모른다. 셋째. 백련교주는 천마 사공린을 완전히 믿지 말라고 네게 전하라고 했다.”
“…….”
“사공린한테 여기서 얻은 정보를 함부로 말해선 안 돼. 이해했나?”
나는 아수라의 말에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첫 번째부터 틀어졌군. 난 너를 믿을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데.”
아수라는 곤란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겠군. 이거 참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건 힘든 일이야…. 수천 년 동안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니.”
“개소리하지 말란 거다. 백련교주가 네놈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도 모르고 네가 어떤 식으로 기억을 조작해서 나를 조종하려는지도 몰라. 그런 네 녀석의 말을 믿느니 차라리 내 동료들을 믿겠어.”
“전생동료에게 배신당해서 죽는다 해도 말이냐?”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죽는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나는 전생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신뢰관계를 일일이 의심하는 게 더 손해야.”
그런 걸 일일이 걱정했다면 애초에 흑요석으로 기억을 전송할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크크…. 역시 전생자란 건 평범한 인간과는 많이 다르군.”
껄껄 웃던 아수라가 이윽고 말했다.
“좋아. 굳이 의심암귀를 심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니 이건 그냥 넘어가지. 귀찮게 따지기도 싫어. 본론으로 넘어가서, 원영신이 폭주했을 때 어째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설명해 주마. 백련교주에게 들었던 그대로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봐.”
“원영신이란 [옥좌]와의 계약이다. 인간인 독고운천이 중개인인 [옛 지배자]를 통해 [옥좌]에 있는 마력을 무한정 퍼올 수 있는 계약이지. 여기까진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알고 있지.”
“그런데 이것만이라면 원영신이 천령단과 다를 바가 없지. 천령단도 어차피 무한의 내공을 쓸 수 있는 건 같지 않은가? 진짜 원영신의 비밀은 바로 그 [제약]에 있었다.”
이어진 아수라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원영신과 계약한 자는 제의를 거쳐 스스로를 우주의 무간지옥에 인신공양한 제사장과 다름이 없지. 그렇기에 죽은 후 [옥좌]의 파수병이 된다. 그리고 파수병이 되기 전까지의 생전에 원영신을 지닌 자는 속성이 [혼연(渾然)]으로 변화하게 되지. 혼연의 속성을 지닌 존재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지만 결국…. 옥좌에 귀속됨으로써 종말 후에도 평안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뭐? 평안을 얻지 못한다니 무슨 소리야.”
“그 말 그대로다. 천령단을 지닌 존재들은 [종말]으로 세계가 붕괴할 때 완전한 소멸으로 평안을 얻게 되지만 원영신은 그렇지 못해. 거대한 힘을 끌어 쓴 대신에 종말조차 미치지 못하는 위대한 옥좌의 곁에서 영겁(永劫)토록 고통을 받는다.”
“……!!”
“백련교주가 지속적으로 들었던 속삭임은 [옛 지배자] 비류의 것이 아니야. [옥좌] 그 자체가 의지를 지니고 그에게 [부름]을 날렸던 것이지. 그리고 원영신이 폭주하면서 일시적으로 그 공간은 [옥좌]와 그 옥좌를 감싸는 혼연의 덩어리가 소환되었던 것이다.”
“미, 미친….”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원영신의 대가가 그리도 크단 말인가?
천령단의 소유자는 그나마 종말에 소멸로 구원받을 수 있으나 원영신을 가지게 되면 그게 불가능해진다. 영원히 옥좌의 파수병으로 떠도는 게 어떤 고통인지 알 수가 없으나, 적어도 전생자인 나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절망적인 사실인지 알고 있었다.
스스스!
순간, 내 머릿속에 뒤늦게 원영신의 정보가 문자로 스쳐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한백령이 전뇌자에 입력한 것일 것이고, 내용은 아수라가 말한 것과 다른 점이 없었다. 아수라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아수라의 말은 이어졌다.
“옥좌의 혼연이 소환된 상태에서 백련교주는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혼연의 파수병으로 각성해서 세계를 파괴하려고 했었다. 그가 폭주하게 놔뒀다면 적어도 이 행성의 절반이 사라졌을 테니 나는 그가 힘을 발휘하기 전에 명줄을 끊어줬지.”
“…….”
“원영신 폭주의 진짜 문제점은 그렇게 폭주하는 걸 막을 방법도 없고 무조건 종말 전에는 폭주하게끔 되어있다는 점이다. 백련교주가 초인적인 의지력을 갖고있기에 망정이지 보통 인간이라면 원영신을 1년만 갖고 있어도 옥좌의 부름에 미쳐서 폭주했겠지.”
“그런가….”
나는 그제서야 원영신의 비밀을 모두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원영신이 폭주하게 되면 [옥좌]가 소환된다. 그리고 그 원영신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존재치 않으며, 아수라처럼 옥좌의 내부로 절대고수가 뚫고 들어가서 혼연의 파수병이 각성하기 전에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처럼 우연하게 모든 폭주 파해조건을 맞추는 게 과연 가능할 것인가?
백련교주 이외의 존재가 원영신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재앙이 찾아오는 셈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수라에게 말했다.
“아수라. 백련교주는 어째서 지금까지 내게 원영신에 대한 모든 걸 밝히지 않았던 거지?”
“그것까진 내가 모르지…만. 굳이 추측을 해 보자면 네게서 버림받는 게 두려웠을지도 모르지.”
“버림받는다고?”
“너는 지금도 백련교주를 영입하겠다는 마음에 변함이 없나? 그가 만일에 한 순간이라도 의지를 조절하는 데 실패해서 [부름]에 폭주하게 되면 그 즉시 혼연의 옥좌가 이 세상에 소환되어서 세계가 멸망할 위기에 처한다. 나라고 하더라도 굳이 전생자에게 그런 사실을 밝히고싶진 않겠지.”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는 백련교주를 동료라고 생각한다! 내 신뢰는 달라지지 않아!”
“세계가 멸망할 위험이 있어도 말이냐?”
“어쩌면 내가 더 많이 멸망시켰을 텐데 무슨 상관이냐. 나는 고작 그런 이유로 동료를 버리진 않아. 그 정도 위험 정도는 감수한다!”
“…참 이상한 데서 올곧은 녀석이군.”
뭔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던 아수라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여기서 한번쯤 확인절차를 거쳐 볼까.”
우웅
그 순간 공간 전체가 변했다. 나와 아수라가 큰 연무장에 마주 서 있었고 머나먼 관중석에 전뇌자가 너구리인형을 안은 채 앉아있었다. 그리고 나와 아수라에게는 각각 검이 한 자루 쥐어져 있었다.
아수라가 검집을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아직 네게 말해줄 정보가 훨씬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나머지를 순순히 말해주기에는 너라는 인간을 잘 모르겠으니,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지랄같은 이야기만 하더니만 이런 건 알기가 쉽게 말해주는군.”
스릉
나는 아수라와 거의 동시에 검을 뽑았다. 아수라가 훗하고 웃었다.
“현실과 같지는 않겠지만 무공과 의념, 기술은 거의 똑같이 구현될 거다. 준비는 됐나?”
“물론!”
현 세계최강의 고수일 아수라.
그런 아수라와 무공을 겨룬다는 건 꽤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복잡한 과거사와 달리 알기 쉬워서 좋았다.
“어디 실력 좀 보자, 백웅!”
까앙!!
다음 순간 나와 아수라의 검이 허공에서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