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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검은 태양]의 말에 사공린은 뜻밖의 제안이며 동시에 함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 자가 갑자기 [옛 대륙] 이야기를 꺼내는 저의를 알 수 없군.’
물론 그녀는 전생자 백웅의 동료이므로 [옛 대륙]이 무엇인지 대충은 미뤄 짐작하고 있었다.
[옛 대륙]!
그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것은 십이율주 하은천이었으며 그는 [옛 대륙]으로 가는 안전한 통로를 알고 있다고 과거 백웅에게 거래를 제안한 적 있었다. 또한 [옛 대륙]은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전에 존재했던 고대의 대륙이라고 마도사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나 그 실존여부는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십이율주의 부하인 운사는 봉인된 [옛 대륙]으로 백웅을 데려다 주었으며 내부에서 십이율주를 만날 수 있게 했다. 사공린은 백웅의 기억을 되살리며 생각했다.
‘[옛 대륙]은 십이율주 하은천이 모종의 방법으로 테라포밍을 시도해서 차원이 겹쳐져 있는 상태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옛 대륙]은 현재 십이율주의 본거지나 마찬가지인 거군. [검은 태양]의 지금 제안은 다시 말하자면….’
십이율주의 본진을 치자는 이야기와 같다!
전생자의 동료로서는 더할나위없이 황금같은 기회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제안에 선뜻 응하게 된다면, 상대에게 [옛 대륙]에 대하여 어디까지 알고있는지 들킬 우려가 있다. 그래서 사공린은 모르겠다는 듯 [검은 태양]에게 대꾸했다.
“잘 모르겠군요. 그 제안을 왜 나에게 하러 온 거죠?”
[그대라면 [옛 대륙]을 쳐서 배후의 본거지를 없앨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옛 대륙]은 렙틸리언과 큰 관계가 있다.]
“렙틸리언? 자세한 얘기를 해 보세요.”
[렙틸리언과 조지워싱턴의 배후세력이 갈수록 우리 제국의 인신공양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놈들의 뒤를 캤는데, [옛 대륙]이란 것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그 곳에 렙틸리언의 수장이 드나든다.]
[검은 태양]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위대한 천상의 마여. 이 세계의 패주(覇主)가 되고싶지 않은가? 이미 나치제국을 쓰러뜨린 그대가 미합중국마저 정벌한다면 세계의 일통은 코앞이다. 그대가 패왕이 되겠다면 나 [검은 태양]은 그대의 부하가 되리라!]
“그런가요….”
사공린은 자신에게 복종하겠다는 [검은 태양]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보아하니 3대세력이 뭉쳐서 만든 미합중국의 연맹에 균열이 간 게 틀림없었고, [검은 태양]이 먼저 외부세력을 끌어들여서 반역을 일으키려는 듯 했다. 그리고 반역의사를 밝혀왔다면 [검은 태양]의 정보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으나, 도리어 미합중국 측에서 저 자를 내세워서 사공린을 함정에 끌어들이려는 수작일 수도 있었다.
‘그럭저럭 말의 앞뒤는 맞는다는 게 고민하게 만드는군….’
사공린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검은 태양]에게 말했다.
“당신의 말을 바로 믿을 순 없습니다. 증거를 가져오세요.”
[어떤 증거를 말인가?]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야겠죠. 세 치 혀로 만들어낸 환상이 아닌 진실이라고 내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후후후…. 그런거라면 당연히 가지고 왔다. 이걸 보라.]
스윽
[검은 태양]이 무언가 반짝이는 검은 돌을 내놓았다. 사공린은 그 돌을 보자 눈썹을 꿈틀거렸다.
“…흑요석?”
[호오, 보석에 조예가 있는가. 바로 알아보는군.]
“흑요석을 내게 진상하겠다는 건가요?”
[검은 태양]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이 흑요석이란 바로 우리 위대한 기술의 정수(精髓). 나는 위대한 종족에게서 기억전송기술을 전승받았으며, 이 흑요석에 보고들은 기억을 담아서 전할 수가 있다.]
“……!!”
[여기에 우리가 [옛 대륙]과 다른 세력에 대해 정탐한 내용이 들어 있다. 기억을 전송받아서 파악해보라.]
정말일까?
사공린은 반신반의하면서 흑요석을 손에 들었고, 이윽고 흑요석에서 빛이 나면서 그녀의 머릿속에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후와악!!
누군가의 1인칭 시점. 그리고 그 누군가는 기이한 각도에서 몰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정탐하고 있는 중이었다. 조지 워싱턴을 한동안 감시하던 그 시선은 이윽고 조지 워싱턴의 방에서 걸어나가는 어떤 사내를 몰래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사내는 바로 이전에 본 적 있었던 렙틸리언의 수장으로써, 인간의 가죽은 꽤 준수하게 생긴 백인 남성이라는 점이 특징이었다. 렙틸리언 수장의 걸음은 약간 이어지다가 인적없는 장소에 도착하자 갑자기 품속에서 이상한 기계장치를 꺼냈다. 그리고는 기계장치의 단추를 꾹 누르며 말했다.
“알파(Alpha), [옛 대륙]으로 간다. 게이트웨이(Gateway) 설치.”
[알겠습니다.]
기계장치에서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우웅!
그러자 그의 눈앞에 거대한 아공간의 문이 만들어졌다. 수장은 성큼 그 안으로 들어갔고, 시선 또한 사내를 따라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수장이 공간을 넘어서 나타난 장소는 웬 거대한 절벽이 보이는 장소였으며, 해저(海底)에 만들어진 유리관같은 통로 내에서 사내는 뚜벅뚜벅 걸어서 앞으로 갔다.
[혼돈감염 제어장치 1단계 발동. 대상자의 신체를 검색합니다.]
위잉 -
퍼벅!!
바로 그 순간, 빛이 사내의 몸 여기저기를 훑을 때 갑자기 시야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이윽고 시야의 주인이 풀썩 하고 땅에 떨어지자 사내가 불쾌하다는 듯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성가시군. 사역마를 붙였던 건가? 알파, 저거 주워서 분석해라.”
[알겠습니다.]
“괜한 걸 붙여왔다고 화를 내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뚜벅 뚜벅
뭔가 걱정하던 렙틸리언 수장의 모습이 통로 너머로 사라져갔다.
위잉 치킹 치킹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톱과 칼날의 기계장치가 솟아올라서 천천히 ‘사역마’의 전신을 난도질하는 것으로 시야가 점차 사라졌다.
기억이 끝나자, 사공린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렙틸리언이 어째서 [옛 대륙]에 출입하는 거지? 아무것도 모르겠군….’
사공린이 침묵하고 있을 때 [검은 태양]이 말했다.
[렙틸리언의 과학기술력은 엄청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대들의 제국은 과학력으로 도태될 것이다. 치려면 최대한 빨리 쳐서 [옛 대륙]과 함께 없애는 게 나으리라.]
사공린은 그 말을 무시하고 대꾸했다.
“이 흑요석의 술법을 가르쳐줄 수 있나요? 그렇다면 이번 제안을 고려해 보죠.”
[…….]
“왜 대답을 하지 않으시는건지.”
[이 술법은 나만 전승받은 것이며 타인에게 가르쳐줄 수가 없다! 인과율의 혼란을 막기 위해 술법에 걸려있는 제한이라고 위대한 선지자께서 말씀하셨지.]
“흐음.”
아무래도 [검은 태양]이 익히고 있는 흑요석의 술법은 백웅의 것과 동일한 술법이 틀림없어 보였다. 백웅의 경우도 그가 술법을 익혔으나 흑요석으로 기억전송을 했을 때 그 술법내용을 동료들이 알아봤자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지. 포기할까….’
하지만 사공린은 여기서 좀 더 파고드는 게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을 열었다.
“왜 하필 흑요석인 거죠? 흑요석이라는 보석에 뭔가 중대한 의미가 있는 건가요?”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본 거였으나 [검은 태양]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렇다. 흑요석이란 바로 우리가 모시는 신(神)의 상징이다!]
“……?”
의아한 표정으로 사공린이 [검은 태양]을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우연히 흑요석이 기억전송에 효율이 좋은 보석이기도 했으나 흑요석은 우리 신께서 가장 사랑하시고 축복을 내리신 보석이다. 그렇기에 흑요석을 써서 우리의 모든 주술과 의식을 치르며 무기를 만들게 되어 있다. 또한 성좌의 힘을 담은 흑요석을 쓰면 월식(月蝕)에 가장 강대한 축복을 받을 수 있다.]
“…….”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정보는 귀중할 것 같다. 사공린은 [검은 태양]의 말을 잘 기억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당신 말대로 해봐도 될 것 같군요. [옛 대륙]으로 안내하세요.”
[좋다…. 임시동맹이라고 봐도 되겠는가?]
“임시동맹을 맺죠. [옛 대륙]을 파괴할 때까지.”
[그럼 제국의 정예를 함께 데려가지는 않는가?]
“저 혼자서 충분합니다.”
[과연 천마인가….]
파앗!
사공린은 [검은 태양]이 열어둔 공간이동 마법진을 통해서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 장소는 바로 사역마가 직전까지 정찰했던 의문의 해저통로였다. 해저통로에 도착한 [검은 태양]이 흉소를 흘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크크크….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겠으나 나 [검은 태양]과 천마가 함께 온 이상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위잉
[혼돈감염 제어장치 1단계 발동. 대상자의 신체를 검색합니다.]
그리고 전신을 감지하는 듯한 광선이 [검은 태양]의 몸을 훑은 순간, [검은 태양]의 몸에 번쩍 하며 강렬한 빛이 쬐였다. 아마 사역마가 당한 것은 이 제어장치의 방어시스템때문이리라. 하지만 [검은 태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버텨내고는 도리어 혼돈의 마력을 뿜어내어서 공간 전체를 혼돈으로 물들였다.
쿠구구구…!!
콰광!!
이윽고 해저통로의 일각이 부숴졌다. 바닷물이 안으로 들어오려 했으나 [검은 태양]이 법칙을 왜곡하자 바깥에서 물이 멈춰서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검은 태양]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자 사공린이 생각했다.
‘과연 [옛 지배자]의 사도로군. 저 자 또한 웬만한 마왕급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사방에서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위잉! 위잉! 위잉!
[혼돈감염 제어장치 5단계 발동. 크리티컬 레드 시그널(Critical Red Signal). 이퀄라이저(Equalizer), 침입자를 배제하라.]
파파팟
그 순간 사방에서 전신이 백색으로 만들어진 인간형의 기계가 팔짱을 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기계인형의 순백색 광택과 함께 안광이 번뜩 하고 빛났으며 기계인형의 한쪽 손에는 창(槍)이 들려 있었다. 총 10기의 순백색 기계인형이 나타나자 [검은 태양]이 크큭 웃으며 말했다.
[크흐흐…. 천마여. 이 정도는 그대가 나설 것도 없소. 그래봤자 기계일 뿐이니….]
“저게 이퀄라이저라고 하는 거군요. 어디 한 번 싸워보세요.”
[크하하하!!]
쿠르르르!
[검은 태양]이 인간의 형태를 버리고 끔찍한 이계의 괴물으로 변신했다. 그 모습은 무려 삼 장에 이르는 기괴한 이계의 마물이었으며 몸에 수십 개의 눈이 달려있었고 소용돌이 치는 듯한 촉수가 휘적거리며 눈 앞에 있는 이퀄라이저 10기를 빨아들이려 했다.
후오오오!!
가공할 흡인력으로 [검은 태양]이 이퀄라이저를 흡수하려 할 때였다. 그 순간 선두에 있던 순백색의 이퀄라이저가 팔짱을 풀며 창을 들어서 도리어 도약해서 빠르게 [검은 태양]에게 날아들었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태양]의 몸통을 꿰뚫었다.
퍼벅
[검은 태양] 또한 사도이며 괴물이었기에 그 정도 공격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재차 촉수를 뿜어서 이퀄라이저들을 감아버리려 했으나 이퀄라이저들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창으로 촉수를 베어대었다.
슈카카칵! 슈카칵!
그리고 이퀄라이저들이 [검은 태양]과 싸우는 걸 지켜보던 사공린은 눈에 이채를 띄었다.
‘강기(罡氣)?!’
틀림없이 이퀄라이저의 창 끝에 맺혀있는 것은 창강(槍罡)이었다. 또한 이퀄라이저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보니, 기계적이긴 하지만 분명히 체계화된 무공이었다. 물론 생전 처음보는 무공이었으나 명문의 절기로 보였다.
치지징!!
[혼돈분광장치 발동. 이퀄라이저를 지원한다.]
동시에 사방에서 현란한 빛의 광선이 벽에서 뿜어져나와서 [검은 태양]을 타격했다. 광선에 맞은 [검은 태양]은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으나 따끔거리는 듯 몸을 움찔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혼돈감염 제어장치 7단계 발동. 크리티컬 레드 시그널(Critical Red Signal). 이퀄라이저, 카오스 레커(Chaos wrecker) 발동을 승인한다.]
치리링!!
갑자기 이퀄라이저들이 일제히 등 뒤에서 강철의 날개를 뻗어내어 펼쳤다. 그리고 날개를 펼쳐낸 순간 고주파 진동이 공간에 가득찼고, 그 진동을 맞은 [검은 태양]이 갑자기 비틀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오오오오오...!! 크하아아아아!!]
쿠콰콰쾅!!
[검은 태양]은 괴성을 지르면서 촉수를 갑작스럽게 수백 개나 뻗어내며 혼돈의 구름을 소환했다. 그 공격이 너무 광범위했기 때문인지 이퀄라이저들은 사도의 공격에 모조리 부숴져나갔다. 전세를 역전한 것처럼 보였으나, 이윽고 [검은 태양]은 인간의 형상으로 되돌아오며 신음성을 내었다.
[크흐으으... 방금 전 그것은 무엇인가…. 내부에 고통이 가시지 않는구나….]
“상당한 타격을 입었군요.”
[천마여. 이제 장해물은 다 치웠으니 안으로 들어가면 될 것이오!]
저벅
그들은 이퀄라이저의 방해를 뚫고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서 거대한 청은색 격벽이 가로막고 있는 구역에 도착하자, 뜻밖의 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전의 인간크기의 이퀄라이저와 달리 몸 크기가 이 장에 이르는 거대 이퀄라이저!
천마인 사공린은 순식간에 저 존재가 무척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
[적성혼돈존재 확인. 위험레벨 최대. 결전병기의 모든 봉인을 풉니다.]
“저건….”
사공린은 눈 앞에 있는 존재를 보자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검은 태양]에게 말했다.
“[검은 태양]. 저걸 해치워 보세요.”
[천마여, 자신이 없는가? 저게 무엇이길래 그러는가?]
“만만치 않은 존재일 테니 방심하지 마시길.”
[흐흐흐…. 천마가 겁을 먹었다는 건가? 고작해야 저런 기계 따위에게….]
후와악 -
[검은 태양]이 광오한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본체로 변해서 눈앞의 격벽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이퀄라이저를 공격했다.
그리고 거대 이퀄라이저의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빛나더니 기이한 기계음을 내었다.
[플라즈마 블래스터(Plasma Blaster) 극대화(maximization).]
쿠콰쾅!!
거대 이퀄라이저 눈에서 뻗어나온 붉은 빛의 광선이 일순간에 [검은 태양]의 본체를 가격했다. 그러자 [검은 태양]의 몸통 중앙에 직경 일 장이나 되는 거대한 구멍이 뚫렸고, [검은 태양]이 빠르게 초회복력으로 그걸 복구하려 할 때 거대 이퀄라이저가 기계음을 냈다.
[연사(Continuous firing).]
투쾅!
투쾅!
[크… 으아아아아악.]
거대 이퀄라이저가 연속으로 발사하는 수십 발의 붉은 광선, 플라즈마 블래스터에 [검은 태양]의 본체는 회복하는 것보다 찢어지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게다가 격벽이 갑자기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더니 촘촘하게 수십만 개의 포신(砲身)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포신이 수십만 개의 광선을 발사했다.
퓨퓨퓨퓽!!
[크아아악….]
쿠콰콰쾅
콰콰콰쾅!!
전신이 쉴 새 없이 광염(光炎)에 파괴당하던 [검은 태양]이 울부짖으며 외쳤다.
[어떻게… 어떻게 저 광선은 내 혼돈의 방어막을 이토록 쉽게 뚫는단 말인가!!]
그랬다.
[검은 태양]은 그냥 덩치만 커다란 괴물이 아니라 사도 특유의 마력으로 늘 방어막과 주술막을 걸어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물리공격은 아예 먹히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눈앞의 거대 이퀄라이저와 격벽 포신이 발사하는 광선은 모조리 [검은 태양]의 방어막을 관통하는 성질이 있었다! 하나하나의 광선이 주는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검은 태양]은 쉴 새 없이 생살을 바늘로 찔리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사공린은 생각했다.
‘내가 전력을 다하면 쓰러뜨릴 순 있겠지만 손해가 크다.’
아무리 눈앞의 방어 시스템이 강력해도 천마인 그녀보다 강할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천마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공린의 힘은 ‘혼돈’을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고, 상대 또한 혼돈 없이 혼돈을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서로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상성이 굉장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사공린은 이 자리에서 전력을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옛 대륙]은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어…. 백웅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사공린은 전장을 살피다가 문득 빈틈을 찾아내고는 자신의 힘을 시전했다.
영겁지무(永劫之舞)
스으윽
사공린이 천마의 힘을 쓰는 동시에 그녀의 몸이 녹아들듯이 사라졌다. 그녀의 등 뒤에서 [검은 태양]이 당혹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같이 안 싸우고 혼자서… 이런 치사한….]
그리고 거대 이퀄라이저가 [검은 태양]과 싸우고 있을 때 그녀는 어느 새 격벽 너머로 가 있었고, 격벽이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두껍고 엄청난 규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최소한 백여 장이나 투과했는데도 그녀는 격벽의 다음으로 갈 수 없었다. 이만한 규모의 격벽을 통짜로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인류의 기술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파앗
그녀가 격벽 너머에 도착한 것은 한참 후였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자신이 나타난 장소가 과거 백웅이 도착했었던 장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장소는 사방이 공허하게 비어있고 바닥에는 둥그렇고 창백한 접시가 떠 있는 곳이었는데, 사공린이 나타난 곳은 어두운 지하 속에 고대의 유적이 폐허가 되어있는 장소였다.
‘백웅이 갔던 [옛 대륙]은 첨단기술이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 곳은 초고대의 유적같으니…. 어찌된 일인가?’
저벅 저벅
사공린은 폐허를 걸어 다녔다. 그리고 한참을 걷던 중, 무언가를 깨달았다.
“여긴 아예 다른 장소야.”
그녀는 알아차린 것이다.
이곳은 바로 차원이 겹쳐진 장소!
아까의 그 장소에서 정해진 방법으로 정해진 방법으로 가지 않는다면 폐허가 된 고대의 초대륙을 돌아다닐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십이율주가 ‘덧씌웠다’라고 표현했던 건 바로 그런 의미일 것이리라.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차원을 다룰 수 있는 건 과학뿐만이 아니다. 도리어 천마인 그녀는 손쉽게 이 장소에서 [옛 대륙]의 본거지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확신했다.
그 때였다.
[한없이 위대한 존재여. 위대한 황금의 신수(神獸)여. 이 멸망한 아틀란티스에는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너는 누구냐?”
위이잉
잠시 후 그녀의 눈앞에 환영이 나타났다. 그 환영은 생전 처음보는 양식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분명한 인간이었다. 은빛의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지니고 있는 그 환영이 말했다.
[내 이름은 오레이칼코스. 아틀란티스를 통치하던 제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