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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사도 할치올레이푸라가 만들어낸 분할치환공간.
각각의 공간에 갇힌 대웅제국의 정예들은 순식간에 할치올레이푸라와 1대1로 맞서게 되었다. 원래 서문혜가 신력방어막으로 이런 식으로 초능력에 휘말리는 사태를 피하려 했으나 강대한 석화광선 때문에 그녀가 약간 부상을 입어버려서 사도의 작전에 말려든 것이다.
그리고 제갈부를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은 마주친 즉시 10여초에 걸친 격전을 벌였다.
쿠콰콰쾅!!
독고운천은 할치올레이푸라와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거대한 혼돈의 기운을 담은 권력이 사도의 명치를 때렸고, 할치올레이푸라는 그 공격을 고스란히 맞고는 비틀거렸다. 그러더니 독고운천의 손목을 붙잡으며 나직이 말했다.
[정녕 겁도 없는 놈이구나.]
[사도여! 그대에게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는가.]
[아니…. 네가 쓰는 힘의 근원…. 파멸의 흉액이 등 뒤까지 와 있다는 말이다.]
[…….]
[흉액이 네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사도의 말에서 느껴지는 건 오만함이 아니라 일말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었다. 독고운천은 뭔가 짚이는 게 있었기에 흠칫하고 말았다.
[너는 여기서 추방하겠다. 네게 휘말려서 피해를 보긴 싫구나.]
파앗!
다음 순간 독고운천은 분할공간에서 튕겨져나와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는 힐끔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이 근처에는 그가 방금 빠져나온 분할공간 말고도 다른 분할공간의 흔적처럼 보이는 십자 모양의 균열이 있었다. 아마 저 균열 안에서 다른 동료들이 한창 싸우고 있을 게 뻔했기에, 독고운천은 심천무량을 시전해서 균열을 타격했다.
우웅….
가벼운 파장만 울릴 뿐 균열은 단단히 닫혀서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독고운천은 그 모습을 보자 생각했다.
‘법칙에 따라 제약되기 때문에 힘으로는 열리지 않는 사도의 아공간. 빠져나오려면 내 경우처럼 시전자가 내보내주던가 아니면 시전자에게 큰 피해를 주어서 열리게 해야한다.’
과연 가능할까?
독고운천은 이 자리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나 내심 암울함을 느꼈다. 과연 사도와 1대1 전투에서 어찌 될 것인가! 하지만 방법이 없었기에 독고운천은 침묵한 채 팔짱을 꼈다.
그 때였다.
“…쿨룩. 쿨룩!!”
약간 떨어진 장소에서 제갈부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독고운천이 놀랐다.
[그대가 제일 먼저 빠져나왔다고?! 어떻게….]
균열에서 빠져나온 게 아니라면 독고운천보다 먼저 나왔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독고운천조차도 사도를 상대로 십여 초 동안 젖먹던 힘까지 다해 싸웠는데, 일행 중 비교적 전투력이 떨어지는 제갈부가 어떻게 빠져나왔다는 말인가?
제갈부는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 대답할 여유가 없다. 균열에 갇힌 동료들을 구출해야 하니 나를 도와라.”
[꺼낼 수 있는가?]
“‘힘’이 아니라 ‘법칙’을 조정하면….”
제갈부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양손을 균열으로 뻗었다. 그리고는 주문을 외웠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여. 윤회를 이루는 고리를 이 손에 잡았노라. 이에 형학(形學)의 추구로 불사(不死)를 되뇌일지니.”
쩌저저적….
제갈부의 양손이 옆으로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하자 균열이 찢어지며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균열 내부에서 천우진이 튀어나왔다. 천우진은 땅을 구르더니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휴가도 받기 전에 죽을 뻔 했군…!!”
천우진은 다행히도 부상은 없는 듯 했으나 안색이 새파래져 있었다. 아무리 그가 강력한 환술사라도 적의 아공간에 갇혀서 싸우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고, 방금 전까지 할치올레이푸라에게 공격당해서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긴 것이다. 만일 제갈부가 균열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이미 큰 부상이나 저주에 당했으리라.
“다친 데는, 쿨럭, 없나.”
“제갈부. 네가 바깥에서 균열을 열었나?”
“허억… 허억….”
크게 토혈과 기침을 반복하며 숨을 몰아쉬는 제갈부를 보던 천우진의 안색이 일변했다.
“너, 너 설마. 금기를.”
“그 설마다….”
“자아를 빼앗기거나 둘 다 같이 죽을 수도 있다.”
“…각오했다. 어찌됐든 날 도와라. 빨리 구출해야 한다.”
“그러지.”
위잉
두 명의 술사가 힘을 합쳐서 이번에는 서문혜를 구출했다. 서문혜는 그럭저럭 괜찮게 싸우고 있었던 모양인지 부상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한백령, 마지막으로 아수라를 구출하자, 모든 균열이 사라졌다.
파앗!
균열이 사라지고 나자 다시금 허공에 할치올레이푸라가 나타났다. 촉수줄기 위에 서 있던 그가 말했다.
[제법이군…. 너희를 필멸자 수준으로 생각해선 안되겠구나.]
“할치올레이푸라여! 그대의 초능력을 봉인하노라! 그 이름은 치환!”
뜬금없이 제갈부가 할치올레이푸라를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외치자, 할치올레이푸라는 그를 비웃었다.
[감히 너 따위가 무슨….]
제갈부의 술법이 대라신선급이라 해도 할치올레이푸라는 진짜 대라신선을 순식간에 잡아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다른 나치의 고위존재들보다 훨씬 더 높은 격에 존재하고 있으며 머나먼 성좌에서 이미 수십만 년째 살아오고 있는 괴물! 그런 자를 상대로 봉인언령을 외쳐봐야 절대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제갈부의 언령이 터져나오는 순간 그의 심장부위에서 빛이 번쩍하고 났다. 그리고는 잠시 후 할치올레이푸라가 경악했다.
[아… 아니!!]
그는 자신의 권능 중에서 치환능력이 완전히 봉인된 것을 알아차렸다! 먹칠이 된 것처럼 그는 생전 처음으로 봉인을 당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제갈부는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자리에 풀썩하고 쓰러졌다.
“커허헉… 크헉….”
제갈부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코피는 물론이고 귓구멍에서도 선혈이 마구 흐른다. 자신의 격을 뛰어넘는 봉인을 행한 대가였다. 고통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제갈부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쉬시지요.]
“…류진…. 미안하다…. 뒷 일은 부탁한다.”
[하하하!]
“…….”
제갈부는 이젠 정말로 한계란 걸 알아차렸다. 아무리 현자의 돌과 초상기인의 힘을 빌려썼어도 예전에 한계가 찾아왔었다. 그의 눈앞에 성큼 죽음이 다가온 걸 느끼자 두려움보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정말로 자신이 해 왔던 모든 행동이 최선이었을지를 생각했다.
‘전생능력이 있으면 좋겠군…. 다시 한 번 시작할 수 있다면.’
하지만 제갈부는 이내 망념을 접었다.
‘후후! 무의미해.’
다시 시작한다 해도 자신은 2회차의 행동조차 최선이었을지 스스로 의심하고 번민할 것이다. 그리고 끊이지 않는 절망의 수렁 속에서 이내 효율조차 따지지 못하게 되겠지. 제갈부는 자신이 전생자였다면 10회차도 되지 않아서 질려버렸으리라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제갈부는 그 유언을 끝으로 의식이 사라졌다.
중원지보 제갈부의 죽음이었다.
키잉 -
제갈부의 영혼이 죽음을 맞이한 순간, 그의 심장에서 빛이 났다. 또한 심장에 있던 현자의 돌에서 기묘한 녹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서 그의 몸을 뒤덮었고, 잠시 후 외형이 바뀌었다.
우웅
변한 모습은 바로 과거에 나타났던 백발의 초상기인! 다만 이목구비가 같을 뿐 머리카락은 흑발이었으며 초상기인 특유의 무심한 눈빛이 아니라 의지력이 강한 눈빛이었다. 갑작스러운 제갈부의 변화에 이목이 쏠리자, 그 존재가 씩 웃으며 독고운천에게 말했다.
“특화형 초상기인 제 1호 류진. 참전합니다.”
[…그렇군…. 네가. 그렇다는 건 제갈부는 죽었나?]
“저와 위치가 바뀌었지요. 물론 죽었다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만.”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거군.]
독고운천은 언뜻 부활의 여지가 있는 말과는 달리 제갈부를 부활시킬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 황제역할을 하던 시대에 특화형 초상기인과 그 원리에 대해서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류진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할치올레이푸라가 노성을 터뜨리며 공격을 했다.
[감히…!! 이 봉인을 풀어라!!]
번쩍
아까 일행을 덮쳤던 것과 같은 엄청난 위력의 석화광선이 전방위로 날아왔다. 일행들은 제각기 피하거나 막으려 했는데, 그 순간 류진이 씩하고 웃으며 중얼거렸다.
“시간회복(時間回復).”
스스스스슥!!
류진이 전방에 무형의 투망을 펼치는 듯 했다. 그리고 석화광선이 그 투망에 닿이자마자 도로 시전자에게로 되돌아갔고, 할치올레이푸라는 그 반격을 다시 재반격했으나 류진이 이번에는 허공에서 석화광선을 그대로 굳혀버리고 말았다.
파직!
일련의 공방을 옆에서 지켜보던 천우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초상기인 유신의 능력인가!”
지금 류진이 사용한 시간회복 능력은 과거 백웅 일행과 맞섰던 유신이 썼던 시간회복과 일치했다. 류진이 천우진에게 대꾸했다.
“초능력 수준이 높아지면 이 정도는 누구든 쓸 수 있지. 시간계통을 분화해서 맘대로 쓸 수 있는 게 초상기인일 뿐.”
류진은 허공에 손가락으로 선을 한 번 가로로 그었다.
지이잉
그리고 가로로 그인 선이 그대로 할치올레이푸라의 몸뚱이에 그이더니, 순식간에 빨아들이듯이 그의 몸을 압착하기 시작했다. 기묘한 초상능력 공격에 할치올레이푸라가 눈 없는 얼굴을 푸들거리며 떨더니 이윽고 손에서 빛의 줄기를 뿜어내어 류진을 공격했다. 순식간에 인과를 왜곡해서 할치올레이푸라의 줄기가 그의 몸에 침투하려 하자, 류진은 씩 웃으면서 바로 초상능력으로 대항했다.
초상능력(超上能力)
음존(陰存)의 공허(空虛)
투확 하는 소리와 함께 할치올레이푸라의 줄기가 류진의 몸뚱이를 관통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고, 실제로는 류진이 있던 공간 전체가 우주의 공허로 뒤바뀌어 있었고 공허 내부로 빨려들어간 빛의 줄기가 시전자인 할치올레이푸라를 끌어당겼다.
마치, 또 다른 이계의 법리(法理)가 사도를 잡아먹으려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 공허에서는 숨길 수 없는 빛의 탐욕이 느껴졌다.
[……!!]
할치올레이푸라가 급히 권능을 끊어버리자 순식간에 류진의 모습이 현상계에 도로 구현화되었다. 할치올레이푸라는 류진에게 말했다.
[인형이여, 너는 세피로트와 연결되어 있구나!]
“알면 조심하는 게 좋을걸. 아인소프오르에 끌려들어갈테니.”
할치올레이푸라가 성가시다는 듯 중얼거렸다.
[시한폭탄같은 날파리들이군….]
그가 볼 때 눈앞의 6인은 필멸자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수준에 도달한 강자들이었다. 그가 진다는 건 아니었으나 모두를 상대한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치환능력이 있다면 각각 고립시켜서 손쉽게 이길 수 있겠지만 제갈부라는 인간이 권능을 봉인해버리는 바람에 그 작전을 쓰지 못하게 된 할치올레이푸라는 내심 초조함을 느끼는 듯 했다.
다음 순간, 서문혜가 달려들어서 할치올레이푸라에게 일검을 날렸다. 그녀의 검이 할치올레이푸라의 목을 관통했지만 그 육신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더니 그대로 안개처럼 변해서 서문혜를 감쌌다. 뿐만 아니라 널리 퍼져나간 안개덩어리가 모두의 호흡기에 침투하려고 했다.
슈아악!
하지만 서문혜가 그대로 할치올레이푸라의 안개를 향해 신력을 담은 장풍을 날리자 할치올레이푸라의 진짜 정체가 잠시 드러났고, 그 사이에 독고운천이 갑자기 혼돈화를 시전하며 자신의 몸을 크게 부풀렸다. 무려 키가 이 장 반에 이를 정도의 거체가 된 독고운천은 그대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슈우우욱!!
순식간에 할치올레이푸라의 안개가 백련교주의 입 안으로 모두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백련교주는 빨아들이고 잠시 침묵하다가 크게 허공으로 뿜어내었다.
푸오오오!!
혼돈의 옥염에 휩싸인 안개가 크게 터져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한백령이 그대로 아수라와 함께 달려들어서 할치올레이푸라의 본질을 베었다.
절대지경(絶對之境)
화신지혼(火神之魂)
화륵 -
할치올레이푸라의 안개가 한백령의 일 검에 베이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안개화를 유지하지 못하고 본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크게 당황했다.
[아니.]
어떻게 검으로 안개를 벤다는 말인가? 하물며 사도의 마력을 뚫고 어떻게 본질을 벨 수가 있는가? 사도인 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백령이 절대지경에 올라 화신지혼의 힘을 자신의 검에 실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화신지혼이 빈틈을 만들어내자 그녀와 함께 뛰어들었던 아수라가 눈에 광망을 흘리며 크게 할치올레이푸라를 베었다.
귀일암야참!
푸콱
[크어어어….]
아수라의 일격은 그로서도 상당한 고통을 느끼는 듯 약간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하지만 아수라는 자신이 회심의 일격을 먹이지 못했다 생각하는지 크게 외쳤다.
“반격을 조심해라!!”
쿠와앗
아수라의 예측대로 상처를 입은 할치올레이푸라가 이번에는 석화광선을 뿜어내면서 동시에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서 사방팔방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점액덩어리처럼 생긴 그 분신들은 가까이 날아오자마자 폭발해서 저주의 마력을 비산시켰고 그것만으로도 마치 재앙과 같았다.
그리고 범위공격이 날아오자 이번에는 천우진이 류진과 함께 나섰다. 천우진이 먼저 환술을 써서 현실을 왜곡시키자 분신들의 폭사가 ‘없던 일’으로 변해 버렸고, 천우진이 미처 걷어내지 못한 공격은 류진이 시간회복 초능력을 써서 날려버리고 말았다.
꽈앙
[이 놈.]
[크하하하하!!]
독고운천이 혼돈화를 한 채 달려들어서 할치올레이푸라의 본체를 습격하자 마침내 사도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연신 밀리기 시작했다.
[좋다…. 정 그렇다면 너희만이라도 길동무로 해 주마!]
할치올레이푸라는 자신이 밀리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저주와 마법을 날렸지만 독고운천의 원영신은 그 모든 걸 족족 흡수해버리는 듯 했다. 원영신이 모든 걸 흡수하자 할치올레이푸라가 멈칫거렸고, 백련교주는 그 틈에 다시 한 번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뻐억
[잘도 길동무로 하겠구나.]
[크윽….]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한백령은 생각했다.
‘이길 수 있어. 공격과 방어의 조화가 완벽하다!’
일대일로 싸우면 아군 중 그 누구도 할치올레이푸라를 상대로 4할 이상의 승산을 갖기 힘들다. 게다가 강력한 초능력까지 있으니 다대일의 싸움에서도 전혀 전투력이 떨어지지 않으니 악몽같은 [옛 지배자]의 사도였다. 그러나 제갈부가 죽으면서 치환능력을 봉인한데다가 공격과 방어의 합이 맞춰지니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뻐억!
쿠콰쾅
[크윽.]
할치올레이푸라는 계속해서 덤벼오는 독고운천, 서문혜, 한백령, 아수라의 파상공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독고운천이 비틀거리는 할치올레이푸라를 향해 눈빛을 번득이며 최강의 절기를 시전했다.
대화엄(大華嚴)!
쿠오오오 -
원영신이 세 개의 진영분신을 만들어서 대화엄의 대파괴를 시전하려는 순간이었다. 할치올레이푸라가 찰나의 순간에 마치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원야(元夜)의 흉액이여…. 나의 영혼의 절반을 바치노니, 더 크게 열릴지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하지만 대화엄을 시전해서 막 결정타를 먹이려던 독고운천은 다음 순간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고가 정지하는 걸 느꼈다.
[원영신의 계약자여. 나 비류, 저 자와의 계약에 따라…. 원영신의 계약을 비튼다. 의무사항에 따라 계약을 유지는 하겠으나, 더 이상 나는 [옥좌]의 마력을 너 대신 감당해주진 않겠다.]
독고운천의 의식 속, 무의 공간에 [옛 지배자] 비류가 서 있었다.
비류는 눈코귀입이 없는 달걀같은 얼굴을 지닌 인간의 형상이었다. 저 모습은 [옛 지배자]가 지닌 무수히 많은 형체 중 하나일 뿐이었으나 어쩐지 인간과 최대한 닮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라고…. 지난번처럼 또 내게 강림하려고…!!]
[큭큭…. 아쉽게도 그렇게는 못 하겠군. 지난번에 크게 데여서 그런 식으로는 이제 못 해. 하지만 내 목적을 위해서 널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저 수도꼭지를 더 세게 틀어버릴 뿐이다.]
[…….]
[이제 네가 무엇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구나. 어찌되었든 네가 소멸하고 원영신이 파괴되면 내게도 인과율 때문에 큰 역풍이 불어서 타격을 입겠지만.]
비류가 잔악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혼돈의 옥좌에 잡아먹히는 걸 보면 다소 속이 덜 쓰리겠군….]
투화악
그리고 독고운천의 원영신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혼돈과 태허의 균형이 무너지며, 혼돈화되었던 육체가 갑작스럽게 열광(熱光)을 내뿜기 시작했다.
원영신의 부작용.
[혼돈의 옥좌]가 강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