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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천만 이상의 마도병.
말이 마도병이지 실상은 천차만별의 이족(異族)이나 마수(魔獸)가 소환되어 있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도병을 직접 상대해봤던 사공린은 그 위력을 어느 정도 눈치채었으나 이상함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을 ‘대가’로 바치고 그 정도 병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
마도소환은 철저한 계약관계이며 필멸자에게 불리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강력한 대마도사가 마법을 부린다 해도 한계가 있다. 하물며 천만 이라는 단위의 병사를 찍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옛 지배자]가 이미 소환되어 있는 걸까?’
그거라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사공린은 적어도 최근까지 그런 정황을 보고받지 못했다. 현재 제갈유룡과 제갈부가 전 세계에 정찰망을 넓혀서 정보를 모으고 있었으니 [옛 지배자]의 강림 같은 큰 일이 생겼다면 진작에 알았으리라. 사공린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 날의 회의를 끝내고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한백령. 오랜만이군요.”
새로 간부회의에 참석한 한백령에게 사공린이 인사하자, 한백령이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폐하를 뵙니다.”
“교주께선 어떠신가요?”
“많이 상태가 좋지 않으십니다.”
“…….”
“오늘 제가 이 회의에 참석한 것은 오늘부로 임시 백련교주직을 맡게 되었음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한백령의 말에 다들 놀라는 기색이었다. 호법사자인 한백령에게 백련교주가 자리를 넘기다니! 특히 제갈유룡이 적지 않게 놀란 듯 한백령에게 말했다.
“설마…. 그의 원영신이 폭주하기 시작했는가?”
“아니. 원영신은 안정상태에 들어섰다. 하지만 종종 가사상태로 수십일씩 침묵하신다.”
한백령은 사공린 외에는 평대를 했다. 다만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백령은 원래 그 정도 위치는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한백령의 말을 들은 제갈유룡이 말했다.
“그렇군. 전에 그가 말한대로 예측하지 못한 영역에 들어선 거야.”
“지금 그게 회의의 주제는 아닐 텐데? 그리고 동료라지만 본교의 일이니 과한 언급을 삼가해줬으면 좋겠군.”
한백령의 퉁명스러운 말에 사공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백련교주의 상태는 나중에 이야기하지요. 지금은 나치라고 하는 새로운 제국에 대응하는 게 우선입니다.”
“우선은 일천만의 마도병에 대한 보고를….”
“말해보세요, 제갈부.”
재상이 사공린에게 보고했던 내용 또한 제갈부가 한 차례 걸러서 그에게 전달한 내용이었다. 즉 공식적인 보고와 달리 비공식적인 보고, 즉 제갈부가 수집한 진짜배기 내용을 지금부터 황제 사공린에게 알린다는 뜻이었다.
“마도병을 소환한 것은… 나치독일 제국의 전신인 프로이센 왕국의 선제후(選帝侯)가 발견해낸 이계(異界)의 고대유적이라고 한다.”
“…고대유적. 어느 정도의 고대유적이길래 일천만의 대군을 소환할 힘이 있는 것이죠?”
“유적의 실체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으나 그 유적은 본디 서방의 드루이드 및 순수마법사에 의해 보호되던 것이라 한다. 신화시대부터 보존되어오던 것이었는데 나치독일이 그 힘을 차지해버렸다 들었다.”
“…….”
“그 힘은 틀림없이 역사를 바꿀 정도….”
사공린은 잠시 후 질문했다.
“우선 그들의 진짜 의도와 정체부터 알아야겠군요. 그 말대로라면 나치독일의 수뇌부는 전(前) 프로이센의 왕족들이란 말인가요?”
“아니다.”
“방금 전 그 고대유적을 발견한 게 프로이센의 왕족들이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그들은 발견한 후 고대유적의 정령과 계약해서 불로장생을 얻었을 뿐, 그걸 써먹을 생각은 못한 듯하다. 그러나 나치독일이 그들을 고문하고 협박해서 고대유적의 힘을 얻어낸 후 프로이센 왕족들을 학살한 듯싶다.”
참혹한 일이었으나 사공린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고문과 학살, 야만은 밥 먹듯이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요점을 짚기 위해 부단히 머리를 굴렸고 결론을 내었다.
“원래 독일을 지배하던 왕족을 몰살시킨 제 3의 세력. 그 자들이 바로 나치독일의 진짜 수뇌부란 말이군요. 그 자들은 뭔가요?”
“…정찰을 보내어 최대한 역량을 다해보았으나 수뇌부의 모습은 한 번도 확인하지 못했다. 현재는 동영의 3대 닌자 가문에 모두 의뢰를 해놨다만 그들에게도 큰 기대는 걸지 않고 있다.”
“정체를 밝혀내기 힘들다 생각하는군요.”
“면목없다. 그러나… 수뇌부들은 하나같이 강대한 마력(魔力)의 소유자로 판단된다. 본디 인간으로서는 당해낼 수 없는 존재인 게 확실하다. 섣불리 접근하면 고문당해서 이쪽의 정보만 넘겨주게 될 것이다.”
“……!!”
“나치독일을 상대로 한다면 최정예 중의 최정예만이 정찰을 할 수 있다.”
제갈부가 저 정도로 단언하다니!
사공린은 적 수뇌부 개개인의 마력이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인간이 당해낼 수준이 아니라 한다면, 당연히 그들은 인간이 절대로 아니리라! 인간을 초월한 진정한 이족(異族)들이 전면에 드러났다고도 할 수 있었다.
“[옛 지배자]가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높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이미 1천만의 마도병이 존재한다는 게 알려진 상태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우리에게 좋을 건 없을 텐데요.”
“그 말도 맞다만….”
제갈부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제갈유룡이 입을 열었다.
“이미 [옛 지배자]는 소환된 상황이다. 그 전제로 움직여야 하니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단정지을 수 있나요?”
“확증은 없지만 일천만의 마도병이 바로 그 증거지. 그 외에 다른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일반적인 [옛 지배자] 강림 상황과는 다르다.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제갈부는 확실치 않은 걸 단정짓지 않으려 했으나 제갈유룡은 틀릴 위험을 무릅쓰고 회의를 진전시키려 하는 듯 했다.
“어떻게 다르다는 거죠?”
“[옛 지배자]를 소환하는 자는 크게 3종류가 있지. 하나는 마도사, 하나는 그 [옛 지배자]를 추종하는 이족이나 노예종족, 마지막은 [옛 지배자] 본인이 지상에 내려보낸 화신이나 사도. 하지만 나치독일은 그 셋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듯하다.”
“그럼 나치독일의 수뇌부는 대체 뭔가요.”
“놈들의 정체에 대해서 이미 제사장으로써 황궁의 신께 물어보았다. 그리고 답변을 듣기를, 놈들은 [용병(傭兵)]이라고 하시더군.”
용병!
전혀 마도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말에 다들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두운 [옛 지배자]와의 거래와 암흑의 소환, 신비(神秘) 그 자체나 다름없는 행위에 용병같이 현실적인 요소가 끼어들 수 있단 말인가?
제갈유룡의 말이 이어졌다.
“어디서 온 존재들인지 모르지만 놈들은 자기들이 소환하려는 [옛 지배자]를 추종하지도 않으며 딱히 소원을 빌려고 소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름대로의 목적을 위해서 기계적으로 작전을 수행중인 전문용병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용병이라… 재밌군요.”
사공린은 다소 흥미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옆을 쳐다보며 말했다.
“한백령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오랜만에 처음으로 간부회의에 출석했군요.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말해주지 않겠어요?”
“…….”
사공린의 시선을 받은 자는 묵묵히 침묵하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용병이라 함은 보수를 받고 일을 해 주는 자. 그렇다면 이 경우는 의뢰인이 무엇을 위해 어떤 보수를 그들에게 지불했는지를 알아내야 할 것이오. 그걸 알 수 있다면 도리어 이쪽에서 나치독일을 이용할 수도 있소.”
“과연 그렇군요. 좋은 의견이에요, 망량.”
의견을 말한 것은 바로 망량이었다. 그는 줄곧 야차의 봉인 후 크게 약화되어서 가사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얼마 전에야 간신히 의식을 회복했던 것이다. 다만 오랜 와병생활의 여파 때문인지 그의 혈색은 핏기가 없었고 깡말라 있었다.
망량이 말을 이었다.
“다만 내 생각에는 지금 우리가 고려해야할 건 나치독일에 대한 선제타격이나 정보수집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놈들이 병력을 아무리 불려봤자 이쪽에 마왕급 전력이 있는 한 그 숫자는 허수(虛數)에 불과하며 신을 이용한 책략은 이쪽도 쓸 수 있는 것. 당장 걱정할 문제는 아니오.”
“호오, 그럼 무엇을 고려해야 하죠?”
“바로 종말에 대비한 전력의 축적과 복희탐색계획이오. 나는 바로 그 계획의 경과를 보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오.”
“……!! 설마, 삼황 복희를 드디어 찾아낸 건가요?”
사공린이 냉정한 그녀답지 않게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망량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검마 서문대룡이 탐색대장으로써 나머지 인원을 이끌고 여정을 3할 정도 진행한 듯 싶으나 아직 멀었소. 다만 검마는 도중에 큰 깨달음을 얻어서 더욱 강대한 힘을 손에 얻은 듯 싶소.”
“설마 신역절기에 도달했다는 뜻인가요?”
“아니. 그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소. 허나 아무래도 절대지경의 경지 내에서 좀 더 힘을 키울 방법을 찾았다는 어투로 들렸소.”
그렇게 대꾸한 망량이 말을 이었다.
“또한 한 가지. 나는 아마 3개월 내로 죽을 듯 하오. 나는 죽으면 천계로 갈 터이니 남은 일은 부탁하겠소.”
“…….”
“…….”
뜬금없는 시한부 선언이었다. 하지만 제갈부와 제갈유룡은 이미 이야기를 들은 듯 침통한 표정만 지을 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사공린은 망량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은 일은 잘 하겠지만 갑작스럽군요. 왜 죽는건가요?”
“내게 새겨진 이 저주. 야차를 봉인할 당시에 시전했던 금술의 저주를 아버님의 도움으로 끝까지 버텼지만 이제 슬슬 한계요. 그렇다면 금술이 내 영혼까지 파괴해버리기 전에 빠르게 육신의 죽음을 맞이해서 천계에서 해결책을 찾는 편이 나을 듯 하오.”
“…그렇군요. 그럼 마무리를 잘 하고 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절대지경 고수들의 원활한 등선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천제단을 좀 개조하려 하오….”
그들은 이윽고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하다가 간부회의를 끝마쳤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오자, 제갈유룡이 망량에게 말을 걸었다.
“현아. 무슨 생각을 하느냐?”
“왜 그러십니까? 간부회의에서 할 말은 다 했습니다.”
“그게 아니다. 본래 나와 약속했던 건 사공린 폐하의 도움을 받아서 그 저주의 진행을 늦추기로 했던 거잖느냐. 그렇기 때문에 네 연명을 위해서 마도의식을 벌이려는 것도 참은 건데.”
천마의 힘이라면 아무리 명계의 금술저주라고 해도 그 효과를 완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망량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하루빨리 죽는 편이 낫습니다. 도리어 지금까지 너무 시간을 낭비했던 거였지요.”
“현아.”
“저는 천계에서 빠르게 대라신선의 자리에 올라 궁주(宮主)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지요. 이 계획에서 천계의 궁이 있고 없고는 천지차이니까요.”
“…….”
“지상에는 더 이상 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책사의 자리는 차고 넘치지요. 그렇다면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제갈유룡은 불길함을 느꼈다. 망량 제갈현의 모든 말이 이치에 맞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정체불명의 불안감에 가까웠다. 어쩐지 이대로 망량이 마음대로 하게 놔두게 되면, 크나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었다.
‘음.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제갈유룡은 이내 그 느낌을 넘겨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평생 이성적인 그에게 있어서 느낌에 모든 걸 맡긴 접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망량이 자신의 뜻을 펼치려 한다면 부모로서 응원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불안감을 이긴 것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알았다…. 그럼… 뜻대로 하거라.”
제갈유룡은 그저 육신의 죽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심력이 소모되는 걸 느꼈다. 그리고 백웅의 동료가 되고 난 후, 자신의 메말랐던 정신이 다소 인간성을 되찾았다는 걸 실감할 수가 있었다. 전생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파멸에 이르렀던 정신이 치유받은 것일까?
그리고 몇 달 후 - 망량 제갈현은 사망했다. 그가 남긴 것은 딱히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육체만을 남기고 천계로 간 것이다.
또한 제갈현의 사망이 있고서 얼마 되지 않아 나치독일 제국에서 대웅제국에 사신을 보내왔다.
사신은 말끔한 독일의 군복을 입은 금발의 장년사내였다. 다른 사신단 없이 오로지 홀로 찾아와서 자신이 나치독일의 사신이라고 주장한 자가 공손히 예법을 갖추며 사공린에게 인사했다.
[저는 나치(Nazi)의 SS(Schutzstaffel)의 친위단장인 하인리히 볼프(Heinrich Wolff). 이렇게 만나뵈어 영광이옵니다, 황제폐하. 아니…. 천상의 지고한 마(魔)이시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말은 이족의 언어였다. 그 기이함은 장년사내가 절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공린은 그의 말을 듣자 딱딱하게 대꾸했다.
“인간인 척 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하인리히 볼프는 네 이름이 아니잖은가.”
[하하하…. 물론 진짜 프로이센의 대장군이었던 하인리히 볼프는 제 뱃속에 들어갔습니다만, 폐하께서 인간이 아닌 걸 싫어하신다고 전해 들었기에. 저희 나름의 경의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인간의 말도 하지 그런가. 이족의 언어가 불쾌하다.”
[하하. 죄송합니다. 인간의 성대를 만들기가 어렵군요.]
하인리히 볼프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먼 발치에서 천리안으로 지켜보던 제갈부가 침음성을 흘렸다.
“크으으… 이럴수가….”
콰칭!
“…엄청난 마력이다. 제기랄.”
정찰자들에게서 들었던 보고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하인리히 볼프가 최대한 마력을 억누르고 있었으나, 제갈부가 설치해두었던 마력계측기는 이미 한계를 돌파해서 폭발해 버렸다. 저 존재가 이미 절대지경 고수로서도 감당키 힘든 ‘무언가’라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제갈부는 그만 탄식했다.
“팔부신중도 쓰러뜨렸는데 어찌 이런 괴물같은 놈들이 계속 튀어나온단 말인가…. 정녕 어둠의 세계에 비하면 인간따위 보잘것없구나!”
그는 뒤늦게 제갈유룡이나 백련교주의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 그는 저 절대자들이 어째서 신의 힘에 집착하는지 의아해했으나 지금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어둠의 세계에서 인간을 초월한다는 것 따위는 전혀 자랑거리가 아닌 것이다.
하인리히 볼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위대한 천상의 마이시여! 그 위대함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나이다. 제 주인께서 귀하에게 전언(傳言)을 남기셨습니다.]
“전언이라고?”
[천상의 마여, 그대는 종말을 앞둔 이 상태에서 최강의 장기말이다. 허나 우리는 이대로 그대의 승천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대리인으로 용병단을 꾸려서 너에게 맞서겠다. …이상이옵니다.]
“…….”
사공린은 대꾸하지 않고 용상에 팔꿈치를 누른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각자의 대리인이라. 그렇다면 총 몇 명의 대리인인가?”
[숨길 필요는 없겠지요. 제 주인을 비롯하여 총 5인의 고명한 지배자께서 대리인을 참가시켰고, 우리는 용병으로써 이 장기판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용병들의 힘을 모아서 [옛 지배자] 하나를 또 다른 용병으로 소환할 예정이옵니다.]
“아주 자신만만하구나. 너희들의 계획을 다 밝힐 생각이냐?”
[후후후. 사실 저희로써도 이 조그마한 인간세계의 일에 이만큼이나 관여하는 건 처음이라서 말이옵니다…. 더욱이 천상의 마라고까지 불리는 존재와 겨룰 수 있다니 진정 암흑의 일족으로써 두근거리는군요.]
하인리히 볼프는 진정으로 기대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본 사공린은 상대가 결코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흔히 볼 수 있는 중하급의 이족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머나먼 이계의 고위존재였다.
“흐음.”
사공린이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너희만한 고위존재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큰 인과율이 필요하다. 어찌 소리소문없이 한순간에 용병으로 소환될 수가 있단 말이냐?”
[하하.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허나 운 좋게 고대 신선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 놈이 온갖 보패를 들고 있지 뭡니까. 그래서 필사적으로 달려들어서 때려잡은 덕에 다른 대리인을 소환하기가 쉬웠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소환된 상태라서 그리 자신이 없었는데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
잠시 후 사공린은 어찌 된 일인지 상황을 깨닫고는 관자놀이를 지끈지끈 눌렀다.
“…팽조…. 팽조를 잡았구나. 후우….”
[이미 알고 계시는군요. 하하하…. 진작 잡아두시지 그러셨습니까.]
“너희한테 잡힐 정도로 얼빠진 놈일줄은 몰랐구나.”
사공린은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좋다. 그럼 전쟁은 시작이란 말이구나.”
[그렇사옵니다. 천마시여.]
“전쟁의 축포는 내가 울려주마.”
[네?]
퍼버버벅
우드드득!
우드득!
[크아아아아악!!]
“으, 으아아악.”
“아아악.”
장내에 있던 대소신료들은 순식간에 사공린이 하인리히 볼프에게 달려들어 황금빛 기운을 일으켜 그를 뜯어먹는 걸 보자 단숨에 미쳐버리고 말았다. 둘이 뿜어내는 권능에 일반인은 버틸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리고 하인리히 볼프는 급히 본체로 되돌아가서 사공린에게 맞서싸우려 했으나 버티지 못했다.
우드득! 우득!!
천마의 황금빛 기운이 마치 송곳니처럼 변해서 하인리히 볼프의 몸뚱이를 꿰뚫었다. 하인리히 볼프는 예전의 시몬 마구스처럼 강대한 마력을 뿜어내서 버티려 했으나 모든 마력이 집어삼켜졌다.
[으윽…. 말도 안 돼…. 수만 년을 살아왔지만 마 그 자체를 먹어치우다니…. 이런 미친….]
사공린이 그의 목덜미를 붙잡으며 냉소를 지었다.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온 거였겠지만 정말로 내 힘을 잘 몰랐던 모양이구나. 잘 가거라.”
[안돼애애애!!]
와드득!!
이윽고 나치의 SS단장이자 머나먼 이계의 고위존재인 하인리히 볼프를 잡아먹은 사공린은 싸늘한 눈으로 장내를 바라보다가 외쳤다.
“제갈부! 미친 사람들을 정리하러 오세요. 초상능력을 이용해서 광기를 회복시키는 기술이 있겠죠?”
쉬익
천리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제갈부가 사공린 앞으로 와서 부복했다.
“존명.”
“그리고 이 시간부로 나치독일과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너, 너무 갑작스러운 게 아닌지.”
“어차피 언제가 됐든 해야할 전쟁이라면 빨리 해버리는 게 낫겠죠.”
“…….”
“적의 수도를 향해 전이문을 열어주세요.”
사공린의 거침없는 요구에 제갈부가 당황했다.
“그건 조금…. 하다못해 전력을 모을 때까지 조금 기다려야….”
“아뇨. 필요없어요.”
사공린은 권태로운 듯 황금안을 번득이며 말했다.
“나머지 4마리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볼 것도 없겠군요. 저 혼자 다 죽여버리는 게 낫겠습니다.”
대웅제국과 나치 독일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