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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갑작스레 황제의 자리를 요구하는 사공린!
백련교주는 물론이고 천우진도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백련교주가 대꾸했다.
[싫다면…?]
“왜 싫지요?”
[…당당하군. 도리어 내가 묻지. 천하에서 가장 강대한 대제국인 대웅제국의 황제 자리를 선뜻 내놓을 수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현 대웅제국의 힘은 대명제국 당시에 비교하면 수십 배 이상 강해졌는데.]
“그게 전부인가요.”
[…….]
사공린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스스로의 마(魔)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대로는 큰일이 벌어질 겁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권좌를 내려놓고 그 힘을 통제할 방법을 찾으세요.”
[살육충동은 충분히 제어하고 있다. 이 또한 자주 있는 일이 아니며 수 년에 한 번씩 모인 욕망을 배출할 뿐이다.]
“당신정도 되는 자가 어설픈 변명을 하는군요. 증상이 갈수록 심화되리라는 걸 이미 짐작하고 있으면서.”
[속단하지 마라. 그 때는 그 때다.]
“그 때가 오면 늦습니다. 당신이 마왕이 된다면 아무도 당신을 막을 수 없을 테니까요.”
스윽
사공린이 살짝 몸의 자세를 낮추었다. 그녀의 손이 허리춤의 검에 가 있었고, 그 자세를 본 백련교주가 말했다.
[공손검법의 기수식 발검(拔劍) 자세라. 해 보겠다는 건가.]
“교주. 선택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시간을 지체해봐야 당신의 심마(心魔)가 더욱 강성해질 뿐, 지금이라도 정사(政事)를 놓고 원영신의 부작용을 치료해야 합니다. 치료에만 열중한다면 충분히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요.”
[…안 된다.]
“왜지요?”
백련교주의 손이 용상을 꽉 하고 붙잡았다.
[나 외엔 누구도 백웅이 남긴 이 대제국을 짊어질 수 없다….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팔부신중을 타도했다지만 아직도 이 세상에는 힘을 숨긴 어둠의 세력이 많이 존재하며, 심지어 십이율주와 놈의 세력도 자취를 감추었다.]
“…….”
[그들이 새로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대항할 수 있는 건 이 제국에 오로지 나 뿐…!! 다른 누구에게도 그 짐을 맡길 수 없다.]
사공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다!! 내가 바로 대웅제국의 유일무이한 황제다. 또한 백련교의 지존이다.]
백련교주의 안광이 기이한 빛을 내며 일렁였다.
[내게서 황제 자리를 뺏고 싶다면 그 힘을 증명해라, 사공린!! 가능하다면 말이다!]
파지지직!!
백련교주와 사공린의 기파가 허공에서 충돌했다. 그리고 백중세가 되어 무형의 파장이 벽처럼 변해서 허공에서 지직거렸고, 잠시동안 기수식을 유지하던 사공린이 자세를 풀고 옆에 있던 천우진을 바라보았다.
“천우진. 당신은 지금 아무런 힘도 없고 험난한 여정때문에 피곤하겠군요.”
“엉? 너 설마.”
“숙소로 가서 쉬십시오.”
사공린이 손에 힘을 모으더니 권능을 시전했다.
“잠깐….”
파앗
눈 깜짝할 사이에 천우진은 자신이 별궁으로 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별궁은 고위간부의 휴양만을 위해서 지어진 고급 별택이었고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이 천우진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씻을 준비를 하겠나이다.”
“…야, 자, 잠깐만.”
천우진은 당황했지만 다음 순간 황궁시녀들이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으악!! 뭐하냐!”
“가만히 계십시오.”
천우진이 발버둥쳤지만 시녀들은 모두 백련교 사대무류의 무공을 익혀서 일류급 고수였기에 무공도 술법도 없는 현재의 천우진은 속수무책으로 벗겨질 수밖에 없었다. 천우진은 이윽고 따뜻한 탕 안에 들어가게 되었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게 되었다.
“…….”
욱씬!
천우진은 탕 안에서 자신의 뒷목에 새겨진 제갈사의 각인이 고통을 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항해서 사공린이 남겨준 힘이 대신 싸워주는 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천우진은 오싹해졌다.
‘제갈사가 천마를 봉인한지 한나절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이만큼이나 자유자재로 신적인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천우진은 백련교주와 사공린의 대결을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 막아야 해.”
자칫했다가는 두 용이 서로를 해치다가 공멸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탕에서 나오려 해도 천우진은 모든 체력이 소진되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정말로 사공린이 말한 대로 천우진은 이미 한계였던 것이다.
“…졸린다….”
풀썩
이윽고 그는 지나친 피로와 체력소모 때문에 기절하듯 수면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천우진이 침실로 옮겨지자 그런 천우진을 내려다보던 한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그가 별궁의 시녀들에게 명령했다.
“극진히 보살펴라. 곧 의원들이 도착해서 그의 상태를 볼 것이다.”
“존명.”
“걱정마라, 천우진. 그들이 싸우는 걸 내가 목숨걸고 막아 보겠다.”
제갈부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는 술법으로 아까 천우진과 사공린이 백련교주와 대화하는 상황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갈부가 걸음을 옮기자 어느 새 복도의 맞은 편에 제갈유룡이 서 있었다.
“아버님.”
“이미 백련교주와 사공린의 전투가 시작됐다.”
“……!!”
“더 이상 우리로썬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켜보기나 하자.”
“할 수 있는 게 없다니요! 그들이 동귀어진하면 모든 게 끝장….”
“그런 말은 일단 천리안으로 상황부터 살펴보고 하거라.”
우웅
제갈유룡이 허공에 술법의 구를 띄웠다. 팔부신중과의 전쟁에서 의체의 훼손 때문에 술법경지를 거의 다 잃었던 제갈유룡이었으나 피나는 수련 끝에 다시 과거의 역량을 되찾은 것이다. 그리고 천리안으로 이어진 술법의 구를 통해 전투상황을 지켜보던 제갈부가 경악해서 그만 굳어버리고 말았다.
“…….”
“이제 알겠느냐?”
“…이, 이럴수가.”
“우리 정도의 술법사가 저 판에 끼어들어 뭘 할 수 있겠느냐. 신선조차 찢겨죽을 것일진대.”
“하지만….”
제갈유룡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차원이 다른 싸움. 둘 다 필멸자의 수준을 벗어났으니, 대웅제국의 지존을 가리는 승부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
쿠르르릉!!
대웅제국 황궁의 하늘에 어둠이 가득했다. 그리고 어둠 사이로 천둥이 마치 야수의 숨소리처럼 울려퍼졌고, 천둥 사이로 몇 번 피빛의 번개가 내리쳤다. 혈뢰(血雷) 사이에서 잠깐동안 백련교주와 사공린의 모습이 비쳤다.
[크아아앗!!]
원영신의 혼돈화를 이끌어 낸 백련교주의 일 권(一拳)이 파산(破山)의 힘을 담고 사공린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설령 팔부신중의 본체라 해도 큰 타격을 입을 정도의 강력한 힘이었다.
꽈광!!
쿠궁
사공린은 백련교주의 권에 적중당하자 지상에 처박히듯이 날아갔다. 그녀의 몸은 커다란 산을 두세 번 꿰뚫고는 지평선 너머로 날아가고 있었고, 그런 사공린을 추격하듯 어마어마한 속도로 따라붙은 백련교주가 합장(合掌)하며 절기(絶技)를 시전했다.
심천무량(心天無量)
대화엄(大華嚴)
백련교주의 몸 주위에 세 개의 원이 떠올랐다. 하나하나의 원에는 마치 평상시의 만다라가 조각장식처럼 조밀하게 들어차 있었고, 백련교주의 몸에서 어둠의 안개가 끓어오름과 동시에 삼원(三圓)이 동시에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전하는 삼원 속에서 백련교주의 형상이 또 다시 튀어나왔다.
“……!!”
순식간에 세 명이나 되는 백련교주에게 둘러싸인 사공린이 흠칫했다. 백련교주는 눈에서 광망을 일으키며 세 개의 몸뚱이에서 동시에 열광(熱光)을 방출했다.
쩌어어엉!!
쿠콰콰콰쾅
백련교주의 대화엄이 뿜어져나옴과 동시에 낙양에서 삼백여 리 떨어진 이름없는 산이 순식간에 십여 개나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열광의 파장만으로도 하나의 국가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단순 열광이 아니라 심천무량에 의해 수십 배나 증폭된 밀도를 지닌 공격이었기에 마주치는 모든 것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파괴되었다.
후두두둑….
마치 소행성이라도 떨어진 듯한 현장에서 백련교주는 혼돈화를 풀지 않고 허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자신의 전방에 있는 시꺼먼 구(球)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방금 그건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전성기의 팔부신중 아수라라고 해도 방금의 공격을 적중시키면 일격에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만….]
백련교주가 찬탄하듯 중얼거렸다.
[오오…. 설마 그걸 상처하나 없이… 너는 정말로 괴물이 된 것이냐, 사공린…?]
슈르르륵
검은 구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는 상처 하나 없이 사공린이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사공린은 방금 전과는 달리 냉막한 표정이었으며 한쪽 손이 칠흑 같은 흑암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공린이 흑암으로 물든 왼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휘적휘적 흔들었고, 이윽고 손 끝으로 새까만 가루같은 혼돈이 털어지며 원래대로 백옥같은 손으로 되돌아 왔다.
사공린이 말했다.
“제갈사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군요. 원영신은 분명히 강력하지만 큰 약점이 있어요. 폭주를 제외하고도요. 그 약점 덕분에 쉽게 막을 수 있었습니다.”
[…….]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신 스스로 깨닫고 있겠죠.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억지를 쓰며 대웅제국의 황제를 계속 하려는 건 개인적인 야심 때문인가요?”
[아니…. 그건 아니다. 방금도 말했듯, 나 외에는 그 누구도 어둠의 세력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 의지, 확인했습니다. 사리사욕은 아니군요.”
스윽
사공린이 한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녀의 눈빛이 한층 냉막하게 변했다.
“그렇다면 천마(天魔)의 힘으로 당신의 미련을 끊어드리겠습니다.”
치잉!!
옆으로 뻗은 사공린의 손에 한 자루의 검이 소환되었다. 그 검은 그다지 길지 않은 평범한 장검(長劍)처럼 보였으나, 검신(劍身)에 푸른 광채가 흐르고 있었으며 살아있는 듯한 황룡(黃龍)이 음각되어 있었다. 백련교주가 물었다.
[그 검은 뭐지?]
“제게 흐르는 피가 저절로 알려준 소환능력입니다. 검의 이름은 모르겠군요.”
[검의 품질을 시험해보고 싶군….]
“부디.”
꽈광!!
사공린과 백련교주의 신형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마치 투선을 연상시키는 가공할 공격이 서로 한 차례 부딪혔을 때, 백련교주는 사공린의 검로(劍路)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만다라를 베어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평범하다.’
백련교주는 사공린 정도의 실력자는 여기저기서 보아왔다. 사공린 또한 절대지경에서 뛰어난 수준이었으나 결코 최강급 투선이나 지상최강의 무인을 노릴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기에 백련교주는 사공린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 사공린의 검로가 절반쯤 전개되었을 때, 백련교주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가슴팍이 황룡의 검에 관통당했다는 걸 알아챘다.
푸콱!
[……?!]
영문을 알 수 없다!
황룡의 검에 언제 어떻게 베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극한의 찰나까지 감지하는 원영신과 심천무량으로도 사공린의 공격을 읽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심천무량 만다라의 방어도 마치 종잇장처럼 베여나갔으므로 맨몸으로 칼에 노출된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백련교주가 상황을 알아채고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유아독존(唯我獨尊)인가!]
사공린의 절대지경, 유아독존!
대웅제국의 간부들이 익히 알고 있었던 사공린의 유아독존은 바로 인과의 왜곡을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신적 존재를 상대로 매우 유효했기에 사공린은 그 동안 결전병기 취급을 받아왔던 것이다.
‘이 위력은 대체…?!’
하지만 백련교주는 평소에 보았던 유아독존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과 범용성에 전율하고 말았다. 사공린의 평소 실력으로 유아독존을 써봤자 결코 전력을 다하는 백련교주에게 제대로 일검을 먹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타앙
백련교주가 급히 힘을 전개해서 사공린을 떨치자, 물러선 사공린은 황룡의 검을 떨쳐서 교주의 피를 칼날 끝으로 떨쳐내며 말했다.
“아니요. 이건 유아독존이 아닙니다.”
[그럼 뭐지?]
“유아독존은 본디 공손검법 무적삼검 중 제이검(第二劍) 만마군림(萬魔君臨)의 힘을 구현화했던 절대지경. 그러나 이 황룡의 검으로 펼쳐내는 건 바로 제삼검(第三劍) 영겁지무(永劫之舞)를 구현화하는 것입니다.”
[영겁지무…?]
“아직 이 기술에 이름은 붙이지 않았으나 그냥 편한 대로 영겁지무라고 해 두죠. 효과는 보다시피 무적입니다. 교주에게도 먹힌다면 적어도 현 지상계에서 이 기술을 감당할 자는 없을 것 같군요.”
백련교주는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사공린이여, 너무 대충이군. 그래도 되는가?]
“…….”
[자신의 무공에 너무 애정이 없지 않은가.]
사공린은 그 말에 침묵하다가 어딘지 슬픈 기색으로 대꾸했다.
“그야 무공이 아니니까요…. 전 이제야 그걸 깨달았습니다.”
[뭐라고.]
“이런 식으로 힘만을 증명하게 되어서 유감입니다, 교주.”
쉬이익
다음 순간 사공린이 재차 황룡의 검과 함께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기세로 공격해 왔다. 백련교주는 사공린의 공격이 절대지경 상위에 있는 강대한 초고수들에 비하면 미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영겁지무의 효과때문에 경계했다. 백련교주가 찰나의 순간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맹렬히 생각했다.
‘영겁지무라고? 그건 대체 어떤 효과지? 인과를 조작하는 건 틀림없어 보이지만 유아독존과는 다르다. 유아독존은 짧은 순간의 인과를 교체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런 단순한 효과는 심천무량의 만다라로 차단할 수 있다. 내 원영신은 인과왜곡의 권능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그러나 영겁지무는 방금 전 원영신의 권능을 무시했다.
어째서 그게 가능한 것인지 밝혀내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사공린과의 결전에서 승패가 갈리게 될 것이다.
‘…맞는 걸 감수하고 반격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백련교주는 마침내 사공린의 일격을 차라리 맞아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섣불리 손을 쓰지 않고 끝까지 사공린의 공격을 관찰했다.
츄쥬쥬
마침내 사공린의 일검이 백련교주의 살갗을 가르고 뼈 사이를 헤치고 들어와 심장 바로 앞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백련교주는 혼돈화한 상태에서 크게 눈을 부릅뜨며 전방으로 일 장을 날렸다.
쿠오오오 -
백련교주의 혼신을 다한 일격이 대화엄에 못지않은 파괴력을 내며 세상을 열옥(熱沃)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빛과 화염이 가득한 혼돈의 장소에서 사공린은 빛을 등진 채 백련교주의 심장을 향해 검을 뻗고 있었다.
[크헉….]
승패가 갈렸다. 백련교주가 피를 토함과 동시에 사공린의 냉막한 얼굴이 암야(暗夜)의 천공에 비쳤다.
“여기까지군요.”
백련교주는 사공린과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반격했으나 사공린은 그 반격을 무시한 채 심장에 일 검을 꽂는 일격을 성공시킨 것이다! 상처 하나 없는 사공린을 본 백련교주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뭔가를 깨달은 듯 했다.
[그… 그렇군…. 영겁지무란 건… 법리를 뒤흔드는 혼돈의 춤…!! 그 춤사위를 잡아내려면 이런 방법으론 안 돼…!!]
“…….”
[눈…!! 영겁지무에 버금가는 눈(眼)이 필요하다.]
사공린은 놀란 듯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대단하군요. 단 한 번의 격돌로 영겁지무의 이치를 알아내시다니.”
[크큭…. 허무하군…. 정녕… 무공이 아니라 할 만 하구나…. 쿨럭!]
퓨웃
백련교주가 연신 피를 토해내자 사공린은 깔끔하게 그녀의 검을 백련교주의 심장에서 뽑아내었다. 그리고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순수한 무예경지에서 저는 교주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저는 교주보다 훨씬 강합니다. 인정하십니까?”
[크크크…. 그래…. 인정한다….]
“미련을 떨치셨는지.”
슈우욱
백련교주의 몸이 혼돈화를 풀고 원래대로 되돌아 왔다. 장시간 혼돈화를 유지했기 때문인지 그의 몸에서는 기력이 많이 빠져 있었고 다소 늙어보였다. 기침을 한동안 토해내던 백련교주는 이윽고 품에 있던 옥새를 꺼내서 사공린에게 건넸다.
[받아라…. 전국옥새는 아니지만 현 대웅제국의 황권을 상징하는 옥새다.]
사공린이 말없이 받아들자, 백련교주가 준엄하게 말했다.
[천마(天魔)여…. 대웅제국을 잘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크흐흐…. 이것이… 타고난 격차인가.]
백련교주는 어딘가 회한을 느끼는 목소리로 쓸쓸하게 고개를 돌렸다.
[천상의 마와 인간의 차이…. 정녕 백웅이 이 간극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그러길 바라야죠. 저 스스로도 영겁지무의 파해법을 연구할 생각입니다. 지금의 대결 또한 기억장치에 담아 후대에 남길 생각입니다.”
[그래주면 좋겠군.]
사공린 또한 힘들어보이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백웅이 사라졌을 때의 실력 그대로라면 제 영겁지무를 깰 수 없을 테니까요.”
바로 그 날.
대웅제국의 황제가 바뀌었다.
백련교주 독고운천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서 백련교로 복귀했으며, 그 뒤를 이어 제 3대 황제에 사공린이 즉위했다. 어째서 황제가 교체되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으나 새로운 황제의 탄생에 한동안 대웅제국 전체가 들썩였다.
그리고 즉위한 사공린은 황제가 되자마자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웅제국의 새로운 황제시여, 즉위를 축하드립니다.”
“먼 곳에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사공린은 힐끔 자신의 앞에 도착해있는 사신단을 보며 말했다.
“미합중국의 사신단이여.”
그녀가 즉위한지 석 달도 되지 않아서 도착한 미합중국의 사신단!
그들이 무슨 의도로 대웅제국으로 찾아왔는지 탐색하던 사공린에게 사신단의 단장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폐하. 저희가 귀국을 방문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진정한 세계평화를 위해서이옵니다.”
“진정한 세계평화?”
“모든 이가 하나가 된다면 더 이상 다툴 필요가 없어지겠지요.”
이어진 사신단장의 말에 장내의 공기가 딱딱하게 굳었다.
“저희는 대통령의 명으로 세계 단일정부(New World Order)의 건국을 제안하러 왔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