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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천우진은 그 말에 대꾸했다.
“개같은 소리 하지 마. 내 힘은 왜 봉인해야 하는데?”
제갈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물이 필요하니까.”
“폭왕의 마력에서 25할 이상의 마력을 변제받았다면 [옛 지배자]급 마력이 있을 거 아니냐? 니 힘으로 할 것이지 왜 나한테 짐을 지우냔 말이다.”
“큭큭큭…. 백웅놈이었다면 어어하면서 대충 받아들였을 텐데 꼼꼼한 녀석은 참 귀찮군.”
킬킬 웃던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명목상으론 그렇지. 하지만 받아야할 빚이 25할이라고 해서 그 빚을 다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야. 상대방이 가진 마력이 동난다면 나머지는 부채로 남을 뿐 그걸 곧이곧대로 다 받는 건 불가능하잖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예처럼 굴려서 계속 받아낼 순 있겠지만 그 정도 마력이라면 일시불이 가능한 게 아니라고. 그저 남겨진 부실채권일 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내가 지금 보유한 마력은 아까 시몬 마구스가 지니고 있던 마력에서 딱 15할 수준. 완전히 다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공린에게서 받으려던 마력이 그걸 기점으로 끊겨버렸어. 그걸로는 법문과 합일한 사공린의 마력을 완전히 제압할 수가 없다.”
“…….”
천우진은 당장 제갈사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날카롭게 그를 노려보았다.
“웃기지 마. 네 말은 못 믿어.”
“뭐가 문제지?”
“다 못받았다는 게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네놈이 마왕이 되려는 이유도 확실하지 않아.”
“크크크…. 날카롭네. 뭐 마왕이 되려는 이유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 정도 마력을 제대로 다루려면 존재의 격(格)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마왕으로 격을 높여봤자 이 마력을 다 다룰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그리고 말이지, 나는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균형?”
“분명히 인과율에 걸릴거라고. 지금 이 상태라면 말이야.”
스윽
제갈사가 손을 뻗는 순간, 대비하고 있던 천우진이 즉시 환술을 전개했다. 천우진은 제갈사를 전혀 믿지 않고 있었기에 그의 기습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앙!!
제갈사와 천우진의 순수한 [힘]이 부딪히며 큰 소리가 울렸다. 그들의 힘은 법칙을 왜곡시키는 경지에 이르러서 시공간을 뒤바꿀 수가 있었는데, 그 왜곡이 생기기 전의 역장(力場)이 먼저 충돌한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선제권을 얻지 못하고 서로의 힘이 무마되었으나 다음 순간 천우진이 재차 환술을 전개했다.
천마앙복(天魔仰伏)
파파파팟
제갈사는 다음 순간 자신의 전신이 찢겨나간 환영에 사로잡혔다. 마치 예전에 백련교주가 그랬던 것처럼, 바닥에 널부러진 채로 시체가 된 자신의 앞에 천우진이 냉담한 눈으로 쳐다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제갈사가 히죽하고 웃었다.
“과연 대단하군…. 세계 그 자체를 속이기 때문에 한두 번 술법방어로 막아내도 결국 네 환술에 걸리게 되어있는 건가? 도대체 순수 인간이 무슨 수로 그런 경지까지 갈 수 있었던 건지.”
“빌어먹을. 우리끼리 이렇게 싸울 때냐? 내 힘을 제물로 바친다느니 얼토당토않은 소리하지 말고 제대로 된 방법을 생각하겠다면 환술을 풀어 주마.”
“정말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생각하나?”
“엉?”
주르르륵
제갈사의 몸이 서서히 액체처럼 변하더니 끓어오르는 듯 주황빛의 덩어리로 변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인간의 몸으로 되돌아왔고,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지금의 내 마력은 일개 마왕의 수준을 뛰어넘어 있다. 그런 나를 상대로 간단히 환술을 휘두르는 네 녀석의 힘이 이 세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여기서 조금만 더 강해지면 너 혼자서 인간의 문명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
“…….”
“예언하지. 법문을 진정시킨 사공린의 힘에 네놈의 힘이 더해지면 틀림없이 인과율에 제약당한다. 그때부터는 네 녀석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신(神)이 되는 걸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생 고대신이든 태초의 이치에 도전하는 모험가든 간에 말이야….”
“음.”
“힘이 강해봤자 기신 미호처럼 함부로 쓸 수 없는 힘이 되어버리면 끝장. 대웅제국을 절대 유지할 수가 없잖나. 그러니 그 전에 알아서 제약하는 수밖에.”
제갈사의 말에 천우진은 움찔했다. 의외로 천우진은 지금 제갈사가 한 말에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제갈사의 말이 무의식중에 천우진이 걱정하던 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우진 또한 자신의 현재 능력이 인간 중에서 사상최강 수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게 인과율에 걸릴 거라고는 그다지 생각지 않았는데, 사공린이 각성해서 큰 힘을 갖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천우진이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는 냉막하게 대꾸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네놈이 만든 봉인에 내 힘이 제물로 쓰일 필요는 전혀 없어. 개소리 하지 말아라.”
“개소리라?”
“그래. 그렇게 치면 백련교주는 대체 뭐냐? 나도 그 자를 이긴다는 보장은 없는데 예전에 이미 인과율에 걸렸어야 했잖나.”
“크크…. 백련교주의 힘인 원영신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지. 얼마 안 가서 폭주할 게 분명해. 반면에 네놈의 힘은 세계의 근원을 파고들기에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며 신이 될 가능성 또한 높다. 좀 더 인과율에 걸리기 쉽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닥쳐. 니 머릿속에서 떠올린 망상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인데 네놈 편한 대로만 생각하지 말란 말이다!”
천우진의 단호한 태도에 제갈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크크크! 설득은 실패인가? 그럼 쓰러뜨릴 수밖에.”
“…한 번 빠져나왔다고 기고만장하는군. 세계를 속이는 환술에 끝이 있을 것 같으냐?”
두쿵
제갈사의 인식세계가 크게 뒤틀렸다. 그리고 제갈사는 자신이 알고 있던 주문이나 권능 따위를 쓸 새도 없이 모든 감각과 이성이 환술로 인해 와해되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으며 자신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판단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것이 환신(幻神)!
제갈사는 강대한 마력을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환영에 말라죽을 듯 했다. 일단 걸리게 되면 전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게 바로 환술의 특성이었다.
퍼엉!
그러나 잠시 후, 천우진은 자신의 몸이 되려 튕겨 나가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제갈사가 환술의 영향력을 뚫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바닥을 구르던 천우진이 피를 토하다가 다시 그 자리에서 일어서자 제갈사가 말했다.
“환술로 자기자신을 회복시킬 수도 있군. 하긴 세계를 속일 수 있는데 자기자신의 부상 정도는 쉽게 속일 수 있겠지.”
“…….”
“역시 망량선사의 제자야. 순수한 힘의 크기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지금의 나와 이 정도로 싸울 수 있다니.”
그랬다. 방금 전 제갈사가 뿜어낸 마력의 파장 때문에 일순간에 중상을 입었으나 천우진의 몸에 상처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것은 천우진이 환술으로 세계를 속여서 상처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제갈사의 눈이 예리하게 변했다.
“하지만 공격 자체를 없던 걸로 속이지 못한다는 건 네 환술역량에도 한계는 있단 뜻이겠지. 안 그래?”
투웅
“커헉!!”
제갈사의 손가락이 튕겨지자 천우진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천우진은 그제서야 제갈사의 현재 힘을 깨닫고는 전율했다.
‘환술로 분명히 세계를 덮었는데…. 장악된 현실을 무시하고 움직일 정도의 마력!!’
천우진의 실책은 [옛 지배자]의 마력을 흡수한 마도사가 어느 정도로 강력한 존재인지를 감잡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냥 도망쳤어야 했는데 천우진이 제갈사에 대한 오기 때문에 한 번 겨뤄보려고 한 것이 실수였다. 천우진이 쓰러지자 제갈사가 권태로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법문을 빨리 봉인해야 하는데 시간을 너무 낭비했군. 괜히 백웅놈을 신경써서 어떻게든 설득을 해볼까 싶었는데 나답지 않았어.”
“제갈사…!!”
“좋게 생각하라고, 천우진. 네놈은 딱히 죽진 않을거고 저주만 받을테니까.”
쿠구구궁
제갈사가 방금 전 사공린을 제압했을 때 만들어냈던 암흑의 원이 생겨나서 천우진의 전신을 흑암의 사슬로 묶었다. 천우진을 묶은 제갈사는 이윽고 자신의 몸과 융합해 있던 마도서의 일부를 손바닥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츠즈즈즈
푸콰콱!!
이윽고 제갈사의 손에서 살덩어리와 함께 끔찍한 형상을 휘감은 마도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도서를 꺼낸 제갈사는 서서히 이계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며 사공린에게로 손을 뻗었다.
우우웅
천우진은 혼절할 것 같은 상태에서도 기력을 짜내어서 제갈사에게 말했다.
“그만… 둬…. 뭘 하려는 거냐….”
“내 방식대로 이 개판을 정리하려는 거지. 아쉽게도 나는 시몬 마구스의 마력을 이어받았지만 놈의 영혼을 얻지 못해서 외신의 주문은 못 쓰니까, 평범한 봉인의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
“자, 시작한다.”
치잉!!
천우진은 그 순간 법문과 합일하던 사공린의 마력이 강하게 제갈사에게 빨려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황금빛 마력이 빨려들어감과 동시에 사공린의 몸에서 아까 보았던 황금의 기수(奇獸)가 출현하는 걸 볼 수 있었다. 황금의 짐승은 출현하자마자 그대로 제갈사를 공격해 버렸다.
투콱!
주문을 외우던 제갈사의 머리통이 그대로 피분수를 터뜨리며 날아갔다. 짐승은 그걸로도 성이 차지 않는지 마력의 포탄을 발사해서 제갈사의 남은 몸뚱이마저 터뜨리기 시작했는데, 제갈사의 머리통이 허공에서 재생성되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천마여!! 세상을 뒤엎기도 전에 갇히게 된 걸 축하하노라.]
제갈사의 목소리가 인간의 것에서 마(魔)의 그것으로 변화했다. 얻어냈던 마력을 이용해서 마왕(魔王)으로 승격한 것이다.
그리고 수백 개의 눈을 가진 끔찍한 형상의 ‘무언가’가 연기구름처럼 퍼져나왔고, 이윽고 황금의 기수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황금의 기수는 제갈사를 먹어치우려는 듯 입을 크게 벌려서 베어물었으나 그 순간 사공린의 몸에 제갈사의 검은 연기가 빨려들어가자 머뭇거리고 말았다.
[숙주를 보호해야 할 테니 섣불리 마(魔)를 포식할 수 없을테지.]
번쩍!!
[봉인!!]
다음 순간 - 암흑의 번개가 내려치더니 모든 것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방금 전까지 사공린을 두고 다투던 제갈사와 황금의 기수가 동시에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천우진은 자신을 묶고 있던 암흑의 원과 쇠사슬도 사라지자 풀려날 수가 있었다.
풀썩
아주 잠시동안 검은 안개가 천공의 중심으로 날아간 것처럼 보인 건 착각이었을까? 마왕이 된 제갈사는 봉인을 마치자마자 어디론가 가 버린 모양이었다.
“큭… 으윽.”
천우진은 비틀거리며 사공린에게 다가갔다. 사공린은 혼절한 상태라서 눈을 뜨지 않았지만, 천우진이 보기에 그녀의 몸에 외상은 없었고 방금 전까지 느껴졌던 가공할만한 천마의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사공린을 깨웠다.
“…사공린. 괜찮나?”
“으음. 천우진, 어떻게 된 거죠?”
천우진은 잠시 후 깨어난 사공린에게 전후사정을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사공린은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당신의 목 뒤편에 강력한 마력이 느껴져요.”
“뭐?”
천우진이 급히 근처의 물웅덩이를 통해 자신의 뒷목을 살펴보자, 그 곳에는 낙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천우진이 할 말을 잃고 그 낙인을 쳐다보자 사공린이 나직이 말했다.
“제갈사가 당신의 힘을 제물로 삼아서 제 천마의 힘을 봉인한 거군요. 당신은 아마 이제 환술을 쓸 수 없을 거예요.”
“뭐… 라고!! 말도 안 돼.”
천우진은 현실을 부정하듯 환술을 시전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느끼고 말았다.
[세계]와의 흐름이 끊겼다.
[세계]를 해석하던 위대한 의지가 단절되었다.
그가 오랜 세월 수련해서 얻어냈던 성취가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정확히는 낙인 때문에 그 의지와 통하는 통로가 막혀버렸다는 느낌이었다. 망연자실한 천우진이 멍하니 서 있자 사공린이 말했다.
“우선은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요. 더 이상 아이테눔 문디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군요.”
“어떻게 돌아가겠단 말인가? 원래 내 환술으로 이 세계에 벽을 뚫어서 탈출하려 했지만 내 능력이 봉인되어버렸고 당신의 힘 또한 봉인되었잖은가. 탈출이 불가능해졌어.”
“아뇨.”
두웅!
“아니…!!”
천우진은 경악했다. 사공린이 손을 뻗는 순간 허공에 거대한 차원의 통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명백히 사공린이 차원을 꿰어 뚫는 권능을 시전한 것이었으므로 천우진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봉인이 안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넌 어떻게 혼돈의 권능을 숨쉬듯이….”
“봉인은 됐어요. 황금의 짐승이 제 안에서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걸 느끼고 있죠.”
사공린은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제갈사가 만든 봉인 덕분에 천마(天魔)의 성질을 억누르고 순수한 마력만 끌어내서 쓸 수 있게 된 것 같군요. 최대전력에 비하면 절반 이하인 것 같지만….”
“…그렇게 편리한 봉인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제갈사가 갖고있던 마력 중 대부분을 바친 데다가 당신의 환술역량까지 대가로 삼았기에 가능한 일인 거겠죠. 그리고 혼돈에도 익숙해져서 마치 숨 쉬듯이 권능을 쓸 수 있게 된 듯합니다.”
“…….”
천우진은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정말로 제갈사 나름대로 상황을 정리해버릴 줄이야!
사공린이 말했다.
“당신의 힘을 되찾을 방법은 대웅제국으로 돌아가서 마저 얘기해보죠.”
“…그래.”
우웅
그들 둘은 아이테눔 문디에서 차원문을 열고 귀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웅제국의 본궁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돌아왔군.]
“…….”
천우진은 침음성을 흘렸다.
“크윽, 이건 대체.”
백련교주가 옥좌에 앉아서 팔짱을 낀 채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황궁의 옥좌 밑에는 선혈이 마치 장식처럼 흩뿌려져 있었고 음침한 핏내가 장내에 흐르고 있었다. 백련교주 외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옥좌의 방에서 사공린이 백련교주에게 말했다.
“백련교주. 이게 무슨 짓인가요? 초상기인을 이렇게 대량학살한 이유가 뭡니까.”
그랬다.
백련교주가 있는 옥좌의 방에는 무려 백여 체가 넘는 초상기인들이 처참한 고깃덩어리가 되어 학살당해 있었다. 그리고 고깃덩어리에 남겨진 초식의 흔적들을 보면 아무런 법칙도 없이 광란(狂亂)에 휩싸여 도살을 저지른 흔적이 여실히 남겨져 있었다. 사공린의 말에 백련교주가 대꾸했다.
[이것들이 인간은 아니잖은가. 나는 아직 마도(魔道)에 빠지지 않았다.]
“뭐라고요?”
[이것들 모두가 제갈부가 만들어 준 하급 고깃덩어리들일 뿐이다.]
백련교주의 말에 사공린이 대답했다.
“마도란 흉행(兇行)의 경중으로만 따지는 게 아닙니다. 교주의 마음이 타성(墮性)에 물든 게 아닌가요?”
[후후…. 정론이군…. 허나 내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다.]
“노력이라고요?”
[…….]
이어진 백련교주의 말에 장내가 침묵에 휩싸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에 일천 명의 피를 마시고 싶어지니까….]
“교주!!”
[이 일은 좀 있다 얘기하지. 지금은 정신이 멀쩡하니, 속히 내게 아이테눔 문디의 공략에 대해서 보고하라.]
사공린은 미심쩍은 눈으로 백련교주를 쳐다보았으나 확실히 지금은 백련교주의 이성이 견명해 보였다. 사공린은 일단 천우진과 아이테눔 문디에 도전했을 때 있었던 일에 대해서 모든 걸 보고했고, 이야기를 들은 백련교주가 탄식했다.
[오오…. 실로 천운이구나. 기적적으로 법문을 얻은 것이구나.]
“백련교주. 제갈사의 행방은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아마 시몬 마구스가 지니고 있던 만마전을 장악하러 갈 것이다. 마왕이 되었다면 할 일은 그것밖에 없지…. 그리고 자신만의 마계(魔界)를 만들어서 세력을 불리겠지…. 당장 세상에 나올 일은 없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
[법문을 얻은 건 정말 대단한 업적이다. 사공린, 천우진이여…. 그대들이야말로 영웅이다.]
백련교주는 진심으로 그들을 칭송하는 듯 했다. 그는 마도를 잘 알고 있었기에 아이테눔 문디의 사투가 얼마나 기적적인 확률로 일어난 승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공린은 물끄러미 백련교주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교주. 그렇다면 제 소원을 하나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좋다….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들어주겠다.]
이어진 사공린의 말에 백련교주는 침묵했다.
“제가 이제부터 대웅제국의 황제가 되겠습니다. 황제 자리를 제게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