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061화 (1,05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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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제갈사의 말에 백련교주가 말했다.

[무생노모의 법문이 ‘세계의 절망’이란 장소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

백련교주의 눈빛이 잠시 암흑으로 꺼지는 듯 했다. 아주 잠깐동안 일어난 일이었으나 제갈사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고 희미한 미소를 짓는 듯 했다. 그건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라. 제갈사 너는 불규칙적으로 사라지기가 일쑤이며 언젠가부터 모든 일에 대하여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게 되었다.]

“흐음. 좋아. 그럼 두 가지를 설명해 주지.”

제갈사는 전생동료들이 모인 자리에 앉아서 탁자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겼다.

“하나. 지금 내 상태부터 말해주지. 시몬 마구스와의 투쟁은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나는 이제서야 승기를 논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소모되는 힘과 심력도 늘어났기에 ‘이쪽세계’에 신경을 쓰기가 힘들었다.”

[설명이 부족하다. 어떻게 승기를 잡게 된 거지?]

“크크…. 그저 서로 몸과 영혼을 뺏기를 반복했다. 다만 나는 중간에 내게 유리한 법칙을 끼워넣은 거고.”

[또 하나는?]

“그래. 어떻게 해서 무생노모의 법문을 찾아냈는지에 대해 말해야겠지.”

제갈사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이면의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법문의 정보를 캐기 시작했다. 그리고 [옛 종족]과 거래하던 중 그 단서를 얻었는데, 단서에 따르면 법문이 봉인된 곳은 남극(南極)이다.”

[남극이라면…. 남쪽 끝으로 가면 나타나는 빙하의 대륙을 말하는 것인가.]

“그래. 거기에 있는 게 확실해.”

[그럼 남극에 있다고 하면 될 것이지 왜 ‘세계의 절망’이라고 말한 거지?]

“별개의 장소거든.”

[…설마.]

무언가를 눈치챈 듯,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듣고 있던 제갈부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계(異界)로군. 남극에 존재하는 그 이계를 가리켜 ‘세계의 절망’이라고 부른다는 말이겠지?”

“역시 천재들만 모여있어서 이야기가 빠르군. 맞아. [옛 종족]의 장로(長老)에게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그 곳은 ‘세계의 절망’이며, 정식명칭은 아이테눔 문디(aeternum mundi). 무생노모의 법문은 달마의 소멸 후 세상을 부유하다가 그 곳에 봉인된 것이다.”

“아이테눔 문디라…. 서방마도세계에서 주로 쓰는 라틴어(語)로 정한 이름이군. 마도사들이 부르는 이름일 테고, 이면종족들이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겠지.”

“크크, 그것까지 생각해서 뭐하게? 어차피 이족들이 뭐라고 부르던 발음조차 못할 텐데.”

“그렇긴 하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백련교주가 말했다.

[뭐라고 칭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장소에 법문이 있다는 것. 제갈사 네 정보가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전력을 다해서 법문을 탈환하는 게 우선이다.]

“역시 교주. 현실적이군.”

[제갈사. 그 장소의 정보를 주거나 아이테눔 문디로 안내해라. 법문탈환대를 보내겠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제갈사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뜻밖의 대답!

백련교주가 무면탈을 꿈틀거리며 안광을 빛냈다.

[왜 안 된다는 거지? 설마 제갈사, 네가 다른 마음을 먹기라도 했단 말인가?]

“…큭큭, 그렇다면 귀찮게 이런 떡밥이나 뿌리려고 여기까지 오진 않았겠지. 내가 안 된다는 이유가 왜일 것 같나?”

[잘 모르겠군…. 뭔가 아이테눔 문디에 들어가기 위해 특수한 주물(呪物)이 필요하기 때문인가?]

“그것도 있긴 해. 아이테눔 문디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열쇠가 있어야 하지. 하지만 그런 건 어떻게든 되는 문제고, 사실은 말이야….”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좌중의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었다.

“이대로 도전하면 다 죽거든. 우리 전력이 아이테눔 문디에 도전하기엔 너무 약해서 말이야.”

[……!!]

쿠웅

백련교주가 탁자를 내리쳤다. 보기 드물게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백련교주였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 지금의 나라면 팔부신중 중에서 누구라도 이길 자신이 있다.]

“호오, 그 사이에 혼돈과 태허의 융합을 좀 더 수련했나보지? 옛 상처의 여파는 회복했나? 내가 볼 때는 아직 균열이 보이는데 말이야….”

균열이란 단어에 백련교주가 움찔하는 기색이었다.

[…….]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안 돼. 이대로는 아이테눔 문디의 도전조건에 절대 미치지 못해. 지금 우리의 전력보다 최소한 10배는 강해야 이야기가 되겠지.”

[무슨… 그 정도라면….]

“짐작한 대로야. [옛 지배자]를 토벌할 수 있는 수준의 힘이 필요하다.”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옛 지배자] 토벌!

아무리 현 대웅제국의 최고급 전력들의 수준이 마왕급에 이르러 있다 해도 그건 무리였다. 대웅제국의 명운을 걸고 싸웠던 팔부신중들도 강력한 마왕이었으나 그들이 떼로 덤벼들어도 [옛 지배자] 앞에서는 벌레나 다름없는 처지가 아니었던가? 아니, 애시당초 백웅의 전생여정에 협력하며 힘을 쌓고 있는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옛 지배자]의 토벌이었으니 이 경우는 목적과 수단이 바뀌었다 할 수 있으리라.

이윽고 백련교주가 평정을 되찾고는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 아이테눔 문디는 어떤 장소이며, 어째서 그 정도의 도전조건이 필요한 것인지를.]

“자세한 이야기라고 해봤자 나조차 제대로 알지는 못해. 그저 [옛 종족]과 거래를 한 결과 얻은 정보로 유추를 할 뿐.”

제갈사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달마의 소멸 후 무생노모의 법문이 전세계에 흩어져나갔다는 건 모두 알 것이다. 그리고 그 법문 중 하나는 이면세계로 튕겨나갔고, 그 법문을 발견한 수많은 이족들이 법문을 자신의 소유로 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법문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魔力)이 잠재되어 있으니 웬만한 이족이 법문을 제대로 얻으면 패권을 쥘 수도 있고 [옛 지배자]로 승격할 수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고대에 이 지구를 지배했었던 패권종족, [옛 종족]이 나서서 법문쟁탈전을 종식시켰다. 그들은 뛰어난 지혜와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면세계의 그 어떤 이족도 법문을 제어할 기량이 없다는 걸 간파했던 거지. 그 자들은 법문이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음을 주장하며 수많은 이족의 대마도사들을 불러모아 6체의 [옛 지배자]들과 동시에 계약을 맺어서 금기(禁忌)의 세계를 창조했고 그 안에 법문을 봉인했다.”

[으음, 설마 그 자들이 나설 줄이야…. 최초의 지배종족이…!!]

제갈사의 설명에 백련교주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는 뛰어난 마도사였기에 일이 얼마나 꼬였는지를 단숨에 파악한 것이다. [옛 종족]은 이족 중에서도 강력하기로 이름높은 자들이었으므로 다룰 수 있는 마법과 마도문명 또한 인간과 차원이 달랐다. 백련교주는 생각했다.

‘그들이 작정하고 봉인에 나섰다면 최악이다. 인간의 마법으로는 절대 못 뚫는다….’

[옛 종족]의 유아(幼兒)조차도 인간 대마도사를 뛰어넘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아무리 현재는 퇴락하여 은거한 종족이라지만 인간의 마법으로 비빌만한 상대가 절대로 아니었다.

백련교주가 침묵하고 있을 때 제갈사가 말했다.

“그 금기의 세계가 바로 ‘세계의 절망’, 아이테눔 문디. 아이테눔 문디에 던져진 법문을 찾기 위해서 무수한 이족의 마도사와 인간족 마도사들이 도전했으나 그 누구도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심지어 마왕(魔王)급 존재조차도 그대로 아이테눔 문디에 먹혀버렸다고 하더군.”

[…….]

“당연한 일이야. 아이테눔 문디는 보통의 이면세계가 아니라 [옛 종족]의 제 1세대 대장로(大長老)가 자신의 목숨과 영혼을 바쳐서 만들어냈다더군. 그 정도의 상위존재가 목숨을 걸고 봉인한 거라면 만만치가 않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옛 종족]이라면 법문 쟁탈전에서 충분히 승리를 거둬서 법문의 마력을 자기들 마음대로 쓸 수 있을 테고, 빼앗긴 지상의 패권을 되찾을 수도 있을텐데 어째서 법문을 봉인하기 위해 그 정도 희생을 감수한 거지?]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아마도 지금은 아이테눔 문디의 일부가 되어있을 [옛 종족]의 대장로…. 그 존재는 뭔가 다른 걸 간파했던 모양이더군. 법문이 그저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는 걸 말이야.”

[흠….]

모두가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백웅의 전생여정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법문의 정보를 드디어 얻어내었다. 그러나 그 법문을 얻기 위해서는 강대한 마도종족이 전력을 다해 법문을 봉인한 금기의 세계, 남극의 아이테눔 문디를 뚫어야만 하고 그 난이도는 어마어마하다. 과연 거기에 도전해서 법문을 탈환하는 게 가능할 것인가?

제갈부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전생자와 필멸자의 차이가 무척 심하게 느껴지는군….’

백웅이 있었을 때라면 걱정할 게 없다. 그냥 백웅이 죽음을 각오하고 아이테눔 문디까지 달려가서 몇 번이고 들이박으면 그만이다. 어쩌면 입구에 진입하자마자 죽을 수도 있지만, 온갖 편법에 어거지를 동원해서 어떻게든 뚫을 가능성이 있으리라.

그리고 그런 식으로 백웅이 수십 번 죽으면서 아이테눔 문디를 뚫는다면 이후에는 공략법이 수립되어서 별다른 피해나 희생 없이도 법문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 전생자 없는 인간동료들 끼리라면 문제가 크다. 이 중에 백웅보다 강한 존재가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문을 얻으려고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드는 건 너무 위험이 컸다. 그들은 법문을 얻을 의무가 있지만 동시에 백웅이 귀환할 때 지금까지 얻은 정보와 성취를 넘겨줘야 할 의무도 있었다. 목숨을 걸기도 힘들 뿐더러 무의미한 개죽음 때문에 생기는 손해가 너무나 컸다. 난이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체감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구조였다.

백련교주가 이윽고 말했다.

[알았다, 제갈사. 우선은 남극에 전이문을 설치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지. 당장 도전할 수는 없겠군.]

“전이문도 힘들걸. 남극에는 이족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마력구조물은 그 자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다른 방식으로 진입할 방법을 만드는 걸 추천한다.”

[다른 방식? 수천 리에 이르는 거리를 순간이동할 방법은 전이문 외엔 없다. 본교의 염령 화덕 또한 본질적인 원리는 전이문과 같거늘….]

그러자 듣고 있던 제갈부가 말했다.

“방법은 있긴 있다. 초상기인을 응용하는 것이다.”

[어떻게 응용한다는 말인가.]

“교주. 이미 우리 대웅제국의 초상기인 제작기술은 정점에 이르렀다. 초상기인 제작술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건 호문클루스를 원하는 대로 진화시킬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초상기인의 제작 순도(純度)를 크게 높인다면 하나의 초상능력에 특화시킨 초상기인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전이문처럼 [순간이동 능력]을 특화시킨 초상기인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이론적으로는. 본래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지만 오행활강시 제작 이후 초상기인 제작기술이 크게 발전해서 말이야…. 또한 [순간이동] 능력 외에 다른 능력 또한 특화형을 만들 수 있을 듯하다.”

[재밌군. 예산은 얼마든 지원해줄테니 한 번 만들어봐라.]

그렇게 중얼거린 백련교주가 몸을 약간 뒤로 뉘이며 말을 이었다.

[과학(科學)이라고 부르는 학문이 점차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게 느껴진다. 우리가 가진 능력을 발전시켜서 과학의 발전에 좀 더 대응할 필요가 있겠지.]

“옳은 판단이다. 파우스트 박사는 이미 양자역학을 넘어선 차원의 물리학수준에 도달했으니 손쉽게 따라잡을 수 없겠지. 계속 교류하곤 있지만….”

그 때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공린이 말했다.

“제갈사. 또 어딜 가려는 거죠?”

아주 짧은 순간의 이질감.

언제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던 제갈사의 낌새를 처음으로 눈치챈 사공린이었다. 그리고 사공린의 말대로 막 사라지려 하던 제갈사는 흠칫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복음의 영역을 단순한 절대지경의 무(武)로는 알아챌 수 없을 텐데…. 점차 넘어서고 있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어쩌면…. 가능할 거 같기도 하군. 크크큭.”

스윽

그 말을 끝으로 제갈사는 사라졌다. 이번에는 사공린을 포함한 누구도 인식할 수 없는 사이에 소멸된 것이었다. 다들 뜬금없는 제갈사의 퇴장에 황당해했다. 천우진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흥! 차원을 겹쳐서 잔영을 드러내는 기술일 뿐인데 거창하게도 포장하는군…. 아무튼 난 간다. 당분간 수련을 할 거니까 찾지 마.”

“수련이라고?”

제갈부의 반문에 천우진이 대꾸했다.

“그놈의 봉인 때문에 수련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날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휘익!

이윽고 천우진 또한 사라졌다. 느닷없이 사라져버리는 자들을 보자 제갈부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백웅 놈은 도대체 저런 괴짜들을 어떻게 통솔한 것인가.”

[그게 바로 전생자가 필멸자와 다른 점이겠지…. 그럼 제갈부, 부탁한다.]

“맡겨둬라, 교주.”

그리고 대웅제국은 그 날부터 국력의 회복과 함께 [새로운 초상기인]을 만들기 위하여 기술발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초상기인의 개발에 몰두한 이유는 우선 특화형 초상기인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으며, 사실상 전생동료들의 수준을 더 이상 올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천우진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수련으로 이를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으며, 서문혜같은 경우는 혈족의 피를 더 이상 깨우게 되면 폭주할 수도 있었다. 인간 본체의 발전이 한계에 이르렀다면 남는 건 ‘도구’를 발전시키는 방법뿐이었다.

쿠구구구!!

그렇게 약 20년이 지난 시점 - 난데없이 천지가 뒤집히며 어둠의 기운이 세상에 만연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흑운(黑雲)덩어리가 모든 하늘을 뒤덮으며 무려 6일이나 머물렀으며, 그 동안에 세상천지가 암흑으로 가득 물들었다.

백련교주는 비상회의를 소집했고, 머지않아 이 이상현상의 이유를 제갈유룡을 통해서 알아낼 수가 있었다.

제사장으로써 신에게 보물을 바쳐서 공양의식을 끝낸 제갈유룡은 참혹한 표정으로 제단에서 걸어나왔다. 그가 공양의식을 치름으로써 신에게서 이상현상의 이유를 알아낸 것이다.

그리고는 전생동료들에게 말했다.

“얼마 전 현실세계에 [옛 지배자]가 강림했다. 강림한 위치는 구(舊)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이다.”

[옛 지배자] 강림!

엄청난 대사건에 모든 동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을 때 제갈유룡의 말이 이어졌다.

“그 존재의 이름은 폭왕(暴王) 카르파도크. 100개의 별을 멸망시켰으며 한 번의 숨결만으로 별을 불태우는 존재…. 성좌를 불태우는 흑룡(黑龍)이 등장했다.”

[그 존재는 설마…!!]

“그렇다. 백웅의 과거 전생에서 십이율의 세계수를 공격할 때 백련교주, 네가 인신공양 의식으로 소환했던 [옛 지배자]이지.”

[…….]

과연 우연인가?

[옛 지배자]의 개체수는 수백이나 되는데 그 중에서 하필 과거 백웅의 전생에서 연이 있던 존재가 강림하는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는가? 모두가 복잡한 마음에 휩싸여서 침묵하고 있을 때 제갈유룡이 말했다.

“그리고 폭왕을 소환한 자들은 바로 [기어오는 혼돈]을 모시는 사교(邪敎)인 블랙위시 컬트(blackwish cult). 대영제국 마도사들 중 생존한 자들이 세운 단체로 보인다.”

[그 때 뿌리뽑지 못했던 건가….]

“어떤 대가를 바쳤는지는 몰라도 폭왕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소환되었다. 사상최악의 난적이 등장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팔부신중에 비하면 어떠하겠는가?]

백련교주의 질문에 제갈유룡이 쓴웃음을 지었다.

“대답은 그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신과 마왕은 차원이 다른 존재…. 정면승부는 절대 불가능하며 승산을 논하려면 계약의 헛점을 노려서 폭왕을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다.”

[…….]

“완전히 본체가 소환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차원에서 화신이나 사도를 내보내는 건 자유로운 상태. 이것만으로도 투신 크리슈나급에 준하는 화신을 몇 번이고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

암울한 전망에 좌중에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후 백련교주가 말했다.

[……시간을 끌수록 [옛 지배자] 폭왕이 서방에서 인신공양을 잔뜩 받아서 더욱 강해질 뿐이다. 속전속결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폭왕에 준하는 강대한 유물의 힘이 필요하다.]

신은 인간의 역량으로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팔부신중 때처럼 정면승부 할 수는 없으므로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백련교주의 마음을 읽은 제갈유룡이 흠칫했다.

“정말로 할 생각인가?”

[그렇다. 다른 방법이 없군.]

이윽고 백련교주가 말했다.

[곧 대웅제국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 남극 탐사에 들어간다. 아이테눔 문디에 존재하는 무생노모의 법문을 손에 넣어 그 마력을 이용해 폭왕을 이 세계에서 퇴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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