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058화 (1,055/1,615)

1058====================

진공가향(眞空家鄕)

백련교주가 아수라가 있던 전장에 나타나기 조금 전 -

[어서 가야겠군.]

백련교주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는 막 팔부신중 건달파를 혼돈의 힘으로 소멸시켜버리고 다른 전장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것이 팔부신중과의 전면전에서 그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백련교주의 실력은 팔부신중의 상위급 마왕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었으나, 아군 책사들은 강한 자와 강한 자를 박빙으로 붙여놓는 게 전략상 불리하다고 파악했다.

왜냐하면 백련교주가 설령 천인이나 가루라보다 강하다고 하더라도 압도적으로 이기는 건 불가능했고, 백련교주가 강력한 마왕과의 싸움에서 시간을 끄는 동안에 범위전멸기가 많은 다른 팔부신중 때문에 변수가 커질 확률이 극히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달파의 경우 직접전투력은 약한 편이었으나 음파주술을 제대로 쓰면 세뇌나 진형파괴의 위력이 엄청났다. 팔부신중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한 책사들은 상대방의 강점에 맞서기보다는 확실하게 1승을 챙기는 전략이 낫다고 여겼다.

‘건달파를 처리했으니 이제 나머지를 하나하나 죽여야 한다.’

완전한 시간싸움이다. 생각보다 건달파의 저항이 강해서 손쉽게 죽이지 못해서 시간을 꽤 잡아먹은 걸 알고 있는 백련교주로써는 촌각이 아깝게 느껴졌다.

우웅!

백련교주가 흑암의 힘을 떨쳐내자 반경 오십여 리 내에 그 파장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파장이 닿이는 범위에 있는 자들의 대략적인 힘의 크기와 위치가 그에게 감지되었다. 백련교주는 전투상황을 파악했다.

‘야차는 처리한 것 같군. 천인은 작전대로 잘 붙잡아두고 있고 가루라는…. 설마 해치웠단 말인가? 대단하구나.’

백련교주는 아군의 저력에 크게 놀랐다.

엄청난 쾌거!

사실 절대지경 고수들을 잔뜩 가루라의 상대로 붙이면서도 승산을 높게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까지 백련교주가 직접 가루라를 상대해야할지를 크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팔부신중 최강은 천인으로 불리지만 가루라의 신염이 지닌 공격력이 너무 높아서 아군의 희생이 클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괴대전 도중에 당산의 절대지경, 무형지독이 어느 정도 가루라의 움직임을 둔화시킬 수 있다는 게 확인되었기에 그걸 믿고 시간을 벌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가루라를 둔화시킨다면 충분히 사망자 없이 가루라를 상대로 지연전을 벌일 수 있었다.

그런 당초의 예상을 뛰어넘고 인간 절대지경만의 힘으로 가루라를 토벌했다는 것.

백련교주는 그 사실에 무언가가 마음 속에서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것은 그가 마도에 몸담은 이래 느끼지 못했던 희망(希望)이라는 이름의 감정이었다. 그는 잠깐 감상에 젖었다가 빠르게 현실적 판단을 내렸다.

‘좋다. 그럼 내가 제갈세가와 합공해서 천인을 박살내기만 하면 이번 전쟁은 이긴 것이다.’

오행활강시들이 천인의 술법을 중화시키는 사이에 백련교주가 천인을 공격해서 체력을 깎기만 해도 필승이다. 백련교주는 길고 길었던 요괴대전의 끝이 보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때였다.

[크헉… 으… 으으.]

백련교주는 심중에서 비어져나오는 어마어마한 격통에 그만 신음성을 흘렸다. 웬만한 고통에는 내성이 생길 정도로 수양이 깊은 백련교주였으나 너무 끔찍한 고통이라서 참아내지 못할 정도였다. 산 채로 심장을 바늘로 꿰뚫어 후비는 듯한 격통!

털썩

그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게 무슨 일….’

그리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혼란스러워 했는데, 그 때 어둠 속에서 그의 머릿속에 꽂히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에 몸을 던진 자여. 고대신의 영에 의해 이어진 계약을 인식하고 있는가?]

[……!!]

그 목소리에는 현재의 백련교주조차도 상상하기 힘든 가공할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백련교주는 이 정도 수준의 마력을 지니는 존재가 오로지 전 우주에서 하나의 부류 뿐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옛 지배자]!

‘올 게 왔구나….’

백련교주는 내심 암울한 절망과 함께 체념의 감정을 느꼈다.

그랬다.

백웅의 실종 후, 백련교주는 자신이 보유한 원영신과 호법사자들의 천령단이 모조리 소멸될 거라고 예감했다. 본디 해신의 핵을 얻어서 다른 지배자에게로 계약을 이전할 예정이었는데 해신은 해신대로 소멸하고 백웅조차 소멸해버려서 아무런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원영신과 천령단은 아무런 이상없이 작동했고, 도리어 예전보다 더욱 연결이 좋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백련교주는 그 이유를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백웅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다른 [옛 지배자]에게로 계약을 이전해 준 것이다.

백련교주는 그 이유를 알아내려 했으나 해신 대신에 그 계약의 중개인으로 참여한 게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존재와 마도의식으로 대화를 하려고 해도 상대편에서 계속해서 거부해왔고, 심지어 이름조차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백련교주는 물론 백련교에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마치 지켜보겠다는 듯이.

그 사실이 못내 찜찜했으나 교주는 [옛 지배자]에게 뭔가 강요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십년 이상 지나서야 새로운 계약의 중개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백련교주는 꿰뚫는 격통이 심화되는 걸 의지력으로 참으며 말했다.

[위대한 존재시여. 여태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다가 계약자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관조했다.]

잠시동안 침묵하던 ‘그 존재’가 말을 이었다.

[과거 우주의 축을 이루는 위대한 정령신 중 하나가 내게 계약의 중개인을 제안해 왔다. 거절할 이유도 승락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아주… 아주 위대한 존재들의 거대한 판이 벌어진다는 걸 이윽고 알 수 있었고 나는 큰 흥미를 느꼈다.]

[…….]

[정령신이 내게 간섭하지 못한다는 걸 지난 세월동안 충분히 확인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백련교주는 그 말에서 전후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백웅의 사대신기…!! 그 사대신기의 힘을 이용해서 계약을 이전했구나. 그리고 계약의 중개인이 된 [옛 지배자]는 정령신이 자신에게 간섭할까봐 상황을 살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존재는 해신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고위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사대신기에 봉인된 정령신들은 우주의 축을 이루는 어마어마한 자들이었고, 그런 존재에게서 계약을 위탁받을 정도면 [옛 지배자]중에서도 격이 높은 자였다. 뿐만 아니라 침착하고 냉정하게 우주의 인과율을 읽어 전생자 백웅에 얽힌 거대한 음모의 흐름까지 눈치챘으니, 실로 무서운 자였다.

‘내게 강신해서 이 세상을 지배하려 하는구나.’

백련교주는 그게 뜻대로 될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옛날옛적에 이미 해신이 백련교주와 백련교를 수하로 삼았으리라. 백련교주가 만들어낸 원영신과 천령단의 계약은 중개인과는 완전히 독립되어 있었으므로 [옛 지배자]의 뜻대로 휘둘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백련교주가 말했다.

[위대한 존재여. 계약에 따르면 그대는 나를 화신이나 사도처럼 부릴 수 없습니다. 내게 저주를 내려서 죽이는 건 가능하겠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존재는 마치 가소롭다는 듯 백련교주에게 대꾸했다.

[하찮은 계약자여. [지배자]를 한갓 인간의 지혜로 제어할 수 있다 생각하느냐? 내가 바로 지금 이 순간 나타난 이유를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느냐? 이미 계약의 헛점은 드러났노라.]

[뭐라고….]

계약의 헛점?

그런 게 있었단 말인가?

백련교주가 영문을 알지 못해서 멍하니 있자, 이윽고 그의 심장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혼돈화한 육체로도 견디지 못할 정도였고, 이 마력이 모두 흘러넘칠 경우 이 행성을 순식간에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백련교주는 전력을 다해서 자신의 몸으로 마력을 담아내려 했으나 감당이 불가능한 수준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크윽… 으으윽….]

백련교주는 고통 때문에 주저앉으며 힘겹게 말했다.

[이… 이런…. 혼돈의 옥좌에서 마력을 강제로 내 몸으로 밀어넣는단 말인가….]

마치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백련교주의 귓전에 울려퍼졌다.

[버틸 수 있겠느냐? 이 정도의 마력을 버텨내는 걸 보면 역시 보통 필멸자는 아니구나.]

[크윽!! 뒷감당을… 어찌 하려 하는가…!!]

백련교주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옛 지배자]에 대한 존대조차 잊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 마력은… 가장 위대한 자… [아버지]의 옥좌에서 직접 퍼올린 마력이다…!! 이 마력이 흘러넘쳐서 폭주하면 이 행성뿐만 아니라 당신도 멀쩡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성계가 통째로 파멸할지도 모르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후후후후.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의문의 존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의 권속이 되기를 바란다면 너를 대신해서 마력을 제어해주마. 너는 이제부터 영겁토록 내 사도가 되며 내게 몸과 영혼을 바치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것 같으냐…!!]

[마음대로 하거라. 나는 네가 폭주한 후에 그 잔해만 수습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전장에 나와있는 네 동료들은 모두 소멸될 것이다.]

[모두가 죽음을 각오한 자들이다. 그런 위협따위 통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소멸하는 한이 있어도 너같은 자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다.]

[하긴 그렇군. 너는 원래부터 광인(狂人). 동료 때문의 의지를 꺾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을 노린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느냐?]

[…….]

백련교주가 상황을 이해하고 말했다.

[원영신의 힘으로 태허와 혼돈을 융합시켜 제어할 때가 가장 혼돈의 범람에 취약하기 때문인가.]

[태허라 불리는 그 좁쌀만한 힘으로 태초의 혼돈을 제어하는 건 분명한 한계가 있겠지. 이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그리고 내가 건드리지 않아도 너는 혼돈에 물들어 눈에 보이는 모든 걸 학살하게 될 것이다.]

[…….]

[하지만 내게 모든 걸 바친다면 네 동료들만은 살려주마. 그리고 대웅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해주마.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달콤한 유혹….

백련교주는 암담한 심정이 되었다. 의문의 존재가 정확히 그의 약점을 찔러왔기 때문이었다. 완전한 외통수에 몰려버려서,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남은 건 파멸밖에 없었다. 그리고 백련교주는 혹하는 기분이 들었다.

‘강력한 [옛 지배자]의 힘을 등에 업는다면…. 종말의 때까지 버티고도 남는다. 저 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러나 백련교주는 이윽고 의지를 곧추세우며 분명히 말했다.

[거절한다…. 그대는 결코 내 영혼을 지닐 수 없으리라.]

[좋다…. 그렇다면 원초의 마력으로 타락시킬 수밖에.]

쿠구구구!!

원영신과 연결된 옥좌에서 말도 안 되는 혼돈의 마력이 흘러들어온다. 백련교주는 평상시 계약과 중개인을 통해서 필요한 만큼만 가져왔으나, 이번에는 중개인이 마음대로 자기 힘을 써서 필요이상으로 범람시키고 있었다.

실로 우주적인 단위의 마력!

백련교주는 그 아득한 마력때문에 점차 인성을 잃어버리고 미치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백련교주는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쥐었고, 이윽고 인간성을 잃어버렸다.

‘나는 여기까지인가….’

의지력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예전에 넘어버린 탓이었다. 백련교주의 의식이 마치 촛불이 꺼지듯 사라져 버리자, 서서히 백련교주의 몸에 어둠의 기운이 강림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

백련교주의 눈에 은광(銀光)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빛은 잠시 동안 요사스럽게 빛나더니, 백련교주의 몸에 흘러넘치던 혼돈의 기운을 빠르게 제어하기 시작했다. 백련교주의 몸을 차지한 존재가 이윽고 중얼거렸다.

[혹시 해서 외차원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이 세상에 단말을 남겨두기를 잘 했군.]

원래 이 존재, 어둠의 군주는 한 차례 지상에 강림해서 지상세계를 뒤엎고 동영의 코토아마츠카미들과 전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코토아마츠카미들과 휴전하고 자신이 원래 있던 외차원으로 되돌아갔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세상에 언제든 귀환할 수 있는 단말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 단말은 백제(百濟)에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난데없이 머나먼 우주의 원초에 그와 인연이 있던 바람의 정령신이 그에게 제안을 해왔다. 계약이전을 해 달라는 청이었다. 그는 상황을 살펴보고는 신중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단말을 통해서 서서히 외차원에서 자신의 힘을 현실세계로 옮겨왔다. 중개인이라는 명분으로 이 세상에 간섭할 인과율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쿠구구구

본디 백련교주가 지니고 있던 혼돈화의 힘이 모조리 사라지고 평상시의 무면탈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억지로 혼돈과 태허를 융합시켜서 다스리는 기술을 시전하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혼돈의 존재로 신화(神化)했기에 일어난 변화였다.

백련교주의 모든 힘을 어둠의 존재가 혼돈의 신으로써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시작해 볼까. ‘그 분’을 위하여 우선 인간종족을 내 손에 넣어야겠다.]

광기에 물든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는 백제(百濟)의 시조왕(始祖王), [하늘에서 내려온 자] 비류(沸流).

실상은 위대한 혼돈을 섬기는 [옛 지배자]의 일좌이며 어둠의 군주였으며, 고대 삼국시대에 동영의 악신인 코토아마츠카미들과 전쟁을 벌인 존재였다. 그는 천계도 떠난 상태이며 삼황오제조차 없는 이 무주공산에서라면 자신이 절대신이라는 걸 분명하게 확신하는 중이었다.

아수라(阿修羅)는 두 방만에 백련교주에게 얻어맞아서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도 상황을 빠르게 판단했다.

‘틀림없어. 저건 [옛 지배자]…!’

그는 마왕으로써 세계의 이면차원에 접할 기회가 많았기에 [옛 지배자]를 직접 대면할 일도 많았다. 그리고 웬만한 [옛 지배자]들이 지닌 힘의 수준과 강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수라가 판단하기에 이 정도의 권능을 지닌 존재는 [옛 지배자]중에서도 상위에 꼽히는 존재였다.

어쩌면 삼황오제 수준일지도 모르는 괴물.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수라가 백련교주를 얕보지 않고 덤빈 덕에 그는 최대전력을 끌어낸 상태였고, 그 힘을 모두 발휘해서 방어한 덕에 치명상까지는 입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수라는 내심 생각했다.

‘좋아. 도망치자….’

강한 자에게 도전하는 것도 어느 정도이다. 저 상대는 생사를 걸고 싸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아수라를 파리처럼 잡아죽이는 게 가능했다. 그건 아수라가 원하는 투쟁이 아니었으며 학살당할 뿐이다. 그는 진정한 신과 싸우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팔부신중 전원이 힘을 합치면 싸워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그를 제외한 모든 동료들은 죽거나 봉인되었다. 싸우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잠시동안 몸을 사릴 필요도 있었다.

아수라는 자신의 힘을 빠르게 마력으로 회복한 후 뒤로 물러났다.

[신이여! 날 잡아죽인다고 힘 빼지 마시길….]

파앗!

아수라가 순간이동으로 도주하려 했다. 그 모습을 멀리에서 지켜보던 [옛 지배자], 비류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널 잡는데 힘을 뺄 필요까지 있을까… 벌레놈이 감히.]

후우우

바람이 부는 듯 했다. 유구한 우주의 흐름을 조종하는 것이 바로 비류의 특기 중 하나였다.

심지어 지금은 보통의 화신체를 운용하는 것도 아니고 간접적으로 [옥좌]에 연결된 지상최강의 마법사의 육체를 쓰고 있다. 비류가 쓸 수 있는 힘의 폭 또한 크게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쉬쉭!!

[아, 아니!]

그리고 순간이동으로 사라졌던 아수라의 신형이 순식간에 비류의 앞에 나타났으며, 아수라는 낭패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수라는 크게 당황했다.

‘마왕인 내 마력을 아예 무시하고 공간째로 강제소환이라고?! 도대체….’

이 정도면 틀림없이 창힐의 힘을 뛰어넘는다.

아수라가 생각했던 이상의 격차가 존재했다. 이렇게나 강한 [지배자]일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아수라가 보아왔던 중하급의 [지배자]들과는 원초적으로 다른 존재다. 그런 [옛 지배자]들을 상대로 종종 싸움을 걸어봤다가 도주한 적 있었던 아수라였기에 이번에도 자신감을 가졌었는데,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도주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대였다.

아예 출신 자체가 다른 절대자!

강력한 마왕들과 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하급 [옛 지배자]와는 격이 다른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헉….]

그 사실을 실감한 아수라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말았다. 백련교주의 몸을 빌린 저 존재의 은빛 안광이 몸서리 쳐지도록 무서웠다.

비류가 싸늘하게 웃으며 손을 움켜쥐었다.

우지지직!!

순식간에 아수라 몸 본체에서 여섯개의 팔이 몽땅 부러져 버렸다. 아수라가 고통섞인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

[엄살을 부리는군. 이제 시작인데 말이다.]

스윽

[머리가 왜 이리 많으냐? 징그럽구나.]

허공에서 두 개의 거대한 손가락이 떠올라서 천천히 아수라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삼두(三頭) 중 하나가 손가락에 집히자 아수라는 절망에 빠진 얼굴이 되고 말았다. 비류는 잔인한 미소를 흘리며 서서히 힘을 주었다.

뿌드드득

쿠직!!

잠시 후 목의 뼈와 함께 아수라의 삼두 중 하나가 산 채로 뽑혔다. 아수라의 두 개의 머리는 그 끔찍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악!! 아악!!]

비류가 자애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머리가 세 개나 되는데 하나쯤 뽑으면 어떻느냐? 마왕 정도 되면 참을성이 있어야지.]

[으아아악… 크악.]

[너희같은 벌레들을 보면 성이 나는구나. 강력해봤자 기껏 신의 피조물인 주제에 마왕이라고 건방지게 날뛰다니, 태초의 혼돈에서는 턱도 없는 일이지.]

뿌득

아수라의 머리통 중 하나가 서서히 뽑히기 시작했다. 아수라는 이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통에 전율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비류가 말한 것처럼 벌레의 팔다리를 하나하나 뽑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하하하하하!! 팔도 네 개 뽑아주지.]

비류가 광소를 터뜨렸다.

“…….”

멀리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망량은 이윽고 눈을 질끈 감았다.

‘끝장… 이다.’

[옛 지배자]가 백련교주의 몸을 빌려 강림한 이상 그 어떤 계책도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군 최강인 백련교주의 원영신까지 손에 넣은 지배자를 어떻게 상대한다는 말인가? 이 자리에 백웅이 있더라도 해결하기 힘든 대위기였다. 심지어 지금은 아군 모두가 피폐해져 있으며 벌레처럼 목이 날아가는 아수라조차 상대하기 힘들었다.

학살당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옛 지배자]의 성향은 대부분이 극악했기 때문에 필멸자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리라.

“여기까진가….”

망량은 천신만고를 다한 끝에 파멸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백웅은 어디에도 없었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남은 건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리라.

그 때였다.

“현아. 눈을 떠라.”

제갈부의 목소리가 망량의 귀에 들려왔다.

망량은 어느 새 자신의 앞에 제갈부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아까 죽은 것 같았지만, 아수라의 앞에서 죽은 척 하고 의체로 정신을 옮겨서 새로운 육체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상황은 다 파악하고 왔다.”

어째서인지 그렇게 말하는 제갈부의 얼굴은 크게 어두워져 있었다.

그러나 망량은 제갈부의 생존에 기뻐할 수가 없었다.

“형님. ‘저건’ [옛 지배자]입니다. 설령 팔부신중과 싸우지 않은 만전의 상태였다 해도 우린 저 존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알고 있다. 제갈가의 책사쯤 되는데 그걸 모를 리가 있겠느냐.”

“도망쳐도 무의미합니다. 이젠 우리 스스로의 정신을 파괴하고 자살할 수밖에 없습니다.”

“…….”

“저 존재에게 전생자 백웅의 정보를 넘겨선 안 되니까요.”

포기한 듯 중얼거리는 망량을 힐끔 제갈부가 되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현아. 넌 백웅이 사라진 후 많이 변했구나.”

“변했다고요?”

“그래. 조급해지고 어리석어졌다.”

한 마디로 망량을 혹평한 제갈부가 잔잔하게 말을 이었다.

“예전의 너는 의협심이 넘치고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님은 그런 네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너를 마도에 물들이고 싶지 않았고, 일부러 너를 홀대하여 강호로 내쳤다. 잔인한 이 세계의 진실을 알지 못하게 해서…. 네 운명을 자유롭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

“너는 왜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망량이라는 명호를 쓰는 것이냐? 그저 망량선사를 동경해서?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너에게는 단순히 백웅의 책사, 그 이상의 천명(天命)이 있을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형님…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십니까.”

“너야말로 우리 제갈세가의 희망이다. 재능을 지닌 자는 많으나, 의기(義氣)를 지닌 자는 드물다. 그리고 귀환하게 될 백웅에게 의기를 불어넣어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건 바로 너 뿐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런 재능은 없으니.”

저벅

제갈부는 앞을 쳐다보며 어깨를 펴고 걸어갔다.

그는 한 손에 백우선을 치켜들었다.

“지금부터 여긴 내가 지휘한다. 너는 내 지휘에 따라라.”

“…….”

“정신차려라. 아직 안 끝났으니까.”

망량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휘라고?

지금 지휘가 의미가 있는가?

적은 어쩌면 삼황오제급일지도 모르는 [옛 지배자]의 현신.

적과 아군 사이에는 인간과 개미, 그 이상의 전력차가 존재한다. 그 어떤 계책으로도 이런 힘의 차이는 뒤집을 수가 없다. 이 비현실적인 악몽에서 아직도 지혜를 내세우며 역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제갈부가 외쳤다.

“독고성! 신승! 명룡자! 한백령!!”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제갈부에게로 향했다. 제갈부가 피끓는 외침을 내질렀다.

“아수라를 구출한다! 지원군이 올 때까지, 아수라를 구출할 수 있으면 이길 수 있다! 나를 따를 수 있겠는가!!”

제갈부의 말은 말도 되지 않는 것처럼 들렸다. 그것은 심지어 책사가 아닌 무인들에게도 느껴졌다. 무인들 또한 백련교주가 무언가 이상한 존재에 씌었으며, 그 힘이 파천황적이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도 승산을 논하는 제갈부!

이미 책략이 아닌 광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독고성은 순간 제갈부의 눈빛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자. 생사의 경계를 넘으면서 한 꺼풀 벗었군…. 격이 달라졌다.’

저런 눈빛을 지닌 자를 믿어서 손해볼 건 없다.

그렇게 생각한 독고성은 의념을 곧추세우며 쩌렁쩌렁 외쳤다.

“좋다, 제갈부!! 이 뇌신류의 독고성, 그대를 믿고 목숨을 걸겠다!!”

독고성이 절망을 극복하자 옆에 있던 세 명 또한 영향을 받은 것일까? 절망에 물들어 있던 나머지 셋도 투기를 발휘했다. 그러자 제갈부는 즉시 술법을 전개했다.

낙혼별부!

부적이 가득 떠 있는 이공간이 소환되었다. 낙혼별부로 주변을 둘러싼 제갈부가 작전을 말했다. 신의 도청을 염려해서 소환한 낙혼별부였다.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다. 내가 빈틈을 만들 테니, 너희는 낙혼별부의 방어를 두르고 최대의 힘으로 백련교주에게 빙의한 자를 공격해라.”

“기회를 만들 수 있겠는가? 저건 신(神)이다. 마왕이 평소에 두르는 결계조차도 뚫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신이 펼치는 시공간왜곡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날 믿어라. 나라면 할 수 있다.”

“훗…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군.”

독고성은 헛웃음을 흘렸지만 이윽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해 보자.”

독고성은 전장에 꽂혀있던 아무 검이나 뽑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제갈부가 먼저 백련교주에게 빙의한 비류를 향해 달려들었다.

“신이여!! 횡포를 멈추시오!”

아수라는 이미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비류는 이미 선언했던 대로 아수라의 머리 두 개를 뽑아버리고 팔 네 개를 뽑은 후 인사불성이 된 아수라를 갖고놀고 있었다. 아수라의 내장을 뽑고 있던 비류는 제갈부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걸 보자 어이가 없어했다.

[날파리 따위가 감히.]

비류는 가볍게 두 손가락을 집듯이 마주쳤다.

퍼벙

그러자 달려들던 제갈부의 몸이 순간 짜부라져서 터져나갔다. 혈우(血雨)가 허공에 흩날리자 마치 제갈부가 개죽음을 한 것처럼 보였다.

우웅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육편이 되어서 죽었던 제갈부가 그 공간에 다시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비류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부드러운 돌을 썼군. 필멸자의 잔꾀구나.]

[부드러운 돌]에 존재하는 완전한 생명의 권능. 그걸 이용하면 설령 신의 권능으로 일격사 당하더라도 즉시 원상태로 부활하는 게 가능했다. 영겁불사를 상징하는 [부드러운 돌]의 위력이었다.

“받아라!”

제갈부는 손에서 [부드러운 돌]을 떨쳐냈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돌에서 현자의 빛이 번뜩였고, 모든 물리법칙을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연금술의 극의가 발현되었다. 이름하여 현자의 돌이라고 불리는 궁극의 물체가 처음으로 진정으로 완성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파앗!!

현자의 돌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이 제갈부를 감쌌다. 그러자 일시적으로 비류의 모든 권능을 막아내는 면역 상태가 되었고, 비류는 제갈부가 지척까지 접근하는 걸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크윽!”

그리고 제갈부는 다음 순간 칼을 들어서 자신의 심장에 찔렀다. 이 몸뚱이는 제갈부 본인이 아니라 오행활강시의 몸을 빌린 것이었기에 자살에 머뭇거림은 없었다.

푸욱

제갈부의 생명력이 빠르게 꺼져갔다. 또한 제갈부가 의체로 죽는 것과 동시에 그의 가슴팍이 열리면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무언가]를 확인한 비류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멈추고 말았다.

[아니… 어째서 이게 여기에.]

나풀거리며 나타난 족자같은 무언가 -

그 무언가가 빛을 내며 권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토요(土曜) 팔괘도(八卦圖)

해방(解放)

신능봉인(神能封印)

번쩍 - !!

제갈부의 오행활강시가 소멸되면서 해방토요의 빛을 뒤집어쓴 비류가 어지러운지 비틀거렸다.

“지금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살아남은 절대지경 고수들이 비류를 공격했다. 의념천주를 기반으로 한 공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오자 비류가 노해서 외쳤다.

[벌레놈들이 감히!!]

비류가 권능을 발휘해서 일거에 모든 인간들을 소멸시키려 했지만 권능이 발현되지 않았다. 삐끗거리며 힘이 발휘되지 않는 걸 확인한 비류가 당황했다.

[큭… 이런.]

비류는 어쩔 수 없이 원래 몸주인의 힘을 발휘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비류가 백련교주의 혼돈을 끌어내어 사방에 흑암을 분출했고, 그 흑암의 기둥이 짧은 시간에 천지를 모조리 분단하는 것 같았다.

쿠오오오

그 사이에 아수라는 비류의 손에서 해방되어 땅에 떨어졌고, 대기하고 있던 망량의 토둔술으로 안착했다. 아수라를 구출하자 어느새 깨어나 있던 사공린이 유아독존을 발휘해서 비류를 공격했고, 비류는 사공린까지 가세하자 단번에 반격하지 못하고 방어로 일관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숨을 열 번 쉴 정도의 시간.

망량은 제갈부가 토요팔괘도를 심장에 봉인시킨 오행활강시를 이용해서 비류의 권능을 일시적으로 봉인한 계책의 전모를 알 수 있었다. 원래는 천인을 상대로 시간을 끌다가 헛점이 보이면 천인의 권능을 봉쇄해서 소멸시키기 위해 숨겨둔 토요팔괘도였는데 어쩌다보니 진짜 신을 상대로 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디 미해방상태이던 토요를 해방시키는데 진정한 현자의 돌을 소모시켜서 해방시키는데 성공했고, 해방토요는 일시적이지만 [옛 지배자]의 신능조차 봉인할 수 있었다. 일련의 작전은 무척이나 유려해서 완벽주의자인 제갈부다웠다.

“…….”

그러나 망량은 아직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망량 또한 이 계책 정도는 쓸 수 있었지만 시도하지 못하고 절망에 젖었던 이유는, 이 다음에 도대체 어떻게 하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아수라를 구해내면 뭐하는가?

잠깐 기습해서 신을 봉인하면 뭐하는가?

어차피 코끼리와 개미 차이의 전력차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해방토요의 신능봉인이 끝나고 나면 분노한 신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할 뿐이다. 그래서 고문당하다가 백웅의 정보를 다 털어낼 바에야 자살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형님…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 때였다.

제갈부는 빠르게 쓰러진 아수라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불완전한 현자의 돌을 그에게 던지며 외쳤다.

“아수라!! 빨리 회복해라!”

[…….]

“토요가 신의 권능을 봉인하는 동안에 저 자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건 당신뿐이다!”

아수라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뭐라고….]

“같이 죽기 싫으면 싸우란 말이다.”

그 외침을 들은 망량은 경악했다.

‘무모해!’

확실히 이 상태에서 최강의 공격력을 지닌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아수라였다. 불완전한 현자의 돌이라 해도 높은 회복력을 지니고 있으니 아수라는 금세 회복해서 힘을 전개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과연 방금 전까지 아군과 목숨걸고 싸우던 아수라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너무나 도박 그 자체였다.

아수라는 제갈부가 던져준 현자의 돌을 들고 잠시 고민했다. 그러더니 돌을 입으로 삼켜버렸다.

우웅

이윽고 현자의 돌이 아수라의 몸을 회복시켜 주었다. 입은 부상의 절반 이상을 단숨에 회복한 아수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윽고 말했다.

[이런다고 너희와 같은 편이 된 건 아니다.]

“알고 있다.”

[나는 빚은 반드시 갚는다…. 저 놈에게 한 칼을 먹여주겠다!]

아수라가 전방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아수라가 비류에게 덤벼들기 직전, 제갈부가 망량을 돌아보며 외쳤다.

“현아, 지금이다.”

이어진 말에 망량은 일생일대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타신편(打神鞭)을 써라!!”

신(神)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천계 유일의 신성파괴보패, 타신편!

망량에게는 그 소환권이 있었다.

그리고 제갈부는 아수라가 신능이 봉인된 비류를 상대로 적멸무극을 써서 빈틈을 만들어내면 망량의 타신편으로 끝장낸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과연!’

절대적으로 옳은 전략이다.

제갈부의 말대로 해야만 한다. 아마 망량은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신격을 본 순간의 공포 때문에 머리가 냉정하게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러나 망량은 그 순간 깨닫고 말았다.

더할 나위없이 절망적인 진실이었다.

‘구천현녀님의 예지가… 발동되지 않아.’

지금은 - 타신편을 써야할 때가 아니다.

‘말도 안 돼…. 지금조차도 아니라고?!’

구천현녀의 예지가 발동할 때 단 한 번 타신편을 발동해야 하는데, 심지어 지금도 ‘그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크윽!!”

하지만.

망량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손을 뻗었다.

‘예지가 어쨌단 말인가…!!’

아군이 전부 살해당하는 것보단 차라리 기회를 잃어버리는 게 나으리라!

백웅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말 것이다!

망량은 처음으로 예지라는 운명을 어기고 현실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그가 인간으로써 내린 선택이었다.

그리고 외쳤다.

“와라, 타신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