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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제갈유룡의 검이 아수라의 [영역]을 관통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수라는 마왕이긴 하지만 무술인으로서도 정점에 이른 달인이었기에, 그는 평소부터 눈과 같은 오감에 의지하지 않고도 초극속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그만의 결계를 지니고 있었다. 어지간한 속도로는 아수라에게 일격을 먹이기 전에 감지되어 마찬가지로 의념으로 반격당하고 만다.
그러나, 그럼에도 제갈유룡의 칼날은 유려하게 아수라의 결계를 관통해 어깻죽지의 살을 후벼내고 있었다. 한 호흡 늦게서야 그 사실을 알아챈 아수라는 내심 경이로움을 느꼈다.
‘예상을 뛰어넘는군.’
생물체가 내는 속도의 한계 이상이라 해도 감지해내는 게 절대지경 고수들의 결계. 그러나 그걸 또 다시 뛰어넘은 속도라는 건 -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로 도달했다는 소리다. 무(武)를 이용해서 가속시키긴 했겠지만 가속에만 특화된 경지가 아니면 한계가 있으니. 아수라는 방금 전 제갈유룡이 제갈부의 도움을 받아 시전한 술수가 굉장한 위력을 갖고 있다는 걸 즉시 인정하게 되었다.
만국검술(蠻國劍術)
인아검승류(引雅劍乘流)
작약(芍藥) 비(泌)
퉁!!
허나 아수라는 정확히 두 치 깊이의 상처만을 허용한 채 바로 검을 휘둘러 제갈유룡의 검날을 쳐 냈다. 소름끼칠 정도로 정밀한 검강(劍罡)이 검막(劍幕)을 이루며 튕겨내는 형상이었다. 그는 수천 년 동안 천하를 돌아다니며 무수히 많은 유파의 무예를 습득했으며 그 중에서 지금 상황에 가장 적절한 검법의 초식을 시전한 것이다.
아무리 감지범위를 뚫렸다 해도 인식했다면 그건 분명히 감당할 수 있는 공격이다. 설령 아수라가 뇌신지혼을 맞이한다 해도 지금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응에는 큰 차이가 없으리라.
달리 말하자면 이 정도도 해낼 수 없다면 절대지경이자 강호지존급 고수라 할 수 없다.
끼이이익
아수라와 부딪힌 제갈유룡의 검이 기음(奇音)을 토해냈다.
‘큭…. 역시 엄청난 검기.’
단순히 일 초의 교환이었지만 제갈유룡은 직감할 수 있었다.
같은 절대지경이라지만 그와 아수라 사이의 수준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실전경험은 물론이고 무예의 깊이나 활용도에서 달인와 어린아이 수준의 차이가 났다. 의념천주를 이용해서 어느 정도는 대적한다 해도 결국 무수히 쌓이는 손해를 이겨내지 못하고 아수라의 절기에 목을 내어주리라. 단순히 절대지경에 오른다 해서 대웅제국의 고수들이 검선 여동빈과 동급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였다.
제갈유룡은 아직까지 육문에서 힘의 상승을 억지로 막은 채 목구멍에서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핏물을 억지로 삼켰다.
‘아직… 안돼…. 팔문은 열면 안 돼!’
지금의 일격으로 확신했다. 제갈유룡은 팔문개방시의 위력을 정확히 추측하고 있었으므로, 이대로 팔문을 계속 개방해서 한 식경을 다 때운다 하더라도 몰아붙이기만 할 뿐 아수라의 절묘한 절대지경의 무예와 의념에 치명타를 하나도 못 주리라. 제갈부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제대로 상대하려면 전략적으로 상대를 방심시켜서 한 순간에 팔문의 잠력을 대폭발시키는 방법을 써야 한다.
대라멸진.
일순간이지만 인간이 마왕급과 대적할 수 있게 해주는 금단의 비술. 실제로도 제대로 싸운다면 아수라의 오십 초도 받아낼 수 없는 제갈유룡이 기습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게 해 주었다. 육문만으로도 이 정도라면 팔문을 다 열면 분명히 승기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 이건 극히 불완전하며 위험하다.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저 자폭으로 끝날 뿐이다.
‘전략적으로 써야 한다.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려야 해….’
이를 악무는 제갈유룡의 머릿속에 지난 세월의 연구결과가 스쳐지나갔다.
백웅 실종 후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웅제국에 정식으로 초빙되어 의술연구에 참여하게 된 화씨세가의 가주, 광명신의(光明神醫) 화서명(華徐冥)은 대뜸 말했다.
“태산노옹(泰山老翁), 그건 포기하시오!”
화서명의 앞에는 제갈유룡이 탁자를 두고 마주앉아 있었다. 그는 화서명에게 예를 표할 필요성을 느꼈기에 자신의 숨겨진 신분인 태산노옹을 이미 밝힌 상태였다. 제갈유룡은 화서명의 말에 차를 한모금 마시고는 대답했다.
“왜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오?”
화서명은 떫은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그대가 우리 화씨세가의 최후오의인 대라멸진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있는지 모르겠고, 그 시전방법을 어찌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허나 당신의 말대로 대라멸진을 누구나 쓸 수 있게 고쳐서 양산형 폭주기(暴走技)로 쓴다는 건 불가능하다 말해두겠소!”
제갈유룡은 백웅이 실종된 김에 대라멸진이라는 강력한 비술을 개량해서 누구나 쓸 수 있는 잠력격발기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하려고 보니 전제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진짜 전문가인 화서명을 초빙해서 자문을 구한 것이었다.
“화서명.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있는지 먼저 들어보시오.”
제갈유룡은 천천히 대라멸진의 구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읊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대라멸진의 비술은 절묘하게 인체에 숨겨져 있는 삼대단전(三大丹田)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원리요. 하나하나의 시침을 할 때마다 단전의 고리가 풀리게끔 되어있고, 그 비좁은 틈새가 천천히 무너지고나면 마침내 생명체의 원영(元靈)을 직접 끌어쓸 수 있는 것. 그렇지 않소?”
“아주 잘 이해하고 있구려. 허허! 우리 화씨세가의 업적이오.”
제갈유룡은 자부심 섞인 화서명의 말에 내심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 자들은 삼국시대 신의 화타의 후예가 맞는 것 같군….’
제갈유룡 또한 천재라 자부하고 있었기에 굳이 화서명을 부르지 않고 자기 힘만으로 대라멸진을 개량하려 했다. 그러나 대라멸진은 너무나 절묘하게 단전의 맥을 끊을 수 있었고 그건 그 어떤 천재도 원리를 파악하기 힘든 천혜의 의술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이 절묘함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한지조차 의문이었다.
“허나 이 비술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의술지식과 시침능력이 필요하오. 시침을 한끝이라도 빗나가게 되면 이 절묘한 균형파괴의 비율이 사라지게 되니…. 전문적으로 의술공부를 한 자가 그때그때 신체의 상태에 의해 변화하는 맥과 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하오. 그렇기에 그저 시침을 해야하는 혈과 구결을 알고있다 해서 시전할 수 없는 매우 까다로운 비술.”
“…….”
“최소한 10여년의 의술경험과 실력이 있어야 시전이 가능한 이 비술의 입문조건을 좀 완화하고싶다는 것뿐이오. 그게 그리도 어려운 일이오, 화서명?”
그랬다.
대라멸진을 전생동료들이 함부로 쓸 수 없는 이유!
대라멸진의 까다로운 점은 바로 의술실력이 전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백웅은 10여년 이상 화서명 밑에서 각고의 노력을 거듭하며 의술을 연마했기에 별 부담없이 대라멸진을 시전할 수 있었으나 다른 자들은 아니었다.
심지어 백웅의 전생기억을 전승한 자들조차도 막상 대라멸진을 펼쳐보려 하면 막히는 걸 느꼈다. 백웅처럼 그때그때 변화하는 경맥에 대해서 감을 잡고 정확하게 침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백웅 수준의 시침술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의술의 기억은 무예의 기억과 달리 심득(心得)의 형태로 남는 게 아니었고 그저 손끝의 감각에 의존하는 냉적지식(冷的知識)으로 분류되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었으나 모든 의술은 큰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류 이상의 경지에 오르려면 물론 재능이 필요했으나, 그렇지 않더라도 꾸준한 노력과 암기력이 있다면 누구나 평균정도는 성취할 수 있는 학문이 바로 의술이었다. 어찌보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있는 범재(凡才)를 위한 학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만큼 단순반복으로 쌓이는 손끝의 노력만이 남게 되어 있었고, 이건 어찌된 일인지 흑요석의 기억전승에서는 전송율이 낮은 편에 속했다.
다시 말하자면 10년동안 수련한 백웅의 의술수련치는 전생동료들에게는 고작해야 1년치 수련생 수준밖에 전해지지 않는다는 소리다. 지금까지 백웅의 전생여정에 큰 의미는 없었기에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던 일이었다.
‘아마도 흑요석의 술법에 숨겨진 기능인 용량절약이겠지….’
제갈유룡은 백웅의 흑요석술법이 모든 기억을 전송하는 게 아니라 시전자인 백웅의 의지에 따라 선별적으로 기억을 선택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백웅 대뇌속의 해마가 기억용량을 감당 못해서 터지기 직전이었을 정도로 많았던 기억용량을 모두 전하는 건 힘든 일이었으며, 백웅은 주로 동료들에게 중요한 기억과 정보만 전해주려 하는 편이었다.
그다지 전력향상에 도움도 되지 않고 결국 자폭기에 불과한 대라멸진을 전해주는 건 백웅이 무의식적으로 거부해왔으리라. 동료들에게 자살을 권유하는 셈이지 않은가?
그 때문에 흑요석의 술법은 그런 시전자 백웅의 의지를 감지하고 알아서 의술관련 기억을 최소화해서 전해준 듯 했다. 그래서 대라멸진의 시전방법은 다들 알고 있지만 막상 의술능력이라는 기초능력이 부족해서 쓰기 힘든 부작용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절세고수들이 대라멸진 하나 써보겠다고 10년씩 의방에 들어앉아서 의술을 수련하기에는 시간의 낭비가 너무 심했다. 당장 온갖 마왕이나 이족들이 대웅제국을 공격해오는 시점에서 전방에서 맞서싸워야할 절세고수들이 의술수련만을 위해서 그 정도의 수련시간을 소모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갈유룡의 질문에 화서명은 끄응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요. 애시당초 대라멸진은 강력한 고수들이 폭주해서 세상을 시산혈해로 만들 목적으로 만든 비기가 아니오. 어째서 우리처럼 무공도 약한 의술일문이 대라멸진을 개발했는지 알고 있소?”
“잘 모르오.”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불문율을 만들기 위해서였소. 그저 본보기를 보이기 위한 거였지….”
“……?”
화서명은 한숨을 쉬었다.
“시조 화타부터 이어지는 화씨백팔침(華氏百八針)과 화타오금희는 본래 무공이 아니었소. 둘 다 의술의 일환으로 수련하는 기술일 뿐이었지. 그런데 무림에서 살아갈수록 강력한 무공이 간절히 필요해져서 어쩔 수 없이 무공으로 개량을 했는데 그나마도 호신술의 수준이었을 뿐이오. 그러던 중에 어떤 미친놈이 외부세력을 끌어들여서 우리 세가가 멸문지경에 이른 적이 있었고, 당시 화씨세가의 가주께선 아무리 강한 무공을 익힌다 해도 무림에서 업을 쌓는 이상 결코 무사할 수 없음을 깨달았소. 의원이 조금 쎈 무공을 익혀봐야 수백 년간 칼밥을 먹으며 수련하는 무림인들의 무공을 어찌 감당하겠소?”
“…….”
“허나 이미 화씨세가의 혈족들이 참혹하게 죽거나 능욕당했고, 무림인들에 대한 가주의 분노는 극한에 이르렀소….”
화서명의 눈이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결국…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약자의 분노를 보여주는 것뿐이었지. 당시 가주께서는 무공을 뛰어넘은 방법으로 무뢰배들의 생명을 거두어서 천하에 불문율을 만들기로 하셨던 것이오. [무림인이 의원을 죽이면 안 된다]는 불문율을…. 그랬기에 가주께서는 무살(無殺)이라는 자의 협력을 받으셨소.”
흠칫!
그 순간 제갈유룡은 평정심을 잃을 뻔 했다. 왜냐하면 화서명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너무나 뜻밖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냉막하게 대꾸했다.
“무살? 그게 무엇이오.”
시치미를 떼는 제갈유룡에게 화서명이 말했다.
“강호에 종종 떠도는 소문이었을 텐데…. 무살이라는 존재가 있소. 일인전승(一人傳承)의 궁극의 암살자라고 하며 아무것도 죽이지 못하는 듯하나 모든 걸 죽일 수 있는 존재. 가주께서는 무살이라는 존재와 [약속]했다고 전해지오.”
약속이라는 단어에 제갈유룡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약속? 무슨 약속이오.”
“그건 문헌으로 전해지지 않소이다. 가주가 왜인지 몰라도 약속의 내용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소.”
“…….”
불길한 느낌이 든다.
“아무튼 가주께서는 무살의 도움을 받아 대라멸진을 만들었다고 전승되오. 그리고 대라멸진을 익힌 가주는 당시 화씨세가를 멸문지경으로 몰아갔던 7대 무림문파의 수장과 그 부하들을 몰살시켰으며 강호에 그 이후로 불문율이 생겨났지. 그건 아마 태산노옹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오.”
“…병주(并州)에서 일어났던 혈해지사(血海之事)로군. 그 전설은 나도 들었소.”
제갈유룡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지만 너무 유명해서 알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병주 일대의 거대무림문파들이 일거에 소멸당했고 그 자리에 6천 5백 명이나 되는 무림인들이 인간의 형체를 남기지 못하고 학살당하여 피가 강물을 이루었다는 전설!
심지어 그 7대 무림문파 중에는 천하일통을 노리던 거대문파인 철권성이나 지룡문도 있었으므로 그 때문에 한동안 무림에 대혼란이 찾아왔었다. 혈해지사의 범인은 알려지지 않았고 그저 7대 무림문파끼리 싸우다가 공멸했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 범인은 분노한 화씨세가 가주가 대라멸진을 써서 동귀어진했던 것이었다.
‘설마 그 대학살을 일으킨 게 화씨세가였을 줄이야. 흐음. 확실히 그 때를 전후로 의원을 함부로 공격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생기긴 했지.’
제갈유룡조차 생각지 못한 반전이었다.
물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기에 위력 자체에는 놀라지 않았다. 절정고수인 백웅이 호법사자를 압도적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게 되는데 그깟 무림인 6천명쯤 몰살당하는 게 뭐가 이상하겠는가.
다만 뜻밖의 진실이긴 했기에 그가 놀람을 추스리고 있을 때 화서명이 말했다.
“헌데 말이오…. 그런 까닭에 우리조차도 대라멸진은 전혀 손댈 수가 없소. 우리라고 개량해서 조건을 완화시키려는 시도를 안했던 게 아니지만, 역대 가주들 중 누구도 대라멸진의 한 구절도 고칠 수 없었단 말이오.”
제갈유룡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살이 대라멸진을 만들었다는 소리요?”
“…이미 알고 있겠지만, 대라멸진의 근간이 되는 시침술과 경맥활용은 화씨세가의 것이오. 구결로 인한 내공폭발 또한 의술의 범위지. 그러나 상중하단전의 균형을 절묘하게 없애서 전신의 원영을 격발시키는 건 인간의 기술이 아니오. 천상(天上)의 절예(絶藝)인 것이오. 아마 그 부분은 무살이 도와준 것일 거요.”
“흐음.”
“한 구절만 잘못 손대도 대라멸진은 쓸 수 없게 되오. 굳이 그걸 완화하고자 한다면, 지금의 절묘한 균형을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상중하단전을 부숴서 격발시키는 법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오.”
“그건 불가능하겠군.”
“그렇소. 이해했구려.”
그러나 제갈유룡의 머릿속에는 이미 대라멸진의 개량은 안중에도 없었다.
‘무살…!!’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출현한 단서!
‘그 자는 분명히 실존한다. 무영문의 선조가 만났다고 했을 때는 긴가민가했으나, 이로써 환상이 아닌 실존이라는 게 증명되었다.’
그리고 무살이라는 인물이 실존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진 것을 깨달은 제갈유룡이었다.
과연 이 정보를 어떻게 해야 백웅에게 도움이 되도록 이용할 수 있을까?
그는 곰곰히 생각을 거듭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소, 화서명.”
“뭐 어떻게 하겠단 말이오? 인간의 힘으론 개량이 불가능하다고 했잖소.”
“그건 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
짤막하게 대꾸한 제갈유룡이 슥하고 손을 들었다.
저벅 저벅
“헉…. 저 자들은!!”
장내로 들어온 인물들을 본 화서명이 깜짝 놀랐다. 그들의 면면은 이미 화서명이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뜻밖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제갈유룡이 말했다.
“오늘로써 천하오대의원을 모두 모았소. 그들에게는 모두 원하는 것을 주기로 했으며, 가문의 부흥과 명성 또한 보장했지. 당신이 제일 늦게 합류한 것이오.”
장내에 나타난 것은 바로 천하오대의원이었다. 제갈유룡은 채 2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그들을 모두 불러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실 백련교의 힘을 얻었기에 본디 까다롭기 짝이 없는 천상괴의 동방무결이나 의성 상관혁을 도리어 손쉽게 모을 수가 있었다.
“어, 어쩔 생각이오?”
“무살의 비기인 대라멸진을 개량할 수 없다는 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오. 그런 건 별로 좋아하지 않소.”
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되어버렸다. 제갈유룡은 자신의 두뇌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화서명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제갈유룡이 백우선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무살과 만났던 그 가주는 대라멸진의 팔문의 해방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소.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폭발력이 강해도 6천5백명이나 죽일 순 없지. 아마도 지연할 수 있는 구결이 어떤 이유인지 소실된 것이오. 그렇지 않소?”
“그, 그렇소. 그걸 바로 알아차리다니.”
“화서명. 모든 지원을 해 주겠소.”
그의 눈이 빛났다.
“대라멸진의 해방속도를 조절하는 구결을 복원합시다. 그게 내 목표요.”
백웅이 알음알음 감으로 혈도를 닫는 식으로 해방속도를 조절하는 건 언 발에 오줌누기에 지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해방한 대라멸진을 빠르게 거둬들일 수 있을 정도로 제어하는 게 제갈유룡의 목표였으며, 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향후 백웅의 생존율도 크게 올라갈 게 분명했다.
쿠콰콰쾅!!
[오오, 제법….]
용형검기(龍形劍技)가 날아들며 일 초를 교환할 때 아수라가 탄성을 흘렸다. 그것은 전투의 즐거움을 느끼는 자 특유의 말투였다.
까가강!!
수백 개의 검강이 스쳐지나고 있었으나 아수라는 검광(劍光) 뒤편에서 웃고 있었다.
아까부터 제갈유룡은 마왕 아수라를 상대로 밀리지 않고 정면대결을 고수하고 있었다. 인간 무림인과 싸울 때 이런 적은 없었기에 아수라는 쾌활하게 외쳤다.
[더 해봐라, 더!]
절대지경(絶對之境)
천랑북두(天狼北斗)
공손검법의 절초인 용린일검(龍鱗一劍)을 써서 아수라의 방어를 약화시킨 제갈유룡이 곧장 의념천주를 발동하며 새하얗게 신형을 쏘아냈다. 그 일격을 마주한 아수라는 잠시동안 생각했다.
‘아까 첫 일격도 이거였지. 찌르기인가?’
검술의 찌르기는 굉장히 강력한 기술이다. 보통 검이라고 하면 참격이 강력하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제로 검술대결에서 마무리를 짓는 건 대부분 찌르기 기술이었다. 피하기 쉽고 동선이 큰 베기에 비해서 찌르기는 막기도 피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실전성이 높은지 찌르기를 제대로 터득한 자는 이 세상 검술의 절반을 익혔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 그것은 하수들 차원의 이야기.
의념천주를 다스릴 수 있는 절대고수들의 경지에서 찌르기든 베기든 그저 속성차이일 뿐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의 극의(極意)를 얼마나 달인이 소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아수라는 내심 천랑북두를 보고 실망했다.
‘별로군….’
분명히 빠르고 강하긴 하다. 지금의 일격도 온전한 방어는 힘들고 한 번 정도 칼에 찔리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그러나 - 극한의 절대지경 고수인 아수라는 천랑북두에 찔린 직후에 제갈유룡의 목을 날릴 수 있는 검술의 궤적이 이미 보이고 있었다.
제갈유룡의 검술 수양이 아직 낮다는 증거!
절대지경에 오른 자의 수련치가 낮다고 하면 이상한 소리였지만, 사실이 그랬다. 모든 무공수준은 상대적인 것이었기에 절대지경에 오른지 수천년이 지난 아수라가 볼 때 제갈유룡은 [찌르기]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걸음마 단계나 마찬가지였다. 검선 여동빈이 같은 절초를 썼다면 아무리 아수라라도 이런 생각은 절대 못 했으리라.
정확히 칠 초.
아수라의 수읽기에 따르면 지금의 제갈유룡 정도는 그 정도 초수만 써도 죽일 수 있다. 신체능력은 분명히 뛰어나지만 아수라는 전술전략이 없는 인형이 아니었다. 무(武)와 예(藝)를 극한까지 구사할 수 있는 존재에게 신체능력의 비교따위는 큰 의미가 없었다.
[자아. 어디 해 봐라!]
위잉
절대지경(絶對之境)
천수관음(千手觀音)
아수라의 여섯 개의 팔이 갑자기 사라지는 듯 했다. 실제로는 절대지경의 기술이자 천축 시크교의 교조(敎祖), 구루만이 익힐 수 있는 절세무공인 천수관음이 발동했기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순식간에 수천 개의 잔영(殘影)이 제갈유룡의 전신을 감쌌으며 하나하나의 칼날에 의념이 깃들어 있었다.
‘천랑북두와 동귀어진… 아니다.’
제갈유룡은 천수관음의 의도를 읽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너무 강하다…!!’
언뜻 천랑북두의 찌르기에 양패구상을 노리고 반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천수관음은 정확하게 아수라에게 쏟아지는 찌르기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제갈유룡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궤도였다. 그리고 제갈유룡이 이 수읽기를 바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건 아수라에 비해 무예경지가 뒤떨어진다는 증거였기에 아득함을 느낀 것이다.
신체능력과 마력은 상위마왕급이고 절대지경의 깨달음조차도 천하무쌍.
과연 이런 놈을 상대로 대라멸진을 써도 이길 수 있을까?
그러나 제갈유룡은 다음 순간 머릿속에 자신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상을 구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모든 게 필연이 될 테니까요.]
제갈유룡의 아내는 그 말을 남기고 천계에서 징벌을 위해 파견된 천장(天將)의 칼날에 죽었다. 천기를 섣불리 읽은 죄였으며 그 당시 제갈유룡은 천장을 물리칠 술법을 갖고있었음에도 그녀가 죽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천장을 물리쳐봤자 다음으로 대라신선과 투선이 올 텐데 결국 천계 자체를 없앨 수 없는 이상 무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자식인 제갈현과 제갈부를 살리기 위해서는 도리가 없었다.
그 이후 제갈유룡은 세상에 절망했으며, 아내의 마지막 말조차 인정할 수 없어서 광기와 마도에 매몰되었다. [옛 지배자]의 힘을 빌려서라도 인간의 맥을 지키려 했고, 친구인 진천휘의 유지를 이어나가려 했다. 그러던 와중에 난데없이 전생자 백웅이 나타나서 야차를 단신으로 물리치고 [전생]에 대해 알려준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그 사이에 제갈유룡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필연.
설마 아내는 자신이 여기에 전생자의 동료로 참여하게 될 것조차 읽어냈던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으나 제갈유룡은 그 이후 구원을 얻은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이미 한 번 모든 것에 절망했던 몸에게 과연 무엇이 남아있는가?
자신이 [필연]을 살아간다면, 더 이상 절망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각오가 전부다.
각오만 하면 뭐든 두렵지 않다.
‘간다.’
제갈유룡은 그대로 검을 뻗어서 천랑북두를 계속해서 전개했다. 찰나의 유속이 뒤틀림없이 뻗어나갔고, 그것은 제갈유룡이 검초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버렸음을 의미했다.
[흐음, 실망이구나!]
아수라의 불호령이 떨어지며 천수관음이 제갈유룡을 난자했다.
쉬카칵!!
아수라 입장에서는 이 초식교환의 결과 자신이 압도적으로 우세였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도리어 제갈유룡이 이 수교환을 읽지 못하고 우둔한 수를 계속 밀어붙인 것이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퍼버벅!!
요란하게 피분수가 치솟아오르며 제갈유룡의 상체가 핏빛으로 뒤덮였다. 천수관음이 몸을 난자하는 걸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수라 또한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주르륵…
[이 놈….]
아수라는 자신의 가슴팍에 무려 다섯 개나 되는 자흔(刺痕)이 생겨난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히 정확하게 수를 읽었는데도 마지막에 제갈유룡의 천랑북두가 크게 뒤틀리면서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실력을 감췄나? 아니, 방금 그 변화는 그런 게 아니라….’
스으으
제갈유룡의 눈이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청광을 눈에서 내뿜으며 재차 아수라에게 달려들어서 검을 휘둘렀다.
절대지경(絶對之境)
천랑북두(天狼北斗)
아수라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찌르기가 아니잖아?’
이상한 일이었다. 저 검로(劍路)는 찌르기가 아니라 도리어 베기였다. 그것도 저건 공손검법의 절초가 아닌 듯 했다.
‘비밀이 있군.’
천랑북두의 실체가 찌르기라고 생각했건만, 지금 제갈유룡이 의념천주로 구현화하는 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아수라는 절대지경 천랑북두의 정체가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잠시 수세를 자처하며 제갈유룡을 관찰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건 제갈유룡이 바라지 않는 바.
장기전으로 가면 제갈유룡은 필살의 한 수를 써볼 틈도 없이 고갈되어 죽는다.
‘…어쩔 수 없다.’
제갈유룡은 아수라의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이를 악물며 힘을 증폭시켰다. 억지로라도 아수라를 적극적으로 싸움판에 끌어들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라멸진
칠문(七門) 개(開)!
두웅….
마침내 일곱 번째 문이 열렸다. 제갈유룡은 그 문이 열리는 순간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압도적인 힘이 물밀듯이 밀려오며 전신의 피부에 구멍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마어마한 통증 때문에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억지로 대라멸진의 전개를 멈추며 이를 악물었다.
‘한 번만 더… 죽을 경계를 넘기면 어떻게든….’
팔문을 그냥 지금 열어버리면 아수라에게 경상 정도는 입힐 수 있겠지만, 절대로 큰 부상을 입힐 수가 없다. 그래서는 개죽음이다. 제갈유룡은 의체로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지금뿐이라는 걸 알아챘으며 조금만 더 지나면 의체로 옮길 수 없이 필연적인 죽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제갈유룡은 마지막 한 번의 경계를 더 넘기로 각오했다. 그리고 곧장 대라멸진을 개방한 힘을 이용해서 돌진했다.
“하아아아!!”
투쾅!!
정면에서 제갈유룡과 아수라의 검이 부딪혔다. 아수라는 검이 부딪히는 순간 자신의 몸이 기우뚱하며 뒤로 밀리는 걸 느끼자 황당했다.
[아까 거기서 더 강해진다고? 어이가 없군….]
쩌적
[으음?]
콰칭!
다음 순간 아수라의 검에 금이 가더니 순식간에 깨지고 말았다. 그것은 의념으로 보호한 아수라의 검이 제갈유룡의 일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내구도가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제갈유룡의 일격에 담긴 위력을 짐작한 아수라의 얼굴이 딱딱히 굳어졌다.
쉬리릭
제갈유룡의 검이 생전 처음보는 검로를 그리며 아수라를 공격했다. 아수라는 이 검로가 정해진 형태가 없으며 그때그때 생각나는대로 공격하는 본능형의 검술이라는 걸 즉시 눈치챘다. 그리고는 내심 황당해했다.
‘이 놈의 검술은 규격과 정통성을 가진 명문검술 아니었나? 이런 식의 검기는 절대 연마할 수 없을 터인데….’
본능형 검술을 가지고 절대지경에 오른 이가 없는 건 아니다. 엄청난 천재성을 지니고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으며, 실제로도 미야모토 무사시가 그런 예였다. 그러나 제갈유룡은 아무리 봐도 그런 종류의 무림인이 아니었으므로 아수라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체 천랑북두란 어떤 절대지경이란 말인가?
미지의 절대지경에 아수라는 약간의 위험을 느끼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뭐, 좋다. 더 이상 놀아주면 안되겠군. 끝내주마.]
그는 제갈유룡을 내버려두면 위험할거라는 걸 고수 특유의 직감으로 알아챘다. 그리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전력을 다해서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절대지경
적멸무극(寂滅無極)
쿠와아앗
동시에 여섯 개나 되는 절대지경의 기예가 아수라의 모든 팔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적멸무극을 상대하는 자는 무예 하나하나의 속성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절대적인 패배를 감내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기술! 적멸무극을 상대로 제갈유룡이 이제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육편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한 식경 내내 아슬아슬했지만 드디어 왔다.’
그러나 그 순간 - 제갈유룡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 순간만을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이길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대라멸진
팔문(八門)
완전개방(完全開放)
후와악!!
다음 순간, 제갈유룡의 전신이 빛으로 화하더니 대라멸진이 최고의 위력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뒤편에서 생명력 공유를 하고 있던 제갈부의 입에서 핏줄기가 울컥하고 터져나왔다. 왜냐하면 팔문을 완전히 연 순간부터 제갈부의 생명력 또한 급격히 깎이기 때문이다. 제갈부는 피눈물을 주륵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님.”
제갈유룡이 하늘으로 날듯이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일 검을 내리쳤다.
천랑북두(天狼北斗)
최종오의(最終奧義)
천랑(天狼)!
그 일 검은 아수라의 오감은 물론 육감에도 포착되지 않았다. 그저 의념천주로 펼쳐준 무의 경계로 아슬아슬하게 파악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적멸무극에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제갈유룡의 모습에 언뜻 환영처럼 한 인물의 환영이 비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건… 누구….’
쿠콰콰콰
지진이 일어나며 제갈유룡의 일검이 아수라의 팔을 동시에 두 개나 베었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횡으로 베어 심장까지 노렸다. 그러나 아수라는 그대로 죽어주지 않았으며 팔을 베인 고통을 참으며 도리어 제갈유룡의 복부를 주먹으로 쳤다.
뻐벅
아수라의 힘이 실린 주먹에도 제갈유룡의 복부는 딱딱하게 견뎌내었다. 팔문을 연 자의 몸뚱이 또한 초월적인 내구도를 지니기 때문이었다.
푸확
다만 제갈유룡도 충격을 받았는지 피화살을 입에서 쏘아내며 뒤로 크게 날아갔다.
콰과광
허공으로 훨훨 날아가던 제갈유룡은 허공에서 다시금 하늘을 박차며 아수라에게 돌진했다. 이미 이성따위는 날아간 듯 했으며 그저 전투본능만 남은 상태였다. 다시 한 번 제갈유룡의 일 권이 아수라의 명치로 날아들었고, 아수라는 그 순간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만큼 엄청난 힘과 속도였다.
스으으
의념천주(意念天柱)
화경(化經)
[오오오….]
그러나 아수라는 그 생사의 위기에도 침착하게 대처하며 대지에 발을 붙이고 완전히 흘려보냈다. 팔문개방의 어마어마한 힘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모든 무예의 시작이자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마보행공의 자세로 화경을 시전할 수 있다는 건 아수라의 엄청난 무예숙련도를 증명했다.
쿠우우우!!
[……!!]
마치 어둠의 덩어리처럼 화한 제갈유룡의 일 권과 함께 아수라가 튕겨져 날아가서 멀리 지평선으로 처박혔다. 엄청난 충격에 아수라는 죽음을 예감했다.
퍼엉!!
그리고 마침내 아수라의 절대지경의 화경은 팔문을 개방한 제갈유룡의 일 권을 완전히 튕겨내었다! 그 절대적인 힘의 방출을 완전히 무예로 흘려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제갈유룡의 몸은 허공에 한 번 떠오르더니 힘없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후우… 후우….]
아수라는 약간 부상을 입었는지 입에서 시퍼런 피를 퇫하고 뱉어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법이군…. 천랑북두의 정체도 알았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으나 아수라는 클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누군가의 재능을 의념천주로 구현한 거겠군. [천재의 재능] 자체를 끌어와서 너의 무예처럼 사용하는 것인가? 누군지는 몰라도 평소에 그 자의 전투장면과 기술을 모두 외웠기에 가능한 일이었겠군. 크하핫.]
아수라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헌데 무인의 절대지경이란 인생의 구현화인데 타인의 재능을 구현화할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구나, 하하하. 그 정도로 압도적인 천재였다는 건가? 여하튼 정통검술과 본능형 검술이 뒤섞이니 정말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게다가 마지막에야 모든 힘을 격발시킨 걸 보면 처음부터 내가 적멸무극을 펼치는 동안 생기는 빈틈을 노렸던 모양이지?]
제갈유룡은 대답하지 않았다.
설령 대답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천랑북두로 재능을 구현화한 존재가 생전의 친우였던 진천휘였다는 건 결코 말하지 않았으리라. 그가 보았던 중에 가장 뛰어난 천재는 바로 진천휘였기에 제갈유룡의 절대지경은 진천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며 쓰러진 제갈유룡 쪽으로 걸어갔다.
[이봐. 대답 좀 해 보라고. 정말 재밌는 싸움이었으니까. 무시하는 게 어딨….]
이윽고 제갈유룡의 앞에 도달한 아수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미 완전히 숨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마지막 일 권을 뻗어내서 아수라의 명치를 밀어내던 그 시점에 이미 대라멸진이 다해서 죽은 것이었다. 한 식경동안 유지되는 대라멸진의 최종효과를 한 순간으로 단축시킴으로써 그 이상의 효과를 보는 전술이었기 때문이다.
[…쳇. 늘 이렇다니까.]
아수라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경의를 표하듯 제갈유룡의 눈을 감겨주었다.
이윽고 그는 고개를 돌려서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좋은 싸움이었다. 잘 가라, 인간이여.]
제갈유룡을 죽였음에도 그에게 [옛 지배자]의 저주가 옮겨오지 않은 점.
아수라는 짐작도 하지 못했으나 사실 제갈유룡을 해치우지 못한 상황이었다.
슈욱
아수라는 잠시 후 아까 제갈부가 있던 장소에 되돌아왔는데 제갈부는 꿇어앉아서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다. 오행활강시나 초상기인들은 모조리 사라져 있었기에 아수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흠. 이 놈은 왜 죽었지?’
어찌되었든 아수라는 제갈부를 적이라 생각했기에 확인차 죽일 필요를 느꼈다.
그마저도 위장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스각!!
이미 죽은 제갈부의 시체에서 목이 떨어져 나갔다.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서 승리의 의식을 치른 아수라는 씨익 웃었다.
[흐음. 그럼 다른 곳으로 가 볼까…. 어디에 백련교주가 있지? 뭐 없어도 여기저기 싸워볼만한 놈이 많군.]
부글거리며 아수라의 잘린 팔이 천천히 재생하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체력을 회복하며 걸어가는 아수라였다.
[저기가 좋겠군.]
아수라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서문혜가 있는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