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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팔부신중 야차는 자신의 본모습으로 신화(神化)한 채 눈앞의 상대를 노려보았다.
결판이 나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것은 바로 서문혜였다. 그녀는 어느 새 머리카락이 완전한 은발(銀髮)로 변해 있었으며 눈동자 또한 완전히 은빛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은빛의 절세가인이었으나 야차는 저 모습에서 아름다움보다는 도리어 흉맹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앗!!
서문혜의 신형이 일순간 사라졌다. 동시에 야차는 차원을 꿰뚫고 날아드는 일격을 주술으로 튕겨내었고, 충격의 반발력을 없애기 위해 또 다시 주언(呪言)을 외웠다. 그러자 야차의 몸에 또 다시 한 겹의 방어막이 만들어졌고, 서문혜에게 저주의 파장이 덮쳤다.
후웅
그러나 대술법사조차 말라죽게 만드는 야차의 고대주술을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서문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간지럽다는 듯 눈썹을 잠깐 떠는 정도였다. 그리고는 도리어 오른팔을 휘둘러 야차의 갈비뼈를 쳤다.
콰광!!
[크으.]
야차는 큰 부상은 입지 않았으나 서문혜의 괴력에 새삼 전율하며 물러났다. 아까부터 이런 양상이 반복되고 있었는데, 서문혜가 공격일변도로 육박전을 시도하면 야차가 술법으로 방어하며 간간히 반격하는 식이었다. 전투의 주도권이 완벽하게 서문혜에게 넘어가 있는 상황!
심지어 서문혜의 공격에는 가공할 물리력과 함께 혼돈의 힘이 섞여 있어서 법칙왜곡으로 피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야차가 흑광을 머금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서문혜에게 말을 걸었다.
[혼돈의 존재여. 언제까지 인간인 척 할 생각이냐?]
“…….”
[너는 나와 동격의 존재다. 네 안의 혼돈과 그 위격은 일개 인간제국 따위가 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걸 깨닫지 못했는가?]
서문혜는 야차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크르르
그것은 야차의 말을 무시해서가 아니었고 그저 서문혜의 이성이 반쯤 날아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서문혜는 상황을 인지하고는 있었으나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제대로 판단을 할 수가 없었고, 상대의 말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어지러워…. 여긴 어디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저 눈 앞의 상대를 말살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윽고 서문혜는 재차 힘을 발휘하며 야차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야차는 어쩔 수 없이 서문혜에게 대응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쿠구구…
그리고 그들 둘이 싸우고 있는 독립된 이계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성진과 아베노 세이메이였다. 그들은 모든 술력을 동원해서 야차가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아두는 중이었다. 안쪽의 상황을 지켜보던 사공린이 말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서문혜는 지금 폭주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승패를 떠나서 그녀가 두 번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수인을 맺으며 결계를 유지하던 아베노 세이메이가 나직이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팔부신중을 넷이나 몰아잡는 건 불가능하다. 서문혜가 폭주하면 그 때는 백련교주가 감당할 수밖에….”
“…….”
“계속 집중해라. 서문혜가 야차를 끝장내지 못하면 네가 결계 안으로 들어가서 일순간에 야차의 목숨을 끊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사공린은 잡념을 끊고 집중력을 모으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전장을 힐끔 쳐다보았다.
쿠쿠쿠쿠…
동쪽 하늘이 불타고 있었다. 그 곳에서는 백련교의 3대 호법사자와 함께 독고성, 당산, 그리고 명룡자와 신승이 합세해 있었다. 지금까지 줄곧 폐관수련을 하고 있던 두 명의 정파 최고수들은 자신만의 절대지경에 올랐으니 실질적으로 천령단 보유자 3명과 절대지경 4명의 동시합공인 것이었다.
그리고 저 합공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팔부신중 중에서도 손꼽히는 무투파인 가루라! 신염(神炎)을 쓰면 [옛 지배자]조차도 위협할 수 있는 공격력을 지닌 마왕(魔王)!
저 존재를 상대로는 저만한 전력의 합공조차도 그리 대단한 거라 할 수가 없었다. 사공린도 힘을 보태야만 했다.
‘하지만 난 지금 가루라를 치러 갈 수 없다….’
사공린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루라만큼이나 야차 또한 위험한 존재였다. 야차의 기본적인 전투력은 팔부신중에서도 평균 수준이었으나 야차가 시전하는 고대주술은 굉장히 까다로웠으며 또한 순식간에 전황을 바꿔놓을 위력이 있었다. 그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아군 최강전력 중 하나인 서문혜를 투입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아군 절대지경 중에서도 신성(神聖)을 상대로 최적화된 사공린의 마무리가 필요했다.
‘제발… 버텨주세요.’
사공린의 간절한 염원이 맴돌고 있을 때였다.
* * *
“…못 하겠어.”
후와아아악
대웅제국의 대장군이자 암천존(暗天尊) 당산은 천공을 수놓고 있는 거대한 불꽃의 바퀴를 보자 기운이 빠져서 양팔을 축 늘어뜨렸다. 그런 당산 옆에서 한창 싸우고 있던 독고성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어서 무형지독으로 놈을 견제….”
“못 하겠다고!!”
당산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투신 아르쥬나 때부터 느꼈다…. 저런 놈들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어! 도대체 저 놈의 불꽃을 무슨 수로 뚫으란 말인가?!”
“당산!”
“독고성. 지금 내 실력이라면 무림의 지존으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고 하고싶은 건 다 할 수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대마왕과의 싸움에 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냔 말이다!”
당신의 목소리에는 깊은 절망과 환멸이 스며 있었다. 그 감정을 느낀 독고성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했다.
“너….”
“심지어 불꽃은 내 독(毒)과 상극이야! 이런 미친 짓, 더는 못 해!!”
슈왓!!
당산은 갑자기 허공에서 뒤로 날아가더니 전장에서 이탈해 버렸다. 당산의 모습이 멀리로 사라져가자, 가루라를 압박하던 축이 크게 뒤흔들렸다.
“크윽.”
“합진(合陣)을 유지해라.”
급히 명룡자와 신승이 나서서 그 포위진을 메웠으나 인간측이 크게 불리해진 건 명확했다.
가루라는 단숨에 신염을 내뿜어서 이득을 얻을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도리어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고 지켜보다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하하… 재밌구나. 하긴 이래야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이지, 그렇잖은가?]
“…가루라!! 우릴 얕보지 마라!”
[얕볼 리가…. 너흰 인간치고는 굉장히 강하다. 방금 전까지는 나도 전력을 다해서 싸웠다. 너희들의 공투(共鬪), 생각보다 강력하구나. 하지만.]
쿠르르릉
가루라의 몸 주변에 12개의 환염(煥炎)이 일그러지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루라가 냉혹한 미소를 지었다.
[한 놈이 빠진 이상 너흰 결코 내 목숨을 위협할 수 없노라.]
가루라 신염(神炎)
번룡십이성(燔龍十二星)
마왕 가루라의 의지가 발현됨과 동시에 신염이 허공에서 폭발하는 듯 했다. 그리고 폭발한 환염의 수레바퀴에서 별빛이 뻗어나오며 동시에 대웅제국의 고수들을 공격했다. 백련교의 호법사자들은 거의 동시에 천령단에서 무한의 내공을 뽑아내어서 막아내려 했으나 옆에서 보고 있던 신승 명호대사가 찰나의 순간에 경호성을 터뜨렸다.
[막을 수 없소! 이건 피하시오!]
움찔
절대지경의 고수들은 허공답보를 시전한 상태에서 삼보절기를 시전해서 간신히 번룡십이성을 회피했으나 백련교 호법사자들은 약간 반응이 늦었다. 그나마 화신류 호법사자인 한백령은 원래부터 호신강기에 의존하는 성향이 적었기에 뒤늦게 반응해서 피해냈으나 나머지 두 명은 그렇지 못했다.
“으아아아악!!”
푸쉬식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은 짤막한 단말마와 함께 그대로 형체도 없이 불타서 소멸되고 말았다. 그가 펼쳐냈던 호신강기는 번룡십이성의 공격력을 전혀 감당하지 못했으며 통째로 잡아먹히는 듯한 형상이었다.
퍼버버벅!!
[흐억….]
수신류 호법사자 독고준은 어떻게든 수룡을 중첩시켜서 막긴 막았으나 양쪽 팔이 모조리 탄화되어 사라져 버렸고 호흡기와 상체가 모조리 화상을 입었다. 그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끼며 허공답보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독고준!”
한백령이 깜짝 놀라서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독고준을 받아내었다. 독고준은 너무 큰 화상을 입어서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독고준은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백령…. 눈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우리 호법사자의 한계인가….]
“…….”
[손을 이리로 다오… 빨리….]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본래 수신류와 잠재적 적대관계인 화신류의 종사인 한백령으로서 저런 요청을 들어줄 리는 절대 없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팔부신중과 함께 맞서싸우며 약간의 동료의식이 생긴 한백령은 독고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한백령의 손을 잡은 독고준은 천천히 말했다.
[한백령…. 교주를 증오하는가.]
한백령은 완전히 이족화 되어버린 독고준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복잡한 심경을 담아서 말했다.
“이제 와선 모르겠다.”
[후후… 그렇겠군…. 나도 사실은 그렇다…. 교주를 늘 존경하고 흠모했으나… 언제인가부터… 단순히 그런 감정으론 표현할 수 없게 되었어.]
“…….”
[교주를 제외하면…. 천하에서 천령단을 가장 오래 다룬 것은 바로 너와 나…. 그리고 천령단 그 자체에 깊이 몰입한 것은 바로 나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에야 천령단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능력을 깨우쳤다….]
우우웅
“이건…!!”
[무한의 힘에… 무한을 더해봤자 본래 무의미하지만…. 목숨을 건다면 달라…. 천령단을 압축하는 것이다….]
고오오오
독고준의 손을 통해서 무언가 거대한 힘이 한백령에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독고준의 팔뚝에 새하얀 수룡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수룡이 점차 커질수록 독고준의 피부는 쪼글쪼글하게 말라붙기 시작했다. 독고준은 마지막 힘을 다해서 말을 이었다.
[원영신만큼은 아니지만… 천령단 또한 [옥좌]에 도달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 내 모든 것을 걸고 네게 나의 천령단을 계승하겠다….]
“그게, 가능한가?!”
수룡이 독고준의 팔을 타고 한백령의 팔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용이 완전히 옮겨가는 것을 본 독고준이 점차 어둡게 꺼져가는 눈빛으로 말했다.
[…명심해라…. 네가 만일 교주의 도움으로 [융합]을 얻게 된다면…. 네게 전수한 수룡(水龍)의 힘을 먼저 태허와 융합시켜라…. 너의 화룡(火龍)은 남겨라….]
“뭐?”
[교주는 반드시 유일한 후계자인 네게 [융합]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래… 이론일 뿐이었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천령단이 원영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쿨럭!!
독고준은 입에서 청혈을 토하더니 한백령의 손을 꾹 붙잡았다.
[이… 이건… 내 평생 최초로 교주를 거역한 것… 이것은… 나의 의지다.]
“독고준.”
[우리… 우리가 바로 호법사자!! 우리야말로 백련교였다…!!]
풀썩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독고준의 사망이었다.
“…….”
한백령은 독고준의 죽음을 보자 씁쓸함과 복잡한 감정이 차올랐다. 간접적으로 호적수였으며 백여 년이 훨씬 넘는 세월동안 서로 견제하고 앙숙처럼 겨루었다. 그런 와중에도 팔부신중이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로 무수히 협력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성기의 백련교 때부터 백련교를 떠받쳤던 최후의 세대이기도 했다.
뇌신류 이청운.
수신류 독고준.
풍신류 용비천.
…그리고 화신류 한백령.
백련교의 전성기를 상징하던 존재들은 모두 가 버리고 이제 그녀만 남았다.
교주에게 모든 걸 바쳐야 할 충신인 독고준이 마지막에 교주를 뛰어넘으려고 한 번의 일탈을 감행했던 이유. 같은 호법사자로써 그 감정을 공감한 한백령은 입술을 꾹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간다.”
콰과광!!
가루라의 공격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었다. 당산이 빠져버린 탓에 가루라는 마음놓고 연속공격을 할 수 있었고 인간측은 호법사자들이 순식간에 당해버려서 피해내기만도 급급했다.
“오오… 오오오오!!”
신승(神僧) 명호대사는 비명같은 외침을 내지르며 눈 앞의 염환(炎環)을 필사적으로 쌍장(雙掌)으로 밀어내었다.
절대지경(絶對之境)
삼고삼법인(三苦三法印)
우우웅!!
그가 깨우친 절대지경은 바로 불경의 가르침 그 자체를 무예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것! 삼고(三苦)와 삼법인(三法印)의 깨달음을 그대로 반야(般若)의 경지로 밀어넣어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체현하는 무예였다. 다소 형이상학적인 느낌이 강했으나, 그런 만큼 신승의 절대지경은 잠재력이 높았다.
신승의 등 뒤에 후광을 머금은 만다라(曼茶羅)가 떠올랐다. 그 만다라는 마치 신승의 몸을 백색으로 빛나게 하는 것 같았고, 만다라의 힘이 신승의 쌍장으로 이어진 순간 가루라의 신염이 소멸되었다.
슈아악
그 모습을 본 가루라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제법 하는구나, 승려여! 개념의 차원에서 만다라를 회전시키면 상대의 공격을 무효화시킬 수 있단 건가?]
“허억… 허억….”
[무투에 몸을 담은 인간의 무예답지 않군. 적을 쓰러뜨리려는 목적으로 만든 기술이 아닌 것 같아.]
정작 신승 명호대사는 전신에 구슬땀을 흘리면서 한 마디도 대꾸할 수가 없었다. 가루라가 가볍게 뿌린 공격이었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막을 수 없었고 체력내공의 소모가 막대했기 때문이었다. 가루라는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이상하군. 예전에 어디선가 그런 기술을 본 것 같은데…. 아주 예전에.]
“하압!”
바로 그 때였다. 마치 빛의 광선처럼 몸을 날린 무당파의 명룡자가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기세로 가루라에게 뛰어든 것이었다.
‘무모하군. 크큭….’
화르륵
명룡자의 공격을 감지한 가루라는 팔짱을 풀지 않고 그대로 환염익(煥炎翼)을 펼쳐서 명룡자를 감싸버리려 했다. 강철조차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그의 환염익이라면 인간의 가녀린 몸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리라.
그 순간, 명룡자는 필생의 모든 검학을 검 끝에 모으며 안광을 빛냈다.
절대지경(絶對之境)
구요신검(九曜神劍)
파군(破軍)!!
구요신검.
그것은 명룡자가 백웅의 무공을 전면적으로 습득한 후 자기자신만의 무공을 창안하다가 도달한 절대지경이었다. 그는 본디 태극검의 정점으로 향하려 했으나, 자신의 후배인 정천맹주 위지혼이 도달한 태극혜검을 보자 생각을 바꾸었다.
무쌍패도 태극혜검도 물론 훌륭한 무공의 극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사(先師)와 같은 길을 간다면 과연 발전이 존재할 것인가?
그는 본디 이단의 길을 선택한 천재였으며, 장삼봉이 호신의 극의를 추구한다면 자신은 그것과 달리 가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절대지경에 일찍부터 손을 올렸으면서 정작 올라서는 데는 크게 시간을 들였다. 결국 [자신만의 최강]을 찾지 않는다면 절대지경에 일찍 올라서봤자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명룡자는 팔부신중과의 전쟁 도중에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찾은 길은 바로 구요의 힘을 빌린 최강의 공격검술이었다. 여기에는 백웅이 동료들에게 전수해왔던 모든 무공을 함께 연구한 성과가 깃들어 있었다.
구요신검기(九曜神劍技) 중에서도 최강의 위력을 지닌 초식, 파군!
북두칠성의 제일가는 흉성(凶星)이 울부짖으면 천하가 떨리라.
파군이 본격적으로 펼쳐지자 명룡자의 의념천주가 치솟으며 차원이 갈라졌다.
[뭣?]
차원을 갈라버린 명룡자의 검끝이 가늘게 흔들리는 걸 알아챈 가루라는 눈을 부릅떴다.
‘저건 뭐지?!’
그리고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그대로 입을 벌려서 신염을 토해내려 했다. 의지로 소환하는 화염보다 입에서 토해내는 신염은 몇 배나 강력했으므로, 가루라가 이번 명룡자의 돌격에 숨겨져 있는 힘을 알아채고 전력을 다하려 했음을 의미했다.
찰나의 순간.
명룡자는 자신이 저 신염을 막거나 피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구요신검을 발동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멸혼보나 삼보절기 등을 이용해서 아슬아슬하게 피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애초에 목숨을 걸고 쓰는 초식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훗하고 웃었다.
‘해 보자고.’
파군의 검끝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멈춰버린 시간을 올곧게 뻗어나가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신검합일과 가루라의 신염이 부딪히는 순간, 명룡자의 전신은 그대로 앞으로 전진했다.
구요신검(九曜神劍)
북두칠성(北斗七星)
검형(劍形)
탐랑(貪狼)!
칠대절학(七大絶學)의 오의(奧義)를 모두 깨달은 명룡자만이 쓸 수 있는 검형!
전생동료 모두가 칠대절학을 익혔으나, 명룡자보다 오랫동안 완벽하게 익힌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명룡자는 백웅의 전생시점에 칠십 년 이상을 이미 칠대절학의 연마에 바쳐왔기에, 백웅으로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숙련도가 별개로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명룡자가 자신에게 맞도록 소화한 이 검형에는 보이지 않게 모든 칠대절학의 정수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 숙련도는 이미 조사 장삼봉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촤아악
구요신검 파군검기에 탐랑검형이 담겨서 횡으로 휘둘러졌다. 그러자 마치 거짓말처럼 가루라의 신염이 양옆으로 갈라졌고, 검의 별무리(劍罡)가 절단면을 통해 쏟아졌다. 가루라는 저게 무림인들이 쓰는 검강이라는 걸 알아채고 손을 뻗어서 막아내려 했다. 팔부신중은 마왕인지라 무림인의 검강 따위는 맨몸으로도 상처하나없이 튕겨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 그건 오판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의념절기로서의 검강이 아니었다.
구요의 상형을 검기에 끌어넣을 수 있는 절세검객이 [별무리]를 의념천주로 구현해낸 일종(一宗)의 극의(極意)!
츠카카칵
[끄아아악!!]
가루라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의 세 손가락이 단숨에 잘려나갔기 때문이었다. 절대지경의 검뢰에 못지않은 엄청난 절삭력이었다.
스스스
그 찰나의 순간에도 명룡자는 한없이 냉정하게 움직였다. 그는 어느 새 검형을 바로 잡아서 상중하단전의 중심을 새롭게 얻었으며, 그 균형 속에서 유려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칠대절학 태극요지유검과 천축검의 오의를 혼합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이름없는 기술이었으며, 딱히 이름이 없음에도 실전에서는 막대한 위력을 보냈다. 절세고수와의 대결에서 무조건 한 호흡을 앞서갈 수 있는 것이다.
파파팟!
‘저 놈… 갑자기 원래 상태로.’
찰나지간에 마치 마술처럼 명룡자는 탐랑검형에서 파군검기의 자세로 되돌아왔다. 명룡자는 시간을 쪼개듯 그 어떤 자세나 상태에서도 기본검형으로 되돌아오는 게 가능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으며, 이 때문에 상대가 어떤 무공을 쓰든 속성에 맞춰 대항하는 게 가능했다. 지금은 가루라의 공격에 반격 후 재공격의 시간차를 손에 넣기 위해 변칙적으로 응용한 것이었다.
구요신검(九曜神劍)
극오의(極奧義)
파군절명(破軍絶命)
가루라는 그 공격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자신의 모든 신력을 방어에 집중했다. 그 방어는 목에 집중되어 있었다.
슈칵!!
[커억…!!]
가루라는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가루라의 목에서 피분수가 솟구쳤고 길게 그어진 혈선에서 멈추지 않는 피가 새어나왔다. 가루라가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멈추, 멈추지 않아아아아!!]
가루라는 초재생능력을 지니고 있는데도 명룡자의 파군검기에 당하자 도저히 회복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의념이 쐐기처럼 박혀서 가루라를 계속해서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탓이었고, 가루라가 원래 죽어야 하는데도 마왕의 마력으로 계속 견디는 상황이었다.
털썩
명룡자는 모든 힘을 다 쏟은 일격을 먹이고는 의념이 다 소진되어서 주저앉았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내 전력을 다한 구요신검 파군으로도 목을 벨 수 없다니…!! 어찌 세상에 저런 괴물이!’
무림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동안 명룡자는 무림의 마두는 물론, 마(魔)에 물든 이무기나 용 따위도 구요신검 파군으로 베어왔기에 그 수준차를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과연 마왕이라 칭할 만하다.
가루라가 아무리 방어에 전념했다지만 명룡자로서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가루라의 본능적인 전투감각이 절대지경 고수의 최고오의를 감지할 정도로 뛰어나다면 다른 방법으로는 상처를 입히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공격이 실패한 이상 명룡자는 더 이상 가루라에게 맞설 방법이 없었다.
가루라의 눈에 핏발이 잔뜩 섰다.
[더 이상 못 참겠다!! 벌레같은 놈들!]
그는 분노를 토해내며 거대한 불꽃의 날개를 펼쳤다.
[내 동료들이여!! 알아서 막아라!! 난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그 순간, 흠칫 하고 모든 전장의 팔부신중이 가루라의 외침에 놀랐다.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천인이었다.
[미친 놈!! 우리까지 죽일 셈이냐?!]
그러나 천인의 외침이 무색하게, 다음 순간 가루라의 날개가 여섯 쌍으로 불어나며 가루라의 몸에서 상상할 수 없는 마력이 응집되었다. 마치 태양을 연상케 하는 적염(赤炎)의 화신으로 변모한 가루라가 곧이어 웅대한 사자후를 터뜨렸다.
혈마적련성(血魔赤蓮星)
소환(召喚)
창힐에게서 받은 가루라만의 고유권능.
스스로조차 제어할 수 없기에 자멸기에 가까웠고, 그 때문에 가루라가 평생에 한 번밖에 소환할 수 없는 궁극의 자폭기!
우주의 성좌(星座) 그 자체에서 모든 것을 멸하는 적련의 빛이 소환되려는 그 순간 - 하나의 은빛이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