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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채앵! 채앵!
투쾅
와아아아 -
전장의 함성이 평야에 피빛을 머금으며 메아리친다.
대웅제국 최후의 요괴대전(大戰)이 시작된지 반 식경.
수만 마리의 요괴들과 수십만 백웅제국군이 난전을 벌이던 가운데, 마침내 최초의 큰 싸움이 시작되었다.
[받아라.]
본체로 변한 팔부신중 건달파가 기묘한 사인(蛇人)의 모습으로 허공에 뜬 채로 무수한 유리구슬을 뿜어내었다. 유리구슬이 허공으로 쫙 퍼져나가더니 이윽고 구슬 사이로 투명한 실이 만들어졌고, 죽음의 투망이 순식간에 거대한 산의 면적만큼이나 거대한 범위를 덮쳤다.
팔부신중의 선봉은 건달파!
그가 일부러 백련교주의 위치를 발견해서 습격한 것이었다. 방심하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본체로 되돌아가서 전력을 다한 습격이었다.
투쾅!!
절대지경
심천무량
백련교주의 등 뒤에서 수십 개의 만다라가 교차하더니 하나의 만다라로 합일(合一)해서 방패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방패가 원형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백련교주의 냉막한 목소리가 흘렀다.
[겨우 이 정도로….]
어느 새 혼돈의 힘을 끌어내어 혼돈화를 감행한 백련교주였다. 전력을 다할 생각도 없다는 듯 전력으로 심천무량을 펼치지 않고 부분변화만으로 건달파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순식간에 자신의 주력술법 하나가 상쇄되자 건달파가 놀랐다.
[정말 강해졌군. 언제 그 정도의 힘을….]
기분이 나빠졌는지 백련교주의 무면탈이 꿈틀거렸다.
[건방지군, 건달파! 이젠 네가 섣불리 내 실력을 잴 상황이 아닐 것이다.]
[뭐라고?]
후왁
황제의 의복을 입고 있던 백련교주의 몸이 순식간에 거대한 혼돈을 머금으며 혼돈화했다. 정신을 집중해야했던 예전과는 달리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무슨 말인지는 지금부터 실감하도록.]
슈웅
뻐어억!
건달파는 순식간에 근접한 교주의 일권(一拳)에 정통으로 얻어맞고는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건달파는 얻어맞아서 땅에 머리를 박는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팔부신중 특유의 강대한 내구력 덕분에 중상을 입지는 않았으나 그의 전신에서 크나큰 경각심이 일어났다. 백련교주의 힘이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건?’
일순간에 목숨의 위기를 느낀 건달파가 재빨리 그만의 권능을 발휘했다.
수천년 전, 그가 천축대륙 최고의 영웅이던 때부터 줄곧 그의 목숨을 지켜준 최고의 호신기(護身技)이자 천축대륙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강력한 요가(योग)였다.
비나쉬 일족 비전(秘傳)
마두-샨티-가나(मधुरशांतिगाना)!
건달파의 이마에 세 개의 둥근 원이 겹쳐서 떠올랐다.
쉬악!!
투쾅!!
[커헉…!!]
건달파는 상체가 통째로 찢어지는 격통을 느끼며 비명을 내질렀다. 왜냐하면 다음 순간 혼돈화한 백련교주가 수조격(手爪擊)으로 그의 가슴팍을 찢어발겼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무공초식조차 아니었으나 너무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어서 순식간에 건달파가 몸에 두르고 있던 혼돈의 방벽이 모조리 찢겨나가 있었다.
‘느, 늦었다.’
놀랍게도 팔부신중의 고대술법이 발동하기 전에 이미 한 대를 맞아버린 것이다! 건달파는 이 순간 자신과 백련교주 사이에 크나큰 실력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채고 말았다.
위이이잉
[으음?]
그러나 상체가 피투성이가 된 건달파는 이윽고 흐릿해지더니 몸이 통째로 반투명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날아온 백련교주의 공격이 그대로 건달파를 관통하고 말았는데, 문제는 마치 환영을 공격한 것처럼 건달파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건달파는 백련교주가 자신을 공격 못하는 틈을 타서 재빨리 뒤로 물러나 버리고 말았다.
건달파가 자신의 공격을 완전히 피해버리는 걸 눈으로 확인한 백련교주가 전신에서 혼돈을 뿜어내며 팔짱을 꼈다.
[절대회피를 상징하는 천축의 요가(योग)인가? 신이 인간영웅에게 하사했다는 그 강력한 술법의 존재는 마도서에서 읽어본 적이 있다.]
[…매우 박식하구나, 교주여. 네 말대로다. 이게 바로 천축대륙 최고의 요가 중 하나!]
스윽
건달파는 자신의 이마를 매만졌다. 이마에 있던 삼원(三圓) 중에 하나가 흐릿해져서 사라지더니 이윽고 쌍원(雙圓)으로 변했다. 건달파가 백련교주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이 술법은 강력한 대신 본체 상태로만 쓸 수 있으며 수백 년에 한 번만 쓸 수 있는 것. 팔부신중이 된 이래로 쓴 일이 손에 꼽을 정도인데 널 상대로는 어쩔 수 없구나.]
이마의 삼원은 천상천하에 이르는 세 번의 절대회피를 상징했다.
세 번까지라면 설령 [옛 지배자]의 권능이라고 해도 건달파를 죽일 수 없으며 천하의 모든 공격을 투과시킬 수 있었다. 가히 신술(神術)이라 할 수 있었으며, 술법의 총본산인 천축대륙에 존재하는 수백만 가지의 요가나다 중에서도 최강의 가호였다.
심지어 방금 전에 백련교주에게 입은 상체의 부상조차도 순식간에 나아버렸으니, 순간회복력도 극대화시켜주는 가호였다. 이 가호가 존재하기에 다른 팔부신중도 건달파와 싸우기 꺼려할 정도였다.
그러나 술법의 강력함을 보고도 백련교주는 도리어 흉소를 흘렸다.
[후후후. 2번의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는가?]
[…….]
우드득
백련교주의 한쪽 손이 소리를 내더니 혼돈으로 일그러진 옥염을 흘려내었다. 마치 혼돈의 화신 그 자체로 변한 듯한 백련교주의 눈에서 백광(白光)이 일그러지더니 웃는 것처럼 보였다.
[널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주겠다, 건달파….]
허세도 뭣도 아니었다.
백련교주는 저렇게 선언한 이상 결국 자신의 말을 실천하는 자였다.
[독고운천이여. 으으음….]
건달파는 신음성을 흘렸다. ‘인간’인 개방방주 걸선으로 지낼 때 백련교주와의 인연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교우관계를 지닌 친우였으며 사실 서로간에 적의는 거의 없었다. 도리어 약해빠졌던 시절의 독고운천이 온갖 고통을 겪으며 약육강식의 백련교 내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할 때 건달파가 도움을 준 적도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념의 대립으로 백련교주와 적대하게 되자 건달파는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또한 자신에게 닥쳐오는 불안감의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건달파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공포를 억눌렀다.
‘2번의 기회동안 그를 최대한 붙잡아놓는다…. 그 사이에 천인과 가루라가 다른놈들을 해치워 줄 것이다.’
작전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혼돈화한 현재의 백련교주는 너무 강했다. 도저히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엇보다도 혼돈의 권능과 그 밀도 차이가 압도적이다.
같은 혼돈의 영역에 있는 존재들끼리 이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나 다름없었다. 혼돈의 밀도차이가 나면 공방력 차이도 심하게 나 버린다.
심지어 백련교주는 전투경험조차 풍부해서 자신이 보유한 혼돈을 마치 수족처럼 사역하는 게 가능했으니, 이미 음파계 권능과 보조능력을 주력으로 하는 건달파가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아무리 마왕 팔부신중이며 본체를 드러냈다고 하더라도, 백련교주는 옛날옛적에 팔부신중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기에 그런 자부심 따위는 무의미하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껏 백여 년도 안 되는 시간일 텐데 어떻게 인간이던 자가 이렇게나 강해질 수 있을까?
‘주군. 다시 뵙지 못할 수도 있겠군요.’
잠시동안 창힐을 회상하던 건달파는 자신이 백련교주에게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으나 그래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자신이 물러난다면 다른 팔부신중들이 백련교주에게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는 동료들과의 의리를 지키는 존재였다.
건달파는 이윽고 백련교주의 눈을 응시했다.
인간의 모습따윈 남아있지 않는 그 무감정한 백광의 눈을 보는 순간, 건달파는 히죽 웃었다. 패도만을 추구하는 그 모습에서 예전 그가 알던 독고운천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친구여, 너도 마왕(魔王)이 되었구나.]
마치 우리처럼.
파밧!
그리고 다음 순간, 백련교주가 흉광을 내뿜으며 건달파를 공격해 왔다.
결과가 정해져있는 살육이 시작된 것이다.
[건달파!]
천인(天人) 삼장법사가 초조한 듯 외쳤다. 한 순간이지만 백련교주에게서 뿜어져나온 마력의 양이 엄청난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팔부신중 최강이라 불리는 천인은 그 마력을 감지한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마력의 주인은 엄청난 강자!
천인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아무리 팔부신중이라도 당하고 말 것이다.
“여유작작이구려. 하긴….”
전장에 나와서 백우선을 들고 지휘하고 있던 제갈유룡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나 전력을 쏟아 붓는데도 그대 하나 못 죽이고 있는 우리가 한심한 거겠군.”
천인은 전쟁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포위당해 버렸다. 정확히는 건달파가 백련교주를 노리고 뛰쳐간 순간, 마치 반격이라도 하듯 대웅제국측에서 천인만을 격리시킨 이계(異界)를 생성해낸 것이다. 명백히 의도적인 함정이었다.
[네 이놈.]
천인 삼장법사는 마치 빛으로 된 인간같은 몸뚱이를 잠시 분노로 떨더니 술법을 시전했다.
위잉
갑작스럽게 시간이 정지하더니 천인의 몸 주변에서 수십 개나 되는 혼돈의 구(球)가 떠올랐다. 구체 하나하나가 용(龍)을 죽일 정도의 힘이 담겨 있었다. 천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공격하던 적들을 향해 외쳤다.
[다 죽어라.]
법륜진언(法輪眞言)
초마열공파(超魔裂空波)!
천인은 고대에 이 술법 한 번으로 십만 명 이상의 인간을 대학살한 적이 있었다.
퍼버버벅
천인 삼장법사를 둘러싸고 공격하던 청년들 중 세 명이 당했다. 천인이 소환한 혼돈의 구체가 기둥처럼 늘어나서 순식간에 몸뚱이를 찢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남녀의 구별 없이 인간의 형상도 남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게 찢어발겨진 광경은 참혹할 정도였다.
덥썩!
그러나 혼돈의 구체는 마구잡이로 변형을 거듭하며 학살을 거듭하다가 갑자기 단단히 붙잡혔다.
[아니?]
천인 삼장법사가 술법의 전개가 막혀서 불쾌해하자, 그의 시선에는 무표정한 청년 두 명이 제각기 무기를 꺼내서 하나의 점에 교차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무기에서 뻗어나온 무형의 힘이 어느 새 초마열공파를 구속하고 있었다.
지지징
[…….]
시간정지 술법을 썼는데 어째서 멀쩡히 움직이는가.
그리고 초마열공파는 마왕을 상대로나 쓸법한 범위섬멸기인데 그 파형의 궤적을 무효화시킨 저 기묘한 기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삼장법사가 멍하니 있을 때 제갈유룡이 슥하고 백우선으로 한켠을 가리켰다. 그 곳은 방금 전 초마열공파가 학살을 벌였던 장소였고, 세 명의 청년들이 걸레짝처럼 찢겨죽어 있었다. 제갈유룡이 입을 열었다.
“다시 일어나라, 오행활강시(五行活殭屍).”
[……?!]
“너희에게 죽음은 없다.”
츄와아악!!
다음 순간 청년들의 시체가 제각기 오행을 상징하는 물, 불, 나무 따위로 변해서 점액처럼 치솟았다. 그리고 점액의 형태에서 순식간에 인간의 형태로 되돌아가더니 다시금 회복되어서 무기를 잡았다.
다섯 명의 청년 남녀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표정했다.
인간의 감정이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천인 삼장법사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왜냐하면 술법에 정통한 마왕답게 오행활강시의 정체를 보자마자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네놈들, 연금술사가 소망하던 호문클루스의 제작을 넘어서 진정한 금술(禁術)에 손을 대었구나.]
“…처음부터 여기까지 만들 생각은 없었소. 백웅이 있었다면 활강시 같은 건 안 만들었겠지. 초상기인만으로 충분할테니까. 금술이란 말도 부정할 순 없소.”
제갈유룡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없는 상태에서 마왕을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었지…. 이 자리에 나와 출진한 오행활강시들은 이전에 당신들에게 시험삼아 던져봤던 마인(魔人)이나 용인(龍人)과는 격이 다른 존재이니 기대해도 좋소.”
[뭐가 다르지?]
“상대해보면 알 것이오.”
[어차피 너희는 필멸자. 필멸자가 만든 전투인형 따위, 진정한 마왕에게는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노라!]
쿠와아앗
[이번엔 잡기술로 감당이 안 될 것이다. 무한히 술법을 난사해 주마!]
천인 삼장법사의 포효와 함께 거대한 빙하(氷河)가 몰아치며 환혹의 안개가 사방을 휩싸고 땅이 갈라지며 지진이 일어났다. 삼장법사는 보통 인간술법사가 평생 가도 쓰기 힘든 대술법을 주문이나 수인도 없이 의지대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정상적으로 싸운다면 필멸자 수준에서는 결코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제갈유룡은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생각했다.
‘생각대로 진행되는군.’
그리고 그 순간, 오행활강시 중 한가운데에 있던 소녀인형의 눈이 창백하게 빛났다.
초상능력(超上能力)
완력천배(腕力千倍)
키잉 -
상단전의 능력이 각성하면서 오행활강시들이 동시에 힘을 부여받았다. 모두가 하나의 정신을 공유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활강시의 뻣뻣했던 몸이 모두 유연하게 풀리고, 몸 안에 미리 들어가 있던 악령단(惡靈丹)이 단전에서 터져서 빠르게 거대한 내공을 공급했다.
초상능력(超上能力)
염동속박(念動束縛)
파바바밧
오행활강시들의 다섯 쌍의 눈이 모두 청령(靑靈)을 뿜어내었다. 하나하나가 상급 염동능력을 갖고 있는 오행활강시들은 정신을 공유한 동료가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염동력의 위력이 두 배씩 강해지는 특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난데없이 열여섯 배 이상 강력해진 초상염동력이 쇠사슬처럼 변해서 천인의 본체를 옭아매었다.
타닷!
오행활강시들이 모두 손을 잡고 동시에 천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인은 뜻밖의 돌격에 코웃음을 치며 술법의 위력을 높였다.
‘아무리 힘이 강해졌어도 인간형 육체는 약해빠졌지. 내 술법은 화산과 산맥조차 깎아낼 수 있으니, 너희따윈 그대로 죽을 것이다!’
고오오오 -
초상능력(超上能力)
오행기인(五行奇人)
놀라운 일이었다. 오행활강시들의 몸에서 저절로 오행의 변화가 일어나더니 자동으로 오행상생(五行相生)과 오행상극(五行相克)을 거듭했다. 아무리 천인의 술법위력이 강하더라도 오행의 근본적 변화부터 상생상극을 제어한다면 그 위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 아니.]
천인은 경악했다.
그가 알 리가 없었다. 이 오행활강시는 그때까지 전적으로 제갈유룡이나 제갈사에게만 맡겨두던 연구에 백련교주가 자신의 모든 마도지식을 털어넣어서 보강한 '순수한 전투용 초상기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백련교주가 외계금속 기술과 인공보패 기술을 응용해 새로운 오행지심(五行之心)이라는 마력기관을 장착시켰기에 모든 오행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걸 알 리가 없는 것이다.
태연하게 천인이 펼쳐낸 술법영역을 뚫고 뛰어든 오행활강시들이 동시에 천인을 공격했다. 그리고 쩡 하는 소리와 함께 활강시들의 공격이 천인의 방어막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카앙! 카앙!
카앙!
[……!!]
어마어마한 힘! 숫제 호법사자들이 주먹에 무한의 내공을 담고 두들기는 것처럼 패도적인 기세였다. 초상능력으로 물리력을 어마어마하게 향상시킨 데다가 오행활강시들의 육체 자체도 인간을 훨씬 초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술법저항력조차도 인간과는 비교할 바가 되지 않았으며 대요괴의 수준을 초월했기에 천인은 움찔했다. 그가 평소에 걸어두는 저주나 악령술이 전혀 안 먹혔기 때문이다.
‘인간놈들. 생긴 것만 인간처럼 생겼지 혼돈의 마물에 가까운 걸 만들어 냈구나.’
째앵!
그 순간 천인의 방어막이 깨지면서 활강시의 검이 천인의 가슴팍을 찔렀다. 그러나 천인은 재빨리 술법을 응용해서 순간이동으로 수백 장이나 떨어진 곳에 나타났고, 곧장 손가락을 튕겨서 광선을 발사했다.
뻐엉
보통의 무인이라면 호신강기째로 머리통이 날아갈만한 위력이었지만, 오행활강시는 초원거리에서 날아온 그 광선을 맞고도 잠깐 움찔하고는 멀쩡했다. 타고난 내구력도 인간을 초월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갈유룡이 백우선을 휘둘렀다.
“도망은 못 가지. 팔진도.”
쉬악!
머나먼 거리에 있던 천인은 순식간에 제갈유룡과 오행활강시의 바로 앞으로 소환되었다. 팔진도의 영향력이 미치는 거리였기에 팔진도의 술사인 제갈유룡은 그 안에 있는 적들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천인이 경악해서 말했다.
[어떻게 네 실력으로….]
아무리 방어막이 깨진 상태라지만 팔부신중의 본체를 진법의 영향력에 가둘 수 있다니!
천계의 대라신선조차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었다.
“물론 백 년도 안되서 대라신선을 뛰어넘는 술법력은 가질 수 없소. 하지만 지금 난 혼자가 아니니.”
쉬쉬쉭
제갈유룡의 등 뒤에 두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망량 제갈현과 그의 형인 제갈부였다. 잠시 자신의 아들들을 쳐다보던 제갈유룡이 말했다.
“전장이 어딘지만 알면 술법사는 무한한 이득을 얻을 수 있지. 현이의 시해지술과 부아의 낙혼별부가 내 팔진도를 보조하는 한, 나는 평소보다 최소한 열 배는 강력하오.”
[그래서?]
제갈유룡이 슥하고 손을 들었다.
스스스스….
그러자 어디에선가 초상기인들이 잔뜩 나타나서 수십 체나 출현해서 팔진도의 방위에 따라 천인을 포위했다. 주력은 오행활강시로 하고 나머지 초상기인들을 이용해서 천인을 몰아치려는 전략이었다.
“이 전장에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시오.”
[도망이라… 결국 네놈들이 다 죽겠지!]
그러나 제갈유룡의 말에도 천인은 전혀 기가 죽지 않았고 도리어 살기를 내뿜었다. 왜냐하면 제갈유룡 때문에 언뜻 밀리고 있는 듯 했으나 사실 하나하나의 실력을 보면 마왕인 천인 쪽이 여전히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쿠구구
천인의 살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망량과 제갈부가 움찔했다.
“으음….”
“괴물같군.”
그들 또한 수십 년 이상 술법과 무공에 용맹정진해왔으나 역시 상대가 마왕급이니 도저히 일개인으론 상대가 안 되는 게 느껴진 것이다. 보통이라면 인간이기에 절대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고 좌절하리라.
그러나 셋 중에 그 누구도 목숨이 아까워서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도리어 세 명의 책사들의 머릿속은 지극히 냉철하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계산대로만 하면 이긴다.’
시해지술, 팔진도, 초상기인, 부신술, 팔괘술법.
하나하나의 능력만으로는 결코 천인에 대적할 수 없었으나 연계를 잘 해서 상승효과를 정확히 발현할 수 있다면 충분히 맞설 수가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철두철미한 전략(戰略)의 영역! 그리고 그들 셋은 그 연계를 일백 수 이상 앞서서 계산할 수 있는 천재들이었다.
‘확실하게….’
‘두려움 없이 계책을 실천하면 이긴다!’
그들은 바로 제갈세가(諸葛世家).
제갈무후(諸葛武侯)의 피를 잇는 세계 최고의 지략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
한 명의 사내가 요괴대전 최후의 전장에 도착했다.
그 사내는 멀리서 벌어지는 격렬한 전투를 멀리서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즐겨볼까.”
인간으로서의 이름은 파순(波旬).
그의 진짜 이름은 팔부신중 아수라(阿修羅).
수십 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그 어떤 팔부신중 동료들과도 협력하지 않고 혼자 다니다가 오늘 처음으로 대전에 참여한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