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051화 (1,04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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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요괴대전의 상황은 제갈유룡의 예측대로 수십여 년의 장기전으로 흘러갔다. 팔부신중은 모종의 대술법을 써서 요괴를 지속적으로 소환하고 있었으나 [변이종]이 모두 사냥당하자 어쩔 수 없이 간헐적으로 인간형 모습으로 출현해서 자기 주변에만 요괴군단을 소환하곤 했다. 그리고 대웅제국 측은 성진과 아베노 세이메이의 합동술법을 이용해서 그 습격을 감지하고 정예를 투입해서 물리치는 식으로 지루한 소모전이 반복되었다.

꽈광!!

대웅제국의 대장군(大將軍), 극호(戟虎)는 폭음과 함께 자신의 극(戟)을 들고 펄쩍 뒤로 뛰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팔부신중, 마후라가를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제길. 뭐가 이렇게 쎄냐고….”

하지만 싸우지 않을 도리도 없다.

그는 지금 대웅제국에 충성을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극호는 과거 백웅의 실종 전, 진소청과 함께 백웅에게 붙잡힌 후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대웅제국에 임관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본래 그의 목표는 백련교에 복수하고 용비천을 잡아 죽이는 것이었기에 백련교와 손을 잡은 대웅제국에 투신하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 있던 극호가 뜻을 돌린 이유는 대웅제국 측에 감금되어 있던 어느 날, 그의 꿈에 진소청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사형. 대웅제국을 도와주시오.]

[진소청, 무슨 소리냐? 너는 갑자기 어디로 가 버렸냐.]

[나는 망량선사의 제자가 되어 그 분의 도움으로 사형의 꿈에 현몽할 수 있게 되었소. 그리고 황제 백웅은 전생자(轉生者)요.]

전후사정을 설명한 진소청이 말했다.

[전생자 앞에서 사형이 현재 품고 있는 풍신류에 대한 원한은 무의미한 것이오. 나도 사형도, 그리고 스승님도 크리슈나란 존재에게 조종당한 셈이오…. 전생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오. 도리어 우리는 그를 도와야만 하오.]

[믿을 수 없군. 꿈에 나타나서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는 걸 나더러 믿으란 말이냐?]

[그렇다면 사형이 지금 이 공간을 꿈이라고 여기면서도 현실과 분간할 수 없으며 또렷하게 사고할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오? 이게 단순한 꿈이라 생각하시오?]

[…….]

[사형. 풍신류 용비천 따위는 나중에 언제든 죽일 수 있소. 아니, 사실 그런 자에게 얽매이는 것 자체가 우리의 한계를 만드는 것이오. 그러니 지금은 더 큰 뜻, 대의(大義)을 위하여 힘을 키워주시오.]

[더 큰 뜻? 사문의 복수보다 더 중한 것이 있단 말이냐?]

[그렇소. 망량선사를 통해 알게 된 천기(天機)요. 누설해도 된다 허락받았으니 말해드리겠소. 그것은….]

이어진 진소청의 말에 극호는 바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건 극호에게 있어서 와닿는 문제였다. 극호는 크게 고뇌하다가 말했다.

[좋다…. 내 모든 원한을 접겠다. 대신에 넌 반드시 돌아와라.]

[물론이오. 최고의 힘을 키워서 돌아가겠소.]

진소청의 모습이 흐릿해지자 극호는 급히 외쳤다.

[야 이 빌어먹을 새끼야 너 진짜….]

건방지게 사형한테 명령질하지말고 일시켰으면 술 사라고.

“…….”

마지막 말을 하지 못하고 꿈에서 깬 극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대의라…. 와닿지 않는 말이다만 일단 약속을 했으니까 지켜주지.”

그리고 극호는 이후 투항의사를 밝히고 대웅제국에 임관했다. 이 때는 이미 백웅이 실종된 후였기에, 대웅제국의 전생동료들은 별다른 반대 없이 극호를 용납했다. 비록 극호가 과거 백웅의 전생에서 자신을 동료로 받아주지 말라고 부탁했으나, 지금은 손 하나라도 아쉬운 상황이었기에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후 극호는 칠대절학과 백련교의 수많은 무공들을 습득했고, 그리고 은둔한 뇌신류의 고수인 독고성에게서 사사했다. 뿐만 아니라 양산형 영약을 먹고 내공을 순식간에 키운 데다가 과거 뇌신류의 원로였던 적월과 청월, 녹월 등에게서도 비전절학을 전수받은 것이다. 크리슈나에게서 특수한 절기를 배워서 이미 가능성을 개화했던 극호는 엄청난 실력으로 실력이 성장했고, 약 십여 년 후에는 대웅제국 내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었다.

실력을 키운 극호는 대웅제국의 정복전쟁에도 종군하면서 실전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대웅제국 최고위 고수 중 한 명이자 대장군의 일좌를 차지한 존재가 된 것이다. 비록 유럽침공  당시 투신 크리슈나와의 전투 때는 절대지경에 오르지 못한데다가 본토수비가 필요했기에 참전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기에 팔부신중과의 대결에서 최강급 전력으로 참전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극호는 사천성(四川城)에서 팔부신중의 한 명인 마후라가의 본체와 정면으로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마후라가 본체와 겨룬지 고작해야 100여초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엄청나게 버거운 느낌을 느끼고 말았다.

‘크윽…. 평생 싸워봤던 놈들 중 제일 강하다.’

그에게 있어서 신적 존재와의 결투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극호는 내심 경악하고 있었다. 신적인 존재들은 차원이 다르다고 다른 절대지경 고수들에게 들어오긴 했으나 설마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극호의 모든 공격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지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맨몸으로 마후라가가 받아버리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마후라가가 시전하는 음공(音功)은 인간의 기준으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위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사전에 환신 천우진이 걸어준 술법보호막이 없었다면 100초는커녕 5초 안에 주살(呪殺) 당했을지도 모른다.

[죽어랏!!]

마후라가가 뱀의 몸을 뒤틀더니 강력한 술법을 입에 모으더니 뿜어냈다. 그걸 본 극호는 두 눈을 부릅떴다.

결전오의

뇌명(雷鳴)

탕마섬(蕩魔殲)

까강!

한 번 극이 휘둘러지며 번개가 튀었다. 마후라가가 뿜어낸 수천 개의 음파(音波)를 어마어마한 속도로 극을 회전시켜서 튕겨낸 것이었다. 이는 극호가 즐겨쓰는 수법으로써 순간적으로 뇌명을 시전해서 극의 칼날끝만 엄청나게 가속시키는 절기로써, 뇌신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수법이었다. 그저 극호가 수천 번의 실전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기술이었지만 그 위력은 뇌신류의 여느 오의에 못지않았다.

마후라가가 슬쩍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절대지경이란 것들은 정말 알 수가 없구나. 정말 창칼만 가지고 마왕(魔王)의 경지에 이른 자와 대적하려 드느냐? 당랑거철이란 말을 모르느냐!]

“흐음… 알게 뭐여.”

피식 웃은 극호가 순간적으로 눈에서 혈광(血光)을 뿜어내었다.

“내 목숨을 걸 테니까 팔 한쪽만 내놔!!”

[뭐라고?]

“간다….”

우우우우

그 순간 극호의 손에 들려있던 거대한 극이 피빛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손잡이는 물론이고 창날과 대가 모두 선혈의 색으로 빛나자 극호의 전신이 빠르게 떨렸다.

‘울어라, 방천화극(方天畵戟).’

통상적인 무기로는 극호의 절대지경 기술을 버텨내지 못해서 일 초만에 무기가 부서지고 말았다. 이론상 극호의 기술 자체가 무기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었다. 금강석으로 만든 무기조차도 극호의 의념에는 버텨내지 못했다.

그 때문에 곤란해하던 극호에게 제갈일족이 찾아내서 갖다준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전설의 무기이자 극(戟)의 정점에 도달했다는 방천화극이었다.

파지직!

혈뢰(血雷)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극호의 몸을 감쌌다. 그 형상을 본 마후라가가 극호를 경계하자, 극호는 마치 흉신악살처럼 웃으며 첫 공격을 시작했다.

“후하하하하!!”

절대지경(絶對之境)

천광혈뢰(天光血雷)

파앗

잠깐동안 마후라가의 감각에서 완전히 극호가 사라졌다. 그리고 마후라가는 자신의 몸 주위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핏빛 번개가 튀어다니는 걸 알아차렸다. 아무리 마후라가라도 번개의 속도를 상대로 감지해서 막거나 피할 순 없었기에, 이어지는 혈뢰의 소나기 속에서 섬광이 튀어나오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섬광은 절대지경의 의념을 머금은 방천화극의 칼날이었다.

꽈광!!

마후라가의 몸뚱이가 크게 허공으로 튀었다. 미리 음파의 방어막을 두르고 있어서 직격은 당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마후라가의 방어막에는 크게 균열이 생긴 상태였다. 마후라가는 내심 경악했다.

‘뇌전…. 빛의 속도 그 자체…. 이러면 나조차 반격할 수 없다.’

마후라가가 위기감을 느꼈다.

‘말도 안 돼. 광범위로 쓸어버리고 싶어도 저 놈이 빛의 속도로 치고 빠지면 더욱 약점만 노출할 뿐이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그는 알 리가 없었다.

극호가 뇌신류 멸혼보 오의 천광을 터득한 후 전생동료들을 통해서 뇌신지혼의 구결을 전수받고, 그 뇌신지혼을 토대로 자신의 무공에 맞춰서 최속(最速)을 내는 방법을 수십 년간 연구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혈뢰에는 검뢰뿐만이 아니라 무림 절세무공들의 요결이 섞여있어서 극호 본인에게 최적화된 상태로 최강의 공격력을 보인다는 사실을.

차라리 이러한 성장방식은 전생자 백웅에 가까웠다.

극호는 간접적으로 백웅의 도움을 받아서 수많은 절세신공을 토대로 자신만의 뇌신지혼을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광혈뢰는 진짜 뇌신지혼보다는 상당히 느렸으나 어차피 이 정도 속도의 영역에서는 무의미했다.

쿠콰쾅!!

다시 한 번 뇌신지혼에 버금가는 속도로 천광의 변화와 함께 극호의 공격이 마후라가의 방어막에 연속으로 내리꽂혔다. 방대한 내공과 의념을 지니고 있는 극호의 천광혈뢰는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쨍강

그 순식간에 무려 300격 이상을 가한 극호의 참격은 마침내 마왕 마후라가의 음파방어막을 부숴버리고 말았고, 이어진 방천화극의 칼날 끝이 마후라가의 비늘을 후볐다. 칼날이 부드럽게 마후라가의 살갗을 찔러들어가는 순간 마후라가는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이백 초 -

그 초수를 지나는 순간, 환영처럼 피빛 뇌전이 마후라가의 몸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혈뢰가 인간으로 변해서 극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청혈을 뿜어내며 마후라가의 오른팔이 허공으로 튀었다.

퍼버벅!!

후두둑

극호는 방천화극을 늘어뜨리면서 히죽하고 웃었다.

“당랑거철이라. 사마귀도 수레바퀴를 자를 수 있는 것 같은데?”

[크아아아아악!! 네 이놈!!]

쿠구구구

“윽.”

그 순간 마후라가가 크게 발광하더니 허공에 어마어마한 술법의 힘을 모았다. 극호는 급히 천광혈뢰를 써서 빠져나가려 했으나 이미 마후라가가 음파를 쏘아서 그의 몸을 옥죈 후였다.

‘제길! 천우진이 걸어준 술법방어막이 다 소진된 건가….’

방금 전 마후라가의 팔을 베는 동안에도 마후라가는 자동으로 술법으로 반격 중이었다. 마후라가는 특히 음파와 주술에 능했기 때문에 자동반사주술을 늘 달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천광혈뢰로 결정타를 먹일 때까지 마후라가의 자동반격을 감당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때문에 천우진이 걸어준 방어막이 다 소모된 모양이었다.

극호가 옴짝달싹 못하게 되자 마후라가가 입을 쩍 벌리더니 외쳤다.

[편히 죽여줄 순 없겠다. 내 밥이 되어라!]

“……!!”

[우선 한 번 구워주지!]

파지직!!

마후라가가 소환한 뇌운(雷雲)에서 번개덩어리가 떨어져 내리더니 극호를 감전시켰다. 극호는 엄청난 고통 때문에 몸을 떨었지만 끝내 신음소리도 흘리지 않았다. 그러자 마후라가가가 눈에서 이채를 띄었다.

[호오. 코끼리도 숯덩이로 만드는 뇌전술법인데 고통만 느끼고 멀쩡하느냐? 역시 뇌전의 무공을 다뤄서인지 내성이 있나보군.]

“…후욱, 후욱….”

[날것도 가끔 먹어줘야겠지.]

쩌억….

마후라가의 입이 사람 하나를 집어삼킬 만큼 크게 벌려졌다. 마후라가의 입천장까지 똑똑히 보이는 상황에서 극호는 자신이 이 상황을 역전할 방법이 있는지를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없군….’

역시 힘의 차이가 너무 크다.

극호는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진소청. 미안하다. 약속은 못 지키겠다.’

어둠이 덮쳐온다.

꿀꺽

전신이 뱀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극호의 의식도 사라졌다.

“이런, 늦었는가!!”

극호는 의식이 끊기기 직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마후라가를 죽이는 데는 성공했소만.”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극호가 치명상을 입어버렸구려….”

극호의 몰골이 너무 참혹했다.

그는 잠시동안 마후라가의 뱃속에 들어갔다가 대웅제국 전력들이 마후라가를 죽이면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그 잠시동안에 소화독에 당해서 전신의 피부가 뭉그러진 상태였다.

차라리 전신화상을 입은 인간이 멀쩡해 보일 정도로 잔인하게 피부가 타거나 쪼그라들어 있었고 숨조차 거의 쉬지 못하고 있었다. 임시로 망량이 술법으로 치유를 해서 생명만은 부지하고 있었으나 이미 살아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극호가 마후라가를 붙잡아두는 사이에 본대가 도착해서 팔부신중 본체를 단숨에 토벌하는 작전. 지금까지 팔부신중들이 합공을 당하는 시점이 되면 재빨리 도망치기 일쑤였기에 이번에는 특별히 함정을 팠고, 극호가 그 함정의 미끼를 자처했다. 확실히 잡아야 했기에 대웅제국의 전력을 다한 결계를 펼치는 데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차 때문에 극호가 당해버린 셈이었다.

콰직!!

합공을 받아 시체가 된 마후라가의 목을 밟아서 터뜨린 독고성이 분노를 토했다.

“이런 제기랄…!! 그 시해지술로 극호의 부상을 치유하면 안되는 건가!”

“…불가하오. 마후라가의 사독(蛇毒) 자체에 신력이 스며있어서 시해지술로 치유하려는 걸 거부하고 있구려.”

“극호는 살 수 있겠나?”

“…….”

망량은 침묵했다.

키잉

그러더니 갑자기 품속에서 단도를 뽑더니 극호에게 말했다.

“극호. 편하게 해 주겠소.”

망량의 말에 바닥에 누워있던 극호의 시선이 잠시 동안 망량을 향했다. 그러더니 아주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조금씩 움직였다.

어서 하라구.

그 대답을 독순술으로 읽은 망량은 이윽고 입술을 꾹 깨물더니 단숨에 극호의 목을 베었다.

스각

망량 또한 지난 세월동안 틈틈히 무공을 익혀왔기에 기(氣)가 실려있는 칼날이 깔끔하게 근육과 뼈를 잘라내었다. 극호의 수급이 땅에 떨어지자 독고성이 말했다.

“무슨 생각이지? 설마 극호를 못 살리기 때문에 죽였다는 대답을 한다면 내가 망량 너를 베겠다.”

독고성의 말에는 은근한 분노가 실려 있었다. 전장에서 동료를 편하게 해준다는 명분으로 대신 목숨을 끊어주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그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설픈 마음으로 동료를 죽이는 건 도리어 최대의 금기였다.

이윽고 극호의 수급을 보자기에 싸서 술법주머니에 집어넣은 망량은 독고성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으음.”

망량의 시선을 받은 독고성은 흠칫하고 말았다.

‘어떻게 저런 눈빛이….’

늘 재기(才氣)와 영특함으로 빛나고 있던 망량의 눈빛이 새까맣게 죽어가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죽은 동태눈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어르신. 제가 극호를 베었다는 건 모두에게 비밀로 해 주십시오. 동료간의 신뢰에 금이 갈 수 있으니 부탁드립니다. 때가 되면 제가 밝히겠습니다.”

“왜?”

망량은 그 눈빛으로 잠시 독고성을 응시하더니 말했다.

“이 세계에서 죽음이란 결국 영원한 지옥으로 향하는 것. 필멸자의 영혼이 명계로 가서 잔혹한 악신의 뱃속으로 처박히는 일이지요. 저는 극호만한 동료에게 그런 최후를 주고싶지 않습니다.”

“그럼?”

망량이 자신의 손에 들린 은빛 단도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 단도는 천계에서 가져온 보패인 봉혼도(封魂刀). 봉혼도에 죽거나 시체를 훼손당한 자는 명계로 가지 못하고 이 봉혼도에 99일동안 봉인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봉혼도의 봉인기간을 시해지술을 통해서 임의로 늘릴 수 있습니다….”

“잘 이해가 안 가는군. 결국 그 보패에 갇혀서 영혼만 존재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천리(天理)를 어기고 강제로 신선으로 만든다는 것이죠…. 제가 만든 편법으로.”

그 말에 독고성은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뭐라고! 어째서 그렇게 하는가.”

“…….”

망량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모든 건 백웅을 위해서….”

극호의 전사(戰死)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에게 알려졌다. 다들 슬퍼했으나 마후라가의 죽음이 그나마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이후 팔부신중과의 대전(大戰)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긴나라가 잡혀 죽었고, 그 와중에 3만여 명의 인간들이 증발하고 연종휘와 적월(赤月), 녹월(綠月)이 또한 사망했다. 또한 그 때까지 생존해 있던 황궁사신위 백호와 현무가 마인화해서 싸우다가 긴나라에게 죽었다.

“쿨룩… 쿨룩… 허허… 이게 나의 한계인가….”

동영의 검성이자 무토도리의 대가,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는 큰 부상을 입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기라성같은 동료들이 모조리 당하는 걸 보고도 끝까지 기력을 짜내서 싸웠지만, 긴나라의 본체는 너무나 강했다. 도저히 부상을 당한 상태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옆에 죽어있는 츠카하라 보쿠덴의 시체를 보며 말을 걸었다.

“친구…. 그래도 우린 절대지경을 밟지 않았는가…. 그리고 저 괴물의 본체에 한 칼씩 먹였지….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지 않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허허허!”

눈을 감은 채 죽어있는 츠카하라 보쿠덴을 보고 잠시 껄껄 웃던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는 눈을 감았다.

“무신(武神)이란 존재….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나에겐 연이 없었나….”

그렇게 동영의 양대검호는 눈을 감고 말았다. 그들 또한 절대지경에 도달해서 대웅제국의 주요전력으로 활약했었으나 긴나라의 발악같은 공격에 결국 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도 망량의 봉혼도에 봉인되었다.

희생은 갈수록 커져갔다.

전생자 백웅이 남긴 대웅제국의 인적 자원들은 계속 깎여가고 있었으며 갈수록 수뇌부의 정신력도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팔부신중과의 전쟁은 차분히 진행되었고, 특히 이번 긴나라 토벌에서 확실히 승기를 잡은 대웅제국은 기세를 탄 듯 했다.

그리고 요괴대전이 시작된 지 50년째 되는 해 -

마지막 결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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