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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048화 (1,04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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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검광(劍光)이 아르쥬나의 몸을 가르는 듯 했다. 검마의 의념이 만들어낸 검광이 집요하게 아르쥬나를 노렸으나 마치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관통될 뿐이었다. 그리고 검마의 공격이 실패한 순간 아르쥬나가 검마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고, 그가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한 뼘의 공명(共鳴)이 울렸다.

투웅

그 순간 검마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아르쥬나는 처음부터 절대지경 고수들 중에서 검마의 심기가 가장 흐트러져 있는 걸 간파하고 순식간에 그를 역습으로 쓰러뜨린 것이다.

그러나 검마가 제압당한 그 순간에 암천존 당산의 무형지독이 아르쥬나의 몸을 에워쌌고, 아르쥬나가 멈칫거리는 사이에 독고성이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기세로 필생의 검뢰를 날렸다.

티잉!

“……!!”

독고성은 아르쥬나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서 자신의 검 끝을 튕겨내는 걸 보자 아득한 절망에 휩싸였다. 설마했지만 상대가 지금까지 전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재차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순식간에 평정심을 되찾고는 버럭 외쳤다.

“끝이 아니다!”

무영검기(無影劍氣)

촤아악!!

독고성의 바로 등 뒤까지 따라붙은 무영검제가 어느 새 독고성의 검뢰에 섞이듯 자신의 검파(劍派)를 발출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독고성과 전음을 나누면서 합격을 구상했고, 검마가 쓰러져서 방심한 틈을 타서 기습한 것이었다. 무영검제 또한 지난 세월 동안 절대지경에 올랐기에 소리소문없는 무영의 칼날이 아르쥬나의 목젖을 베었다.

피잇

“헉….”

무영검제는 칼끝에 아무런 감각이 없는 걸 깨닫고 입을 벌렸다. 그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바로 금강불괴(金鋼不壞)였으나, 지금의 무영검제라면 설령 금강불괴라도 어느정도 흠집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르쥬나의 목젖에 그저 검은 선이 그어져 있을 뿐 그의 피부에는 아무런 부상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투쾅!!

“크학.”

“어억.”

독고성과 무영검제는 거의 동시에 아르쥬나의 쌍장에 맞아서 피화살을 입에서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날아가는 와중에 무영검제는 어째서 통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했으나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순수무인인 그로써는 아르쥬나가 공격받는 순간 차원(次元) 그 자체를 접어버려서 공격이 도달하지 못하게끔 한 원리를 절대 알 수 없으리라.

그리고 순식간에 셋이나 되는 절대지경 고수들이 당해버리자 당산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격차가 주는 압박감이 계속 심해지자 목숨에 미련이 강한 그로써는 공포심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당산이 주춤거리자 아르쥬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한심하군….]

퍼억!

아르쥬나의 수도(手刀)가 어느 새 당산의 배를 관통해 있었다. 원래 그가 방어에 전념했다면 어떻게든 피하거나 흘릴 수 있었을 테지만 정신이 흐트러지자 아르쥬나의 속도를 피해내지 못한 것이다.

“컥….”

당산이 입에서 꿀럭거리며 피를 흘리자 아르쥬나가 그의 수도를 뽑아내며 말했다.

[극한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 여럿이 덤빈다고 날 어찌할 순 없다. 나는 불멸자이자 전투의 화신…. 너희 필멸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당산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죽지는 않았으나 심령(心靈)이 함께 타격을 받았으므로 정신적인 피해가 더 컸다. 실제로도 암천존 당산은 이 전투 이후로 30여년간 부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은거하게 되었다.

“어째서지?”

이제 장내에 멀쩡히 서 있는 건 사공린 뿐이었고, 그녀의 바로 옆에는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양팔을 잃은 위지혼이 서 있었다. 사공린은 분노에 찬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지금까지 그 강력한 힘으로 [옛 지배자]는 쓰러뜨릴 생각도 않고…. 우리 앞에만 나와서 앞길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그런 당신이 정말로 질서이자 선이라고 할 수 있어?!”

[…….]

“이 위선자!!”

아르쥬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나 자신이 선(善)이라 할 생각은 없다. 우주의 질서란 그런 기준으론 판단할 수 없는 법. 다만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혼돈의 세상을 가속시키는 너희의 움직임이 내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개소리.”

사공린은 짤막하게 중얼거리고는 모든 의념을 집중시켰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단 한 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시간을 벌거나 반격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한 번의 기회를 벌어줄 수 있는 위지혼을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며 전음을 보냈다.

[한 순간만 버텨 주세요.]

위지혼이 그 전음을 들은 건지 듣지 못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위지혼은 희미하게 웃으며 자신의 혜검심인(慧劍心刃)을 띄워 아르쥬나를 겨누었다. 아르쥬나는 전투의지를 잃지 않은 둘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무의미한 발악이군. 이제 와서 내게 일격을 먹인들 무슨 소용이 있지? 너희의 희망인 백련교주와 서문혜, 초상기인이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거늘.]

“거만떨지 말고 덤벼.”

[후후, 좋다. 지루하지 않게 하는구나.]

파앗!!

다음 순간 - 아르쥬나가 직접 몸을 움직여서 달려들었다. 사공린의 투지가 그를 자극했기에 원거리 신술인 아스트라를 쓰지 않고 직접 물리치기로 한 듯 했다. 사공린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모든 기와 의념을 한 점에 모아서 집중을 했다.

본디 이런 초고속 대결에서 적을 앞에 두고 집중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한다고 해도 상대의 헛점을 잔뜩 만들어놓고서야 여유를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도 사공린이 집중을 시작한 이유 - 그것은 위지혼이 반드시 그녀에게 한 순간의 여유를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와앗

아르쥬나가 야마의 철퇴를 손에 소환해서 어마어마한 기세로 내리쳤다. 이 철퇴는 죽음의 기운을 머금고 있어서 직접 맞지 않더라도 보통 인간은 반송장이 되기 십상이었다. 또한 투신답게 엄청난 거력을 지니고 있어서 이 한 방에는 산을 두 쪽 내고도 남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야마의 철퇴가 날아오는 걸 심안(心眼)으로 간파한 정천맹주, 위지혼은 그 순간 눈을 번쩍 떴다.

태극혜검(太極慧劍)

무쌍패(無雙覇)!!

음양의 힘이 패도를 이루며 아르쥬나의 철퇴와 충돌했다.

후와악

그리고 철퇴와 충돌한 순간, 위지혼은 엄청난 거력과 함께 죽음의 기운이 보랏빛으로 변해서 그의 팔에 질척하게 달라붙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신화의 힘인데다 장비만의 특수효과이기 때문에 무쌍패로도 완전히 막을 순 없는 것이다.

아르쥬나가 용의주도하게 미숙련 무쌍패의 헛점을 파고든 전략이 바로 야마의 철퇴였다. 죽음의 기운이 팔죽지를 지나 심장에 도달하는 순간 위지혼은 즉사하게 되리라.

‘아아….’

맑은 공기.

수풀에 누워서 쳐다보던 보름달.

죽음을 앞둔 위지혼은 찰나, 무당산(武當山)의 풍경이 눈앞에 떠오르는 걸 느꼈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를 잃고 무당산 앞에 버려졌다. 그리고 무공의 재능이 뛰어나서 본산의 제자로 키워질 뻔 했지만, 의로운 일을 하려다가 악한을 살해하는 바람에 속가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위지혼에게 있어서 무당산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었으며 무(武)의 근원이었다.

쿠드드득

위지혼의 무쌍패는 성공했으나 죽음의 기운이 시시각각 그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이대로 즉사하게 된다면 야마의 철퇴는 다시 힘을 되찾아 집중하고 있는 사공린을 공격해서 그녀의 머리를 터뜨리게 되리라.

그것만은 안 된다.

위지혼은 생애에 두 번 다시 없을 정도로 집중해서 생(生)을 얻으려 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 생각할만한 그 순간, 위지혼은 천재적인 발상을 해냈다.

‘죽음이란 음(陰)… 그렇다면…. 삶이란 양(陽)이다. 삶과 죽음 또한 음양이라고 한다면… 죽음 또한 음양으로 감당할 수 있다!’

나 자신의 의념천주를 모조리 생명력으로 바꾼다.

무쌍패(無雙覇)

무위전변(無爲轉變)

위지혼이 지니고 있던 모든 무력과 의념이 고스란히 생동하는 생명력으로 뒤바뀌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이 심장을 향해서 나선(羅線)처럼 파고들자 죽음의 기운과 심장 바로 앞에서 부딪히게 되었다. 죽음의 기운은 완전히 반대에 있는 생명력에 부딪히자 잠시 저항하는 듯하더니, 위지혼이 머릿속에 구현화한 음양의 구도에 이윽고 흡수되어 천천히 윤전(輪轉)을 시작했다.

구우웅….

위지천은 이 한 순간 그가 평생동안 수련해 온 모든 성취와 내공을 잃어버렸으나 한탄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내면에서는 마치 소우주처럼 들끓는 새로운 태극(太極)이 생겨난 것이다.

의천태극(義天太極)

무쌍패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새로운 가능성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키리링

이윽고 위지천의 머리 뒤에서 맑은 후광이 퍼져나오더니 그의 몸 전체를 감싸는 태극의 흐름이 현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

지금까지 싸우면서 한 번도 놀란 적이 없었던 아르쥬나였으나 그 태극을 보는 순간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는 신이었기 때문에 눈앞의 태극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를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격하는 것조차 잊고 외쳤다.

[인간의 무(武)로 생사(生死)의 섭리를 동시에 얻었단 말인가….]

무욕(無慾) 그 자체로 화한 위지천은 지그시 아르쥬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신이여. 삶과 죽음을 포용하는 태극(太極)을 어찌 부수겠소?

[건방진…!!]

아르쥬나는 힘을 잃은 야마의 철퇴를 내던져버리고 대신에 자신의 손바닥을 내밀어서 태극에 정면으로 마주쳤다. 신력(神力)을 써서 개념화한 태극을 곧장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신의 권능에 감히 필멸자가 절대방어를 자랑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터엉

[큭!!]

아르쥬나는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모든 신력을 불어넣은 일 장이 위지천의 의천태극이 펼쳐내는 생화의천(生化義天)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르쥬나는 그제서야 눈앞의 태극이 음양의 패도를 넘어서서 진정한 중용(中庸)을 구현화하고 있기에 절대 힘으로 부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간디바를 쓴다면 아무리 이 태극이라도….’

아르쥬나는 이제서야 진지해질 필요를 느끼고 자신의 최대최강의 병기, 간디바를 소환능력으로 꺼내려 했다. 그러나 아르쥬나가 간디바를 꺼내려 할 때는 이미 모든 생애의 집중력을 소모한 사공린의 절대지경이 전력을 다해서 아르쥬나에게 덮쳐오고 있었다.

유아독존(唯我獨尊)

사공린의 일 검이 그대로 아르쥬나의 턱에서부터 정수리까지를 올려 베었다. 아르쥬나는 공격을 받는 순간 무영검제의 공격을 받아내던 것처럼 차원화(次元化)로 흘려내려고 했지만, 이윽고 이 공격에 차원조차 찢는 힘이 실려있다는 걸 깨닫자 눈빛이 흔들렸다.

푸콰콱!!

[크윽.]

아르쥬나는 초회복력을 발동시켰지만 큰 굴욕감을 느꼈다. 공격력이 탁월하다는 건 예상했지만 설마 이 정도라니?

“죽어…!!”

사공린은 어마어마한 살기를 분출해내며 눈빛에서 금광(金光)을 크게 일으켰다. 그리고 사공린이 다시 한 번 유아독존을 쓰는 순간 그녀의 검끝에서 금빛 아지랑이가 일어났다.

절대지경, 유아독존.

그것은 공손검법의 최후반에 존재하는 무적삼검(無敵三劍)을 사공린이 수련하던 중에 터득해낸 절대지경이었다. 무적삼검의 초식은 치우살(蚩尤殺), 만마군림(萬魔君臨), 영겁지무(永劫之舞)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본디 이 3개의 초식은 수련법이 실전되었다고 여겨져서 약해빠진 초식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사공린은 무적삼검을 수련하던 중 무적삼검의 구결이 마치 나눠져있던 조각이 합쳐지듯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하나가 됨을 느꼈다. 그리고 무적삼검을 수련하면 수련할수록 무공의 성취는 더더욱 빨라지고, 그녀의 내공은 차원이 다를 정도로 급증했다. 마치 천년설삼을 반복해서 먹은 백웅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기이한 일이었다. 다른 자들도 공손검법을 익히기도 했고 구결을 외웠으나,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오로지 사공린 뿐이었다.

유아독존이란 무적삼검의 구결로 얻은 힘 중에서 제이검(第二劍) 만마군림(萬魔君臨)의 구결을 의념천주로 구현화시키는 수법이었다. 그리고 그 진짜 효과는 바로 -

스카칵!!

[크아악.]

마치 톱으로 고깃덩어리를 잘라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아르쥬나의 오른팔이 하늘을 날았다. 아르쥬나의 피를 뒤집어쓴 사공린의 눈은 완전한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피에 갈증을 느끼는지 살짝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한 번 아르쥬나의 심장을 찔렀다.

[이런….]

아르쥬나는 깨달았다. 저건 사용자의 [각성]과 함께 계속해서 진화하는 무예! 당초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충분히 신조차 베어낼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시공간을 조작하는 잡기(雜技)로는 대응할 수 없으니 재빨리 뒤로 물러나서 피해야 한다.

슈욱

사공린이 추격하듯 아르쥬나를 쫓아서 도약했다.

그리고 도약하는 순간, 사공린은 자신의 앞에 있던 위지혼의 움직임이 멈춰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의천태극은 잔존해 있으나 이미 위지혼은 숨이 끊어진 것이리라. 사공린은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지만 이를 악물며 아르쥬나의 심장을 찔렀다.

까앙!!

아르쥬나가 소환한 그의 최강무기이자 활, 간디바가 사공린의 검을 튕겨냈다. 간디바를 이용해서 몸의 균형을 바로잡은 아르쥬나는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아독존이라. 모든 이능력(異能力)과 시공조작을 무효화하는 절대지경이란 말인가? 마치 처음부터 신성을 염두에 둔 것 같군….]

“…….”

[하지만 그건…. 무예이자 무예가 아니군. 결국 너는 알에서 깨어날….]

후두둑

그러나 아르쥬나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어느새인가 사공린의 검이 그의 심장에 꽂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르쥬나가 경악해서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자 사공린이 냉막하게 말했다.

“무효화할 수 있다면 반대로 조작할 수도 있지.”

[큭…!!]

인과역전!

신격들이 필멸자를 농락하려고 자주 쓰는 그 수법을 이미 사공린 또한 쓸 수 있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사공린은 눈치채지 못했으나, 아르쥬나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일 눈앞의 존재가 진짜로 알에서 깨어난다면 아무리 아르쥬나라도 이 자리에서 당할 수도 있었다.

가슴에 칼이 박힌 아르쥬나가 비틀거릴 때였다.

시해지술(尸解之術)

봉인(封印)

지금까지 주력을 치료하며 틈을 노리고 있던 망량이 시해지술을 시전해서 아르쥬나의 영혼에 구속봉인술을 걸었다. 원래 아르쥬나의 술법방어력이 너무 높아서 아무리 시해지술이라 해도 망량의 힘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었지만, 사공린의 유아독존이 먹힌 순간 아르쥬나의 힘이 현격히 약해진 걸 눈치챈 것이었다.

철그렁 철그렁

무형의 쇠사슬이 아르쥬나의 몸을 에워싸서 움직이지 못하게끔 했다. 아르쥬나가 몸을 버둥거리자 망량 제갈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아르쥬나여…. 그대는 분명 해신 이상으로 강력한 존재. 해신이라 해도 쓰러뜨릴 수 있는 전력을 갖추고 왔다 생각했는데도 이 정도로 당할 줄은 몰랐소. 그런데도 그 정도 힘을 가지고도 이 세상에서 악이라 할 수 있는 [옛 지배자]와 싸우지는 않고 왜 우리 앞만 가로막는 것이오? 정말 왜…? 그 진의를 말하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소?”

[인간따위가 함부로 신의 뜻을 추측하려 하지 말라.]

“내가 맞춰보지. 질서고 혼돈이고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오. 당신 말대로 당신은 처음부터 우리만 방해하려고 나타난 존재요. 당신에게 인간의 문명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오. 당신에게 지령을 내린 배후의 존재가 있고, 그 존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웅제국을 견제하라고 당신에게 의뢰한 거겠지.”

[…….]

“위선이라 말한 건 정정하겠소. 당신이야말로 질서를 품은 악(惡)이오. 비단 당신만이 그런 게 아니라 모든 고대신이 그러하겠지만.”

망량의 말에 아르쥬나는 쓸쓸하게 웃었다.

[내가 죽는다 해도 화신의 소멸에 불과하다. 나의 본체가 건재할진대 너흰 정말 끝까지 나와 겨룰 생각이냐? 개미의 힘으로 이 세계의 절망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린 절망과 싸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오. 그런 당신이야말로 어차피 종말을 앞둔 이 세상에서 무슨 미련이 남아 섣불리 굴복하는 것이오?”

[…하하하. 정녕…. 진심으로 세계를 바꿀 생각이더냐.]

아르쥬나가 기가 막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때쯤, 망량의 치료술로 완전히 회복된 백련교주와 초상기인, 서문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이 회복된 걸 보던 아르쥬나가 말했다.

[시해지술로 그들이 당하기 전의 시간으로 되돌렸구나…. 내 신력에 당하면 누구도 회복할 수 없는데 이런 식으로 치유할 줄이야.]

“당신은 졌소. 하지만 당신에게 이런 짓을 시킨 자의 이름을 말한다면 풀어주겠소.”

[후후, 말해 뭣할까….]

우우웅

백련교주가 자신의 힘을 끌어올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분한 듯 중얼거렸다.

[내 힘이 불안정하지만 않았어도 너와 제대로 겨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아르쥬나가 말했다.

[네 힘의 근원이 극한의 혼돈이거늘 그걸 통제해서 인간처럼 써 보겠다고? 턱없는 오만이군….]

[시끄럽다.]

백련교주의 손이 덥썩하고 아르쥬나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그리고 사공린 또한 금안을 빛내며 다가왔다. 이제 힘을 합쳐 아르쥬나를 ‘마무리’할 때가 온 것이었다. 아르쥬나 또한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말했다.

[너흰 백웅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죽고, 또 죽다가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퍼억!!

백련교주는 아르쥬나의 머리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알고 있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백련교주는 그 말을 입 안으로 삼켰다. 그 말을 하게 되면 비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전투가 마무리되자 백웅의 전생동료들은 아군을 챙겨서 파리를 나섰다. 그러나 모든 절대지경 고수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으며 심지어 초상기인은 반파(半破)당해서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하게 되었다. 게다가 서문혜의 부상은 잘 낫지 않아서 급히 낙양으로 후송되어서 전면치료를 받게 되었다.

또한 이번 전투에서 위지혼과 무영검제가 사망했다. 그들은 평상시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오랜 전쟁 동안에 절대지경에 오른 소중한 전력이었는데 결국 죽은 것이다. 특히 위지혼의 마지막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던 사공린은 크게 낙담했다.

파리의 전투가 끝나자마자 대웅제국은 곧장 대영제국을 공격했다. 제갈사의 강력한 주장으로 시작된 대웅제국의 공격은 삼 주야만에 내륙까지 파고들어가서 대영제국의 마도사들과 전면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콰과광!!

하늘 한 켠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혼돈화(混沌化)를 한 채 마치 사도나 다름없어보이는 어마어마한 힘을 뿜어내는 백련교주와, 그 백련교주에 대항해서 인신공양 제물을 이용해 [옛 지배자]의 힘을 빌린 팽조가 막상막하로 싸우고 있었다.

제갈사는 대영제국 총독부 관저의 테라스에서 그 전투를 지켜보다가 중얼거렸다.

“팽조만 쳐 죽이면 더 이상 방해할 놈은 없으니, 이제 이 전투만 끝나면 대웅제국은 세계정복을 완료합니다만….”

그는 힐끔 뒤편에 서 있는 의문의 여인을 뒤돌아보았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스승님.”

거기에는 영지주의의 마왕(魔王) 시몬 마구스가 도왕 벽지상의 모습을 한 채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시몬 마구스는 훗하고 웃더니 대꾸했다.

“제갈사. 악마전생의 계약을 바로 지금 집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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