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047화 (1,044/1,615)

1047====================

진공가향(眞空家鄕)

동서전쟁은 그로부터 12년 후 재개되었다. 사실상 서방열국을 제외한 모든 문명권을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대웅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의 충돌! 휴전기간 동안 대웅제국의 국력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으며 이번에도 200만 대군을 동원했으나 군대의 질적인 향상이 대단히 컸다.

쿠구구구

비공선(飛空船)이라고 불리는 신병기를 만들어낸 대웅제국은 이 기구를 이용해서 전이문 없이도 신성로마제국의 상공을 날아 후방의 요새를 공격할 수가 있었다. 비공선을 개발해낸 건 제갈부였으며 그는 언제부터인가 과학기술의 총아와 전면개발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비공선 한 대에 약 일천여 명밖에 수송할 수 없었지만, 그 안에 무공을 익힌 최정예부대를 수송할 수 있었기에 요새의 점령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타탕! 탕!!

“크아악.”

최신식 소총을 쏘며 베네치아의 요새에 잠입한 대웅제국 특수여단의 단장은 성주를 사살한 후 커다란 기계를 등짐에서 꺼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땅에 놓이자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단장이 시꺼먼 판을 들어서 판에 대고 입을 열었다.

“제압 완료. 베네치아 성주를 사살했습니다.”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마도의식의 흔적을 확인하고 발견시 접근하지 말고 즉시 보고하라.]

“존명.”

특수여단장은 대원들과 함께 성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비밀의 방을 발견해서 그 안에 동남동녀(童男童女) 오십여 명이 갇혀있으며, 피칠갑이 된 마법진의 방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무림의 정파인 해남파(海南派)에서 종군하여 여단에 배속된 해강검객(海鋼劍客) 섭자문(攝磁汶)은 경악해서 외쳤다. 그는 삼십 대의 무림 후기지수로써 해남 일대에서 뛰어난 명성을 떨치던 검객이였다.

“이럴 수가…. 서양놈들, 정말로 인신공양을 했단 말인가? 당장 저 아이들을 꺼내줍시다, 단장.”

까앙!

창살을 검기로 자르려고 달려든 해강검객 섭자문의 검이 특수여단장의 검에 가로막혔다. 마주 검기를 써서 섭자문을 막은 특수여단장은 날카로운 눈으로 말했다.

“함부로 저들에게 접근하지 마라, 섭자문.”

“저 불쌍한 아이들을 꺼내줘야 하지 않겠소.”

“지금같은 상황이 예전에도 있었지. 그 때 나는 자네처럼 무작정 인질을 구출하려던 아군을 막지 않았다. 그 결과, 나 빼고 모든 대원들이 전멸했다.”

“……!!”

“오늘은 그 날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준비해라.”

섭자문은 ‘준비’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언뜻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특수여단장이 품 속에서 술법의 문양이 새겨진 돌덩어리를 창살감옥 안으로 던지자, 돌덩어리에서 오채를 머금은 연기가 새어나와서 방 안을 채웠다. 그리고 잠시 후 오십여 명의 어린아이들 중 네다섯 명이 몸을 뒤틀기 시작했고 그 아이들의 피부가 시꺼멓게 변하며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꾸드드득!!

차마 형언할 수 없는 괴기한 형상! 그것은 흔히 이족이라 불리는 마물들이었다.

“헉!”

“죽여라.”

퍼퍼퍽

그들은 다같이 달려들어서 괴물이 완전히 변하기 전에 검기를 꽂아서 죽였다. 괴물들이 처참하게 널부러지자 그제서야 여단장은 아이들을 구출했다. 일련의 과정을 보던 해강검객 섭자문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여단장에게 질문했다.

“으윽, 이럴 수가…. 괴물들이 정체를 위장한 채 아이들 사이에 숨어있는 거였소? 아니면….”

“…….”

여단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설마….”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해강검객 섭자문은 형언할 수 없는 괴이함과 절망을 느꼈다. 다른 경우일 경우 자신들이 행한 게 어떤 의미인지는 익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섭자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자 여단장은 한숨을 쉬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간 수고했네 섭자문. 자네의 전역을 상부에 추천하겠네.”

“다, 단장.”

여단장은 무감정하게 중얼거렸다.

“여긴 악몽의 터전일세. 자네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 듯하군. 미쳐버리기 전에 무림으로 돌아가게.”

섭자문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에 안도감을 느끼는 자기자신에게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은 전선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대웅제국은 별 피해 없이 안정적으로 전선을 잠식하며 요새를 점령했으나 그만큼이나 마도(魔道)가 거미줄처럼 퍼져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 와중에 정신력이 바닥까지 떨어져서 미쳐버리거나 실의에 빠져 떠나가버린 병사들도 숱하게 많았다.

“문제군. 설마설마했지만 이건 아예 마계(魔界)나 다름없어. 우리는 인간과 싸우는 게 아니다.”

제갈부는 대웅제국 최대의 비공선에서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이번 전쟁의 작전참모로써 모든 전장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취합해서 듣고 있었는데, 마(魔)와 결탁하거나 인신공양을 벌이는 빈도가 너무 높았다. 몇몇 장소에서는 강력한 마물이나 이족이 이미 출현해 버려서 현지부대로는 정면승부를 하지 않고 좌시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마도사들이 떼로 출현하면서 마법을 난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므로 골치가 아팠다.

대웅제국의 최대 간부회의에 함께 참석해 있던 제갈사가 킬킬 웃었다.

“크크, 예상했던 일이지. 백웅의 전생시점에서도 이미 대놓고 고위이족들이 성주로 활동할 정도로 마에 잠식된 대지가 바로 유럽이었다. 그때부터 수십 년이 지난 데다 우리의 침공 때문에 이족간의 결속이 더 단단해졌을 테니까.”

“…이런 땅을 굳이 지배할 필요가 있을까? 지배한다 치더라도 요기와 마력을 몰아내는데 터무니없는 손해가 들 것이다.”

“그런 건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어. 중요한 건 대영제국을 한 번이라도 공격해보는 거니까.”

제갈사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백련교주에게 말했다.

“교주. 아직도 [불안정]한가?”

[…….]

백련교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멀쩡한 의식이 있는 게 아니었고 약간 가사상태에 가까워보였다. 백련교주가 반쯤 의식을 잃었다는 걸 확인한 제갈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크크크…. 빌어먹을 일이군.”

과거, 백련교주는 이대로는 자신의 힘이 발전이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무예의 연마보다는 원영신의 숨겨진 힘을 끌어내는 수련에 몰두했었다. 그러나 뭔가가 잘못 되었는지, 백련교주는 예전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손에 얻었으나 간헐적으로 의식을 잃거나 가사상태에 빠지곤 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몰랐는데 왜냐하면 천하에서 원영신을 얻은 게 백련교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간부회의에 참석해 있던 사공린이 말했다.

“교주의 도움이 없어도 신성로마제국 정도는 쓰러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절대지경에 올라서 자신만만하구만 그래. 크크크.”

“카를 5세의 정체가 크리슈나라는 건 기정사실. 크리슈나를 물리칠 힘은 충분합니다.”

“속단하지 마라. 아직 우린 전투형 화신 아르쥬나의 힘은 전혀 보지 못했고, 팔부신중도 아직 모습을 드러낸 적 없으니까.”

“…….”

“흐음. 그럼 정신 못 차리는 교주 대신 내가 전략을 짜지. 속전속결보다는 인간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고위이족을 먼저 제거하는 쪽으로 간다.”

“망량의 뜻에 따르는군요.”

제갈사가 정한 방침은 사실 본토에서부터 망량 제갈현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것이었다. 제갈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지. 크리슈나같은 능구렁이를 상대할 때는 효율만 추구하다가 도리어 함정에 빠지니까 정공법이 나아.”

“그런가요.”

제갈사는 냉소를 지었다.

“이렇게나 효율 빠지는 작전을 하는 바에야, ‘인간의 힘’이란 게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지.”

2차 동서전쟁은 제갈사의 결정에 의해 어둠속의 전쟁으로 변모했다. 각국의 요새를 빠르게 점령한 대웅제국이었으나 초기의 불꽃같은 진격과는 달리 이후에는 전선을 유지한 채 지지부진하게 대치만 거듭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수많은 대웅제국의 비밀요원과 무림고수, 술법사들이 암중에서 움직이며 유럽의 각 성(城)에서 터를 잡은 강력한 고위이족을 몰아내는 피 터지는 쟁투가 이어졌다. 대웅제국은 이 과정에서 십수 년 동안 양성했던 뛰어난 인적 자원을 많이 잃었으나, 마도(魔都)나 다름없이 변해 있던 각 성의 인간들을 구출해서 민심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약 삼 년 동안 천천히 전선을 밀던 대웅제국은 마침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도피한 프랑스의 수도 파리까지 몰아붙였으며, 파리에서 전래 없던 대결전이 일어났다.

파지지직!

파지직!!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신적 존재인 크리슈나의 권능에 의해 설치된 강력한 결계로써 대웅제국의 술법사들이 모두 달라붙었으나 이 적색 결계를 해제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 17 술법사부대 보고. 결계해제, 실패!”

“화포부대 계속 포격 중! 하지만 물리력이 통하지 않습니다.”

보고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비공선에서 파리를 뒤덮은 적색 결계를 쳐다보던 제갈부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크리슈나…!! 이렇게 강한 놈이었단 말인가?! 전생동료 모두가 투입되었는데도 아직도 승기를 잡지 못하다니.”

그랬다.

크리슈나는 전체적인 판세가 수세에 몰리자 카를 5세로 위장했던 정체를 드러내고 대웅제국의 간부들에게 최종결전지를 파리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대웅제국측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 최정예들을 엄선해서 수도 파리로 들어가서 싸운 것이다. 제갈부는 초조하게 내부 상황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정말….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현자의 돌을 써서라도.’

그가 불안하게 내부상황을 걱정하고 있을 때 크리슈나와의 전투는 더욱 격화되고 있었다.

콰과광!!

콰광!!

빛을 연상시키는 속도로 절대지경 고수들이 덤벼들었다. 의념천주를 이용해서 절학을 펼쳐내는 대웅제국의 절대지경 고수들은 하나같이 백웅의 전생동료이거나 백웅이 끌어들인 절세천재들이었다.

절대지경(絶對之境)

무형지독(無形之毒)

“받아라!”

암천존(暗天尊) 당산(唐傘)의 의념천주가 곧추서며 무형무흔의 독이 적의 신형을 에워쌌다. 당산은 그 동안 대웅제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수련에 용맹정진했고, 절대지경에 이른지는 십 년이 훨씬 넘은 것이다. 마침내 무형지독의 경지에 도달한 당산은 이족과의 전쟁에서 실전경험을 더욱 쌓아서 어떤 고위이족이라도 녹여버리는 절대 독왕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퍼버벅

일순간 상대의 신형이 멈추면서 몸을 둘러싼 날개옷의 일부가 녹았다. 그러자 상대는 재밌다는 듯 껄껄 웃었다.

[하하하…. 내 옷을 녹일 수 있는 독이라니 제법이구나.]

“크윽. 괴물새끼!!”

암천존 당산은 그 순간 진심어린 공포를 느끼며 기겁했다.

‘말도 안돼! 무형지독이 안 통하다니….’

왜냐하면 방금 전의 무형지독은 그의 모든 의념을 동원한 것이었으나 상대는 마치 옷자락이 불에 그슬린 정도로 취급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그의 무형지독은 날개옷을 일부 녹였을 뿐 전혀 본체에 타격을 주지 못했다.

절대지경(絶對之境)

검뢰(劍雷)

절대지경(絶對之境)

진(眞)

무영탈혼(無影奪魂)

무형지독이 상대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했으나 줄곧 완벽한 방어로 일관하던 적에게 빈틈을 만든 것은 사실. 그 틈새를 노리고 절대지경의 고수인 독고성과 검마 서문대룡이 동시에 덤벼들어서 합격(合擊)을 펼쳤다.

검뢰가 허공에 부유하는 사이에 검뢰에 검마의 무영탈혼이 머금어졌다. 뇌검(雷劍)과 영검(影劍)이 합쳐지자 흑백뢰(黑白雷)가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장관이 펼쳐졌다. 수십만 개의 어검이 검뢰를 뿜으면서, 오로지 상대를 적중시키는 순간에만 실체화되는 궁극의 살초(殺招)!

이 합격진은 백련교주조차도 대련 중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파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했다. 애시당초 절대지경 고수들이 수십 년동안 합을 맞춰서 만든 합격진 자체가 꿈에서나 가능한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호오. 제법….]

그래서인지 상대는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처음으로 손을 들어서 방어했다.

콰앙!!

반투명한 방어막이 생겨나더니 독고성과 검마의 합격진을 그대로 방어해냈다. 그 방어막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걸 깨달은 독고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고, 아직도 투지가 살아서 공격하려는 검마의 옷자락을 잡아끌어서 뒤로 도망쳤다.

후웅

[검마, 우리 역할은 시간끌기다! 우리는 아군 주력이 체력을 회복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만 한다. 저 괴물은 인간의 힘으로 못 이기니 냉정해라.]

[…….]

[냉정하란 말이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그러나 검마의 두 눈에는 투지와 분노가 가득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본 독고성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자기 딸이 당해서 의식불명이니 어쩔 수 없는가…!!’

그는 뒤를 힐끗 보았다. 망량 제갈현이 시해지술을 써서 기절한 서문혜를 회복시키고 있었으나 서문혜의 복부에 난 자상(刺傷)은 쉽사리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

현재 저 신화적 괴물을 상대로 전생동료들은 패색이 짙은 것이다.

제일 처음에 아군의 최강전력이 덤벼들었었다. 백련교주, 서문혜, 그리고 최강의 전투형 초상기인이 동시에 합공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 셋은 처음에는 팽팽하게 싸우는 것 같았지만 이윽고 전투형으로 변신한 저 괴물을 상대로 밀리다가 결국 셋 다 일격씩 먹고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따라온 절대지경 고수들이 세 명이 회복할 때까지 버티는 중인 것이다.

콰과과광!!

“하아압!!”

[받아라.]

“괴물같은 놈!”

그들에 이어서 백련교의 삼대호법사자들이 동시에 천령단의 무한내공으로 끌어낸 거대한 장풍을 내뿜었다. 산을 몇 개나 날릴 위력의 합공이었으나 이번 합공 또한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양 손의 수인(手印)을 맺어서 대응했다.

아스트라(अस्त्र)

바루나(वरुण)

키잉-

신급 술법, 바루나의 아스트라가 펼쳐진 순간 천령단의 합격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무(無)로 소멸되고 말았다. 상대방은 아무렇지 않은 듯 뇌까렸다.

[내가 술법을 시전하는 한, 너희의 공격은 물과 같이 흩어지리라.]

그 모습이 독고준은 큰 충격을 받았는지 두 팔을 늘어뜨렸다. 그의 전력을 다한 수룡이 완전히 분해되는 모습은 그를 일어서기도 힘들게 했다.

[이, 이게 신의 힘인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깨닫고 있었다.

[저것]은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걸.

여태까지 전생자 백웅의 도움으로 결집했던 모든 힘이 무의미해질 정도의 절대적인 강자라는 사실을. 심지어 유럽의 각 성에서 마주쳤던 고위 사령(邪靈)이나 이족조차도 저 놈에 비하면 피라미나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쿠웅….

처음으로 대지에 한 걸음을 내딛은 적.

둔중하게 대지의 울림이 퍼져나가는 걸 즐기는 듯 하던 그 존재가 웃었다.

[나는 창조신 비슈누이자 크리슈나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 화신(化神) 아르쥬나(अर्जुन). 너희에게 절망을 보여주마.]

그 때였다.

절대지경(絶對之境)

유아독존(唯我獨尊)

콰앙!!

[……!!]

난데없이 턱을 얻어맞아서 얼굴이 삐끗하고 돌아간 화신 아르쥬나였다. 그는 이마에 있는 세 번째 눈을 움직여서 자신을 가격한 존재를 쳐다보았는데, 거기에는 어느 새 사공린이 검(劍)을 겨눈 채 서 있었다. 사공린은 맹렬히 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우린 지지 않는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다른 모든 절대지경의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거나 막은 아르쥬나였으나 사공린의 유아독존에는 아무런 반응도 못하고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르쥬나는 이윽고 신의 통찰력을 이용해서 인과율을 조금 읽어내었고, 유아독존의 정체를 알아내고는 여유롭게 웃었다.

[네가 각성했다면 나라고 해도 간디바(गाण्डीव)를 써야만 하겠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구나,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 존재여.]

“뭣….”

[하지만 너 같은 존재는 각성하기 전에 밟아 죽이는 게 낫겠지. 죽어라!]

투신 아르쥬나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그와 동시에 아르쥬나의 눈 앞에 강력한 신술(神術), 아그네야스트라(आग्नेयास्त्र)가 소환되어서 발사되었다. 인과의 왜곡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무엇이든 태워버리는 염신(炎神)의 가호가 순식간에 사공린의 몸을 휩싸는 듯 했다.

무쌍패(無雙覇)!!

그러나 사공린이 꼼짝없이 당하려 하는 순간 누군가가 뛰어들어서 음양의 패도를 한 점에 모아서 변환시켰다. 그 무(武)의 흐름은 굉장히 유려했으며 마치 세계 전체를 뒤흔드는 듯 했다. 이윽고 거대한 육합이 가라앉으며 아그네야스트라의 힘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사공린이 타죽는 걸 모면할 수 있었다.

화르륵…!!

하지만 사공린은 경악해서 외쳤다.

“위, 위지혼!!”

사공린을 대신해서 아르쥬나의 공격을 받아낸 것은 바로 정천맹주 위지혼이었다. 그 또한 지난 세월동안 무공에 전력을 다해 매진한 결과 그만의 절대지경에 이르렀으며, 칠대절학의 정점인 무쌍패 또한 시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무쌍패라고 하더라도 염신의 가호 그 자체인 신술을 흩어내기에는 숙련도가 부족했던 것일까? 외팔이였던 위지혼의 남은 한쪽 팔은 겁화(劫火)에 숯덩어리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후두둑…

투둑!

이윽고 그의 팔은 숯덩이가 되어서 가루처럼 떨어져 내렸다. 팔죽지 아래가 몽땅 타 버렸으나 위지혼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이로써 양 팔을 잃어버린 위지혼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상태에서 말했다.

“이 생에 정천(正天)를 실천할 수 있다면 나 위지혼, 천하에 부끄러울 것 없이 죽을 수 있으리라!”

“……!!”

“사공린. 내가 당신의 방패가 되겠소. 내 목숨을 무기로 삼아 주시오!!”

절대지경(絶對之境)

태극혜검(太極慧劍)

의천(義天) 무수진명(無手盡命)

양 팔이 사라졌으나 정천맹주 위지혼은 의념으로 만든 심인(心刃)을 자신의 몸 주위에 띄워 혜검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만의 절대지경인 태극혜검을 의념천주로 삼아서 음양(陰陽)의 균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파앙!

의념을 실은 기합과 함께 위지혼의 기세가 한층 충천했다.

“오오오오오!!”

아르쥬나가 눈썹을 꿈틀하며 다시 한 번 아그네야스트라를 쏘았으나 이번에는 손 대신에 혜검심인(慧劍心刃)이 무쌍패를 시전하면서 태극혜검의 태극 정중앙으로 불꽃의 힘을 흡수했다. 아르쥬나는 약간 경탄한 듯 말했다.

[훌륭하구나, 인간.]

그러나 완벽히 흡수하지 못했는지 위지혼은 큰 내상을 입고 칠공(七孔)에서 피를 뿜어내었다.

울컥!!

“…….”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아무리 목숨을 걸었다 하더라도 절대적인 역량차는 하늘과 땅이 뒤집어져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기에. 무당파 사상 두 번째로 절대지경에 이른 위지혼의 무공이라 해도 태초의 신성과 그 권능을 대변하는 투신에게는 당해낼 도리가 없다.

그러나 피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위지혼의 마음은 평안하게 가라앉았고, 위지혼의 마음의 울림이 장내의 모든 절대지경 고수들에게 울려퍼져나갔다.

[이 목숨이여, 후세를 위한 한 걸음이 되어라!!]

그 순간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든 절대지경 고수들이 동시에 덤벼들었다.

마치 그 울림이 무(武)의 혼(魂)처럼 느껴졌기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