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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투두두두두두!!
투두두두!!
천사들이 대웅제국의 전열에 달려드는 순간, 귀뢰포가 불을 뿜었다. 지금껏 수많은 야전에서 학살을 거듭해 왔던 귀뢰포는 백웅이 고려를 칠 때 당시보다 더더욱 성능이 향상되어서, 분당 발사수가 5할이나 늘어났고 포신은 더 가벼워졌으며 내구도도 튼튼해졌다. 귀뢰포 수천 문이 단숨에 탄을 발사하면 적병은 모조리 피떡이 되어있기 일쑤였다.
퓨퓨퓽
그러나 천사들은 귀뢰포에 맞아도 잠시 멈칫거릴 뿐, 몸덩어리가 잠시 후 찰흙처럼 재생성되어서 재차 돌진해 왔다. 귀뢰포의 사수들은 잠깐 꿇어앉아 있다가 재차 돌격해 오는 천사들을 보자 기겁을 했다.
“저, 저건 뭐냐!”
“말도 안 돼….”
스칵!
마침내 처음으로 대웅제국군의 전면에 도달한 천사병단이 칼과 창을 사용해서 백병전을 시작했다. 백병전에 들어가자 할 수 없이 대웅제국군은 소총이나 창칼을 꺼내서 응전했는데, 천사들이 한 번 병기를 휘두를 때마다 무형의 기(氣)가 뻗어져 나와서 원거리까지 날아갔다.
“크아아악.”
“아악.”
푸콱!
사방에서 핏줄기가 치솟아 올랐다. 천사들의 힘과 속도가 일반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으며 정체불명의 기파를 내뿜으며 다수를 손쉽게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사병 오만이 달려든 지 일 각도 지나지 않았으나 벌써 대웅제국의 전열은 눈에 보일 정도로 붕괴하고 있었다.
“이놈들!!”
콰앙
대웅제국의 귀뢰포를 호위하고 있던 천인대장(千人隊將)들이 달려들어서 천사병에 맞섰다. 그들은 일반병과 달리 오랜 시간 무공을 정식으로 수련했으며 고급무예를 연마한 자들로써, 강호에서 절정고수라 불리는 자들과 맞먹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덩치 큰 천인대장의 도끼가 크게 천사의 창대와 마주쳐서 굉음을 울린 직후, 그의 연속초식인 마랑부법(魔狼斧法)이 천사를 난도질했다.
퍼억
뒤로 넘어가서 쓰러지는 천사를 보자, 천인대장은 생각보다는 손맛이 좋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상함을 느꼈다.
‘귀뢰포 수천 발에 맞아도 재생하던 놈들이 내 공격에 몸이 갈라지니 재생하지 않는구나.’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연속으로 다른 천사병에게 달려들려고 했으나, 다음 순간 그의 주변에 열 명이나 되는 천사병이 금세 둘러쌌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 정도의 무공을 지니지 않은 일반병들은 속수무책으로 전멸했기에 도리어 최전선에서는 대웅제국 쪽이 열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분전했으나, 천사병 열 마리를 상대로는 결코 우세를 점할 수 없었으며 도리어 그가 밀리기만 했다.
이런 상황은 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현장지휘관들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는 고급병기인 귀뢰포와 만광포를 재빨리 철수시켰고, 그 대신 백련교의 백련인(白蓮人)들과 대웅제국의 금의위들이 출동해서 천사병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또한 백련교 원로원과 무림고수들 또한 참여해서 오만 명의 천사병들과 접전을 벌였다.
콰쾅!!
콰과광!!
전장을 멀리에서 지켜보던 백련교주가 제갈사에게 말했다.
[저 천사들의 약점은 기(氣)인가? 기를 써서 공격을 명중시키면 재생력을 쓰지 못하는구나.]
“적어도 지금 나온 7위계 이하의 하위천사들이라면 그렇지.”
[7위계? 천사에 계급이 있는가?]
“저 놈들은 카발라의 천사. 1위계에서 9위계까지의 9품위계로 이루어져 있지. 제일 약해보이는 놈들이 9품 일반천사이고, 우리측 고수들과 그럭저럭 겨루는 건 8품 대천사, 그리고 저기….”
쿠구궁…
전장 한편에서 몸 크기가 무려 오 장에 이르는 거대한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천사는 날개를 펄럭거리며 거대한 화창(火槍)을 휘둘렀는데, 화창을 휘두를 때마다 화룡의 꼬리같은 거대한 불꽃이 전장을 향해 날아갔다. 그 거대천사를 상대하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백련인과 무림고수들이 수십 명씩 달려들었으나 손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대천사는 몸 주변에 무형의 방어막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큼지막한 놈이 7위계 권품천사. 대충 이 정도로 정리되겠군.”
[7위계라…. 아직까지 그렇게 강해보이진 않는군.]
“크크크! 영지주의에서 3품천사부터는 신(神)의 반열로 친다. 그렇게 여유로워하다간 큰일 나.”
뜻밖의 정보에 백련교주가 흠칫했다.
[…뭐라고.]
“저 놈들은 이족(異族)도 아니야. 우주창조 때부터 세피로트의 나무라는 법리(法理)를 수호하는 정체불명의 고대 괴물들이다. 내가 익힌 영지주의의 마법에서 종종 수호수(守護獸)로 소환하기도 하지만 정작 저 놈들이 어떤 차원에서 소환되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마왕 시몬 마구스조차 3품천사부터는 신격이므로 못 다룬다.”
[……!!]
“충고하자면 이대로 정면승부해서는 답이 안 나올 거다. 대웅제국이 인간제국 치고는 너무 막강한 힘을 갖고 있어서 만만해 보이는 거다. 원래 인간의 힘으로 천사병 5만은 감당할 수 없어.”
백련교주는 제갈사의 말뜻을 즉시 이해했다.
[소환술사를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군.]
“나는 아까부터 마법을 펼쳐놓고 있었다. 아무래도 술사는 신성로마제국 측에서 십자군(十字軍)이라 불리는 놈들인 것 같더군.”
[위치를 알 수 있나?]
“조금 기다려라. 저 쪽도 술사를 마도사로 호위하고 있는지 쉽지가 않다.”
우웅
잠시 후 제갈사가 푸른빛의 길을 허공에 나타나게끔 했다. 술사의 위치를 찾아낸 제갈사가 말했다.
“직접 나서는 건 피해라. 이번 일은 서문혜에게 맡겨라.”
[그렇게 하지….]
이윽고 제갈사의 마법을 따라서 대웅제국의 별동대가 움직였다. 별동대의 대장은 바로 서문혜였으며, 그녀를 보좌하기 위해 검마 서문대룡과 독고성이 동행했다. 또한 그들을 뒤따라서 대웅제국에서 특별히 양성한 칠검대(七劍隊) 50여 명이 뒤따랐다.
타닷
천사병의 정면을 피해서 우회하던 중 독고성이 중얼거렸다.
“이번 일도 교주가 직접 나서면 될 텐데 굳이 혜아에게 시키는군. 끄응….”
독고성은 지난 세월 동안 무공을 함께 수련하는 동안 검마 부녀와 많이 친해졌으며, 서문혜를 자신의 손녀딸처럼 아끼게 되었다. 그렇기에 압도적인 힘을 지닌 교주가 직접 나서도 되는데도 굳이 서문혜를 출진시키는 게 마뜩찮게 생각되었다. 그러자 옆에서 함께 신법을 써서 달리던 서문대룡이 말했다.
“실전 속에서 경험을 쌓아 강해지는 걸 원하는 거겠지. 백련교주는 저 아이를 더 강하게 만들고 싶어하오. 전에 직접 내게 말했소.”
“그건 인간이 아니라 병기 취급이 아닌가. 숙부는 대체….”
“…….”
검마는 침묵했다. 그 또한 지금 상황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 어떤 아버지가 딸이 병기취급당하는데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하지만 팔부신중이라는 마왕들이 쳐들어오면 혜아 말고는 제대로 막아낼 자가 없다고 하니.’
백련교주는 현재 팔부신중의 위협을 있는 그대로 검마에게 설명해 주고, 팔부신중과 일대일로 싸워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서문혜라는 사실을 말했다.
[제국을 위하여 서문혜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서문혜의 아비로써 그녀를 지키기 위해 더욱 강해져라….]
“…….”
교주의 말을 상기한 검마 서문대룡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몇 년 전 그 말을 들은 이래로 검마는 무공에 혼신의 노력을 쏟아 마침내 절대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은 순수한 무공의 열정이라기보다는 딸을 지키려는 부성(父性)의 발현에 가까웠다. 다른 천재들보다 더욱 빨리 절대지경에 진입한 이유는 바로 그의 심적 태도였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혜아를 지킬 것이다…!!’
쿠궁
대웅제국의 별동대는 잠시 후 적진에 파고들어서 정면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선두에 서 있던 독고성이 버럭 외치면서 성벽에 돌진했다.
“다 죽어라!”
검뢰(劍雷)!
그저 뇌신류의 검뢰를 전력으로 쓴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절대지경에 이른 독고성의 검뢰는 삽시간에 수백 장의 크기로 늘어난 후 마치 바람처럼 육중한 성벽을 스쳐지나갔고, 검뢰가 지나가자마자 일직선상에 있던 모든 것이 수평으로 잘려나갔다.
퍼버버벅
성벽을 토막낸 독고성의 검뢰가 끝도 없이 뻗어나가면서 순식간에 수천 명의 적병을 몰살시켰다. 독고성은 연속으로 다섯 번의 검뢰를 또다시 발출했고, 잠시 후 지상에 있던 적은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선두에 선 독고성은 이윽고 제갈사의 마법이 가리키는 장소에 도착했는데 그 장소가 마치 기이한 돌벽이 가득 세워진 제단처럼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단 주변에는 제단을 호위하듯 십자(十字)를 새겨놓은 갑옷을 입은 자들이 서 있었고, 제단 한가운데에는 눈이 보이지 않는 백의 금발의 여인이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저 놈들이 십자군이란 것들인가?’
우드드득….
그리고 십자군으로 보이는 자들은 갑자기 인간의 형상을 잃고 새하얀 무언가를 입에서 꿀럭거리며 토해내어 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이윽고 인간의 껍데기와 살가죽이 바닥에 떨어지며 그 자리에 천사가 나타났다.
“으윽.”
“저것도 마도의 괴물들인가.”
그 모습을 본 칠검대의 대원들은 기겁을 했지만, 칠검대의 대장을 맡고 있던 검마 서문대룡이 나직이 말했다.
“칠검대. 우리 셋이 저 놈들을 칠 테니 주변에서 지원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라.”
“존명!”
파밧
검마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가 최소한 절정급 실력을 지닌 칠검대 50여 명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적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여기는 적의 본진이었기에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었고, 또한 검마는 눈앞의 천사들과 싸우게 되면 칠검대 수준의 실력으로는 무사하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벅
검마, 독고성, 서문혜가 정면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십자군이 변신한 천사들이 그들을 에워쌌는데, 하나같이 거인(巨人)처럼 거대한 몸뚱이를 지니고 있었다. 육중한 괴물들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서문혜가 말했다.
“저게 ‘진짜’군요.”
고고고고
서문혜의 눈에는 제단 정중앙에 꿇어앉아서 기도하는 맹인여인이 보였다. 그리고 그 여인의 몸 주변에 의문의 영기가 흐르면서 이미 ‘무언가’가 소환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존재의 힘을 감지한 서문혜가 말했다.
“기습을 조심하세요. 저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빨리 처리하고 합류하마.”
“무리하지 말거라.”
슈칵!!
말이 끝나자마자 두 명의 절대지경 고수들이 사방에 소환된 십자군 천사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7위계의 천사들로써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며 수십 마리나 되었으므로 아무리 검마와 독고성이라도 쉽게 상대할 수는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둘이 만들어준 틈을 타서 서문혜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쇄도해서 그대로 수도(手刀)로 맹인여인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터엉
그러나 서문혜의 수도는 허공에서 멈춰버리고 말았고, 서문혜의 수도를 붙잡은 존재가 서서히 가시화(可視化)하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위대한 세피로트의 부름을 받고 강림한 존재, 제 5위계의 버츄즈(Virtues). 십자군 성녀(聖女)의 영육(靈肉)을 대가로 이 세계에 내려왔노라!]
후와아악!!
다음 순간에 벌어진 일은 바로 성녀라고 불린 맹인여인의 몸이 새하얀 불꽃에 흔적도 없이 불타버리는 모습이었다. 여인은 아주 짧은 순간 고통에 찬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잿더미가 되어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서문혜는 힐끔 자신의 수도를 잡은 존재를 쳐다보았다. 알몸이나 다름없는 다른 하급천사들과 달리 5위계 버츄즈는 제대로 붉은 빛의 갑옷과 투구를 입은 채 창을 들고 있었다. 버츄즈와 시선이 마주친 서문혜는 문득 그 존재와 자신의 신력(神力)이 힘을 겨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쿠구구구….
버츄즈는 꽤나 놀란 듯 말했다.
[그대는 거신족(巨神族)…? 어떻게 봉인된 일족이 이 세상에 돌아다닐 수 있는가.]
“…….”
[허나 인간의 피가 진하구나. 나를 이길 순 없으리라!]
버츄즈의 눈이 빛났다.
시간정지(時間停止)!
푸욱!
세피로트의 힘으로 시간을 멈춰버린 버츄즈는 그대로 창을 들어서 서문혜의 심장을 찔러버렸다. 그의 병기 또한 신의 힘을 머금고 있으므로 지상의 물질로는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러나 버츄즈는 자신의 창날이 서문혜의 심장을 뚫기는커녕 그녀의 피부에 조그마한 상처도 낼 수 없었음을 깨달았다. 아직 시간정지의 권능이 유지되는 상태라서 아무런 방어나 회피를 할 수 없었기에 놀라운 일이었다. 서문혜는 서서히 잡혀있던 손을 버츄즈의 손아귀에서 뒤틀어서 빼내었는데 버츄즈는 그 어마어마한 괴력을 막을 수가 없었다.
퍼억!
[크아아악…!!]
서문혜는 무표정하게 수도를 내리쳐서 버츄즈의 머리통을 깼다. 버츄즈는 고통 속에서도 다시 한 번 권능을 발현했다.
시간 되감기!
버츄즈는 자신이 있었다. 세피로트의 힘을 이용해서 자유자재로 시공간을 조작하면서 상대를 농락하는 게 그의 특기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치명타를 입혔다고 착각하는 필멸자가 완전회복된 버츄즈를 보고 절망하는 걸 보고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버츄즈의 머리통은 박살난 채로 신혈이 꿀럭거리며 흘러내렸다.
[아, 아니 어째서….]
버츄즈는 자신의 권능이 그저 쳇바퀴 돌듯 허우적대기만 할 뿐 발현되지 않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버츄즈의 목을 손으로 붙잡은 서문혜가 중얼거렸다.
“…5위계라, 투선(鬪仙) 정도는 되는군요. 예전이었다면 확실히 힘든 상대였겠어요.”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신력의 흐름을 읽어서 당신이 시공간에 손을 뻗치는 경로를 차단했습니다. 저의 신성(神聖)이 옥죄는 한 당신은 아무것도 못 해요….”
[……!!]
“죽어요.”
퍼버벅
서문혜는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주어서 버츄즈의 목을 터뜨렸다. 버츄즈는 불사와 무한의 회복력 또한 갖고 있었으나 서문혜는 신성으로 이 시공간을 지배해서 그의 권능을 무효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련교주는 자신이 오지 않고 서문혜를 보낸 것이었다. 백련교주 또한 버츄즈를 정면대결로 이길 순 있었겠지만 신적인 존재의 권능을 차단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서문혜보다 현격히 뒤졌기 때문이었다.
검마가 주변의 천사들을 처치하고 걱정스러운 듯 서문혜에게 말했다.
“괜찮느냐?!”
“네. 다른 놈들도 정리하지요.”
서문혜의 안광이 잠시동안 백색으로 빛났다.
거신지력(巨神之力)
초중력(超重力)
쿠구구궁…!!
서문혜의 의지가 떨쳐지는 순간 사방에서 날뛰며 검마와 독고성을 공격하던 중하급천사들이 난데없이 엄청난 힘에 짓눌려서 쥐포가 되고 말았다. 꿈틀거리며 천사들이 재생하기도 했으나 서문혜의 초중력이 수십배 이상 강해지자 마치 시꺼먼 구멍같은 걸 만들면서 쪼그라들어버렸다.
쿠구구구….
서문혜는 초중력으로 천사들을 몰살시킨 후 현기증이 나는 듯 비틀거렸다. 그런 서문혜를 검마가 부축하자, 서문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거신의 힘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느냐.”
“제가 하루빨리 강해져야 대웅제국을 지킬 수 있습니다.”
검마는 분노를 느꼈다.
“그깟 대웅제국!! 여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단 말이냐? 그딴 게 제국이라 칭할 거라면 그냥 망해버리라지!!”
버럭하고 검마가 소리를 질렀다. 그 외침에 옆에 있던 독고성이 움찔했으나 검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혜아야. 네가 신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너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말거라.”
“…….”
서문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혼자가 아닙니다. 그 분이 돌아오실 때까지 이 제국을 지켜나가고 싶어요.”
“…그러냐….”
검마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느꼈다.
‘이건 아니야.’
백웅에 대한 애정은 당연히 검마도 갖고 있다. 백웅이 얼마나 위대하고 고귀한 이상을 갖고 행동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백웅 실종 이후에도 대웅제국을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검마는 자신과 딸이 쉴 새 없이 마모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과연 전생자를 위한 부품이 되어서 이름없이 죽어가는 게 옳은가?
그것이 아비로써 딸에게 권할만한 삶이란 말인가?
검마의 마음이 거칠게 뒤틀리는 동안 독고성이 말했다.
“임무가 끝났으니 돌아가지.”
“…알겠습니다.”
별동대의 귀환 후 제 1차 동서전쟁(東西戰爭)이라 일컬어진 제국간 충돌의 결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서방측의 천사병 5만은 전멸했으나 인간본대는 별다른 피해없이 철수하여 콘스탄티노플이라고 하는 도시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5만 천사병으로 인해 대웅제국군은 약 10만여 명의 사상자가 생겨났으나 주 병력은 보존된 채 다음 전투로 향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대웅제국군의 패배로 보였으나 실상은 십자군과 성녀의 제거에 성공했기에 대웅제국 측이 크게 유리해진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대웅제국군이 여세를 몰아 콘스탄티노플을 그대로 침공하자, 신성로마제국 측의 30만 대군은 변변히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패배하고 말았다.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 대웅제국 2대 황제, 백련교주 독고운천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 비밀서한을 보냈다.
서신을 받아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사신으로 온 등곽에게 말했다.
“귀국의 황제가 인간의 전쟁으로 끝내자는 제안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
등곽은 고개를 숙인 채 카를 5세 황제의 말에 대답했다.
“천사병에서 끝내지 않고 [옛 지배자]라 불리는 마도의 존재와 손을 잡는 것을 피해달라는 요청이오. 귀하께서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것이오.”
“…….”
“천축 무굴제국의 황제는 항복 후에도 후대를 받고 있으며 탄압받지 않았소. 대웅제국의 치세에 들어온 자들은 모두 평화 속에서 복종하고 있으니,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바라겠소.”
“뻔뻔한 자들이군. 그대들 같으면 서방의 맹주이자 황제인 내가 그리 쉽게 무릎을 꿇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그대의 직책이 빛의 세계에서는 고귀하고 한없이 위대하나, 이면의 세계에 거하는 존재들에게까지 귀하게 취급받지는 못하오. 이 전쟁을 인간의 전쟁에서 끝내지 않는다면, 그대는 명예욕의 대가로 지나치게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오.”
“으, 으음!!”
카를 5세는 침음성을 흘렸다. 줏대를 세워 대항하긴 했지만 사실 등곽의 말이 옳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방의 최고권력자이기에 어둠과 이면의 세계, 그리고 [옛 지배자]라 칭해지는 사악한 마신이 존재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만 정신력에 영향받을 정도로 자세히 알지는 못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면]의 세계에서 얼마나 지옥같은 일이 벌어지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를 5세는 등곽의 말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카를 5세가 고민하다가 말했다.
“사흘 후에 다시 오라. 그 때 내 대답을 들려주겠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겠소.”
등곽은 내심 카를 5세가 제안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천사병도 전멸당하고 병력차이와 질도 압도적이다. 이제 와서 200만 대군을 어찌 막을 것인가?
그러나 사흘 후 등곽이 다시 찾아갔을 때, 카를 5세는 대뜸 등곽을 보자마자 말했다.
“저 자를 잡아서 참수하여 대웅제국 황제에게 돌려보내라.”
“아니… 뭐라고…!!”
철컹! 철컹!!
사방에서 서방의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서방의 기사들도 고위기사는 기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수련했으므로 충분히 강했다. 더욱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측근에서 호위하는 기사들은 초절정고수에 준할 정도로 강력했으므로 등곽은 정면으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등곽의 무공실력이라면 도주하기엔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는 비밀사신으로 혼자서 보내진 것이다.
“흐압!!”
등곽은 재빨리 장력을 뿜어내며 기사들을 물리치고 도주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등 뒤에서 등곽을 지켜보던 카를 5세가 눈에서 광선을 뿜어내었다.
파직!!
“으으윽….”
등곽은 괴광선에 맞자마자 전신에서 기력이 빠지는 걸 느꼈다. 초절정고수이자 어마어마한 내공을 가진 등곽의 호신강기조차도 그 괴광선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일세.”
스르릉
그리고 쓰러진 등곽에게 다가온 카를 5세가 롱소드를 뽑아서 그대로 등곽의 목으로 내리쳤다. 등곽은 카를 5세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사흘 사이에 뒤바뀌었….’
타앙!
그 순간 카를 5세의 롱소드를 한 발의 탄환이 튕겨내었다. 그리고 동시에 재빨리 등곽에게 접근해서 갈고리를 이용해서 그를 데리고 도망치는 의문의 그림자가 있었다. 등곽을 구출한 자가 등곽의 뺨을 때리며 말했다.
“정신차리시오!”
“으음… 그대는….”
“후마슈(風魔衆)의 수령, 후마 코타로(風魔 小太郞). 심상찮은 천기를 읽은 아베노 세이메이가 날 고용해서 당신을 구출하라고 보냈소.”
휘리릭
후마 코타로는 인술을 사용해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신성로마제국의 수도거리를 질주하는 중이었다. 후마 코타로의 등보따리에 들어가 있던 등곽은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크윽…. 카를 5세는 바꿔치기 당했다. 설령 내가 죽어도 그 사실을 대웅제국에 전해주게….”
“재수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난 천재니까 이딴 곳은 빠져나갈 거요.”
“아앗, 뒤에 천사가!”
“제기랄! 이거나 먹어라.”
타앙!
타타탕!
후마 코타로는 뒤에 따라붙던 천사병들에게 한 손으로 총을 발사했다. 총을 맞은 천사들은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등곽이 희한하다는 듯 후마코타로에게 말했다.
“그, 그 총은 뭐지?”
후마 코타로는 권총의 총신에서 연기를 훅하고 불며 대꾸했다.
“최신 신무기인 권총이오! 이제 우리 닌자들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권총을 쓰기로 했소. 바람총이나 수리검보다 훨씬 세고 편하거든.”
“저 천사들은 물리력에 강할 텐데….”
“아베노 세이메이가 저주술법을 가공한 탄환을 넣었으니까. 아무튼 꽉 잡으시오!”
휘잉
후마 코타로는 이후 16회의 교전 동안 수십 마리의 천사를 사살하고 온갖 고난을 헤치며 하수구로 빠져나왔다. 하수구에도 부정형의 액체덩어리 괴물, 날아다니는 국수괴물이 있었으나 어떻게든 갈고리술과 권총, 폭염탄으로 무마한 후마 코타로는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허억. 허억. 평생 했던 임무 중에 제일 힘들군…. 수도를 빠져나왔으니 이제 술법방어가 없을 테지….”
후마 코타로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닥에 아베노 세이메이가 준 부신을 던졌다. 그러자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동문이 생겨났다. 후마 코타로는 등곽에게 턱을 까딱하며 말했다.
“이제 마비도 풀린 것 같군. 들어가쇼.”
“자네는?”
“난 카트린느 드 메디치 태후에게 접근하는 임무가 남아있소. 그리고 이건 1인용이요.”
“알았네….”
파앗!
이윽고 등곽은 알 수 없는 장소로 빠져나와 있었다. 바닥과 천장이 모조리 나무로 이루어진 듯한 수계(樹界)! 거대한 나무를 파서 안쪽에 공간을 만든 듯한 별천지에서 등곽은 멍하니 서 있었으나 이윽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왔네, 등곽 공. 후마 코타로가 일을 잘 해줬군.”
“당신이 아베노 세이메이인가? 명성은 들었소만….”
“그렇네.”
아베노 세이메이가 말했다.
“그대는 강력한 술법에 당했기에 아직 몸이 온전치 못해. 며칠 더 요양하고 돌아가게나.”
“그럴 순 없소. 하루빨리 황제에게 정보를 알려야….”
“무리하지 말래도. 어차피 자네나 나나 역사의 조연이니 몸을 사리는 게 오래 사는 지름길이지.”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근처에서 웬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아베노 세이메이. 정말로 천기를 읽은 게 맞느냐? 이런 하찮은 인간 하나 구출했다 해서 대웅제국의 운명이 정말로 달라지느냐?”
“그렇다. 등곽의 목을 베어 카를 5세가 대웅제국에 돌려보내는 순간부터 피할 수 없는 흐름이 시작된다. 내가 한 건 그 흐름을 최대한 늦춘 거지.”
“하지만 결국 전쟁이 재개된다는 건 변하지 않지. 이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의미는 있다. 잘못된 흐름이 이어지면 결국 대웅제국이 백웅의 귀환 전에 멸망하게 되기 때문이지. 지금이라면 팔부신중과의 전면전을 백 년…. 아니 오십 년 정도는 늦출 수 있다.”
그렇게 대꾸한 아베노 세이메이가 여인을 보며 말했다.
“그보다 정말로 천계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냐? 미호(美狐).”
“그래.”
미호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는 신의 힘을 손에 넣겠다. 그걸 위해서라면 여기에 남을 것이다.”
“…정말로 할 생각인가 보군.”
“흥! 너야말로 각오를 해라.”
“알았다. 네 계획에 수백 년 동안 어울려주마, 미호.”
아베노 세이메이가 중얼거렸다.
“기신(機神)이 된 채 자아를 유지해서 금오도의 달기를 먹어치우겠다는 미친 계획에 말이다….”
대웅제국에 카를 5세의 변심 소식이 전해진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백련교주는 비밀리에 아베노 세이메이와 만나서 뭔가를 의논한 후, 일시휴전을 카를 5세에게 제안했다.
카를 5세는 그 제안이 뜻밖인 듯 망설였으나 이윽고 일시휴전에 동의했다. 받아들인 이유는 그에게 있어도 나쁠 게 없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일시휴전이 성립되자 백련교주는 서방으로 향했던 칼끝을 누그러뜨리고 서남제국의 평정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고, 마침내 이집트를 비롯한 검은대륙 북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 환신(幻神) 천우진은 이변을 느끼고 망량선사의 마을을 떠나서 치우의 봉인지에 당도했다. 그리고 봉인지에 도착해서 눈앞의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형. 나 그냥 이거 안 하면 안 되겠소?”
망량은 천우진에게 말했다.
“사제. 자네밖에 없네. 꼭 해 주게.”
“…….”
천우진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더니 말했다.
“제에~기이~라아아아아알…….”
이계화된 치우의 심장 주변은 이미 마의 권역이나 다름없었다.
구천현녀의 힘을 이용해서 간신히 봉인하고 있으나 이걸 봉인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해야만 했다.
‘이게 다 백웅 때문이다…!!’
천우진은 내심 백웅에게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봉인해 보겠소.”
망량은 빙긋 웃었다.
“역시 사제뿐이군!”
환신 천우진, 500년에 이르는 고생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