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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044화 (1,04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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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미야모토 무사시의 말에 백련교주가 답했다.

[곤란하군.]

“뭐가 곤란하다는 거지?”

[무사시. 기왕 오는 거라면 한 가지를 더 원한다.]

백련교주는 눈앞의 전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십이율주와 단의 일족의 비밀… 그걸 가져와라.]

“전에 말했듯 모른다.”

[네가 십이율의 특위라 불리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터.]

“…….”

무사시는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별안간 칼을 뽑았다.

피잉!!

그의 검끝은 백련교주의 손바닥에 잡혀 있었다. 다만 멀쩡하게 막지는 못했는지 교주의 손에서 피가 꿀럭거리며 흘러내렸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으르렁거렸다.

“나는 네놈들 첩자나 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이 자리에서 사생결단을 내자.”

백련교주의 말이 무사시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었다. 무사시의 투기가 끓어오르는 걸 느낀 백련교주가 말했다.

[…정말 대단하군.]

“뭐가 말이냐?”

[훗….]

백련교주는 낮게 웃었다.

‘전생자의 기억이란 대단하구나. 백웅의 기억 덕분에 네가 어떤 놈인지는 다 알았다. 애송이….’

아무리 백련교주라고 해도 단순히 무인(武人)으로써 미야모토 무사시를 짤막하게 만났다면 그의 본질을 파악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백웅이 전생하면서 무사시의 인격과 목표에 대한 정보를 모을 만큼 모은 상황에서 대처하게 되니, 무사시가 생각하는 게 손에 잡힐 듯 읽혔던 것이다. 심지어 방금 전의 기습조차도 백련교주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좋은 말로 해보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지. 네놈이 그저 앞뒤 가리지 않는 한 자루의 칼날에 지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너를 절대고수로 존중해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할 테면 해 봐라.”

쿠오오오!!

도리어 무사시는 기다렸다는 듯 귀면상(鬼面狀)이 끓어오르며 투기가 더욱 강렬해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무사시는 갑자기 피를 울컥하고 토해내었다.

“커헉?!”

무사시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으나 백련교주는 그를 뒤쫓아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사시. 나는 십이율주가 왜 너를 십이율 특위로 받아줬는지 알 것 같구나.]

“…….”

[마음속 한켠에는 거대한 공포를 감추고 있으면서 그걸 외면하고자 그저 천하무쌍만을 외치며 자신의 재능에만 의지하는 애송이. 무(武)의 근본이 되는 극기(克己)를 수양하지 않은 자에게는 뻔히 한계가 있을 것이고, 십이율주는 그런 네놈을 아주 이용해 먹기 좋다 생각했으리라. 실제로도 네놈은 사실 십이율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는 것 같으니.]

“닥쳐라.”

[아무런 신념도 없는 수라의 칼날은 맹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대웅제국의 황제를 맡고 있는 지금, 너와 무(武)로 싸워줄 생각은 없다.]

“뭘 한 거냐!”

투콱!!

무사시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난데없이 허공에서 그의 양 팔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무사시는 의지력으로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 버티면서 도로 자신의 양 팔을 되돌렸으나, 이미 그의 팔에는 크나큰 부상이 새겨져 버렸다.

무사시의 팔이 덜덜 떨린다.

백련교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자 무사시는 그 순간 맹수와도 같은 전투본능으로 무언가를 깨달았다.

자신은 이미 덫에 걸려있다는 걸.

이 덫에서 빠져나가려면 등을 돌려야만 한다. 그러나 과연 등을 돌릴 수 있는가? 결과는 마찬가지 아닐까? 이러든 저러든간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직감이 들었다.

피할 수 없을 바에는 덤비는 게 무사시. 그랬기에 무사시는 귀면상을 지으며 다시 한 번 백련교주에게 달려들었다.

이천일류(二天一流)

신살참(神殺斬)

찰나의 순간, 백련교주가 중얼거렸다.

[생(生)을 하찮게 여기는 자에게 무의 극한이 보일 리 없거늘.]

푸콰콰콱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인(心刃)의 형태로 날아든 무사시 필생의 절학, 신살참은 백련교주의 심천무량에 고스란히 흡수되었으며 정작 그걸 펼친 무사시는 사지가 폭발하며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변한 것이다.

후두두둑…

눈 깜짝할 사이에 무사시였던 고깃덩어리가 땅에 떨어지자 저 멀리에서 킬킬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속이 시원하군. 진짜 쳐 죽여버리고 싶은 놈이었다구.”

[제갈사. 정말 이걸로 좋은가?]

어느 새 나타난 제갈사는 무사시의 머리통 조각을 손가락으로 집더니 말했다.

“안 좋을 게 있나? 어차피 지금부터 이혼대법으로 이 놈의 영혼에 대고 모든 정보를 물어볼 텐데.”

[…….]

방금 전, 무사시가 직접 덤벼들어서 칼질을 해서 백련교주의 손으로 막은 순간 - 백련교주는 마법을 발동해서 제갈사와 자신의 손을 영적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연결되어있는 손과 칼날의 접촉을 통해서 제갈사의 이혼대법이 발동한 것이다. 제갈사는 이혼대법을 쓰는 순간 무사시의 내면에 흐르는 힘을 역행시킬 수 있었으므로 자신의 힘에 반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무사시의 사지가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켈페레의 상자]. 모두 빨아들여라.”

슈르륵

제갈사가 손바닥만한 검은 상자를 꺼내서 바닥에 던지자 무사시의 시신이 상자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암시장의 이종족 상인을 통해서 구매한 강력한 마도(魔道)의 보물이었다. 핏방울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무사시의 시신을 회수한 제갈사가 킬킬 웃었다.

“내가 걱정한 건 하나. 무사시를 죽여버리자는 처음 계획이 틀어지는 거였지. 네가 또 변덕을 부려서 무사시를 동료로 받아들이려 하면 골치 아팠거든.”

제갈사 입장에서는 무사시같은 자를 어설프게 살려서 동료로 받기보다는 그냥 죽여버리는 게 마음이 편했다. 시체로 만들어놓고 마법을 응용한 이혼대법으로 물어보면 정보를 간단할 텐데 뭐하러 절대지경이 맘대로 운신하게 하겠는가?

[…방금 전까지도 고민했었다. 수양이 부족한 자라고는 해도 불가일세의 천재임은 틀림없었고, 그의 재능이 아까웠지.]

백련교주는 자신의 손바닥에 난 참흔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나 이 일격을 받아내는 순간 무사시는 길들여지지 않을 놈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크크크. 너무 늦게 깨닫는군. 삼황오제한테 칼 한자루 들고 덤비는 또라이한테 뭘 기대한 거냐?”

백련교주의 눈에서 광망이 일어났다.

[제갈사. 놈의 영혼을 고문해서 십이율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내라. 반드시 알아내야만 할 것이다.]

“말 안해도 그렇게 할 생각이야. 근데 이건 분명한 비인외도(非人外道)를 걷는 거다. 남만과 천축 정벌까지는 그렇다 쳐도 영혼고문부터는 분명히 악덕의 길이지. 백웅한테 미움받을 걱정은 안 하나?”

[이제 와서 십이율주의 정보를 얻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거기에 대해서 타협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대꾸한 백련교주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 세계정복을 해서 온 세상의 힘을 손에 얻는 것 또한 십이율주를 확실히 쓰러뜨리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니까.]

“크크크크크… 대충 짐작은 했지만 그랬군. 너무 신중한 거 아니냐?”

[…가능하면 백웅이 귀환하기 전에 놈을 쓰러뜨리는 게 좋다.]

“알아. 그러니까 나도 이렇게 협력하고 있지.”

히죽 웃던 제갈사가 말했다.

“이번 천축정벌은 아마 무굴 제국의 수도, 아그라에서 끝날 거다. 거기서 악바르 대제(大帝)가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고 있다.”

천축대륙은 사실 무굴제국이라 불리는 거대한 대제국이 대륙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무굴제국의 영향력이 적은 천축대륙 최남단부터 점령해 왔었고, 최근에 들어서야 무굴제국의 영토를 절반 정도 침식한 것이었다. 악바르 대제는 무굴제국의 지존으로써 모든 천축대륙의 힘을 모아서 대웅제국에게 맞서는 중이었다.

[악바르 대제가 인신공양을 해서 신을 소환할 가능성이 있겠군.]

“뭐, 사실 그게 우리 입장에서 제일 껄끄럽지. 이 천축대륙도 중원만큼이나 인간이 썩어 넘치는지라 한 10만 명 정도만 바쳐도 [옛 지배자]가 튀어나올테니.”

[대처방법이 있나?]

“딱 하나 있어.”

제갈사가 유들거리며 말을 이었다.

“악바르 대제에게 항복을 권해라. 인간의 전쟁으로 끝낼 것을 서로 서약하고 더 이상의 희생을 억제하겠다고 하면 돼. 아주 쉽지?”

[…겨우 그걸로 된다는 말인가?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잃기 직전이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터.]

백련교주가 의혹어린 목소리로 반문했지만 제갈사가 말했다.

“악바르 대제는 우리의 침공이 없었다면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을 성군(聖君)이다. 마도를 다룰 줄은 알지만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지. 또한 백성을 사랑하는 편이므로 적당히 원만하게 끝낼 수가 있다. 도리어 우리가 그를 몰아붙인다면 다른 백성을 지키기 위해 수도의 백성을 인신공양으로 희생시킬 것이다.”

[확신하는 이유가 있나?]

“악바르 대제의 곁에는 수천 년동안 천축을 이끌어온 비밀결사인 브라만교가 있다. 그 자들이 더욱 인신공양을 부추기고 있을 테니, 악바르를 몰아붙이는 건 악수다.”

[좋아. 네 말대로 하지.]

제갈사의 성향이 파괴와 혼돈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뜻밖의 유화책이었으나 백련교주는 놀라지 않았다. 아무리 잔인함을 즐기고 광기에 물들어 있어도 제갈사의 본질은 책사였다. 논리적인 정합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책략이 의미가 있는 것.

아니나 다를까, 백련교주가 악바르 대제에게 항복을 종용하는 서신을 보내자 악바르 대제는 약 10일간의 회동을 가진 후 즉시 대웅제국에게 굴복했다. 백련교주가 양민학살과 약탈을 금하며 왕족의 생명을 보증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백련교주는 마침내 천축대륙의 수도, 아그라에 입성해서 무굴제국의 옥좌에 앉았다. 그리고 앉자마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고려… 남만… 천축. 이로써 세상의 절반을 손에 넣었구나.]

이제 남은 것은 서방의 열국과 아라사 제국, 그리고 [검은 대륙]과 바다 너머의 미지의 대륙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서방의 열국과 아라사만 제패한다면 거대문명권은 모두 대웅제국의 손에 들어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머지 지역은 문명이 미약하고 발전이 되어있지 않았기에 굳이 정복할 의미까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날 밤, 백련교주에게 제갈유룡이 찾아왔다.

“백련교주. 이제 어쩔 생각인가?”

[2년에서 3년 정도 정복지를 안정시킬 것이다. 전이문을 통해서 물자의 교류를 늘리고 모든 곳을 대웅제국의 문화가 미치는 일대로 만들어야겠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게 되면 모든 이가 대웅제국의 말과 글, 문화를 친숙하게 여길 것이다.]

“…….”

[그 후에는 정복지의 물자를 모아서 서방의 열국을 단숨에 멸망시킬 것이다. 대영제국을 쳐서 국왕의 목을 베는 것으로 일단 정복활동을 멈출 생각이다.]

“아주 좋은 계획이군.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백련교주가 무면탈을 꿈틀거렸다.

[낙양에 무슨 일이 생겼는가?]

제갈유룡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팔부신중과의 교섭이 틀어졌다. 그들은 이제 독자노선을 걷겠다고 내게 선언하고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행방이 묘연해졌다.”

[제갈유룡… 분명히 네가 팔부신중을 잘 다룰 수 있다고 자신했을 텐데.]

“변수가 생긴 것 같다.”

[변수라고?]

“그들에게 정체불명의 조력자가 생긴 것 같다. 원래 그들은 야차를 이용한 창힐 부활의식을 행하려 했으나 그 계획조차 바꾸어 버렸다. 이건 백웅의 전생동안 없었던 일이지.”

[…….]

백련교주는 팔짱을 끼었다. 그리곤 말했다.

[혹시 우리가 남만과 천축을 정벌한 게 인과율의 변화를 만들어낸 것인가?]

“그건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 조력자의 힘과 권능은 팔부신중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놈들은 그 자를 분명히 자신들보다 동격 이상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존재는 이 세상에 극히 드물다. 짐작 가는 바가 있는가?]

“그걸 확인하기 위해 아그라에 직접 온 것이다.”

스윽

그 때 근처에서 슬며시 제갈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형님. 내 생각에 그럴만한 놈은 하나뿐인 것 같은데.”

“네 생각과 내 생각이 아마 같겠지. 그럼 이제부터 해야할 일도 알고 있나?”

“글쎄… 뭐 굳이 말하자면…. 브라만교의 비밀본단을 찾아내서 싸그리 몰살시키는 것 정도?”

“그렇다.”

“생각을 했다면 바로 움직이자구. 형님도 몸이 달아서 여기까지 직접 온 걸 보면 급한 일이 확실한 것 같군.”

“…….”

백련교주는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기 힘들어서 물끄러미 제갈유룡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제갈유룡. 누구를 의심하고 있는가? 나는 잘 알 수가 없다.]

“아직은 심증일 뿐이다. 브라만교를 쳐서 놈들을 고문해야만 확실해질 것이다.”

[내게는 쓸데없이 숨길 필요 없다. 말해보라.]

“최초의 변수가 최대의 변수인 셈. 그 자는 백웅에게 크게 접근한 후 여태껏 굵직한 사건이 몇 번이나 생겼는데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무굴제국을 정복한 지금조차도….”

[…설마.]

“얼마나 위험한지 알겠나?”

백련교주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좋다. 오늘 총력을 다해서 브라만교를 멸망시킨다.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리라.]

그 날,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대학살이 벌어졌다.

천축대륙 최대의 종단, 브라만교의 본단은 혈겁(血劫)으로 뒤덮였으며 피가 강물을 뒤덮었다.

그리고 더 이상 세계의 역사에 브라만교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저벅…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군.]

고즈넉한 설산.

브라만교의 본단 최심부에 있는 이 설산에는 백련교주와 제갈사, 제갈유룡, 그리고 3인의 호법사자들이 모두 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한 명의 사내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백련교주는 그 자에게 말했다.

[무엇을 원하여 팔부신중과 손을 잡았는가?]

“질서.”

맑은 눈빛을 지닌 청년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의 질서를 위하여 너희를 견제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질서인가? 네가 선(善)이라고 말할 셈인가?]

“적어도 너희는 지금 악(惡)이라고 할 수 있으니.”

[웃기지 말아라. 그대는 진정 위선자구나.]

백련교주가 보기 드물게 분노의 감정을 표출했다.

[크리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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