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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043화 (1,04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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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대웅제국의 첫 목표는 우선 중원 최남단 이남에 존재하는 열국(列國)이었다. 본디 중원에서는 그들을 남만(南蠻)이라 부르며 천시하기도 했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사실은 지배권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게 옳은 표현이었다.

대월(大越)이라고 불리는 남만국까지는 지속적으로 중원의 지배력이 미치며 문화적 영향력이 컸으나, 대월 이남의 국가들은 강경하게 중원의 침범에 대적했으며 지배하기도 힘들었다. 심지어 대월국조차도 대명제국 초기에 이미 반란을 일으켜서 중원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으니 중원과 독립된 세계나 다름없는 게 남만이었다.

그러나 백련교주는 남만의 저항에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웅제국 조정의 중신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1년간 전쟁물자를 비축하고 준비하라. 그리고 만광포와 귀뢰포를 남만 전선으로 이동해서 배치하라. 총 20만 대군을 동원할 것이다.]

“폐하. 아뢰기 송구하오나 고려국과 달리 남만은 무수한 수풀과 습지가 가득한 천연의 험지(險地)이옵니다. 평야에서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는 화포(火砲)가 큰 효율을 보이기 힘들 것이옵니다. 또한 습기가 강한 장소이므로 화약을 쓰기가 힘들 것이옵니다.”

백련교주는 황연 대장군의 진언에 훗하고 웃었다.

[과연 훌륭한 식견이오. 그러나 이번 전쟁에는 짐과 호법사자들이 직접 나설 것이오.]

“그럼 이긴 전쟁이나 다름없사옵니다.”

황연은 단숨에 말을 바꾸었으나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1년 후, 대웅제국의 화포가 대월국의 국경을 침범했다. 1년 사이에 대웅제국은 이미 소총병(小銃兵)과 편제를 완료했고, 야전은 물론이고 시가전에서도 압도적인 위력을 보였다. 게다가 호법사자들이 나서면서 전세는 압도적으로 흘러갔으며 대월국은 전쟁이 개시된지 20일 만에 수도를 점령당했다.

쿠구구궁!!

대월국 수도의 정문이 파괴되고 백련교주는 항복선언을 받은 후 대월국왕의 옥좌에 걸터앉았다. 그는 불길이 치솟는 바깥의 광경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용비천, 생각보다 늦었군. 고수를 만났는가?]

파밧

바람 한 줄기가 치솟으며 백련교주의 앞에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이 부복했다. 그는 한쪽 팔이 잘려서 선혈을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용비천은 내공으로 빠르게 선혈을 지혈한 후 고개를 숙였다.

“교주, 죄송합니다. 엄청난 강자와 싸워 승부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는가?]

“…권각(拳脚)의 절대고수였습니다. 남만 최고의 고수라 하는 자로써 무아이보란이라는 무술의 종사(宗師)였습니다.”

[저 자로군.]

“음!”

후웅!!

어느 새 옥좌의 정면에서 삼십 장 떨어진 장소에 한 단단하고 검은 체구의 사내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언뜻 평범하고 순한 인상으로 보였으며 한 손에는 야채를 들고 있어서 방금 전까지 장사하다가 온 서민처럼 보였다.

[용비천. 승부를 가리지 못한 게 아니다. 저 자가 그대를 통해 날 찾아왔구나.]

“…….”

옥좌에 앉아있던 백련교주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의념천주를 느낄 수 있으니, 절대지경(絶對之境)이군. 그대야말로 남만 최강의 권신(拳神)이로구나.]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백련교의 교주이자 대웅제국의 황제, 독고운천. 그대의 이름을 알려주게.]

투욱

검은 체구의 사내는 채소를 바닥에 떨구며 무아이보란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독고운천을 서늘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나는 대월국의 수호신, 진국준(陳國峻). 절대적인 무예의 경지를 얻은 자여, 어찌 인간을 초월한 힘을 국가의 정복행위에 사용하는가?”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절대지경에 오른 자가 인간을 초월한 힘을 함부로 사용하면 약자가 고통 받는다. 그대만한 자가 그 이치를 모를 거라 생각지 않는다. 고수(高手)일수록 속세에 함부로 힘을 써선 안 된다.”

백련교주의 안광이 빛났다.

[무의미하구나. 그대의 이치는 우물 안 개구리의 것. 나는 이 세계에서 더욱 큰 도리(道理)를 찾았으니, 신녀의 후예로써 신명을 다할 뿐이다.]

우우우우!!

백련교주의 등 뒤에 심천무량의 만다라가 떠올랐다.

“으음!”

무아이보란의 종사, 진국준의 나이는 이미 300여 세에 이르러 있었으며 남만 최고의 절대고수였다. 반로환동과 환골탈태를 모두 거쳤으며 과거 몽골군의 침략을 막아내기도 했던 절대지경의 초고수!

그러나 그런 진국준이 보기에도 눈 앞의 중원인은 어마어마한 고수였기에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저 어마어마한 만다라에 잠재되어 있는 힘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진국준은 어째서 이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가 인간세상에 관여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선공할 수 밖에 없다고 느낀 것일까?

진국준의 입가에서 천천히 기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쉬…!!”

다음 순간 진국준의 자세가 환상처럼 뒤바뀌더니 절대지경의 하단차기, 테카(脚)가 뿜어져나왔다. 남만권법의 정점, 무아이보란에서 테카란 별다른 초식이 아닌 그저 단순한 하단차기에 불과했으나 - 절대지경의 고수가 쓰는 이상 그 발차기는 이 세상 그 어떤 절초보다 강력했다.

쿠콰콰쾅!!

쿠콰쾅

“……!!”

파장에 휩쓸린 용비천은 전신을 호신강기로 둘러싼 채 창공으로 휘날려가면서 눈을 부릅떴다.

그저 하단차기 한 방에 불과했는데 그 한 방으로 대월국의 거대한 왕궁이 일격에 반토막이 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공격이 너무나 날카로웠기에 수백 장이나 떨어진 곳까지 지반이 칼로 자른 것처럼 갈라지며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극강(極强)!

강능단유(强能斷柔)의 극한에 다른 권법!

파밧

어느 새 백련교주와 진국준은 지근거리에 붙어있었다. 백련교주는 수신류 권법 수룡장(水龍掌)의 화경으로 하단차기를 받아냈으나 약간 손을 움찔거리고 있었으며 발등을 잡힌 진국준은 눈썹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중원과 남만, 두 절대고수 사이에 순식간에 수백 초가 넘는 수읽기가 오갔고, 다시금 진국준이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절대지경(絶對之境)

무아이보란

지옥상하단 연속차기!

콰광 쾅 쾅

허공에서 불빛이 번득이면서 두 고수의 신형이 별처럼 떨어져 내렸다. 저 멀리서 보고 있던 용비천은 그 찰나에 진국준이 반복해서 상하단만 연속으로 차는 걸 볼 수 있었으며, 그 공세는 쉴 틈도 없었다. 상하단 차기는 어느 새 형태조차 보이지 않는 백열(白熱)로 화해 있었으며 일격 일격에 산을 무너뜨릴 힘이 잠재되어 있었다.

쾅쾅! 쾅! 쾅!

백련교주는 심천무량을 써서 만다라로 상하단차기를 봉쇄하려 했으나, 진국준은 도리어 의념천주를 더욱 강하게 만들면서 만다라를 정면에서 깨부쉈다.

“죽어라!”

쿠쾅!!

“교주!!!”

만다라가 유리처럼 깨져나가는 동시에 진국준의 상단차기가 백련교주의 목덜미에 꽂혔다. 용비천이 옆에서 쳐다보며 비명을 질렀으나, 이윽고 연기가 흩어지며 모습을 드러낸 백련교주가 말했다.

스스스….

[이 세상은 넓군. 오지로 생각했던 곳에 이 정도의 고수가 있었을 줄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백련교주는 휙하고 등을 돌렸다.

[백웅과 만나기 전이었다면 그대에게 질 수도 있었겠지.]

울컥!!

진국준은 입에서 선혈을 흘렸다. 여전히 상단세를 취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는 이미 백련교주의 치명적인 암경(暗經)에 당해버린 것이다.

‘괴물같은… 놈….’

승패가 갈렸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았다.

만일 이 자리에 같은 절대고수가 있었다면 방금 전 어떤 공방이 오갔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으리라.

마지막 순간에 진국준의 지옥상하단차기가 백련교주의 만다라를 깨부수는 순간, 백련교주는 진국준의 기세가 잠시 흐트러지는 틈을 타서 절기 현겁을 시전했다. 그리고 현겁을 시전해서 완전히 무방비가 되어있는 진국준의 명치에 일 장(一掌)을 적중시켜서 치명상을 입힘과 동시에 하체의 균형을 흐트러뜨려서 상단차기도 가볍게 막아낸 것이다.

처음부터 현겁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진국준 정도의 절대지경 고수라면 어떻게든 대처법을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지금 백련교주는 단 한 번의 반격으로 효율적인 승리를 잡아챈 셈이었고 엄청난 전투경험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진국준이 풀썩 쓰러졌다. 그는 피를 토해내며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 아무리 나를 느리게 한다해도 무아이보란의 발차기는 의념천주이기에 꺾이지 않는다…. 네가 도중에 내 공격을 한순간 막아냈던 그 무예는….”

진국준은 현겁의 존재를 눈치챘으나 그것만으론 자신의 절기를 막을 수 없었음을 알고 있었다. 모든 의념천주를 발휘한 공격이었고 완전히 기세를 탔기 때문이었다. 백련교주가 뭔가 수를 더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성의 차이다.]

백련교주는 다시 옥좌에 앉으며 대꾸했다.

[여의조령으로 무(武)의 흐름을 읽고, 진무칠절경의 방탄진기로 네 공격을 약화시켰지. 네 무공은 분명 강력하지만 성질이 강함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그건 무아이보란의 태생적 한계겠지.]

“…….”

[내가 칠대절학과 팔선신공을 연마하여 숙련된 이상, 이제 이 세상 그 어떤 무인도 강(强)과 쾌(快)만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으리라.]

그는 덤덤하게 말했으나 사실은 엄청난 선언이었다. 백련교주가 그 동안 백웅에게서 받은 기억을 활용해서 한층 더 높은 경지에 이르러서 방어력이 더욱 높아졌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진국준은 눈을 감았다.

‘전대 국왕이여… 미안하오. 이 나라를 지킬 수 없어서.’

몽골의 침략시대부터 200여년 이상 대월국을 절대무공 무아이보란으로 지켜온 수호신이 바로 그였지만, 그로서도 감당 못하는 괴물이 출현해버린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이 잠시 그려졌다.

[잘 가라.]

스각!

백련교주는 절대고수에 예를 표하듯 절기 지주명왕을 써서 진국준의 목을 아무런 고통없이 베었다. 그리고 진국준의 수급을 취한 후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대월국을 유린할 생각이었으나 생각이 바뀌었다. 약탈과 살인을 금하며 포로를 정중히 대우하라.]

슈욱

어느 새 백련교주 곁에 제갈사가 나타나 있었다. 제갈사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무인들끼리의 의리란 건가? 대월국을 약탈해서 남만열국을 정복할 여력을 남기기로 나와 약속했을 텐데. 왕족을 모조리 공개처형하고 수도를 불태우며 대월국민을 중원의 노예로 쓰기로 했었잖아.”

[그러지 않겠다. 나는 진국준의 무예에 감명받았으니 그의 무(武)에 예의를 표하겠다.]

“크크크…. 제기랄. 이럴 거면 차라리 내가 황제 할 걸 그랬군.”

제갈사가 투덜거렸지만 백련교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마음에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네 사악한 진언과 성향에도 흔들리지 않을 패왕(覇王)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를 이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마도(魔道)에 속한 놈은 이래서 귀찮군. 다들 생각하는 게 비슷하니까 말이지.”

킬킬거리던 제갈사가 말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만 남만열국에서 가장 거슬리는 건 아유타야 왕국이다. 아유타야의 패왕 흑태자 나레쑤언이 천축에서 용병을 고용했더군.”

[용병이라고?]

“힌두 카스트의 정점에 있는 브라만의 후예들. 천축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은거기인들이지.”

[…귀찮겠군.]

백련교주는 침음성을 흘렸다.

무공이든 술법이든 천축대륙은 만만치않은 상대였다. 백련교의 시조인 달마조사 또한 청년시절에는 천축에서 수행을 시작했을 정도로 그 대륙은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게다가 백련교주가 귀찮다 하는 것은 천축대륙에서 절대고수가 올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천축에서 마도사(魔道師)가 왔나?]

“아마도 틀림없지.”

천축대륙은 한편 마도가 팽배해 있는 대지이기도 했다. 천축대륙에는 수많은 마도서(魔道書)가 잠들어 있으며 종종 마도의식으로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는 건 마도사들 사이에서는 상식같은 사실이었다. 서방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고유한 마도술식을 창조해서 쓰기도 했기에, 천축의 마도사는 매우 꺼림칙한 존재이기도 했다.

“뭐, 그 놈들쯤 해결하는 건 문제 없을 테니 걱정 마라.”

[어떻게 한다는 거지? 나는 백웅이 아니라서 기이한 수법으로 놈들을 무력화시킬 순 없다.]

“크크크. 이쪽은 내 전공이니까….”

흉소를 흘린 제갈사가 말했다.

“그래봤자 인간이야. 내겐 쓸만한 말이 늘어난 것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몇 달 후, 아유타야 왕국의 침공이 개시되었다. 아유타야 왕국으로 진군한 중원의 대군은 처음에는 쾌진격을 거듭하다가 어느 순간 소환된 마물 군단 때문에 진군이 막혔다. 그것은 아유타야 왕국에서 고용한 천축의 마도사들이 인신공양을 써서 이계의 마물을 소환했기 때문이었다.

생전 처음 접하는 마(魔)의 괴이한 군세에 모든 지휘관들이 난감해 했지만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마물군단은 모두 씻은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중원의 대군은 아유타야의 정규군과 몇 차례 회전을 벌인 후 승리해서 아유타야의 수도까지 점령할 수가 있었다.

저벅

저벅

백련교주는 아유타야의 옥좌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옥좌 주변이 잔뜩 피로 물들어서 피바다로 변해있는 걸 무감각하게 쳐다보다가 옥좌에 앉아있는 제갈사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제갈사. 천축 브라만 마도사가 100명도 넘게 와 있었다고 들었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된 거지?]

마물군단 때문에 길이 막혔을 때 제갈사가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하며 홀연히 사라졌던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천축 브라만 마도사가 대단히 수가 많다는 걸 전해듣자 백련교주는 크게 걱정했었지만, 뜻밖에도 이후에 마도사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것이다.

제갈사는 히죽 웃으며 자신의 한 손에 들려있는 술잔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술잔에서 핏방울이 찰랑거렸다.

“술잔의 이슬이 되었다네.”

[…….]

크워어어어어….

어둠의 뒤편에서 거대한 마수(魔獸)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백련교주는 그 마수가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며 입에 마도사의 육신을 질겅질겅 씹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수의 이마에 새겨져 있는 인간의 얼굴을 보자 중얼거렸다.

[흑태자 나레쑤언을 마수로 만들었군.]

“그래. 신이 나서 마도사들을 잡아먹더군. 나레쑤언 옆에 있던 계집애는 백웅과 인연이 있었으니 살려뒀어.”

[그것만으로는 100명이나 되는 상급 마도사들을 해치울 수 없었을 텐데?]

“물론 이혼대법을 써서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들었지. 이런저런 거 다 했어~ 그래도 지도자란 놈은 제법 실력이 있어서 끝까지 버텼지만, 그게 좀 괘씸해서 벌을 내렸지.”

백련교주는 잠시 제갈사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제갈사의 술잔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술잔으로 만들었나보군.]

“머리뼈가 물렁한 놈이라 힘들었다고. 읏차.”

퍼걱!

제갈사는 브라만 수장의 머리뼈로 만든 술잔을 던져서 깨 버렸다. 그리고는 턱을 괴며 말했다.

“아유타야를 먹었으니 이제 남만정복은 끝이야. 다음은 천축으로 가자구.”

[그게 좋겠군. 생각보다 싱거운 느낌이다.]

“크크크… 서방부터는 좀 귀찮을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라.”

넉살좋게 대화하는 두 사람의 말투에서는 이미 인간성이 반쯤 사라져 있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쳐다보던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과연 이게 옳은 것일까?

‘이래서는 시간문제야.’

아직까지 그들은 인도(人道)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외도에만 외도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제갈사나 백련교주, 어느 쪽이든 간에 그들은 마(魔)를 수족처럼 다루는 존재들. 과연 망량이 언제까지 그들을 제어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이번만 해도 그는 구천현녀와 협력해서 삼황오제의 소멸여파를 막으려 동분서주하고 있었는데, 제갈사와 백련교주가 폭주할까 염려해서 굳이 종군한 게 아니었던가? 여러모로 망량은 심력이 소모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남만정벌이 끝나자 대웅제국은 약 2년간 휴식과 점령지 안정을 이룬 후, 재차 천축침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사실은 거대한 천축대륙을 치는데도 그 누구도 의문을 표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이룰 수 있는 일처럼 여겼던 것이었다.

대웅제국의 천축대륙 침공이 시작되자, 그 때부터는 전이문(傳移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천축대륙으로 가는 길목에는 험준한 산맥이 너무 많아서 대군의 진격이 힘들었으므로, 정화의 원정대가 전세계에 만들어놓은 전이문을 쓰기로 한 것이었다.

쿠구구구…

하늘이 먹구름과 뒤엉켜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불길한 광경을 쳐다보던 백련교주가 말했다.

[마(魔)로 혼탁한 공기…. 아주 좋군. 세계정복의 시작이다.]

진격에 또 진격.

대웅제국은 천축대륙을 침공하기 시작한지 약 1년 3개월 만에 24개가 넘는 중소국(中小國)을 멸망시키고 강대국을 두 개나 복속시켰다. 종종 천축의 마도사나 기공수련자들이 나타나서 대웅제국에게 반격을 가하는 일도 있었으나, 그 때부터는 백웅측에도 전력이 증강된 것이다.

촤악!!

독고성(獨孤星)은 천축마도사의 목을 베면서 옆에 있던 무영검제에게 말했다.

“이봐, 상상이나 할 수 있었나?”

“무엇을 말이오?”

“우리가 천축대륙까지 올 거라고.”

촤촤촥

그 말에 무영검기를 써서 한 번에 마물들을 토막치던 무영검제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절대지경의 심득을 준다는 말에 꼬셔진 내가 죄인이오.”

“실제로 무공은 늘었잖나. 절대지경은 머지 않았네.”

“…모르겠소. 내 생애도 나름 파란만장하긴 했소만….”

쿠구궁! 쿠궁!

계곡에서 거칠게 뛰어오는 수십 장 크기의 시꺼먼 마물 코끼리가 세 개나 되는 머리에서 코를 바짝 세우고 화염을 내뿜는 광경을 쳐다보던 무영검제가 기가 질려서 말했다.

“저런 거랑 싸울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자, 해 보세나! 저기 동영 놈들도 열심히 하는데 우리라고 못 하겠나.”

독고성의 시선에는 어느 새 동료에 합류한 동영검호,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와 보쿠덴이 있었다. 그들도 칠대절학과 팔대신공을 익혀서 무공이 급증한 자들이었고 이번 천축공격에 함께 투입된 것이다.

“끄응. 이, 이건 무림인이 할 짓이 아닌 거 같은….”

스카각

무영검제가 꿍얼거리면서도 열심히 싸우고 있을 때, 그들을 계곡 위에서 바라보던 백련교주가 중얼거렸다.

[백웅이 남긴 심득은 충분히 많다. 저 자들을 실전에서 조금만 굴리면, 원래부터 무예의 천재들이었으니 머지않아 절대지경이 되겠지.]

이미 천축대륙의 4할이나 되는 영토가 대웅제국의 것이 되었다. 지금까지 정복한 영토만 해도 남만을 포함하면 중원 전체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대웅제국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대제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었고, 이제는 절대지경을 양산해서 동료의 질을 올리려는 게 백련교주의 계획이었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백련교주가 문득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미야모토 무사시.]

스앗!

미야모토 무사시가 공간을 베어서 그 자리에 나타났다.

“…….”

[생각은 정해졌는가?]

한참을 침묵하던 미야모토 무사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련교주, 널 따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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