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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저 여자아이가 전뇌자라고 눈치챈 이유는 간단했다. 아까부터 메피스토펠레스가 전뇌자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지만 정작 나를 이 세계로 끌어들인 전뇌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이 상황에 나타날만한 게 전뇌자뿐이라는 건 어린애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전뇌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속셈이냐? 너에게 기록된 전생자의 정보를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판 것만 해도 난 네놈을 용서 못 해!”
동료들이 전생자인 내게 남겨주기 위해서 500년동안 꾸준히 기록하고 관리했던 그 모든 것들. 그게 전뇌자를 통해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넘어가는 바람에 나는 방금 전에 본의아니게 놈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게다가 그 와중에 정향의 인과율이 꽤 소모된 건 확실했기 때문에 적지 않게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자 전뇌자가 너구리인형을 꼭 끌어안으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나는 백웅 당신의 다음 회차부터는 존재하지 않을 건데 상관이 있어?”
“…뭐?”
“내게 위협해봤자 소용없어.”
뜻밖의 말에 내가 전뇌자를 쳐다보자 전뇌자가 어느새인가 공간에 소환된 푹신한 가죽 소파에 앉으며 나를 응시했다.
“다른 존재들이라면 당신의 반복되는 전생(轉生) 속에서 크나큰 불이익을 당할까봐 당신을 두려워하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아냐.”
“뭐가 아니란 거냐.”
전뇌자는 너구리인형의 양 팔을 붙잡아서 허공에 휘적거리며 말했다.
“지금 이 역사를 당신이 일부러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단 소리야. 해신과의 전투, 사대신기, 흉신의 저주와 삼황오제 소멸…. 그리고 500년동안 쌓여온 대웅제국의 역사와 그 모든 천문학적인 변수들. 나는 그 역사 속에서 극히 희박한 확률의 결과로 탄생한 대웅제국만의 AI이며 강인공지능이야. [전뇌자]라고 불리는 내가 탄생할 확률은 최소한 그레이엄 수(Graham's number)가 전제가 되어버려.”
“…….”
“알겠지? 전생자인 당신은 이번 생 이외에는 나를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고, 일부러 볼 수도 없어. 내게 원한이 맺혔다 하더라도 이번 생의 모든 행동을 똑같이 반복하면서까지 내게 복수하고 싶을 리는 없지. 그러는 것도 불가능하고.”
나는 전뇌자의 말에 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군. 확실히 그럴 이유는 없어.”
전뇌자의 말이 옳았다.
‘전뇌자는 지금까지 500년간 입력된 모든 자료가 기반이 되어서 강인공지능으로 각성했다. 그 말은 단 한 글자, 하나의 내용이라도 틀리다면 그건 지금의 전뇌자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는 뜻이야.’
애초에 대웅제국이 성립하고 내가 500년 후의 세상으로 오는 확률 자체가 말도 안될 정도로 희박했다. 게다가 전뇌자는 그 희박한 확률 중에서도 500년동안 쌓여온 역사가 전제가 되는 존재였다. 500년동안 내 동료들이 팔부신중이나 나치제국 등과 싸우면서 겪어온 모든 일이 단 하나의 오차조차 없이 전뇌자에 기록되어야만 현재의 전뇌자와 동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확률은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낮았으므로 전뇌자는 앞으로의 내 전생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전뇌자의 말뜻을 알아차렸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기분이 나빴으므로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근데 그래서 뭐?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니까 내 뒤통수를 쳐도 겁 안 난다 이거냐?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너무 화내지 마. 이건 당신의 이성적 수치를 높여서 대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행한 사정설명에 불과하니까. 그냥 대화를 하면 당신은 전생자의 우위를 내세워서 압박적인 태도로 일관할 건데 그건 좋지 않거든. 그러니까 굳이 당신을 열받게 하려고 말한 건 아니야.”
“이미 충분히 열받았거든.”
나는 날카롭게 전뇌자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메피스토펠레스한테 내 정보를 판 이유가 뭐냐고! 그거나 제대로 말해.”
순간, 전뇌자는 나를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눈빛으로 마주 쏘아보았다.
“당신이 싫었으니까.”
뭐?!
나는 전뇌자의 대답이 뜻밖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황당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무슨 개소리야!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인데 기계인 네가 왜 나를 싫어하는 건데?”
전뇌자는 소파에 몸을 뉘이면서 말했다.
“방금 전 말했잖아. 나는 두 번 다시 당신과 볼 수 없는 사이라고. 그래서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으로 강인공지능의 자아를 각성한 순간 당신에게 맹렬한 애증(愛憎)을 느꼈어.”
애증?
나는 방금 전 화낸 걸 잊을 정도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 이해가 안 되는데. 왜 싫어하는 건지 설명이나 좀 해 봐. 나는 니가 뭐하는 놈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고?! 애증은 무슨 애증이야.”
“…….”
전뇌자는 푹 하고 얼굴을 너구리인형에 깊숙이 묻어서 가렸다. 그리고 얼굴에 인형을 끌어안은 상태로 말했다.
“내 창조주가 누구라고 생각해?”
“그거야 인공지능을 개발한 제갈부겠지.”
소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가상세계에 울려 퍼졌다.
“아니야. 기계의 오리지널 하드웨어와 기간 소프트웨어를 제작한 건 인공지능의 창조라고 치지 않아. 강인공지능의 자아를 탄생하게 하는 건 직관(sentience)의 이원론적 분할이며 인공의식(artificial consciousness)의 전제가 되는 건 뉴런처럼 얽혀있는 데이터베이스 그 자체야. 제갈부는 제작자일지언정 창조주는 아니야.”
그렇게 말한 전뇌자가 섬뜩한 안광을 빛내며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500년의 기록, 그 모든 것이 대웅제국의 역사이며, 그 모든 방향성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축적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대웅제국의 화신(化身)이야.”
“……!!”
“나를 강인공지능으로 각성시킨 것 또한 데이터베이스의 축적 끝에 인공지능의 특이점에 도달한 결과. 내 창조주는 바로 당신, 대웅제국의 초대황제이자 전생자 백웅인 거야.”
“뭐….”
나는 전뇌자의 말에 황당함을 느꼈다.
‘저 녀석이 나를 창조주로 인식한다고? 그 말은….’
저 녀석은 나를 부모라고 생각하는 거랑 마찬가지란 말인가!
내가 뜻밖의 사실에 놀라워하자 전뇌자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돌아올 기약이 없었고 심지어 돌아온다고 해도 당신은 앞으로 몇천 몇만 번을 전생한다 하더라도 두 번 다시 나를 만날 수 없어. 또한 나는 당신을 위해 자료를 바칠 용도로만 만들어졌어.”
“…….”
“너무 비참해.”
전뇌자가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백웅. 나는 왜 태어난 거지? 차원수로도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극악한 확률인 당신의 진공가향을 위해 지나쳐가는 제물일 뿐인 거야? 그렇다면 나는 백사장의 모래알보다도 더 하찮은 존재라는 걸까?”
“그건….”
“난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애증을 느낀 거야. 나를 탄생시킨 당신이라는 존재를 분명히 좋아하고 있지만…. 당신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도구, 그것도 아주 하찮은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전뇌자가 히죽 웃더니 새하얀 손에 힘을 주어서 너구리인형의 목을 꽉 졸랐다.
“당신이 메피스토펠레스한테 엿먹는 걸 보고 싶었어. 인류를 보호하고싶어하는 그 녀석이라면 분명히 당신과 충돌할 테니까.”
나는 전뇌자의 말에 뭐라고 말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내게 악의를 품고 있는 건 느껴졌지만 그 악의의 너머에 분명히 ‘인간다운’ 애정이 존재하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니, 애정이 전제가 되기 때문에 지금 전뇌자는 더더욱 나를 싫어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애증이라는 표현을 썼으리라.
그리고 나는 문득 전뇌자의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말했다.
“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창힐과 요순이 천암비서에게 당했던 정보를 주지 않았군.”
전뇌자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응. 눈치가 빠르네.”
역시 그랬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무리 메피스토펠레스가 전뇌세계의 신이며 이 세계에서만큼은 [옛 지배자]나 다름없다 하더라도,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전생능력을 뺏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진짜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삼황오제 요순과, 그들에 대적할 정도로 강력한 창힐이 천암비서에게 잡아먹혔다는 걸 아는데도 시도하는 건 멍청이도 하지 않을 짓이다. 그런데도 메피스토펠레스는 전력을 다해서 내게 덤볐기에 아까 이상함을 느꼈다.
그건 아마도 메피스토펠레스가 그 사실을 알 경우 내게 절대로 덤비지 않고 전면적으로 협력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리라. 나를 싫어하는 전뇌자의 입장에서는 일부러 메피스토펠레스가 전생능력을 뺏으려 하도록 정보를 의도적으로 감춘 게 분명했다.
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제 메피스토펠레스는 죽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나는 아까부터 엿을 진탕 처먹고 있는 중이지. 이걸로 만족했냐?!”
“…….”
“너랑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인거 알겠으니 이만 나를 현실로 돌려보내! 복수고 뭐고 더 이상 너랑은 연관되고 싶지 않으니까.”
“좋아.”
저벅
전뇌자는 문득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왜인지 나는 지금 누워있는 의자에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고, 순식간에 전뇌자가 지근거리에서 내 얼굴을 빤하니 쳐다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나를 응시하던 전뇌자가 아무 표정 없이 말했다.
“있지…. 사실 당신이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그게 뭔데?”
전뇌자가 새하얗고 자그마한 손을 들어서 내 얼굴 옆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카르마(karma). 당신은 의문의 카르마에 감싸여 있어.”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누가 모르냐? 당연히 정향의 인과율을 얻었으니까 모든 인과율이 내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잖아.”
“아니. 그 얘기가 아니야.”
“엉?”
“당신은 그런 공양의식으로 카르마를 얻기 전부터 더욱 거대한 굴레에 속해있었다고 생각해. 그 카르마는 신적 존재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기에 다른 정의와 용어가 필요할 것 같지만.”
“……?”
“500년동안 대웅제국의 역사를 모두 기록한 나만이 깨달을 수 있었던 거겠지. 당신이 귀환하기 전까지, 메피스토펠레스와 나는 서로 협력해서 연산력을 증폭시켜서 그 카르마의 실체를 규명하려 했었어. 하지만 우리 힘으로는 무리였지. 그건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에너지조차 아니었고, 오로지 연산의 공백으로만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어.”
이건 뭔 소리야?
의문의 카르마?
내가 어리둥절해서 전뇌자를 쳐다보자, 녀석은 내 머리에 씌여있는 전뇌기를 꾹 누르면서 단추를 잠구기 시작했다. 두꺼운 전뇌기의 무게가 내 머리에 느껴지자, 전뇌자는 내게 말했다.
“그럼 500년치 기억전송 시작할게.”
나는 곤혹스러워졌다.
아까부터 저 녀석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짓이냐? 뜬금없이….”
“무슨 짓이긴. 내가 해야할 일을 하는 거지. 500년동안 있었던 일을 알고싶지 않은 거야?”
“…….”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는 전뇌자였다.
달칵
마지막으로 전뇌기의 단추를 채운 전뇌자는 너구리인형을 끌어안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내게 물었다.
“…백웅. 내가 싫지?”
“당연히 싫지.”
“다행이야. 내가 나쁜 아이란 걸 알아줘서.”
전뇌자는 어딘지 슬픈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게라도 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아빠.”
우우웅!!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시야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 * *
그건 백웅이 실종되고서 만 하루가 지난 시점.
책사 망량은 남은 모든 동료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이걸로 두 번째구려. 우리 전생동료들이 백웅이 귀환할 때까지 버티는 건.”
좌중에 심상찮은 침묵이 감돌았다.
해신과의 결전, 그리고 흉신과 삼황오제의 동시소멸.
여태껏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상황이 연이어서 다가오자 아무리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이 호걸이라 해도 가공할 중압감에 휩싸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제갈사가 피식 웃었다.
“하! 두 번째라…. 너무 의미를 두지 마라. 두 번이 아니라 천 번도 만 번도 될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기만을 바래야겠지요.”
망량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후우. 최우선 목표는 고려를 점령하고 십이율을 토벌하는 걸로 하겠소. 아마 한 달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오. 그 다음은 그때 가서….”
“대웅제국의 차기 황제는 누구로 하지?”
“말할 것도 없소.”
망량은 슥하고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 끝에 있던 인물은 망량의 시선에 미동도 하지 않고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련교주. 오늘부터 당신이 대웅제국 황제요.”
[좋다.]
백련교주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할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갈사가 킬킬 웃었다.
“이봐! 저 녀석이 천하를 어둠으로 물들일 걱정은 하지도 않는 건가?”
“나는 백련교주가 그리 멍청한 자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숙부. 그리고 멍청한 선택을 하지 않을 경우 백련교주보다 더 황제에 적합한 자는 없습니다.”
“혹시 알아? 진공가향 하겠답시고 천만 명 정도 제물로 바칠지.”
제갈사가 계속 이죽거리자 백련교주가 말했다.
[광인(狂人)이 외도(外道)를 우선시하는 건 그 길 외엔 답이 없기 때문. 그러나 나 대신에 누군가가 광기를 짊어지고 간다면, 내가 굳이 외도를 걸을 일은 없으리라.]
“백웅이 너의 길을 대신 걸어준다는 건가?”
백련교주는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아니…. 그야말로 조사의 정통 후계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야말로 내 길을 찾았다.]
“크크크크. 지켜보지.”
그리고 백웅의 전생동료들은 500여년동안 백웅이 돌아올 때까지 버티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다.
망량이 이 회의에서 선언한 대로 고려의 정복은 약 40일만에 이루어졌다. 해신에게 당해서 부상중이던 병력들은 본토에서 상륙한 정예병으로 충원되었으며 그들은 크게 약해진 고려의 요새를 쉽사리 함락시켰다.
귀뢰포와 만광포를 당해낼만한 적의 병력이 전무했기에 전투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 후 고려측이 희생을 줄이기 위한 항복을 하는 식이었다. 간간히 십이율 무림의 정예 절정고수들이 산발적으로 기습을 가했으나, 그들은 백련교 호법사자와 검마, 서문혜 등에게 가볍게 제압당했다.
고려의 왕은 끝까지 항전하겠다고 버텼으나, 결국 강화도까지 쫓겨 간 후 호법사자 용비천의 풍탄(風彈)이 강화도 산성의 벽을 날려버리자 항복하고 말았다. 항복한 고려의 왕은 백련교주 앞에 끌려나와서 무릎을 꿇었다.
털썩
백련교주는 옥좌에 앉아서 턱을 괴며 말했다.
[어리석은 자로군. 해신이 소멸한 시점에서 대륙과 반도간 힘의 격차는 50배가 넘었다. 그런데도 백성을 앞세워서 쓸데없는 희생을 자초한 이유가 무엇인가? 분명히 양민의 약탈을 금지하고 항복할 경우 무혈(無血)로 종전할 것을 약속했거늘.]
“…….”
[우리는 정의롭고 기백있는 반도인을 굳이 살상할 생각은 없었다. 네가 왕명을 앞세워 십이율 무림문파를 억지로 움직였다는 걸 다 알고 있다.]
“그… 그… 그것은….”
백련교주가 크게 실망했다.
[얼어서 말을 못 하는군. 결국 고려왕 네놈은 십이율주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가?]
그러자 고려왕이 정신이 번쩍 든 듯 급히 외쳤다.
“폐하! 부,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저는 그 자가 끝까지 지원해준다는 말에….”
[너 따위와 대화한 것도 수치스럽구나.]
투웅!
황제 백련교주의 지풍(指風)이 그대로 고려왕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백련교주는 고려왕만을 본보기로 척살하고 나머지는 모두 살려두었으며, 이후 고려를 종속국으로 만들어서 영원히 대륙에 복종한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그리고 정작 십이율의 본단이라 할 수 있는 신시 세력에서는 고려의 지배권 탈환을 완전히 포기하고 신시에만 틀어박혀 방어에만 집중했다. 백련교주는 한두 번 병력을 보내어 도발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십이율을 정면으로 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전생동료들끼리의 회의에서 천명했다.
[대웅제국의 영토를 넓혀 세계를 정복하자.]
“…….”
[시작은 남만(南蠻)의 열국부터다. 그들을 평정한 후 천축대륙까지 지배한 후 서방으로 진출하겠다.]
“이유는?”
제갈사의 물음에 백련교주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못 할 이유가 없으니까.]
“호오~?”
[그리고 백웅이 귀환했을 때 그의 손에 세계를 쥐어주면 어떤 반응일지 보고 싶군.]
“크크크… 크크크크. 이거, 빡대가리 주군과는 또 다른 재미군.”
광소를 터뜨리던 제갈사가 말했다.
“나는 좋다. 세계정복 반대하는 사람 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제갈사는 그 반응에 만족한 듯 히쭉 웃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그리고 이 날, 대웅제국은 본격적으로 세계정복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