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034화 (1,031/1,615)

1034====================

진공가향(眞空家鄕)

우웅

나는 류하의 소형전이문을 이용해서 바로 달의 뒷편으로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소형전이문으로 도착한 곳은 예전에 와본 적 있었던 궤도 엘레베이터였다. 그 중에서도 넓은 지휘실으로 보였다.

“여긴 왜 온 거지? 달의 뒤편에 적의 본거지가 있다면서….”

“본거지에 바로 뛰어드는 건 위험한 일. 저쪽이 폭격을 했다면 이쪽도 화답을 해주어야겠지요.”

그렇게 대꾸한 사공린이 힐끔 사마령을 쳐다보았고, 사마령은 궤도 엘레베이터의 지휘실로 보이는 거대한 기계실에서 조종반을 삐빅거리며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후 전방에 있는 화면에 달의 모습이 떠오르더니 기계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궤도 엘레베이터 메인터넌스(maintenance) 오픈. 택틱컬 모드(tactical mode)로 전환. 사용자 인식. 대웅제국에 영광있으라.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사마령이 힐끔 사공린을 뒤돌아보자 사공린이 고개를 끄덕였고, 사마령이 기계에 명령을 내렸다.

“대결전 플라즈마 주포 발사를 명령한다. 출력수준은 최대.”

[목표를 설정해 주십시오.]

삐비빅

사마령이 무언가를 입력하자 기계에서 연속으로 기계음이 일어났다.

[16중 토카막 차폐 해제 중…. 최대출력 쿼드러플 레벨(quadruple level). 서드아이 시스템(thirdeye system) 작동으로 적중률 상승 중…. 최대 99.998% 세팅 완료.]

“발사해.”

[발사.]

치이잉-

잠시 후 무언가가 두쿵 하고 열리더니 발사되는 진동이 엘레베이터 내에 울려퍼졌다. 그 진동은 잠시동안 이어지다가 멈췄는데, 이윽고 화면에 떠 있던 달의 모습이 크게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쿠콰콰콰쾅!!

거대한 청색의 기둥같은 빛이 그대로 달의 뒤편을 폭격했다. 그 크기는 마치 점과 같았지만, 지면에 도달해서 맺힌 순간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달의 지표면을 휩쓸어버리고 있었다. 마치 붉은 반점이 번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멀리서 보는데도 저 정도 크기의 파괴력이라면, 아마 핵폭탄을 훨씬 능가하는 파괴력이리라!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붉은 반점이 퍼진 장소에 뭔가 나타났다…?!’

슈우우

아직도 청색의 기둥은 계속 뻗어가서 그 장소를 때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자세히 보면 무언가 도시같은 게 조그맣게 달 지표면에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시꺼먼 도시같은 건 이윽고 그 면적을 넓히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달의 3할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부유도시처럼 보였다.

쿠구궁-

“……!!”

저건 숫제 대륙이 아닌가?!

달 뒤편에 부유도시의 대륙이 떠 있었다니!

내가 놀라자 사공린이 옆에서 설명해줬다.

“역시 그랬군요. 일루미나티 놈들…. 플라즈마 주포로 방어막을 벗겨내기 전까지는 용의주도하게 결계로 자신들의 존재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저게 일루미나티의 본거지란 건가?”

“그렇습니다. 주포로 방어막을 돌파하고 나면 저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음…. 잠깐만.”

나는 혼란스러워서 사공린에게 물었다.

“원래 달은 삼황오제 제곡의 영역으로, 저기에는 제곡의 만신전인 반왕전(盤王殿)이 있었어. 많은 외계종족이 노예처럼 살고 있었고 사도인 사비시신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은 다 어떻게 된 거지?”

사공린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흉신의 저주로 삼황오제가 소멸하면서 제곡의 영역 또한 무주공산이 되고 반왕전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외계종족들은 다른 차원으로 떠나거나 달에 머물렀는데, 머물렀던 자들은 지금 일루미나티의 노예가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저와 무력전술요원들이 길을 열 테니 수장의 목을 베어 주십시오.”

“알았어.”

쿠구구구…!!

잠시 후, 주포가 일루미나티 도시의 방어막을 뚫었는지 시꺼먼 폭연같은 게 나기 시작했다.

슈슉

“그럼 먼저….”

사공린은 즉시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류하가 있는지를 살폈는데 뜻밖에도 류하는 사공린을 따라가지 않은 상태였다.

‘응? 궤도엘레베이터라고 해도 달까지는 엄청난 물리적 거리가 있을텐데…. 축지법으로도 어림없어. 사공린은 그런데도 류하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갈 수 있단 건가.’

내가 어리둥절해하는 동안에 류하가 발랄하게 외쳤다.

“그럼 감다~~!!”

파앗!!

류하의 소형전이문을 통해서 도착한 곳은 마치 인간계와는 다른 기이한 별세계의 문명처럼 보였다. 다만 예전에 봤던 것처럼 기괴하고 흉물스러운 머나먼 이계같은 느낌이 아니라 과학문명이 발전한 외계인의 도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일루미나티의 흑막인 렙틸리언이란 놈들은 주술문명(呪術文明)이 아닌 과학문명 계열인가보군….’

이 우주에서 필멸자의 문명은 크게 주술문명과 과학문명으로 나뉜다고 제갈사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주술문명이란 형이상학적인 주술의 세계와 신(神)에게 내려받는 악마적인 힘의 숭배 끝에 도달하는 것으로써, 쉽게 말해서 [옛 지배자]의 추종자들이 흔히 형성하는 문명이었다. 이들 또한 과학적 기술을 갖고는 있었지만 주로 사용하는 건 주술과 마법이었다. 렙틸리언들의 주 문명이 주술문명이 아닌 걸 보면 그들은 아무래도 [옛 지배자]를 추종하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도착하자 주현성이 주술무력요원 중 기다란 회색 망토를 걸치고 있는 자에게 말했다.

“량원(亮院), 걸어줘.”

“물론이오, 부대장.”

백발이 성성한 망토의 사내는 잠시동안 뭔가 주문을 외우더니 손을 크게 앞으로 떨쳤다.

“와라, 복룡두봉(伏龍斗篷)!!”

촤라라락!!

그와 동시에 그가 걸치고 있던 회색 망토가 갑자기 철갑으로 변해서 그의 전신을 에워쌌다. 그만의 인공보패인 게 틀림없었다. 인공보패의 철갑을 두른 망토의 사내가 빠르게 주문을 영창했다.

“완력강화(腕力强化), 투명(透明), 투과(透過), 주술방어(呪術防御), 생명력강화(生命力强化), 독무효(毒無效), 환영간파(幻影看破), 광술무효(光術無效), 비상능력부여(飛上能力附與)!”

치치치칭!!

“오…!!”

다음 순간, 나를 포함한 모든 전술무력요원들의 몸에는 기이한 술법의 문자가 9개 떠오르며 넘실거렸다. 동시에 술법의 힘이 피부로 스며들어서 자연스럽게 힘을 향상시켜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놀라서 물었다.

“이건 무슨 기술이지?”

그러자 백발의 망토사내가 철갑화를 유지한 채 내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폐하, 저는 전술무력요원 서열 9위인 량원이라 하오며 제 인공보패 복룡두봉에는 착용자의 부여술법능력을 극대화시켜주는 기능이 있사옵니다.”

“부여술?”

“저는 본디 곤륜파의 장문인이며 술법사. 무공을 전문으로 익히지 못해 전투원은 아니지만 부여술법으로 아군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옵니다. 방금은 실전에 쓸만한 부여술법을 동시에 최대한 걸었사옵니다.”

“호오.”

이런 요원도 있는 건가!

내가 내심 감탄하고 있을 때 량원이 말했다.

“부여술법은 최대 반 시진동안 유지되옵니다. 그 전에….”

“알았어. 가자!”

파앗

우리는 시꺼먼 매연이 흘러나오는 적들 기지의 내부로 침입했다. 그리고 침입하자마자 나를 제외한 모든 요원들이 동시에 자신의 인공보패를 들며 외쳤다.

“와라, 마룡쇄(魔龍鎖)!”

“와라, 유성도(流星刀)!”

“와라, 혈왕겸(血王鎌)!”

“와라, 나의 소중한 스마트폰~~!!”

“…꼭 초를 쳐야겠냐, 바보 류하!”

촤좌좍

다들 인공보패의 철갑을 두르며 변신하는 동안 류오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분홍빛 토끼형상같은 철갑을 두른 류하가 메롱하는 듯 했다.

“류오는 바보래요~~ 내 인공보패는 스마트폰인데 뭐 어쩌라고~!”

“쳇. 상종을 말아야지….”

류오가 짜증난다는 듯 중얼거리다가 자신의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말했다.

“초상기인 류오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나간 시간이여, 내게 길을 보여라.”

위이잉…

그의 몸 주위에 청색의 나선이 휘돌았다. 그 나선 속에서 침묵하고 있던 류오가 이윽고 나선을 잡아채서 하늘로 던졌고, 나선은 이윽고 터져나가며 가루가 되어서 공기중에 뿌려졌다. 그러자 우리 눈에는 이 일루미나티의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적이 생생하게 빛의 덩어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색적 완료. 총대장은 아무래도 남서쪽으로 22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예상보다 사전정보와 오차가 크군. 목표로 향하면서 모두 섬멸한다!”

“넵!”

“돌격.”

타닷

주현성의 말이 끝나는 순간 전술무력요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그들을 뒤따라갈까 생각하다가 이내 천천히 가자고 생각했다.

‘어디 이 기회에 실력 좀 볼까.’

콰과과광!!

사방에서 폭음이 흐르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인공보패의 철갑을 두른 요원들이 날아가는 듯 했다.

퓨웅 퓨웅

요원들을 상대로 웬 기이한 갑옷을 입은 도마뱀같은 인간들이 총을 쏘았다. 그 총은 현재 인간계에서 쓰는 냉병기인 총이 아니라 광선을 직접 뿜어내는 총인 듯 했다. 당연히 빠르고 강력했지만 요원들은 그 총을 피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투웅!!

탄막을 만들어낸 수십 개나 되는 광선총의 광선이 전술무력요원들의 갑옷을 정면으로 때렸다.

“별거아니구나!”

하지만 관통되거나 녹기는 커녕 간지럽다는 듯 잠깐 움찔한 후, 도리어 서열 3위 유성객(流星客) 고병(孤兵)은 자신의 장도(長刀)에 시퍼런 강기를 응축하며 달려들어서 도마뱀인간 병사들을 향해 일참을 날렸다.

의념절기(意念絶技)

천강일도결(天降一刀決)

쿠콰콰콰쾅!!

[키에에엑!]

[끄아악!!]

고병의 도강은 무려 오십 장이 넘는 길이로 늘어나더니 단숨에 건물과 함께 수십 마리의 도마뱀인간들을 베어버렸다. 천강일도결이 지나간 자리의 건물이 다섯 개씩이나 베여나가더니 이윽고 폭발했다.

보통 강기를 저 정도 길이로 늘리려면 어마어마한 내공이 필요했지만 나는 저게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아챘다.

‘인공보패갑옷이 내공소모를 극도로 효율있게 만들어주는데다가 의념절기 자체가 강기의 크기를 늘리는 것…. 게다가 고병의 실력이 초절정의 상위이기 때문이군.’

인공보패의 위력은 상당해 보였다. 고병이 갑옷을 장착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면 전력이 최소한 3배는 차이가 나는 걸로 보일 정도였다. 고병 뿐만 아니라 다른 전술무력요원들도 저마다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날뛰고 있었다.

쿠콰쾅

제일 미친듯이 날뛰고 있는 것은 주현성이었다. 주현성은 마룡쇄를 끌어낸 채 한 손에 거대한 철쇄를 들고 휘두르는 중이었는데, 철쇄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사방 백여 장이 몽땅 부서져 나갔다.

퓨웅 퓨웅

꽈과광!

[크카아아아악.]

방금 전에는 렙틸리언들이 끌고 온 비행선같은 게 날아다니면서 광선을 쏘는 것 같았지만, 주현성은 즉시 의념을 발휘해서 철쇄를 날려서 비행선을 단숨에 관통시켰다. 그리고 철쇄에 관통된 비행선을 꿰어서 땅에 들이박았다.

쿠아아아앙

비행선이 폭발함과 동시에 주현성은 땅에 있던 도마뱀인간 수천 명의 대군을 상대로 홀로 돌진했다. 어느 새 진을 치고 레이저총을 장비한 채 기다리고 있던 외계인들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총을 발사했다.

콰과과과광

수천 수만 개의 포화가 주현성에게 쏟아졌다. 아무리 인공보패의 방어력이라도 위험한 일인지 근처에서 싸우고 있던 다른 요원들이 깜짝 놀라서 주현성에게 외쳤다.

“대장!”

“괜찮아?!”

쿠구구구…

그러나 주현성은 자신의 몸 주변에 새하얀 방어막을 두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철쇄를 오른 손에 움켜쥐며 말했다.

“폐하와의 수련으로 내 실력은 급격히 늘어났다. 의념을 다루는 역량이 늘어나며 내 초상능력도 함께 발전했지…. 네놈들 일루미나티와의 오랜 악연을 끊을 때가 된 거다.”

주현성의 시꺼먼 갑옷 속에서 혈광(血光)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주현성은 눈에서 핏빛을 뿜어내며 외쳤다.

[내 안의 마룡이여, 모두 터뜨려버려라!]

초상능력(超上能力)

사이코키네시스(psychochinesis)

윌 프레스(will press) 오버파워(overpower)

주현성이 염동력을 전개하는 순간, 허공에 마룡의 형상이 펼쳐졌다.

쿠드드득

눈 앞에 있던 수천 마리의 외계인들은 모두 동시에 염력으로 인해 전신이 뒤틀려서 터져나갔다. 그 대병력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떡이 되었으며, 그들뿐만 아니라 근처의 건물에 숨어있던 외계인들도 무언가에 찌부러지듯 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주현성의 시선이 미치는 곳에 있던 것은 건물조차도 폭풍에 휘말리듯이 부서져나가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이윽고 주현성의 염동력 전개가 끝나자, 반경 이십여 리 내는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 깔끔한 폐허가 되어버렸다. 외계인 병사들이 몇 마리 죽었는지는 셀 수조차 없었다.

“......!!”

주현성이 말하기를 갑옷을 장착한 상태에서 자신의 사이코키네시스는 몇 배나 강력해진다고 했지만, 설마 이 정도 수준일 줄이야! 게다가 무공이 강력해지면서 초상능력또한 강력해졌다는 건 처음 안 사실이었다.

‘바로 저게 주현성이 전술무력요원의 부대장인 이유인가….’

발전가능성을 생각해서 그를 부대장으로 배치했다는 사공린의 말이 이해가 갔다. 앞으로 주현성이 더욱 발전할 경우 나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녀석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현성이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어이. 괜찮나?”

“헉… 헉…. 폐하. 힘을 너무 소모해서…. 죄송합니다.”

“뭐 됐어. 힘내서 외계인 대장 목이나 베러 가자고.”

“존명. 어엇….”

파앗

나는 주현성을 옆구리에 끼고 멸혼보로 달려나가며 생각했다.

‘인공보패 확실히 쓸만하군…. 정통보패와는 다르지만 과학의 힘이 가미되어서 어떤 면에서는 보패보다 응용력이 높아.’

다음 전생에서 전생 초기부터 인공보패를 만들어서 쓸 수 있으면 좋으리라.

주현성이 이 일대에 밀집한 적의 대군을 쓸어버린 덕분인지 한동안은 전진하는 동안 적이 하나도 출현하지 않았다. 그리고 류오의 인도대로 가다 보니, 이 도시에서도 가장 거대해 보이는 수백 층짜리 부유요새같은 게 눈에 띄었다.

쿠궁…

둔중한 파괴음과 함께 전술무력요원들이 적 본거지의 방어막을 깨고 안으로 침입했다. 기지 안에는 수많은 도마뱀머리 병사들이 있었는데 그 누구도 요원들에게 스친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나는 그 덕분에 그냥 아까부터 달리고만 있어서 편했기에 기분이 좋았다.

나는 달려가던 중 류오에게 붙어서 물었다.

“어이 류오. 적 총대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있냐?”

“저쪽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류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을 힐끔 보았다. 류오의 능력 덕에 모든 생명체를 벽을 투과해서 푸른빛으로 색적할 수 있었는데 마치 그 형태가 거대한 애벌레처럼 생겼기에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엥? 저건 벌레잖아? 확실해?”

“시간의 좌표가 가리키는 건 확실히 저겁니다만….”

“이해가 안 가는군. 일루미나티의 수장이란 놈이라면 당연히 렙틸리언이라서 도마뱀이어야 할 거 아냐. 웬 벌레냐고.”

나는 투덜거리다가 류오에게 주현성을 넘겨주었다.

“이 녀석 좀 갖고 있어. 내가 수장의 목을 베겠다.”

“앗, 폐하. 위험합니다….”

파앗!!

나는 이제 요원들의 속도에 맞춰서 뛰지 않고 멸혼보의 극성을 동원해서 정면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눈 앞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의념으로 베어버렸다. 벽을 무시하고 최단거리로 가자 고작 십여 리 만에 거대건물의 최정상까지 도착할 수가 있었다.

타앗

나는 전방의 광경을 보자 다소 역겨움에 인상을 찌푸렸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의 거대한 정원 위에 수많은 애벌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며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또한 정중앙에는 몸의 크기가 수백장은 될 법한 거대한 애벌레가 몸을 둥글게 만 채 웅크려 있는 게 보였다.

“네가 렙틸리언 로드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대화를 섞을 필요도 없으리란 생각에 곧장 절기를 써서 거대애벌레를 베어버렸다.

추와악!!

애벌레는 반토막나자 잠시동안 몸을 크게 떨었다. 그러더니 푸른 피를 격렬하게 뿜어내더니 잠시 후 축 하고 늘어졌다. 나는 이게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윽고 애벌레가 죽은 자리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예전에 은하부족연맹과의 회담에서 보았던 그 노인네의 환영이 떠올랐다.

[환영하네, 백웅….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대웅제국 그대들의 기이한 기술력은 알 수가 없군. 우리 일루미나티의 기술력은 본디 인간의 기술력보다 수천 년을 앞서있는데…. 천계의 보패를 이용해서 우리와 대등 이상의 힘을 갖추다니.]

“젠장. 저 애벌레가 진짜 렙틸리언 로드가 아니었나?”

나는 씹어뱉듯 중얼거렸지만 노인네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내 원래 몸이 맞다…. 하지만 그대들이 쳐들어오자 다른 몸으로 대피했지. 하하하….]

“야. 너는 도마뱀일족의 왕이라면서 웬 본체가 애벌레냐?”

[나는 프록시마에 살던 궁극의 지성체…. 도마뱀 일족을 내 의지대로 진화시키며 수십만 년을 살아왔으며…. 너희와 공존하려 했다. 너희 인간 중에도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너희 대웅제국의 무모한 뜻을 알게 되었기에 더 이상 두고볼 수가 없었지.]

그렇게 말한 노인이 말했다.

[우선 대웅제국부터 멸망시키고 세븐 아크를 받아가마.]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크흐흐…. 안 그래도 온 세계의 화산을 폭발시킨 참이다.]

“…엉?”

다음 순간, 내가 귀에 끼고 있던 전자장비를 통해서 류하의 말이 들려왔다.

[폐하, 큰일났슴다~ 지상에 난리난 것 같슴다~.]

“…….”

내가 멍하니 있자 노인이 말했다.

[우리 렙틸리언은 원래 지구의 공동(空洞)을 탐험한 적 있었기에 지각과 해양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가 있지…. 지상을 한 번 화산폭발로 멸망시켜주마.]

“다 같이 죽자는 거냐?”

[크크크…. [옛 대륙]의 주인에게 우리 종족의 임시거처를 빌리기로 했으니 너희가 걱정할 거 없다.]

노인이 마치 나를 놀리듯 말을 이었다.

[위대하신 대웅제국의 초대황제 백웅이여…. 편히 있다 돌아가게나. 화산으로 멸망한 대웅제국으로.]

제기랄!

뭐 이딴 상황이 다 있어?!

설마 [옛 지배자]한테 종말 때 망하는 게 아니라 고작 외계인 세력 때문에 세상이 망하다니! 나는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지만 바로 그 때였다.

“그랬군요. 역시 백웅 앞에서는 우쭐해서 털어놓을 줄 알았습니다.”

사공린이 어디선가 나타나 있었다.

사공린을 본 일루미나티의 수장, 렙틸리언 로드가 미소를 지었다.

[후후. 사공린이여…. 결국은 내 승리…. 핵미사일을 고작 백 개밖에 발사하지 않았던 걸 의심하지 않았던 그대의 패배다.]

“수만 발을 발사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던 이유가 뭐죠?”

[만에 하나 그대들이 못 막으면 방사능으로 오염된 세상이 될 텐데, 그걸 종말 직전까지 다 청소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뭐 나랑 이런 소소한 잡담이라도 하고 있으면 패배의 아픔이 잊혀지는가?]

렙틸리언 로드가 사공린을 비웃었다.

그러나 사공린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대꾸했다.

“내가 겨우 이런 걸로 좌절을 겪기를 바라는 건가요?”

[뭐라고?]

“내가 진짜로 노리는 것은 [옛 지배자]. 당신같은 잔챙이한테 휘둘릴 거였다면 나는 지금까지 백웅을 기다리지 못했을 겁니다.”

[흥, 다 끝난 마당에 허세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웅

다음 순간, 사공린의 몸에 황금빛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을 마주한 순간, 나는 전신의 음신지력이 움찔거리며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음신지력 이상의 무언가를 마주한 듯한, 경계하는 반응이었다.

“보여드리죠.”

사공린의 몸이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녀의 눈은 어느새 금안(金眼)으로 변해 있었다.

“진정한 천마(天魔)가 어떤 존재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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