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3====================
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선검술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선검술을 수련하기 전, 선검술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여동빈을 불러서 가르침을 받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여동빈은 과거에 내게 선검술의 기초를 전해줬어. 그리고 난 그 기초를 제대로 연마한 적도 없지…. 굳이 그를 불러낸다면 기초를 수양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가 좋겠어.’
아예 수련진도가 무(無)인 상황에서 여동빈을 불러봐야 피차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수련이란 건 전수자가 다 떠먹여 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어느정도 선검술의 기초가 쌓인 후에 여동빈을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선검술의 수련법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저 선검술을 소환해서 싸움에 들고다니는 것만으로도 인과가 축적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인과율의 본성은 원(圓)일지니, 원의 이치를 이해하게 되면 선검술에 숨겨진 묘용을 수련할 수 있게 된다.]
[선검술을 쓰게 되면 선검의 내부에서 맥(脈)이 그대의 심혈(心血)에 이어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한 번 써 보도록 하라.]
[기(氣)는 심기혈정(心氣血精)의 원리에 따라 도야한다. 기와 의념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선검술 또한 심혈에 이어져 있는 이상 심기혈정에는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심기혈정을 응용해서 선검술을 발전시키는 토대로 삼아야 한다.]
[선검과 심혈을 연결시킨 채 하루에 최소한 일백 개 이상의 원을 그리도록 하라.]
[숙련도가 일정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때부터는 선검에 날을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 생생하게 기억난다.
‘하루에 일백 개 이상 선검으로 원을 그리고, 그 숙련도가 경지에 오르면 날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날을 세운 후에 심검(心劍)을 익혀 인과를 축적할 수 있다!’
수련과정은 명확했다. 나는 선검과 나의 팔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허공에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리도 명동(鳴動)도 느껴지지 않는다. 강기를 일으키며 으레 나는 파공음이나 광폭음도 흐르지 않았다. 마치 고요한 호수처럼 선검으로 원을 그리는 작업이 계속될 뿐이었다.
나는 이윽고 그리 힘들지 않게 백 개의 원을 모두 그릴 수 있었다. 도리어 지금껏 해왔던 다른 지옥수련에 비하면 전혀 힘들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했다. 최대한 신중하게 한 시진동안 그렸는데도 근력이나 기력에 손상이 가지 않았다.
‘흠…. 이걸로 끝인가?’
너무 쉬워서 뭔가 밍숭맹숭하다.
‘하루에 최소 백 개의 원을 그리라 했는데…. 그러면 백 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더 해봐야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계속 선검으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그렇게 약 일천 번을 더 그리고는 내가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다. 수련이 힘들다면 강해지려고 이를 악물텐데, 마치 술에 물탄듯 별다른 고난도 없기에 수련이 시시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권장수련치의 10배는 했으니까 뭐….
나는 남은 시간동안 천랑뇌신결을 계속 수련해서 몸 안의 뇌정을 쌓았다. 그리고 틈틈히 주현성이 천랑뇌신결을 수련하기 쉽도록 이혼대법을 옆에서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열흘이 흘렀다. 나는 매일매일 선검술의 원을 일천 번씩 그렸지만, 역시나 뭔가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이게 정말 수련인가?
수련이면 뭔가 고난도 느껴지고 그 와중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문턱도 눈에 보여야하지 않나?
나는 여태껏 해왔던 그 어떤 무술수련과도 다른 선검술 수련에 혼란스러움을 느꼈지만, 아직 수련 초기이며 열흘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되새겼다. 적어도 한 달 정도는 해 봐야 판단이 될 것이다.
우우우우!!
그러는 와중 나는 천랑뇌신결이 약간 성취가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몸 안을 휘돌던 뇌정의 크기가 지금까지보다 5할은 더 커졌으며 순환속도도 빨라진 것이다. 뇌혼이 갈수록 쌓인다는 실감이 들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흠…. 근데 선검술은 별로….’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수련장에 느닷없이 천우진이 찾아와서는 내게 보패를 내밀었다.
“자, 받아라.”
“이건?”
“망량 사형이 한 달에 한번씩 보패를 내려보낸다 했지. 지난번에 줬던 통천신화주(通天神火珠)에 이어 음양경(陰陽鏡)이다.”
“아, 곤륜십이대선 적정자의….”
나는 손바닥만한 반적반백(半赤半白)의 거울, 음양경을 받아들고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로써 나는 강력한 보패를 두 개 갖게 된 셈이었다. 나는 천우진에게 말했다.
“요즘은 전국옥새를 자주 쓰지도 않는데 보패만 쌓이는 느낌이야. 이렇게 보패를 많이 내려보내는 이유가 뭐냐.”
“천계근접계획이다.”
“음? 그러고보니 저번에도 그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천우진이 설명해 줬다.
“현재 천계와 인간계는 연쇄붕괴를 피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인과율을 끊어서 멀어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멀어져 있어서는 종말이 오기 전에 끼어들어서 인간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지. 그래서 인과율을 다시 이어서 천계와 인간계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계획이 바로 천계근접계획…. 사형이 세운 계획이다.”
“그렇군. 근데 예전에 파멸을 피하기 위해서 거리를 띄워놓은 건데 다시 이으면 위험하지 않나?”
“그 당시의 파멸을 회피했으면 그만인 거다. 다만 한 번 멀어진 거리를 되돌려 놓는 게 매우 까다로웠던 것 뿐.”
“아…. 그렇군.”
“이렇듯 한 달에 한 번씩 강대한 보패를 천제단으로 내려보내는 게 바로 계획의 일환이다. 강력한 보패가 이 세상에 많이 떨어질수록 인과율이 강하게 발생하는 거다. 겸사겸사 너나 대웅제국이 사용할만한 강한 보패도 획득하는 거고.”
나는 천우진의 설명에 상황을 이해했다. 나는 천우진의 말을 머릿속에 정리하다가 말했다.
“요즘은 일루미나티 놈들이 쳐들어오지 않냐?”
“놈들은 지난 은하부족연맹과의 회담에서 노선을 바꿨는지 계속 침묵 중이다. 원래는 냉전중이었는데 갈수록 놈들의 안드로이드와 부딪히는 일도 줄어들었지.”
나는 천우진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전뇌자는 다 수리되지 않았나?”
“그게 좀 이상하다.”
천우진이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네가 전뇌자를 발동시켰을 때 치명적인 타격이 왔는지 제국의 두뇌들이 모두 달라붙었는데도 전뇌자가 복원되지 않아….”
“뭐라고?! 전뇌자의 자료가 다 날아갔단 말이냐?”
“그게 이상한 거지. 자료는 고스란히 있고 열람이 가능하다. 양자두뇌칩을 사용하지 않은 기존의 제너럴 컴퓨팅으로는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다만 전뇌자에 존재하던 인공지능만이 완벽하게 마비되어서 복구되지 않는다는 거다.”
“……?”
내가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해서 멍해 있자 천우진이 말했다.
“쉽게 말하자면 인공지능만 마비됐다. 그래서 대웅제국의 중추역할을 하던 전뇌자가 지금은 그냥 일반 컴퓨터가 된 거다.”
“심각한 문제인가?”
“…대웅제국의 인적자원이 워낙 풍부하다보니 큰 문제까진 아니야. 전뇌자의 보조역할을 하던 슈퍼컴퓨터에 칩을 붙여서 임시가동중이다. 하지만 일루미나티와 최첨단 기술경쟁을 하는 입장에서는 인공지능 발전이 느려진다는 건 꽤 뼈아프지.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라도….”
“흐음. 왜 그런 일이….”
“…….”
천우진은 전자담배를 한 모금 물더니 말했다.
“백웅. 수련이 끝나는대로 제도(帝都)로 와라. 아무래도 전뇌자의 인공지능 문제는 네가 아니면 해결할 사람이 없는 문제일 것 같으니까.”
“엉? 내가 고장냈다는 거냐?”
“뭔가 인과관계가 있는 건 틀림없지. 꼭 와라.”
“야, 내가 뭘 했다고….”
파앗!
천우진은 대답도 하지 않고 축지법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투덜거렸다.
“참나. 지 할말만 하고 가는 꼬라지 보게.”
나는 다시 수련을 계속했다.
선검술 수련으로 하루에 일천 번씩 원을 그리는 수련을 하고 천랑뇌신결을 수련하길 반복했고, 주현성의 성장을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설표 또한 절대지경의 가르침을 얻기를 원했기 때문에 종종 그와 대련하면서 무공지도를 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세 달 정도가 흘렀다.
보패가 또 쌓여서 이제는 다섯 개나 가지게 되었다.
“…….”
이게 뭐야…
대체 뭐냐고….
“아무것도 얻는 게 없잖아!!”
콰아아아
나는 절벽에서 명상을 위해 폭포수를 맞고 있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
선검술을 수련한지 벌써 넉 달이 지난 상황! 그러나 매일같이 선검으로 원을 그리고 있어도 뭔가 나아지는 기색은 없었고 그냥 매일 원만 그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설표와 주현성의 무공은 크게 진일보해서, 주현성은 이제 초절정에 발을 들인 애송이 수준이 아니라 제법 숙련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제자리에 멈춰있는 건 나뿐이었다.
이게 대체 뭐지?
혹시 내가 원을 그리는 숫자가 적어서 그런가 싶어서 도중에 원 그리는 횟수를 천 번에서 2천번, 3천번, 4천번으로 계속 늘려서 1만번씩 그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원을 그려도 별달리 나아지는 건 없었고 깨달음이나 적공(積功)은 하나도 없었다.
지옥수련과는 다른 의미에서 초조함과 허탈감이 내 마음속을 채웠다. 차라리 지옥수련이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이겨내며 조금씩 성취가 쌓이는 걸 느낄텐데, 이건 아무리 수련해봤자 성취가 없지 않은가! 마치 첫번째 삶에서 기약없이 육합검법을 휘두를 때같은 기분이 들자 초조해진 것이다.
“오시오, 여동빈!”
나는 결국 잠시 후 여동빈을 불렀다.
[불렀는가, 연자여.]
“정말 선검술의 수련을 이렇게 하는 게 맞소?!”
[……?]
나는 여동빈에게 선검을 소환해서 보여주면서 지금까지 내가 했던 선검술의 수련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지금까지 선검으로 원을 그린 횟수만 치면 수십만 번은 될 거요! 그런데도 인과율이 쌓이거나 선검에 날이 서는 건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단 말이오!”
내가 외치자 여동빈은 그 자리에 서서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럼 어디 내가 보는 앞에서 원을 그려보라.]
“좋소.”
우웅
나는 선검으로 원을 그렸다. 백 번을 훌쩍 넘겨서 계속 그렸고, 약 오백여 번째에 도달했을 때에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여동빈이 말했다.
[원을 그리고만 있을 뿐이군…. 횟수도 많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그건 수련이 아니다.]
“무슨 소리요?”
[그대는 원에서 이치를 깨달으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선검으로 원을 그리는 그 동작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자신의 신념을 말할 수가 있는가?]
“…그, 그런 말은 전혀 듣지 못했소만.”
[선검술을 알고 있는 건 아마 나 뿐…. 그대가 어디서 내 고유의 선검술 수련을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는 너무나 타인에게서 무예를 강습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구나. 굳이 이야기할 일도 아니라 이야기하지 않은 듯 하다.]
“…….”
[스스로 터득하여 숨겨진 뜻을 알아내려는 자율적 의지가 없었던 탓이다.]
그런 문제였냐?!
[연자여. 제대로 선검술을 수련할 의지가 있는 한 나는 그대에게 무론(武論)을 가르칠 의무가 있는 것이리라.]
“아니 암만 그래도 지금까지 삽질을 했다니 그런….”
[일단 앉아라.]
내가 여동빈과 마주 앉자, 여동빈이 말했다.
[연자여. 혹시 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들은 적이 있는가?]
나는 기억을 더듬어서 여동빈의 말에 대답했다.
“음…. 딱히 들은 적 없는 것 같소. 원의 이치가 뭔지는 알아서 터득해야 한다고….”
[그 말대로다. 스스로 원의 이치를 터득해야 한다. 그러나 그대는 재능이 없어보이는데다 타인의 가르침을 받는데 너무 익숙해 보이니…. 종말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그대에게 깨달음을 주는 게 옳으리라.]
그렇게 말한 여동빈이 말을 이었다.
[원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둥근 거요.”
[둥글다는 특징이 어째서 인과율과 관계가 있겠는가. 둥글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이 핵심이다.]
“……?”
[이 정도면 아주 큰 단서를 주었다.]
엉? 뭔 상관이지?
어쩌라는 말이지?
나는 잠시동안 끙끙대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둥근 게 뭔 의미지?
머리가 붕 뜬 느낌에 내가 잠자코 있자 여동빈이 말했다.
[말로 다 해주면 그대가 깨닫는 성취가 적을 터. 방금 내가 던진 화두를 자나깨나 생각하며 원을 그리는 수련을 계속하라. 생각하면서 검을 휘두르란 소리다.]
“아하!”
[그러다보면 원과 인과율의 관계를 스스로 알 수 있게 되리라.]
“근데 그냥 지금 말로 해 주면 안되오?”
[이성적으로 따지면 간단한 이치지. 누구나 적당히 알아들을만큼 쉽다. 그러나, 그 이치를 자신의 무(武)로 체화(體化)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책으로 이치를 통달했다 여기는 문사와 논객들이 꼭 무예의 천재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원리….]
여동빈의 눈빛이 일순간 빛났다.
[백웅이여. 그대는 해신에게조차 맞설 정도의 용기를 지닌 절대지경의 고수. 지금부터는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받아먹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근성과 육감을 동원하여 험난한 앞길을 개척해야 한다. 그 길은 도리어 지옥수련보다 험난할 테지만, 본디 절대지경을 넘어서서 올라간다는 건 그런 것.]
“으음….”
[모든 절대지경의 고수들은 자신만의 최강, 전대미문(前代未聞)을 다루게끔 되어있는 것. 그대가 택한 무(武)의 길을 헤쳐나가는 건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고독하고 고된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마음가짐부터 올바로 해야하리라.]
나는 뭔가 여동빈의 말을 알 것 같았다.
‘스승 없이 나 스스로 깨달아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는 건가….’
어렴풋이 감은 잡힌다. 아직도 새로운 절세무공을 접하면 익히기가 버겁고 힘들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의념천주를 이용해서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새로운 초식을 시험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건 재능과는 관계없는 일로써 세상에 미치는 내 의념과 상상력이 전에 없었던 걸 창조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 창조적인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나는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힘을 손에 얻을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여동빈이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다.]
“잠깐! 물어볼 게 있소.”
[무엇인가?]
나는 주저하다가 지금까지 제일 불안했던 걸 질문했다.
“나는 재능이 없었지만 어떻게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절대지경에 이르렀소. 아주 오래 걸렸지. 그렇다면 이렇듯 재능없는 내가… 과연 신역(神域)에 이를 수 있겠소?”
알고 싶다.
과연 내가 신역절기를 얻을 수 있을지.
그 말에 여동빈은 간단하게 대꾸했다.
[백웅이여. 신에게는 재능이 얼마나 있나?]
“……?”
[이만 가겠다. 나 또한 수련할 게 많으니.]
파앗!
여동빈이 사라졌다. 나는 그가 사라진 곳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젠장. 쉬운 길은 없단 소리겠군.”
여동빈이 했던 말 중에서 제대로 이해가 가는 게 없다. 붕 뜬 듯한 선문답만 몇 차례고 반복한 것 같은 기분이다. 원이 어쨌다는 건지….
그렇지만 왠지 막혔던 길이 뚫리고 개운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정향의 인과율이 방금 전에 관여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여동빈이 유달리 친절했던 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징징대기는 이르다.
일단은 할만큼 수련을 해 보고 나서 얘기하자!
나는 그렇게 두 달을 더 수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 때쯤, 류하가 수련장으로 찾아왔다.
“폐하~~ 사공린 폐하의 호출입니다.”
“무슨 일이냐?”
“핵전쟁이 났슴다~~.”
“…….”
뭔 소리여?
파앗!!
나는 일단 주현성, 초무린과 함께 류하의 소형 전이문을 이용해서 본궁으로 향했다. 그러자 사공린이 밀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왔군요, 백웅.”
“핵전쟁이라니 무슨 말이지?”
사공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전쟁이 난 것은 20분 45초 전. 일루미나티가 조종하는 제 3세계 괴뢰정부 6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핵미사일 145개를 대웅제국을 향해서 발사했습니다. 공식적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된 핵전쟁이라 꽤 골치아프군요….”
“…일루미나티가 대웅제국을 친 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수련장 근처에 핵이 날아오거나 대피하는 기색은 없었는데.”
그 말에 사공린의 옆에 서 있던 사마령 교수가 대신 대답했다.
“천우진 님께서 펼친 환술결계가 대부분의 핵미사일을 소멸시켰습니다. 본국에는 타격이 전무하며, 핵이 떨어진 장소 또한 원상복구되었습니다.”
“…….”
“현자의 돌을 이용해서 힘을 증폭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본토 이외의 장소에 몇 발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와…. 대단하군.
“지금 천우진은?”
“힘을 많이 소모하셔서 쉬고 계십니다.”
“그렇군.”
내가 내심 천우진의 환술에 감탄하고 있을 때 사공린이 말했다.
“백웅. 일루미나티가 지금 대웅제국에 도전한 까닭은 은하부족연맹과 약속한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외계의 지원이 시작되면 대웅제국을 이길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전면전을 걸어온 듯 하군요.”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흠…. 그럼 나를 부른 이유는 뭐지?”
“마무리를 도와주십시오. 일루미나티 그림자정부의 지배자인 렙틸리언 로드(Reptilian Lord)의 거처를 알아냈습니다.”
사공린이 손을 천천히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8인의 전술무력요원들이 모두 앞으로 걸어나왔다. 주현성과 류하가 합류하자 10명이 모두 갖춰졌다.
그녀가 말했다.
“조사한 결과 놈들의 본거지는 달의 뒷편입니다.”
“흠….”
“이 전쟁을 빨리 끝내게 도와주십시오.”
나는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자!”
내 면상에서 핵을 터뜨리고 수요를 뺏으려고 했던 개같은 놈의 목을 벨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