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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3921983개? 뭐가 그렇게 많아?!
나는 390만개 이상의 역근세수경이 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전국옥새에게 반문했다.
“제대로 찾은 거 맞아? 그것들 전부 진본이 맞냐고.”
[진위여부는 현재 검색상태로는 알 수 없습니다.]
“…일단 그 중에서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는 걸 내게 보여줘.”
위잉
잠시 후 전국옥새가 환영을 눈 앞에 떠올렸다. 그리고 그 환영은 책이 아니라 뜻밖에도 웬 조그마한 그림이었다. 나는 마치 필기장처럼 생긴 그 조그마한 그림을 꿈벅이며 보다가 말했다.
“이게 무슨 역근세수경이야?”
[삶에_지친_현대인의_위대한_마음수련_역근세수경.tyt 입니다.]
“…….”
나는 그 순간 사마령에게서 배운 현대사회의 지식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이거 컴퓨터의 문서 파일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너는 역근세수경이란 글자가 들어가있는 파일을 전부 찾아낸 거고.”
[그렇습니다.]
“끄어어어….”
나는 한탄스러워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제기랄….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역근세수경이라는 이름의 모든 파일을 찾았구나…. 그러니까 390만개가 넘는 거잖아….’
상황은 이해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지만 이런 식이면 한도 끝도 없다는 걸 알아챘다. 390만개가 넘는 파일을 언제 다 열어보고 앉아있겠는가? 게다가 이 안에 진짜 역근세수경이 있을 확률은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확률이었다.
“파일 열어봐.”
[알겠습니다.]
나는 일단 속는 셈 치고 역근세수경 파일을 열어보았다.
우우웅
“…….”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현대인에게 좋은 선단(仙丹) 수련의 기초가 수록되어 있고 간단한 내공호흡법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뭔지 모를 글쓴이의 기이한 수양담이 기록되어 있었고 사천절벽에서 10일동안 단식하다가 폭포로 뛰어들었느니, 위대한 존재를 만나서 중생의 계도하느니 하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중후반부에는 정체모를 불경이 쓰여있었다.
‘아니 그래서 어쩌라고….’
보나마나 사이비 내공수련자가 분명하다. 내공수련 경력만 백 년이 넘고 내공만으로 대지에 지진을 일으키고 용맥을 꿈틀거리게 할 수 있는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코웃음만 나왔다. 시간만 버린 셈이었다.
이거 어떻게 하지?
이러면 역근세수경은 포기해야 하나….
내가 한숨을 푹푹 쉬며 머리를 부여잡고 있자 초무린이 옆에서 물었다.
“지금 뭘 하나?”
지금은 영체에서 현신상태로 돌아와서인지 육성이 들려왔다. 나는 인간형태를 한 초무린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역근세수경을 찾으려는데 392만개나 있다 하오, 제기랄.”
“왜 그렇게 많은 거지?”
“인터넷 파일이라서….”
“그게 뭐지?”
나는 상황을 초무린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초무린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그 전국옥새에 검색조건을 따로 걸면 될 것 아닌가. 1천년 전에 만들어진 역근세수경이라는 조건을 붙이면 되겠지.”
“아!”
“…이게 놀랄 일인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초무린은 내가 깜짝 놀라자 되려 어리둥절해하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전국옥새에 말했다.
“전국옥새! 검색조건에 1천년 이전에 만들어진 역근세수경이라는 조건을 붙인다!”
[조건을 반영한 결과에 따르면 역근세수경의 검색결과는 0건입니다.]
“뭣? 없다는 거냐?!”
왜 없지?
내가 당황하자 옆에서 보고 있던 초무린이 말했다.
“책이 만들어진지 일천사백여 년이 지났다면 정말 긴 시간이다. 일개 서책이라면 진작에 소실되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보통 서책은 오백 년도 보존되기 힘들다.”
“음…. 그건 그렇소만.”
“그 옥새는 392만 개의 가짜 ‘역근세수경’ 중에 진본의 내용이 함양되어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는 건가?”
“음? 무슨 말이오?”
“그러니까, 진본의 내용이 필사(筆寫)되어 그 중 어딘가에 있을수도 있잖나. 진본에 수록된 내용을 누군가가 옮겨 적었을 수도 있겠지.”
“아하!”
내가 깨달은 표정을 짓자 초무린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날 경계해서 일부러 멍청한 척 하는 게 아니었단 건가?”
초무린은 이윽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후우…. 뇌신류 종사가 왜 이리 범부(凡夫)만도 못해보인단 말인가. 분명 그 자리는 날고기는 뇌신류의 천재들을 모두 제압한 천하제일인의 자리일 텐데.”
“…….”
의욕없는 초무린에게도 그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올 정도란 말인가?
나는 움찔한 후 전국옥새에게 초무린이 말했던 내용을 다시 질문했다. 그러자 전국옥새가 대답했다.
[진본의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사성으로 종류를 묶을 수가 있습니다.]
“비슷한 내용인 것끼리 묶는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90퍼센트 이상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면 한 묶음으로 만들겠습니다.]
“퍼센트? 현대용어일텐데 너도 알고 있어?”
그러자 전국옥새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저는 검색을 실시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세계의 정보를 흡수합니다. 이 시대에는 이미 적응이 다 되었습니다.]
“흠, 그렇군. 그럼 자료를 묶어 줘.”
우웅
이윽고 전국옥새가 유사성으로 분류하자 총 70여 개의 분류로 나뉘었다.
‘어라? 의외로 숫자가 적네.’
390만개나 되면 엄청나게 숫자가 많을 걸 각오하고 있었는데 수가 적었다. 나는 그 이유를 살펴보았는데 이윽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나의 분류에 무려 290만 개 이상의 파일이 몰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분류는 방금 전에 보았던 삶에_지친_현대인의_위대한_마음수련_역근세수경.tyt이었다.
“…….”
음…. 이해가 안 가는군. 하나의 파일을 뭐하러 이렇게 많이 분산해서들 갖고 있는지 모르겠어. 이 내용이 인기가 있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주현성에게 돌아가서 상담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주현성이 말했다.
“그 말씀대로라면 역근세수경은 반드시 찾아야겠군요. 그건 저희 전술무력요원의 일은 아니고 만화령에서 담당할 일일테니 사마령 교수를 찾아가 보십시오.”
“알았어.”
“사마령이라면 어떻게든 해 줄 겁니다.”
파앗
나는 사마령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사마령이 말했다.
“그 검색결과를 저에게도 보여주실 수 있겠나요?”
나는 전국옥새에게 명령해서 사마령에게도 검색실을 공유시켰다.
“아아. 이것이 바로 그 전설의 옥새….”
사마령은 전국옥새의 공간에 들어오자 놀라워하다가 이윽고 무언가 검색을 새로이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참 후에 말했다.
“어느 정도 특정이 되었군요. 후보군을 추려서 저희 만화령에서 조사해놓겠습니다. 대웅제국 전뇌부대(電腦部隊)를 운용하면 길어도 석 달 내에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부탁해.”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시길…. 제가 검색을 해 보니 아무래도 이 시대에 진짜 역근세수경은 없을 듯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역근세수경의 위력이 말씀하시는 수준이라면 책 자체에 현기(玄機)가 스며있을 것입니다. 그 현기가 텍스트파일이나 다른 매체로 전달될 때 유지될지는…. 아주 희박한 확률이겠죠.”
“…….”
현기라.
‘흠. 뭔가 아리송하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사마령에게 말했다.
“애초에 역근세수경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흔해진 이유가 뭐지? 짐작가는 게 있나?”
“그야 고대부터 이어진 무림문파들이 현대에 와서 호위업계나 각종 상권에 진출하면서 공공연히 활동하게 되었기에 정도무림문파의 이름이나 무공이 일반인에게도 친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무림이란 세계는 더 이상 감춰진 세계가 아니죠. 게다가 소림사에서 미합중국과 제휴해서 촬영한 몇 편의 무협영화가 대박을 냈는데 주요소재가 역근세수경이었던 것 같군요.”
“…….”
사마령이 안경을 살짝 올리며 눈을 빛냈다.
“영화 제목은 <무적! 백팔나한부대>입니다. 감독은 롱테이크 액션의 달인이라 불리는 짐 클로렌스. 재밌으니까 한 번 보셔도 될 것 같군요. 대웅제국에서만 2억 관객을 동원한 대작입니다.”
“아니… 그다지….”
“속편도 제작되었습니다. 대웅제국의 명으로 백팔나한진을 익힌 낙양대학생들이 달에서 토끼요괴들과 싸우는 내용인데….”
“그 영화가 너희 낙양대학이랑 제휴한 거였냐?!”
“…어, 꼭 그래서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여하튼 보십시오.”
나는 왠지 설득력이 없어보이는 사마령의 말을 귓가로 흘리며 생각했다.
‘좀 더 찾아봐야겠지만…. 아무래도 죽어서 전생하게 되면 그 시점에서부터 찾아봐야 할 것 같군.’
아무래도 역근세수경을 찾으려면 시간제한이 있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이런 500년 후의 미래에서 찾으면 시덥잖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으며 진본은 이미 소실된 후라는 뜻이리라.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승산은 희박하다. 그래도 어째서일까? 이 작업에도 왠지 나름대로의 결과물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역근세수경의 탐색을 끝내고 이설표와 주현성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말했다.
“수련을 재개하지.”
이제 남은 건 만화령이나 대웅제국에서 다 해주리라. 지금 내가 해야할 건 구궁파천뢰를 습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련을 재개한지 약 칠주야 후, 옆에서 내 수련을 지켜보고 있던 초무린이 문득 입을 열었다.
“이상하군.”
주현성과 같이 팔황경천신공과 무환천랑백팔식을 다듬고 있던 나는 초무린을 돌아보았다. 구궁파천뢰는 연결식이기에 매번 수련하기보다는 기본기부터 다지는 편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오?”
“백웅. 너는 내면에 무언가 기이한 검(劍)을 지니고 있군. 그 검은 대체 무엇이냐.”
“…검이라고?”
“수련을 보고 있자니 네가 큰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기(氣)가 검의 형태로 응결되는게 간혹 보이는구나.”
무슨 소리지?
나는 초무린의 말에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래서 곧장 한쪽 손에 선검(仙劍)을 소환했다.
“이걸 말하는 것인가?”
초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선검술을 익혔나 보군. 여동빈에게 배운 건가?”
“…뭐 그랬을 수도 있고. 아무튼 선검이 수련하면서 거슬렸던 건가.”
“…….”
내가 말을 얼버무리자 초무린이 물끄러미 선검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제 내 무공수련은 관두고 선검술을 수련하는 건 어떻겠나, 백웅.”
“……? 무슨 뜻이오?”
“무슨 뜻이고 어쩌고가 아니라 말 그대로다만.”
“아직 팔황경천신공을 비롯해서 기술을 완전히 다 못 배운데다가 구궁파천뢰의 연계도 못 배웠소. 이 상황에서 다른 무예를 익히라는 게 말이 되는….”
내 항변에 초무린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차피 넌 재능이 없어서 무의미하잖나. 이대로 십 년을 수련해도 의미없는 반복수련 밖에 되지 않을 텐데 초식만 다 외웠다면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길 권하는 거다.”
“……!!”
아, 아닛 이 새끼가?!
열심히 감추고 있었는데!!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같이 수련하던 주현성이 초무린의 말을 들은 후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이설표는 지금 근처 폭포에서 내공을 수련하는 중이라 여기에 없었다.
주현성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씩 웃었다. 그리고는 초무린에게 말했다.
“하핫, 착각하셨군요 초대종사여!”
“뭐가 착각이란 거지?”
“백웅 종사께서는 그저 재능이 없는 척 하면서 저를 단련시켜주고 계신….”
나는 그 순간 마치 죽기 직전의 주마등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현성과 이설표가 나란히 경악과 경멸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듯한 환상을 느꼈고,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안 돼!!’
목숨 걸고 막자!
절대지경(絶對之境)
의념천주(意念天柱)
뒷목치기!
‘기절해라 주현성!!’
나는 급히 멸혼보의 극성으로 달려들어서 주현성의 뒷목 혈도를 쳐서 기절시켰다. 내 모든 무공을 발휘한 필생의 절학이었다.
뻐억!!
내 수도(手刀)에 주현성의 두개골이 흔들리는 감촉이 느껴진다.
“……?”
풀썩
주현성은 웃는 낯으로 기절했고 초무린은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주현성을 질질 끌고 가서 바위에 기대어 놓고는 초무린에게 말했다.
“내 재능이 없다는 걸 어떻게 눈치챈 거요?”
“설마 투선인 내 눈에 칠 주야 내내 수련장면을 보여주고도 안 들킬 거라 생각했나? 너무 과한 기대를 하는군.”
“젠장… 맞소. 나 재능 없소. 근데 선검술을 수련하면 그게 좀 나아질 수도 있다 그건가.”
“…….”
나를 잠시 어이없단 눈으로 쳐다보던 초무린이 말했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넌 원래 무림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수준의 재능같군. 도대체 무슨 수로 절대지경까지 오른 것이냐. 초식의 이해도 응용력 오성 모두가 처참하니 절세무공을 오래 파봤자 무슨 소용이냔 의미로 한 말이었다.”
“…끄응. 수십 년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군. 하지만 나는 그런다고 포기하지 않소.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 시도해 볼 뿐.”
나는 귀를 후비적 파면서 초무린에게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선검술을 판다고 구궁파천뢰 수련을 포기할 순 없소.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사록(四綠)까지는 어찌어찌 전개가 가능하지만 육백(六白) 이후에는 갑자기 뇌혼을 둘로 나눈다는 구절이 있지 않소.”
“있지.”
“그 구절대로라면 내가 이대로 천랑뇌신결을 수련하는 것만으로는 육백 이상은 연계를 할 수 없다는 뜻이겠지. 이설표에게 물어봐도 자신이 육백 이후를 연계할 수 없으니 의미를 알 수 없다고 하고.”
“그렇다.”
“정 그렇다면 구궁파천뢰를 창시한 당사자로서 그 구절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해 주시오. 그 설명이라도 들어야하겠소.”
그러자 초무린이 냉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구절은 어려운 의미가 없다. 그냥 육백 이후부터는 뇌혼의 소모가 열 곱절씩 높아진다는 뜻일 뿐이다. 그 말도 안되는 소모를 버티기 위해서 뇌혼을 흘리는 출구를 두 개로 늘리는 것이다.”
“열 곱절?!”
“말 그대로 뇌신지혼(雷神之魂) 수준의 무한한 뇌정을 품지 않는다면 전개가 불가능하단 뜻에 불과하다. 이걸로 설명은 끝이다.”
“…….”
도대체 천랑뇌신결을 수련해서 뇌정을 만드는 작업을 얼마나 반복해야 그만한 양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마치 밥그릇에 물을 받아서 동정호를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기에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초무린에게 말했다.
“도대체 구궁파천뢰의 구자(九紫)까지 펼치면 어떤 위력이 나는 것이오?”
“글쎄. 그런 걸 생각하고 만들진 않았다. 애시당초 천랑뇌신결 자체가 무림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발상인지라.”
“…….”
“잡설이 길었던 것 같군. 아무튼 매일 천랑뇌신결이나 연마하면서 선검술수련을 해라. 더 이상 네가 뇌신류 무공의 형태를 연마해봐야 의미가 없어보인다.”
초무린의 조언은 진실성이 있어보였다.
“귀한 조언 감사히 받겠소.”
“그럼 나는 잠시 이 시대의 산천초목을 구경하러 하겠다.”
“……?! 또 어딜 간다는 거요.”
“어차피 구궁파천뢰가 당장 간절한 건 아니니 내가 꼭 필요하진 않잖은가. 그리고….”
초무린은 역정을 억지로 눌러참는 표정으로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네 재능없는 꼴을 보니 아무리 세상사 귀찮다 생각하는 나라도 복장이 터지는구나. 네가 절대지경이 아니었다면 이 짜증을 눌러 참지 못했으리라. 주현성의 재능도 딱히 내 눈에 차진 않거늘.”
“…….”
“마음의 평안을 찾으러 가겠다. 날 찾지 마라.”
휘익!!
초무린은 그대로 영체로 변해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차라리 없는 게 도와주는 거겠지….”
잠시 후 주현성이 기절에서 깨어났다. 그는 머리가 아픈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으으으…. 폐하. 제가 어째서 기절을.”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현성을 보며 말했다.
“초무린 그 싸가지 없는 새끼가 자네를 갑자기 공격했었네…. 자네를 구하려다보니 부득이하게 기절시켜 버렸던 걸세.”
주현성은 깜짝 놀랐다.
“아니…!! 투선이 저를 공격했단 말입니까? 대체 왜.”
“내가 알 바인가? 맨날 어디서 발리고와서 나한테 찡찡대던 것부터 맘에 안들었네. 자기도 별거 없으면서 후대 종사한테 지랄하다보니 마기가 골수에 맺혔겠지.”
“…….”
“아무튼 변덕스러운 선조님이야.”
초무린이 이 자리에 없는 김에 짜증났던 점을 대충 털어놓자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으음…. 그렇습니까….”
“아무튼 나는 오늘부터는 천랑뇌신결의 수련에만 집중하고 형(形)의 수련은 벗어나겠네. 그리고 선검술을 수련할 생각이야.”
“앗, 알겠습니다.”
그때쯤 먼 발치에서 이설표가 내공수련을 끝내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이설표에게도 내가 선검술의 수련으로 전환하기로 했다는 말을 했고, 이설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종사의 뜻대로….”
“나 대신 주현성의 수련을 많이 봐줘.”
“알겠소.”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선검술을 제대로 수련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건가.
천랑뇌신결과 선검술을 상승의 경지로 연마해서 다가올 이 시대의 종말에 대처할 힘을 키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