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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그는 줄곧 스승의 말을 의식하고 있었다.
‘너희 투선들이 지상의 절대지경보다 강하다고?’
초무린은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려는 마음이 든 것이다.
칠십 년 동안 지상의 절대강자로 군림해 왔던 초무린의 자존심이자 오기였다.
쉬쉬쉬쉭!!
초무린의 뇌신편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 했다. 그의 투기가 치솟아 오르자 이랑진군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투선이 되는 걸 거부하는 것인가.]
“거부까진 아니고, 당신이 나보다 강하다면 승복하고 기꺼이 투선이 되어주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천계의 이랑진군은 여기서 죽을 것이다.”
[좋다. 패기 넘치는 신인(新人)이군….]
초무린의 말을 이해한 이랑진군이 늘어뜨린 삼첨창을 서서히 들어올리며 말했다.
[인간이여.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깨닫거라.]
“어디 깨닫게 해 봐라!”
팔황천마(八荒天魔)와 함께 초무린의 뇌신편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뇌신편이 삼첨창을 휙하고 감는 순간, 이랑진군의 눈에 새하얀 영기가 흘렀다.
부웅
삼첨창은 도리어 더욱 빠른 속도로 역으로 초무린을 찔렀다. 초무린은 이런 대응은 강호에 몸담은지 칠십 년이 지났는데도 처음 보았기에 동귀어진보다는 일단 피하는 걸 택했다.
뻐억!
“큭.”
이상한 일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분명 피했다 생각했는데도 이랑진군의 삼첨창이 튕겨낸 압력이 초무린의 호신강기를 두들긴 것이다. 그리고 그 잠재력이 초무린의 호신강기를 몇 배나 뛰어넘었기에 초무린은 금세 입가에서 피를 주륵하고 흘렸다.
‘후…. 뭐냐 이건….’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랑진군이 삼첨창으로 기본자세를 취하며 중얼거렸다.
[손이 조금 풀리는군.]
퍼버벅!!
쿠웅
“…….”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초무린은 숨을 몰아쉬었다.
정확히 삼백 초(招)였다.
투선 이랑진군과 격돌한지 삼백 초만에 초무린은 박살나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뇌신류의 옥좌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랑진군에게 갈비뼈가 모조리 박살나 버렸기에 그는 피가 섞인 기침을 쿨럭거렸다.
“컥, 커헉… 이… 이런 놈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초무린은 필생의 무공을 다했으나 이랑진군은 그를 한참 넘어서 있었다. 모든 움직임과 힘, 속도가 초무린보다 현격히 앞서있었으며 전투경험이나 무기술 또한 이랑진군이 줄곧 초무린을 압도한 것이다. 이랑진군은 법술조차 쓸 수 있었는데 정작 초무린을 상대할 때는 그 법술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천외천(天外天)!
초무린은 그 말을 여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저 고대의 무술 중 일부일 뿐, 제대로 된 형태로 무공이 정립되어 있지는 않으나 이랑진군은 엄청나게 강했다. 단순한 육체능력도 초무린을 몇 배나 앞섰으며 수를 읽는 능력은 더욱 뛰어났다.
저 무시무시한 삼첨창이 뇌신편을 찢어버린 게 도대체 몇 번이었던가. 결국 초무린은 임시방편으로 의념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스승인 호월 이래로 이렇게 깨져본 일이 없었던 초무린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랑진군이 말했다.
[인간치고는 제법이구나. 내가 나름대로 전력을 다하게 만들다니.]
“…제법…? 흐… 흐흐.”
[투선에 들어올 자격은 충분하다.]
이랑진군의 말이 오만하다고 느꼈지만 초무린은 그 말에 반발하지도 못하고 그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차이가 크다.
초무린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랑진군에게 말했다.
“투선이란 자들은… 모두… 당신처럼… 강한가…?”
초무린의 질문에 이랑진군이 대꾸했다.
[현재로서는 내가 투선 중의 필두. 그러나 진실로 강함만을 따진다면 나와 버금가는 이가 몇몇 있다. 나타태자나 예 같은 존재들. 그 외에는 다들 그대와 비슷하거나 좀 더 약하겠군…. 천장(天將) 출신으로 임시로 투선직을 맡은 이들도 있으니.]
“…….”
[하지만 모르겠군. 왠지 가면 갈수록 터무니없이 강한 자들이 등장할 것 같은 무인(武人)의 예감이 드는구나.]
“…겠어.”
[음?]
초무린은 히죽 웃었다.
“투선, 하겠어.”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권태를 극복할 때가 된 것이다.
이후 우화등선(羽化登仙)으로 천계에 초무린은 생전의 무기인 뇌신편을 보패인 뇌성편(雷星鞭)으로 개조받았고, 정식으로 투선에 임명되었다. 초무린은 또한 천계 내에서 고대의 무술비급을 얼마든지 보고 수련 할 수 있었으며 나름대로의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신선이라서 인간의 오감을 누리기 힘든 게 단점이었지만 애초에 감각에 그리 집착하지 않았기에 별 상관은 없었다.
초무린은 투선이 된 후 한동안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불멸체로써 천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영력(靈力)도 진보했기에 나날이 자신이 강해져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강해질 수 있다.
그 일념으로 초무린은 계속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최초로 회의감에 물들게 된 것은 바로 요괴왕(妖怪王)이 천계에 침입했던 그 날이었다.
[저 자를 막아라!!]
[옥황상제께 올라가게 해선 안 된다!]
모든 신선들이 달려들어서 요괴왕을 붙잡으려 했다. 천계의 미관말직에서부터 궁주급 대라신선에 이르기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요괴왕을 잡으려 한 것이다. 초무린은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지만, 이윽고 눈 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경악했다.
뻐어어어억!!
[크으윽….]
[새꺄, 꺼져! 너랑 놀아줄 시간 없어!]
요괴왕의 발차기 한 방에 턱을 얻어맞은 투선 이랑진군이 날아가서 비틀거리는 광경!
이랑진군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고 있던 초무린의 입장에서는 큰 충격이었다. 요괴왕은 원숭이 요괴였는데 구름을 타고 커다란 막대기를 휘두르면서 싸우는 중이었다. 이랑진군은 발차기에 맞은 충격이 컸는지 잠시 혼절해 있었다.
‘좋아! 저 원숭이를 잡으면 된다 이거지.’
하지만 충격도 잠시, 초무린은 호승심이 생겨서 요괴왕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초무린의 뇌성편을 마주친 원숭이 요괴왕은 귀찮다는 듯 귀를 후비적거리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이거나 먹어라! 눈알광선~!!]
콰과광!!
[으아아악.]
팔황천마를 펼친 게 무색하게 요괴왕의 눈에서 발사된 괴광선에 얻어맞은 초무린은 일격에 뻗어버리고 말았다.
[큭… 이대로는 안 끝나….]
그러나 명색이 뇌신류의 종사 출신. 근성을 발휘한 그는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서서 요괴왕을 추적해서 다시 한 번 덤벼들었지만, 요괴왕은 정말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귀밑의 털을 한움큼 뽑아서 뿌렸다.
퍼퍼펑
요괴왕과 똑같이 생긴 분신 3마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초무린의 채찍을 두 손가락으로 집고 있던 요괴왕이 초무린에게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 참 끈질기다. 약한 주제에.]
[…….]
[내 분신들이랑 놀고 있으라구. 난 옥황상제 패주러 왔으니까.]
[뭣….]
쾅!!
초무린이 뭐라 하기도 전에 요괴왕의 본체는 사라져 버렸고 그는 정신없이 요괴왕의 분신 3마리의 합공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초무린은 분신과 싸우면서 암울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분신 3마리일 뿐인데 초무린은 결코 쉽게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요괴왕이 일으킨 대란(大亂)은 끝났으며 요괴왕은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는 이름을 얻어 투선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초무린은 제천대성과 감히 맞닥뜨릴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일부러 천계의 변방을 지키는 임무에 자원했다.
같은 투선이라지만 그와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제천대성이 마음만 먹으면 초무린을 한 방에 죽일 수 있으리라.
우울해진 초무린은 쓸쓸한 천계의 변방에서 매일 지평선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어째서일까.
지상에서는 분명히 최강의 무림지존이었는데 천계에서는 이토록 약한 존재가 되었단 말인가….
실제로는 천계에서도 그리 약한 건 아니었다. 초무린보다 약한 신선은 분명히 많았으며 그의 능력은 투선이라 칭할 만 했다. 대라신선이라 해도 초무린을 쉽게 이길 순 없었다. 그러나 이랑진군이나 제천대성, 나타태자 등 신화시대급 괴물들에 비교하면 언제나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아! 내 선택이 잘못됐던 것인가….]
결국 그는 매일을 한탄으로 지새웠고, 그 한탄이 절정에 달한 것은 천계무련(天界武鍊)이었다.
키잉-
[…….]
삼일지투(三日之鬪)끝에 패배한 초무린은 자신을 이긴 승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초무린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던 검선(劍仙) 여동빈이 말했다.
[내가 이겼소.]
[여, 여동빈. 아까 그건 무엇이냐? 마지막의 그 기이한 검로(劍路)는….]
[…….]
여동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무린은 그 침묵에서 직감했다.
이것이다.
이제 갓 대라신선이 된 새파란 애송이인 여동빈이 수백 년 묵은 초무린과의 결전에서 결국 승기를 잡은 그 기이한 마지막 초식이자 검로- 그 무형의 검로는 분명히…!!
[그게, 신역절기인가?!]
[…….]
풀썩
초무린이 침묵하는 여동빈에게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
[제발 부탁한다!! 내게 신역절기를 알려다오!! 네가 하라는 건 뭐든 할 테니, 제발….]
웅성웅성
주변에서 천계무련을 관람하던 다른 신선들이 수군거리는 기색이었다. 초무린의 천계에서의 직급도 나름대로 높았는데 이제 갓 신선이 된 여동빈에게 무릎까지 꿇는 굴욕을 자처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동빈은 냉담하게 한 마디를 하고는 물러나 버렸다.
[당신은 무신을 만날 수 없소.]
[…아….]
무릎을 꿇은 초무린은 등을 돌리고 멀어져가는 여동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미친듯이 웃었다.
[흐, 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절망.
절망뿐이다.
그 날 이후로 모든 것에 의욕을 상실한 초무린은 천계에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천계의 외딴 변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천계무련에서 참석하라고 하길래 또 참석했지만, 초무린은 이번에는 정말로 새파란 후배인 무당의 장삼봉 진인에게 패배해 버리고 말았다. 장삼봉의 무쌍패에게 패배한 후 초무린은 심신이 고갈되어버렸고, 천계 심산유곡에 모옥을 짓고 매일 계곡이나 쳐다보고 살았다.
‘이대로 종말이 찾아오면 좋겠군.’
초무린은 은둔해서 웅크려앉은 채 계속 그런 생각만 했다.
그리고 모든 게 망하는 순간을 상상하며 히죽히죽 웃기도 했다.
그랬다.
초무린은 이미 끝났다.
* * *
“…….”
나는 초무린의 과거사를 들으며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뇌신류의 종사가 이렇게 까지 망가질 줄은.’
과거사를 들어보면 그의 정신과 자존심이 망가질 일만 계속된 셈이었다. 특히 천계에 올라간 뒤부터는 처참할 정도였고, 도리어 초무린이 아직 소멸 안하고 살아있는 게 신기한 수준이었다.
나는 초무린의 썩은 동태같은 눈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저런 인간한테 괜히 자존심 내세우지 않기를 잘했군…. 꼬우면 다 던져버릴 인간이야.’
내 예전 선택에 새삼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 초무린이 말했다.
[내 예전 일은 여기까지다. 백웅, 너는 정말로 인드라를 마주친 적이 없는가?]
“음, 확실히 없소. 내가 마주친 건 바람의 바유 뿐이오.”
[어쩌면 너는 운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
“운이 좋다고?”
[…….]
잠시 침묵하던 초무린이 말했다.
[인드라가 풀려나올 일이 없다면 되었다. 앞으로도 풀려나지 않기를 바라지.]
“궁금한 게 있소.”
[무엇인가?]
“당신이 인간세상에 소환되어서 팔황경천신공과 무환천랑백팔식을 전수했던 일…. 그리고 구궁파천뢰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소.”
[그런 건 수련하다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도 나는 시키길래 했던 것일 뿐 그 일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애착이 없다.]
“그럼 이번 일은 일단락 났구려.”
[그런 셈이지.]
나는 초무린을 수련장에 데려다놓고는 잠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전국옥새를 써서 명령했다.
“전국옥새여. 역근세수경을 찾아라.”
초무린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역근세수경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비급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넉넉하게 검색동력도 공급받는 김에 역근세수경을 찾아보는 게 나을것이다!
이윽고 전국옥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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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