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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그 순간, 초무린은 호월의 뒤편에 있던 신녀 아유타 공주가 눈을 뜨는 걸 보았다.
‘맹인이 아니었….’
하지만 그는 그만 숨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그녀의 눈이 은빛으로 빛나는 순간, 주변의 모든 백련이 만개(滿開)했고 눈앞의 모든 시야가 연꽃의 잎 한 장에 가려져버린 것이다. 자신이 환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초무린은 아무리 감각을 돋우어도 이걸 환상이라고 부정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이윽고 초무린은 자신이 연잎의 티끌보다도 조그마한 존재가 되었으며, 세상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대신기가 오연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허공에 신녀와 호월이 함께 떠올라서 사대신기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쿠구구구
술법에는 문외한인 초무린이었지만 두 사람이 거대한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약 한 식경이 지났을 때, 신녀 아유타 공주가 은안(銀眼)을 빛내며 말했다.
“…인드라의 봉인은 무리예요. 포기해야겠어요.”
호월은 명백히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정말인가? 이번이 아니면 더 이상 봉인할 기회는 없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초무린은 놀랐다.
‘스승님께서 굉장히 초조해하신다….’
신녀에게 반문하는 호월 교주의 말에서 명백한 초조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초무린이 호월의 제자가 된 이래로 십여년 이상 흘렀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호월이 초조해하거나 당황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호월은 말 그대로 천하무적이었으며 심지어 일국의 황제나 십만 대군 앞에서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런 호월이 봉인이 지지부진하다는 이유로 극심한 초조감을 드러내다니!
아유타 공주가 여전히 사대신기를 향해 손을 뻗은 채 말했다.
“세계로 세계를 덮어서 다른 3대신기의 정령들을 안정시키고 있지만 유독 인드라만은 순응하지 않고 계속 전투의지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도리어 다른 정령들을 끌어들여 봉인을 완전히 풀어버리려 시도하는 중입니다.”
“뭐? 끌어들인다고?”
“지금도 인드라는 활발하게 다른 정령들을 설득하고 있군요….”
호월은 황당해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나? 이 연꽃의 세계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스승님의 권능이다. 그 분이 수만 년에 걸쳐 봉인을 위해 적공(積功)한 권능의 크기는 고대신이라 해도 저항할 수 없을 텐데. 왜 그 놈만 날뛰는가?”
“…….”
아유타 공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언가…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적어도 저는 신안(神眼)으로 무수한 세계를 엿보는 동안 이런 존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로 바즈라 안에 들어있는 게 대지의 고대신이 맞습니까?”
“무슨 뜻이지?”
“사형도 느끼고 계시겠지만 이 힘의 속성은 우주의 토(土)가 절대로 아닙니다. 심지어 오행이 아닌 사상(四象)과 육합(六合)에도 존재하지 않는 힘의 운행. 보통 이런 경우 혼돈의 존재이며 머나먼 성좌의 힘을 머금고 있겠지만, 이 존재는 혼돈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성좌조차 아닌 것입니다.”
“…….”
“아무리 신안의 힘을 쓰더라도 바즈라 내면에 있는 인드라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한 봉인은 진행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억지로 해 보긴 했지만 역시 무리예요.”
“그 말은….”
“인정하기는 싫지만, 인드라의 힘은 스승님이 남긴 가호를 압도합니다. 이대로 진행할 경우 인드라가 풀려날 뿐입니다.”
호월은 이를 으득 하고 악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웃기는 소리! 그렇다면 내가 직접 사대신기 내부로 들어가겠다.”
“너무 위험합니다.”
“적어도 인드라가 다른 놈을 설득하는 것만은 막아야 해. 나를 들여보내라.”
“하지만 되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들이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였다.
츠아아아
초무린은 갑자기 바즈라의 안쪽에서 ‘무언가’가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 그 시선에 닿는 순간 전신이 찌릿하고 번개에 감전된 듯한 느낌에 몸을 떨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느끼고는 외쳤다.
“스승님! 바즈라가….”
그러자 호월은 한 손을 들어서 바즈라를 그대로 세게 쥐었다.
광룡파천황(狂龍破天荒)
무룡지완(武龍之腕)
콰지직!!
콰직!!
연속으로 뭔가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치 용의 팔처럼 변한 호월의 팔이 바즈라를 억눌렀다. 실시간으로 뼈와 근육이 부서지는 처참한 소리에 초무린은 그만 침을 꿀꺽 삼켰고, 호월은 강한 의지력으로 끔찍한 고통을 억누르면서 무서운 눈으로 바즈라를 쳐다보았다.
“팔부신중을 물리친 용형기(龍形氣)로도 안 된다고…? 네놈은 정말 대단한 괴물이구나.”
호월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럼 내 목숨을 걸어주마!”
광룡파천황(狂龍破天荒)
극성(極成)
쌍룡지완(雙龍之腕)
우드드득!!
호월의 양팔이 모두 용완처럼 변했고 비늘이 그의 몸을 감쌌다. 그 모습을 본 초무린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냈다.
“아앗! 스승님 그건 안 됩니다!”
절대지경 광룡파천황은 극예에 이를수록 미친 용의 힘에 침식당해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성질이 있었다. 그 인물의 인생과 철학을 담는 절대지경의 특성으로 볼 때 어떻게 해서 인간인 호월이 광룡파천황을 만들어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것은 광룡파천황이 절세마공(絶世魔功)이라고 불릴만 하다는 점이었다.
초무린은 예전에 호월이 광룡파천황을 다스리지 못해서 큰 참사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번만 더 광룡에 잡아먹히면 호월 스스로가 세계를 멸망시킬 재앙으로 화할지도 몰랐기에, 호월은 늘 자신의 진짜 힘을 끌어올리기를 주저했다.
‘스, 스승님이 이 자리에서 폭주하면, 백련교는 물론이고 감숙성이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종종 호월이 자신의 진신공력을 수련할 때 광룡의 힘 때문에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는 걸 봐 왔던 초무린은 이 상황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저 쌍완은 광룡이 그의 몸에 침범하는 걸 허용했다는 뜻이었으며, 호월이 의식의 통제력을 잃는 순간 악몽 같은 힘을 지닌 광룡이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파지지직
“헉, 허억….”
호월의 쌍완이 바즈라를 움켜잡고 있는 동안 호월은 극심한 갈증과 고통 때문에 헐떡이는 듯 했다. 그러다가 호월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의념천주를 모두 끌어 모아 절학을 시전 했다.
“하압!”
공간이 수축되었다. 의지의 고리가 쌍완을 통해 전달되며 바즈라에서 새어나오는 번개를 억눌렀다. 호월의 진신역량을 모두 동원한 최종절학이었기에 이대로 바즈라는 봉인되는 듯 했다.
파지지직! 파직!
그 순간, 바즈라에서 기묘한 형체가 환영처럼 드러났다. 그 존재는 눈이 아릴 정도의 번개로 이뤄져 있는 인형(人形)이었다. 그 뇌인(雷人)은 팔짱을 끼고 마치 품평을 하듯 호월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나를 방해하다니 죽어도 싸다.]
퍼버벅!
호월의 양쪽 팔이 수만 개의 번개화살에 꿰뚫렸고 그의 심장에 거대한 뇌전의 창이 내리꽂혔다. 시공간이 왜곡되었는지 호월조차도 무공으로 전혀 회피하거나 방어할 수 없었다. 호월은 피를 토하면서 눈이 시꺼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크하악…!! 안 돼, 광룡이….”
크르르….
비통하게 외친 호월의 몸이 본격적인 용으로 변화하려 했다. 사지가 모두 용으로 바뀌면서 등 뒤에 날개가 돋아나자 뇌인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주 좋아. 용을 찢어 죽이는 재미가 있겠군.]
“그렇게는 안 됩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신녀 아유타 공주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은안(銀眼)을 다시 떴다.
신안(神眼)
천망이세(天網䝯世)
촤라라락!!
신녀의 눈이 한 번 깜박이는 동안에 무수한 연꽃잎들이 흩날렸다. 그리고 연꽃잎은 난데없이 모든 이의 시야를 덮었고, 시야가 되돌아왔을 때는 갑작스럽게 호월의 몸이 원상복구 되어 있었다. 또한 그가 소모한 힘도 되돌아왔으며 상처조차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뇌인이 불쾌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공간 내에서는 세계를 덮어써서 마음대로 [작은 굴레]를 조작한다는 거냐? 신의 영역에 인간 따위가 감히….]
“…….”
[네게는 과분한 눈이구나. 뽑아가겠다.]
퍼벅!!
“흐윽.”
뇌인의 손이 사라졌다 싶었을 때 신녀의 두 눈이 뽑혔다.
[죽어라.]
그녀가 비명을 눌러 참자 뇌인은 이번에는 그녀에게 손가락을 향했고, 신녀는 곧장 허공에 들려지더니 뇌전에 감싸였다. 그리고 푸른 뇌전이 일렁이는 순간 파직 하고 전신이 터져버렸다.
퍼엉
신녀가 허망하게 죽었지만 옆에 있던 호월은 당황하지 않은 기색이었다. 도리어 뭔가를 기다리듯 침착하게 기다렸고, 이윽고 허무의 공간 속에서 신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신녀는 백련교의 기도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뽑혀나간 눈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
도리어 당황한 건 눈앞의 상황을 지켜보던 초무린이었다. 분명히 방금 전에 신녀가 뇌정에 휘말려서 참혹하게 살해당했는데 어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 돌아온다는 말인가? 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속으로 벌어지자 초무린은 넋이 나갈 지경이 되었으나, 이윽고 뇌인이 귀찮다는 듯 다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젠 평행세계를 조작해서 목숨을 불리고 있나. 필멸자들 치고는 제법 수준이 높군….]
“칭찬 고맙군.”
[처음부터 신과 싸울 생각이었나?]
“그렇다. 스승님의 생전부터 너희 같은 초월자와 싸워왔으니… 이런 장치가 없으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지.”
[웃기지 마라. 나는 너희 따위가 나를 억누르는 걸 참을 수 없다. 신기 따위에 감히 신을 가둘 수 있다 생각하는가?]
권태와 오만이 담긴 말투였다. 뇌인은 양 손에 뇌전을 일으켰다.
[나는 삼황오제도 두렵지 않다. 나는 섭리를 초월한 자이며 우주의 왕좌조차 제패할 뇌신(雷神)이다!]
콰르르릉!
콰르릉!!
“으아아악…!”
“아악!”
그 짧은 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방에 비명소리만 메아리친 가운데 초무린은 자신이 뇌력에 난도질당해서 처참하게 쓰러져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말도 안 돼….’
초절정 막바지에 이른 무공 따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뭔가 지나가니 이미 죽어있는 것이다. 팔다리가 나동그라진 채 벌레처럼 쓰러져있던 초무린은 이내 눈에서 빛이 사라져서 죽었으나 잠시 후 몸이 원상복구된 걸 알아차렸다.
‘신녀의 신안 덕분인가?’
그리고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또 다시 전광(電光) 수십만 발이 눈앞에 날아드는 걸 알아챘다. 피하거나 막을 방법은 없었다.
퍼버버벙!!
초무린은 또다시 즉사했다. 그는 곧장 되살아났지만, 이내 눈앞의 광경을 보자 알아차렸다.
쿠오오오-
반쯤 광룡(狂龍)으로 변한 자신의 스승이 정면으로 뇌신에게 달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광룡의 비늘은 광속의 공격조차도 튕겨내며 무시무시한 힘으로 뇌신을 찢어발기려 했으나, 뇌신에게는 그의 공격이 한 치도 먹히지 않았다.
피이잉-
쿠콰콰쾅
수억 개나 되는 전광이 잠깐 동안 비치는 것만으로도 이 연꽃의 세계가 멸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승의 뒤편에서는 신녀가 기도하는 자세로 연꽃에 감싸여 있었는데, 호월 교주가 뇌신의 힘에 죽을 때마다 눈을 감았다 뜨면서 그를 되살리는 중이었다.
우웅
광룡이 살아날 때마다 세계가 덧씌워지는 게 느껴진다! 초무린은 전투의 규모가 어마어마한지라 감히 저 싸움에 끼어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쿠콰콰쾅
“크악!”
또다시 날아든 수억 개의 전광 중 일부에 육편이 되어서 죽어나가던 초무린은 내심 절망했다.
‘괴…괴물들!’
광룡화한 지금의 호월은 초무린보다 수백 배 강한 존재였으나 뇌신은 호월보다 최소한 수십 배 강한 존재였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존재! 너무 아득한 전력 차 때문에 호월은 방어를 도외시하고 공격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공격이 먹힐 때까지 신녀가 호월을 되살리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천망이세로 세계가 덧씌워지면 자신까지 같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연꽃잎이 흩날린다. 신녀의 능력에도 점차 한계가 오는지 그녀는 눈, 코, 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그녀가 눈을 감았다 뜨는 동안에 계속해서 호월은 뇌신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마침내 호월이 삼 보 이내에 접근했을 때였다.
우오오오!!
[받아라!]
호월의 몸은 갑자기 거대한 혼돈을 흡수하는 듯하더니, 어둠의 구름 같은 고리가 그의 머리 뒤에 마치 후광(後光)처럼 떠올랐다. 마치 어둠의 미륵불 같은 형상으로 변한 호월은 용완(龍腕)을 크게 휘둘렀다.
절예(絶藝)
여의홍황(如意鴻荒)
쿠콰콰쾅
잠시 동안 번개의 광란이 멈추었다. 그리고 연기가 걷힌 자리에는 호월의 팔이 뇌신의 목을 거머쥐고 있었다.
호월은 용인(龍人)같은 형상이었다. 혼돈의 후광에 휩싸여있던 호월은 인간의 것이 아니게 된 성대를 움직였다.
[제발 얌전히 봉인되어다오, 뇌신이여! 필멸자에게 이 거리를 허용했다면, 우리의 부탁이 그대의 위격에 더 이상 실례될 일은 아닐 터.]
[…….]
[우리는 우리의 힘을 증명했다.]
[그렇다면야.]
슈르륵
뇌인의 형상을 하고 있던 뇌신은 잠시 후 그 형상을 번개의 구(球)처럼 바꾸었다. 힘을 증명했다는 말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듯 했다.
호월은 자신의 손을 거두었고 싸움은 일단락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뇌신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호월에게 말했다.
[의미 없는 짓. 이토록 신을 봉인하려 드는 이유가 무엇이냐?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 과분한 힘을 손에 얻어봤자 무의미하다.]
호월은 비틀거리고 있었으나 의지를 다해서 대꾸했다.
[그렇다. 인간은 신에 비하면 벌레 같은 존재…. 그러나 사대신기와 인과율이 이어져있는 자는 결코 벌레가 아닐 것이다. 그 자를 기다려달라는 말이다.]
[…….]
[그 존재는 사대신기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으리라.]
뇌신이 망설이다가 질문했다.
[…설마 너희는 그 인과율이 어디에 이어져있는지 알고 있느냐?]
[음…?]
호월은 뇌신의 말이 뜻밖인지 힐끔 신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녀가 눈을 감으며 뇌신의 말에 대답했다.
“뇌신 인드라여. 당신은 우주의 속성을 다루는 사대신이 아닙니까? 수십억 년의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할 터…. 그러나 마치 당신은 갓 태어난 것 같군요….”
[내 질문에 대답해라.]
“저희도 그 인과율이 어디로 이어져있는지는 모릅니다. 그걸 아는 건 외신(外神) 이상의 존재뿐이겠지요. 하지만 사대신기의 주인이 될 자는 분명히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호오…. 그런가….]
뇌신 인드라는 잠시 후 뇌전을 일렁이더니 말했다.
[좋다. 너희의 뜻대로 봉인되어 주지. 하지만.]
“하지만?”
인드라가 광대한 신력을 뿜어내며 으르렁거렸다.
[수천 년을 기다린 내 주인에게 그만한 자격이 없다면… 나는 그 놈을 불태워 죽여 버리겠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신기에서 빠져나가서 삼황오제도 [옛 지배자]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 뇌전에 무릎 꿇게 만들 것이다!!]
어마어마한 살기!
[좋소. 그럼 봉인하겠소.]
호월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기를 받아넘겼으나, 초무린은 인드라의 살기에 압도되어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가 절대지경 직전까지 무공을 단련하지 않았다면 살기만으로 전신이 오그라들어 죽었으리라. 그리고 절감하고 말았다.
‘한계다….’
지금 그가 보고들은 모든 것을 잊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런 존재들이 있다는 것 자체를 알고 싶지 않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존재들의 난투에 잠시 휘말린 것만으로도 그는 무인으로써 감당하기 힘든 절망에 휩싸여버린 것이다.
후우웅
호월은 용인의 형태를 끝내고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머리가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다가 말했다.
“…내게 한계가 가까워지겠구나.”
“스승님.”
“초무린. 무공에 용맹정진해라. 시간이 많이 없을 것이다.”
사대신기의 봉인이 끝난 후, 몇 년 동안 호월은 초무린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 덕에, 약관이던 초무린은 고작해야 오 년 만에 절대지경에 도달하게 되었다. 또한 그 때부터 자기만의 독문무공인 팔황경천신공(八荒驚天神功)과 무환천랑백팔식(霧幻天朗百八式)을 개발해내었다.
초무린은 절대지경에 이른 순간부터 자신이 백련교에서 스승 호월 이외의 모든 적수를 가볍게 꺾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당장 뇌신류를 출범시키고 싶었지만, 호월이 그를 만류했다.
“백련교의 팔대고수가 전부가 아니다. 그들의 뒤에 있는 흑무련주(黑武練主) 사망존자(死亡尊者) 서대력(西岱礫)을 정면에서 꺾기엔 아직 네 경지가 완전치 않다.”
초무린은 어리둥절했다.
“사망존자 서대력…. 전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자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내 무공을 미끼로 백련교에 천하의 무림세력을 난립하게 만들었을 때, 암중에서 팔대고수를 모조리 꺾고 비밀단체인 흑무련(黑武練)을 설립한 자다. 그 자 또한 절세도법(絶世刀法) 사망도(死亡刀)의 극성에 달한 절대지경의 고수이다.”
“……!! 그런 자가….”
“그를 꺾을 수 없다면 백련교를 네 뜻대로 이끄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는 내가 힘을 잃는 순간 백련교를 차지하고 천하의 지존이 될 생각으로 가득하니.”
“하지만 어찌 스승님이 그를 없애지 않으셨습니까? 그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데. 절대지경이라 해도 그는 스승님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겁니다.”
초무린의 의문에 호월이 말했다.
“내 힘은 이제 곧 인과율의 임계점에 도달한다. 갈수록 나는 세상에 정면으로 간섭하기 힘들어진다. 이 상황에서 내 강력함만 과시하게 되면 백련교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인과율이라니요?”
“인간세상에서 용납될 수 없는 힘은 곧이어 신선이 있는 천계와 강대한 신격에게 주목받게 된다. 지금까지는 애써 감춰왔지만… 뇌신 인드라를 봉인할 때 내 힘의 파장이 천지에 울려 퍼지고 말았지.”
“…….”
“그리고 나는 너라면 아무리 사망존자 서대력이라 해도 없앨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건 내가 너에게 내는 시험이다.”
“물론입니다.”
초무린은 마음속 한 켠에 석연치 않음을 품었지만 어쨌든 열심히 무공을 연마했다. 아무리 절대지경에 올랐다 해도 경지가 원숙에 이르는 것과 초입의 경지는 천지차이가 있었다. 스승이 걱정할 만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 년 후.
백련교에 정식으로 사대무류가 출범하며 초무린을 포함한 초대종사들이 백련교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초무린은 뇌신류를 정식으로 개파 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꾸리기 시작했고, 함께 호월의 가르침을 받은 나 다름없는 다른 사대무류의 동기들과 협력했다.
초무린은 오래지 않아서 스스로의 힘으로 사망존자 서대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암중에서 백련교 팔대고수를 규합했었고 호월이 힘을 잃을 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죽이러 가야겠다.’
초무린은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 생각했기에 사망존자 서대력을 치러 향했다. 그리고 사망존자 서대력의 본거지인 사망곡(死亡谷)에 도달했을 때, 그의 뇌신편(雷神鞭)은 무시무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시진 후.
“크헉…. 으으으.”
사망존자 서대력은 삼백 초 만에 패배해서 한쪽 팔을 잃고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의 자랑이던 사망도는 뇌신편에 부서져서 반 토막이 나 있었으며 내장이 채찍에 크게 꿰뚫린 자국이 있었다.
또한 서대력을 추종하던 구 백련교의 팔대고수라 불리는 초절정고수들 또한 초무린이 지나온 길에 처참한 시체가 되어 죽어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초무린의 뇌신편을 십 초 이상 감당하지 못했다.
초무린은 팔황천마(八荒天魔)의 최대경지를 보였는데도 자신의 팔에 스친 상처가 있다는 걸 깨닫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흠.”
같은 절대지경이라지만 초무린의 팔황천마는 서대력의 사망혈도(死亡血刀)를 가볍게 누를 수 있었다. 실력차가 큰데도 쉽게 쓰러뜨리지 못한 게 불만족스러웠다.
“크…크크…. 초무린이여. 만족스럽지 않아 보이는군….”
사망존자 서대력은 피를 토하며 웃었다. 초무린이 묵묵히 사망존자 서대력을 쳐다보자, 그는 초무린에게 말했다.
“역시 그랬어…. 내 도전은 무모했나…. 호월 교주는 신역(神域)에 도달했구나…. 크크크.”
“뭐?”
초무린은 그의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중원의 서쪽 무림을 사망혈도로 제패한 수준으로… 그에게 덤비려 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 제자조차도 이렇게 강하다니. 흐흐…. 일백 년, 무예에 바쳤던 평생이 허망하구나.”
덥썩!
초무린은 달려들어서 사망존자 서대력의 멱살을 잡았다.
“신역이 뭐지. 말해라.”
“……?”
사망존자 서대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광소를 터뜨렸다.
“크…크하하하!! 그랬구나…. 호월…. 자신의 제자조차 믿지 못한 거냐…. 절대자들 사이에서 전설로 떠도는 그 소문을… 알려주지 않았나….”
“뭐냔 말이다.”
“신역이란…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경지…. 혹은 신을 벨 수 있는 경지라 하더군…. 하지만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 저 고명한 천축의 수백 살 먹은 현자들조차도…. 실존하지 않는 괴담에 불과하다 했었다…. 나도 헛소문이라 생각했지.”
“…….”
“하지만 이십 년도 되지 않아서 너 같은 괴물을 키워낼 수 있다니…. 인간의 무공이 아니야…. 호월은 신역에 도달한 게 아니겠느냐, 크흐흐….”
“닥쳐라. 쓰레기!”
촤악!!
초무린은 단숨에 사망존자 서대력의 목을 베어버렸다. 사망존자라 불리며 중원의 서쪽에서 절대자로 군림하던 절대지경 고수의 허망한 최후였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닥치란 말이다.”
신살의 업이라는 건 설마 신역의 경지를 암시하는 말이었단 말인가?
그 순간 초무린의 마음속에는 비통함만이 몰아치고 있었다.
백련교의 무림지존.
뇌신류의 종사.
그 모든 것이 스승이 자기에게 그어놓은 한계이자 운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