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028화 (1,025/1,615)

1028====================

진공가향(眞空家鄕)

인드라?

나는 무슨 말인가 해서 초무린을 쳐다보았다.

“인드라가 뭔데 그러시오?”

[…사대신기의 소유주면서 인드라를 모르는가? 뇌전의 신기를 갖고있지 않은가.]

“그건 바즈라라고 하오만….”

[…….]

초무린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본질을 드러내지 않은 것인가? 사대신기의 봉인은 안전한 모양이군. 음….]

“사대신기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가 보군. 숨기지 말고 내게 다 말해주시오.”

[미안하다. 외인이 있는 상태에서는 알려줄 수 없다.]

초무린의 시선이 여동빈을 향하고 있었다. 여동빈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사대신기의 이야기는 내 무(武)의 향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른 곳에 가서 그대들끼리 이야기를 하도록 하라.]

나는 내심 여동빈이 정말 올곧은 인물이라는 걸 느꼈다. 엄청난 힘을 지닌 사대신기의 비밀을 듣고싶을 만도 할 텐데 자신의 무예와는 상관없으니 아예 무시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여동빈. 여기서 계속 수련을 할 생각이오?”

[종종 세상을 돌아다닐 것이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오.”

여동빈과 단말을 맺었으니 이제 그를 소환해서 강신할 수 있으리라.

파앗!

나는 비등을 써서 초무린과 함께 인적이 없는 서장의 고원으로 왔다. 나는 초무린에게 말했다.

“여긴 듣는 사람이 없소. 내게 인드라에 대해서 말해 주시오.”

[다시 묻지. 그대는 사대신기의 본질과 접촉한 적이 없는가?]

“본질? 고대신을 말하는 것이오? 음….”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외우주에서 사대신기에 봉해진 고대신과 마주친 적은 있지만…. 왠지 초무린의 억양으로 볼 때 그걸 말하는 건 아닌 것 같군.’

나는 잠시 후 고개를 흔들었다.

“없소. 사대신기는 내가 외우주에서 가지고 귀환한 후 줄곧 이 상태였소.”

[목소리를 듣거나 한 적은 없나?]

“아…. 바람의 바유가 내게 말을 건 적은 있소.”

[내 스승께서는 그 현상을 줄곧 경계했고, 결국 큰 대가를 치르고 사대신기의 의식을 봉인시켰다.]

“……!!”

뜻밖의 이야기!

나는 화요와 수요를 슬그머니 들면서 말했다.

“나는 음신지력을 이용해서 화요와 수요에 깃든 정령들을 각성시킨 바 있소. 그 말대로라면 사대신기에 음신지력을 불어넣으면 마찬가지로 사대신기의 고대신을 각성시킬 수 있다는 말이오?”

그러자 초무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른다. 그런 이야기는 전문가에게 하라.]

“으음.”

초무린 또한 무공만으로 투선이 된 존재인지라 술법이나 정령쪽은 모르는 듯 했다.

[다만 사대신기에 깃든 존재들은 터무니없이 강력해서 내 스승과 나, 그리고 신녀를 한때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었다.]

“뭐라고? 고대신이 당신을 공격했었단 말이오?”

[오래 전의 일이다. 그 때의 일을 생각나는대로 이야기해 주마.]

초무린은 잠시 후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   *

초무린의 나이 7세.

시대는 육조시대(六朝時代)의 말기, 그 당시 그는 북방(北方)에 살고 있었다. 중원의 북방은 한족들이 오랑캐라 부르는 수많은 유목민족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었으며 초무린 또한 유목민족으로서의 지식과 문화를 습득하며 자라났다. 초무린의 부족은 말갈(靺鞨)이라고 불리는 일족의 일부였다.

그런 초무린의 운명이 바뀐 것은 적대부족의 습격으로 촌락이 붕괴하고 부모님을 모두 잃은 날부터였다. 초무린은 어린 나이임에도 칼을 들고 용맹하게 싸웠으나 결국 죽을 위기에 처했고, 꼼짝없이 목이 베일 위기였다.

퍼억!!

초무린을 죽이려 하던 성인전사 십여 명이 일 수에 모조리 기절해버렸다. 초무린을 구해준 웬 중원인은 그에게 말했다.

“얘야, 괜찮으냐? 가우리(高句麗)에 을지문덕(乙支文德)이란 무공의 천재가 있다하여 찾아가던 중이었는데 몹쓸 일을 보게 되었구나.”

“…….”

“아이야. 나는 백련교 사대무류의 종사인 호월(虎月)이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제 이름은….”

초무린의 원래 이름을 들은 호월이 말했다.

“초원의 이름은 중원에서 쓰기 힘들어보이는구나. 내가 너의 중원이름을 지어주겠다. 초무린이 어떠냐?”

“감사합니다.”

초무린은 눈물을 흘렸다. 나이어린 그라고 해도 호월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애고아를 거두어 자신의 제자로 삼는 자는 천하를 통틀어도 얼마 되지 않으리라. 그는 그 날, 호월을 새로운 부모로 여기고 살아가기로 했다.

호월은 초무린을 데리고 혜가와 함께 가우리라는 동방의 대국에 들렀다. 그러나 가우리에서 을지문덕이란 자를 만난 후 실망해서 중얼거리는 걸, 어린 초무린은 분명히 들었다.

“가우리의 을지문덕…. 그는 영문을 알 수 없군. 저 자의 원래 재능이 아니야. 분명히 엄청난 천재인 건 틀림없으나, 묘한 인과율이 느껴진다. 설마 초월자와 연이 닿아있는 건가? 뭐든 간에 내가 원하는 인재가 아니군….”

초무린을 데리고 백련교로 귀환한 호월은 그 날부터 초무린에게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초무린은 천하에 둘도 없을 무공의 천재였기 때문에 14세가 되기 전에 초절정의 초입에 발을 디뎠고, 16세 무렵에는 백련교 내에 백련교주 호월의 절세무공을 노리고 군마(群魔)처럼 난립하는 무림세력의 수장들과 겨루어도 쉽게 지지 않을 정도였다. 초무린 스스로는 백련교의 팔대고수에 비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여겼다.

심지어 초무린을 거둔 호월조차도 그의 성취에 종종 놀라곤 했다.

“아주 좋구나. 생각보다 뇌신류의 창설이 빨라지겠구나.”

초무린은 그런 호월의 말에 속이 상하곤 했다. 그래서 반문했다.

“스승님. 저를 백련교의 교주로 키우기 위하여 데려오신 게 아니셨습니까? 저는 뇌신류에 그칠 생각은 없습니다.”

초무린의 말에 호월이 훗하고 웃었다.

“…넌 나의 뒤를 이어 백련교주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호월은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너는 무림지존이 될 지언정 그 이상은 될 수 없을 것이다.”

“……!!”

“그건 너의 한계다.”

그 순간 초무린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런 말을 스승인 호월에게 들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손을 부들부들 떨리는 걸 느끼며 외쳤다.

“그 이상이 대체 무엇입니까? 무림지존보다 더 강한 존재가 있단 말입니까? 절대지경조차 뛰어넘는 존재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무림최강자인 호월에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절대지경과 의념천주의 존재를 인지하고 수련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절대지경의 위력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절대지경의 고수는 홀로 십만 대군을 몰살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자 호월이 말했다.

“천계의 신선들. 그 중에서 대라신선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보패의 위력을 이용해서 절대지경의 고수를 초월할 수 있다. 또한 그 중에서도 투선(鬪仙)이라 하는 자들은 본디 지상에 있을 때부터 절대지경보다 강했거나 절대지경의 고수였지. 그들 앞에 선다면 절대지경이라 해도 처참하게 패배할 수 있다.”

“…….”

처음 듣는 얘기였다. 천계라는 게 존재한단 말인가?

멍하니 있던 초무린이 말했다.

“하지만, 스승님은 그들보다 강하실 겁니다.”

“물론이다. 내가 광룡파천황의 전력을 다한다면 대라신선이 열 명 이상 덤벼들어도 한 번에 다 때려죽일 수 있다. 그리 어려운 존재들은 아냐.”

호월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신선조차 초월한 신(神). 태초의 어둠을 다스리는 절대자이며 [옛 지배자]. 그 존재들만큼은 나로서도 어찌할 가망이 없다. 특히 삼황오제(三皇五帝)쯤 되는 존재들이라면.”

“그… 그게 대체 무엇입니까. 삼황오제라면 신화의 임금들입니다만.”

“초무린. 너는 이 일을 그리 생각할 필요 없다. 그건 너의 업(業)이 아니니까.”

“…….”

“네게 맡기고 싶은 건 신살(神殺)의 업(業)이 아닌 뇌신류(雷神流)다. 너는 뇌신류의 종사가 되어 뇌신류의 무공을 후대에 알리고 번창시키거라.”

“…그게, 저의 임무란 말씀이십니까.”

호월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초무린은 그의 눈빛에서 이미 알 수 있었다.

스승은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지 않다.

자신이 짊어진 업을 초무린에게 물려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크윽…!!’

초무린은 엄청나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자신은 분명히 백련교의 무림지존이 되어 차기무림을 이끌어갈 존재이며 뇌신류의 절대자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스승에게 무시받고 있을 줄이야? 그렇기에 초무린은 그 날부터 침식을 잊고 더더욱 무공에 몰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세가 되던 날, 초무린은 자신이 초절정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호월의 가르침이 좋은 탓도 있었지만 절세천재였던 초무린이 무공에 필사적으로 몰두한 결과였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절대지경까지 한 발짝이었다.

초무린의 성취를 본 호월이 말했다.

“이제 네게 신녀(神女)를 소개시켜줄 때가 왔구나.”

“신녀?”

“내 사제인 아유타(亞維妥). 네가 앞으로 교주가 된다면 그녀의 일족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호월을 따라가서 만나게 된 것은 바로 눈이 보이지 않는 절세미녀였다. 아유타 공주는 초무린에게 말했다.

“차기 뇌신류의 종사, 초무린…. 가련한 자여. 당신은 길고 긴 세월동안 고뇌하고, 상처받은 끝에 체념하게 될 것입니다. 도달할 수 없는 절대자를 마음 속에서 거부하며 자기모순에 이르게 되겠지요.”

초무린은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예언능력인가…!!’

신녀 아유타의 예언은 절대 빗나가지 않는다. 초상능력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고 칭송받는 예지능력의 소유자로써 그녀의 힘은 인과율조차도 간섭한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초무린이 숨죽이고 그녀의 말에 집중하자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나 스스로의 사명을 잊지 않고 겸허해질 수 있다면…. 수많은 운명의 갈래 속에서 당신은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실낱과 같은 희망입니다…. 그대의 운명에 지지 마십시오.”

초무린은 훗하고 웃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웃기는 얘기군. 나는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거요. 고뇌와 체념따위 할 리가 없소!”

“…….”

초무린의 말에 신녀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에 말했다.

“사형. 그에게 사대신기의 봉인식을 보여주실 생각이시군요.”

신녀의 말에 호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뿐만 아니라 그 본질을 보여줄 생각이다.”

“좌절하게 될 그가 불쌍하군요.”

호월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그 또한 너의 예언이 아니었던가? 여기서 좌절하게 된다면 거기까지란 거겠지. 약해빠진 놈에게 사대무류 최강의 뇌신류를 맡길 순 없다.”

호월의 말에 초무린은 오기가 생겨서 외쳤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절 얕보지 마십시오! 뭐든간에 전 할 수 있습니다.”

“좋다. 그 말을 절대 후회하지 말거라. 절대로….”

초무린은 호월의 말에서 뭔가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지만 자신있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초무린은 호월과 신녀를 따라서 백련교에서도 가장 엄중하고 깊은 장소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찰랑거리는 얕은 호수가 있었으며, 그 호수에는 백련(白蓮)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백련 위에는 네 개의 빛나는 무구(武具)가 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저게 바로 사대신기!’

초무린은 호월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의 사조라 할 수 있는 보리달마가 거대한 전투에 휩쓸려서 죽을 때 끝까지 남겨놓은 비의(秘意)이자 절대적인 병기! 사대신기의 힘은 이 세상 어떤 보물보다도 강력하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호월이 차분히 말했다.

“본래 혜가(慧可) 사형이 사대신기의 정령들과 대화를 시도하여 그 진짜 힘을 끌어내려 하셨다. 그러나 혜가 사형은 결국 정령을 이겨내지 못하고 내부로 끌려들어갔고, 우리는 사형을 구출하려 무수히 노력했으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

“그리고 정령들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필멸자에게는 전혀 힘을 빌려주지 않는 주제에 고대신의 본질을 각성해서 사대신기의 봉인에서 탈출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봉인하려는 것이군요.”

“그래. 사대신기 자체를 봉인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정령들을 견제하여 사용자에게 해악을 미치지 못하게끔 해야한다. 어차피 인과율에 따르면 미래에 사대신기를 사용할 자는 알아서 이 봉인을 풀 수 있게 되겠지…. 고대신 또한 [옛 지배자]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힘을 지닌 존재들…. 너무 강대한 힘에는 선악이 없는 파멸만이 닥쳐올 뿐.”

초무린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린 호월이 말했다.

“내 힘을 이용해서 봉인식을 진행할 것이다. 너는 모습을 드러내는 정령들이 어떤 힘과 이름을 지니고 있는지를 그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라.”

“…어째서입니까? 이 자리에 제가 굳이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초무린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사실 이 자리에는 신녀와 호월, 두 사람만 있어도 충분해 보였다. 술법의 대가라는 성진 사형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자리에 초무린이 있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러자 호월이 말했다.

“너는 뇌신류의 초대종사가 될 자다. 그러므로 뇌신류의 근원이 되는 뇌신(雷神)을 그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인과율이 맞아들어간다고 신녀가 예언했다.”

뇌신?

초무린이 의아해하자 호월은 서서히 사대신기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크게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디 사대정령이 아니었으나 언제부턴가 사대정령의 좌에 앉아있는 정체불명의 뇌신. 그리고 정령과의 대화를 시도하던 혜가 사형을 먹어치운 괴물….”

다음 순간, 호월이 사대신기 바즈라를 덥석 거머쥐었다.

“인드라(因陀羅)여, 너를 봉인하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