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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후웅
한 차례의 격돌 후, 황금빛의 채찍이 다시 한 번 별밤을 수놓듯 하늘로 떠올랐다. 아니, 저건 채찍이라기 보다는 빛덩어리가 허공에 실뭉치처럼 뭉쳐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현란한 빛무리가 너무 강렬해서 그런 착각을 일으키고 있었다.
‘설마 저 황금채찍 모두를 강기(罡氣)로 감싸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다음 순간 투선 초무린이 재차 공격을 해 왔다.
꽈과광!!
“큭!”
좌측에서만 이백여 회의 편광(鞭光)이 날아들었고 우측에서는 그 몇 배의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나는 일반 무림인이라면 도저히 감당치 못할 어마어마한 숫자의 편광을 막기 위해서 처음에는 호신강기를 썼으나, 호신강기가 마치 두부처럼 잘려나가는 걸 보자 확신할 수 있었다.
‘일격일격이 무거워! 단순방어는 안 돼.’
막을 수 없다면 피해야 하는데 왜인지 몰라도 삼보절기는 상대가 이미 파악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나는 좀 더 상대의 공격을 관찰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기에 재빨리 좌수와 우수에 무공절학을 모았다.
진무칠절경(眞武七絶經)
좌음우양(左陰右陽)
명곡(鳴曲)!
파파팡
좌수에 모인 음의 기운과 우수에 모인 양의 기운이 서로 감응하더니 강렬한 파장을 뿜어내었고, 그 파장은 서로 겹치자마자 큰 울림을 만들어내었다. 진무칠절경의 오의이자 방탄진기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절기 명곡에 음양조화의 변화를 넣어서 더욱 강화시킨 것이다. 그러자 강렬한 파장이 초무린의 편광을 크게 흩어버리기 시작했고, 내 양손이 뿜어내는 방탄진기를 위주로 도리어 파장이 튀어나갈 정도였다.
그러자 초무린이 찰나지간에 중얼거리는 듯 했다.
[뛰어난 방어절기군…. 하지만 우리 유파의 것이 아닌가.]
피비비빅
푸콱!!
“……!!”
초무린의 공격을 다 튕겨냈다고 생각한 순간 팔뚝이 갑작스럽게 꿰뚫렸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공격이었기에 흠칫했지만 이내 부상이 크지 않음을 깨닫고는 뒤로 뛰어서 거리를 벌렸다. 부상의 크기는 젓가락 두 개 정도였는데 꿰뚫린 상처가 매우 단정해서 도리어 별로 아프지 않았다.
‘어떻게 내 방어를 뚫은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의 내 내공과 숙련도로 펼치는 진무칠절경의 방탄진기는 감히 백련교주의 일장도 충분히 튕겨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방탄진기의 틈새를 뚫고 들어온 건 그렇다 쳐도 방금 전의 공격은 감지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상대방의 무공 자체에 비밀이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공으로 지혈하며 초무린에게 말했다.
“갑자기 나를 왜 공격하시오? 뇌신류 종사 초무린!”
“…말했을 텐데. 인과율에 따라 너를 시험하러 왔다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나를 시험하는 이유를 말해 주시오.”
그러자 초무린은 허무감에 젖은 눈동자로 하늘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나는 시킨 일을 할 뿐.”
“누가 시킨 거요? 왜?”
“천계 현허궁주(玄虛宮主) 망량(魍魎). 그가 구궁파천뢰의 무공에 나와 인과율을 엮으며 너를 시험하도록 만들어놓았다.”
“……!!”
“이유는 이 시험을 통과하면 이야기해 주겠다.”
망량이?!
뜻밖에 망량이 언급되자 나는 크게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느꼈다.
‘망량이 초무린을 시켜서 날 시험한다고? 어째서….’
하지만 당황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초무린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을 쓰러뜨리면 된다는 말이겠군. 시간제한은 없소?”
“딱히 없다만, 나는 지금 천제단을 통해 천계에서 무한으로 기를 끌어오고 있다. 시간을 끈다고 해서 네게 좋을 건 없을 거다.”
나는 초무린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꽤 친절하시군. 나 또한 절대지경이거늘 나를 상대로 그토록 자신있단 말이오?”
초무린이 허무한 눈으로 날 응시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절대지경을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하나.”
“뭣….”
그가 서서히 자신의 채찍을 들었다.
“간다.”
파앗!
팔황천마(八荒天魔)
전개(展開)
다음 순간, 초무린이 나를 향해 정면으로 쇄도해 왔다. 나는 초무린의 공격에 이번에는 삼보절기를 써서 그의 공격을 피하려 했으나, 초무린은 이번에는 몸을 순식간에 세 바퀴 회전시키며 다른 절학을 시전했다.
무환천랑백팔식(霧幻天朗百八式)
초견살(初見殺)
벽력하(霹靂河)
슈와악
분광(紛光)이 휘날렸다. 초무린의 황금채찍은 난데없이 꽃가루처럼 변해서 흩날리더니 종래에는 황금빛 가루가 되었고, 휘날리는 황금빛 가루에 가득 둘러싸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황금빛 가루는 강물처럼 흘러내리려는 기색이었고, 나는 이 의념절기 벽력하의 진행을 보자 큰 위기감을 느꼈다.
‘이…. 이건 삼보절기가 통하는 게 아냐!! 이런 살초(殺招)가 존재했다니.’
아무리 삼보절기가 천지인을 움켜잡아 모든 무공초식을 피할 수 있다 해도, 어느 정도의 전제조건이 있었다. 우선 천지인의 방위를 확립할 여유가 있어야 했으며 상대가 삼보절기를 시전하는 동안 균형을 찌를 수 없도록 해야했다. 그러나 벽력하의 황금빛 가루 하나하나가 초식이었고 동시에 공간을 헤집는 의념이었기에 삼보절기로 흘려낼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투웅!
나는 벽력하를 보자마자 뒤로 피했으나 초무린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무환천랑백팔식(霧幻天朗百八式)
쇄혼구절(碎魂九節)
타다당! 타당
아홉 가닥으로 종횡무진 꺾이면서 날아드는 채찍덩어리는 또 다시 내게 선택을 강제하고 있었다. 막던가 흘리던가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이 흐름 자체가 초무린이 의도하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끌려다니다가 결국 선택지가 없어질 거야.’
초무린은 백련교주처럼 힘으로 압도하는 무학을 시전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기 보다는 한없이 절제되고 계산된 초식의 구현을 이용해서 상대방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한 번이라도 선택에 실패하면 피똥싸게 얻어맞는 것이다.
한 마디로 먼저 상대가 반격하기를 기다리며 원거리에서 견제를 넣어서 중장기전으로 체력과 기력을 깎아서 승부를 내는 무인!
이런 성향의 무인은 절정고수 시절에 많이 만나보았지만 초절정으로 수준이 오르면서 점차 숫자가 줄어들었다. 왜냐하면 초절정고수가 되면 의념절기를 써서 한번에 판을 뒤집을 수 있었기에 섣불리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조여가다가는 도리어 반격당해 죽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공수준이 높아질수록 수읽기가 늘었기에 쉽게 상대를 수읽기로 압박하기 힘든 탓도 있었다.
그러나 설마 절대지경에 올라서서 상대를 몰아잡는 성향의 절세고수를 만나게 되다니!
언뜻 십이율주와 비슷해 보였지만 초무린이 좀 더 노골적인 성향으로 보였다. 십이율주는 초무린보다 좀 더 호전적이었다.
‘젠장. 이런 절대지경은 처음 보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초무린이 이런 성향의 절세무공을 확립한 이상 이보다 무서울 수는 없었다. 이런 상대와 싸울 때 잘못 걸리면 설령 동급의 고수라고 해도 손도 발도 못 써보고 피가 마르다가 죽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반격해야 한다.
더 길어지면 초무린의 말대로 내가 끝장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수요를 꾹 잡고 공격할만한 각을 잡아보았으나 순간적으로 허탈함을 느꼈다.
‘반격하기엔 상황이 안 좋아….’
억지로 뛰어들 순 있겠지만, 문제는 초무린은 자기 주변의 공방에 충분한 여유를 두고 있으며 그 안전지대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반면에 공격받고 있는 나는 계속해서 발밑이 불안정한 채 몰리고만 있으니 자칫 반격이 실패하면 초무린의 재반격에 단숨에 숨통이 끊어질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력을 크게 소모해서라도 틈을 만들자!’
절대지경
무량단(無量斷)!
나는 교주의 심천무량조차 베어버릴 수 있는 최강의 검기를 순식간에 의념천주로 펼쳐내었다. 강화된 수요의 힘이 더해지자 일전에 펼치던 것보다 위력이 오 할은 증대된 것 같았다.
퍼버벙!!
그러자 무량단의 전개 앞에 있던 초무린의 황금빛 채찍덩어리들이 쩍하고 갈리면서 튕겨져 나갔고, 초무린의 몸 앞에 빈틈이 크게 생겨난 게 보였다. 정면대결일 경우 초무린의 팔황천마보다 내 무량단의 파괴력이 앞서는 게 분명하다!
좋았어! 이대로 한 번 더 찔러서 끝장을 내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찰나지간에 멸혼보를 써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초무린의 목을 베려고 했다. 이런 빈틈투성이를 찌르지 않는다면 언제 찌르겠는가? 초무린의 허무한 눈빛에 조금의 동요도 없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봤자 기회는 내게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움직이려 할 때 갑자기 수요의 정령이 내 머릿속에 크게 외침을 날렸다.
[멈춰라, 백웅!!]
움찔
나는 찔러들어가려다가 수요 때문에 멈춰섰다. 그러자 내가 머뭇거린 순간에 초무린은 재정비해서 뒤로 물러났고, 나는 허망하게 무량단으로 의념천주를 소모한 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수요에게 마음속으로 물었다.
[수요, 왜 그래? 방금 전에 놈을 찔렀으면….]
[위험했을 것이다.]
[어째서?]
[백웅. 나는 그대의 손에 들린 이후 모든 전투와 생사결을 함께 치뤘다. 그래서 무인의 감이라고 부를만한 게 내게도 있지…. 나는 그대와 함께 성장해 왔다. 그리고 방금 전에는 저 자가 진짜 위기를 보인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
수요가 차분하게 내게 조언했다.
[그대가 과거의 경험에 비춰서 상대와 지구전을 펼치면 좋지 않다는 걸 인식하는 건 좋다. 허나 저 자가 그런 심리조차 읽어내어 자신의 무기로 삼고 있다면…. 우린 유인에 걸리는 셈이다.]
[뭐? 그것까지 계산한다고? 설마….]
[충분히 그럴만한 존재다. 역대 뇌신류 종사 중에서도 손꼽히는 절세고수가 아닌가? 과거의 경험은 그대의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편견을 깨뜨리고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아라, 백웅!]
[으음…!!]
나는 수요의 말에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리고 방금 전 무량단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하며 정신을 집중하고 자세를 다잡았다. 상대가 같은 절대지경인 이상 내 전력을 밑바닥까지 소모할 각오가 있어야 이길 수 있으리라.
그러자 내 모습을 지켜 본 초무린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보기보다 냉정하군. 절기가 아깝지 않나?”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당신은 보기보다 음험하군. 종사의 명성이 아깝지 않소?”
“한 마디도 안 지는 게 과연 우리 유파의 후대답군. 마음에 든다.”
“…….”
흐뭇하게 중얼거린 초무린이 말을 이었다.
“내 팔황천마(八荒天魔)를 정면에서 뚫은 자는 내 생전에는 스승님 뿐이었다. 천계에는 몇 명 있었지만 과연 네가 그들 정도의 수준이라 할 수 있을까?”
“…여동빈과 장삼봉을 말하는 거라면, 내 무공은 아직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오.”
“그럼 여기서 죽을 텐데.”
나는 수요를 불끈 쥐며 말했다.
“아니! 그리 생각하지 않소. 반대로 여기서 당신의 팔황천마를 뚫으면 그들에게 손이 닿는다 할 수 있지 않겠소?”
“좋아, 해 보거라.”
슈르르륵…
다시 한 번 초무린의 몸 주위로 황금빛 채찍이 뭉쳐서 덩어리처럼 보였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의념천주를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서 눈에 집중했다. 그리고 아까와 달리 초무린의 몸 전체의 움직임을 관조하기로 했다.
‘공격을 막는 게 다가 아니야. 상대의 돌진을 막는 거라면, 그가 서 있는 범위에 해답이 있을 거다….’
슈왓!
초무린의 공격이 다시 한 번 뻗어오는 순간, 나는 반격하듯 천축검으로 초무린과 나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천축검의 의념이 순식간에 초무린을 눈앞에 두게 만들자 초무린은 당황하지 않고 연거푸 중반부의 36초식을 찰나지간에 뿜어내었는데 어마어마한 속도라서 안개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파파파파팟
‘이, 이래서 무환(霧幻)이라 하는건가….’
정말로 생전에 적수가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나서 접했던 모든 무공절기 중에서 세 손가락에 들 정도로 빠르다. 여기에 환법과 패력이 섞인다면 무림고수들이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으리라.
무환천랑백팔식의 속도에 내가 경악하면서도 일단 이번 반격은 삼보절기로 피할 수 있었기에 차분하게 피해내고는 장법으로 초무린에게 가볍게 일 장을 날리려 할 때였다.
푸콱
‘……!! 또!’
난데없이 의문의 습격 때문에 이번에는 종아리가 꿰뚫렸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전신에 의념을 집중하고 있었고 초무린과 근접해 있었기에 똑똑히 그 실체를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실체를 확인하자마자 무량단으로 초무린을 가르듯 상단세를 내리쳤고, 초무린이 막아내는 사이에 뒤로 몸을 날려서 착지했다.
‘이제 알았다!’
그리고 초무린을 응시하며 말했다.
“착각하고 있었군. 당신은 반격을 노리는 게 아니라 그저 거미줄에 걸려든 사냥감을 잡을 뿐이었어.”
“흠….”
초무린은 힐끔 나를 쳐다보다가 서서히 자신의 의념을 구현화시켜서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우웅…
그러자 잠시 후, 그와 나의 주변에 무려 일백 장이나 되는 범위에 마치 거미줄처럼 의념의 줄이 쳐져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줄은 언뜻 성긴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조금만 움직여도 걸려버릴 정도로 촘촘했다.
저것이 바로 절대지경 팔황천마(八荒天魔)의 정체다.
줄에 조금이라도 걸리는 순간 절대지경조차 회피나 반격이 불가능한 의념기가 불쑥 튀어나와서 생살을 쑤실 것이다. 이런 게 반복되면 결국 실혈사하거나 헛점이 생겨나서 초무린의 손에 죽게 되리라.
‘제길. 어이가 없군…. 의념으로 또다시 의념을 덧씌워서 기감(氣感)으로도 저 줄을 감지하기가 힘들어. 화안금정으로도 안 보일줄이야.’
가까이 근접하면 팔황천마를 감지할 수는 있지만 그리 정확한 느낌이 아니었다. 의념절기의 은밀성이 저런 경지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초무린이 자신의 절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파해법은 간단하다. 네 절학의 숙련도가 극한에 도달해서 팔황천마를 무시하고 내 본체를 잡을 수 있던가, 아니면 줄에 한 번도 걸리지 않고 나와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되겠지.”
“…….”
“여동빈과 장삼봉은 전자였지. 후자를 성공시킨 건 투선 예 뿐이었고.”
“제천대성은?”
“그 자와는 체급차이가 너무 나서 무학대결을 할 수 없었다. 분신에다가 눈알광선으로 다 뚫어버릴 줄은 몰랐는데…. 너무 강한 존재였지.”
그렇게 말한 초무린이 나를 응시했다.
“알겠나? 인간의 무공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거다.”
스스스
초무린의 팔황천마가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수요에게 내면으로 말을 걸었다.
[수요! 무량단으로 실을 죄다 잘라버리고 놈을 치겠다!]
[그게 될까? 저 자는 과거 수백 수천번의 혈투에서 싸워 이겨서 무림지존이 된 자. 정공법을 쓰는 상대에게도 정통할 것이다. 정면돌파는 잡아먹어달라고 들이대는 셈이다. 차라리 다른 방법을 써라.]
[어떤 방법을?]
[파천일보를 써서 놈의 방어를 뚫을 수도 있겠지만 만일 파천일보도 줄에 걸리면 산채로 몸이 찢길 거다. 그러니….]
이윽고 수요가 내게 전략을 일러주었고, 나는 수요의 말이 일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어, 해 보자!
파앗
나는 초무린의 정면으로 달려들어서 다시 한 번 무량단을 날렸다. 그러자 초무린은 무량단을 정면으로 받지 않고 뇌신류의 보법을 써서 옆으로 피했는데, 그 순간 나는 수요 말고 달리 장비하고 있던 화요를 꺼내었다.
어검술(御劍術)!
비검(飛劍)의 수법으로 화요를 날린 후 나는 화요를 어검술로 조종했다. 그리고 화요가 날아들어서 초무린을 공격하자 초무린은 별수없이 화요를 막았는데, 초무린의 힘으로는 정령을 각성한 화요의 힘과 백중세인지 그대로 튕겨져서 뒤로 날아갔다.
꾸웅
초무린에게 빈틈이 생겨났지만 아직 크지 않았기에 나는 초무린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기감을 극도로 돋우어서 주변의 팔황천마를 감지했다. 기감으로 쉽게 알 수는 없지만 오감을 차단하고 육감 이상을 각성하면 대략적으로는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팔황천마의 위치를 외워야 해….’
나는 머릿속에서 필사적으로 실의 위치를 기억하고는 그 실 사이에서 움직이는 나 자신을 생각했다. 그리고 상대와 초식을 부딪히는 모든 각도까지 생각한 후에야 빠르게 수요를 가지고 초무린에게 덤벼들었다.
타다닷!
초무린의 정면까지 도달하기까지 세 번이나 공중제비를 넘고 멸혼보로 옆을 돌았으나 나는 실을 확실히 다 피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초무린의 면전에 도달하자마자 그대로 무량단으로 확 목을 그어버리고 말았다.
타앙!
퍼버벙
초무린이 무환천랑백팔식을 운용해서 방어태세로 전환하자 무량단이 다시 한 번 채찍무리를 터뜨렸으나 역시 초무린에게는 타격을 입힐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어검술로 조종하고 있던 화요가 날아들어서 초무린을 습격했고, 초무린은 화요의 공격을 도저히 피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
초무린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린 것 같았다. 그가 생사의 위기에 빠진 건 틀림없어 보였고, 그는 잠시 화요쪽을 쳐다보다가 다른 절기를 시전했다.
광룡오의(狂龍悟義)
교룡환천(絞龍換天)
쉬익!
헉?! 뭐지?!
‘초무린과 내 위치가 바뀌었….’
뜻밖의 의념절기에 나는 당황했지만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는 바로 절기를 시전했다.
‘에라이, 또 바꾸자!’
만상지투(萬象之偸)
공간 다시 훔치기!
쉬익!
나는 공간을 또 다시 훔쳐서 초무린과 위치를 바꿔버렸다. 이로써 위치가 원상복구된 셈이었다.
“허!”
초무린은 정말로 예상 못했던 상황인지 짧은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화요가 날아들자 채찍의 손잡이를 들어서 급하게 화요의 칼날을 막아내었는데, 이윽고 번쩍 하는 섬광이 터지면서 초무린의 신형이 멀리 날아가 버렸다. 더욱 강력해진 화요에 어검술의 힘까지 깃들었으니 아무리 절대지경이라도 임시방편으로는 절대 막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쿠구궁
후두두둑…
“컥….”
초무린이 약간 토혈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초무린에게 말했다.
“내가 이긴 거 맞소?”
“…그렇군. 네가 이겼다.”
초무린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말했다.
“어차피 인간은 신에게 상대도 안 되는 존재이거늘…. 왜 그리 열심히 하느냐? 너나 현허궁주나 이해가 안 되는구나.”
너무 염세적이라서 도리어 이쪽이 힘이 빠질 것 같은 말투였다. 나는 이런 뇌신류 종사가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약간 당황했지만 일단 대꾸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오. 이제 소환된 이유나 말하시오.”
“…좋겠지. 내가 소환되는 조건은 네가 구궁파천뢰를 익히는 중에 무환천랑백팔식을 구궁에 섞으면 소환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환된 목적은 네 성취를 시험하는 게 첫 번째이며, 진짜 목적은….”
그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현허궁주 망량의 명으로 이 세계에 있을 여동빈을 찾으러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