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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뇌령이 갈라지는 느낌은 틀림없이 혼과 백이 갈라진 상태를 인식하는 이혼대법의 요결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어진 요결의 흐름은 분명히 이혼대법에서 파생된 거라는 게 느껴졌다.
어째서 구궁파천뢰의 수련법에 이혼대법이 섞여있는 것인가?
내가 의혹어린 눈으로 이설표를 쳐다보자, 이설표가 말했다.
“과연 대단하오…. 과연 종사가 이혼대법을 배웠다는 전승이 사실이었구려.”
“정말로 이혼대법이 수련법에 접목된 것인가?”
“그렇소.”
이설표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혼대법의 달인이 구궁파천뢰의 창조에 끼어들어 뇌정을 쉽게 다룰 수 있는 법을 만들었다고 전해지오.”
“……!!”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사람의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갈사!’
틀림없다. 마왕 시몬 마구스가 우리 본진까지 어정거리며 찾아와서 구궁파천뢰 만드는걸 도와줬을 리는 없으므로 제갈사 뿐이다. 이혼대법의 종사인 제갈사라면 충분히 이혼대법을 타 무공에 접목시켜서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왜?
나는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명확히 이혼대법이 응용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알지 못했다.
“음.”
나는 다시 한 번 요결에 따라 뇌정을 움직여 보았다. 뇌령이 절반으로 쩍 갈라지면서 이동하는 게 느껴졌고, 절반으로 갈라진 뇌령은 마치 혼과 백을 형상화한 듯 했다.
‘뇌령을 어째서 혼과 백처럼 떨어뜨려 놓은거지…? 그리고 왜 갈라놓음으로써 시전자의 육체에 부담이 덜해진 건지….’
무슨 원리지?
분명히 이유가 있으니까 제갈사가 이렇게 만들어놨을 건데….
언뜻 이해가 안 가서 내가 끙끙거리고 있자 이설표가 말했다.
“이혼대법 또한 배교 최고의 비전(秘傳)인 만큼 익히는 난이도가 막대하오. 그래서 이혼대법까지 정식으로 배우는 건 너무 과한 수련이며 재능을 낭비하는 셈. 그렇기에 수련자는 속성법(速成法)으로 이혼대법을 깨우치고 넘어가게 되어 있소.”
“뭐? 속성법도 있나?”
이설표가 말했다.
“그렇소. 방금 행했던 뇌령의 혼백화와 분리. 그것만 익히면 나머지 이혼대법의 진수까지 파고들 필요는 없으므로 속성으로 그 요결만 배우는 것이오. 오늘부터 속성법을 전수할 생각이오.”
“흐음….”
“나도 사실 이혼대법의 진정한 힘에 대해서는 잘 모르오. 허나 종사께서 이혼대법을 정식으로 전수받은 게 사실이라면, 배우는 동안 홀로 많은 것을 깨우치지 않을까 싶소.”
“그렇군. 어디 해 볼까.”
어쩐지 이건 제갈사가 내게 내놓은 수수께끼인 것 같았다.
뇌령을 어째서 혼백처럼 분리해야 하는가? 그 효과란 무엇인가? 그걸 수련하면서 알아낸다면 내 경지가 진일보할거라는 직감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이설표에게서 속성법을 배우며 요결을 반복해서 시동했다. 그리고 이윽고 속성법조차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다 알고 있는 요결이야.’
속성법이라고 해봤자 결국 이혼대법 초심자들이 적응하기 쉽게끔 마련해놓은 해설서였다. 이미 대성의 경지에 이르러있는 내가 굳이 반복해서 연마할 필요까지도 없다.
우우우
천랑뇌신결이 발동하면서 뇌정이 내 몸 안을 왕복하기 시작했다. 뇌령의 분리가 이뤄지자 갈수록 뇌정이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졌고, 몸 안도 점차 갈고닦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참을 하다가 이설표에게 물었다.
“이설표. 분리된 뇌령이 저절로 움직이며 원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왜 그런 거지?”
“……!!”
이설표가 흠칫하고 놀랐다. 그리고는 말했다.
“버, 벌써 그 단계에 이르렀소? 어찌 하루도 되지 않아 천랑뇌신결의 3성의 경지에…. 최소한 두 달은 걸리거늘.”
아마도 내가 원래부터 이혼대법을 뛰어난 경지까지 연마했기 때문이리라. 이혼대법을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것과는 천지차이일 수밖에 없다.
“이유를 말해 주게.”
“으음…. 뇌령이란 본디 생명이 없는 것이나…. 수련자는 의념으로 뇌령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여겨야 하오. 그리하면 뇌령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반응을 보이며, 동적(動的)인 반응을 보이게 되오. 그 단계에서 완전히 넘어서게 되면 뇌령은 한시도 쉬지 않고 원을 그리게 될 것이오.”
“…….”
“원을 그리는 단계를 넘어서면, 형상화된 뇌구(雷球)를 만들 수 있게 되는데 그 단계부터 구궁파천뢰를 본격적으로 전수할 것이오.”
뇌령이 살아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뇌령이란 결국 뇌신류의 고수가 내공으로 만들어낸 뇌기의 결집이며 내단의 일종이라 할 수 있었다. 전혀 생명체라고 불릴만한 요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생명인 것처럼 여기고 의념을 불어넣으면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니!
도대체 어떤 원리인 것일까?
“끄응….”
나는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라 생각했기에 곰곰히 머릿속으로 이혼대법을 되짚어보았다.
‘제갈사는 천재야. 천재가 무공에 사법(邪法)의 궁극이라 할 수 있는 이혼대법을 접목시킬 수밖에 없었다면…. 그럴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의도를 읽어내야 천랑뇌신결을 빠르게 습득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날 하루종일 천랑뇌신결을 수련하며 보냈다. 그리고 옆에서 수련하던 주현성의 진도가 약간 느린 것 같자, 숙소인 모옥으로 돌아와서 주현성에게 말을 걸었다.
“속성법이라지만 원래부터 이혼대법을 대성했던 나에 비하면 네 성취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너에게 이혼대법을 좀 가르쳐 주마.”
자칫하다가는 이설표가 주현성의 목을 베려고 할 것 같다.
“……!!”
주현성이 깜짝 놀랐다.
“정말이십니까? 배화교 최고의 주술이며 사법이라는 이혼대법을 제게….”
“괜찮아. 내가 배교 교주니까.”
제갈사를 통해서 배교교주의 인정을 받았으며 배교교주만이 얻을 수 있는 특수한 향상효과도 전생동안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배교교주라면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대법을 전수할 수 있으니 도리상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밤을 새워서 이혼대법의 구결을 가르쳐주며 천랑뇌신결에 포함되어 있던 이혼대법의 속성법을 내가 아는 한에서 해석해 주었다. 그리고 주현성은 역시 천재라서인지 보통 인간은 몇 줄 이해하기도 벅찬 이혼대법을 마치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금방 이해를 하는 모양이었다.
다음 날부터 수련이 재개되었고, 약 팔 주야 동안 반복수련의 나날이 지나갔다. 내가 이혼대법을 야간에 몰래 가르쳐주는 덕분인지 주현성의 수련진도도 나와 비슷하게 맞춰지는 듯 했다.
‘이제 천랑뇌신결이 5성 가까이 되었군….’
이설표는 어마어마한 성취라고 늘 칭찬을 아끼지 않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주현성이 밤중에 내게 이혼대법을 배우면서 말했다.
“폐하. 어쩐지 요즘 미간이 간질간질하는 게 느껴집니다.”
“응? 무슨 말이야?”
“…그리고 간지럼증이 강해질수록 제 염동력(念動力) 또한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강해진다고? 얼마나?”
쿠구구구….
이윽고 주현성이 바깥으로 나가서 절벽으로 손을 뻗더니, 수십 장이나 되는 절벽의 한 면을 통째로 들어내 버렸다. 그것도 일 리는 될법할 원거리였기에 굉장한 염동력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호오…!!”
“제 염력이 본래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최대한 힘을 써도 지금 위력의 삼 할 정도가 최대였는데 이 수련을 하면서 힘이 강해졌습니다.”
“왜 그런 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폐하라면 혹시 아실까 해서….”
“흠.”
이혼대법과 염동력이 무슨 상관이지?
사공린과 사마령 등에게서 주현성은 현재 대웅제국을 통틀어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최상위 염동능력자라고 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염동능력은 선천능력이며 초상능력이었고 이혼대법은 어쨌든 주술계열이라 할 수 있었다. 두 개의 상이한 분야에서 상승효과가 생긴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야. 그럼 나도 염동력 가르쳐 줘.”
“네?”
“나도 배워보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거 아니냐.”
“그럼 기초적인 염동력을 깨우치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단, 재능이 없으면 입문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알았어.”
나는 주현성에게서 기초 염동력 수련법을 배우기로 했다. 내가 살던 시대보다 지금은 초상능력자가 엄청나게 많아졌으며, 어째서인지 인간이 염력을 포함한 초상능력을 각성하기가 매우 쉬워진 듯 했다. 원래 내가 살던 시대에서 초상능력은 인위적인 각성이 거의 불가능한 능력이었으며 선택받은 자만이 타고나는 힘이었다.
다만 쉬워졌다고 해도 불가능한 수준에서 어려운 수준으로 바뀐 정도이므로 스승의 도움이 없으면 초상능력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덥석
주현성이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강력한 염파(念波)를 흘려보내며 말했다.
“상위능력자가 염파로 인위적으로 상대의 염파를 각성시키는 방법입니다. 제일 확실하고 빠른 염력각성법입니다.”
“난 뭘 하면 되냐?”
“가만히 있으시면 됩니다.”
“각성할 확률은?”
“…대개의 경우 열 명 중 6명은 실패합니다. 4할 정도라고 할 수 있겠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편이군. 시작해.”
우우웅!
잠시 후, 나는 머릿속에 염파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부딪히는 게 번갯불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핑 하는 소리와 함께 그 파장의 한 가닥이 명확히 감각에 잡히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이게?’
나는 혹시나 해서 눈앞에 있는 물그릇에 염파의 파장을 내뿜어 보았다. 그러자 의념을 발동시킨 게 아니었음에도 염파의 힘에 공명한 물그릇이 둥실 하고 허공에 떠오르는 게 보였다. 주현성은 손뼉을 치며 칭찬했다.
“훌륭하십니다. 이로써 염력(念力)에 입문하신 겁니다. 방금 전의 그 감각을 끌어내면 계속 염력을 쓰실 수 있습니다.”
나도 이제 초상능력을 쓸 수 있게 된 건가? 하지만 왠지 위력이 불만스러워서 투덜거렸다.
“음…. 하지만 의념보다 강력한 것 같지는 않은데.”
“초상능력과 의념은 다른 개념이니까요. 사실 염력이라고 해도 폐하같은 절대고수에게는 잡기(雜技)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건 그렇다. 절대지경의 의념, 아니 하다못해 초절정고수가 어검술에 불어넣는 의념의 위력을 생각하면 이런 수준의 염력은 애들 장난이었다. 그러나 초상능력 또한 수준이 높아질수록 막대한 힘을 보여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이 능력도 앞으로 연마하리라고 생각했다.
그 때였다. 나는 문득 뭔가 유사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 설마 이거. 번갯불? 번갯불이라면.’
설마!
나는 생각이 난 순간 천랑뇌신결을 다시 발동시키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뇌정을 생성해서 몸 안에 불어넣었는데, 둘로 나뉘어진 뇌령이 서서히 원운동을 하면서도 뇌정의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통제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더욱 정신을 집중하여 뇌령의 운동을 관찰했는데, 그러자 뇌령의 백(魄)이 마치 번갯불처럼 통통 튀어다니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뇌령… 의념… 그렇군. 의념으로 뇌령을 혼백으로 나누게 되면…. 뇌령에도 혼(魂)이 깃드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
뇌령에 의념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존재라고 여기는 순간, 본디 혼백이 존재하지 않았던 뇌령에 혼백이 실제로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혼백의 개념을 아예 초월하는 현상이었기에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혼을 지닌 존재가 된 뇌령에는 이성이 존재할 것인가? 그것까진 알 수가 없었으나 이미 천랑뇌신결의 수련은 통상적인 내공수련의 경지를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혼대법의 수련자가 초상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 뇌령의 혼이 시전자의 혼과 감응하는 거겠지. 상단전(上丹田)의 능력은 혼에 민감하게 반응하니까.’
아마 주현성의 염동력이 강해진 이유는 뇌령(雷靈)의 혼백(魂魄)이 몸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상단전이 추가로 생겨난 혼에 감응하면서 더욱 높은 경지에 오른 게 분명했다. 이혼대법과 염동력이 별개인 게 아니라 뇌령이 실제하는 혼백이라면 당연히 서로 상승효과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건…. 기존의 내공수련법과는 완전히… 달라.’
나는 천랑뇌신결이 과연 내공수련법이라 불릴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걸 알아챘다. 뇌령을 혼으로 여겨서 또 하나의 혼백체를 몸 안에서 양생(養生)한다는 개념인데, 이게 몸 안에 다른 생명체를 키운다고 볼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과연 이런 식으로 뇌령을 계속 키워도 되는 것인가?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주현성이 말했다.
“폐하. 뭐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음, 들어봐라.”
나는 주현성에게 내가 세운 가설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자 주현성은 끝까지 신중하게 듣고 있다가 말했다.
“폐하. 그 말씀대로라면 아무래도 뇌신지혼을 이루는 최대의 효율적인 방법이 천랑뇌신결인 게 틀림없군요. 과연 천재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무슨 말이냐?”
“본디 뇌신류의 뇌신지혼을 생성시킬 때는 수십 개의 고급요결과 천령단의 무한공력을 융합시켜서 한번에 거대한 뇌신의 그릇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그건 통짜로 그릇을 만드는 일이니 너무 도달하기도 힘들고 처음부터 규격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한계도 명확합니다. 그래서 천랑뇌신결을 만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봐.”
“쉽게 설명하자면…. 처음부터 통짜로 그릇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그릇을 갈고닦아서 키우는 방식으로 바꾼 게 아닐까 싶습니다.”
“키운다고?”
주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백체로 독립해서 뇌혼을 머금은 뇌령에게 계속 힘을 공급하고…. 그 뇌령이 종래에는 전신을 채울 정도로 커지게 된다면…. 그건 결국 뇌신지혼과 같은 게 아니겠습니까?”
“……!!”
“그러나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최소한 수백 년! 차라리 천재가 뇌신지혼의 요결을 익히는 게 더 성취하는 시간이 빠를 것인데 도대체 왜 이런 구결을 만든 건지….”
“…아니, 맞아. 잘 만든 거야.”
“네?”
나는 말없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를 위해 만든 무공인 거군.’
전생을 하면서 계속 시간을 쌓아가며 만들기 적당하고, 이혼대법을 익혀야 하지만 나는 이미 익혔기 때문에 큰 제약조건이 아니다. 이렇게까지 내 형편에 맞춘 절세무공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 동료들이 전생자인 나만을 위해서 만들어준 무공이기 때문이리라.
동료들이 보고 싶다.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도 사치겠지.
나는 주현성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더 열심히 수련하자.”
“네!”
그렇게 한 달여를 더 수련하게 되자 천랑뇌신결의 성취가 칠 성에 육박해서, 나는 이제 뇌구(雷球)를 두어 개 떠올려서 몸 안에 빠르게 회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뇌구가 몸 안을 회전할 때마다 강력한 뇌혼(雷魂)이 응축되어 조여오는 기분이 들었다.
“종사여. 오늘부터 구궁파천뢰를 본격적으로 전수하겠소…. 허허….”
이설표가 눈가에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지금까지가 가장 구차하고 어려운 수련법이었는데…. 벌써 여기까지 오다니…. 과연 뇌신류의 종사시오!”
“그래. 구궁파천뢰라는 건 어떻게 쓰는 건가?”
“아주 간단하오. 일백(一白), 이흑(二黑)에서 시작하여 팔백(八白), 구자(九紫)에 이르는 연속초식을 시전하는것인데…. 초식끼리 연계하는 사이에 의념 대신에 지금까지 모은 뇌혼을 대신해서 소모하면 그만이오.”
“…엥? 그게 끝인가?”
너무 간단해서 내가 황당해하자 이설표가 말했다.
“그렇소. 다만 뇌혼의 소모가 연계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걸 유념하셔야 하오.”
“어느 정도 늘어나길래….”
“직접 해 보시면 알 것이오.”
이설표가 이윽고 내게 구궁파천뢰의 연계방법과 요결에 대해서 전수했다. 확실히 이건 지금까지 배웠던 온갖 절세무공이나 구차한 수련법에 비해서 간단한 편이었고 그리 뛰어난 재능은 필요치 않아 보였다. 단순하다고 할 수 있었다.
부웅!
나는 일백(一白)에 굴공검의 초식을 펼친 후 이흑(二黑)으로 오행강기를 시전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뇌혼을 시전하자 내 의념이 하나도 소모되지 않은 채 두 초식 모두 전력으로 전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호! 그럼 삼벽(三碧)으로 진무칠절경을….’
나는 진무칠절경의 강력한 파동을 양손으로 쏘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뇌혼이 갑자기 꺼지면서 의념이 대신 소모되는 걸 느끼고는 휘청했다.
“음?!”
내가 초식전개를 멈추고 당황하자 이설표가 말했다.
“아직 삼벽 이상은 불가능할 것이오.”
“갑자기 뇌혼이 꺼졌어. 어떻게 된 거지?”
“뇌혼이 다 소모된 것 뿐이오. 소모량이 극히 높아지기 때문이오.”
“천랑뇌신결 칠 성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데도 겨우 삼벽을 연계하는데 힘이 다 떨어진다고?!”
“그정도만 되어도 사실 인세의 무림에서는 굉장히 강력한 기술이오. 전력공격을 세 번이나 연속으로 할 수 있기에.”
“그건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투선을 이기기는 좀 힘들어.”
내 말에 이설표가 진중하게 말했다.
“최소한 천랑뇌신결을 대성의 경지에 이르러야 오황(五黃)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오. 나는 내공과 의념이 부족해서 대성하고도 사록이 한계였으나 그대라면…. 대성 후 극성까지 나아가면 구궁파천뢰를 모두 펼칠 수 있을 것이오!”
“그렇군….”
나는 구궁파천뢰를 좀 더 연습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하루에 걸쳐서 뇌혼을 회복시킨 후, 이번에는 다른 연계를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삼벽(三碧)
팔황경천
무환천랑백팔식!
이설표와의 첫 격돌에서 보았던 그 화려하기 그지없는 유성같은 공격! 나는 그걸 재현해보고 싶어서 무환천랑백팔식을 시전했다. 연습으로는 많이 해 보았지만 구궁파천뢰에 끼워넣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뇌혼이 극치에 도달하여 무환천랑백팔식의 의념을 떨쳐내는 순간이었다.
지지징…
‘아앗…. 저건?!’
갑자기 눈 앞에 새하얀 환영같은 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 멀리 숭산의 한 봉우리에서 거대한 백색 빛이 허공으로 터져나왔고, 그와 동시에 내 앞에 있던 환영이 빠르게 실체화하는 게 눈에 보였다.
쉬리리릭!
쉬리릭!!
내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내 앞에 실체화된 [무언가]는 그대로 나와 똑같은 초식을 펼쳤다.
팔황경천
무환천랑백팔식
콰과광!!
같은 무환천랑백팔식이 허공에서 격돌하면서 거대한 파장과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조그마한 산이 붕괴되었고 지진이 났으며 천공조차도 충격으로 뒤흔들렸다. 나는 이 격돌에서 주변에 있던 이설표나 주현성이 다칠까 염려했지만 그들은 일단 잘 피해낸 모양이었다.
콰과과광
백팔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절대지경의 의념천주를 세우며 상대와 숨쉴 틈도 없이 연속으로 격돌했다. 나는 순식간에 수백 번이나 되는 검격을 날렸으며 상대 또한 마찬가지로 병기를 휘둘렀다. 그리고 나는 다음 순간에야 상대방의 병기가 채찍(鞭)이라는 걸 깨달았다.
쉬쉬쉬쉭
채찍이 마치 뱀처럼 소리를 내더니 이윽고 천하를 가득 메우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 끝까지 꾸불거리며 떠오른 거대한 채찍은 잠시 후 황금빛을 내뿜으며 번개로 변했고, 뇌전의 채찍은 수만 갈래로 터져나오며 내게 쇄도해 왔다.
절대지경(絶對之境)
팔황천마(八荒天魔)
파바바바밧…
“……!!”
수십 만 개의 궤적이 날아드는데 그 중에 겹치거나 서로를 방해하는 궤적은 단 하나도 없다! 마치 천의무봉을 마주할 때처럼 정밀하기 짝이 없는 정확성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정확성만큼이나 예리하면서 막대한 힘이 실려있는 채찍의 공격에 나는 전신이 찢어발겨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삼보절기로 우선 황금의 채찍을 피해냈으나 상대는 그 순간 마치 간파했다는 듯 정확하게 삼보절기를 이루는 천지인을 정확히 꿰뚫어오는 반격을 개시했다. 너무 정확했기 때문에 나는 설마 상대가 삼보절기를 알고있냐는 의심을 하면서도 재빨리 초식을 전환해서 방어태세로 전환하고는 멸혼보로 빠져나왔다.
푸욱!
그러나 - 멸혼보로 빠지는 순간 상대가 마치 아무렇게나 내던진 듯한 일 초식이 내 팔뚝을 크게 꿰뚫었다. 말 그대로 피하거나 막을 새도 없었다. 귀신처럼 솟아오른 검기가 뜬금없이 나타나 있었다.
“……?!”
뭐야?! 이건 대체….
상대의 절대지경 효과인가?!
타닷
나는 그제서야 뜬금없이 출현한 상대와 마주서서 그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나를 편법으로 공격한 의문의 절대지경의 고수는 선의(仙衣)를 입고 있었으며 다소 허무한 기색이 가능한 눈동자를 갖고 있는 미청년이었다.
그 자는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나는 투선(鬪仙) 초무린(肖無燐). 인과율에 따라 널 시험하러 왔다.”
“네?”
“간다.”
절대지경(絶對之境)
팔황천마(八荒天魔)
쿠콰콰쾅!!
나는 숨돌릴 새도 없이 또다시 투선 초무린과 격돌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에 생각했다.
‘어째서….’
천 오백여년 전 우화등선한 뇌신류의 고대종사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