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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주현성과 함께 이설표의 구궁파천뢰를 배우기로 했다. 그래서 그의 모옥에 짐을 내려놓고 수련할 준비를 끝낸 후 밖으로 나왔다.
‘간만이군, 이런 기분.’
제대로 수련하려고 심산유곡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몸을 긴장시키는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아까까지 느꼈던 화려한 사바세계에서 동떨어졌는데도 박탈감이나 상실감은 커녕 기분이 괜찮았다. 사실 현대의 문명이 아직 그다지 내 몸에 맞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설표는 나와 주현성을 기다리고 있다가 말했다.
“종사여. 그럼 구궁파천뢰의 뇌혼을 생성하는 법을 먼저 알려드리겠소.”
“가르쳐 주게.”
“우선…. 뇌정(雷精)을 손바닥 위에 만들어 보시오.”
치직…
나는 손쉽게 푸르게 빛나는 뇌정 덩어리를 손바닥 위에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은 뇌신류 뿐만이 아니라 사대무류 대부분의 무인들이 할 수 있는 일으로써 자연지기를 구현화하는 일이었다. 이걸로 타 유파의 무공을 흉내내는 것도 가능했다.
“했네만.”
“그 뇌정을 좌심부(左心部)까지 빨아들여서 체내로 흡수했다가 반대쪽 손으로 옮겨보시오.”
우웅…
“이번에는 반대로.”
나는 이설표가 시키는대로 다 했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자 이설표가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과연 종사. 처음에 이걸 하는 자들은 예외없이 뇌정이 심혈을 스칠때마다 큰 고통을 느꼈는데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하구려.”
“그야 뇌정의 뇌기가 내장을 지질 수 없을 정도로 내 몸에 기가 막대하게 쌓여있으니까…. 그보다 이런 자해행위를 왜 하는 거지?”
나는 의문을 표시했다.
“이건 수련이 아니잖은가. 뇌정덩어리를 체내로 흡수해서 몸 안을 통과시키면 그저 몸을 해하는 행위에 불과한데.”
“…….”
“이런 짓을 하면 아무리 무인이라 해도 명줄이 짧아질 뿐.”
나야 내공이 호법사자에 버금갈 정도로 막대하니까 이런 행위를 버텨내는 거지만 통상적인 무인은 단전에만 내공을 쌓아놓고 평상시에는 내장과 기혈까지 내공이 다 쌓여있지는 않다. 그렇기에 뇌정을 몸 안에 돌아다니게 하는 행위는 자해행위 그 자체였다. 순수한 자연의 뇌정은 인간의 몸에는 절대적으로 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설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이 자체로는 자해행위라 할 수 있소. 그러나 하나의 요결이 뒷받침된다면 이는 훌륭한 수련법으로 바뀌게 되오.”
“어떤 요결이지?”
“이번엔 내가 뇌정을 몸 안에서 왕복시켜 보겠소. 내 몸의 상태를 잘 살펴보시오.”
우우우웅
이설표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몸 주위에 구현화된 뇌정의 구(球)를 네 개 떠올렸다. 그리고 뇌정의 구는 이윽고 이설표의 몸 주위를 돌더니 그의 몸 안으로 빨려들듯이 사라졌고, 이윽고 뇌정의 구가 투명하게 이설표의 몸 안에서 비치더니 심장부터 발끝까지 격렬하게 돌아다니는 게 눈에 보였다.
“……!!”
나는 지금 딱히 화안금정을 쓴 것도 아니고 맨눈이었는데도 육안으로 그의 변화가 똑똑히 보였다. 세상에 저런 현상은 처음 보았기에 내가 놀라고 있자, 이윽고 이설표가 뇌정을 몸 밖으로 배출하더니 합장을 했다. 합장을 하자 뇌정의 구는 하나로 합쳐지더니 하늘로 날아가서 펑하고 분해되어 사라졌다.
“보셨소? 구궁파천뢰의 수련성취가 높아지면 다룰 수 있는 뇌혼의 양이 많아지므로 몸이 뇌정을 접해도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으며 도리어 기혈의 회복력이 증대하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천랑뇌신결(天朗雷神決) 덕분이오.”
“천랑뇌신결이라….”
“구결은 꽤 복잡한 편이지만 원리는 간단하오. 뇌신지혼의 암호같은 구결만큼 어려운 건 아니오. 단지 상위단계로 올라갈 때마다 뛰어난 오성(悟性)이 필요하므로 뇌신지혼에 버금가는 난이도로 취급받고 있소.”
그렇게 말한 이설표가 말을 이었다.
“천랑뇌신결의 구결만 익혀서는 아니되오. 이 구결을 빨리 습득하려면 팔황경천신공(八荒驚天神功)을 익혀서 최소한 오 성 이상으로 달성해야 하오.”
“뭐? 왜 그래야 하지?”
“천랑뇌신결은 팔황경천신공의 요결에서 파생된 구결이기 때문이오. 독문구결이 아니라 깨달음이 연계되므로, 팔황경천신공을 경지에 올린 후 천랑뇌신결으로 구궁파천뢰를 익히는 게 세 배는 빠르다고 할 수 있소.”
“…….”
나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새삼 이게 뇌신류라는 걸 느꼈다.
‘그, 그래. 뇌신류가 이렇지….’
최소한 수재이상이 아니면 입문조차 어려울 정도의 괴악한 난이도에 수련자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듯한 구결의 범람, 그리고 오성의 절대적인 필요성. 나는 절대지경에 이른 후 느낀 적이 없었던 당황스러움을 재빨리 추스리고는 말했다.
“그렇군. 팔황경천신공도 익히고, 천랑뇌신결도 수련해야하기 때문에 구궁파천뢰를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였어.”
“맞소. 허나 그리 걱정 마시오.”
이설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종사 그대는 진소청에 버금가는 천재! 팔황경천신공 정도는 길어도 반 년이면 터득할 게 아니오? 그대의 재능에 맞출 수 있도록 계속 생각하고 신경쓸테니 염려 마시오.”
“후… 하하하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동료들을 내심 원망했다.
‘이 자식들아, 이런 뻥을 치면 어떻게 하냐!’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최대한 체면을 유지하면서 이 수련을 끝마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와서 진솔하게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팔황경천신공부터 전수하겠소….”
그리고 이설표는 그 자리에서 반 시진동안 팔황경천신공의 요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다 말해주었다. 수천 자나 되는 구결을 한 번에 다 듣고 외우기는 굉장히 버거운 일이었기에 나는 이설표에게 당황해서 반문했다.
“이, 이봐. 한 번에 다 말해주는 것인가?”
“……? 문제있소?”
“보통 구결의 전수는 시간을 두고 한 단락씩 수련진도에 맞춰서 가르쳐주는 거잖나.”
내 말에 이설표가 훗하고 웃었다.
“전설의 천재 진소청은 뭐든 한번 들으면 다 외웠으며 다시 요청하는 일이 없었다 하오. 그건 진소청 뿐만 아니라 그 전의 종사인 이청운도 마찬가지. 내가 괜히 그대의 역량을 염려하여 속도를 늦출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하오.”
“…….”
다 못 외웠다고.
아무리 뇌정경을 상시발동하고 있어도 그렇게 긴 걸 한번에 어떻게 외우냐!
나는 재빨리 옆에 있던 주현성에게 전음을 보냈다.
[야. 다 외웠냐?]
[네? 그, 그렇습니다만.]
[좋아.]
나는 주현성한테 나중에 배우기로 했다. 그리고 이설표는 구결전수가 끝나자마자 바로 팔황경천신공을 이용한 초식의 구현을 시작했다.
“팔황경천신공의 초식은 본디 내공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 그러나 종사는 내공에 있어서 이미 그 요건을 충족하고 있으므로 팔황경천신공으로 구현되는 무공인 무환천랑백팔식(霧幻天朗百八式)의 초식만 익히면 될 것이오.”
“무환천랑백팔식이라. 초식이 108개나 되다니 굉장히 많군. 초식이 그렇게 많을 필요가 있는가?”
“이 무공을 창안한 뇌신류 종사의 본래 병기는 편(鞭)이었다 하오. 그 종사가 편을 잡은 이유는 검, 권, 창을 모두 연마했지만 자신의 적성에 편법이 맞았기 때문이라 하며, 그때까지 자신이 배웠던 모든 무공을 편법에 소화시켰기에 초식이 많았던 것.”
“호오….”
“때문에 무환천랑백팔식은 편법이지만 검법이나 권법, 창법 어느 쪽으로든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 있는 범용성을 지니고 있소.”
스스스
“전중후(前中後) 각 36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잘 보시길.”
파바밧
이윽고 이설표는 무환천랑백팔식을 빠르게 시전했다. 나는 방금 전의 구결전수와 달리 이번의 초식전개는 꽤 흥미롭게 볼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설표보다 고수이기 때문에 그의 움직임과 내공흐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었으며 무공 자체를 이해하는 폭이 현저히 높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환천랑백팔식…. 무공이 하려는 말이 들린다. 조금 이해가 간다.’
마냥 재능탓을 하기에는 꽤 머리에 잘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초식의 세세한 구도까지는 다 외우지 못했지만 각 초식이 품고 있는 뜻이나 어떤 방식으로 응용되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절대지경에서 의념으로 수많은 초식을 구현해본 경험 덕에 타고난 재능의 영역을 어느 정도 직감으로 따라잡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무환천랑백팔식이 꽤 내게 맞는 무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검법을 주로 쓰지만 워낙 익힌 무공이 많다보니까 때때로 창법이나 권법의 초식을 섞어쓸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있어서 범용성이 큰 절세무공은 몸에 딱 맞는 옷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사앗
이설표가 초식의 시전을 끝낸 후 말했다.
“그럼 오늘은 원하실대로 구결을 연마하시거나 무공을 연습하시길….”
“…응? 옆에서 보면서 지도하지 않는 건가?!”
“어찌 감히 절대지경의 고수에게 훈수를 두거나 이래라 저래라 지적할 수 있겠소! 하수가 고수를 가르치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일. 도리어 귀하의 상상력과 의념을 방해할까 염려되므로 이만 빠지겠소.”
“아니 그게 아니라.”
“나를 배려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껏 자율수련을 하시길 바라오.”
그렇게 대꾸한 이설표가 흐뭇하게 말했다.
“허허…. 절세천재를 가르치는 건 편해서 좋구려.”
“…….”
나는 이것까지 포기하면 정말로 진도가 느려터질거란 걸 직감하고는 말했다.
“어이!! 난 그렇다 쳐도 주현성은 재능이 좀 부족…. 어…. 그래 좀 나보다 재능이 딸리니까 가르쳐줘야 할 거 아니냐!”
“……!!”
이설표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종사여…!! 절대지경에 이르렀음에도 하찮은 뇌신류 제자를 걱정해주는 것이오?”
“그, 그래. 주현성을 가르치라고. 딱 붙어서 자세하게. 이건 종사로서의 명령이다.”
“오오…!! 알겠소!”
그리고 나는 이설표가 주현성 옆에 붙어서 가르치고 있을 때 몰래 주현성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야. 무환천랑백팔식 중반부를 다시 한 번 펼쳐보라고 말해 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구결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더 읊어달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그 날 약 여섯 시진 동안 수련을 하고 나서 모옥으로 되돌아왔다. 이설표는 평소부터 손님용 모옥을 지어두었는지 나와 주현성이 모옥 안에 누워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불을 덮고 각자의 침대에 누웠을 때, 주현성이 문득 말했다.
“폐하…. 감사합니다.”
“…뭘?”
“저를 배려하셔서 오늘 무공의 성취가 많이 진보된 것 같습니다. 마치 막혀있던 벽이 뚫린 것처럼….”
“…….”
“사공린 폐하에 못지않으신 영웅이라는 걸 오늘에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훗…. 이제 알았냐?”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잔머리가 돌아갔기 때문이다.
“주현성. 나 또한 너를 시험하는 중이다.”
“네?”
“아까 계속 구결을 다시 말해달라느니 초식을 다시 펼쳐달라느니 했었지. 그건 사실 네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까 싶어서 너를 시험했던 거다.”
“……!!”
“앞으로도 계속 시험할 생각이다. 나는 마치 재능이 뒤떨어진 수련생처럼 너를 괴롭힐 생각이니, 내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면 너는 뇌신류 후계자가 되기 힘들 것이다. 과연 네가 둔재처럼 구는 나를 가르칠 수 있을까?”
주현성이 각오한 목소리로 또렷하게 대답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그래, 알았다! 그럼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봐라. 자기 전에 구결 한번만…. 아니 열 번만 더 외워 보자.”
“알겠습니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아싸…. 무난하게 팔황경천신공은 넘길 수 있겠구만….’
그렇게 나는 이설표 밑에서 약 한 달 동안 내내 주현성과 함께 팔황경천신공을 수련했다. 구결을 다 외웠어도 실제로 무공을 몸에 붙이고 연마하는 데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고, 초식을 다 외우는 건 한 달이 넘어서야 가능했다.
이설표는 한 달 후 다소 곤혹스러운듯 말했다.
“종사여…. 너무 병신새끼처럼 위장하지 않아도 좋소…. 초식을 이제야 다 떼다니, 이렇게 진도가 느린 건 생각지도 못했거늘. 천재니까 이틀이면 초식 정도는 다 외울 거라 생각했거늘….”
“하하! 그런가?”
나는 도리어 당당하게 말했다.
“주현성의 수련도 겸하고 있으니 걱정 말아라.”
“무슨 소리오?”
나는 주현성에게 둘러댔던 말을 그대로 이설표에게 했다. 그러자 이설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뇌신류 종사로서 너무 정에 휘둘리시는 게 아니오? 주현성 하나 있든없든 뇌신류의 운명과는 관계없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네. 그 누가 미래에 중대한 역할을 할지 모르는 일이야. 주현성이 나중에 날 도와서 세상을 구할지 누가 아는가?”
“그래도 너무 진도가 느리지 않았으면 좋겠소. 종사의 배려심이 과하구려.”
“하하.”
“후우…. 나는 또 머저리 둔재를 가르치는 줄 알았소. 나를 더 놀라게 하지 말아주시오.”
“…….”
한숨을 쉰 이설표는 미심쩍은 기분을 넘겨버리는 듯 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본디 팔황경천신공의 오성을 달성한 후에야 천랑뇌신결을 제대로 가르치게 되어있으나, 내공과 구결이해 모두 그 수준을 달성했다고 간주하고 오늘부터 전수를 시작하겠소.”
드디어 시작이다.
“천랑뇌신결은 첫 날에 보여줬던 것처럼 뇌정을 자기 몸 안에서 왕복시키는 게 수련법의 시작이자 끝이오. 처음에는 작은 뇌정으로 짧은 거리를 왕복시키다가, 갈수록 큰 뇌정으로 큰 거리를 왕복시키는 식으로 발전하오.”
“흐음.”
“이 수련법이 경지에 오르면 나중엔 뇌정의 구를 몸 안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고, 그건 뇌혼(雷魂)이 충분히 발전했다는 뜻이 되는 것. 그 때부터 구궁파천뢰를 시전할 수 있을 것이오.”
이설표가 기초수련법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내게 구결을 말해주었다.
“자, 구결대로 내공을 운용하며 의념을 집중하시오….”
우웅
나는 이설표가 말해주는 천랑뇌신결의 1500여자 구결에 따라 차분하게 내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중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갈라진다.
내 몸에 있던 뇌령이 쩍 하고 절반으로 갈라지더니 느닷없이 분열되어서 몸을 정수리를 기준으로 반으로 나눠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 생소한 느낌에 당황하고 있을 때 뇌정이 서서히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걸 알아챘다.
즈즈즈증
불쾌한 이질감과 함께 뇌정이 내 심장 주변을 한 바퀴 돌고는 되돌아갔다. 그렇게 일 회전을 끝마친 후, 나는 휙하고 이설표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설표.”
“왜 그러시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이건 이혼대법(移魂大法)의 원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