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
사신지혼(四神之魂)
이 세계의 종말.
그리고 행복한 결말.
'뭔 차이야, 대체?'
이 미친 고양이놈이 말장난하나?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하지만 이 자리에 '손님'이란 놈이 와 있고, 질문이라기보다는 선택의 분위기인 걸 깨닫자 계속 머리를 굴리게 되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망량선사에게 말했다.
"그걸 내가 왜 대답해야 되는데? 나한테 왜 그 대답을 강요하냐고..."
망량선사한테 한 방 맞으면 죽기 때문에 점차 말꼬리가 기어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놓인 것 자체가 짜증이 난다.
나는 하소연하듯 한 말이었지만 의외로 망량선사는 내 말에 제대로 대답해 주었다.
[너만이 그 대답을 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뭐? 나만? 왜?"
[종말의 인과율은 현재 네게 집중되어 있다. 전에 없이 집약되어 있는 인과율은 네 선택에 따라 이 세계의 미래를 열리게 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지. 심지어 [계시]조차도 네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
[흉신 때문에 일어난 상황이지.]
뭐라고?!
나한테 그런 인과율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대단한 이야기가 되어있었으므로 멍해져 있자 망량선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인과율을 읽은 자들 사이에서 네 선택을 방기하느냐 마느냐에 대하여 의견충돌이 있었다. 그래서 당사자의 의견을 듣기로 한 것이다.]
"의견충돌? 누구랑 누가 의견 충돌했다는 건데?"
[......]
망량선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왠지 알 것 같았다.
'손님'
아까부터 어둠속에서 의자에 앉아서 한마디 말도 안하고 고요히 좌중을 지켜보기만 하는 저 의문의 제왕 때문일 것이다. 다만 망량선사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 확실한 건 아니었다.
'음... 내가 그렇게까지 불리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여유를 조금 부린다 해서 망량선사가 날 때려죽이진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한결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그럼 [이 세계의 종말]과 [행복한 결말]을 택했을 때 각각 일어나는 일을 말해줘. 결과 정도는 알아야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잖아. 아무것도 모르고 뭘 고르란 말이냐?"
[일리 있는 말이군.]
그렇게 말한 망량선사가 천천히 내게 설명했다.
[이 세계의 종말을 택할 경우, [종말]과 [계시]는 정해진 때와 같이 찾아올 것이다. 다만 인류 측에는 하나의 재앙과 하나의 축복이 더해지게 될 것이다.]
"하나의 재앙과 하나의 축복?"
[재앙이란 [외계]의 도래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숨겨져 있던 고대의 종족과 [옛 지배자]의 하수인들이 예전된 시기보다 훨씬 빨리 나타나며 마음껏 활동하게 되리라. 세계의 곳곳에 봉인되어 있던 차원문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게 된다. 또한 그동안 신력의 가호로 차단되어 있던 외계의 물리적 재앙도 점차 모습을 드러내겠지.]
나는 경악해서 입을 벌렸다.
"뭐야 그건!! 죽으란 말이냐?"
도저히 그런 건 못 막아!
외계종족 하나하나만 해도 못 막을 판에 전 세계에서 악의 화신이나 사도가 수십 체씩 출몰하게 된다는 소리였고, 해신족 같은 악랄한 외꼐인도 여기저기서 판치게 되잖아! 아무리 대웅제국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인간세력의 힘이 강해도 무리일 것이다!
[그리고 축복이란 내가 너희 편이 된다.]
"응?"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망량선사가 눈을 깜박거리더니 말했다.
[내가 인류의 신이 될 것이다. 종말이 찾아오기 전까지.]
"......!!"
[내 진짜 힘은 낼 수 없겠으나 가호와 축복을 줌에 있어서 지금보다 열 배는 자유로워지겠지. 나의 [사도] 또한 머지않아 출현하게 된다. 인류는 내 도움을 받아서 종말까지 버티게 될 것이다.]
"호...호오. 괜찮은데."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망량선사가 우리 편이 된다!
그건 정말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지금까지 힘이 없다고 핑계대면서 피하기 바빴던 놈이 그 제약을 풀고 본격적으로 아군이 된다면? 파천의 가호가 지닌 능력을 생각한다면, 앞서 제시되었던 [재앙]을 해결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냥 이걸로 갈까...?'
나는 희망적인 미래를 관측하다가 문득 걸리는 게 있어서 말했다.
"야. 넌 지금까지 [사상최악의 마]라는 걸 봉인한다고 모든 힘을 써서 더 도와줄 수 없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그렇게 전면에 나서버리면 그 놈은 어떻게 봉인하지?"
[내가 봉인하지 않아. 대신 저 '손님'이 혼돈의 봉인을 넘겨받아서 종말까지 지킨다. 그렇게 합의가 되었다.]
"...그게 돼? 엄청난 봉인일 텐데?"
[저 자는 그만한 역량이 있다.]
"저 놈이 누군데 그래?"
[본인이 말하기 전엔 내가 말해줄 수 없다.]
나는 힐끔 '손님'을 쳐다보았다.
'손님'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엷은 미소를 짓는 듯 했다. 나는 그 모습이 짜증나서 외쳤다.
"야! 말을 하라고 말을! 왜 아무 말도 안하는 건데! 나 무시하냐?!"
......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마치 내 말이 들리지 않는 양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망량선사도 놈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어색한 침묵을 깨고 말을 이었다.
"...음, 알았어. 그럼 종말 이후에는 어떻게 하는데?"
[모른다.]
"그래. 그렇군... ...아니, 모른다고?!"
나는 무심결에 대꾸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당연히 대책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자 망량선사가 말했다.
[그 선택은 나로서도 모험을 하는 것이다. 예정된 종말을 거부하기 위하여 내 존재를 걸고 마지막 싸움에 나서는 것이지. 그래서 내가 끼어든 후의 결말과 그 인과율은 관측할 수가 없다.]
"제길... 그래서 '종말'이라고 표현한 거냐?"
[그렇다.]
나는 망량선사의 말뜻을 이해했다. 망량선사조차도 세계의 종말, 그리고 [아버지]의 강림이라는 악몽 그 자체를 어찌할 순 없었기에. 인간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걸 걸고 싸우는 도박과 같은 선택!
그것이 바로 전자의 선택인 [이 세계의 종말]인 것이다.
이걸 선택할 경우 인류는 망량선사라는 초강력한 아군을 얻는 대신 무수히 쏟아지는 외계인과 악마들을 상대로 끝없는 싸움을 시작하게 되리라. 게다가 그 끝은 망량선사조차도 장담할 수가 없다.
나는 혹시나 해서 질문했다.
"네 가호인 파천의 가호로 [종말]을 없었던 걸로 하면 안 되냐?"
[안 된다.]
"그 뭐냐, 불확정성 뭐시기... 암튼 대단히 센 능력이잖아. 그래도 안 돼?"
[진정한 종말이 닥쳐오면 막바지에 나와 대등한 격을 지닌 자가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내 권능을 거부하면 어쩔 수 없다.]
"......"
뭔가 망량선사도 한계는 있다는 느낌인데...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알아들었어. 그럼 후자의 선택인 [행복한 결말]은 뭔데?"
[내가 저 '손님'에게 승천(昇天)의 권한을 양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손님'이 [종말]과 [계시]를 1만 년 후로 유예시켜줄 것이며, 모든 [옛 지배자]와 외계의 침입을 원천봉쇄할 것이다. 인류는 우주에서 손꼽히는 예우를 누리게 될 것이며 심지어 거신족에 버금가는 권능을 얻게 되겠지. 명계와 윤회전생 또한 안정적으로 부활할 것이며 너와 네 동료들은 종말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될 거다.]
"뭐라고?! 유예시킬 수 있다고? 말도 안 돼!"
그건 삼황오제가 다 모여야, 특히 복희가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삼황오제가 흉신의 저주를 받아 와해된 지금, 그 누구도 종말을 유예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당연히 내가 불신에 가득 찬 눈으로 '손님'을 바라보자, 망량선사는 하품을 쩍 하더니 말했다.
[당연히 지금 당장 저 놈이라 해도 그럴 힘은 없다. 불가능하지. 그러나 승천의 권한을 양도하여 승격(昇格)하게 되면 가능해지겠지.]
"승천의 권한이 뭔데 그래?"
[지금의 내겐 알려줄 수 없다. 승천에 도전할 자격이 있는 자만이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나는 짜증이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 더럽게 숨기는구만. 숨길 건 다 숨기고 나는 선택만 하라고? 이 따위로 하는데도 나한테 양자택일을 권한다는 거야?"
[그래.]
"근데 그거 알아? 네 말대로라면 그냥 후자를 선택하는 게 옳잖아. 손해 보는 건 망량선사 네 녀석이지. 난 손해 안 본다고!"
나는 망량선사가 당황하길 원해서 쏘아붙였지만 망량선사는 그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것까지 감안한 제안이다. 이 자리는 너의 자유의지로 선택해라.]
"네 권한을 뺏겨도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냐?"
[나는 내게 새겨진 의무를 다할 뿐이다. 어떤 결말이 나든 거기에 따른다.]
"......"
나는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했다.
'암만 생각해도 [행복한 결말]을 선택하는 게 맞는데...'
그걸 선택하면 인류는 구원받는 게 틀림없다. 저 '손님'이 승천의 권한을 얻는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솔직히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망량선사만 손해를 본다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이다.
어, 설마 그래서 행복한 결말인가? 망량선사 빼고 다 행복한 결말?
나는 잡생각을 하면서도 뭔가 수상쩍음을 느꼈다.
'음... 일단 [행복한 결말]을 택하게 되면 난 어떻게 될까?'
종말의 공포가 1만년 후로 미뤄지기 때문에 현 세상에 존재하는 사공린, 천우진 등의 동료는 나머지 삶을 안락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대웅제국 또한 그럭저럭 행복하게 되리라. 모든 인간이 행복해질 것이고, 나 또한 1만년의 안락에 편승해서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으리라.
성형을 해서 미남이 되고 예쁜 여자와 사귀기도 하고 이것저것 평화로운 세상에서 다 해보는 삶... 그런 삶을 바란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첫 번째 삶에서는 고수가 되어 그런 삶을 누리는 것도 좋다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문득 하나의 이름이 생각났다.
미호.
...미호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해서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미호가 죽었든 살았든 간에, 나는 지금 내 곁에 그녀가 없는 것만으로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지금까지 명을 달리했던 내 전생동료들 또한 이런 결말에 납득할 수 있을 것인가?
난 지금까지 무엇을 이루었나?
"......"
역시 아냐.
억지로라도 행복한 삶을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무리야.
이미 정해져 있었어.
그 날... 죽고 또 죽어서라도 이 세상을 죽여 버리겠다는 각오를 세웠던 날.
만신의 파멸을 영혼에서까지 바랬던 그 날부터, 나는 이미 미쳐버렸던 것이다.
더 이상 되돌아갈 순 없다.
나는 그 순간 비직하고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말았다.
"크큭..."
행복이란 무엇인가?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이란 말인가?
무한한 불행이 넘쳐나는 이 세계에서 행복이라는 울타리로 자신을 세뇌시킬 뿐이 아닌가?
깨닫는 순간 행복해진다면, 그 때까지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건가. 그런 가식적인 얘기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웃기는 얘기다.
태어날 때부터 불행할 요소가 덕지덕지 달고 다니며 살아왔던 재능 없는 추남은 그저 행복이란 단어에 웃을 수밖에 없어. 행복해질 만해서 행복해지고, 불행해질 만해서 불행해지고... 그저 끝도 없는 굴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하면 그만인 얘기다. 그리고 내가 만족하든 말든 이 세상 어딘가에는 불행히 핏물처럼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아무리 누군가를 불행에서 구해내도 누군가는 또 불행해지고 있었다. 그 불행의 근원은 신(神)이며, 신에 의해 미쳐버린 이 세계이다.
'행복이라... 웃기지 말라지.'
그러니까 싸울 수밖에 없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고 나서도 또 싸워야 한다.
한 순간이라도 더 살아가며, 죽음을 벗처럼 여기면서.
그래야 지금까지 날 위해 죽어간 동료들의 유지(遺志)를 갚을 수 있으니까!
이 시대를 사는 녀석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런 결론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타인의 결론으로 내 전생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내던져버리고 전자의 조건을 생각해봤다.
'그럼 전자... [이 세계의 종말]. 망량선사를 아군으로 만들어서 끝도 없이 싸우는 게 시작된다는 소리군.'
나는 이 조건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망량선사에게 말했다.
"전자를 택하면 네가 무생노모의 법문조각을 찾아줄 수 있나?"
[아니.]
"왜? 그 정도로 제약이 풀리면 충분히 가능한 거 아니냐?"
[힘과는 별개로 나는 그 법문과 인과율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내 힘으로 찾을 수는 없다. 그건 천상에서부터 이어지는 제약.]
처음 듣는 소리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제길. 뭐 그딴 제약이... 그럼 나 한테 파천의 가호를 바로 줄 수 있어?"
[주면 어디에 쓰려고?]
"파천의 가호를 써서 법문조각을..."
[그것도 내 힘을 쓰는 것이므로 안 된다.]
"......"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군.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2개의 제안 모두가 거지같다.
내 입장 따위는 전혀 배려하지 않은 폭력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내가 해야할 행동이 명확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힐끔 망량선사를 쳐다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난 선택하지 않겠어! 내가 얻을 건 하나도 없잖아! 너네 맘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마."
이게 내 답이다.
휘둘리느니 선택하지 않겠다!
[그런가?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조력도 얻지 못하고 종말까지 이대로 진행될 것이다. 네 힘만으로 종말을 타개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
[해가 지날수록 상황은 계속 악화될 것이며 내가 너희 인류를 돕기는 불가능해진다.]
그런 문젠가.
전자를 택하면 조금 난이도는 높아지지만 어쨌든 망량선사라는 든든한 우군이 생길 것이고, 후자를 택하면 전쟁 자체를 피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택한 [아무것도 택하지 않는다]는 최악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래도 안 해!"
직감이 강하게 든다.
둘 중 뭘 골라도 강하게 엿을 먹을 것 같은 기분이다.
나한테 이런 직감이 들 때는 선택을 틀린 적이 없다!
[좋다.]
"...야, 화 안 났지?"
나는 혹시 해서 물어봤지만 망량선사가 대꾸했다.
[그럴 리가.]
기분 탓일까? 망량선사는 왠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망량선사가 힐끔 옆에 앉아있던 '손님'을 바라보자 그 '손님'은 잠시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짧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 된 밥이거늘 굳이 날 귀찮게 하는구나. 전생자여...
'...뭐?!'
후웅
나는 흠칫해서 그를 쳐다보았지만 이미 흔적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 있었다. 내가 그 놈이 사라진 자리를 멀뚱히 바라보자 망량선사가 말했다.
[그럼 오늘의 용건은 끝이다. 다시 원래대로 돌려보내 주지.]
"자, 잠깐."
[왜 그러냐?]
"너 저번에 내 흑요석... 월요의 수호자한테서 얻었던 그거 아직 갖고 있지 않냐? 이제 돌려주면..."
망량선사가 꼬리를 좌우로 붕붕 흔들더니 바닥을 탁탁 쳤다.
[싫어. 안 줄 거다.]
"......"
단호하다!
감정해 달라고 줬는데 그냥 자기 걸로 만들어 버렸구만!
나는 할 말을 잃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진소청은 어딨냐? 마을이 사라졌는데 예전에 너한테 맡겼잖아."
[내가 가르치다가 더 가르칠 게 없어서 내보냈다. 지금은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가르쳤다고? 뭐를?"
[술법과 주술. 본인이 배우고 싶어해서 가르쳤다.]
"......"
[무공은 알아서 연마하던데.]
뭐, 뭘 가르쳤다고?
그 천재한테 또 술법을...?
그것도 망량선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내가 황당해서 입을 벌리고 있자 망량선사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고 나는 서서히 눈이 감겼다.
[예전에 말했던 대로, 그는 네가 죽기 전에 널 찾아갈 것이다. 기다리고 있어라.]
나는 잠에서 깨어난 후 전국옥새를 써서 진소청의 행방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무려 1749명이나 있는 동명이인 진소청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순으로 정렬을 해 봐도 진소청은 찾을 수가 없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진소청도 129세였으니 진짜 진소청은 이미 전국옥새로 찾을 수 있는 범위에는 없다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전국옥새로 찾을 수 없다면 특수한 주술이나 결계 안에 있거나 혹은 아예 이 세상을 떠나서 이계(異界)로 가 버린 경우일 것이리라. 어느 쪽이든 간에 지금 진소청을 찾기는 불가능할 듯 했다.
"찝찝하군..."
죽기 전에 날 찾아온다는 건 왜지?
설마 진소청이 날 죽인다는 건가?
뭐 그래도 상관은 없겠지만 동료의 손에 죽는다는 게 기분 좋을 수는 없었다. 내가 복잡한 마음으로 문 밖으로 나서자, 별궁의 커다란 대청에 류하가 푹신한 가죽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효효- 초대황제님 왔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류하가 깔깔대고 있었고, 한 손에는 단말기를 들고 뭔가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넌 왜 여깄냐?"
"그야 비등이 불안정할 수도 있으니까 초대황제님의 보조이동수단으로 온 거지~! 어디 가고 싶으시면 말만 하셈!"
"......"
마, 말투가 뭔가 대단한데...
저런 말투도 있는 건가?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사공린과 천우진은 지금 바쁘지?"
"네-엡. 두 분 모두 엄청 바쁘십니다- 근데 만나고 싶으시면 님은 언제든 가능!"
"...됐어. 오늘은 이 나라를 좀 둘러보고 싶군."
류하가 히죽거렸다.
"관광가이드임까?! 조와~~"
나는 잠시 생각을 했다. 지금 바로 칠요를 각성시키는 작업을 나 혼자 하기엔 위험성이 있으니, 당장 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정도는 사공린이나 천우진이 매우 바쁠 테니 그들한테 무작정 물으러 가는 것도 좋지 않다. 남은 기간이 17년이나 되는데 하루를 조급하게 보내고 싶진 않다.
그렇다면 갈 곳은 하나뿐이다.
"전술무력요원 서열 1위가 폐관수련을 하는 곳에 가 보고 싶군."
그러자 류하의 얼굴이 잠시 암울해졌다.
"으에엑- 저어는 거기가 시른 거신데... 정말 가셔야겠슴까...?"
"응."
"알았슴다~"
위이잉!
류하가 단말기의 앱이란 걸 만지작거리더니 이윽고 소형 전이문이 생겨났다. 류하가 전이문 안쪽으로 발을 내딛으며 말했다.
"백련교(白蓮敎)로 가는 전이문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