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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법문 조각이 사공린과 하나가 되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제길. 그건 잠깐만…. 지금은 일단 급한 일부터 먼저 하자…. 생각해보니 쉽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이군.”
천우진이 학을 떼듯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저놈의 차원문부터 좀 닫는 걸 도와줄 수 있겠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균열이 벌어지기만 할 테니까.”
휙
나는 천우진이 쳐다보고 있는 [눈]이 소환되었던 장소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지금은 그냥 쳐다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하늘같지만, 화안금정을 동원하면 차원에 균열이 생겨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도우면 되는데?”
“간단해. 나한테 방금 했던 것처럼 아그니를 소환해서 저 균열의 중앙에 던져라.”
“저기까지 날아가면 되나?”
“아니. 내가 바로 세계를 속여서 공간을 압축시켜 주지. 신호하면 바로 소환해서 던져.”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정신을 집중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눈앞의 풍경 그 자체가 뒤틀렸다.
우우우우
‘원근감(遠近感)이 마치 현실이 된 것처럼….’
아득하게 멀리 있던 하늘의 균열이 마치 눈앞의 조그마한 공간처럼 구현되어 나타나 있었다. 천우진이 나를 힐끔 쳐다보자 나는 그게 ‘신호’라는 걸 알아채고는, 재빨리 아그니를 꺼내서 균열 안으로 휙 하고 던져 넣었다.
쿠화아아아악!!
마치 열천(熱川)이 탄화하는 듯한 매캐하며 시꺼먼 화염이 치솟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균열이 치직거리며 그대로 굳어버렸고, 점점이 빛을 내면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와 동시에 천우진은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고, 원근감이 현실이 된 듯한 기묘한 광경 또한 해제되었다.
천우진이 말했다.
“됐다. 이 정도로 지져두었으면 종말의 그 때까지 저 차원문의 균열이 세상에 다시 나올 일은 없어.”
“천우진. 방금 그건 환술을 되찾은 거냐?”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이젠 환술을 쓸 수 있겠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넌 전성기 때 23회차 같은 경지에 이른 건가.”
나는 삼황오제 제곡의 간섭조차 막아내었던 그 당시의 천우진을 떠올리며 말했다. 내 질문에 천우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그랬다면 나는 예전에 일루미나티 따위는 새끼손가락으로 부숴버렸겠지. 이번 생의 내 전성기에도 그 정도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어. 그건 차원이 다른 경지다.”
“지금도 충분히 강해 보이는데….”
“스승님의 사도가 되어 허공록에 도달한 경지는 신(神)의 경지 그 자체다. 내가 인간술법사로서 아무리 강력한 초상능력을 연마해도 거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그렇게 대꾸한 천우진의 말에 나는 회차가 지난다고 해서 천우진의 경지가 꼭 극한에 도달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야. 그러고 보니 망량선사의 마을은 어떻게 되었나? 아직 망량선사는 거기에 그대로 있는 건가?”
“…그 얘기를 안 했군.”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스승님이 계시던 마을은 사라졌다. 그리고 스승님은 낙양의 대결계와 동화(同化)하셨어.”
“……?!”
엥?!
나는 아까 사공린과 법문조각의 얘기를 순간적으로 잊어버릴 정도로 놀랐다.
그 망량선사가 결계와 동화했다니?!
“뭐, 뭔 소리야? 그 녀석이 왜…?”
“스승님께서는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대결계에 봉인된 [사상최악의 마(魔)]의 힘이 강대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수십 년 전, 잠시 본질을 드러내셔서 대결계와 동화하셨고, 이로 인해 대결계는 네가 있던 시대보다 열 배 이상 강화되어 있다.”
“……!!”
“네가 지금 보고 있는 이 낙양 그 자체에 스승님이 스며들어 계신다. 대신 스승님의 인격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없어.”
나는 천우진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고 혼란스러웠다.
대결계와 동화하다니?
망량선사가 그런 행동을 한 적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그러니까 망량선사는 죽었단 말이냐?”
천우진은 한숨을 쉬었다.
“…빡대가리야. 진정한 신에게는 삶과 죽음의 개념이 없다는 걸 이해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저 결계와 일시적으로 한 몸이 되셨을 뿐 원하면 언제든 되돌아오실 수 있을 거다. 신에게 있어서 육체와 형태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
“흐음… 그렇다지만….”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종말까지 17년밖에 남지 않았잖아. 이대로 망량선사가 그 최악의 마인지 뭐시긴지를 봉인하고 있어도 종말과 계시가 닥쳐오면 무의미한 거 아니냐? 이러나저러나 멸망하는 건 똑같은 거잖아.”
“…….”
천우진이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했다.
“뭔가 그 녀석이 대결계와 동화하기 전에 남긴 말 같은 건 없었냐?”
“딱히 아무것도….”
천우진도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녀석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스승님께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승님께서 모든 힘을 다해서 봉인할 정도의 존재라면, 일 초라도 이 세상에 풀려나오는 순간 세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말 테지. 도리어 나는 스승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유예를 줬다고 생각한다.”
“흠.”
이제 와서 종말을 막을 방법도 따로 없는데도, 망량선사가 일단 그 고대의 존재를 봉인하는 데만 전력을 다해야만 하다니….
“그나저나 그 아그니라는 사대신기, 엄청난 위력이군. 본래 수백 명의 주술사가 봉인되어서 수십 일 동안 봉인의식을 치러도 닫힐까 말까한 차원문이었는데, 단숨에 화력으로 불태워 버리다니.”
“아!”
나는 아그니가 생각나서 사대신기를 머릿속에서 뒤적거렸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아그니는 원래 생생한 화염으로 둘러싸여 불타는 형상이었지만 지금은 불이 사그라든 잿빛처럼 변해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아그니를 심상세계에서 끄집어내 보았지만 마치 고물이 된 것처럼 보였다.
“…….”
“대가는 치른 셈이군. 사대신기도 한계는 있나.”
“젠장….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대신기에 힘이 충만해질까?”
“나로서는 알 수 없지. 그건 소유주인 네가 시도해봐야 할 일.”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말했다.
“사공린에게 같이 가자. 법문조각 얘기는 그녀 본인이 직접 하는 게 낫겠지.”
파앗!
나는 천우진의 손을 잡자 금세 사공린의 어전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공린에게 말했다.
“사공린. 법문조각과 하나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건 무슨 소리지?”
사공린은 허공에 반투명한 창을 몇 개씩 누르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말을 걸자 창을 닫고는 대답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선조회귀(先祖回歸)가 각성했을 때 자연스럽게 취한 행동이 사고를 일으켰던 거죠. 그 때 저는 법문조각을 먹어치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
나는 그녀의 말에 당황했다.
“법문조각을… 먹었다고? 그럼 뱃속에 있다는 소리인가?”
“아니요. 그보다 본질적인 차원… 저의 영혼과 동화되어 있습니다.”
나는 사공린의 설명에 언뜻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했다. 대충 이해는 했지만 어떤 경과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사공린에게 말했다.
“선조회귀는 대체 언제 한 거지? 그리고 법문조각은 또 어떻게 찾은….”
그러자 사공린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짚었다.
“후우… 그건 아주 복잡하고도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아서 백웅 그대가 전뇌자를 통해서 기억을 얻기를 바랬건만, 설마 전뇌기가 고장 날 줄은 몰랐어요.”
“…….”
“우선 그대가 언제 갑자기 죽을지 모르니 우리 동료들이 법문조각을 찾은 장소와 경위부터 말해드리죠.”
“그래!”
“법문조각을 찾은 장소는 바로 남극(南極)이었습니다. 남극의 가장 깊은 곳…. 마도사조차 출입 불가능한 장소. 무수한 이면세계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다고 불리는 아이테눔 문디(Aeternum Mundi)에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아이테눔 문디?”
내 반문에 대답한 것은 함께 와 있던 천우진이었다.
“그 곳을 찾아낸 건 제갈사였다. [옛 종족]과 여러 번 위험한 거래를 하고 도박을 한 결과 아이테눔 문디라는 이계(異界)의 존재를 알아냈지. 하지만 너무 위험한 장소라서 알아내고도 20년 동안 꼬박 준비를 하고 나서야 도전할 수 있었다.”
“아이테눔 문디가 대체 뭐하는 곳이었길래….”
천우진은 인상을 찡그렸다.
“우리도 잘은 모른다. 아이테눔 문디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건 제갈사 뿐인데 녀석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어. 개자식.”
“설명하지 않았다고?”
“다만 제갈사는 아이테눔 문디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우리 동료들의 수준이 낮다고 했다. 그 당시는 요괴대전이 끝난 상태라서 팔부신중과 싸워서 살아남은 녀석들밖에 없었는데도…. 그 놈의 말로는 웬만한 [옛 지배자]조차 도전하기 힘든 장소라 하더군. …맞는 말이었지만.”
잠시 침묵하던 천우진이 말했다.
“하지만 그 때 선조회귀한 사공린의 힘으로 어떻게든 뚫어서 법문조각을 얻기는 했다…. 기적 같은 확률이었다. 아이테눔 문디의 공략은 거의 그녀가 혼자서 다 했어. 나나 제갈사는 옆에서 보조만 했지. 서문혜는 그때 부상 중이라서 참여하지 못했지만, 참여했어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거다.”
“……!!”
내가 휙 하고 사공린을 쳐다보자, 그녀가 말했다.
“백웅. 그건 폭주상태에 힘입은 행운이었을 뿐입니다. 정상적으로는 [옛 지배자]도 못 뚫는 게 정상일 것입니다.”
나는 사공린의 말에 경악했다.
“노…농담해? 그 정도로 어렵단 말인가?”
“단언컨대 필멸자는 세 걸음도 들어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천우진도 거기서 개죽음당할 뻔 했습니다. 지금의 당신이 모든 역량을 짜내도 아이테눔 문디의 최심부 봉인에 들어갈 순 없어요. 만상지투를 잘 쓰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확실치는 않군요. 거기는 암천향에 못지않은 마경(魔境)입니다.”
“…….”
“그래서 가능하면 당신께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백여 년 동안 아이테눔 문디에 대해 기억나는 모든 걸 전뇌자의 인공지능에 입력해두었는데, 당신은 그걸 얻지 못하는군요….”
“끄으응….”
전뇌자의 데이터를 얻지 못한 건 생각보다 큰 손해인 것 같았다. 아이테눔 문디라는 미지의 초고난이도 이계에 도전했던 경험을 사공린이 다 적어놓았는데 그걸 얻지 못하고 다음 삶으로 전생하면 정말로 아까울 것이다!
나는 짜증이 나서 말했다.
“그놈의 인공지능은 왜 나한테 데이터 전송이 안 된다는 거야?”
“우선 좀 기다려 주십시오, 백웅. 대웅제국의 모든 과학자와 기술진을 동원해서 원인을 알아보지요.”
“후우. 알았어.”
나는 사공린에게 만상지투를 써서 법문조각을 분리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방금 전 천우진의 저주를 섣불리 풀려다가 큰 횡액을 당할 뻔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전후사정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해결책을 남발하면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어차피 지금 당장 법문 조각이 필요한 것도 아니야…. 위치와 획득법을 알았다면 이 이상 욕심 부리지는 말자.’
법문조각 덕분에 사공린의 힘이 강맹해져 있다면 굳이 내가 그녀의 힘을 뺏을 필요는 없다. 도리어 그녀의 힘을 빌려서 물 흐르듯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는 게 훨씬 현명하리라.
“그보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만….”
“부탁?”
사공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백웅. 지금 우리 대웅제국이 지닌 칠요가 몇 개인지 알고 계신가요?”
“음… 일단 내가 수요를 갖고 있다는 것 밖에는 모르는데.”
“총 2개입니다. 화요, 토요지요. 당신의 월요와 수요를 합치면 4개가 되겠군요.”
“화요, 토요? 어째서 그렇게 된 거야?”
내 반문에 사공린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화요는 수백년 후 개기일식의 때를 맞춰서 울룰루에 들어가서 얻었습니다. 억지로 열 방법이 따로 없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죠.”
“공공은? 그가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었을 텐데.”
“우리가 들어갔을 때 공공은 이미 실종된 상태였습니다. 아마 삼황오제가 소멸되면서 그에게 씌어있던 주술의 주박도 약해졌기에 수호자의 업을 버리고 도주한 게 아닌가 싶더군요.”
“으음.”
“금요를 얻으려고 해봤으나 서방수호자의 반대가 거세서 얻지 못했습니다. 다만 토요의 경우는 망량이 측천무후를 설득하는데 성공해서 제갈 일족의 노력으로 얻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완전한 양도가 아니라 무기한 임대의 형식이긴 하지만, 그마저도 제갈유룡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
나 없이도 칠요 중 두 개를 얻어내다니, 동료들의 유능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목요와 금요만 얻으면 바로 칠요의 시련에도 도전할 수 있단 말이군….’
그게 아니더라도 칠요가 이만큼 모여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생각보다 내가 할 일이 줄어들어서 내가 내심 기뻐하고 있자 사공린이 말했다.
“이제 당신에게만 할 수 있는 부탁을 해도 될까요?”
“어떤 부탁이길래 그래?”
사공린이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기한은 17년. 종말이 다가오기 전에 당신의 음신지력(陰神之力)을 이용해서 칠요의 정령을 최대한 각성시켜 주십시오. 이건 망량이 선계로 올라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유지(遺志)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