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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009화 (1,00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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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무력전술요원들과 함께 전이문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사공린이 있는 어전으로 갔다.

“ 물건은 잘 찾으셨나요?”

“ 물론.”

나는 목갑을 들어서 사공린에게 보여주었다.

“ 잘됐군요.”

“ …미안해. 차라리 보물이라도 동료들에게 남기고 갈걸 그랬군.”

나는 씁쓸해져서 중얼거렸다. 목갑에 있는 내용물이 하나도 분실되지 않은 것은 아까 해저에서 미리 확인했었다. 만일 여기 있는 보물들을 동료들에게 절반이라도 남기고 갔다면 동료들은 한결 쉽게 500년을 버틸 수 있었으리라. 동료들이 모조리 세월의 풍상에 소멸하거나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자 사공린이 고개를 저었다.

“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건 없습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었으니 누구도 당신을 원망치 않아요. 그리고….”

“ 그리고?”

“ 그 긴 시간동안 대웅제국의 심장부에 수많은 간자와 침투, 잠입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남긴 보물을 누군가가 혼란 중에 강탈해가서 썼다면 도리어 더 힘들어졌을지도 모르죠. 어떤 종류의 보물들은 분명 그럴 수도 있었죠.”

“ 음….”

“ 우린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런 우리만큼 당신 또한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게 단호하게 말한 사공린이 말을 이었다.

“ 백웅. 당신이 이제부터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지만, 당신은 지금 이 시대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습니다. 아는 게 없다면 미래의 방향을 잡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이 시대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려드린 후 당신의 뜻을 들으려 합니다.”

“ 그래야겠군.”

“ 무천룡을 따라가십시오. 그가 안내해 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현성을 따라갔다.

저벅 저벅

나보다 앞서서 걷던 주현성이 문득 말했다.

“ 지금부터 안내해드릴 곳은 전뇌자(電雷者)가 있는 곳입니다. 원래 내궁에도 전뇌자가 있었지만 팔부신중의 침입으로 부서졌으니 구룡궁(九龍宮)에 있는 초기모델을 보여드리게 되었군요.”

“ 전뇌자? 그건 뭐지?”

“ 먼 미래를 여행하셨다 들었으니 아마도 아실 거라 생각하지만 인공지능(人工知能)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압축되어 만들어진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라고 할 수 있지요.”

“ 음. 그렇군.”

인공지능!

나는 그 개념에 대해서 미래의 파우스트 박사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두뇌로는 이룰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기 위해 수리공학적, 기계공학적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만든 최첨단 기계였다. 그리고 그 인공지능이 극한에 도달하면 궁극의 강인공지능, 메피스토펠레스 라는 존재가 탄생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인공지능한테 나를 안내하는 이유가 뭐지?”

“ 백웅 님께서는 기억을 전송하는 술법을 갖고 있으시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인류는 그렇게 편리한 술법을 갖고 있지 못하니, 과학의 힘을 빌려서 흉내 정도만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흉내를 낼 수 있는 게 바로 인공지능 전뇌자이니, 전뇌자가 백웅 님께 이 시대에 필요한 지식을 단시간에 전송해 드릴 겁니다.”

“ 오! 기억전송능력을 갖고 있다는 건가?”

“ 폐하의 말씀에 따르면 그 흑요석의 술법에 비하면 조잡하고 천박하다 했지만… 나름대로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전술무력요원들도 그 장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으니까요.”

“ 잘 됐군.”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기뻐하면서도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 명경(冥鏡)을 손에 넣지는 못했나 보군.’

명계의 최심부에 있는 보물인 명경에도 기억을 전송하는 능력이 있었다. 다만 명경은 물론이고 현 대웅제국에 명계의 보물이 하나도 없는 걸로 봐서는 내 동료들이 500년 동안 명계까지 도전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 그럼 내가 손에 넣어야겠군. 기회를 봐서 명계에도 가야겠어.’

위잉

나는 주현성을 따라 전자문이 열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온통 차가운 청색 빛 기계로만 가득 찬 그 방 안에 웬 동그란 청색의 옥(玉)이 둥둥 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주현성은 그 옥을 쳐다보며 말했다.

“ 나와라, 전뇌자.”

치리링

“ ……!!”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옥 근처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 환영은 제갈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생전의 제갈부와 너무 똑같은 모습을 보고 내가 깜짝 놀라자 환영이 말했다.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대웅제국의 역사와 문화, 경제, 과학, 인공보패, 연금술, 그리고 세계정세에 관한 것을 모두 긁어모아서 데이터로 만들어 줘. 그리고 이 분께 데이터 기억전송을 부탁한다.”

[ 알겠습니다. 작업완료까지 소모되는 시간 14분 25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현성의 명령에 전뇌자가 대꾸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어서 질문했다.

“ 잠깐! 지금 네 모습은 제갈부의 모습이잖아. 왜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 작업 중단.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전뇌자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 대웅제국 인공지능 전뇌자의 최초개발자가 제갈부이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최초개발자의 위업을 기리기 위하여 모든 전뇌자는 제갈부의 모습으로 홀로그램을 띄우는 게 초기설정입니다. 답변이 되었습니까?]

“ …제갈부가 인공지능을 개발했다고? 혼자 힘으로?!”

[ 아니오. 개발자 제갈부의 개발기여도는 69.6퍼센트로 추산됩니다. 인공지능개발에 협력한 서방과학자 파우스트의 기여도가 나머지를 차지합니다.]

“ 파우스트…!!”

나는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흠칫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주현성이 내게 말했다.

“ 그 말씀을 안 드렸군요. 인공지능은 너무 시대를 앞선 기술이라서 당시 대웅제국의 기술력으로도 단독으로는 개발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방 최고의 과학자인 파우스트 박사에게서 핵심기술을 전해 받은 후 제갈부 님이 재개발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 그게 언제적 일이지?”

“ 제 3제국과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니 19세기의 일… 지금부터 한 세기가 훨씬 넘은 일인 듯합니다.”

“ 그 전쟁에서 제갈부가 죽었다 들었어. 어떻게 죽었지?”

“ 그건 저도 잘….”

주현성이 말을 흐리자 나는 전뇌자에게 제갈부의 죽음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전뇌자가 대답했다.

[ 제갈부는 1884년 뮌헨 수정석비 탈환전에서 나치독일에 의해 소환된 [ 옛 지배자]의 사도인 [ 썩은 행성의 순례자] 할치올레이푸라 와 교전하다가 현자의 돌을 모두 소모하고 살해되었습니다.]

“ 수정석비 탈환전?! 사도?! 대체 뭔 일이….”

[ 나치독일에 의해 수정석비를 탈취당하여 대대적으로 대웅제국의 공습이 이뤄진 작전입니다. 작전결과 아군 78,852명 전사 하였으며 지휘관급 75명이 전사했으나 수정석비의 탈환에 성공하여 전쟁의 승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

나는 대충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마도세력이 모종의 방법으로 수정석비를 훔쳐갔는데, 수정석비는 대웅제국의 근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소중한 보물이라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환하려 든 것이다. 너무 격렬한 전쟁이라서 그 와중에 제갈부는 적이 소환한 지배자의 사도와 싸우다가 결국 전사한 모양이었다.

‘제길….’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제갈부가 이미 죽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들으니까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동료들이 죽어나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꾹 깨물고 있자 주현성이 말했다.

“ 작업재개 시킬까요?”

“ 아니. 하나 더 물어볼 게 있어.”

나는 전뇌자에게 물었다.

“ 파우스트 박사와 대웅제국은 어떤 관계지? 그리고 파우스트 박사는 지금도 살아있나?”

[ 전통적인 협력관계이자 맹우(盟友)입니다. 또한 살아 있습니다.]

“ 파우스트는 어디에 있지?”

[ 위치는 불명입니다.]

“ 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 파우스트와 협력하는 일에 대해서는 제갈사를 비롯한 책사들에게만 일임했다. 제갈사는 실제로 서방의 파우스트에게서 많은 기술을 얻어내는데 성공했어. 하지만 정작 나는 파우스트와 별로 얘기해본 적도 없어….’

어쩌면 그저 서방 과학자로만 대하는 게 아니라 좀 더 그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하는 게 아니었을까? 과학의 힘이 미래의 종말에 통하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부수적인 요소로만 대했던 게 아닐까? 사실 지금까지도 나는 인공지능을 그저 편리한 기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안 되겠다. 다음 생이 있다면, 파우스트 박사에게서 좀 더 많은 걸 알아내야 해. 과학기술의 가능성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서 얻은 기술을 그에게 알려줘서 더 빠른 과학발전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겠어.’

이렇게 미래세계에서 파우스트 박사의 영향력이 지대해진 걸 느끼자 나는 전생전략 자체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 작업 재개해.”

[ 알겠습니다.]

이윽고 주현성이 전뇌자의 작업을 재개시켰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전뇌자는 띠링 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 작업 완료되었습니다. 데이터 전송을 해야 하니 전뇌기(電雷機)를 머리에 써 주십시오.]

“ 전뇌기?”

“ 아, 백웅 님. 이걸 말하는 겁니다.”

주현성이 근처에 있던 웬 둥그런 모자 같은 걸 손에 들었다. 그 모자에는 기다란 기계관 같은 게 달려서 본체기계와 이어져 있었다.

“ 이걸 쓰라는 건가?”

“ 네. 증강현실은 물론이고 지식전송에도 쓰이니까요. 민간의 기술보다 30년은 앞서 있습니다.”

“ 흠….”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전뇌기를 머리에 썼다. 그러자 눈까지 덮일 정도로 푹 눌러쓰게 되었고, 옆에 있던 주현성이 말했다.

“ 백웅 님. 폐하께 듣기로 흑요석 술법은 별다른 부작용이 없고 엄청난 정보를 단시간에 전송가능해도 안전한 것 같습니다만… 전뇌기로 지식전송을 하는 건 그렇지 않습니다. 전뇌신호의 생체에 맞게끔 재배열 후 인식이라는 방식이기 때문에 초기형 양자두뇌로는 연산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 …사실 전뇌기로 지식전송을 하다가 미치거나 뇌가 타버린 사례가 있습니다. 그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때문에 효율성이 좀 많이 떨어집니다.”

“ …….”

“ 흑요석으로 전할 수 있는 지식용량이 10이라면 전뇌기는 1도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송속도도 느리니 감안해 주십시오.”

“ 내 뇌가 타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지?”

“ 네. 다만 두통이 좀 있습니다. 토할지도 모릅니다.”

“ 됐어. 그럼 시작해.”

나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어차피 몇 번이고 죽어본지라 죽음 자체에는 두려움이 없을 뿐더러, 천암비서가 없는 지금도 죽으면 죽는 거라는 걸로 감흥이 끝이었다. 뜻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게 아쉬울 뿐 이제 와서 뇌가 타버린다고 호들갑떨기엔 늦은 감이 있었다.

위이이잉

[ 데이터전송 시작….]

후우웅! 후우웅!

‘으음…. 확실히 이건 좀….’

나는 마치 공중제비를 다섯 번씩 돌아버리는 느낌이 간헐적으로 덮쳐올 뿐만 아니라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편두통을 느낄 수 있었다. 토할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일반인이라면 토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 게다가 지식이 들어오는 속도가… 너무 느려!!’

흑요석 기억전송에 익숙한 나로서는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주현성은 10할과 1할로 비교했지만, 실제로 느껴지는 속도차이는 수십 배 이상이었다. 이 속도로 계속해서 어지럼증과 편두통을 느끼며 받아들이려니 죽을 맛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둔중한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파지직!!

철컹-

나는 갑작스럽게 전뇌기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가벼운 어지럼증에 관자놀이를 한 번 손가락으로 꾹꾹 누른 후 인상을 찌푸렸다.

“ 뭐야?”

“ 괜찮으십니까?!”

“ 무슨 일이냐고!”

주현성이 곤혹스러워했다.

“ 이, 이런 적은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전뇌자!”

[ 부르셨습니까?]

“ 갑자기 왜 기억을 전송하다가 사고가 일어난 거지?”

[ 대상자의 정신에 과학기술로 규정 불가능한 레벨의 방벽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방벽을 뚫으려다 과부하가 일어났습니다.]

“ ……?”

주현성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됐어. 내가 나중에 책이라도 읽지 뭐.”

딱 봐도 이 자리에서 주현성이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럴 바에야 시간낭비하지 말고 나가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 저, 정말 괜찮으십니까?”

“ 그래.”

주현성이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곤 말했다.

“ 이제 천우진 소장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곧장 데려오라는 말씀이 있으셔서.”

나는 주현성을 따라 천우진에게 갔다. 천우진은 파괴된 내궁을 복구하는 공사현장 구석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를 피고 있다가 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 왔냐?”

“ 그 난리를 쳤는데도 서문혜가 갇힌 저 얼음은 깨지지 않는군.”

내가 눈앞의 광경을 쳐다보자 천우진이 대꾸했다.

“ 저건 물리력으로 깨지는 게 아니니까.”

“ …천우진. 이제 말해 봐.”

“ 뭘 말하라는 건데?”

“ 목에 있는 그 낙인, 제갈사가 박아 넣었다고 했지. 제갈사가 만마전의 마왕이란 게 무슨 소리냐?”

“ 전뇌자로 자료 전송받지 않았나? 제갈사가 했던 만행은 다 기록되어 있을 텐데.”

“ 전뇌자 과부하 걸려서 전뇌기란 기계가 터졌어. 규정 불가능한 방벽이니 뭐라느니 하면서….”

“ …….”

천우진이 움찔하고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 …그, 그게 터져?”

“ 아무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녀석은 왜 마왕이 된 거지? 왜 네게 낙인을 찍었냐고.”

푸우

천우진이 흰 연기를 한번 흘렸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이제 와서 과거회상하기엔 늦었고, 너무 멀리 왔어. 또 네 녀석에게 편견만 줄 확률이 높지. 이젠 네가 직접 제갈사를 만나서 말해보는 게 더 나을 거다.”

“ 만날 수 있을까?”

“ 아마도. 놈도 틀림없이 종말과 계시를 노리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말했다.

“ 확실한 건 하나야. 제갈사가 죽지 않는 한 이 저주의 낙인은 사라지지 않아.”

“ …아프지는 않냐?”

“ 아프기만 하겠나? 잠을 잘 때 부적으로 만든 결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매일 몸이 썩어가게 되어 있다. 마왕의 저주라고.”

나는 불편한 눈으로 천우진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동료들한테 죄책감이 쌓이고 있는데 천우진이 퉁퉁거리는 걸 보니 기분이 더러웠다.

그러던 중 문득 생각이 났다.

‘…그래!’

화륵!

나는 사대신기 중에서 불의 신기, 아그니를 꺼냈다. 바즈라는 저번에 쓴 이후로 아직 빛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고 바유는 아예 사용불가능인데다가 신기 바루나는 왠지 나랑 상성이 안 맞을 것 같았다.

천우진이 전자담배를 손가락에 끼우고 멍청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 …너, 너 설마….”

“ 그것도 마력이잖아? 그럼 사대신기를 갖다 대면 낫겠지.”

“ 자, 잠깐! 내가 그걸 생각 못한 줄 알….”

나는 당황하는 천우진을 무시하고는 기다란 철통의 병기처럼 생긴 아그니를 양손으로 들었다. 역시나 무거워서 아직 들기도 힘들었지만, 나는 이윽고 천우진의 목 뒤쪽에 아그니를 갖다 대었다.

“ 윽, 야, 저리 치워…!! 내가 나중에 말하려고 했어!”

“ 뭐?”

“ 저주를 지울 수 있어도 지금 하면 안 돼!! 준비를 충분히 하고….”

“ 왜 안 돼?”

천우진이 다급하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여기 차원문 소환도 같이 걸려있단 말이다! 이걸 없앨 방법이 하나도 없어서 지금까지 놔둔 줄 아냐? 자칫했다가는 외계의 강력한 [ 옛 지배자]의 사도가 이 세계에 출몰해버릴 수….”

“ 아….”

나는 멈칫했지만 이미 아그니가 닿인 상태였다. 그러자 저주가 마치 솜이 흩날리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치직

“ 끄으윽.”

천우진이 신음소리를 흘리자 나는 재빨리 아그니를 뗐다. 저주가 절반쯤 사라진 상태였는데, 거기서 멈추자 갑자기 하늘이 시꺼멓게 물들었다.

쿠르르릉….

암천으로 변한 하늘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눈(眼)이 빼꼼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눈은 마치 이 세계를 관찰하듯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쿠르르르릉….

뭔지는 몰라도 이계의 강력한 존재이며 [ 옛 지배자]가 틀림없었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마력이 오제에 못지않았다.

‘ 절반만 없앤 덕에 완전히 인과율을 얻지 못한 건가?’

천우진은 식은땀을 흘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 …….”

그는 이윽고 떨리는 손으로 전자담배를 입에 물었는데, 이윽고 화가 났는지 나한테 담배를 던졌다.

“ 개새끼야!! 좋은 말을 해줄려 해도 꼭 초를 치냐 니미럴 새끼!! 니가 현세에 나타난 사도랑 싸우게? 사도급을 이길 수 있다손 쳐도 이 제도(帝都)에서 싸우면 사상자가 최소 수백만 명일 텐데!”

“ 아, 미안!! 몰랐잖아.”

“ 으으…. 제기랄…. 어설프게 차원문이 열렸으니 저걸 닫는다고 또 개고생 하겠군.”

“ 차원문?”

“ 방금 저 눈깔이 소환됐던 장소 전체가 차원문이다. 상관가문이 화룡신검을 써서 개지랄했던 것처럼 봉인을 해야만 해.”

투덜거리던 천우진이 말했다.

“ 그래도 절반 정도는 저주가 풀렸으니 약간은 힘을 되찾은 건가….”

나는 지금 천우진한테 내 덕에 저주를 풀었다고 으스댔다가는 정말 사람취급을 못 받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 뭐, 어쨌든 가장 묻고 싶은 거였는데… 무생노모의 법문은 혹시 모을 수 있었나?”

다행히도 천우진은 화를 낼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물론. 500년 동안 법문 중에서 한 조각의 행방을 알아내고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 이상은 불가능했지만.”

“ 한 조각이라. 그건 어딨지?”

“ 사공린이 갖고 있다. 대웅제국이 가진 법문조각은 총 2개라고 할 수 있지.”

“ …그런가. 다행이군. 나중에 그녀가 내게 보여줄 수 있겠지?”

“ 아니.”

“ 응?”

이어진 천우진의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사공린과 법문조각은 한 몸이 되었어. 그녀가 죽기 전엔 나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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