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008화 (1,005/1,615)

1008====================

사신지혼(四神之魂)

마왕 제갈사라고?

뜻밖의 말에 내가 멍해있자 천우진이 말했다.

" ... 됐고, 우선은 날 따라와라."

" 알았어."

" 부축은 됐다."

내 손을 뿌리치고 일어선 천우진은 다소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부적을 꺼내서 무언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우우웅

" 하압."

잠시 후 눈 앞에 팔괘형상의 진이 바닥에 새겨졌다. 아마 공간이동진인 것 같았는데, 나는 그걸 보자 천우진이 약해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 천우진은 과거에도 수십리 단위의 축지법을 아무런 준비없이 썼다. 그런데 부신술의 도움을 받으면서 긴 주문까지 외워야 하다니...'

환술이 봉인되었다는 건 천우진의 역량 대부분을 봉인당한 거나 다름없는 듯 했다. 환술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다른 분야의 역량까지 영향을 미친 게 틀림없다.

파앗

나와 천우진이 걸음을 옮겨서 진 위에 올라가자 빛과 함께 모종의 장소로 향할 수 있었다. 나는 사공린이 있는 어전에 도착할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장소가 눈 앞에 보이자 두리번거렸다.

" 여긴 어디야? 어전에 가는 게 아니었나?"

" 거울을 봐라. 지금도 한창 싸우고 있잖나. 괜히 가봤자야."

" 음."

나는 천우진의 말에 사공린에게서 받은 거울을 살폈다. 그러자 무력전술요원이라 불리는 자들과 일루미나티의 자객들이 한데 얽혀서 무시무시한 격돌을 하는 게 보였다. 너무 혼잡하고 격렬한 광경이라서 그 장소에 뛰어들면 개싸움을 하는 것 외엔 도리가 없어 보였다. 나는 거울을 보다가 말했다.

" 그럼 도와주러 가야하지 않나? 왜 다른 곳으로..."

" 괜한 참견이다. 이쪽에 사공린이 있으면 상대가 누구든간에 절대로 질 일은 없다. 일루미나티의 자객 따위가 사공린을 이길 수 있었다면 인류는 이미 멸망했겠지."

" ......?"

" 아무튼 네가 귀환했으면 자잘한 일보다는 큰 일을 먼저 해야한다. 시간낭비를 줄이자고."

그렇게 대꾸한 천우진이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내가 살던 시대와 현저히 다른 양식의 거대한 건물을 걸어가면서 여기도 전자장비가 가득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절로 움직이는 계단이나 하늘을 떠다니는 선반같은 게 많이 있었다. 회색빛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기둥이 여기저기에 있었고 계단을 몇 번인가 올랐다.

" 여기는 앞으로 네가 계속 들르게 될 장소다. 이 기회에 오는 게 좋다."

" 여기가 어딘데?"

" 오악(五岳) 중 화산(華山)의 천제단(天祭壇)이다."

" 뭐?!"

여기가 화산의 천제단이라고?!

나는 예전에 돌아다녔던 5군데의 천제단 중 화산의 천제단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분명 화산의 천제단은 고봉준령의 산꼭대기에 있었고 산야에 뒤덮인 제단의 형식이었다. 적응이 되지 않아서 놀라고 있자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 그거 알고 있나? 화산에 있던 화산파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흥한 무림문파가 되었지. 그건 그들의 본산이었던 화산을 대웅제국에 넘겨주는 대신에 백련교 못지않은 국가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림문파라기보다는 화산파 자체가 다국적 기업이 되었고 화산파 장문인은 매출 10조단위 기업의 CEO이자 고급경호원을 배출하는 장사꾼에 가까워졌지만."

" ......"

무림인이 장사꾼이 되었다고?

영 알아먹을 수 없는 소리라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천우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 나이를 먹으니 나도 잡설이 많아졌군. 후... 아무튼 여기에 와야 천계(天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삐익

[ 내궁연구소장 천우진. 특급 시큐리티 취급인가자, 인증되었습니다. 천제단 개문(開門).]

천우진은 품에서 웬 네모난 걸 꺼내더니 벽에 갖다대었고, 삑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천우진과 함께 안에 들어가자, 거대한 공동 내부에는 과거에 봤었던 화산의 천제단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500년 전의 모습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다른 시설들은 발전시켜도 원형이 되는 제단만큼은 보존한 모양이었다.

나는 천우진에게 말했다.

" 뭘 새삼스럽게 여기에 데려오는 거야? 지금이야 비등이 없어서 맘대로 왔다갔다 할 수 없지만, 원래도 천제단을 종종 이용했었잖아."

" ...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천계가 인과율의 파멸을 피하기 위해서 차원계 자체가 멀어졌다고 말했었지? 그리고 천계의 신선과 영수가 차단되었다고."

" 음. 그랬었지."

" 사실 그 시점에서 천계의 모든 지원이 끊긴 거였다. 천계에서 소환하는 계열의 술법은 모두 막혀버렸지."

천우진이 액상형 전자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한 모금을 빨던 천우진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 하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천계의 도움을 아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방금은 잘난 듯 얘기했지만 세상에는 팔부신중도 마왕도 건재한 상태였어. 분명히 말해서 하나하나가 인간의 힘만으로 감당하기엔 버거운 상대였기에 천계 투선과 신선들의 지원이 필수적이었어. 그래서 망량 사형이 방법을 만들었지."

" 방법?"

" 그래. 사형이 구천현녀의 도움을 받아서 천제단을 개조했어. 천제단을 통하면 천계와의 거리가 과거처럼 짧아져서 여기서는 신선을 소환하는 게 가능하다. 공양의식과 축복가호도 가능해. 세계에서 오직 오악의 천제단만."

" 오오! 다행이구만!"

그럼 내 보물이 들어있는 목갑만 되찾으면 다시 천계에 공양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잖아? 내가 다행이라 생각하자 천우진이 미간을 모았다.

"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건 도계(道界)의 전설로 남은 망량사형의 위업이야."

" 응?"

" 사형은 이 최소한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 58년동안 쉴새없이 일했어. 이후에 수백년간 인간계의 일을 다 한 다음에는 선계로 올라가서 또 일하러 갔다고. 빡대가리 새끼야."

" ......"

" 후, 씨발... 네가 돌아올 거라고 믿었으니까 이 짓을 한 거겠지, 사형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중얼거린 천우진이 담배를 한동안 계속 피웠다.

기묘한 침묵이 감돌던 중 천우진이 말했다.

" 아무튼 여기까지 왔으니 망량사형을 보고 가라."

" 그를 볼 수 있나?"

" 예전에 이미 공양물을 바쳐두어서 한 번 정도는 선계와 직통연결이 가능하다."

우우우우 -

천우진은 근처에 있던 기계장치 중에서 웬 단추를 꾹하고 눌렀고, 그러자 천제단에서 커다란 빛이 나면서 공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천우진이 술법의 언어를 외우면서 수인(手印)을 맺었고, 이윽고 제단 위에 빛으로 만들어진 환영이 떠올랐다.

파앗!

그 환영은 이윽고 인간의 모습을 갖췄고, 나는 그 환영을 보자마자 외쳤다.

" 망량!!"

[ ... 백웅이군. 역시 돌아왔구려.]

망량은 생전과 다를 바 없는 이목구비이며 생전의 모습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학창의(鶴氅衣)를 입고 있으며 한 손에는 백우선을 쥐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예전에 봤던 전설의 제갈무후와 유사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가 아닌 신선 특유의 영언(靈言)을 쓰고 있었다.

" 자, 여기 내 기억을 보시오."

나는 망량에게 즉시 흑요석을 건네주려 했다. 하지만 망량은 흑요석을 받지 않고 멀뚱하니 쳐다보다가 백우선으로 내 흑요석을 밀어내었다.

' 어?'

명백한 거절이었기에 내가 당황하자 망량이 말했다.

[ 잊었소? 이 또한 공적인 자리. 공양의식이기도 하오. 내가 얻은 기억은 그대로 천계의 간부 전체가 공유하게 되오. 아무리 인간계와 천계의 거리가 멀어졌다지만 이계에 그대의 기억을 전하는 건 위험한 행위.]

" 아!"

[ 사정은 나중에 듣겠소. 지금은 대라신선(大羅神仙)이자 현허궁(玄虛宮)의 궁주인 망량 제갈현으로서 그대의 요구를 들어주리다.]

" ......"

망량은 지극히 냉철한 태도였다. 여태까지와는 다소 이질적이라서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그가 대라신선으로 승급했다는 걸 알게 되자 약간 이해가 되었다. 대라신선은 인간일 때 가지고 있던 희로애락애오욕을 상당부분 거세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는 망량에게 말했다.

" 망량. 나는 기절한 동안에 내 모든 것을 분실했소. 천암비서는 물론이고 보물이 들어있는 목갑을 분실했소. 천암비서와 목갑의 위치를 알고 싶소."

[ 좋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망량은 백우선을 들더니 잠시동안 떨쳐내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 천암비서는 내 힘으로는 감지할 수 없소. 역시 그건 차원이 다른 존재인거같군... 이정도 고위존재가 되었는데 존재조차 알 수 없다니.]

" 음...!!"

[ 다만 그대의 목갑은 찾았소. 그건 태평양의 해구 심처에 가라앉아 있소. 세상에서 가장 깊은 장소이니, 충분한 준비를 하고 가기를 권하겠소.]

" 해구? 바닷속 깊은 곳이란 말인가."

[ 위치는 그대의 머릿속으로 각인시켜 주겠소.]

삐잉!

망량의 손가락이 빛나자 다음 순간 내 머릿속에 목갑이 가라앉은 장소 근처의 풍경과 대략적인 위치가 정보로 들어왔다. 이 정도만 알고 있으면 나 혼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나는 기뻐서 외쳤다.

" 고맙소!"

[ ......]

망량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 백웅이여. 천계의 대라신선으로서 하나의 부탁을 하겠소. 받아들이겠소?]

" 부탁? 얼마든지 하시오."

이어진 망량의 '부탁'은 전혀 뜻밖의 부탁이었기에 나는 당황했다.

[ 30년 전부터 투선 여동빈(呂洞賓)이 천계에서 자취를 감추어서 찾고 있소. 그의 행적은 천계에서 백방으로 찾아도 알 수 없으며, 대웅제국 또한 알 수 없다 하오. 허나 백웅 그대의 힘이라면 어쩌면 여동빈의 행적을 알아낼지도 모르니, 부탁하오.]

" 여... 여동빈이? 왜 사라졌소?"

[ 그건 알 수 없소. 다만 그는 자신의 화룡신검을 두고 사라졌소.]

" ......"

미래세계로 오자 뜻밖의 일이 연속되는 것 같다.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소."

[ 백웅. 부디 다음에 볼 때까지 잘 버티시오...]

파앗

망량과의 연결이 끊겼다. 나는 공양의식에서 망량을 보게 된 경험은 생경한지라 다소 멍해져 있었지만, 이내 천우진의 말로 정신을 차렸다.

" 좋아. 이제 목갑을 찾으러 가라."

나는 투덜거렸다.

" ... 바닷속 해저 수십 리에 다짜고짜 들어가서 찾는 건 너무 어렵잖아. 적어도 배 정도는 타고 가고 싶은데."

" 알았다. 다시 말하는데 우린 시간이 별로 없다. 일분일초가 아까워."

" 뭐? 종말까지 17년은 남았다고 했잖아."

천우진이 액상담배를 질끈 깨물었다. 표정이 한층 험상궂어졌다.

" 제기랄... 네가 귀환했다는 소식이 어둠의 세계에 퍼지게 되면 군웅할거가 일어난다. 지금까지 잠잠하던 놈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서 대웅제국에 도전할 거라고. 적은 일루미나티 뿐만이 아니야. 힌두의 시바교단, 장미기사단이라던가 아케미스트 길드(Archemist guild), 어둠의 교황청같은 놈들."

" ... 다른 적이 더 있단 말이냐?"

" 현 대웅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대통합한 역사상 최강의 대제국이다. 굳이 일루미나티가 아니더라도 대웅제국을 싫어하는 어둠 속의 세력들은 차고 넘쳐. 그런 놈들이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물건을 다 찾아놔."

" 으음."

" 기억 줘봐. 어디로 가면 빠를지 찾아볼 테니까."

나는 흑요석으로 방금 전에 망량에게서 받았던 목갑의 위치를 천우진에게 전송했다. 천우진은 기억을 지도와 대조해서 더듬어보다가 말했다.

" ... 배로 간다면 일본 북해도에서 가는게 빠르겠군."

" 좋아. 공간이동술법으로 가는 건가?"

" 아니. 내가 오늘 쓸 수 있는 술법과 부적은 다 떨어졌어."

" 그럼 어떻게 하라고..."

" 기다려 봐.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됐어."

그 때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습격자들을 모두 처리했습니다."

파앗!

어느 새 실내에 사공린이 걸어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황금빛과 함께 출현했는데 곁에는 무력전술요원 9명이 동행해 있었다. 사공린이 나타나자마자 말했다.

" 백웅, 사정은 들었습니다. 류하와 동행하시면 바로 목갑을 찾으러 가실 수 있을 겁니다."

" 사공린! 적들의 습격은 막아낸 건가?"

" 네."

" 다치지는 않았나."

그러자 사공린 곁에 있던 무력전술요원들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없는 질문을 들었다는 듯한 반응이었지만 사공린은 빙긋 웃었다.

" 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백웅."

" ... 천우진한테서 얘기를 자세히 못 들었는데, 사공린 너는 500년 동안 대체 어떤 힘을 얻은 거야?"

" 글쎄요. 저 자신도 이 힘이 어떤 힘인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힘이든간에 당신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능력에는 미치지 못하지요..."

말을 얼버무린 사공린이 말을 이었다.

" 태평양이면 일루미나티의 영향력도 미치는 곳입니다. 천우진의 말대로 지금 당장 움직여야겠군요. 전술무력요원 다섯 명을 동행시키겠습니다."

" 이 쪽에는 긴나라가 기계로 개조되어서 나타났어. 그런 놈이 또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건가?"

"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술무력요원들이라면 당신의 발목을 붙잡지는 않을 겁니다."

" 좋아. 고마워."

말이 끝나자 사공린 곁에서 다섯 명의 전술무력요원이 걸어나왔고 저마다 공손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 전술무력요원 서열 2위, 무천룡(武天龍) 주현성입니다. 초대황제시여, 또 뵈서 영광입니다."

주현성에 이어 두 명의 장년인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주현성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보였으며 적어도 사, 오십대로 보였다.

" 전술무력요원 서열 3위, 유성객(流星客) 고병(孤兵). 말로만 듣던 그 분... 잘 부탁드리오."

" 전술무력요원 서열 4위, 삼중마살(三重魔殺) 석관필(碩管泌). 전설을 뵈어 영광입니다."

그들 다음으로는 마치 쌍둥이처럼 거의 똑같이 생긴 초상기인 두 명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했다.

" 전술무력요원 서열 5위, 초상기인 류하! 높으신 분이었네 희희~!"

" 전술무력요원 서열 6위, 초상기인 류오(劉烏)..."

나는 그들의 소개를 듣고서 힐끔 그들을 살폈다.

' 서열 2,3,4위는 다들 전용병기를 갖고 있고 무공수준이 제법 높군. 유성객 고병과 삼중마살 석관필 저 두 명은 초절정의 상위급 무공을 지니고 있다. 순수한 무공이라면 유성객이 가장 강한가... 저 자는 내 시대를 기준으로도 최상위 고수다.'

기도(氣道)만 봐도 알 수 있다.

주현성도 초절정에 발을 들였지만 3위와 4위는 한참 전에 올라서서 상위경지를 터득한 자들이었다. 내 시대에도 적어도 구파의 장문인 이상의 무공을 지니고 천하를 오시했을 정도의 무위다.

전술무력요원의 서열 순위는 순수한 강함이라기 보다는 잠재력이나 종합적인 작전수행능력을 총괄한 것 같았다. 그리고 무천룡 주현성이 쓰던 마룡쇄가 인공보패라고 했던 걸 보면, 유성객의 어깨춤에 있는 기다란 장도(長刀)나 삼중마살 석관필의 어깨에 메고 있는 저 무기도 인공보패이리라.

그리고 뜻밖인 건 초상기인 류하와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녀석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류하는 여자아이였지만 류오는 남녀를 구분하기 힘든 외모긴 했지만 남자로 보였다.

' 쌍둥이남매인가?'

류하는 밝고 활기차 보였지만 류오는 음침하고 꽤 소심해 보였다. 나름대로 특징이 있어보이는 전술무력요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나는 의아해져서 말했다.

" 사공린. 내게 전술무력요원 중에서도 상위요원을 붙여준 것 같은데, 어째서 서열 1위는 나오지 않는 거지?"

" 그녀는 명목상으로만 1위입니다.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건 아홉 명이지요. 그리고 현재 폐관수련중이라서 부르기가 어렵군요."

" 그게 누군데? 강한가?"

" 네, 물론. 아마 현 세계에서 가장 강한 필멸자 중 하나일 겁니다. 그녀는 당신도 아는 사람이며 수많은 역대 전술요원들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누구야 그게?

" 그녀의 이름은..."

이윽고 사공린이 그녀의 이름을 말해주자, 나는 눈을 부릅떴다.

그 녀석이 살아있었다고?!

지금까지?!

" 노, 놀랍군. 어떻게."

" 그럼 바로 출발해주시길."

" 알았어."

잠시 후 류하가 단말기를 손가락으로 몇 번 터치하더니 말했다.

" 천우진 소장님이 입력해주신 좌표, 찾았어요! 그럼 앱을 깔고 닥전송~"

삐익

파앗!!

우리는 곧장 소형 전이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전이문 밖으로 나오자 초상기인 류오가 마찬가지로 단말기를 꾹꾹 누르더니 말했다.

" 나, 초상기인 류오가 명한다. 물리법칙 제어. 공간형성."

삐익!

바닷속 깊은 곳으로 소환되었는데도 류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지상에 발을 디딘 것처럼 물에 젖지 않았다. 인공적으로 이 해저 일대만 공기가 차 있는 지대가 된 것 같았고, 심지어 해저인데도 인공적인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신기해져서 류하에게 말했다.

" 너희는 초상기인인데 쌍둥이남매인 건가?"

그러자 류하가 기분이 좋은지 빙글 돌았다.

" 맞어요. 누나한테 잘해라 류오야!"

류하가 류오의 뺨을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악동처럼 킥킥대자 류오가 발작하듯 말했다.

" 염색체 배열만 달라진 실험체잖아... 뭐가 누나야... 넘버링으로 구분하자면 류하는 15699, 나는 15700! 인간들은 이런거 보고 남매라고 하나?!"

류하가 더 세게 손가락으로 류오의 뺨을 찔렀다.

" 닥쳐. 그러니까 니가 맨날 징징대는 까마귀(烏)라는 이름이 붙은 거 아냐?"

" ......"

" 히히~ 류오는 바보야~"

류오는 입을 다물어 버렸고 류하는 재밌다는 듯 류오를 갖고놀았다. 그 촌극을 보고 있던 무천룡 주현성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 죄송합니다. 그럼 최선을 다해서 목갑을 찾겠습니다."

" 알았어. 부탁해."

" 그럼... 마룡쇄여!!"

촤라라락!!

주현성은 저번처럼 철쇄를 몸에 휘갑고 마룡쇄를 갑주형태로 장비했다. 그리고 주현성 옆에 있던 유성객 고병과 삼중마살 석관필 또한 자신들의 병기를 꺼내들더니 마찬가지로 시동어를 영창했고, 마찬가지로 갑주를 몸에 장비했다.

나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 그 갑주를 인공보패라 하던데 그걸 장비하면 신체능력이 올라가나?"

주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약 다섯 배 정도... 오감도 강화됩니다. 그리고 의념기를 강화시켜주는 효과가 있고, 무엇보다 연금술의 극의를 담은 핵(核)이 건재하면 몇 번이고 자동수리됩니다."

" 호오!"

" 저희는 이걸 전술보갑(戰術寶甲) 형태라고 부릅니다. 평소에는 보패로 사용하다가 몸에 장비해서 쓸 수 있죠."

의념기를 강화시켜준다고?

' 저거, 내가 장비하면 어떨까...'

내가 생각보다 굉장한 전술보갑에 놀라고 있을 때 그들이 빠른 속도로 뛰어다니며 목갑을 찾기 시작했다. 오감을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사용해서 목갑을 빠르게 탐색하려는 듯 했다.

그렇게 약 한 시진이 지났을까?

유성객 고병이 한 손에 목갑을 들고 와서 말했다.

" 이게 맞습니까? 초대황제시여."

" ... 맞아."

나는 감개무량한 눈으로 목갑을 받아들었다.

이로써 천암비서를 제외한 500년 전에 모았던 보물들을 모두 되찾은 것이다.

' 근데 천암비서는 어떻게 찾지? 뭐... 방법이 있긴 하겠군.'

그 고양이라면 찾아줄지도 몰라.

그 때였다.

나는 문득 뭔가를 감지하고는 해수면 쪽을 쳐다보았다.

' 엄청난 기(氣)...'

하지만 인간의 기가 아니다. 훨씬 이질적이며 요이(妖異)한 무언가의 기운이다.

그리고 그 기의 총합이 내가 지금 가진 기력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최소한 10배 이상! 말 그대로 불멸자의 반열에 존재하는 자의 힘이다.

쿠구구구!!

그 기는 잠시동안 이글거리며 바다 위쪽을 휩쓸더니 지나가 버렸다. 나는 한 순간 비쳤던 그림자가 엄청나게 거대하다는 걸 깨달았다.

저건 뭐지?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주현성이 말했다.

" 요괴왕(妖怪王)이 지나갔군요."

" 요괴왕?"

" 원래 요괴왕은 미후왕이라 불리는 존재였다는데, 초대황제께서 실종되신 후 새로운 존재가 요괴대전 이후 군마들을 통솔하여 새로운 2대 요괴왕이 되었다 합니다. 그 존재는 종종 태풍같은 자연재해와 함께 세상에 출현한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 ......"

" 그럼 돌아가시죠."

왜일까?

나는 소형 전이문에 발을 옮기면서, 방금 전 지나쳐갔던 요괴왕과 조만간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