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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긴나라가 뿜어낸 광선은 한동안 소멸되지 않고 계속해서 빛을 발했다. 어찌나 범위가 넓은지 이미 내궁은 모두 파괴되었고 황량한 밤하늘이 등 뒤에 보이고 있었다. 나는 무쌍패로 계속해서 광선을 무효화시키고 있었지만 계속 집중력을 유지시킬 수는 없었기에 기회를 틈타서 광선의 범위를 빠져나왔다.
멸혼보!
파앗
내가 빠져나와서 허공답보로 긴나라를 쳐다보자, 어느 새 옆에 와 있던 천우진이 마찬가지로 밤하늘에 둥둥 뜬 채로 말했다.
" 일루미나티는 네가 마스터 클래스, 절대지경이란 걸 알고 저 놈을 보냈다. 절대지경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보내온 거겠지."
" 흐음. 팔부신중이라면 뭐..."
" 일단 도망쳐라. 그게 낫겠다."
갑작스러운 천우진의 말에 나는 약간 놀랐다.
" 뭐? 아무리 팔부신중이라지만 내가 수요도 갖고 있고 너랑 힘을 합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천우진은 싸늘하게 내게 염파를 보냈다. 만에 하나 도청당할 위험을 염려해서인 듯 했다.
[ 멍청아.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넌 지금 천암비서가 없잖아. 만에 하나 저놈한테 치명상을 입어서 죽어버리면? 전생이 끝나버리면 대체 어떻게 할 셈이냐?]
" ......"
[ 신호 줄 테니까 준비해.]
천우진의 말이 옳았다. 지금 천암비서가 없는 상태에서 강적과 섣불리 싸우다가 죽게 되면 모든 게 끝장일 수도 있다. 끝장이 아닐 수도 있지만 거기에 기대를 걸기에는 내가 짊어진 게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무리하지 말자.'
이윽고 천우진이 주먹을 꽉 하고 움켜쥐었다.
" 짓눌려라!"
우드득!!
그러자 한창 광선을 뿜어내고 있던 긴나라의 몸이 보이지 않는 힘에 당한 듯 우그러졌다. 꽉꽉 눌려서 압축되어가는 인면조 긴나라의 모습을 보면 저 한 방으로 끝장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윽고 긴나라에게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 하이퍼 레벨(hyper level)의 염동(psychic) 감지. 물리력 하중 4293 킬로톤으로 측정... 염동소멸장(psychic distortion field) 전개.]
파앙!
긴나라의 몸 가운데에서부터 무형의 파장이 육각형으로 뿜어져 나오더니 이윽고 압력을 완전히 떨쳐내면서 몸을 원래대로 폈다. 특수한 금속으로 되어있는지 우그러진 흔적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 음... 이건 기회가 아니야. 도망치기도 싸우기도 애매하니 가만히 있어야겠다.'
나는 지금 애매하게 움직여봐야 손해만 본다는 걸 알았으므로 일단 경계태세만 유지했다.
그 모습을 본 천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 역시 최신모델은 염동소멸장이 탑재되어 있나? 초기모델에는 염동력이 잘 통했는데 기술발전속도가 경악스럽군."
나는 의아해서 말했다.
" 야. 환술(幻術)은 안 쓰는 거야? 그건 네 특기가 아니라 상단전 능력 같은데..."
" ......"
침묵 후 이어진 천우진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 내 환술능력은 나치독일과의 세계대전 이후 봉인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 내 역량은 전성기의 절반이하야."
" 뭐?!"
천우진이 환술을 못 쓴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 그러니까 빨리 튀어. 더 귀찮아지기 전에!"
버럭 소리를 지른 천우진이 품속에서 부적을 열 장 꺼내더니 전방으로 쏘아냈다.
부신술(符信術)
영허원진(靈虛元陣)
그러자 긴나라가 인면에서 음파를 뿜어내었고, 부적이 음파에 닿이자마자 원형의 결계가 허공에 소환되었다. 그리고 원형결계가 자연스럽게 긴나라를 감싸 안자 순간적으로 긴나라가 멈칫거렸고, 놈이 다시 기계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 타오 스킬(Tao Skill) 감지. 씰 메이커(seal maker) 타입. 에너지 방출로 파괴개시.]
퍼버벙!!
긴나라가 전신에서 광채를 내더니 엄청난 광량(光量)과 함께 영허원진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상당한 고급술법으로 보였는데도 바로 결계부신술을 부숴버리는 걸 보면 긴나라가 갖고 있는 능력이 매우 높은 것 같았다.
그 순간 천우진이 이를 악물며 내 쪽을 쳐다보았고, 나는 그 눈빛이 목숨을 걸고 천우진이 이 자리를 막겠다는 결사의 의지란 걸 알아차렸다. 아마 황급히 이 자리를 탈출하라는 신호일 것이리라.
' 안 돼.'
나는 동시에 그것만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격전을 수백 번이나 반복했던 나는 알 수 있다. 이 자리에 천우진을 내버려두고 나 혼자 도망치면 천우진은 반드시 살해당한다. 저 긴나라는 생전의 이성은 갖고 있지 못했지만 가공할 과학기술의 결집체인데다 천우진의 술법과 염력을 모두 파해할 수 있으니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천우진의 말이 맞다.
긴나라한테 지면 전생이 끝장날 수 있으니 도망쳐야 하는 게 옳다. 하지만 - 지금 내게는 동료를 지키면서 이기는 게 더 옳은 길이다!
' 싸우자!'
나는 생각이 끝난 순간 그대로 수요를 휘둘렀다.
의념천주(意念天柱)
절대지경(絶對之境)
무량단(無量斷)!
푸콰콱
수요가 만들어낸 실날같은 궤적이 전방의 공간을 통째로 갈랐다. 그러자 빛을 뿜어내고 있던 긴나라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고, 궤적이 만들어낸 한 줄의 선을 기점으로 공간이 쩍하고 비틀려서 무너졌다.
콰과광
쾅! 쾅! 쾅!
폭음과 함께 긴나라가 뒤로 튕겨져 날아갔고, 그 폭음은 무려 열 번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저게 일격에 해치웠다는 신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 음..."
생각대로라면 두 번 다시 붙을 수 없게끔 매끄럽게 무량단에 잘려나가야 한다. 그런데 요란하게 폭음을 내며 뒤로 날아갔다는 건, 무량단의 절단력을 상쇄시키며 버텼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대에서 팔부신중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전투기계라지만... 절대지경의 참격에도 즉사하지 않는 내구력이라니?
' 그래도 이 정도면 할 만할지도 몰라.'
투지에 불이 붙어서 팔에 힘이 불끈하고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천우진이 버럭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 이 빡대가리야! 도망치랬잖나!"
" 도망치면 네가 죽는데 어떻게 도망치란 거냐."
" 어차피 종말이 오면 죽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게 대수냐? 대업을 그르치지 말고 지금이라도 튀어!"
" 됐어. 이길 거니까."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연기를 내며 땅바닥에 처박힌 긴나라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걸 볼 수 있었다.
[ 포스 리덕션(force reduction) 기술 적용불가... 외갑방어율 43%로 하락... 본부에서 전투속행의 신호 수신.]
긴나라의 눈이 기계 특유의 차가운 빛을 내뿜으며 빛났다.
[ 오버차지(Over Charge) 모드. 본체 어빌리티 사용개시.]
투확
긴나라가 벌떡하고 자리에서 뛰어오르더니 이번에는 본 적 있는 기술을 사용했다.
뀨우우우 -
초영난화(超英亂花)
빛이 광탄의 형태로 긴나라의 날개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수천 개의 광탄이 무수한 궤적을 뿜어내며 물샐틈없이 나를 향해 발사되기 시작했다. 아까의 광선과는 다르다는 게 느껴졌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기술은 내가 예전에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그래. 팔부신중이 서왕모 본체와 피터지게 싸울 때... 긴나라가 저 기술을 쓰는 걸 본 적 있어!'
그렇다면 이건 과학기술로 발사하는 광선이 아니라 긴나라 본연의 권능인가! 나는 멸혼보를 써서 광선의 궤적을 회피하려 했으나 한 순간, 멸혼보로도 피할 수 없는 각도로 다섯 개의 광선이 날아드는 걸 알아차렸다. 역시 팔부신중 긴나라 본체의 기술다웠다.
' 큭, 무쌍패는 실패하면 죽을테니 여기선 안전하게...'
호신강기 전개!
퍼엉
나는 급히 호신강기로 광선을 막아내어서 큰 피해는 없었지만 압력 때문에 어깨가 욱신거렸다. 호신강기로 거의 다 막았는데도 이 정도라면 제대로 맞았다면 상체가 날아갔으리라. 나는 이를 악물고는 재차 허공을 딛고는 멸혼보의 극성을 펼치며 긴나라에기 덤벼들었다.
" 으아아아!!"
뇌신검무(雷神劒舞)
일섬(一殲)!
콰직!
근접해서 뇌신검무의 절초로 일섬을 그은 직후, 나는 놈이 엄청난 속도로 베인 부분을 재생하는 걸 보자 소름이 돋았다. 이 찰나의 순간에 재생력이 느껴질 정도라면 가히 불사신이나 다름없었다.
틀림없다. 아까 무량단에 베였을 때도 베인 직후에 바로 재생했기 때문에 깔끔하게 안 잘린 것이다. 그리고 무량단의 충격력을 분산시켰기에 폭음이 일어났으리라.
' 제, 제길, 단순한 검격으로는 이런 놈을 일격에 해치울 수 없어. 그럼 잘게 많이 베어볼까나...'
나는 이 놈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좀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장 오의 천참만륙의 초식으로 전환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내 눈에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 엉? 저거 뭐야.'
일섬으로 놈을 크게 벤 덕분일까? 동그랗고 펄떡거리는 둥근 모양의 철이 긴나라의 몸통 안에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재빨리 동작을 바꾸어서 다른 절기를 시전했다. 수요가 검집에 들어감과 동시에 내 오른손이 찰나의 순간을 훔쳤다.
만상지투(萬象之偸)!
파밧
다음 순간 내 손에는 둥근 모양의 철이 들려 있었다.
' 좋아! 훔쳤다!'
나는 만상지투로 구체를 빼내자마자 뒤로 슥하고 빠졌는데, 그러자 긴나라의 움직임이 갑자기 멎었다.
[ ......주동력기관... 데미갓즈 하트(demigods heart) 소실... 빠른 대체요망... 부동력기관 작동... 오버차지로 인해 사용불가...]
위이이잉
이이잉
[ 정지.]
풀썩
뭔가 헛소리를 지껄이던 긴나라의 기계는 잠시 후 눈에서 빛이 꺼지더니 그 자리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 ......"
음, 이긴건가?!
나는 위에 떠있는 상태로 지켜보던 천우진에게 외쳤다.
" 야, 이거 봐. 긴나라 잡았다고! 괜히 쫄았잖아!"
" ...허어."
천우진은 한동안 할 말을 잃었는지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 네 녀석은 평소에는 멍청한데 가끔 싸울 때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만..."
" 에라이. 한 마디 솔직하게 칭찬해주면 어디 덧나냐?!"
" 됐고 일단 거기서 벗어나라. 위험하다."
" 어? 왜 위험한데."
삐비비빅
삐비빅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긴나라의 눈에 갑자기 빨간불이 들어오더니 중얼거렸다.
[ 핵융합(Nuclear fusion) 폭발 개시.]
쿠궁!!
" 허억, 허억, 허억!!"
" ......"
" 이, 이러니까 도망치라고 했잖나! 일루미나티 새끼들, 매번 핵으로 자폭을... 이번에도 역시..."
말을 잇지 못하던 천우진이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양손을 긴나라의 동체 쪽으로 뻗고 있었다. 필사의 힘을 다해서 염동력을 쥐어짜는 듯 했고, 긴나라의 몸은 이미 엄청난 고열에 녹으면서 기이한 용암같은 화염에 휩싸이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용암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찰나의 순간에 염동력으로 긴나라의 폭발을 막은 천우진이 악을 썼다. 모든 힘을 다하고 있는 듯 여유가 전혀 없었다.
" 빨리 어떻게든 해 봐!!"
" 알았어!"
슈칵!!
나는 의념천주를 실어서 한 순간에 폭발을 수백 조각으로 잘게 썰었다. 그러자 천우진의 부담이 한 층 줄어든 것 같았으나 여전히 비지땀을 흘리며 양손을 뻗고 있는 중이었다. 천우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그런 걸로 안 돼!! 누가 무림인 아니랄까봐 베는 거 말곤 할 줄을 몰라?! 어차피 무형의 에너지인 핵융합을 잘게 베어서 뭐 하게!"
" 아..."
" 뭐 방법 없냐!"
으, 이걸 어쩌지?!
나는 긴나라를 쓰러뜨리고 나서의 일은 생각지도 않았기에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핵융합이 뭔지는 잘 몰랐지만 저게 염동력의 통제에서 벗어나면 나와 천우진이 다 죽는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신투지존이 했으면 나도 할 수 있어!'
그 때의 상황을 응용하면 지금의 위기를 넘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재빨리 천우진에게 물었다.
" 저게 터져도 안전하려면 어느 정도 거리가 좋냐?"
천우진은 머리가 좋아서인지 내가 하려는 걸 바로 알아채곤 대꾸했다.
" 최소 일백 리 밖이다! 북동쪽이라면 괜찮다. 그쪽으로 옮겨."
" 좋아!"
만상지투
위치 옮기기!
파앗
' 최대한 멀리...!!'
나는 비어있는 왼손으로 만상지투를 시전하면서 폭발에너지가 있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에 고열이 덮쳐오려는 순간 재빨리 머나먼 곳으로 위치를 옮기면서 공간을 바꿔치기했다.
슈앗
그 순간 핵융합 에너지가 사라지더니 일백 리 바깥에서 거대한 구름과 함께 대폭발이 일어났다.
쿠구구구구구...!!
최대한 멀리 날렸기에 거리가 그 이상일지도 몰랐지만, 나는 일백리 밖에서 버섯구름이 일어나는 걸 보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면 산이 날아갔으리라.
' 그 조그마한 덩어리가 팔부신중의 전력을 다한 공격에 맞먹는단 말인가?'
과학력이란 것도 얕볼 게 아닌 것 같았다.
바닥에 쓰러져서 숨을 몰아쉬던 천우진이 말했다.
" 헉... 헉... 제길... 또 이런... 헉..."
" ...미안. 다른 방법이 없었어."
" 헉... 헉..."
천우진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 야 괜찮냐?"
나는 급히 천우진을 부축해서 일으켰는데, 놈의 목 뒤쪽에서 기이한 낙인이 찍혀있는 걸 발견하자 흠칫하고 놀랐다.
' 이건!'
저주 아닌가?!
나는 제갈사에게서 마도를 공부해서 마도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게 강력한 저주의 낙인이라는 걸 즉시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선명하게 마력이 새어나오고 있는 중이었기에 나는 이 저주의 시전자가 엄청나게 강력하다는 것도 함께 알아챘다.
" ...봤냐? 후우."
천우진이 지친 듯 중얼거리자 나는 반문했다.
" 그 저주의 낙인은 뭐냐?"
" 보다시피 저주다."
" 누가 건 거야."
이어진 말에 나는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 ...시몬 마구스를 쓰러뜨리고 만마전의 주인이 된, 마왕(魔王) 제갈사의 낙인이지. 나는 이것 때문에 환술을 못 쓰게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