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006화 (1,003/1,615)

1006====================

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천우진이 여기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녀석은 마지막에 봤을 때도 끝까지 내 일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 이런 제길...!! 너는 무슨 일만 있으면 내게 찾아오는 거냐! 내 평화를 깨지 마라!]

[ 왜? 대체 내가 왜?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 천우진. 이제 우리 편에 와서 싸울 생각은 없냐? 네 힘이 필요해.]

[ 때가 아니야. 난 아직 너와 같은 배를 타기엔 이르다 생각한다.]

[ 너 자신의 꿈과 이상(理想)에 잡아먹히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라... 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때 너와 함께 해 주겠다.]

" ......"

망량선사의 마을에 찾아갔을 때 천우진은 나와 함께 할 때가 아니라는 말만 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어야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한 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강력한 아군인 천우진을 얻지 못하고 이번 삶을 계속 전개하다가 결국 바유를 통해 미래로 날려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천우진이 난데없이 대웅제국의 내궁에서 서문혜의 봉인을 지키고 있다니?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 대체 500여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망량선사의 마을에서 완전히 나온 거야?"

" 조금 긴 얘기가 된다. 그리고 지금 그런 얘기를 주절대기에는 다른 할 일이 너무 많아."

냉철하게 말을 끊어버린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 백웅. 방금 전 사공린한테 네가 온다는 연락은 들었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내게도 설명해 봐라."

" 그러지."

" 아니, 흑요석을 줄 테니 이걸로 바로 기억을 전달해."

티잉

나는 천우진이 품속에서 꺼낸 손바닥 절반크기의 흑요석을 공중에서 잡아챘다. 아무래도 천우진이 미리 갖고다니던 것 같았고, 나는 별 말 없이 흑요석을 써서 천우진에게 그 동안의 기억을 전송했다.

우웅

기억을 전달받은 천우진이 잠시 후 중얼거렸다.

" 그래서였던 건가? 네놈의 명운에 접근했던 흉성(凶星)이 사라진 게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 뭐?"

" 삿갓무사 말이다. 그 놈이 전욱에게 덤비다가 죽은 사건."

" 아!"

" 나는 그 동안 네놈이 살아있을지 죽었을 지 계속해서 명운을 점쳤다. 그리고 그 때마다 네 놈의 명을 상징하는 별이 허무로 비어있으나, 그 주변을 맴돌던 흉성이 사라져 있는 괘를 발견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건 아무래도 전욱에게 삿갓무사가 살해당한 덕에 네놈에게 붙은 추살(追殺)의 운명이 사라졌음을 뜻했던 거군."

" ... 운이 좋았지."

나는 정말 그 일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 시점에 내게 전욱이 강림해있지 않았다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살해당했으리라. 그 놈의 검기(劍技)는 지금의 나로서도 상대할 수 없는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었으나, 신의 권능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 듯 했다.

천우진이 말했다.

" 아직 모르는 게 많겠지만 일단 눈 앞의 광경부터 설명해 주지. 이건 너도 알다시피 요동에 있던 [신의 무덤]이 폭주하려는 걸 서문혜가 막아낸 것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옛날에 멸망했을 것이다."

" 폭주? 어째서?"

" 생각을 안하고 일단 질문부터 하고 보는 건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군. 정말 내가 이딴 걸 그립다고 생각하다니 씨발..."

" ......"

내가 입을 다물자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 너도 알다시피 흉신과 삼황오제는 공멸했다. 그건 즉 북방을 다스리던 전욱 또한 소멸했다는 뜻이고, 전욱은 [신의 무덤]을 봉인하며 거기에 묻혀 있던 [신의 심장]에 자신의 권능인 암창(暗槍) 다섯 개를 꽂아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전욱이 소멸하면서 심장의 봉인이 풀리는 건 당연지사였지."

" ......!!"

" 하지만 워낙 중요한 봉인이기 때문인지 전욱이 소멸되어도 봉인은 바로 풀리지는 않았다. 공간 자체를 신의 권능으로 폐색(閉塞)했기 때문인지 네 동료들이 이상전조를 알아챈 건 20여년이 지나서였다. 봉인의 한도에 도달하자 공간 자체가 터져나가고 신의 무덤 주위가 이계화(異界化)되어버렸어. 그 때는 한창 천계와 현실세계를 분리하던 중이라서 아주 낭패스러웠지."

" 그래서?"

천우진은 갑자기 얼굴이 팍 찌그러졌다.

" 다들 난리가 나서는, 나한테까지 찾아오더군. 어쩔 수 없이 재앙을 막기 위해 마을에서 나가서 봉인 복구작업을 도왔다. 하지만 구천현녀의 힘을 빌렸는데도 임시땜빵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내가 [신의 무덤]을 봉인하는 수문장 역할을 했다. 빌어먹을."

" ......"

" 그리고 알다시피 팔부신중하고 전쟁도 하고, 이겼고, 나도 어쩔 수 없이 일행에 합류했지. 수백 년 동안 정말 별의 별 일이 다 있었어..."

후우

천우진이 문득 흰색 옷의 안쪽주머니에서 웬 손가락만한 하얀막대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막대기를 잠시 입에 무는 것 같더니 흰 연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걸 보자 말했다.

" 그건 궐련(卷煙)이냐? 아주 작군."

궐련 정도는 서구를 여행할 때 종종 봤던 것 같은데 저건 크기가 작아보였다. 그러자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 취미로 피는 액상형 전자담배다, 멍청아. 하도 거지같은 일이 많으니."

" ......?"

" 됐고, 아무튼 제 3제국을 멸망시킬 때까지는 어떻게든 내가 팔부신중의 손에서 봉인을 수호했다. 그런데 내 힘에도 한계가 있어서 더는 못 버틸 것 같더군. 그래서 서문혜를 봉인의 대주(大柱)로 삼아서 재봉인을 한 거다."

" 서문혜는 죽은 건가?"

" 전혀. 그냥 가사상태야. 어차피 그녀도 기나긴 전쟁에서 힘을 너무 소모해서 지쳐있었던지라 상호동의하에 봉인에 들어갔지. 심장을 봉인할만한 힘을 지닌 신족은 그녀 뿐이었고, 그녀도 심장 곁에서 가사상태로 힘을 회복하는 거였으니 나쁠 건 없었어. 그게 대략 지금부터 154년 전의 일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흠... 방금 전 치우의 봉인이라고 했지. 치우의 봉인이라는 건 어떻게 안 거냐? [신의 무덤]이 치우의 것이라는 심증은 있었어도 확신은 없었잖아."

" 묘하게 날카로운 점도 있고. 이런 점도 달라지진 않았군..."

천우진은 근처의 의자에 털썩 걸터앉더니 내 말에 대꾸했다.

" 봉인약화 때문에 구천현녀를 불러왔던 시점에서 그녀가 인증해 줬어. 이건 치우(蚩尤)의 사지를 찢어서 삼황오제가 제각기 맡아서 봉인한 조각 중 하나라고. 그래서 그녀도 치우를 쓰러뜨린 존재 중 하나로서 인과율이 연결되어 있었기에 비교적 쉽게 봉인하더군."

" 그런가. 치우의 심장이 확실한 거군... 그럼 어째서 저 봉인이 풀리면 세계가 멸망하는 현상이 생겨나는 거지?"

" 그래. 잘 물어봤다."

천우진이 전자담배라는 걸 다시 속주머니에 집어넣더니 말했다.

" 그냥 힘이 넘쳐나서 그렇다."

" 뭐?"

" 술법이고 저주고 그런 차원이 아니야. 잘게 나누어진 치우의 심장 한 부위가 품고있는 힘만으로도 봉인해제의 파장만으로 이 차원계 정도는 가볍게 부숴버릴 수 있는 압도적인 잠재력을 갖고있다는 거야."

" ......!!"

" 이걸로 미뤄볼 때 전성기 치우의 육체가 모두 모여서 부활하면, 완전체 치우는 최소한 세상을 백만 번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소리가 되겠지... 하나의 조각이 모일 때마다 그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는 걸 고려하면."

비현실적이다. 너무 허황된 단위라서 나는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 그게 말이 되냐?! 그 정도면 삼황오제를..."

" 그래. 가볍게 넘어서지. 그게 바로 삼황오제가 치우를 봉인한 이유다. 최강이라 불리는 황제 공손헌원이 구천현녀나 응룡을 끌어들여서까지 간신히 이길 수 있었던 이유일 테고."

" ......"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천우진이 힐끔 사공린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 여기 설명은 대충 다 끝난 거 같은데 저 녀석한테 그 얘기는 해 줬나?"

그러자 사공린이 고개를 저었다.

" 아니요.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래된 동료인 당신이 해줘야 할 이야기죠. 제겐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 결국 귀찮은 얘기를 내게 떠넘기려고 굳이 내궁 연구소까지 저녀석을 데려왔단 거구만. 예전엔 안 그랬는데 갈수록 여우처럼 노회해져서는..."

" 부탁드리죠."

" 흥."

천우진이 코웃음을 쳤다.

" 무슨 얘기냐?"

" 치우니 뭐니 해도 사실 너한테 당장 와닿는 얘기는 아니지? 지금 네가 가장 궁금한 건 오백 년 동안 다른 동료들이 어찌 되었는지일 거다."

" ......!! 그래 맞아!"

" 얘기해 주지."

천우진의 말이 천천히 이어졌다.

" 보다시피 나, 사공린, 서문혜는 일단 살아남았다. 그리고 제갈부와 제갈유룡은 제 3제국과의 결전에서 사망했다. 백련교주도 그 때 죽었고, 음... 그쪽 호법사자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한백령 뿐이다. 독고준과 용비천은 죽었고 그들을 이어서 천령단을 얻은 호법사자는 이후에 없었어. 성진도 나치독일 본거지를 공략하던 당시에 죽었군."

" ......"

" 그리고 미호는 실종되었고 아베노 세이메이는 100년 전부터 동영의 어둠이 강력해지는 바람에 자기자신을 기둥으로 삼아서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봉인을 강화하고 있다."

" 미호가 실종됐다고?"

" 그래. 그녀는 팔부신중과의 전투가 끝나자 홀연히 사라졌다. 행방이 묘연해."

" 으음... 제갈사는?"

" ... 그건 이따 얘기해주지. 놈 얘기를 하려면 너무 길어져. 제기랄."

투덜거린 천우진이 말했다.

" 그리고 망량 사형은 선계(仙界)로 차원이동을 했다. 사형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

본래 '올라간다(登仙)'라는 표현을 쓰는 편이었지만 굳이 차원이동이라고 한 이유는 그만큼 천계가 이 세계에서 멀어져있다는 뜻이리라. 나는 망량이 죽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 그게 뭐지?"

" ... 종말(終末)에 대한 대비. 조금 있다 자세히 얘기해 주겠지만 그 당시 사형의 선택은 최선이었어."

" 검마 서문대룡이나 다른 무인(武人)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지?"

" 다 죽었다. 팔부신중과의 전쟁에서 8할이 죽었고 나머지도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노쇠하여 죽거나 살아남은 자도 제 3제국과의 전쟁에서 죽었어. 네가 이름과 얼굴을 아는 무인동료는 이 세상에 없다. 환골탈태로 늘릴 수 있는 수명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 ......"

" 다만 죽었다 하여 그들이 사라진 건 아니지..."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힐끔 사공린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사공린이 말했다.

" 알았어요. 이제 본론을 꺼내죠."

사공린은 나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 백웅. 이제 이 세계가 [계시]에 도달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17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때가 되면 이 세상에 [옛 지배자]들이 한꺼번에 도래하면서 거대한 파멸이 찾아올 겁니다. 그 자들은 흉신이 소멸됨과 동시에 이 세계에서 일시적으로 자취를 감추었지만 곧 다시 돌아올 터."

" 17년? 그것밖에 남지 않았나."

" 네. 다행히도 흉신이 소멸된 덕에 해저도시가 부상하는 충격으로 멸망하는 재앙은 피할 수 있겠지만, [계시]의 때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세계가 멸망하는 건 이미 확정되어 있으며 방법의 차이일 뿐입니다."

" 으음."

" 그러니 이제 해야할 일은..."

그 때였다.

위이이잉 -

위이이잉 -

갑자기 실내에 새빨간 불이 마구 울려퍼지면서 경고음을 냈다. 사공린이 귀에 꽂아둔 모종의 장치로 보고를 듣는 듯 하더니 냉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알았다. 무력전술요원을 모두 대기시켜라."

손가락으로 장치를 눌러서 끈 사공린이 말했다.

" 백웅.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무슨 일이지?"

" 당신을 데려올 때 미합중국과 마찰이 생긴 일 때문에 일루미나티에서 비공개 사절이 찾아왔습니다. 그림자정부의 요인(要人)들이 찾아왔기에 만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 ... 그 자들의 뒤에는 혹시 십이율주가 있는 건가?"

" 의심은 하고 있습니다만 증거가 없습니다. 그럼 천우진과 이야기 나누시길..."

사공린이 고개를 돌리고 바로 나가려 했다.

' 흠... 여기 있을까? 귀찮은 일일 것 같은데...'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 아냐. 왠지 가봐야 할 것 같다.'

직감이 든다. 어쩐지 일루미나티란 놈들을 직접 내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는 게 있으리라는 직감 때문에 나는 사공린을 멈춰세웠다.

" 잠깐. 나도 가겠어."

" 백웅, 일만 복잡해질 뿐입니다. 그 자들에게 당신을 노출시킬 경우 앞으로 당신의 행보에 크게 거슬리게 될 것입니다."

" 어쨌든 그 일루미나티인지 뭔지가 현 시대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잖아? 내가 이 시대에서 뭔가 하려면 놈들과 마주치지 않으면 안 돼. 어떤 놈들인지 봐두고 싶어."

" ... 그 자들은 정말 무서운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사공린은 한숨을 쉰 후 손을 들었다.

파앗!

그러자 황금빛과 함께 그녀의 손 위에 웬 쟁반만한 거울이 소환되었다. 그녀는 거울을 내게 주며 말했다.

" 이 거울을 통해 그 자들과 회의하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 뭐, 뭐야? 이건 술법인가?"

사공린한테 이런 능력은 없었는데?!

" ......"

사공린은 대답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내가 멍하니 거울을 들고 있자 천우진이 말했다.

" 어이. 여기 가만히 서 있기도 뭣하니까 휴게실로 가서 봐라."

" 천우진. 사공린이 술법도 쓸 수 있게 된 건가?"

" 술법? 하...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다니 참 어지간하군."

천우진은 쓴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 술법이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 그럼 뭔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물건을 소환하는 건 술법이 아니면 마법일텐데, 그녀는 마법이라도 익힌 건가? 과학기술일 리는 없잖아."

" 마법도 아니다."

" ......?!"

저벅

천우진이 내 손에서 거울을 집어들고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 그녀 또한 선조회귀(先祖回歸)를 이뤘을 뿐이다. 그 결과가 우리 상상을 초월했을 뿐이고."

우웅

잠시 후 휴게실이란 곳에서 거울이 빛나더니, 거울을 통해서 사공린이 앉아있는 어전과 그녀 앞에 많은 숫자의 검은옷 입은 서양인들이 서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사공린은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 하다가 문득 말했다.

[ 그렇다면 귀국과의 동맹관계는 파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끄흐흐... 괜찮겠소, 황제여? 우리를 적으로 돌린다면 좋을 게 없을 터.]

[ 상관없습니다.]

의자에 몸을 기댄 꼬부랑 노인이 헐헐거리며 말했다.

[ 끌끌... 그 기이한 남자가 우리의 협력관계를 깨뜨리면서까지 지켜야하는 인물이란 거군... 하긴 세븐 아크(Seven Ark) 중 머큐리 소드(Mercury Sword)를 지닌 인물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 ... 이만 가 주시길.]

[ 말해두건데... 세븐 아크는 우리 또한 보유하고 있소... 허황된 욕심을 부린 결과... 그대들이 먼저 파멸하게 될 것이니.]

[ 일루미나티의 회장. 제국 황제의 앞에서 겁박을 하는 게 통할거라 생각합니까?]

스슥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주현성을 비롯한 무력전술요원 십여 명이 걸어나왔다. 회장이라고 불린 노인을 경호하는 검은 옷의 인물들이 무력전술요원과 대치하면서 잠시 살벌한 분위기가 번져나왔고, 회장이라는 노인이 입을 열었다.

[ ... 우리, 일루미나티 결사 또한 종말을 막을 법을 연구하는 중... 세븐 아크가 그걸 위해 필수라는 사실은 알고 있소...]

[ ......]

[ 그러니... 머큐리 소드는 오늘 우리가 가져가도록 하지... 위치는 파악했으니.]

치지직!!

일루미나티 회장의 말이 끝나는 순간 거울을 통해 보이던 광경이 갑자기 끊겼다. 그리고 잠시 멈춰져 있던 시설 내의 빨간 불이 맹렬하게 위잉거리며 다시금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시큐리티 발동.]

천우진은 그 소리를 듣자 인상을 찌푸리더니 근처에 있던 웬 손잡이같은 걸 밑으로 꾸욱하고 내렸다.

철컹!

[ 시큐리티 최대레벨 10 발동. 침입자를 공격합니다.]

" 천우진. 어떻게 된 거냐?"

내가 천우진에게 질문하자 그가 말했다.

" 이 내궁의 보호시스템은 대웅제국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되어 있다. 레벨 7만 되어도 초절정고수가 뚫지 못하며 최대레벨 10은 대라신선(大羅神仙)급 이상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다."

쿠쿵!

쿵!!

콰앙

여기저기서 폭음과 파괴음이 울려퍼졌다. 시큐리티라고 하는 방어기제와 침입자가 한창 싸우고 있는 중인 듯 했다.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고, 천우진이 이윽고 화면에 비친 침입자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짜증에 북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 제기랄... 저 새끼가 왜 일루미나티 부하가 되어있는 거야. 분명 그 전쟁에서 죽였는데!"

콰아앙!!

[ 시큐리티 파괴... 외벽손상 93%...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이윽고 천지가 부숴지는 굉음과 함께 나와 천우진이 있는 곳의 문짝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연기와 함께 문짝 너머에 나타난 놈을 보자,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긴나라(緊那羅)."

팔부신중의 책사.

끼루룩!!

그 놈의 본체가 전신이 시꺼멓게 물든 채 눈 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놈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기계음을 내며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끼리링 끼링

[ 목표물 확인. 머큐리 소드 탈환 개시.]

투화악!!

이윽고 긴나라의 날개가 펼쳐지고, 인면(人面)의 입이 쩍하고 열리더니 나를 향해서 엄청난 위력의 광선포가 쏘아져 나왔다. 나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재빨리 무쌍패를 시전해서 놈의 공격을 흘려냈다.

우웅

그리고 무쌍패로 힘을 흘리는 와중에, 예전에 겪었던 팔부신중의 공격과 근본적으로 이질적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권능이 섞이지 않은 - 지극히 차가운 물리법칙만으로 이루어진 공격!

' 그렇군.'

나는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팔부신중 긴나라는 이미 죽었고, 그 시체가 일루미나티의 손에 기계로 개조되었다는 사실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