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
사신지혼(四神之魂)
위이이이이잉
나는 에드먼드에게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 때 기지 내에 경보가 울린 것 같았다. 에드먼드가 씨익 웃는 걸 보자 모종의 방법으로 경보를 울린 것 같았다. 아마 곧 있으면 나를 공격하러 수많은 적 병사들이 몰려올 것이다.
' 배짱은 있군.'
제법이야.
괘씸죄로 에드먼드를 단박에 죽일 수도 있겠지만 저 자의 배짱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에드먼드를 더 추궁하기보다는 간단한 질문만 하고 떠나기로 했다.
" 대웅제국과 너의 나라, 미합중국은 어떤 관계지?"
" 여유부릴 때가 아닐텐데. 이 기지는 4개 사단이 보호하고 있고 최정예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
" 알 바 아니야. 네게 해를 끼치지 않고 떠날테니 그것만 대답해 다오."
" ....."
무덤덤한 내 태도에서 뭔가를 느낀 듯, 에드먼드는 의자에 풀썩 앉으며 말했다.
" 70년 전에 합중국과 대웅제국은 독일 제 3제국의 세계정복에 맞서서 싸웠다. 세계화 이후에는 대웅제국과 냉전(冷戰)을 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것도 시들하지. 그러나 겉으로는 동맹이고 잠재적으로는 적국으로 분류된다."
" 독일? 음... 거기 말이군."
" 웃기는군. 사람 그만 놀려라, 스파이 놈!"
철컥
어느 새 에드먼드는 서랍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큰 총을 쥐고 나를 겨누고 있었다. 처음 보는 총이지만 아마도 소형으로 만들어진 휴대용 총인 것 같았다.
타앙!
그는 거침없이 총을 쏘았다. 물론 나는 잔영을 남기며 가볍게 피했고, 그건 마치 총알이 나를 피해서 투과한 것처럼 보였으리라. 그러자 에드먼드는 눈썹을 찡그리며 연속으로 다섯 발을 더 발사했지만 나는 똑같이 다 피했다. 내가 알고 있던 총알의 속도 치고는 빨랐지만 이 정도는 가볍게 피할 수 있다.
총알을 다 소모한 듯한 에드먼드는 손을 떨더니 둥글고 굵은 막대기같은 걸 꺼내서 입에 물었다. 그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 괴물같은 놈. 죽여라."
" 왜 그래야 하지?"
" 맨몸으로 총을 피할 수 있는 건 대웅제국의 특수요원들의 특기라고 들었다. 날 그만 농락하고 죽여라!"
" ......"
대웅제국의 특수요원은 맨몸으로 총을 피할 수 있다라...
' 그렇다는 건 무공(武功)을 최소한 절정지경 이상으로 익혔단 소리군.'
내가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 덜컥하고 등 뒤에서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아마 전기를 이용해서 저절로 열리게 되어있는 문이었고, 문 너머에서는 병사 십여 명이 총을 들고 와 있었다.
타다다당!!
놈들이 내게 총을 발사했지만 나는 이번에도 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환영을 남기며 피했다. 등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도리어 튕겨난 총알이 에드먼드를 맞출까봐 몇 발 정도는 허공에서 잡아챘다. 그리고 한차례 총알을 퍼붓는 게 끝나자 곧장 수도(手刀)로 가볍게 병사들을 쳐서 일순간에 기절시켰다.
털썩 털썩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에드먼드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에드먼드를 감정없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 대웅제국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 ......"
" 대답하지 않으면 이 기지의 인간들을 모조리 참살하겠다. 대답하면 얌전히 떠나주지."
물론 그럴 생각은 없지만 내가 가볍게 협박하자, 에드먼드는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듯 급히 말했다.
" 여, 여기는 덴버(Denver)의 공군기지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서 캔자스 시티의 민간항공편을 타면 대웅제국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 지도는?"
" 여기..."
" 고맙다. 그럼."
파앗
나는 말이 끝나는 순간 유유히 멸혼보를 발휘해서 기지를 빠져나갔다. 물론 쓸데없이 기척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기에 은신술을 함께 시전했으며, 그러자 사방에 병사들이 경계태세임에도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나올 수가 있었다. 나는 에드먼드에게서 받은 지도를 보자 여기가 어디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 여긴... 신대륙(新大陸)이군.'
와본 적 있다.
[ 마르코 폴로의 말에 관심이 격동해... 모험가들이 동방대륙으로 향하다가... 우연히 찾아낸 새로운 대륙... 아주 넓고... 현재 식민지화가 진행중... 가장 뜨거운 호기심을 받고 있는... 모험의 땅...]
[ 스페인 포트벨 항구로 가면 된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가 수시로 모험단을 모집해서... 신대륙으로 보내고 있고... 신대륙에서 대영제국과 전쟁을 하는 중이다... 모험단을 따라가면 될 것이다...]
[ 연금술사 길드는... 드루이드 장로 멀린의 지휘하에... 이계에 있으며... 문두스를 넘어가야 하고... 이 세상에는 없다... 마법이나 술법을 쓰지 못하면 결코 갈 수 없으며... 마술결사단과 꼭 접촉해야 한다... 그리고 서방에서 가장 인쇄술이 발달한 것은... 대영제국이고... 내가 알기로 신대륙으로 건너간 뛰어난 발명가 중 한 명이... 양면 윤전 인쇄기(兩面輪轉印刷機)를 만들어냈다... 그게 아마 최첨단일 것이다...]
과거에 제천대성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려고 서방의 최첨단 인쇄기를 얻으려 '진짜' 생 제르맹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생 제르맹은 신대륙으로 향한 최고의 발명가가 인쇄기를 갖고있다고 말했었고, 나는 그 자를 찾으려고 신대륙으로 열심히 뛰어간 일이 있었다.
그리고 신대륙에 가자 [옛 지배자]들이 곳곳에 돌아다니고 있고, 수천 명의 서양모험가와 병단이 몰살당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양면윤전인쇄기를 발명한 리처드 호의 영혼을 겨우 발견해내서 그에게서 도면과 인쇄기를 받아냈었다.
' 그 당시 도면 근처에는 탐사대가 탐험해서 만들어낸 신대륙 동부해안의 지도가 있었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지도와 거의 일치하는군.'
틀림없다. 기술의 발전정도로 본다면 -
미래에 와 있는 거다.
그것도 50년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미래로!
' 지금은... 내가 살던 시대부터 미래다. 그리고 여기는 미래의 신대륙이며, 이 신대륙에 미 합중국이라는 새로운 서역인들의 국가가 세워진 거야. 도대체 얼마나 미래인 거지?'
20세기라고 했다. 그건 어디서 어떻게 쓰는 단위일까?
도대체 몇백 년이 지난 거지?
나는 왜 죽어서 전생하지 않고 미래세계에 와 있는 걸까?
' 바유. 나는 마지막에 바유에게 흉신의 저주를 피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어. 설마 바유가...'
나는 어렴풋이 사대신기 바유의 힘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신세계를 떠올려보자 나머지 3대신기는 멀쩡했으나 바유는 산산조각이 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유의 말대로 편법을 써서 사대신기를 사용했기에 그 부작용으로 부숴졌으리라.
" ......"
모르겠다. 지금 이 상황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 대웅제국으로 가야 해."
대웅제국은 내가 세운 제국이다. 거기에 가면 내 동료들이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 동료들과 재합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
나는 지도를 따라서 덴버에서 동쪽으로 향했고, 캔자스 시티로 갔다. 그리고 가면서 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바퀴달린 것들이 씽씽대며 절정고수 못지않은 신법으로 이동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안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 저건 뭐야?'
도로 위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걸 보면 틀림없이 인간의 이동수단이다. 나는 황량한 도로 옆에 서서 한동안 그 철덩어리가 달리는 걸 관찰하다가 알아차렸다.
' 아하. 뭔가를 태워서 그 동력으로 기계를 움직이는 거군. 내연기관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일종의 과학기술인가.'
비슷한 걸 대영제국에서 본 적 있다. 그 때는 증기로 이동하는 기관차였는데 이제는 증기가 필요없는 시대가 된 것이리라. 어떤 연료를 태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의 기술이 있겠지.
' 뭐. 자세한 원리까진 알 필요 없지. 저걸 [자동차(自動車)]라고 부르나 보군.'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캔자스 시티로 진입했다.
그러자 생전 처음보는 엄청나게 높은 건물과 화려한 시가지가 보였다. 그리고 나는 서역인들이 전혀 생소한 옷을 입고다니며 손에는 이상한 기계를 들고 조작하고 다니는 걸 알 수 있었다.
' 저 기계에 대고 말을 한다...? 아. 통신기계군. 전기를 이용하는 거겠어. 손가락으로 기계를 꾹꾹 누르는 걸 보면 손가락의 지문을 인식하는 건가?'
지문인식?
' 음... 그건 왠지 소림사에 있던 그 시설과 같은 거 같은데.'
소림사에 있던 [방주]에도 지문인식 시스템이 있었기에 나는 금세 저 통신기계의 원리를 알아차렸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아마 수백 년이 지난 걸텐데 마치 판에 박힌 듯 똑같은 과학기술이 발달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통역을 위해 데려온 천신경의 영에게 물었다.
" 이봐. 당신 이름이 뭐랬지?"
[ 율리시스요.]
" 생전엔 이 대지에서 뭘 하던 사람이었소?"
[ 미합중국의 장군으로써 전쟁에서 싸웠소. 전사(戰死)했소만...]
" 당신이 죽은 시대와 지금을 비교하면 몇 년 정도 지나있는 거요?"
[ 잘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100년 정도는 지나있지 않나 싶군. 그 동안 이 세상은 엄청나게 발전했소.]
" 당신 때도 대웅제국이 존재했소?"
[ 소문 정도는... 동방 전역을 통일했으며 인도제국을 굴복시킨 사상초유의 초강대국이라 들었소. 유럽에 출현한 제 3제국의 사악한 망령들과 끝없이 전쟁을 했다 들었소. 생전에 마주칠 일은 없었소.]
" [옛 지배자]나 내공, 무예에 대해서 알고 있소?"
[ ......?]
율리시스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내가 각각의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해 주자 놀란 듯 했다.
[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얘기군. 이 아메리카 대륙에 그런 끔찍한 괴물이 있단 얘기는... 아,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전설같은 걸 들었던가? 아무튼 본 적 없었소. 그리고 내공이나 무예처럼 신비한 힘도 전혀 모르겠소.]
" 그런가..."
나는 율리시스의 말이 뭔가 의미심장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율리시스도 별로 대단한 건 알지 못하는 건 같지만 어쩐지 그의 말이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만 같은 직감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잘 기억해두기로 한 후 민간공항이란 걸 찾아갔다.
' [비행기]라고 하는군. 아까 봤던 건 전투비행기였고.'
위이이잉 -
이윽고 나는 대웅제국의 [상해(上海)]로 가는 비행기에 은신술을 써서 몰래 타려 했다.
' 상해라. 분명히 내 시대에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어촌이었는데...'
거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촌민들이 고기 잡으면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걸 표사시절에 봤었던 기억이 난다. 마을이 워낙 드문드문 있어서 문명이 뒤떨어진 곳도 있었다. 그랬던 곳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도시 중 하나란 말인가?
아무튼 비행기에 타는 건 실로 누워서 떡먹기일 듯 했다. 나는 하는 김에 지금 세상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보려고 근처의 서점에 들르려고 했다.
그 때였다.
" 목표 발견. 거기 멈춰 주십시오."
큰 고함 소리와 함께 시꺼먼 옷을 입은 자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왜인지 나를 정확히 판별하고는 적의를 뿜는 듯 했다. 이윽고 그 자들이 품 속에서 총을 꺼내 내게 겨누려고 했지만, 나는 순식간에 멸혼보를 써서 일백 장 내에 있는 적들을 숨 두 번 쉴 시간 내에 모조리 수도로 기절시켜 버렸다.
' 귀찮게!'
죽이려면 더 빠르겠지만 함부로 사람 죽이기도 꺼려지니까 기절만 시켜야되는데 이게 또 귀찮다고!
퍼버버벅
후두둑
" 커, 커헉."
" 이런 말도 안 되는..."
육십여 명의 검은 옷 입은 놈들이 모조리 기절해 버렸다.
' 미안하지만 기절 좀 해 줘. 네가 끝이다.'
나는 마지막 놈을 기절시키려고 수도를 날렸는데, 그 순간 상대 또한 손을 들어올려서 서서히 내 공격에 대응했다. 그 찰나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 나는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동안 굳었는데, 그 때문인지 공격이 스쳐지나가고 말았다.
타앙
' 화경(化經)!'
정확하게 내 힘의 속도와 방향을 읽어서 흘려내는 능력은 분명히 정통화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문파에서 배운 듯 훌륭한 하체힘이 뒷받침되어 있었으며 내공 또한 제법이었다.
처음으로 내 공격을 흘려낸 놈은 마찬가지로 시꺼먼 옷을 입고 있었지만 차이점이라면 머리가 흑발이라는 것이었다. 동양인이 분명했으며, 마치 여자처럼 아리따운 외모였으나 체형을 보면 남자이고 20대 청년인 듯 했다.
휘리리릭!!
나한철룡(羅漢鐵龍)
금벽일살(金碧一殺)!
흑발청년은 도리어 손목에 감겨있던 쇠사슬을 날려서 내게 반격까지 했다. 이 또한 절묘한 무공초식이었으며 상당히 오랜 세월 연마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녀석의 무공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아챘기에 대충 초식을 피해주었다.
쇠사슬이 갑자기 허공에서 모양을 바꾸더니 단검이 되었고, 단검이 재차 변초를 섞으며 내 헛점을 찔러왔다. 웬만한 고수는 순식간에 당할 정도의 초식인지라 나는 내심 감탄했다.
' 흐음. 나이치곤 제법.'
저 녀석도 천재라 불리는 놈이겠군.
내게 연속해서 십여 초를 더 공격했으나 한 번도 스치지도 못하자, 쇠사슬을 손바닥에 빨아들이듯 수발한 흑발의 청년은 나를 경계하며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 ... 설마 미합중국에 휴가를 왔는데 전설에나 나오는 마스터 클래스(master class)를 보게 될 줄이야. 정말 미치겠군요."
" 넌 누구냐? 문파와 이름을 밝혀라."
" 그야 물론... 위대한 달인께 경의를 표합니다."
흑발의 청년은 공손하게 포권하더니 내게 말했다.
" 저는 대웅제국(大熊帝國) 전술무력요원(戰術武力要員) 서열 2위. 백련교(白蓮敎) 뇌신류(雷神流) 후계자이자 소림사(少林寺) 칠십이종 절예 계승자, 무천룡(武天龍) 주현성(周顯盛)입니다. 부디 귀하의 신분을 밝혀주셨으면 하여 후배로써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나는 주현성의 자기소개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 뇌신류? 정말이냐?"
" 그렇습니다만..."
" 그런데 어째서 뇌령(雷靈)이 없지...? 네 경지에 어째서."
저 녀석의 경지는 초절정의 초입이다. 저 정도면 당연히 뇌령을 성취하고도 남았어야 한다.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그런데 내공은 정순하고 강력하지만 뇌령지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 ......"
주현성은 뭔가 아픈 곳을 찔린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 본 사대무류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신 것 같군요. 그럴만한 일이 있습니다."
" 그렇군."
나는 이내 '사정'을 눈치채고는 눈쌀을 찌푸렸다.
보기만 해도 내공의 흐름을 알 수 있기에 금방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 넌 뇌신류의 내공심법을 익히지 않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