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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쿠구구...
잠시 후 해저도시가 하늘로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지면이 더더욱 높아지면서 진동이 울려퍼지는 것이었다. 전욱이 힐끔 땅을 보더니 말했다.
[ 정말로 이 세계에서 떠나려는 것인가?]
[ 속단은 금물이다.]
[ 나가주면 좋겠지...]
그렇게 말한 전욱이 불쾌한 듯 말을 이었다.
[ 제놈의 떨거지들을 모두 데리고 말이다.]
끼루루룩 -
끼루룩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전방에서 정체불명의 마기(魔氣)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부정형의 점액같은 무언가였는데, 이윽고 촉수를 출렁거리더니 이계의 마물처럼 변했다. 다만 전욱이 내 껍질을 뒤집어 쓴 상태에서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방금 전의 잡졸들과는 분위기가 다른 괴물이었다.
' ... 저, 저것도 [옛 지배자]수준인가.'
스스스
곳곳에서 서너마리씩 생전 처음 보는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괴물들은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숫자가 적었으나 놈들의 마력이 피부를 에리게 할 정도였다.
틀림없다.
저 놈들이 바로 해저도시에 봉인되어 있었던 전설의 마물이자 [옛 지배자]. 종말의 그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잠들어 있어야 할 마신(魔神)들인 것이다. 이렇게나 엄청난 괴물들이 출현하자 아무리 삼황오제라도 섣불리는 나설 수가 없는 듯 그들은 잠시동안 침묵한 채로 대치하기 시작했다.
......
마신(魔神)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와서는 전욱 일행에게 염파를 쏘아왔다.
[ 삼황오제여. 종말의 그때까지 끝없는 무익(無益)한 싸움을 할 셈인가? 정전협정에는 우리 또한 포함될 터.]
[ 우리도 이렇게까지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종말을 가속시키려 한 너희의 행위는 도를 넘어서 버렸다. 이미 세계의 균형은 깨어졌으니 너희들 또한 그 파멸에 휩쓸리게 될진저.]
[ 아니... 휩쓸리지는 않는다. 우린 진흙탕싸움에 몸을 담지 않겠다.]
우우우우 -
알 수 없는 공명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사방에 나와 있던 수십 마리의 [옛 지배자]들이 동시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파앗
그들이 난데없이 실종된 걸 본 소호금천이 말했다.
[ 흉신이 놈들을 거두어 갔다. 모두가 흉신의 봉인지로 이동했구나.]
[ 그렇군... 속셈을 알겠다. 흉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다같이 이 세계를 떠날 생각이구나.]
[ 석연치 않군. 놈들이 우리와 일전을 벌인다 해도 힘이 그리 부족하진 않을 텐데...]
[ 정해진 주술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강제로 수면에서 깨어나지 않았는가? 아무리 [옛 지배자]라 해도 그렇게 되면 힘이 반감되는 법. 우리와 싸워 소멸의 위기를 겪느니 도망치려는 거겠지.]
그렇게 대꾸한 전욱이 말했다.
[ 가서 놈들이 도망치는 걸 확인하고 엉덩이를 차주는 게 좋겠다.]
[ 석판을 뺏을 수 있겠나?]
[ 그건 가서 생각해 보도록 하지.]
우웅 -
삽시간에 전욱 일행이 어두운 바다로 둘러싸인 초고대의 신전같은 장소로 이동했다. 이 장소를 수호하는 결계가 있었지만 삼황오제가 셋이나 있는지라 아무렇지도 않게 분쇄해버린 듯 했다.
그리고 거대한 옥좌에 흉신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 ......]
흉신의 거대한 모습이 삼황오제의 사도들을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흉신은 분명히 시선을 이쪽으로 고정하고 있었으며, 그런 흉신의 좌우에는 마치 그의 신하를 자처하듯 해저도시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옛 지배자]들이 예를 표하고 있었다.
' 마치 황제같군...'
이번 생에 나는 황제의 삶을 살았기에 흉신의 위풍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흉신은 옥좌에 앉은 채 짤막하게 말했다.
[ 이 번 의 예 기 치 못 한 일 . . . 많 은 고 민 을 했 으 나 ...]
이어진 흉신의 말에 천하의 삼황오제조차 약간 당황한 듯 했다.
[ 차 라 리 . . . 너 희 모 두 길 동 무 로 삼 는 게 나 을 것 같 군 . . . ]
후오오오오
흉신의 몸이 산산히 분해되기 시작했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분해되는 게 보였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나는 그냥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분해되는 건 흉신 뿐만이 아니었다. 좌우에 신하처럼 도열해 있던 [옛 지배자]들도 흉신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잘 알 수가 없었으나, 소호금천이 크게 초조해진 듯 했다.
[ 있을 수 없는 일... 정말로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너 정도의 우주급 대신(大神)이...]
그 말을 제곡이 받았다.
[ 흉신이여. 차라리 이 자리에서 휴전을 하자. 이건 모두에게 파멸일 뿐이다. 왜 이러는 것인가?]
두 명의 오제는 초조함 뿐만 아니라 상당한 조급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전욱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전욱이 수요를 들어서 흉신을 겨누면서 말했다.
[ 이런 미친 행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흉신이여!]
그러자 흉신은 몸이 천천히 가루가 되어서 사라져 가면서 묘한 미소를 짓는 듯 했다.
[ 내 겐 다 음 기 회 가 있 기 때 문 이 지 . . . 우 둔 한 놈 들 . . . .]
후와아악...
그 말을 끝으로 흉신의 몸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말았다. 그걸 신호로 [옛 지배자]들 또한 모조리 가루가 되어서 사라졌고, 흉신의 어전은 삽시간에 정적으로 가득차고 말았다.
어처구니없게 흉신이 알아서 자멸한 것 같았다.
나는 기뻐서 전욱에게 말을 걸었다.
[ 전욱이여! 이제 이 세계에서 흉신이 사라진 겁니까?]
[ ......]
[ 왜 대답이 없으신...]
[ 사대신기란 걸 꺼내봐라. 어서.]
전욱의 말에는 여유가 전혀 없었다. 내가 재빨리 바즈라를 꺼내자, 바즈라는 전욱의 손 위에서 잠시 파직거리다가 금세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 왜 사라진 거지?]
[ 아 그게... 어느정도 사용하면 힘이 다 떨어져서 한동안 소환을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아까 바즈라를 써 버려서...]
[ 그럼 다른 사대신기를 꺼내라.]
음, 뭘 꺼내야 하지?
나는 고민하다가 일단 끌리는대로 바람의 사대신기, 바유를 꺼내었다. 바유를 손에 쥔 전욱이 말했다.
[ 아까는 잘 몰랐으나 여기에는 고대신의 힘이 응축되어있군. 아니, 고대신 그 자체인가... 너는 이걸 어찌 얻었느냐.]
[ 저, 그게... 그냥 어쩌다보니까...]
[ 후. 설마 본왕이 필멸자 따위에게 농락당하는 날이 오다니... 여와의 말이 옳았던 건가.]
[ ......]
잠시 한탄하던 전욱이 말했다.
[ 사도 백웅. 영광으로 알아라. 넌 이제 곧 우리와 함께 소멸될 것이다.]
엥?
[ ... 네? 무슨 말씀...]
[ 방금 전 흉신과 그 부하들이 영겁의 자살을 선택하면서, 놈들의 영혼을 걸고 거대한 주술을 걸었다... 우리 삼황오제의 소멸을 기원하는 사악한 축원(祝怨)의 저주였다.]
[ 헉.]
[ 이 자리에는 없으나 여와를 비롯한 삼황도 저주를 받겠지... 끔찍한 일이군.]
뭐라고?!
내가 뭐 잘못 들었나?!
하지만 전욱이 이런 걸로 내게 농담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려다가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고는 말했다.
[ 사, 삼황오제는 가장 위대한 신격... 그 어떤 저주도 통하지 않잖습니까.]
[ 놈들은 수억 년의 죽음을 감수하고 스스로 분해되기를 택했다. 일반적인 저주라면 몰라도 [옛 지배자]가 자신의 죽음을 감수하고 걸어버린 저주는... 대가만큼 힘이 증폭되는 저주의 특성상 그 누구도 회피할 수 없다. 하물며 흉신쯤 되는 거물이라면.]
[ ......]
[ 이런 식으로 황제 공손헌원에게 회귀하게 될 줄이야... 정말 불쾌하구나.]
뜻밖의 말에 나는 전욱에게 말했다.
[ 공손헌원에게 회귀하다니요? 삼황오제 또한 신좌에서 태어났다 알고 있습니다. 흉신처럼 신좌에서 오랜 시간동안 부활을 거치는 게 아닙니까?]
[ ... 우린 좀 다르다.]
전욱은 그 이상의 설명은 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 네 사대신기에 이 상황을 타개할 힘이 있기만을 바래야겠구나.]
휘오오오 -
전욱의 가공할 힘이 사대신기, 바람의 바유에 쏟아져 들어갔다. 전욱은 정말로 이걸 위기라 생각하는지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전신마력을 그대로 쏟아붓는 것 같았고, 그 때문에 사도인 나는 정신세계가 웅웅거리며 울리는 걸 느꼈다.
키이잉 -
이윽고 바유가 황금빛을 내뿜기 시작했고, 다음 순간 전욱은 그 뿔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내 귓전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의 이름은 바유! 조건이 충족되어서 나타났다. 그대를 보호하는 신위의 바람일지니!]
설마 예전에 달마의 진공가향때 보았던 그 바람의 고대신인가?!
나는 급히 말했다.
[ 이 자리에서 안전하게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 그건 내 힘으로도 무리... 저주의 힘이 너무 강력하다. 뭔 짓을 했길래 이런 우주급 저주를 얻게 된 거지?]
뭐야! 딱 잘라서 안 된다고 할 정도냐!
하긴 삼황오제가 꼼짝 못하고 소멸할 정도니 어쩔 수 없어보이긴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간청했다.
[ 어떻게든 안 되겠습니까?]
[ 좋다... 지금만 피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안전을 도모하는 게 나의 특기이니, 나름대로 해결해 보겠다.]
이상하게도 내가 바유라 자칭하는 의문의 존재와 이야기하는데도 전욱은 그걸 눈치 못 채는 기색이었다. 나는 해신의 핵을 못 얻었던 것도 떠올리며 급히 말했다.
[ 아... 그리고 백련교가 원영신이랑 천령단 계약을 이전하는 것도 어떻게 안 될까요...]
[ 좋다. 도와주지.]
[ 고맙습니다.]
[ 다만 경고한다. 그대는 사대신기를 온전히 해방하지 못한 상태에서 편법을 썼다. 그렇기에 이번 생에 나는 부숴지리라...]
응?
우우 -
그 때 칠색조의 몸뚱이에서 소호금천이, 사비시신의 몸뚱이에서 제곡이 빠져나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삼황오제의 영체는 자기 사도의 몸에서 빠져나간 후 온몸이 마치 거미줄처럼 균열으로 뒤덮히자 괴로워하는 비명소리를 내었다.
[ 오오오오...]
[ 안 돼...]
바유에서 뿜어져나온 바람은 황금빛을 머금고 이 공간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나는 전욱 또한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절망을 느꼈다.
' 죽는 건가...'
그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여긴 어디지?
' 안 죽었나?'
외양간이 아닌 걸로 봐서는 아직 안 죽은 것 같다.
나는 내 몸이 멀쩡히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걸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일으켜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이 곳이 모래사장이라는 걸 알아챘다.
' 여긴 어디지?'
나는 몸을 뒤적거려서 비등을 찾으려 했지만 비등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목갑도 없었고, 말 그대로 헤어진 옷자락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를 상황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요가 내 손에 잡혀있는 채로 깨어났다는 것이다. 무사의 본능으로 칼만은 잊지 않고 쥐고 있었던 모양이다.
" 제길..."
바다에 떠내려갔나?
어떻게든 살아남은 건 좋지만 지금까지 모은 보물이 싸그리 없어졌단 말인가. 나는 허탈감을 느끼면서 재빨리 마도소환수를 불러내어서 이동하려고 했다.
" 응?! 안 불러지네."
원래라면 제갈사에게 배운 마도술식에 따라 소환되어야 할 이동용 소환수가 소환되지 않았다. 부르려고 해도 세계의 흐름 자체가 끊겨있다는 느낌이었다.
이상하다. 소환마법을 쓸 수 없었던 일은 따로 없었는데...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나?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 어쩔 수 없군. 이 근처를 찾아볼 수밖에."
나는 기감을 향상시켜서 근처의 생명체가 있는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사슴이나 평범한 동물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암천향이나 혈계같은 이계가 아니라면 한결 편한 것이다.
' 아무래도 그 때 바다에 떠내려와서 해안에 도착한 것 같군.'
느껴지는 산수의 분위기로 보아서 이 곳은 중원이 아니다. 꽤 이국적인 수풀과 동식물이 있는 걸로 봐서는 남쪽의 어딘가인 것 같다. 기후 또한 습하고 더운 것 같다. 혹여 화요가 있는 남쪽 대륙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그 곳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기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을 찾아서 한동안 돌아다녔지만 일단 반경 일백 리 내에는 사람은 커녕 문명의 흔적도 없는 것 같았다. 꽤 넓은 대륙인 것 같았기에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중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비등도 소환수도 쓸 수 없는 이 상태에서...
고민하던 나는 이윽고 좋은 생각이 났다.
' 그래! 동서남북을 정확히 안 다음 일단 북쪽으로 계속 가 보자. 그리고 북극이 나오면 거기서부터 중원으로 가도 되고, 아니면 도중에 인간을 발견하겠지.'
타다다닷!!
나는 엄청난 기세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몸이 대라멸진의 후유증이 없이 말끔하게 회복되어 있으며 전에 없이 상쾌한 상태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전욱의 마력이 대라멸진으로 깨져야 할 그릇을 그대로 틀어막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나 뛰어갔을까? 나는 인기척을 발견하고는 급히 근처의 수풀에 숨었다.
' 저, 저건 뭐야.'
끼이이잉 -
거대한 기지같은 게 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건물들이 있었고, 지평선까지 길게 뻗은 도로같은 게 펼쳐져 있었다. 잠시 후 웬 기다란 철통모양의 무언가에 피부가 하얀 서양인이 올라탔으며, 천천히 덮개가 닫혔다.
쿠와앗
잠시 후 그 철통모양의 기구는 양날개를 통해 새빨간 불꽃을 분사하더니 하늘을 향해서 엄청난 속도로 사라졌다. 나는 이윽고 저게 하늘을 날려고 인간이 과학으로 만들어낸 기계라는 걸 알아챌 수가 있었다.
나는 기지 내로 은신술을 써서 잠입하며 내부 광경을 보았다. 확실히 서양인들이 일하고 있었으며 곳곳에 날개달린 철통이 여러개 있었다. 그리고 서양인들의 손에 뭔가 들려있는 걸 발견하자 놀랐다.
' 총?'
총 같긴 한데 내가 보아왔던 화승총과는 많이 달랐다. 치륜식 총기도 아니었고 탄두가 있는 최신식 총기도 아니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날렵하고 연사력이 좋아보이는 총기다. 병사들은 틀림없이 저 총을 쓰는 일에 숙련되어 있으리라.
' 음... 서양열국이 설마 벌써 저 정도로 총기를 발전시켰을 줄이야. 언제 저만큼 발전한 거지?'
그것보다 이 서양인들은 신성로마제국인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근처에서 가장 높아보이는 중년의 군인을 찾아내고는 몰래 다가가서 놈의 혈도를 잡아서 제압했다. 무공은 모르는 듯 평범한 인간의 신체능력이었기에 누워서 떡먹기였다.
" 이봐. 당신은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당신은 신성로마제국인인가? 대영제국인인가?"
" God damn... fuck!!"
" 음... 이건 고려말인데..."
" *#%&&%%**#...."
내가 구사하는 중원말과 고려말을 못 알아듣고 횡설수설하는 군인의 말이 왠지 낯익다. 나는 어디선가 들어본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선뜻 떠오르지가 않았다.
' 음... 어디서 들어봤는데 저 말...'
어쩔 수 없이 나는 천신경의 술법을 써서 근처 영혼을 하나 붙잡아서 말을 통역시켰다. 그러자 잠시 후 그 군인의 말이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 당신은 누구인가? 동양인 같은데 왜 우리 기지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 나는 백웅이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여긴 어디냐?"
" 웃기는 소리 하는군! 나는 에드먼드 미 공군사령관이며 여긴 미합중국의 땅이다. 너야말로 어디 사람이냐."
" 난 대웅제국의 황제다."
그러자 에드먼드가 껄껄 웃었다.
" 파하하!! 재작년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대웅제국의 사절단이 샌프란시스코에 왔었는데 그 때 보았던 제국황제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어. 어디서 정신병자같은 놈이 와서는..."
" 뭐? 여성?"
이 놈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나는 어이없어하다가 문득 눈치챘다.
' 대영제국 말 같다.'
놈의 말은 그쪽과 비슷해 보였다. 다만 기본적인 부분이 비슷할 뿐 굉장히 큰 차이가 나서 잘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중한 눈으로 에드먼드의 눈을 쳐다보았다.
" 미합중국이란 나라는 대영제국의 식민지인가?"
" ......"
에드먼드는 나를 미친 놈처럼 쳐다보다가 말했다.
" 정신병자 놈아. 지금은 20세기란 말이다! 대영제국이 어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