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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종족의 왕...!!
' 그것도 최상위 이족의 왕!'
나는 여동빈의 한 마디에 경계심을 단단히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강대한 이족이라는 존재, 그 중에서도 [흉신의 후예]는 최상위에 속하는 위험하고 강력한 종족이라고 들은 바가 있었다. 또한 약육강식인 이족의 특성상 그 왕이라는 존재는 당연히 종족 내에서 최강일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도 흉신의 모습을 따라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부터가 무시무시한 강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 얼마나 강할까?'
나는 문득 이 생각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고수라는 건 상대와 마주하는 순간부터 상대의 강함을 감지할 수 있는 법. 그 강함이 자신의 인식범위에 들어오게 되면 그때부터 대응책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 그 강함조차 파악하기 힘들며 막연한 영역에 있다는 것. 그것은 상대의 역량을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차가 난다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수많은 초월적 존재들과 맞닥뜨린 경험 덕에 금세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었다.
" ......"
이제 상황을 알아차렸다. 지금은 싸우고 말고할 때가 아니다.
절대 못 이긴다.
저런 괴물놈과 정면승부를 하려면 아직 힘이 많이 부족하다!
싸워보려는 시도 자체가 턱도 없는 짓이리라.
' 빌어먹을! 어디서부터 꼬인거지...'
나는 눈 앞이 막막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은 침착하게 말했다.
" 여동빈. 저 놈과 싸워서 이기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일단 후퇴해야할 것 같습니다."
[ 내 생각도 그렇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뜻과는 관계없다.]
" 네?"
[ 저 자의 뜻에 달려있지.]
여동빈은 그렇게 말하면서 뚫어져라 눈 앞에 나타난 이족의 왕을 쳐다보았다. 최대한 경계를 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기색이 보였다. 나는 절대지경의 감으로 여동빈의 그런 기색을 깨닫고는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 달기나 해신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았던 여동빈인데...'
그런 여동빈으로서도 상정하지 못할 정도의 거물이 나타났기 때문일까?
어쩌면 여동빈은 나와는 달리 상대의 역량을 어느 정도 잴 수 있는걸지도 모른다.
잠시 후, 자칭 [별을 뒤트는 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 귀하. 전의(戰意)가 사그라들었구려. 좋은 현상이오.]
" ... 네 목적은 뭐냐."
[ 귀하를 퇴치하러 왔다는 소기의 목적은 변동이 없소. 허나 그 목적을 이루는 김에 나의 주께 유리하도록 판을 짜려는 생각을 하오.]
스스스스스
[별을 뒤트는 자]가 소환했던 다섯 개의 언령 중 하나가 불규칙적으로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언령은 [별을 뒤트는 자]의 의지에 따라 서서히 하늘으로 떠올랐고, [별을 뒤트는 자]가 말했다.
[ 먼 별의 메아리여... 천공을 뒤틀지어다!]
부부북!!
마치 가죽이 찢겨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언령이 그 자리에서 흩어져서 터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현실이 찢겨나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찌지지직
콰드득
' ......?!'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이 마치 유리가 깨어지듯 뒤틀리고 녹았으며 현란한 녹색의 빛이 점멸한다. 광풍처럼 몰아치는 어둠의 연기가 시야를 가득 채워서 일 장 앞도 확인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나는 급히 호신강기를 동원해서 막으려 했으나 그 순간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 기(氣)가 움직이지 않아!'
다행히 호신강기를 쓰지 않아도 연기가 딱히 내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닌 듯 했으나, 나는 이 순간 내가 대라멸진으로 끌어올린 초월적인 기력이 전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 깨달았다. 본디 의념에 따라 운행되어야 할 기의 흐름은 알 수 없는 힘때문에 막혀버렸고 나는 맨몸뚱이로 어둠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 들었다.
시간정지가 아니다.
이 세계에 흐르는 장대한 [흐름] 그 자체를 제어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찢겨나가는 현실의 천공이 혼돈으로 물들더니 새어나간 연기가 뭉게뭉게 뭉치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하늘 멀리에 만들어지는 새까만 구체를 멍하니 보며 생각했다.
저건... 검은 별?
' 아냐. 별이 아니라... 달(月)인가!'
쿠구구구!!
그랬다. 허공의 한 점으로 수렴한 시꺼먼 점은 이윽고 크게 팽창하더니 조그마한 달처럼 거대해졌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의 절반정도 크기로 보였지만 그것이 [달]의 역할을 한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 명성(明星)이여. 쌍성(雙星)이 되어 주의 눈이 되어라!]
키기깅
두 번째 언령이 하늘로 날아가더니 검은 달과 한 쌍을 이루는 새하얀 별이 되었다. 삽시간에 두 개의 천체를 만들어낸 놈을 보면서 나는 기이한 기분에 휩싸였다.
' 뭐... 뭐지? 이 놈은 우리와 싸우려는 게 아니라 다른 걸 하고 있잖아.'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건지 모르겠다.
파앗
그 때 팔선들이 다같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공간전이의 술법을 써서 나타났고, 그 중에서 팔선 장과로가 하늘에 떠 있는 흑성(黑星)과 백성(白星)을 차례대로 쳐다보더니 경악해서 외쳤다.
[ 이... 이런!! 세계의 이치가 뒤틀리고 있구나! 이런 무서운 일이...]
" 장과로!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저 두 개의 별이 뭔가 일으키고 있단 말입니까?"
[ 설마 저 쌍성(雙星)이 저 존재가 시전한 마법이오?]
" 그렇습니다만..."
[ 오오오... 저 두 개의 별이 세계의 흐름을 빨아들이고 있소. 저 별 하나하나가 이계(異界)이니, 칠요(七曜)의 운행이 이계에 간섭받아 점차 뒤틀리고 있소...]
" ......"
[ 이대로 놔두면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이오...!!]
칠요!
나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저 두 개의 별이 소환된 목적이 칠요와 관계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 제기랄... 더는 안 돼. 뭐든 할 수밖에.'
나는 이를 악물고는 세 번째 언령을 막 떠올리고 있는 [별을 뒤트는 자]에게 외쳤다.
" 이봐!! 해신 안 잡을게! 그러니까 그만해!"
[ ......]
" 네 목적은 해신을 지키는 거잖아! 다 포기하고 물러날 테니까 그 주문들을 모두 해제시키란 말이다."
직감이 온다.
지금 해신을 잡는 것 이상으로 저 놈이 시도하는 게 위험한 일이라는 직감이!
여기서 중단시키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질 거 같았다.
[별을 뒤트는 자]는 갑자기 껄껄 웃었다.
[ 후후후후후후.......]
푸르르르
놈의 턱밑에 매달린 촉수가 잠시 뒤틀렸다. 그리고 놈이 대답했다.
[ 귀하... 과연 오만하구려. 우주홍황, 천좌의 일석(一席)을 차지한 제왕에게 필멸자로서 명령을 하다니... 본디 본왕은 그런 허황된 요구를 들으면 상대에게 절망으로 갚아줄 뿐 일말의 대꾸조차 하지 아니하외다.]
" ... 뭐?"
[ 허나.]
스으
놈은 마치 경의를 표하듯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 허나 귀하이기에... 다름아닌 귀하이기에 본왕은 귀하의 의견을 경청하겠나이다. 그 위대하신 우둔함과 오만함에 경의를 표할 따름일지라.]
뭐지?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나는 놈의 기괴한 말투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서서히 수요의 검극을 내리며 말했다.
" 좋아. 물러날 테니 주문을 물려 다오."
[ 흐음... 이미 발현한 창세주문(創世呪文)은 되돌릴 수 없소이다. 이 세계에 다섯 개의 대재앙을 뿌리려 하였으나 두 개로 그쳤으니 이로 만족하심이 어떻소, 광오한 우자(愚者)여?]
" 창세주문...?"
그게 뭐야?
나는 제갈사의 마법강의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기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옆을 돌아보자 팔선들도 모르는 개념인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놈이 재앙을 뿌렸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다는 사실이었고, 나는 놈이 나를 놀려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난 표정을 지었다.
" 사람 갖고놀지 마라! 자기가 해놓은 건 자기가 치우고 가!"
[ 흐흠... 본왕에게 고민케 하는구려. 귀하의 오만함이 내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으니.]
" 뭐..."
그 때였다.
쿠우우우
우오오오오 - !!
잠시동안 충격으로 굳어있던 해신이 다시 깨어나며 광포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해신의 몸에서 거대한 기파가 터져나왔고, 우리는 급히 방어막을 쳐서 해신에게 대비하려고 했다.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기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무난하게 해신의 포효를 막을 수가 있었다.
' 방금 전까지 내 몸통박치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다가 이제 깨어난 건가!'
설상가상이다. 저 괴물같은 놈에다가 해신까지 상대해야한다는 말인가?
" ......"
그냥 이번 삶은 포기할까? 다시 시작해도 될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서 이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 저 괴물놈한테 마법으로 봉인당해서 고문받는것보단 그냥 죽는 게 나을지도...'
내가 차분하게 안 아픈 자살법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 내 말이 들리는가?]
어?
[ 하찮은 존재여. 위험을 감수하고 네게 말을 거노니... 서둘러 대답하라.]
[ 네, 네!]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별안간 머릿속에서 울려퍼진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존재가 내게 말했다.
[ 특별히 너를 내 사도(師徒)로 삼아주겠다. 저 놈은 위험하니 이 자리에서 처치해야겠으니, 당장 받아들여라.]
[ 사도라고요?]
[ 감히 거역할 셈인가. 이미 인과율은 이어져있으니 네가 동의하면 끝이다.]
[ 자, 잠시만...]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계속해서 상황이 혼란의 도가니가 되자 정신을 차리기 힘든 지경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목소리의 조력을 받으면 천군만마를 얻는것과 다를바가 없었고, 어쩌면 눈 앞의 저 팔초어같은 괴물을 쓰러뜨릴 힘을 얻을 수도 있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세계를 통일할 때까지 자유롭게 행동하려 했던 내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목소리의 주인에게 이번 전생여정을 끌려다니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법문을 모으는 게 목표인 이상 그 존재에게 코를 꿰이는 건 안될 말이었다.
어떻게 하지?
' [별을 뒤트는 자]가 소환한 쌍성의 재앙을 놔두느냐, 아니면 부담을 감수하고 해치우느냐로군...'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눈 앞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 음... 더러운 놈! 문지기 따위가.]
위잉
해신의 포효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별을 뒤트는 자]가 세 번째 언령을 자신의 손 앞으로 띄우더니 주문을 외웠다.
[ 황충(黃蟲)의 권세여, 불경한 자를 뜯어먹어라.]
파라라락!!
그와 동시에 세 번째 언령이 발현되었고 난데없이 허공에서 수천억 마리는 될 법한 거대한 벌레무리가 소환되었다. 그 벌레무리는 모두 몸뚱아리가 황색이었는데 단순한 벌레가 아니라 제각각 모습이 다른 이계(異界)의 존재들인 것 같았다. 벌레무리는 삽시간에 해신의 몸뚱이를 뒤덮더니 물샐틈없이 빼곡하게 달라붙었다.
콰지지직
찌지지지직
빠지직!!
해신의 몸뚱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황충의 무리가 해신의 몸을 뜯어먹는 중이었다. 그러나 해신은 조금도 저항하지 못하고 그저 구슬픈 목소리로 다시 한 번 포효를 내지를 뿐이었다.
우오오오
그러나 그 포효는 황충을 조금도 떼어내지 못했고, 심지어 황충들은 해신의 마력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했다.
빠지지직
찌르륵 찌륵
그렇게 숨을 열 번 쉬는 사이에 해신의 몸뚱이는 절반이상 뜯어먹혔고, 종래에는 거대한 언덕만한 해신의 머리통이 바다에 떨어졌다.
풍덩
" ......"
너무나 간단하게 해신이 죽어버리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저 놈은 같은 편인 해신을 왜 죽인단 말인가? 그리고 겨우 주문 한 방으로 해신을 죽일 수가 있었단 말인가?
' 그냥 불쾌하단 이유로 죽인 건가?'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렸다.
' 해신의 핵(核)!'
해신의 핵이 있어야 백련교주의 원영신과 천령단 계약을 다른 신에게로 이전할 수 있을 텐데! 벌레가 다 뜯어먹었다면 핵이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이번 해신토벌의 전제조건이 뜬금없이 사라져버릴 위기였기에 나는 급히 말했다.
" 조, 좋아. 쌍성의 재앙은 포기할게. 대신에 해신의 핵이 남아있다면 우리가 가져가겠어."
[ 핵이라... 이미 본왕의 마법이 다 뜯어먹었을 터.]
" ......"
이런... 제기랄...
깽판도 정도껏 칠 것이지 이게 대체 뭐냐.
힘만 쎄면 다야?!
' 빌어먹을 새끼가!'
나는 이미 판이 반쯤 날아가고 손해만 볼 지경에 처했다 생각하니 미칠것만 같았다.
' 안 돼... 또 이런 식으로 망해버리면... 안 된다고!!'
절대 안 돼!
이대로라면 제갈부도 개죽음 당할 판이고 백련교도 완전히 무력화당할 판이었다.
' 저 새끼한테 한 방 먹여야 돼... 그러면서 손해는 더 이상 보면 안 돼...!!'
나는 눈에서 불을 켜며 머릿속에서 필사적으로 손이득을 계산해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마음을 정하고는 내 머릿속에 들어와있는 그 존재에게 대꾸했다.
[ 위대한 존재여! 그렇다면 내 한 가지 조건에 동의해주셔야 합니다.]
[ 감히 조건을 내건다고? 이런 건방진...]
[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는 이대로 당신과의 연결을 끊겠습니다.]
[ ... 말해봐라.]
[ 제 목적은 전세계에 흩어진 무생노모의 법문(法文)을 모으는 것입니다. 모든 법문을 모을 때까지 제게 전적으로 협력해 주셔야 하며 결코 배신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정도 조건이 되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
[ ......]
[ 이 조건을 받아들이신다면...]
[ 그러지. 본왕은 네 조건에 동의하겠다.]
의외로 상대는 순순히 내 조건을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법문을 모으는 게 허황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다가 그보다 [별을 뒤트는 자]를 놔두는 게 더욱 큰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 거절하면 정말로 포기하고 자살할 생각이었는데 내 의사가 전달된 모양이군...'
진심어린 태도로 교섭에 나서면 상대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법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전생자인 내가 한없이 유리하다고 볼 수 있었다.
[ 좋습니다.]
[ 너를 내 사도로 임명하노라.]
후우우우
그와 동시에 내 내면에 있던 음신지력이 공명하며 거대한 신격과 내 정신이 연결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신력(神力)을 느끼면서 위대한 존재가 내려오는 걸 정신력으로 인도하고 있자, 앞에 둥둥 떠 있던 [별을 뒤트는 자]가 움찔했다.
[ 오오... 설마...]
나는 이를 갈며 외쳤다.
" 그 설마다 이 개자식아!! 작작 했어야지!"
[ ......!!]
" 내 목숨을 걸고 네놈을 엿먹여 줄 테다!"
파앙!!
전신에 음신지력이 차오름과 동시에 나는 머릿속의 길을 틔워서 그 존재가 내려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존재가 내 몸 속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신(神)의 감각이 성천에까지 도달하는 게 느껴졌다. 또한 내 의식은 몸의 통제권을 잃고 안쪽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우웅...
[ 필멸자 치곤 제법 괜찮은 신체군.]
이윽고 완벽하게 강신(降神)이 이루어지자 내 몸을 얻은 그 존재가 손을 옴지락거리며 말했다.
[ 신선들이여. 너희는 천계 서왕모에게 흉신의 이변에 함께 맞서자고 전해라. 알겠나?]
[ ......]
[ 저 쌍성의 재앙을 떨어뜨리는 건 서왕모의 몫이다.]
팔선들은 일련의 상황변화를 손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뜬금없이 말투가 뒤바뀌고 신언(神言)을 구사하는 상황에 당황한 듯 했다. 그러나 상황을 제일 먼저 이해한 것은 뜻밖에도 여동빈이었고, 그가 말했다.
[ 알겠소. 위대한 삼황오제여.]
파앗!!
팔선이 동시에 천계로 사라졌다. 그리고 장내에는 [나]와 [별을 뒤트는 자]가 서로를 마주보는 형상이 되었다.
침묵.
그리고 [별을 뒤트는 자]가 말했다.
[ 이 세계의 영주여! 나의 주께서 명하시나니 나는 종말을 가속시킬 다섯의 재앙을 초래하기 위해 이 별에 내려앉았을진저. 그 인과율은 흉신의 언령으로 성립하오. 그대에게는 어떠한 인과율이 있기에 주의 위대한 행위에 개입하시오?]
뜻밖에도 내 몸을 차지한 존재는 바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정중하게 대꾸했다.
[ 이 자는 나의 사도. 사도의 몸에 강림하는 것이 이상한가? 이계의 왕좌에서 온 자여.]
[ 바라옵건대 나의 주께서 자비를 베풀기를. 이 몸, 구주의 검이 되어 쓸데없이 영주의 피를 보게 되겠구려.]
[ 크크크... 하류배의 왕인 주제에 아주 건방지구나.]
스아앗
나의 몸을 차지한 자가 광소를 터뜨리더니 손을 쫙하고 뻗었다. 그와 동시에 인과를 왜곡하고 반드시 적중하는 암창(暗槍)이 일순간에 손끝에서 튕겨져서 [별을 뒤트는 자]에게 날아갔다. 이 창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가 없었으며 적중하게 되면 팔부신중이라 해도 처참하게 쓰러지게끔 되어 있었다.
퓨퓻!
그러나 암창은 허공에서 [별을 뒤트는 자]의 기묘한 별무리빛 방어막에 가로막혔다. 저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엄청난 수준의 마법인 게 분명해 보였다. [별을 뒤트는 자]는 조용히 네 번째 언령을 영창했다.
[ 울러퍼져라... 백억의 한숨이여.]
피이잉
그와 동시에 천공에서 차마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빛줄기가 광속으로 덮쳐오는 게 느껴졌다. 신의 감각이기에 광속조차 찰나로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공격인 게 틀림없었다.
[ 거부하노라!]
그리고 이쪽 또한 [별을 뒤트는 자]의 네 번째 언령에 대항해서 마주 신언을 외쳤다. 그러자 말에 담긴 신의 힘이 이 별을 향해 쏘아지는 백억 개의 광파(光派)를 무효화시켜버리고 말았다.
쿠구궁...
콰앙!!
강림한 존재가 곧장 내 몸을 이용해서 뛰어들며 일권을 내질렀다. 그 힘은 내가 대라멸진으로 끌어올린 것보다 열 배이상 강력했기에 단숨에 대지가 뒤흔들리며 거대한 해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직접공격에 [별을 뒤트는 자] 또한 자신의 손을 이용해서 정면으로 막아내었다.
꾸웅!
[ 아주 성급하구려...]
[ 그런가. 다짜고짜 재앙을 불러낸 네놈보다는 덜하겠지.]
전욱이 주먹을 거두고 물러나자 놈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 과찬의 말씀... 주를 향한 이 마음이 격렬하게 파멸을 원하는구려.]
쿠구구구...
' 막아내다니!'
나는 내심 경악했다.
삼황오제(三皇五帝) 전욱(顓頊)의 힘을 정면에서 물리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니! 저 놈의 육체에 잠재된 힘도 그렇게 어마어마하단 말인가?! 나는 삼황오제 전욱을 강림시킨 이래로 이렇게 팽팽한 싸움이 되는 일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사도여. 놀랄 필요는 없다.]
이어진 전욱의 말에 나는 이번 생이 정말 쉽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 저 놈 또한 [옛 지배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