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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97화 (99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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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당혹스럽다. 어떻게 해신이 난데없이 이 상황에 나타날 수 있을까?

전령의 보고를 들어보면 뭘로 봐도 해신이 나타난 게 틀림없지만, 하필 지금 나타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생각이 넘쳐흘렀지만 나는 문득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 ... 제갈부!!"

전령이 똑바로 해신의 모습을 보고할 수 있었던 이유.

황연 대장군을 비롯한 대군이 비교적 적은 피해로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본진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제갈부가 파견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십이율의 고수나 술법사들이 황연을 암살하는 걸 막기 위해서 그를 배치한 것이었지만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 듯 했다.

' 제갈부는 만일을 대비해서 양산형 현자의 돌을 갖고 있었어. 그걸 이용해서 마(魔)의 힘에서 아군을 보호하는 수호결계를 펼친 거겠지. 하지만...'

해신이 직접 나타났던 거라면 제갈부가 멀쩡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당장 구해주러 가야 한다!

내가 급히 망량을 돌아보자, 그는 침착한 눈빛으로 말했다.

" 백웅! 지금 결정해야 하오. 여기서 군을 물릴지 아니면 해신을 토벌할지!"

" 무슨 말이오!"

" 제갈부의 안위는 나중 문제요. 이건 십이율주의 공격이나 다름없으니, 당신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제갈사가 망량의 말을 거들었다.

" 놈이 일부러 신단수의 결계와 봉황의 수호를 풀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모종의 방법으로 해신이 우리 군을 치도록 유도했겠지. 네가 해신을 토벌하듯 못하든 십이율주는 크게 손해볼 게 없다."

" 크윽... 제길!!"

" 하지만, 우리도 더 손해볼 필요가 없는 건 마찬가지."

" 뭐?"

" 천계의 간섭을 감수하고 전이문을 발동시켜서 전군을 귀환시키면 그만이다. 전쟁은 여기서 끝내버리는 거지. 그러면 해신의 폭주는 십이율주 본인이 다시 감당할 몫이니까 큰 피해 없이 넘겨버릴 수 있다."

제갈사의 말은 언뜻 완벽한 계책인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이내 그 허점을 깨닫고 말했다.

" ... 하지만 그렇게 하면 고려의 무고한 백성들이 죽잖아."

아무리 십이율주가 대단한 놈이라 해도 이런 계책을 쓰고나서 바로 해신을 제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게 되었다면 진작에 해신을 토벌했어야 한다.

결국 십이율주는 내가 해신토벌에 나설거라고 기대하고는 무리수를 둔 셈이며, 만일 내가 고려에서 발을 빼게 된다면 나머지 고통은 고스란히 고려백성의 몫이다. 외우주에서 봤던 것처럼 어마어마한 참극이 고려땅을 뒤덮게 될 것이며 해신족이 인간을 학살하고 구워먹고 잔인하게 능욕하리라. 그건 차마 인간의 상식과 윤리로는 항거할 수 없는 잔혹한 마도(魔道)의 광경이었다.

제갈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 뭐, 전쟁으로 죽는 것보다 잔인하게 죽긴 하겠군... 하지만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그건 네 탓이 아니야. 인간의 전쟁에 신이라는 존재를 끌어들인 십이율주의 탓이지."

" 그렇지만... 그렇게 죽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

도저히 이대로 두고볼 수는 없다.

내가 침묵하자 막사 내에 침묵이 함께 감돌았다.

" 크크, 십이율주 놈. 어떻게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라는 녀석의 성향을 완전히 읽고 있군. 틀림없이 토벌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지 않는다면 이런 계책은 절대로 쓸 수가 없어..."

제갈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 우유부단한 나의 주군이여. 지금 결정을 내려. 해신을 토벌할 건가?"

" ......"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건 틀림없이 손해보는 짓이다. 십이율주의 수법에 말려들어가는 짓이다. 내가 해신을 토벌하게 되면 진만 빠지게 될 것이며 십이율주는 그 틈을 타서 정예를 모아 나를 공격할 것이리라. 하지만 이걸 피하게 되면 인간이 해신에게 학살당하게 되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 해신을 토벌한다."

나는 검을 꾹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말했다.

" 나는 대제국의 황제로써 이 전쟁에 책임을 지겠어!"

전쟁을 시작한 이상 그 전쟁의 향방을 책임지는 건 결국 나일 수밖에 없다. 그 책임을 피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부터 나는 양심의 가책을 계속해서 받아왔다. 내 전생여정이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손이득을 핑계로 양민의 학살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해신을 토벌하는 게 내가 대륙황제로서 책임을 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백련교주가 말했다.

[ 백웅이여... 해신을 쓰러뜨리면 우리의 원영신과 천령단은 무력화되며 결국 백련교의 힘 또한 사라질 것이다. 그건 어떻게 할 것인가.]

" ... 으음."

이것 또한 문제다. 이미 해신을 쓰러뜨리면 백련교의 전력이 크게 약화된다는 걸 전생여정 중에 직접 눈으로 목격했던 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위대한 [옥좌]에서 힘을 끌어오는 중간단계의 중개인이 바로 해신이었기 때문에 해신을 쓰러뜨리는 순간 원영신과 천령단은 계약파기상태나 다름없게 된다.

그러자 뜻밖에 제갈유룡이 대답했다.

" 그건 내가 해결해줄 수 있다."

[ 그대가...?]

" 계약의 중개인이 사라진 공백은 다른 [지배자]에게 걸면 되는 것. 황궁의 [지배자]에게 계약이전을 하면 가능하다. 내가 어둠의 제사장으로써 의식을 치뤄 주지."

[ 계약 이전이라... 허나 그건 신격에게도 큰 부담을 초래하는 일이다. 필멸자의 알량한 공물로는 결코 받아들여줄 일이 아니다.]

" 그래. 그렇다고 백웅의 보물을 무작정 들이부을 수도 없지. 그는 그다지 자비로운 존재가 아니므로 보물을 골수까지 빨아먹으려고 들 것이다. 그렇다면 전제조건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제갈유룡이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백웅이여. 이번에 해신을 쓰러뜨린다면 반드시 해신의 핵(核)을 손에 넣어야 한다! 그게 절대명제다."

" 핵?"

" 그렇다. 과거 그대가 해신을 쓰러뜨렸을 때는 기절하거나 상황을 돌볼 새가 없었던 것 같지만... 본디 신을 쓰러뜨릴 경우 물질계 육신의 근간이 되는 핵이 남게끔 되어 있다. 그 핵은 천하에 다시없는 보물이며 신체(神體)이니, 그걸 얻어야 한다."

" 으음...!!"

" 아무리 약하다 해도 해신은 [옛 지배자]. 해신의 핵을 대가로 바치면서 계약이전을 해 달라고 하면 황궁의 지배자 또한 제안을 받아들여줄 것이다. 그에게는 실보다 득이 큰 선택이니까."

백련교의 문제도 이걸로 해결이 된 것인가.

하지만 제갈유룡이 없었다면 생각지도 못했을 방법이었기에 나는 새삼 이번 삶에서 얼마나 큰 세력을 꾸렸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말했다.

" 그럼 가자!"

파앗

나는 동료들을 데리고 전령에게 들은대로 평주성(平州城)으로 갔다. 본디 개경의 지척까지 진군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병력을 물렸다고 들었고, 나는 과거에 고려를 돌아다닐 때 평주에 들른 적이 있었기에 비등을 이용해서 바로 갈 수가 있었다.

나는 평주성의 일대에 거대한 결계가 쳐져 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결계였지만 분명히 강력한 힘을 머금고 마(魔)를 몰아내게끔 되어 있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평주성 내로 들어가서 대장군이 거처하는 평주궁으로 들어갔다.

" 황연 대장군! 무사하오?"

황연은 다소 초췌해진 기색이었지만 내게 부복하며 말했다.

" 황상께 심려 끼쳐드려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 피해상황이 어떻소?"

" 4만여 명이 전사(戰死)했으며 2만여 명이 실종상태이옵니다."

" 보고로 들었던 것보다 더욱 피해가 크구려."

" ... 천재(天災)였사옵니다. 제 능력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였사옵니다..."

황연은 한탄했다. 나는 인간으로써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생각하며 황연에게 말했다.

" 장군. 내황각주는 어디있소?"

" 그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사옵니다. 그리하여 별궁에서 의원들을 불러 계속해서 치료중이옵니다."

" 안내하시오."

우리는 제갈부가 있는 별궁으로 갔다. 그리고 그가 누운 침상을 보자 깜짝 놀랐다.

" ......!!"

" 오셨... 사옵니까."

제갈부는 희미하게 말을 하고 있었고 이성도 온전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전신은 피칠갑이 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왼쪽 팔과 왼쪽 다리를 포함한 좌반신이 거의 다 물고기처럼 변형되어 있었다. 또한 남은 반쪽 몸에서는 쉴새없이 고름과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봐도 극악한 저주(詛呪)에 걸린 모습이었고, 그 옆에서 의원들과 내황각의 술법사들이 계속해서 붕대를 갈면서 제갈부를 치료중이었다.

나는 한동안 할 말을 잃다가 말했다.

" 모두들 물러가라."

인적이 없어지자 나는 제갈부에게 말했다.

" 괜찮나? 이건 대체..."

" 크... 크흐흐...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이 덮쳐오니 아무 생각도 안 나더군... 해신의 개입은 이번 전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하필 내가..."

" ......"

제갈부가 입을 떨며 말했다.

" 이... 이건... 해신에게서 직접 받은 저주다... 언령(言靈)으로 걸린 거라서 놈이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아..."

" 놈이 어째서 네게 저주를..."

" 수정석비를 이용해서 양산했던 하급 현자의 돌... 그걸 이용해서 해신의 광포한 외침을 한 번 막아냈다... 물론 현자의 돌은 즉시 깨졌지... 십만 대군이 한순간에 고깃덩어리가 될 뻔한 걸 막은 대가로는 쌌다만... 해신이 즉시 날 주시했어..."

" ......"

" 놈은 내게 죽으면 자기에게로 영혼이 귀속되는 저주를 내렸다... 내가 죽게 되면 놈의 궁전에서 억년토록 해신족 술법사 노예가 되는 거다... 크... 크하하..."

광기에 젖은 웃음소리가 흘렀다. 술법사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덮쳐오니 정신이 반쯤 붕괴된 것 같았다.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 이 성의 결계도 네가 펼쳤나?"

" ... 마지막 힘을 다한 거다... 하지만... 이 결계도 오래는 못 가... 해신족의 침입 정도는 물리쳐 줄테지만... 해신이 이 근처에 오면 바로 부숴질 것이다..."

" 그래... 너는 얼마나 저주에 버틸 수 있겠냐?"

" 길어도... 이틀... 그것도 희망적이군..."

" 알았다. 그 안에 끝장을 보겠다."

스윽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제갈부가 말했다.

" ... 그만둬..."

" 아니. 해신을 토벌할 거다."

제갈부가 입술을 달싹였다.

" 어리석은 짓이다... 율주의 계략에 말려들 뿐... 그냥 날 버리고 전력을 보전하는 게 백 배 나을 것이다... 해신과 지금 정면승부하는 건... 너무 큰 실책..."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내가 언제는 어리석지 않은 적이 있었냐?"

" ......"

" 걱정 마라. 죽어도 너 혼자 죽게 두진 않을 테니까."

" 미친 놈..."

제갈부는 희미한 웃음을 짓고는 기절했다. 나는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 제갈유룡. 술법으로 제갈부가 이틀이상 버틸 수 있게 할 수 있겠냐?"

" 무리다. 이건 신이 직접 내린 저주. 이틀도 희망적이란 말은 괜히 한 말이 아니야. 인간의 술법력으로는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어."

" 내가 음신지력을 쓰면?"

" 신의 저주에 신의 힘으로 대항하는 것이니 증상의 완화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 하나하나에 네 힘을 낭비한다면..."

화아악

나는 그 말이 나오자마자 바로 제갈부의 심장부위에 장심을 갖다대고 음신지력을 불어넣었다. 족히 5년 치는 되는 음신지력이 제갈부에게 스며들어가자, 좌반신의 저주범위가 3할 정도 줄어들고 몸의 고름과 피가 멎었다. 대신 제갈부는 큰 한기를 느끼는지 재채기를 하기 시작했다.

" 쿨룩! 쿨룩."

" 이제 좀 낫겠군."

" 멍청하긴... 넌 이번 생에 음신지력을 늘리기는 커녕 계속 깎아먹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느냐?"

" 안되면 죽고 또 죽으면서 늘릴테니까 걱정 마. 그 정도 각오도 없는 줄 알아?"

" ... 음신지력도 몸에 해를 줄 수 있으니 부적으로 힘의 균형을 꾀하겠다."

제갈유룡은 더 대화하기 싫다는 듯 제갈부의 치료를 시작했다.

나는 제갈사에게 말했다.

" 제갈사. 해신토벌인원을 어떻게 꾸리는 게 좋을까?"

" 흐음. 진심인가보군."

제갈사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

" 흉신의 언령을 이번 토벌에 소모하는 건 당연하다고 봐야지. 그래야 유효타를 주는데 큰 희생을 치르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네가 백련지종 천뢰신무를 제대로 쓸 수 있다는 전제도 필요하고."

" 쓸 수 있다고 치면 얼마나 동료가 더 필요하지?"

" 널 제외하고는 투선 2명 정도? 그게 최소치라고 생각한다만."

" ......"

"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옛 지배자] 중에 최약체라고 해도 지배자는 지배자니까. 이렇게라도 토벌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감지덕지지."

" 백련교주는 데려갈 수 없잖아."

" 그래. 그러니까 제천대성이나 항우를 꼬셔라. 그게 최선이다."

" 으음...!!"

" 현재 네 동료중에서 쓸만한 녀석들은 다 수련중이거나 술법사. 이래서는 인간동료는 무의미하지. 천계투선의 도움을 얻는 게 전제조건일 것이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그 다음은 팔선(八仙)을 데려오는 거지."

" 알았어. 해 보자."

파앗!

나는 천계에 공양의식을 하기로 했다. 제단을 마련해놓고 술법사들이 제의를 시작하자 이내 신령스러운 구름이 사방에 감돌기 시작했고, 머지 않아서 제천대성이 천계에서 소환되어 그 영체를 제단 위에 드러냈다.

[ 어이. 나처럼 조용히 살고 있는 녀석을 뭐하려고 부른거냐?]

제천대성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제천대성에게 대뜸 수요를 내밀며 말했다.

" 제천대성! 수요를 당신에게 공양해 드리겠소. 대신에 조건이 있소."

수요는 엄청나게 귀한 보물이지만 어차피 이번 위기를 못 넘기면 수요가 있어도 무의미하다.

[ 엥 수요?!]

제천대성이 깜짝 놀랐다. 그는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수요가 진짜인걸 깨닫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 무슨 조건이냐?]

" 해신을 토벌할 생각이니 힘을 빌려주시오. 토벌중에 당신이 수요를 써도 상관없소."

[ ... 아 거, 뭐냐~~ 거 참 빡센 조건이네 그거참~~]

제천대성이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그의 입장에서 [옛 지배자]랑 싸우는 건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제천대성에게 말했다.

" 강력한 존재이지만 당신 힘을 빌리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소. 우리도 크게 거들어주겠소."

[ 뭐 그럴지도 모르겠다만! 근데 해신이 쓰러지면 세상의 인과율이 뒤죽박죽이 될게 뻔할거고, 나는 옥황이나 서왕모한테 혼 좀 날거같고, 심하면 또 화과산에 봉인될거고... 이래저래 너무 귀찮고 힘들단 말이지... 게다가 그정도 되는 놈이랑 싸우다보면 나도 죽을 위기를 넘겨야 하고... 크흠...]

" 그럼 어쩔 수 없겠군. 수요를 바치는 건 없던 일로 해야겠구려..."

[ 음... 잠깐 기다려 봐. 생각 좀.]

" 생각 마음껏 하시오."

제천대성은 곰곰히 머리를 굴리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 야. 위험수당을 받아야겠다. 조금만 더 공물을 내놔봐.]

" 위험수당?"

[ 그래. 그것만 주면 내가 다른 놈들도 꼬셔주지.]

" 음..."

예상치 못한 제안이다. 내가 힐끔 망량을 쳐다보자, 망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제천대성이여. 신대의 비급인 삼황내문을 받아주소서! 그리고 수요의 유적에서 얻은 금괴와, 백금을 추가로 바치겠나이다."

[ 오...!! 이 정도라면 뭐.]

나는 깜짝 놀라서 망량에게 말했다.

" 망량! 그건 당신이 수련해야 할 비급이잖소."

금괴나 백금은 그다지 아깝지 않다. 어차피 내가 대륙황제니까 그깟 보물금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삼황내문은 그 자체로 강력한 보물이자 비급이었기에 나는 망량이 큰 손해를 입을거라 생각했다.

" 괜찮소. 다 외웠소."

" ......"

그 방대한 양을 다 외웠단 말인가? 아무튼 그렇게 되자 제천대성과 교섭이 성립되었고, 제천대성이 말했다.

[ 어이. 잠깐 있어봐. 다른 녀석들을 꼬셔볼 테니까.]

쉬익!

제천대성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제천대성은 옆에 다른 영체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파바밧

나타난 영체들이 말했다.

[ 정녕 그대가 해신을 토벌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는가?]

[ 믿기지 않는군...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 저 자는 상당한 실력자로군.]

[ 인간세상의 황제가 어찌 해신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

[ 제천대성이여. 이 일을 서왕모가 우려하고 있소.]

저마다 한 마디씩 하던 영체들 중에서 문득 한 명이 앞으로 나오더니 내게 고개를 숙였다.

[ 황제여, 미안하다. 그대가 선인(善人)인걸 모르고 섣불리 겁박한 내 우(愚)를 용서하라.]

" 별 말씀을."

[ 허나, 알아두라. 위정자가 백성에게 흘리게 한 피는 결국 그 자신에게 화(禍)로 돌아오는 법... 앞으로도 선정을 베풀기를.]

나는 훗하고 웃었다.

" 유념하겠소. 조국구(曹國舅)."

그렇다.

제천대성이 꼬셔서 데려온 것은 바로 중화팔선(中華八仙)!

제천대성은 단번에 그들을 굴비처럼 엮어서는 이 공양의식 자리에 데려온 것이다.

나는 그들 중에서 여동빈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 여동빈이여! 이 화룡신검(火龍神劍)을 당신이 써주실 수 있겠소?"

스윽

[ ......]

여동빈이 말없이 화룡신검을 받아들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 화신지혼의 힘으로 약간은 힘을 회복해 두었으나 화룡진인은 아직 눈을 뜨지는 못했소. 그러나 당신이라면 화룡신검을 누구보다 잘 쓸 수 있을거라 생각하오."

[ 연자여... 그대와 나는 어떤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연결되어 있구나...]

여동빈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했다.

[ 좋다. 그대가 바친 공양의 제물은 비록 우리 팔선 모두를 움직이기엔 부족하지만... 마(魔)의 선두와 대적함에 있어서 우리 팔선이 어찌 스스로의 힘을 아끼겠는가? 우리 모두가 해신을 토벌하는데 참전하리라!]

" 고맙소!"

제천대성과 팔선!

이들이 내 해신토벌에 참전하게 된 것이다.

' 이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기분이 좋아진다.

선(善)의 행로를 따르면 이렇게 일이 쉬워질 수도 있다니!

" 자, 그럼 해신이 있는 곳으로 가겠..."

내가 제천대성과 팔선을 이끌고 해신을 토벌하러 가려고 할 때였다.

쿠구구궁!!!

갑자기 거대한 굉음과 함께 전방에 강력한 영체가 내려앉았다.

그는 삼안(三眼)을 지닌 청수한 이목의 절세미남이었는데, 그의 영기 또한 투선이었다. 또한 삼첨창을 들고서 이쪽을 겨누고 있었으며 곁에는 영수인 신견(神犬)이 서 있었다. 저런 존재는 천계에 단 하나밖에 없었기에 제천대성이 단숨에 그를 알아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 무슨 일이냐? 이랑진군.]

천계의 고위급 투선이자 봉신전쟁의 영웅인 이랑진군은 우리 쪽으로 겨눈 삼첨창에 강한 살기를 담으며 말했다.

[ 모두들 그 자리에 멈추시오. 나 투선 이랑진군, 서왕모의 명으로 이 공양의식을 무효화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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