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995화 (992/1,615)

995====================

사신지혼(四神之魂)

만광포의 포화가 이어졌다.

콰콰쾅!!

콰쾅!!

간헐적으로 적의 화포가 불을 뿜기도 했으나, 이윽고 만광포의 사거리가 상대의 화포보다 훨씬 길었기 때문에 이쪽은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등한 교환이라면 서로 물러나거나 동귀어진을 하겠지만, 현재로써는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적들은 허겁지겁 포병대를 뒤쪽으로 물리는 모양이었다.

' 얼추 봐도 사거리가 최소 3배 이상 차이 나는군...'

아니, 실제로는 그 이상의 사거리도 가능할 것이지만 아직 신병기에 적응이 덜 되어서 사거리를 더 벌리지 못한다고 황연에게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신병기의 성능에 인간의 숙련도가 아직 따라가지 못했다.

엄청난 성능이다. 아무리 수정석비와 과학기술, 수요의 힘을 이용했다지만 이 시대에 용납되는 병기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심지어 아군마저도 만광포의 폭격에 휘말릴까봐 적들의 화살이나 쇠뇌가 날아오지 않는데도 적의 성벽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을 정도였다.

꽈과광!!

후두둑...

이윽고 적 요새의 일각이 무너졌다. 그냥 돌로 축성한게 아니라 삼중으로 축벽을 이룬 견고한 요새였는데도 허무하게 뚫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군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특히 전투경험이 많은 병사들이 더 크게 환호하는 기색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겨우 대포 몇 번 날렸다고 저렇게 견고한 성체가 단숨에 무너지는 일은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저 벽 하나를 뚫기 위해서는 최소 5만 이상의 죽음이 수반되는 일이 허다했기에 더욱 흥분한 듯 했다.

황연은 병사들을 진정시키며 다시금 지시를 내리는 듯 했다.

끼리리릭!!

끼리릭!

이윽고 만광포를 이끄는 포병부다가 서서히 전진하기 시작했고, 그 곁에 보조를 맞춰 귀뢰포 부대가 함께 전진했다. 1500문의 신병기 중에서 만광포는 총 270여문 남짓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천여 문은 모두 귀뢰포였다. 그나마도 황연은 오늘의 전쟁에 만광포를 30여 문 밖에 내어놓지 않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는 더 이상 만광포의 탄약을 낭비할 필요없이 승리를 이끌 수 있다고 보았으며, 나머지 전장을 휩쓰는 건 귀뢰포의 역할이었다.

두쿵...

쿠콰쾅!!

쿠콰쾅!!

다시금 만광포가 그 자리에서 고각(高角)으로 불을 뿜었다. 그리고 시력을 돋구어서 만광포가 포격하는 곳을 보자, 내성(內城)의 성벽이 부서지면서 동시에 관측탑으로 보이는 곳 또한 돌덩이와 함께 무너졌다.

황연은 섣불리 전진하지 않고 미리 내성의 방어를 안전하게 무력화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공격으로 적들은 상당히 전의를 잃은 듯, 외성과 내성 사이에 집결해 있던 병사들이 크게 혼란스러워하며 우왕좌왕하는 게 보였다.

청력을 강화시키자 고려 지휘관들이 더러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렸다.

" 정신 차려라!"

" 돌격! 돌격 준비를 하라. 저 포는 발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10개 병대 개별지휘로 적 포병을 무력화한다! 그것 외엔 방법이 없다."

그러자 부지휘관들이 경악했다.

" 불가능합니다! 적의 대군이 평야에 도열해 있는데 그 방어를 뚫고 저 포병대를 칠 방법은 없습니다."

" 있다! 대장군께서 길을 만들어 주실 것이니 목숨을 걸어라."

" ...네!!"

대장군?

나는 그 대화를 수십 리 밖에서 듣고 있다가 턱을 쓰다듬었다.

' 이제야 뭔가 나올 셈인가 보군.'

통상적인 전쟁이었다면 만광포가 적 요새의 내성벽을 붕괴시킨 시점에서 이미 전쟁은 아군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부서진 성이라면 평야와 다를 바가 없으니 남은 건 그저 유린 뿐. 그러나 적들도 그 사실을 알 텐데도 포기하지 않고 만광포를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 말은 24만 대군의 방어를 뚫고 만광포에 접근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황연에게 알려줘야 할까...?

나는 옆에 있던 백련교주를 힐끔 쳐다보았다. 백련교주 또한 나처럼 청력을 강화시켜서 성내 정황을 듣고 있었는지 말했다.

[ 황연에게 말해 줄 필요는 없다. 그가 알아서 할 것이다.]

" 대장군이란 놈을 우리가 견제해야 하지 않을까?"

[ 책사들의 말을 잊었는가. [누가 먼저] 이면의 힘을 꺼내는지가 중요하다고... 대장군이란 놈이 얼마나 강하든 우리 둘이 합공하면 제압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는 힘에 힘으로 받아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이득이 남지 않는다. 강한 힘을 갖고 있어도 영활하게 이득을 챙기지 않으면 결국 불리해지는 것... 또한 팔선 조국구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지 않았는가...]

" 흠..."

[ 우선 지켜봐라. 적들이 도를 넘으면, 그 때 개입해도 늦지 않다.]

맞는 말이다. 나는 상석에서 그냥 관람하기로 마음먹었다. 충분히 전장을 쓸어버릴 수 있는 힘이 있더라도 그걸 맘대로 휘두르면 그 순간 천계에 빌미를 제대로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황연에게 맡겨두는 게 옳으리라.

후우웅!!

잠시 후 성 내부에서 삼만 여 군세가 열 개의 방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만광포에 피해를 덜 입으려는 듯 산개해서 평야로 전개했는데, 모든 병대의 살기가 만광포 부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 음, 무모하군!'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듯 24만 대군은 저 멀리서 달려오는 기병대를 보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 자체가 아닌가? 하지만 삼만의 병력이 이 자리에 뼈를 묻는 한이 있어도 만광포 부대에 피해를 준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는 고려에 이득이었기에 적들의 선택도 이해가 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장에 거대한 사자후가 울렸다.

[ 이 땅을 침범한 자들이여!! 몸성히 돌아갈 수 없으리라!]

쩌렁거리는 사자후에 일순간 전열에 있던 병사들 수만 명이 동요하는 듯 했다. 나 또한 멀리서 그 사자후를 듣고는 꽤 놀랐다.

' ...엄청난 내공이다!!'

적에 이런 내공의 소유자가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적의 선봉에서 말을 타고 돌진하고 있는 자의 모습을 보자 눈을 부릅떴다.

" 척준기(拓俊企)!"

싸울아비 문주!

조의선인, 북해빙궁주와 함께 십이율 문주 중에서도 손꼽히는 삼대강자!

나 또한 절정고수 시절에 십이율 문주와 차례대로 한 번씩 싸워본 적 있었기에 척준기를 알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싸울아비 문주 척준기에게 손도 발도 써보지 못하고 농락당하다가 제압당했었다.

굳이 그의 무위를 재어보자면 초절정의 끝에 다다른 자! 평생 무를 수련하면 이후에 절대지경에 이를 가능성이 높았으며 실질적으로 겉으로 드러난 무림에서는 분명한 최강자 반열이었다. 그리고 척준기의 뒤를 따르는 고려 장군들의 외침에 나는 상황을 알 수 있었다.

" 척준기 대장군을 따라라!!"

" 대장군께서 길을 열어주신다!"

싸울아비 문주인 척준기가 고려의 대장군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즉시 깨달았다. 싸울아비는 본디 국가를 수호하던 수호문파였다. 싸울아비 문주가 군직(軍職)에 종사하며 대장군을 수행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위험에 처하자, 싸울아비 문주가 종군해서 고려군을 이끌고 있는 듯 했다.

이윽고 만광포가 불을 뿜었다.

콰콰콰쾅!

콰콰쾅!!

으아아악-!

만광포 부대들은 돌격하는 고려 병대에 포격을 퍼부었으며 한 번 포화가 쏟아질 때마다 최소 백여 명이 죽어나갔다. 아직 성벽에서 별로 나오지 못했는데 오 리 밖에서 처참하게 고려병들이 전멸당하고 있었다.

쿠쾅!!

" 아, 아니!!"

" 저럴 수가!"

그러나 척준기가 이끄는 삼천여 명의 결사대는 달랐다. 선두에서 말을 타고 있던 척준기가 눈을 빛내며 기다란 장검으로 일섬을 날리자, 검강(劍罡)이 뻗어나가며 만광포의 탄을 허공에서 갈라버렸기 때문이었다. 만광포가 날아가는 속도는 소리의 속도를 훨씬 넘는데도 척준기는 아주 가볍게 터뜨리는 듯 했다.

콰콰쾅

" 접근을 허용치 마라! 전 부대, 연사하라!"

투투투투퉁!!

만광포 부대장이 조급해졌는지 연사를 명령했다. 사실 만광포는 한 다경에 2십여 번 이상 사격하는 게 가능했으므로, 발사까지 딱히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다만 너무 압도적인 신병기의 성능을 보여주면 도리어 아군이 나태해진다는 우려에 황연은 만광포를 일부러 천천히 발사하게 명했던 것이다.

[ 이깟 포탄 따위!]

연사가 사방의 만광포에서 날아드는데도 척준기는 전혀 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의 안광이 크게 빛나며 거대한 기(氣)를 내뿜었다.

타닷!!

척준기의 신형이 허공답보로 허공을 날며, 이윽고 무형의 거대한 검강을 만들어내었다.

오오오오

태왕칠성검(太王七星劒)

치우검기(蚩尤劒技)!!

피이잉-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이었다. 고려대장군 척준기의 성명절기이자 고구려 최강의 검술 중 하나라는 태왕칠성검법의 오의가 발휘된 것이다. 무형의 검강이 순식간에 수백 개의 궤적을 허공에 깔끔하게 그리면서 수백 개의 포탄을 정확하게 절반으로 갈랐고, 포탄은 거리의 절반도 오지 못하고 허공에서 폭발했다.

콰콰콰쾅!!

" 으아아악!!"

" 마, 말도 안 돼."

그 폭발을 보자 만광포 부대는 혼란에 빠졌다. 인간의 무술실력이 아니라고 느낀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마비상태에 빠진 자도 있었다.

" 으음..."

지켜보던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 치우검기... 그립군.'

예전 전생에 내가 척준기에게 패했을 때도 저 자가 치우검기로 마무리를 했었다. 그 때는 그저 내 혈도를 짚는데 썼지만 지금은 파괴력에 중점을 둔 듯 했다. 지금의 나라고 해도 척준기를 상대로는 그리 쉽게 이길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척준기가 보유한 내공이 신승 명호대사급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예전에 내가 대련을 신청했을 때는 엄청나게 봐줬으리라.

과연 십이율의 삼강.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전장에 서 있던 황연 대장군이 안타깝다는 듯 말하는 소리를 청력을 집중해서 들을 수가 있었다.

" 아까운 장수로다... 하지만 죽일 수밖에 없겠군."

" 장군. 어쩌시겠습니까?"

" 생포는 불가능하겠지. 귀뢰포를 발사하라."

" 네!"

쿠르르릉

쿠릉

잠시 후 대장군 척준기와 그의 부대가 만광포 부대의 일리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 만광포 부대의 후위에 있던 귀뢰포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뢰포 부대장이 싸늘한 눈으로 척준기를 쳐다보다가 부대에 명령을 내렸다.

" 저 장수가 피하지 못하게 화망(火罔)을 구성하라. 귀뢰포 발사!"

척준기는 사십 장까지 접근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듯 했다. 그리고는 등 뒤에 있던 병사들에게 외쳤다.

" 도망쳐라!!"

" 장군, 무슨..."

" 실패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귀뢰포가 불을 뿜었다.

투두두두두두

투두두두두

투두두두두두두

퍼버버벅

퍼벅!!

삽시간에 척준기의 주변에 있던 이십여 명의 장수들이 말과 함께 육편이 되었다. 심지어 철갑마에 장수들도 철갑을 두르고 있었지만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모조리 피떡이 된 것이다.

투두두두두

투두두두두두

투두두두두

또 다시 전열에 있던 수십 명이 죽었다. 찰나의 순간에 눈앞에 피안개가 몰아치자 돌격대들은 모두 혼란에 빠졌고, 척준기가 피맺힌 음성으로 외쳤다.

" 도망쳐라!!"

투두두두두두

투두두두

병사들이 계속해서 학살당하는 걸 피하려는지 척준기가 검막(劒幕)을 전개했다. 그러나 검막은 아주 잠깐 화망을 막았을 뿐, 다음 순간에는 또 다시 백여 명이 육편이 되었다. 심지어 척준기 본인도 팔다리에 상처가 생긴 게 보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는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 우오오오!!"

그가 전방으로 튀어나가서 귀뢰포 병대의 십여 명을 단숨에 검강으로 베었다. 이제 초절정고수가 아군 진영에 난입했으니 학살이 벌어질 것 같았지만, 척준기가 있는 장소에 다시금 화망이 쏟아졌다.

투두두두두두

티디딩

척준기는 초절정고수의 역량으로 무수한 총탄을 쳐내고 튕겨내었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한계는 있었고 점차 몸뚱이가 피칠갑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호신강기를 운용하며 이기어검을 이용해서 다시 한 번 오십여 명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 크흑! 으으..."

쉬캉

척준기가 계속해서 아군을 베며 화망의 형성을 늦추려 했으나 갈수록 그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게 멀리에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무려 오백여 문이나 되는 귀뢰포들에게 둘러싸여 일점사격을 당하고 있는 셈이었으므로 무슨 수를 써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까 돌격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신법으로 달아날 수 있었겠지만 그가 판단을 잘못한 것이었다.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귀뢰포의 화망에 뛰어들면 죽는 수밖에 없었다. 척준기는 죽음을 각오했는지 투혼을 불사르며 계속해서 귀뢰포 부대에 뛰어들었다.

" 으아아아!!"

그가 뛰어들어서 검강과 이기어검을 날리며 계속해서 신병기를 부수고 병사들을 학살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화망은 착실하게 척준기에게 부상을 입히며 그의 움직임을 느리게 했다. 황연은 전쟁에 도가 튼 명장이기에 귀뢰포의 배치 또한 고수가 섣불리 뛰어들기 힘들게끔 충분한 간격을 미리 안배해놨던 것이다.

투두두두...

잠시 후 척준기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는 결국 오백여 명을 베고 장렬하게 전사(戰死)한 것이다. 서서 죽은 척준기의 시체는 만신창이가 되어서 인간의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귀뢰포와 만광포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는지 여기저기에 전사자들이 보였다.

" ......"

나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할 말을 잃었다.

' 십이율 싸울아비 문주가 겨우... 오백 명과 동귀어진하다니.'

저 자는 중원 무림으로 봐도 최고수준의 무림고수였다.

내가 절대지경에 이르기 전이었다면 상대하기 힘들었으리라. 그러나 그가 목숨을 걸었는데도 결국은 큰 피해를 주지 못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1500여 문 중에서 척준기의 손에 90여대가 파괴되었지만 그 정도는 단숨에 보충할 수 있고, 포병대가 죽은 것도 남은 병력 중에서 대충 가르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황연은 그 모습을 보고 짧게 탄식하다가 말했다.

" 아아! 영웅이 죽었군..."

" 어떻게 할까요?"

" 고려의 돌격대들은 저항하면 죽이고 항복하면 받아들여라. 그리고 진군하라. 저들의 대장군이 죽었으니 항복할 것이다."

그의 예측대로였다. 척준기가 죽은 걸 확인한 고려군은 변변한 저항을 하지 못했고, 내성 앞에서 두 시진동안 버티자 잠시 후 백기를 들고 나왔다. 나머지 이만여 명을 살리기 위한 선택으로 보였다. 섣불리 저항해도 그저 학살당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고려의 최전방 요새가 손에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걸어서 성 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황연 대장군에게 말했다.

" 장군. 승전을 축하하오."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정말 무서운 위력이구려, 그 신병기는."

" ......"

황연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 폐하... 창검의 시대는 이제 끝날 터. 부디 성군이 되어주십시오."

이기고도 황연은 그리 기쁘지 않은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싸울아비 문주의 처참한 죽음을 보고 무인이라면 누군들 씁쓸하지 않겠는가. 나는 생각했다.

' 제갈사. 그래서 웃었던 거냐?'

제갈사는 유독 이 신병기를 개발하면서 싱글거리며 웃고 다녔다. 그는 입버릇처럼 무림고수가 귀뢰포에 끝장나는 걸 기대한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기(氣)의 극한에 도달한 초인이 한낱 전쟁기계에 살육당하는 처참함이 그의 취향에 맞았던 것이리라.

황연이 말했다.

" 하루 간 군세를 정비하고 곧장 압록강을 건너 내륙으로 공격해 들어가겠나이다."

" 알겠소."

나는 황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 황연. [단의 일족]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소. 저 십이율 문주 척준기 또한 [단의 일족]인지는 모르겠더군. 그 자들이 초절정고수와 대술법사들을 이번 전쟁에 투입하지 않은 이유가 뭐라 생각하오?"

" 소장의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사옵니다."

" 두 가지 가능성?"

" 하나는, 그들이 어차피 이번 전투는 이기기 힘들다 판단하고 다음 전투에 전력을 다하려는 것이옵니다. 허나 5만의 군세를 잃고도 그런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드옵니다..."

" 흠. 또 하나는?"

황연은 포권을 하며 말했다.

" 폐하. 어쩌면... 그 십이율주란 자가 실존한다면, 그 자는 이 전쟁을 버리려는 걸지도 모르겠나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