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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93화 (99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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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우우우!!

나는 사공린에게 음신지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평소에 서문혜에게 불어넣던 수위가 되자 크게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 보통 사람이라면 이 음신지력을 불어넣는 순간 전신의 혈맥이 순식간에 얼어서 죽을 것이다...'

하지만 사공린이 자신의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나는 일단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이윽고 음신지력이 사공린의 전신으로 흘러들어가 퍼졌고, 사공린은 갑자기 몸을 크게 부르르 떨었다.

풀썩!

사공린은 그대로 앉은 채로 앞으로 쓰러져 버렸다. 나는 급히 음신지력 전개를 중단시키고 사공린의 상태를 살폈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망량이 물었다.

" 백웅. 죽었소?"

" ... 아니. 이건 큰 충격을 받아서 기절한 거요."

" 그럼 혈맥이 얼거나 심장이 멈추지 않았단 말이군."

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망량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그렇다면 사공린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입증되었소. 음신지력에 대한 저항력은 이족(異族)조차 가지기 힘든 것이니, 그녀에게는 신(神)의 혈맥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오."

" ......"

" 지금은 그녀를 쉬게 놔두는 게 좋겠소."

" 그래야겠군."

나는 사람을 불러 사공린을 별궁에서 쉬게끔 했다. 그리고 망량에게 말했다.

" 망량. 사공린이 제갈유룡의 목을 쳐도 되게끔 허락을 해 버렸소. 미안하오..."

" 그게 미안할 일이오?"

" 응?"

"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제갈유룡은 악당이었으며, 천인공노할 짓을 많이 했으니 행한 만큼 돌려받는 것 뿐. 정당한 인과응보까지 신경쓰려 한다면 진정 억울한 자들의 숙업을 어찌 갚아주겠소? 고작 그런 일로 당신이 마음 쓸 건 없소."

망량은 단호하게 선을 그은 듯 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 그런 것보다는 사공린의 각성조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오."

" 각성조건..."

" 생각해 볼 점은 '50년 후'에 담겨있는 의미. 그게 가장 중요할 것이오."

" 무슨 말이오?"

망량이 부채를 팔락거리며 말했다.

" 사공린은 당신의 첫번째 삶은 물론 줄곧 전생하면서 한 번도 이 시기에 천마(天魔)로 각성한 적이 없었소. 그러나 50년 후에는 각성했지. 그렇다면 지금은 각성할 수 없지만 50년 후에는 각성할 원인이 존재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오."

" 흠, 50년 후라..."

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 내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당신이 살아갔던 첫번째 생, 50년 후의 세계에는 우리 생각보다 더 큰 의미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당신은 밑바닥 2류표사로 살다가 가 버렸지만, 당신이 보지 못했던 50년 후, 그 시기의 '미래'에는 뭔가 더욱 커다란 사건이 존재했으리라는 추측이오."

" ......?"

" 그렇지 않다면 논리적으로 아귀가 맞지 않소. 조각이 빠져 있단 말이오."

더 커다란 사건?

나는 망량의 말에 열심히 첫번째 삶의 기억을 뒤적거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게 생각이 나지 않아서 말했다.

" 음... 그 때 내가 살면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면 역시 일류고수 혈린수(血燐手)라는 자가 내가 있던 표국을 습격했던 일이오. 그 이상은 정말 기억이 안 나는데..."

" 50년 후라면 혈린수는 지금 어린아이거나 태어나지도 않았겠군. 정말 다른 큰 사건이 없었소?"

" 으음... 다른 사건... 음..."

나는 기억을 떠올리다 핫 하고는 말했다.

" 이, 있소. 지금 생각났소."

" 무엇이오?"

" 엄청... 엄청나게 큰 지진(地震)이 낙양과 양주에 일어났었소. 그게 언제였더라... 내가 죽기 한 5년 전이었는데. 내가 첫번째 삶을 겪으면서 제일 큰 지진이었소. 너무 큰 재난이라서 다들 놀랐던 거 같은데."

자연재해인데다가 내가 사는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동안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확실히 그건 큰 사건이긴 했었다. 첫번째 삶에서 손꼽힐 정도의 큰 일이라 할 수 있으리라.

" 음. 지금 떠올렸다면 내게 흑요석으로 그 기억을 전해주시오."

우웅

나는 떠올린 기억을 즉시 망량에게 전해주었다. 그러자 망량은 곰곰히 기억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 이건 천마와는 별개의 사건일 것 같군. 하지만 이 또한 큰 사건의 단서라 생각되오."

" 별개의 사건?"

" 흐음... 늘 생각하는 거지만."

망량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 전생 이전, 당신의 첫 번째 삶을 볼 수만 있다면 왠지 많은 의문이 풀릴 것 같소... 뭔가 방법이 없을까... 허나 큰 굴레를 감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 ......"

"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하오. 당신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수수께끼를 풀고 있는 중이며,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해자(解者)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 수수께끼라. 그 수수께끼를 풀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거요?"

" 그런 차원이 아닐 거라 생각하오만... 후후."

망량은 쓴웃음을 지었다.

" 몇 번이고 들은 이야기일 테지만, 사실 당신의 행보는 전생자로써 그리 효율적이지 않소. 효율위주인 제갈사 숙부의 계책에 굳이 맞추지 않더라도 너무 낭비가 많지. 그건 우리 책사들이 굳이 당신을 억누르지 않고 일단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면서 당신을 따르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오. 왜 그러는 것 같소?"

" 내 전생자의 직감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소?"

" 그것도 있지만, 어쩌면... 당신의 우둔한 선택조차도 거대한 우주의 틀에서 보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오.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두뇌를 지니고 있어도 우주의 지혜를 터득하지 못한 이상 당신의 선택을 섣불리 틀렸다 말할 수는 없소.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는 절대 당신의 행보를 억제하지 않소."

" 흠."

" 사실 당신의 인생여정을 기억으로 본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훈수를 두고싶어하겠소? 입이 근질근질할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그 효율성이 진실의 문을 관통할 수 있다고는 절대로 단언할 수 없지."

" ......"

" 그런 의미에서 당신이 앞으로 풀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숙제는 아마 이것일 거요..."

" 무엇이오?"

망량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 어째서 당신인가. 어째서 당신이어야만 하는가..."

" ......"

그는 빙긋 웃었다.

" 나중에라도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지."

그 때였다.

" 폐하!! 전장에서 황연 대장군의 서신이 도착했사옵니다."

나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말에 망량과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조정에 출석해서 그 서신을 낭독하는 걸 들어 보았다.

" 고려 금주성과 안산성을 공략한지 세 시진만에 성주(城主)의 전면항복을 받아냈으며 현재는 고려의 접경지역까지 군세를 전진시켰다 하옵니다! 또한 미발성을 공격하던 아라사 제국군의 승전보를 전달받았다 하옵니다."

예상대로다. 나는 승전보에 흡족하며 말했다.

" 호오... 그렇군. 남쪽의 동래부(東萊府)는?"

" 그... 그것이 현재도 대치상태라 하옵니다!"

" 5만대군을 실은 대함대가 여지껏 해상에 떠 있단 말이냐? 연유가 무엇이지?"

전령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 고려 적장(敵將)들의 역량이 뛰어나 아직 상륙을 하지 못했다 하옵니다..."

" 서신을 이리 줘 봐라."

" 존명!"

전령이 온갖 예를 갖추며 내게 서신을 갖다주었다. 나는 서신을 차분히 읽어보았다.

' 정발(鄭撥), 송상현(宋象賢), 이순신(李舜臣), 곽재우(郭再祐), 권율(權慄), 김시민(金時敏) 등의 고려장군들이 모두 동래부와 일대에 9만 대군을 집결시켜서 버티고 있다는 건가...'

이미 동영군은 몇 차례 이순신이라는 장군에게 소전투에서 패배했던 모양이었다. 상당히 뛰어난 장수로 보였다.

적장들의 군략과 실력이 뛰어난데다가 공격하려는 병력도 고려 수비군 측이 훨씬 많다. 이래서는 억지로 상륙해봤자 동래부에서 떼몰살당할 게 분명했기에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남쪽 전장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말했다.

" ... 동영의 막부 지도자인 쇼군에게 전해라. 적의 저항이 거세다면 한 번 본국에서 정비하라고... 적어도 수비군보다는 병력이 많아야 하지 않겠는가?"

"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 흐음."

나는 용상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 설마 그 좁은 고려 최남단 동래부에 9만 대군을 단기간에 배치할 수 있다니... 내가 동영과 연수할 것도 미리 꿰뚫어봤다는 말인가?'

9만 대군은 그 숫자가 숫자니만큼 고려처럼 영토가 작은 나라는 결코 상비군으로 늘 보유하기가 힘들다. 상비군이 아니라면 여기저기의 소성(小城)에 있던 치안유지군을 빼왔다는 건데, 이거야말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즉 진작에 내가 동영을 움직여서 남방을 치게끔 할거라는 전략을 꿰뚫어봤다는 뜻이다.

역시 만만치 않은 놈이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자신감이 생겼다.

' 아무리 고려라 해도 30만 병력 이상은 보유하기 힘들 것이다. 국가의 규모상 그 이상은 무리야. 그렇다면 북방에서 약 20만을 움직여서 우리를 막는 게 최후저항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북방의 20만, 남방의 9만.

그게 고려의 총전력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남방에서 고전하더라도 북방에서 황연 대장군이 승리하기만 하면 어차피 이긴 전쟁이란 뜻이었다. 나는 생각을 마치고는 말을 이었다.

" 개전(開戰)부터 좀 시간이 지났군. 그럼 이제 출병 준비를 하라!"

" 황제폐하 만만세!!"

두둥

이윽고 나는 황제전용 갑옷과 금검(金劍)을 갖추고는 황궁어림군이 있는 대 앞에 나섰다. 그리고 10만여 명의 어림군을 슥 둘러보다가 말했다.

" 고려를 멸하고 이 동방의 땅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겠노라. 짐을 도와 다오!"

우오오오!!

함성이 들려오자 옆에 있던 제갈사가 이죽거렸다.

" 평화는 평화겠군. 사방에 적이 없으면 평화겠지, 크크."

" 제갈사. 전이문은?"

" 걱정마라. 충분히 발동할 수 있어. 안정성도 크게 확보되었다."

" 다행이군."

" 수정석비와 수요의 힘을 동시에 쓸 수 있는 게 컸지. 지금 우리는 전 세계에 있는 전이문 중에서 7할을 구동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문제는..."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 이번 고려전쟁 이후로는 전이문을 좀 자제해야 한다는 거겠지?"

" ......"

제갈사가 말한 이유는 알고 있다.

' 전이문은 강력한 전이장치이지만, 고대 마도기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용할 때마다 거대한 마력(魔力)의 파장을 뿜어낸다...'

마력의 파장이 너무 크게 뿜어져 나오면 현실에 뒤틀림을 점차 만들어내게 되고, 그건 천계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된다. 소규모로 발동시킬 때는 그 정도의 뒤틀림은 생기지 않지만 대군을 이동시킬 때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아마 이번 출병 이후에는 전이문을 사용하는 즉시 천계의 간섭이 들어올 게 분명했다.

" 가자!"

우우우웅 -

다음 순간, 전이문이 발동하면서 도열해 있던 10만 어림군이 일제히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나는 대군을 이끌고 약 반나절 후 황연 대장군과 합류할 계획이었기에 연산의 산지에 도착하자마자 말했다.

" 요족의 안내인은 어디 있는가?"

" 여기 있사옵니다, 폐하."

근처의 지리에 밝은 요족의 대족장이 앞으로 나와서 내게 고개를 숙였다.

" 지름길을 통해서 안산성까지 안내해 드리겠사옵니다."

" 좋다. 너희가 도와준 공은 잊지 않겠다."

황연은 근처 소수민족의 민심을 얻고있었기에 요족과 장족의 도움을 받아서 손쉽게 관문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들었었다. 앞으로 요족의 자치권과 생활권을 보장해주는 조건이었기에 나는 그들을 잘 대해주기로 마음먹었다.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투구둑 투구둑

이윽고 10만대군은 요족의 안내에 따라서 근처의 산지와 평야를 뚫으며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군하기를 약 세 시진, 금주성에 도착하자 성문이 활짝 열린 게 보였다. 성 안으로 입성하자 왠 귀한 옷을 입은 소년이 무릎을 꿇으며 내게 머리를 박아 절을 했다.

" 폐하! 금주성주가 중상을 입어 부득이하게 그 아들이 폐하를 영접하옵니다.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 너는 금주성주의 아들이냐?"

" 그렇사옵니다."

" 성주는 어째서 중상을 입었지?"

" ......"

그러자 그 소년의 얼굴에 얼핏 원독이 스쳐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이를 악물고 내 질문에 대답했다.

" ... 폐하의 군세가 이끄는 신병기에 당하여... 그리 되었사옵니다."

" 그렇군."

최단시간에 금주성의 항복을 받아낸 이유.

나는 그걸 알고 있었기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나는 냉막하게 금주성주의 아들에게 말했다.

" 잠시 이 성에서 행군을 쉬었다 갈 것이다. 짐의 어림군이 묵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

" 명을 받들겠나이다."

세 시진동안 행군했으면 병사들의 피로도 꽤 있었기에 나는 서둘지 않고 쉬었다 가기로 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고했다.

" 이 성에 머무는 동안 비행과 약탈을 금지하노라. 어기는 자는 즉시 참수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는 소년을 따라서 중상을 입었다는 금주성주를 찾아갔다.

" 크... 어어..."

금주성주는 금침에 누워서 숨만 간신히 몰아쉬고 있었는데, 침상은 이미 피바다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지혈을 하려고 해도 워낙 부상이 위중해서 계속 피가 흐르는 듯 했다. 나는 금주성주의 상처부위를 살펴보고는 침음성을 내었다.

" 으음..."

역시, 이건 창칼로 난 상처가 아니다. 창칼에 당하면 이렇게 길게 찢어지거나 관통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의술이 부족한 의원이 치료하면 이런 식으로 지혈을 하기도 힘들 것이리라. 신병기의 가공할 위력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옆에 따라온 소년을 힐끔 보며 말했다.

"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 연마릅이옵니다."

" 연마릅. 너희 병력이 얼마나 신병기에 당했는가."

" ... 오백여 명이 죽었사옵니다."

" ......"

나는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망량... 당신 말대로구려.'

전쟁이란 본디 잔인하고 끔찍한 것이지만, 이번에 신병기를 도입하면서 더욱 처참하고 압도적인 학살이 일어나 버렸다. 신병기가 불을 내뿜으면 일 리 밖에서 인간이 육편이 되어 죽어나갔을 테니 엄청난 공포를 일으켰을 것이고, 금주성주가 중상을 입자 서둘러 항복한 것이리라. 오히려 그 공포 덕에 금주성에 있던 일만여 병의 병사들이 몰살을 피했다 생각할 수도 있긴 하지만 - 육편이 되어버린 오백 명의 목숨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잔인한 줄 알았다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을 텐데.

' 나는... 앞으로 평생에 걸쳐서 이 죄를 참회해야 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 연마릅. 미안하다. 그리고 죽어간 자들에게도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노라."

" ......"

연마릅의 얼굴에는 분노와 절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내가 말로 무슨 말을 하든, 형언할 수 없는 위선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리라. 성주와 친위병력이 죽은 것이니 그에게 있어서는 평소 얼굴을 맞대던 친한 자들이 몰살당한 것이었다. 그 어떤 말로도 연마릅의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연마릅이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 황제시여!! 차라리 저를 이 자리에서 죽여 주시옵소서!! 황제께 복수할 수 없는 절망을 안고 살아가기에 너무나 힘겹사옵니다!!"

" ......"

" 제 형과, 삼촌과, 숙부가 모두 폐하의 군대에게 죽었사옵니다!! 으으... 으아아아아...!!"

나는 연마릅의 수혈을 짚어서 잠재웠다. 그리고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내 이마를 손으로 감싸면서 눈을 감았다.

" ......"

" 후회되나?"

" 제갈사."

슈욱

어느 새 따라와 있던 제갈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 백련교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삼만 명을 인신공양했지. 그 정도는 되어야 패왕의 업을 갖고있다 할 수 있지 않겠나. 넌 아직 멀었어."

이 자식은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건가?

하지만 뭐라 대꾸할 수도 없었기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 후우."

제갈사는 차가운 눈으로 날 내려보았다.

" 연마릅이 널더러 위선자라고 했지?"

" 그래."

" 넌 위선자가 맞다. 맞으면 굳이 상처를 받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 ......"

" 패왕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궁극의 위선자가 바로 패왕이지. 네 손가락 하나에 수많은 인간들이 생사를 여탈당하고 네가 가는 길은 살육과 죽음의 길. 지배하고 유린한다는 건 수많은 위선을 지니고 철면피가 되어간다는 뜻이지."

그는 이윽고 새하얗게 웃었다.

" 그리고 그 끝은 바로 [옛 지배자]다."

" ......!!"

" 예전에 십이율주에게 들은 적이 있을 테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지배하다가 결국 권태에 이르게 된 존재들이 있다고..."

" 제갈사.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 네가 대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경험의 일부라고 말하는 거다. 결국 지금 네가 걷는 살육의 길은 과거의 [지배자]들이 무수히 겪어보았던 일. 그들과 같은 행위를 하면서 과연 너는 무엇을 느낄지, 우리 책사들은 알고 싶다."

" ......"

" 나의 주군 백웅이여, 이번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간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라."

스르륵

제갈사의 신형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말이 허공에 떠돌았다.

" 네가 [옛 지배자]와 어떻게 다른지를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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