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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개전(開戰)을 알리는 건 아라사 제국군의 미발성(彌鉢城) 공격이었다. 사전에 벨로프에게 부탁해놓은 아라사 제국군 출병! 거기에 우리측에서 전이문을 활성화시킴으로서 수천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아라사의 정예군이 요녕성 최북단의 미발성을 빠르게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남부에서는 아베노 세이메이가 구슬려놓은 도쿠가와 막부의 5만 군세가 고려 남단의 동래부(東萊府)라는 지역을 함선으로 포위했다. 아직 그쪽은 공격을 시작하지 않았으나 동래성주에게 항복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본진인 황연 대장군의 24만 대군의 출병(出兵) -
" 승상. 황연 대장군이 칠 곳이 국경지역인 연산(连山) 지역이라던데 맞소?"
나는 확인할 겸 망량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망량이 대답했다.
" 그렇사옵니다. 폐하."
현재 나는 낙양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며 보고를 받기 위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망량도 지금은 나를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으며 사방이 엄숙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 그 곳은 요족(瑤族)과 장족(壮族)이 많이 사는 곳이옵니다. 본디 한족에 우호적인 편인지라 큰 무리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 일대는 변변한 방어시설도 없사옵니다."
" 그리고 연산을 넘으면 금주(锦州)라고 들었소. 금주성(锦州城) 다음은 안산성(鞍山城)을 친다는 계획으로 들었는데 짐의 기억이 맞소?"
" 그렇사옵니다."
" 흠... 금주성과 안산성의 방어는 어떻지?"
내 말에 망량 대신에 근처에 서 있던 제갈부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 금주성부터 본격적인 고려와의 접경지역이니 금주성에서 거센 방어가 있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또한 정찰병들이 보내온 보고에 따르면 금주에 고려의 5만 대군이 집결되어 있어서 이번 출병을 예측하고 있었던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 ......"
새삼 듣고 보니 역시 서로간에 수읽기가 미리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역시 십이율주... 만만치 않겠어.'
나는 제갈부에게 질문했다.
" 내황각주. 5만이라면 우리의 24만을 감당하기에는 많이 모자라지 않는가?"
" 평야의 야전이라면 몰라도 수성(守城)에서 병력차이는 흔히 있는 일이옵니다. 5만이라면 4배의 병력우위로도 손쉽게 깰 수 있는 건 아니라 볼 수 있사옵니다."
" 고려측에서 전군(全軍)을 국경에 집결시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그것은 잘 모르겠사옵니다. 황연 대장군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은 신의주(新義州)라 불리는 지역에 본대(本隊) 12만 대군을 대기시키고 있다 하옵니다."
" 신의주?"
" 비교적 반도 접경지역이니 고려측에서는 내륙에 가깝다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잘 모르는 이름이다. 고려에 살 때 얼핏 들은 지형같긴 한데 자세히 아는 바가 없었다. 확실한 건 그 자들이 수백 리의 접경지역을 그냥 중원측에 내어주고 비교적 안쪽에서 수비를 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였다.
내가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등곽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 폐하! 친정(親征)은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폐하께서 해를 입으시면 이 제국의 근간이 무너지옵니다."
" 위험한 행보는 하지 않는다. 황연 대장군이 적을 타도한 지역으로 뒤따라 출병한다는 게 그리 문제인가? 하물며 친위군 10만을 이끌고 갈 것이거늘."
" 고려는 그 저력을 알 수 없는 나라... 황연 대장군의 능력이 뛰어나니 그런 위험한 자들을 상대하는 건 그에게만 맡기셔도 되지 않겠사옵니까."
나는 등곽이 꽤 초조한 기색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하긴 저 자 입장에서는 모든 걸 걸고 황조를 하루아침에 바꿔버렸는데 벌써 무너지면 매우 곤란하겠지...'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됐다. 이미 결정한 일이니 더 이상의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
" ......"
" 아라사 측에서 고려 북부의 미발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들었는데 그쪽 전황은 어떠한가?"
" 금일 새벽부터 공성을 시작했다 들었으나 아직 자세한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사옵니다."
" 그렇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오늘 내로 미발성이 넘어갈거라는 생각을 했다.
' 아라사제국에서도 엄선된 친위군이 온 거다. 그 자들은 서양열국에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총병과 포병을 운용하고 있으니 성 하나 정도는 쉽게 깰 수 있겠지.'
작전계획에 따르면 아라사가 미발성을 접수하면서 북에서부터 요동을 치며 내려오며, 아군의 본대는 금주성과 안산성을 차례대로 치며 최단시간에 압록강을 넘는 파상공격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남부에서 동영이 시선을 분산시킨다면 북방에만 병력을 집중시킬 수 없으리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외쳤다.
" 그럼 하루를 기다린 후 전이문을 써서 출병하겠다! 모든 중신들은 전쟁의 흐름에 긴밀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라."
" 황제폐하 만만세!!"
나는 회의를 끝낸 후 동료들끼리 따로 모였다. 그리고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 정말로 십이율주가 단의 일족을 전쟁에 내보내지 않을까?"
현재 내 불안감은 [단의 일족]에 맞춰져 있었다. 단순한 병력싸움이라면 무조건 중원제국군이 이기게 되어 있으나 단의 일족들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기에 단숨에 전황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무위를 지닌 초절정급 고수와 술법사들이 전장에서 무쌍한 위용을 보인다면 굉장히 힘들어진다.
" 그래. 적어도 신의주에 도달할 때까지는."
"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뭐지?"
" 우리가 십이율주를 경계하는 만큼 놈도 우리를 경계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비장의 패를 보여주는 건 하수(下手)나 하는 짓. 우리가 어지간히 고려군을 몰아붙이기 전까지는 초인(超人)을 전쟁에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 으음."
" 그리고 어차피 전쟁의 관례상 고수(高手)를 전쟁에 함부로 내보내는 건 잘 하지 않는다. 그건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암묵적 합의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 암묵적 합의?"
제갈유룡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 너도 알고 있겠지만 초절정급 고수, 그 중에서도 최상위의 고수는 혼자서 수백의 병력을 가볍게 회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지. 가히 일기당천(一旗當千)이 아닌가? 그런 존재를 잘만 이용하면 전장지휘관을 암살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고수가 역사상 없었던 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럼에도 무림이라는 걸 보유한 국가끼리의 전쟁에서는 그런 초인(超人)을 출진시키는 걸 암묵적 합의로 상호자제하는 게 관례였다."
" 왜지?"
" 천계(天界)와 마도(魔道)의 존재 때문이지."
그렇게 말한 제갈유룡이 서늘한 눈빛을 지었다.
" 전쟁의 축을 바꿀 정도의 초고수면 당연히 절대지경이거나 그에 임박해 있을 것이고, 천계의 눈에 띄게 된다. 천계는 세상의 힘의 균형이 제멋대로 바뀌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자칫했다가는 천계에게 그 나라 자체가 밉보이거나 할 수도 있지."
" 음!"
" 또한 상대측에서 그런 초고수를 앞세워 일반병력을 유린할 경우, 그를 상대하는 국가에서는 당연히 [어둠]에 손을 뻗치게 된다. 인신공양을 이용해서 악랄한 저주를 퍼붓거나 소환하는 일도 종종 있었고, 그런 상황이 되면 더 이상 전쟁이 문제가 아니지. 혼돈의 존재들이 쏟아져나오기도 하니까."
" ......"
" 고대부터 자주 있었던 일인지라 어느정도 문명이 자리잡고 난 후에는 동방국가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합의가 생겨났다. 전쟁에 과도한 무림의 힘을 투입하는 건 어지간해서는 자제해야 하며, 투입하더라도 최소한의 생존과 방어에만 쓸 수 있다는 합의가... 혹은 상대가 먼저 시작했을 때만 비대칭전력을 투입하게끔 되었다."
" 그랬군..."
내가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주억거리자 제갈사가 이죽거렸다.
" 뭐, 말로는 합의라지만 역사상 몰래 무공고수를 써먹을 나라는 다 써먹었지. 천계가 맨날 지상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고 눈에 안띄게 무림인을 써먹으면 뭐 어쩔 거야. 눈에 안 보이는 데서는 무림인들끼리 전쟁의 승패를 해먹는 일이 많았다. 다만 큰 전쟁일수록 천계에게 주목받을 확률이 올라가는거고."
" ......"
망량이 부채를 흔들었다.
" 사실 그런 의미에서 백웅 당신이 직접 힘을 쓰는 것도 꽤나 위험한 편이오. 천계에서 당신을 집중적으로 주목하게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
" 이미 수요의 수기를 공양할 때 주목받은 게 아니었소?"
"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 천하의 패권을 잡은 황제가 절대지경의 힘까지 갖고 있다면 주목도의 차원이 달라지오. 하물며 백련교까지 당신이 손에 넣었으니, 지금도 주목받고 있을 게 분명하오."
" ... 그렇다면 백련교주와 호법사자의 힘도 손쉽게 전쟁에 써먹을 수 없단 말이오?"
" 백웅. 이번 전쟁에서 중요한 건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요."
망량이 부채를 펄럭였다.
" 어차피 전쟁의 후반으로 갈수록 서로의 힘을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는 총력전이 될 것은 당연지사. 그 때가 되면 천계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강대한 초인들의 혈전이 될 것이오. 다만 그 상황에 이른 후 [명분]이 중요해지는 것이지."
" 명분이라."
" 그리고 우리 책사들의 역할은 율주가 먼저 초인의 힘에 손을 벌리게끔 만드는 것. 그 때부터는 백련교주와 호법사자, 그리고 강력한 아군의 고수들이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오. 그리고 가능하면 당신이 직접 싸울 일이 없도록 하는 게 목표지."
" 이해했소."
나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 흠... 그러면 지금 검마와 함께 수련하고 있는 아군들은 전쟁에 나갈 일이 없는 것이오?"
" 그렇다고 보면 되오. 그들은 이 전쟁에 소모되기 보다는 가능성을 높여서 이후의 전력강화에 쓰일 것이오."
" ......"
" 석연치 않은 표정이군. 그렇게 서문혜를 이용하는 게 싫소?"
망량이 대놓고 이야기하자 나는 움찔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 솔직히 그렇소. 그녀에게 음신지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서 거신족의 선조회귀를 유도한다는 건... 결국 그녀를 인간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게 아니오."
나는 책사들의 책략에 따라서 석 달 전부터 지속적으로 서문혜의 등에 장심을 놓고 음신지력을 꾸준히 불어넣고 있었다. 음신지력이 신의 힘이며 태음(太陰)이니 자극하다보면 서문혜의 혈맥에 잠들어 있는 거신족의 힘이 일깨워질거라는 이론에 따라서였다. 실제로도 그 이론에 따라서 서문혜에게는 갈수록 기이한 힘이 발현되기 시작했고, 현 시점에서는 완전히 각성한 건 아니었지만 이미 동급 고수들의 몇 배를 뛰어넘는 순수한 육체능력이 발현된 상태였다.
이런 식으로 일 년 정도를 꾸준히 유도하다보면 서문혜는 아마 예전 생처럼 혈인능력을 각성하고 거신족의 힘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서문혜를 전략병기로 이용하는 셈이었기에 나는 그리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러자 망량이 말했다.
" 서문혜 본인도 동의한 일이고 그녀의 유일한 혈육인 검마 또한 동의했소. 그들은 모든 걸 알고 동의했으니 당신이 마음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소."
" 음..."
" 다만 만일 전쟁이 안 좋게 흘러갈 경우에는 당신이 무리를 해서라도 서문혜를 각성시켜서 그녀를 전쟁에 투입하게 될 수도 있소. 마음의 준비는 해 두시오."
" ... 알았소."
무리를 한다는 건 - 지금까지는 서문혜가 견딜 수 있는 수준에서만 음신지력을 불어넣어서 기공처럼 운기시켰지만 한번에 큰 힘을 쏟아부어서 각성을 유도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서문혜가 충격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기에 시간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망량이 빙긋 웃었다.
" 너무 걱정 마시오. 내 생각이지만 이번 전쟁은 아주 쉽게 이길 테니까."
" ......? 십이율주가 본격적으로 나서면 결코 쉽지 않을 터인데 그럴 리가 없잖소."
"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그렇겠지..."
묘한 미소를 짓던 망량이 말을 이었다.
" 아무튼 오늘은 쉬면서 전황을 지켜보시오."
" 알았소."
" 그리고... 제갈유룡이 할 말이 있다는군."
" ......"
망량은 왜인지 제갈유룡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기억을 다 얻었어도 결국 흑요석을 통해 받아들인 것이라, 그에게 쌓인 앙금이 다 풀리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제갈유룡은 신경도 쓰지 않는지 내게 말했다.
" 따라와라."
나는 제갈유룡을 별궁으로 따라갔다. 그러자 따라간 곳에는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 ... 사공린!!"
그녀가 여기 왜 있단 말인가?!
사공린은 나를 보자 공손하게 예를 담은 인사를 했다.
"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제갈유룡을 힐끔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 여기까지 왔으니 슬슬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아서다."
" 무엇을 이야기한단 말인가?"
그러자 제갈유룡은 사공린을 지긋이 쳐다보다가 말했다.
" 린아. 나를 따라서 황궁으로 온 게 두렵고 의심스럽지 않으냐?"
사공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 그렇습니다. 스승님께서 저를 갑자기 찾아오신 게 어째서인지..."
" 그 이유는... 이제 너를 써먹을 때가 왔기 때문이다."
" ......?"
사공린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러더니 제갈유룡이 서서히 환술을 부렸고, 이윽고 사공린은 미리 그가 깔아둔 결계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순식간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사공린을 안아서 의자에 앉혀둔 제갈유룡이 말했다.
" 백웅. 알고 있는가?"
이어진 제갈유룡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 이 아이는 바로 공손씨(公孫氏)의 후예다. 내가 이 세계의 종말에 대항하기 위해 찾아낸 공손씨의 혈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