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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아니?!
이 자식 지금 흑요석을 먹은 거야?!
너무 갑작스러운 일에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 어이!! 그거 먹어버리면 어떻게 해!!"
망량선사는 내 말에 힐끔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 머리를 쓰다듬어라.]
" ... 응?"
[ 해라.]
으윽... 왠지 안 하면 안될 것 같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망량선사의 이마 부분을 살살 쓰다듬었다. 망량선사는 고양이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그 손길을 즐기는 듯 하다가 말했다.
[ 그렇군... 이제 알 것 같다.]
" 아니... 내 흑요석... 왜 먹은 거야."
[ 인과율의 설정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제 알게 되었지.]
" 뭘?"
[ 잠깐 기다려라.]
그렇게 말한 망량선사가 내 손길에서 벗어나더니 총총걸음으로 오솔길 옆에 있는 시냇물에 가서 물을 촵촵 하고 마셨다.
" ......"
어째 그냥 밥 먹고나서 물 마시고 있는거 같은데...
내가 불신어린 눈으로 망량선사를 쳐다보자 놈이 한참 후 말했다.
[ 이건 [세상의 배꼽]에서 가장 높은 장소에서 월식(月蝕)의 때에 공양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신체에 잠들어있던 신이 부활하게 될 것이며, 부활시킨 자는 그 대가를 받게끔 되어 있다.]
" 세상의 배꼽...? 월식?"
[ 또 하나의 조건이 설정되어 있긴 하군. 신의 반쪽을 가져오는 자가 절대무량한 시공간을 이어 숙명의 의지를 발현하면 객인(客人)과 함께 세계를 멸망시킨 인연이 되살아나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이건 전자의 조건보다 심각하게 난이도가 높으니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나조차도 이 조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 흐음..."
선지자가 괜히 까다롭다고 한 게 아닌 듯 하다. 이런 특별한 조건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활용법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리라.
[ 이 신(神)은 본디 상당히 높은 대신(大神)의 위격을 지니고 있다가 특수한 이유로 봉인당한 듯 하군.]
즉 신체를 활용하려면 2개의 방법이 있다는 것인가.
하나는 [세상의 배꼽]이란 장소에서 정해진 방법으로 공양을 바치는 것이고, 이렇게 하면 신의 힘으로 소원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영 알 수 없는 이야기라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해야할 방법은 아마 전자 뿐이리라.
' 월식이라면 조건은 화요(火曜)와 반대로군. 화요는 개기일식의 때에 맞춰야 했는데.'
과거에 화요의 결계가 풀리는 조건을 알아내려고 엄청나게 고생하긴 했지만 내가 전생능력을 활용한다면 월식의 때를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 수수께끼가 풀려가는 걸 깨닫고는 망량선사에게 말했다.
" 술법사들은 아무도 이 흑요석에 대해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어. 하지만 천계에 있는 항우는 이 흑요석에서 뭔가를 느낀 것 같았어."
[ 그런가.]
" 술법사와 항우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길래 그런 거지?"
[ 추측해보자면 항우가 성좌(星座)의 가호 그 자체이기에 [옛 지배자]의 신체(神體)에 동조할 수 있었던 듯 하군. 놈의 힘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은 동류에 가까우니.]
" 흠... 알았어. 세상의 배꼽은 어딘데?"
그러자 망량선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 지구에 있다.]
" ......"
[ ......]
" 아니... 그러니까 지구 어디에 있냐구..."
[ 알아서 찾아봐라.]
이 고양이 놈은 마지막까지 도움을 주지는 않는군!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 제길. 알았어. 그럼 이제 흑요석 돌려줘."
[ 먹은 걸 어떻게 돌려주느냐.]
" ......?"
나는 멍한 표정으로 망량선사를 쳐다보았다. 너무 태연하게 말하고 있길래 당연히 돌려줄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나는 이내 현실을 인식하고는 경악해서 망량선사에게 말했다.
" 자, 잠깐만!! 정말 먹었어?!"
[ 맛있더군.]
" 으아아아!!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그냥... 그걸 먹어치운 거냐!!"
[ 안 먹으면 인과율 설정을 알 수가 없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또한 나는 돌려준다는 말을 한 적도 없다.]
" 뱉어내!! 토해내라구!"
나는 망량선사의 볼을 양손으로 잡으며 울부짖었지만 망량선사가 눈을 깜박이더니 말했다.
[ 싫어.]
" 으아아아아아아!!!"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천우진을 볼 수 있었다. 천우진이 말했다.
" 또 무슨 일이냐?"
" 망량선사가... 내 흑요석을 처먹었어!!"
" 뭐?"
나는 천우진에게 전후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천우진이 말했다.
" 다음 생에 찾으면 되겠군. 이번 생에는 황제노릇이나 해라."
" ......"
" 왜? 내가 틀린 말 했냐?"
어쩌면 사제지간이 하나같이 내 속을 이렇게 긁는 것인가...!!
나는 손해본 느낌에 표정이 계속 썩을 수밖에 없었지만 천우진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 신체흑요석의 공양방법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네게는 큰 이득 아니냐? 전생자면서 쓸데없는데서 엄청 징징대는군. 어차피 이번 생에도 만신을 파멸시키지는 못할 거고 병신처럼 나대다가 돌연사할 건데 무슨 상관이냐."
뼈를 맞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천우진의 말이 옳긴 해도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기에 나는 툴툴댔다.
" 쳇... 죽는 게 네가 아니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누군 좋아서 죽는 줄 아냐?"
" 당연히 좋아서 죽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 길을 선택한 것도 너 자신이라면 남한테 징징거리는 건 그만해라."
" ......"
더 말싸움을 해봤자 나만 손해인 것 같았기에 나는 더 이상 흑요석은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주제를 바꾸어서 천우진에게 말했다.
" 천우진. 이제 우리 편에 와서 싸울 생각은 없냐? 네 힘이 필요해."
성진, 아베노 세이메이 등 천우진에 준하는 술법사 동료들이 생기긴 했지만 천우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게다가 성장성으로 본다면 천우진보다 잠재력이 높은 동료는 거의 없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천우진을 영입하고 싶었다. 그러나 천우진은 다소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럼 묻지. 십이율을 쳐서 이기고 나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 그야 당연히 세계로 뻗어나가서 전세계 어딘가에 숨겨진 법문을 찾을 거다."
"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있나?"
" 무슨 말이냐니..."
" 넌 세계정복(世界征服)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 ......"
" 네 말대로 크리슈나란 자가 너를 경계해서 나타난 것도 이해가 될 정도다. 네가 중원, 아라사, 고려, 동영을 손에 넣은 후 천축, 나아가서는 서구대륙까지 손에 넣는다면... 말 그대로 세계정복이 되겠지. 나머지 두 대륙은 문명의 힘이 미약하니까."
천우진의 말이 맞았기에 나는 뭐라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 사실이긴 하지.'
내 책사들은 그 사실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번에 십이율이 있는 고려를 쳐서 복속시키면 실질적으로 동방의 패왕 자리에 오르는 셈이었으며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제국(大帝國)이 시작된다. 게다가 창힐이 남긴 전이문도 전세계 곳곳에 있으니 계산상 세계정복까지는 50년도 채 걸리지 않으리라.
하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 ... 그게 중요한가? 어차피 종말을 앞둔 세상이야. 법문을 빨리 찾아서 종말의 단서를 얻고, 내 특이점을 미루겠다는게 뭐가 잘못됐지? 세계정복을 하더라도 그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니까 상관없지 않나?"
" 아주 그럴듯한 말이군. 하지만 중화(中華)의 세계정복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 적은 없나?"
천우진은 예전과 달리 마냥 틱틱거리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지금은 아주 이성적인 눈빛이었다. 그건 지금 하는 말이 천우진의 본심이라는 뜻이리라.
" 뭐?"
천우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 웅 제국이 세상을 통일하는 게 아니다. 중화의 민족이 세계를 휩쓰는 거지... 이건 아주 다르다. 그리고 너희는 이 의미를 간과하고 있어. 이 중화의 세계에서 평생을 살아왔기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지도."
" 으음..."
" 때가 아니야. 난 아직 너와 같은 배를 타기엔 이르다 생각한다."
" 뭐 어쩌란 거야? 내가 뭘 해야 하는거지?"
" ... 너 자신을 돌아봐라."
스르륵
천우진의 모습이 서서히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 너 자신의 꿈과 이상(理想)에 잡아먹히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라..."
" 잡아먹힌다고..."
" 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때 너와 함께 해 주겠다."
스스스
나는 천우진이 사라진 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천우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놈의 말은 내 마음에 약간의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나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지만 용기가 잘 나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순간 큰 상처를 입을 것만 같은, 그런 예감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의 내게 뭔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잘되고 있으면 괜찮지 않느냐고 스스로 위안을 하게 된다.
왜지.
초월적인 적과 싸우는 건 아무렇지 않은데 왜 이런 건 두려운 거지...
나는 이내 고개를 털고는 중얼거렸다.
" ... 움직이자."
감상에 빠질 시간 없다.
다 좋지만 지금은 동료를 허무하게 잃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야만 한다. 결전을 앞둔 상태에서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도대체 무슨 대사(大事)를 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자기자신에게 되뇌인 후 다음 움직임을 시작했다.
파앗
나는 본진으로 되돌아와서 제갈사를 찾아갔다. 제갈사는 최근 책사모임이나 전략회의에 잘 참석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제갈유룡과 함께 황궁의 마도연구를 이어받아서 몰두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연금술사가 남긴 지식을 기반으로 수정석비의 가공할 마도창조력을 이용해서 궁극의 연금술을 시도하는 것. 하물며 제갈유룡은 현 동방 팔괘술 최고의 달인이었고 제갈사는 서방의 영지주의 마도를 모두 이어받은 전승자이며 배교주이기도 했다. 그 둘이 힘을 합친다면 어쩌면 지금까지 이상의 무언가가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제갈사는 내가 찾아오자 반기며 말했다.
" 마침 잘 왔군, 백웅."
" 그건 뭐야?"
" 보면 모르겠냐. 초상기인이지."
" 그건 아는데..."
나는 돌제단에 누워 있는 초상기인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기에 의아해졌다. 지금까지의 초상기인은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저 초상기인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내가 위화감을 느끼자 옆에 있던 제갈유룡이 말했다.
" 이 초상기인은 핵(核)이 없다."
" ......?!"
" 일부러 그렇게 제작했지. 핵의 역할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켰다."
핵이 없다고?
보통 초상기인은 심장 역할을 하는 핵을 갖고 있었으며 그 핵이 있는 한 불로불사였다. 핵은 최대의 약점이기도 했지만 워낙 효율이 좋기에 넣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핵이 없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 왜 그렇게 만들었지?"
" 그야, 심장에 칠요(七曜)를 넣으려고 일부러 비워둔 거지."
" ......?!"
뭐?!
칠요?!
" 무, 무슨 소리야?!"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내가 깜짝 놀라서 외치자 제갈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 간단한 얘기 아니냐? 궁극의 초상기인이었던 진을 생각해 봐라. 그 놈의 핵이 뭐였는지 기억 나냐?"
" 그야..."
나는 잠시 후 기억을 떠올리곤 말했다.
" 토요(土曜)였지."
" 그래, 맞아. 그리고 토요를 심장으로 삼은 진은 어떤 능력을 가지게 되었냐?"
" 모든 술법을 무효화시키는 능력을 갖게 됐어."
" 바로 그거야."
제갈사가 싱긋 웃었다.
" 칠요 중에서 토요만이 그런 효과를 보일 수 있는 걸까?"
" ... 설마!"
" 그래. 그 당시 황궁세력이 가용할 수 있는 칠요가 오직 토요 뿐이었기에 궁극의 초상기인에 토요를 우겨넣은 것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칠요로도 충분히 같은 짓이 가능하단 거야."
" ......!!"
" 예를 들면 월요를 여기에 넣게 된다면..."
제갈사는 초상기인의 심장부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말을 이었다.
" 이 초상기인은 월요 특유의 3대능력을 쓸 수 있게 된다. 검(劍)의 능력으로 공격하고, 곡옥(曲玉)의 능력으로 회복하고 방어하며, 거울(鏡)의 능력으로 반사할 수 있지. 게다가 월요에 있는 강력한 달의 마력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강해질까?"
" ......"
" 적어도 과거의 미호보다는 더 강해질 거다. 앞으로 칠요를 모으면 우리가 직접 장비하는 것도 좋지만 초상기인의 심장에 넣어서 강력한 자동인형을 조종하는 것도 좋아."
그, 그런 방법이 있었나...!!
나는 제갈사의 말에 내심 감탄하다가 핫 하고 의문점을 깨달았다.
" 그런데 칠요는 다들 뾰족한 무기도 있고 날카로운 것도 있잖아? 도저히 심장에 들어갈 크기가 아닌 것도 있고... 그걸 다 우겨넣는게 힘들지는 않을까."
" 토요를 심장으로 삼았을 때도 그걸 쌩으로 집어넣은 게 아니다. 팔괘로 물질의 부피를 축소시키고 심장과 동조시킨 후 융화시킨 거야. 같은 방식이라면 설령 창칼을 심장에 넣어도 무리될 건 없다."
" 으음."
" 그리고 이 연구가 끝나게 되면 정말 좋은 점이 뭔줄 아냐?"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 그건 바로 칠요를 다 모았을 때 생기는 이득이지..."
나는 한동안 제갈사와 제갈유룡에게서 연구의 진척도에 대해서 설명과 보고를 들었다. 나는 이야기를 듣던 중 인상을 찌푸렸다.
" 음... 초상기인은 이번 고려와의 전쟁에 투입하지 못하는건가."
" 어쩔 수 없어. 놈들이 만일 초상기인을 탈취하려 들면 일이 복잡해지거든. 너도 알다시피 율주놈 또한 뭔가 미래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했다가는 더 강력한 자동인형을 우리에게 내보낼 수도 있다."
" 그렇군."
" 대신에 황연의 북룡대에게 줄 최신무기는 이미 낙양의 공방과 합심해서 만들어 두었다. 약 1500문 정도지만 충분히 쓸 만 하겠지..."
드르륵
거대한 황궁 무기창고의 문을 열자, 나는 새파란 총신(銃身)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형태를 보자 부지불식간에 중얼거렸다.
" 왜 바퀴와 대(臺)가 총 밑에 달려 있지? 총신이 뭐 저렇게 커."
" 흐흐."
" 잘못 만든 거 아냐? 전혀 세 보이지 않는데..."
" 걱정할 거 없다."
제갈사가 사악하게 웃었다.
" 크크... 이걸 황연에게 갖다주기만 하면 전쟁은 이길 테니까."